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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11-19 05:20 조회(70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534 
  FILE #1 : 새로운_기독교_교회-주보-견본1-예수운동예배.pdf (205.6K), Down:0, 2017-07-01 08:06:09
  FILE #2 : 새로운_기독교_교회-주보-견본2-일반예배개혁본.pdf (292.5K), Down:1, 2017-07-01 08:06:09




(* 첨부화일은 새로운 예배 형식을 위한 견본이며, 아래의 글은 <주간기독교>에 실린 글의 대강의 요약본입니다)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적으로서 신'에서 '동반자로서 신'으로, 이제는 닮으려는 예배를!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는 일전에 얘기한 ‘초월신론에서 포월신론으로’와도 관련된다. 현재의 한국 교회 찬양집 가사만 보더라도 왕이니 권능이니 찬양하며 우리는 그 앞에서 숭배와 복종을 엎드려 바친다. 하지만 그 왕은 본래 ‘종의 본성’을 취한 왕이셨다.

하나님의 본성과 예수의 모습은 결국 우리가 닮아야 하고 우리 안에 체득되어야 하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생의 좌표’일 따름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닮겠다는 것이며,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 살겠다는 의미다. 오늘날 예배는 바로 이 점을 구현해야 한다. 그러한 예배야말로 이 땅에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종교가 만일 그의 최종적인 만족에까지 도달하려면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것은 헛된 신의 단계에서 ‘적enemy’으로서의 신으로, 그리고 적으로서의 신에서 ‘동반자companion’로서의 신으로의 변천이다(A. N. Whitehead, Religion in the Making).

이 때 새로운 대안 예배의 단계는 가장 고등한 단계인 바로 ‘동반자’로서의 신에 대한 예배인데, 이것은 종교가 존재의 고독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단계와 관련된다.

‘헛된 신’은 신에 대한 아무런 느낌을 갖지 않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신에 대한 사상도 없고 당연히 예배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존재의 고독은 그냥 방치된다.

‘적으로서의 신’은 위엄과 공포로서의 신이며, 두렵고 떨림으로서의 신이다. 즉, 인간은 그분에게 복종하고 무조건 믿고 결국 그분을 달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린다. 이것은 자신의 고독에 대한 소극적 치유의 단계다.

‘동반자로서의 신’의 단계에서는 더 이상 신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의 본성을 닮으려고 하는 단계인데, 이는 결국 우리 자신의 고독에 대한 적극적 치유의 단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적enemy’과 ‘동반자companion’라는 표현은 두려움과 친밀함의 차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적으로서의 신’에게 드리는 예배에서는 인간은 결코 신을 넘나볼 수 없으며, 인간은 신과 철저히 구분된 존재로 인식된다. 각각 세 단계를 거치면서 세계 안의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고독에 대한 이해의 폭도 점점 깊어져 간다.

여기서 하나의 단계를 건너는 데는 수천 혹은 수만 년의 세월이 걸리며, 현대 문명에서 보는 종교의 양태는 대체로 둘째와 셋째 단계 사이쯤에 와 있다고 본다.

오늘날 완전자, 초월자로서의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보수 근본주의적인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경우는 여전히 ‘적으로서의 신’의 단계를 밟고 있는 셈이다. 문명사적으로 볼 때, 특히 둘째 단계로서의 신 이해에서는 종교로 인한 분쟁과 전쟁이 빈번하다고 하겠다. 화이트헤드가 보는 신 존재는 궁극적으로 두렵고 떨림의 대상이라기보다 우리가 닮아야 할 친밀함의 대상인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에 대한 참여적ㆍ체험적 예배 모색

실제적으로 그리스도교인이 셋째 단계로서의 신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의 삶을 통해서다. 서남동은 말하길, 이제는 이 땅에서 예수의 삶을 ‘내가 재현해내는 차원’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현재의 예배의식을 예수의 공생애를 형상화하여 의례화할 것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 예수의 삶을 예배의식에 담아냄으로써 우리가 예수의 삶을 살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예배의식을 ‘예수의 공생애’를 체험하는 예배로 바꿔 볼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닮으려는 예배’에서 분명하게 의도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예수의 공생애에 대한 나 자신의 참여적·체험적 예배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을 끊임없이 체험하려는 신앙이 필요하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예수의 삶을 닮기 위해 신앙을 가진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 예수의 역사적 삶에 대한 참여적ㆍ체험적 예배
(*아래는 대략의 순서일 뿐, 첨부화일의 주보 견본 참조 바람, 실제 응용은 자유롭게)

1. 갈릴리, 그 고난과 고통의 현장으로 - 묵상기도 / 시작송영(여기오소서) / 갈릴리 현장의 기도소리

2.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말씀 나누기 - 주기도문 / 하늘 뜻 나누기

3.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 - 호산나 찬양 / 헌금시간

4. 예수의 십자가 현장으로 무명의 한 여인 기억하기, 주님의 피와 살 나누기, 결단의 신앙고백

5.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 - 십자가 현장에서(거기 너 있었는가)

6. 예수의 부활, 갈릴리에서 만나자 - 침묵 속의 깨달음 / 마침찬양(갈릴리로 어서 가요)
 
................


(주간기독교 기고)
 
 
 
미선이 (10-11-28 05:34)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예배 주보 견본]
http://freeview.org/bbs/tb.php/b001/53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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