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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1-02-10 06:02 조회(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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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 '생명평화', 보수 기독교 앞에선 무기력한 진보신앙이데올로기
 

 
(*아마도 이런 나의 문제 제기에 대해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이라면 많은 의문과 반감을 드러낼 수도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나로선 이를 분명하게 해두고자 한다. 물론 구체적인 근거에 기반한 정당한 반론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하는 바다).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에 만연한 <생명평화> 담론
 
아마도 오늘날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주로 진보 개신교 진영을 일컫지만 일부 천주교 진영도 포함된다고 봄)의 담론을 특징짓는 단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여지없이 <생명평화>라는 단어일 것이다. 예전에는 민중해방이었다면, 이것이 여전히 진보 기독교 울타리를 좀처럼 넘어서지 않아서인지 이제는 생명평화 라는 용어가 기존 진보 기독교 진영에 거의 유행어처럼 번져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서, <생명평화>는 오늘날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의 무의식적 전제와도 같은 그러한 핵심으로서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얘기다.

한때 나 자신도 생명평화 담론을 지지했었고, 관련단체에 미약하나마 몸담은 적도 있었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볼수록 나는 이러한 생명평화를 내세우는 담론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임을 말씀드린다. 이를 테면, 기독교 신앙이 원래 생명평화적이라는 얘기는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시니라는 강조만큼이나 무기력하다. 이를테면 유명한 김지하 같은 사람도 얼마나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강조했었던가.

본 글에서는 생명평화 담론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생명평화 담론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나는 생명평화 담론이 지구촌 사회 변혁에는 적실한 담론일는지 몰라도 기독교 변혁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무기력한 담론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 속한다. 따라서 생명평화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이를 진보 그리스도인의 1차적 표어로서 채택하는 그 지점에서만큼은 분명하게 반대할 따름이다.
 
진보 기독교 진영에 생명평화 담론이 나오게 된 배경

생명평화 담론은 90년대 후반부터 민중운동에 생태환경운동이 접목되면서 서서히 강조되어진 흐름이 있었다. 7-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생명평화>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오히려 <민중해방>이 절실한 과제였고 표어였었다. 그런데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죽기 직전에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과 궤를 같이하면서 기존에 있던 일군의 민중신학자들 가운데는 생명사상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었다(김용복, 박재순, 채희동 등등). 기존의 진보 기독교 학자였던 김용복 박사의 경우는 아예 <생명학>이라는 것을 주창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흐름은 90년대 이후에 나타났던 일반적인 시민사회에 운동에서 생태환경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흐름과 맞물리면서 <생명>에 대한 관심들 역시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 안에도 서서히 자리매김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제는 도대체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점이다. 사실 생명에 대한 정의도 여전히 추상적이고 제각각이다. 어떤 면에서 생명이란 이미 존재와 실재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자 세계 전체를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생명 아닌 것도 없다. 즉, 이것은 일종의 토틀러지인 것이다. 이는 여전히 동의반복에 불과하다. 나는 핵심 가치를 추구하는 표어 채택에 있어서, 누구나 공감가능하리만치 추상적인 보편적 가치의 표어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그것이 지닌 정치적 무기력함도 함께 비례할 것으로 본다.

오히려 굳이 따진다면 민중을 약자로서의 생명이라고 볼 경우, 민중해방(약자해방)이라는 표어가 적어도 생명평화보다는 훨씬 더 그나마 나은 표어라고 생각된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계급해방 없는 생태환경운동은 오늘날 중산층은 물론이고 부르주아들도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급운동이 탈각된 환경생태운동은 진정한 환경생태운동이 아니라고 할는지 모르나 기후변화나 온난화 문제 자체도 이미 문제로서 인식하는 지점에서만큼은 보편적으로 여겨질만큼이나 공통적이다. 단지 서로 간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타산으로서 서로 충돌하고 엇갈려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진보 기독교 진영뿐만 아니라 기존의 보수 기독교 진영조차도 기독교가 생명 평화의 종교라는 점을 주장하는 데에는 아무 무리없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만일 보수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는 한기총도 나름대로 생명평화 운동을 실천하는 단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생명평화냐라는 거에 대한 개념 정의 문제만이 우리 앞에 남아 있지 않겠는가. 도대체 생명평화라는 게 무엇인가? 그렇다면 결국은 개념의 궁극적 지평을 논하는 철학(형이상학)의 문제로 다시 들어가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수 기독교인들도 실행하는 생명평화 운동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의 가장 큰 치명성은 여전히 쟁점화된 구체성을 탈각시킨 표어라는 것이다. 생명과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사실상 보수 기독교인들도 얼마든지 강조할 수 있다. 실제로 보수 기독교 언론들조차도 생명평화 포럼에 대해 이를 잘도 보도해주잖은가. 기독교가 생명과 평화의 종교라는 점을 강조하는 언술은 이명박도 김홍도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위치에서 언급할 수 있다. 이는 헨리 나우웬 신학의 추상성만큼이나 무기력할 따름이다.

