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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글쓴이 : 미선 날 짜 : 12-12-06 08:35 조회(1007)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66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기독교의 문제를 비판하거나 풀어가고자 할 때
어떤 진영은 교회의 권력 문제를 분석하면서 이를 풀어가는 방향이 있다.
그에 비하면 이곳 연구소의 경우는 교회 권력 문제를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보다 중요한 것은
교리에 대한 비판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른바 권력게임의 문제와 진리게임의 문제에 있어
어느 것에 우선적으로 치중할 것인가
나는 단연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자의 문제는 어차피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전제된 사안에 속하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권력을 지속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그 명분들(교리, 진리 등등)에 대한 모순과 허구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중요할 것이다.

후기 플라톤에서도 언급된 것이지만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그 어떤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기에
존재 자체를 힘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누구나 권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적이지 않은 인간은 없다. 권력에 대한 정의를 말해보자. 
 
재독철학자 한병철에 따르면, 권력이란 자신의 에고가 타자 속에서
 ‘자아의 연속성’을 창출하려는 의지이며,
이는 억압이나 폭력만 가지고는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권력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보질 않으며, ‘아무 구별도 없이 모든 것을 환영하는’
‘자신을 염두에 두지 않는 친절함’을 그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권력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질 않으며 진정한 권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말의 주장에 나는 동의를 하면서
결국은 나쁜 권력과 좋은 권력이 있을 뿐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게 뭔가?

잠시 생각해보자.

도대체 이 세상에 권력적이지 않은 인간이란 게 어디 가능한 것인가?
존재 자체가 생래적으로 자기중심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체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조차도 권력적으로 세상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그 자신의 권력에 대해서만큼은 면죄부를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주류를 비판하는 해체주의자들은 그야말로 자기모순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권력들은 진리를 명분으로 내세워 진리 게임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권력적인 악인도 자신의 권력적 행위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당화와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쓰곤 한다.
나찌가 권력을 잡기 위해 그리고
히틀러가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해 인종주의를 내세우거나
교회권력자들이 여성과 동성애자를 억압하는 것 역시
성서의 구절들을 내세워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폭력적인 권력이라도 아무런 명분 없이 곧바로 억압하진 않는 것이다.

물론 최종 목적은 자신의 기득권을 비롯한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에 있겠지만
이것이 아무런 명분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왜 명분을 내세워야 하는 것인가? 왜 정당성을 구걸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와 타자 사이의 연결을 위해서다.
즉, 자기가 타자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 연결 다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아주 기만적인 소통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진리 담론 게임이란 결국 자신과 타자 간에 연결의 다리놓기 게임에 해당한다.
그 연결이 성공할 경우 소통의 담론이 될 것이며, 실패할 경우 불통의 담론이 될 것이다.

교회 역사에 있어 교리 논쟁이란 결국 권력의 정당성에 봉사하는 명분 논쟁이지만
중요한 문제은 그 어떤 고정불변의 교리가 정식화되었다고 했을 때
이것이 그러한 교회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지속적으로 봉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나는 그래서 교리를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효적절한 권력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교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바로 이러한 점을 잘 보질 못한 채
그저 비대해진 교회 권력을 비판하면 교회 제도의 민주적 개선만을 논하는데
이는 정말로 중요한 교회 권력의 본질적 지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정말 <말 되는 소통적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인가?
구원독점의 배타주의 교리가 얼마나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게 했는지를 정녕 모른다는 얘긴가?

초자연주의를 사실로 인정하는 창조설이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고 있는지를 못보는 것인가?
 
전지전능한 절대적 하나님 교리가 교회 권력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파워를 부여해주고 있는지를 정녕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기독교인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의 눈물과 비극이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인가?

이 세상에 정치하지 않는 인간이 없으며, 권력적이지 않은 인간도 없다.
 
세간의 많은 사람들이 흔히 제도권의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나무라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 그러한 정치인들이야말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권력 욕망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에 다름 아니다.
 