이는 7-80년대 민중해방에 대한 또 다른(어쩌면 더 후퇴되었을지도 모를) 버전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정의 운동으로의 환원이라는 이러한 맥락적 문제점 역시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만큼은 민중해방 강조에서 드러나는 문제와도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나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어느 게 더 우선적이라고 말할 수 없고 어차피 동시적이라고 보는 입장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삶 자체는 어차피 전방위적이고 동시적이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기독교 변혁과 사회 변혁의 우선성을 말한다면 나는 확실히 기독교 변혁의 입장이 훨썬 더 우선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이미 그 개인과 사회의 자리에 모두 내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명평화를 내세우는 지점에선 기독교 변혁에 대한 선명성이 우선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점은 여전히 기존의 진보 기독교가 간직하고 있는 문제라고 본다. 물론 생명평화를 강조하시는 진보 기독교 인사들이 교회개혁에 반대하거나 그런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실제로 이분들 역시 기독교 변혁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우선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여전히 미약하며 일반적인 생태환경운동 사회정의운동 속에서만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왜 이를 문제삼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존의 보수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잘 들여다볼 것을 권하고 싶다. 내가 보기엔 보수 기독교인들도 이제는 시민사회 운동에서 일종의 정치적 권력들을 생산해내고자 하는 측면이 있기에, 생태환경운동이나 사회정의 운동 자체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단지 이들이 서 있는 정치적 스탠스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보수 기독교인들도 자기들 나름대로는 생태환경 운동과 사회정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진보 기독교인들은 이명박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극렬하게 반대하지만, 보수 기독교인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지지하고 적극 도우는 입장에 놓여 있다. 실제로 한기총은 성명서를 통해 “오염되고 파괴된 생태계가 복원되도록 친환경적으로 추진돼야 하는 입장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적극 지지한다”고까지 발표했을 정도다. 즉, 보수 기독교인들도 나름대로는 생명평화 운동을 실천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한미FTA가 생명과 평화를 말살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기존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한미FTA야 말로 생명과 평화를 살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가 말살되듯이, 생명과 평화의 이름으로도 생명과 평화 역시 훼손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다양한 생명평화에 대한 정의가 남아있는 것이며, 천 개의 생명관과 천 개의 평화관이 있을 따름이다.
 
나의 입장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드린다. 나는 생명평화 담론의 내용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새로운 기독교 변혁 운동의 차원에서 볼 경우, 그것이 지닌 정치적 무기력함을 지적할 따름이다. 따라서 생명평화를 강조하는 것까지는 나 또한 때에 따라선 적절히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보기엔 반대하진 않지만, 생명평화라는 용어가 전체 기독교 신앙을 대표할 만큼의 표어적인 주제로서 채택하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생명평화>보다는 <새로운 기독교> 담론으로 전환되어야

혹자는 내게 말하길, 생명평화를 강조하는 건, 오히려 반발심을 사는 것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되려 기존의 기독교 진영을 품고가기 위한 전략으로서 봐줄 수 없는가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를 품고가기 위해서 구체적인 쟁점들이 드러나지 않은 그런 무기력한 두루뭉술한 담론들로 치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품고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덮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볼 땐 오늘날에는 <새로운 기독교>라는 표어야말로 (적어도 생명평화 보다는) 훨씬 더 선명성을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본다. 기독교 자체의 변혁 없이는 생명평화라는 담론도 7-80년대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이 내세웠던 민중해방 담론의 또 다른 관성적인 계승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본다. 우리의 기존 진보 기독교는 여전히 7-80년대식의 기독교 운동을 벗어나 있지 않다. 물론 7-80년대까지는 시대적 절박성이 있기에 나 역시 이를 충분히 계승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이 전개되고부터는 기존의 진보 기독교 운동 시스템은 전면적으로 다시금 새로운 기독교 운동 차원으로서 새롭게 전환되어야 했음에도 지금까지조차 결코 그러하질 못했었다. 통일운동, 생태환경운동 등등 이러한 사회정의 운동들은 어차피 사회연대사업으로서 함께 해나가면 그뿐이다. 문제는 여전히 기독교 자체다. 썩어 있는 기독교에 대한 책임성은 왜 생명평화 담론만큼이나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는가?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오늘날 한국의 전체 기독교계를 통틀어서 나의 이러한 주장은 거의 묻혀 있을만큼 전무후무하게 생명평화 담론을 비판적으로 알아차림 하는 분들을 거의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류상태 목사가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을 비판하면서 기독교 교리의 내용들을 문제삼는 변혁에 대한 우선적인 1차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나의 입장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의 전망과 몇 가지 첨언들
 
물론 나의 이런 언급에도 아랑곳없이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생명평화를 내세우면서 이명박의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며, 반면에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기존의 보수 기독교들과는 여전히 충돌하는 양상들을 계속 보여줄 것으로 본다. 즉, 보수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진정한 <생명평화 운동>이라고 여길 것은 뻔하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변혁의 1차적 쟁점들은 바로 그러한 지점들에 있지 않다. <생명평화> 같은 테제들은 여전히 사회운동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테제들일 뿐이다. 기독교 변혁을 위한 보다 생산적인 핵심 가치의 구현은 낡은 기독교와의 전선을 드러내는 그러한 종교운동의 범주에 속한 것일 때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천 년 기독교 역사상 이러한 사례는 16세기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사건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할 정도다. 그나마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조차도 <솔라 스크립투라>라는 언명에서 보듯이 그저 "성서로 돌아가자"는 식이어서 여전히 구체적인 쟁점들은 모호하게 탈각되어 있어 무기력할 따름이었다. 결국 루터나 칼뱅도 이전의 낡은 신학들이 지닌 핵심들은 그대로 이어받잖은가.
 
그렇기에 새로운 기독교라는 핵심 가치는 적어도 낡은 기독교와의 대비를 분명하게 마련해주는 지점이 있다. 두리뭉실한 생명평화는 그저 일반적인 사회운동, 즉 굳이 기독교의 예수운동이 아니어도 충분히 마련가능한 차원일 뿐이다. 그런 지점에선 보수 기독교인들조차도 자신들의 신앙적 자리들을 좀더 확장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생명평화>라는 가치를 여전히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십상인 것이다.
 
요컨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 혹은 한기총 세력들은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이 생명평화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거라고는 보질 않는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기독교를 떠올려볼 때도 생명평화라는 좋은 단어들에 내색을 표하기보단 오히려 이를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성서해석의 방법이나 타종교와의 문제들 등등 이러한 지점에선 서로 간의 그 첨예한 본색을 드러낼 것으로 본다. 2013년 WCC 총회 참가 여부를 놓고서도 신학적 해석 때문에 왈가왈부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기독교 신앙운동이 일반적인 사회정의 운동과 같은 범주라고 한다면 <생명평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선 하등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가 보는 기독교 신앙운동은 사회정의 운동의 범주와는 또다른 차원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종교신앙이 사회운동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내가 볼 때 기존 진보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맹점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를 구분한다는 사람조차도 실제상의 행동에서는 주로 종교운동보다는 사회운동에 더 몰입되어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성서와 예수를 그저 사회정의 운동을 위해 여전히 활용할 따름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궁극적인 것은 사회정의 운동 (일명 생명평화 운동)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기독교로 이해하는 진보 개신교들은 여전히 많다. 
 
내가 보기엔 이천 년 전 예수의 기독교는 아직 여전히 제대로 탄생되어 있지 않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로선 새로운 기독교로의 변혁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생명평화 담론의 무기력함에 대해 다시금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며, 바로 이러한 맥락에선 기존의 진보 기독교들의 의식을 재차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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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1195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352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1139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983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350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1122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1010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941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908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28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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