결국은 우리 앞에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혹은 소통적인 권력과 불통적인 권력이 있을 뿐이다.

권력화 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언뜻 보기엔 강력한 비판의 소리 같지만
실은 하나마나한 볼멘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은 그 권력을 도대체 무엇이 정당화 해주고 있는지
그 권력을 도대체 무엇이 지탱해주고 있는 것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교리를 비판하는 일은 바로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교리란 일종의 공식적으로 정식화한 기독교의 체계적 언명들이다.
그것은 일종의 성문화된 법처럼 세계 안에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가 억압과 비극과 불통을 낳는 그런 교리라면
당연히 비판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의 권력

예수의 권력을 이해하려면 먼저 구약의 메시아 사상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당시 지배체제 곧 열왕들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국은 약자를 희생시키는 강자들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애초의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이 지녔던 야훼신앙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예언자들은 새로운 신왕사상으로 이어지는데,
왕이지만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우리의 눈물과 질고를 대신 짊어진 그러한 왕을 대망한 것이다.
알다시피 이사야53장은 이러한 면면들을 매우 잘 묘사해주고 있다. 쉽게 말해서,
왕이면서 종으로 오신 모습의 그러한 왕사상이 메시아 사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본다.
(* <새롭게 열리는 구약성서의 세계>(한국신학연구소) 참조)

신약의 예수운동은 철저히 나눔과 섬김의 하나님나라 운동이었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소외된 자들을 우선시했던 약자 우선적인 운동이었다.
예수의 수행했던 권력은 바로 이러한 권력이었고
흥미로운 것은 그의 비폭력적 자기희생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감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타자를 지배한다. 쉽게 말해서 이것이 예수의 권력화라는 얘기다.

생각컨대, 비폭력적 자기희생만큼 가장 강한 소통적 권력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쁜 권력 곧 폭력의 문화를 종식시킨다. 아마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폭력은
도가 넘친 나쁜 권력과 동의어로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가 정말 이러한 예수를 교리화해서 전하고 있는 건 아니잖은가?
그런 점에서 나는 이 문제가 교회 제도의 민주적 개혁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도 더 마땅히 우선적으로 지적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물론 때론 전략상에서 교회 제도의 민주성을 먼저 부르짖을 순 있다해도
가장 궁극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핵심 문제는
바로 이러한 잘못된 교리 문제에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나는 교리를 비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천 년 교회 역사에서 교회 지배자들의 정치 권력적 행태들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면면들에는 바로 잘못된 교리가 이러한 지배적인 정치 권력에
늘 봉사하는 기능으로서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권력 게임도 결국은 언어의 마당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호치민 (12-12-07 17:50)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그 깊은 기저에 어떠한 원인이 자리잡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현행 기독교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때 뭐가 우선되어야 되는지 잘 설명해주는 글이네요. 역시 또 한 번의 후련함을 느낍니다.~

    
미선 (12-12-08 17:57)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워낙 단숨에 쓴 글이라 ..ㅡㅡ;;

드니로 (16-05-16 08:41)
 
이 내용에 공감합니다.
아직 선생님의 글 대부분을 보지 못했기에 교리비판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알지는 못합니다만 이 글의 후속타로 우리가 명확하게 비판하고 극복해야 할 교리에 대한 후속 글이 있으면 합니다. 목회현장에서 내가 지금까지 신봉하고 있었던 교리들을 비판하고 탈피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미선 (16-05-17 17:45)
 
그렇군요. 교리에 대한 비판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신 것인지요.

혹시 <기독교 대전환>을 읽으셨다면 거기에는 기존 기독교가 지닌 <세계관>과 <신관>이나 <성서관>에 대해 비판과 대안을 써놓은 것이라..

암튼 목회현장에서 이러한 고민을 하고 계신다니 수고와 고민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계속 기운내시길 바라며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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