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53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53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새로운 기독교 운동
월례포럼
기획강좌
연구소 활동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697
어제 453
최대 10,145
전체 2,521,815


    제 목 :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6-05-23 15:29 조회(538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4 





21세기 새롭고 건강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 한국 기독교의 진정한 참회와 변혁을 기원하며... 
 

 
21세기 새로운 그리스도인을 위한 신앙선언서

- 한국 기독교의 진정한 참회와 변혁을 기원하며...


1. 우리는 오늘의 시대를 기존 기독교가 더 이상 빛을 주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 신학의 위기'와 '교회의 위기'로서 받아들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명력 있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를 지향한다.

2.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본래적 기반을 역사적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두고 있으며, 그의 삶을 본받아 이 땅의 소외되고 억압받는 모든 생명들을 해방케 하는 기독 신앙을 지향한다.

3. 우리는 기독교 교리라면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강요적이고 폭력적인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며, 이 땅의 낮은 자들을 위해 일상의 삶 속에 뿌리박은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기독 신앙을 지향한다.

4. 우리는 성서의 문자 하나하나가 모두 사실이며 완전무오하다는 '성서무오설'에 대해 반대하며, 성서의 문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대한 깊으신 뜻을 성찰하는 깨달음의 성서읽기를 지향한다.
  
5. 우리는 성서의 초자연주의적 요소들을 문자적으로 믿음으로 인해 자꾸만 현대 과학 진영과도 충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의 자연과학적 성과들과도 소통 가능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합리적 보완으로서의 기독교를 지향한다.
  
6. 우리는 기독교 아닌 타종교에 대해 전투적이고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배타적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며, 그리스도적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세계 안의 다양하고 건강한 종교 문화에도 열려있는 기독 신앙을 지향한다.
  
7. 우리는 여성 안수를 반대하고 여성 비하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며, 기독교 역사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지배이데올로기를 반성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의 상호 평등한 기독 신앙을 지향한다.
  
8. 우리는 하나님을 전지전능하고 완전무결한 절대적 초월자로 보는 제왕적 군주자로서의 하나님 이해에 대해 반대하며,  오히려 부조리한 현실 세계의 고통마저 품어안고서 다함께 극복하고 창조해내는 포월적인 하나님을 믿는 기독 신앙을 지향한다.

9. 우리는 현재의 교계 안에 만연된 교회의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제도와 질서에 대해 반대하며, 오히려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아낼 수 있는 민주적 소통구조로서의 기독 공동체를 지향한다.

10. 우리는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 교회 문화를 잠식하고 있는 서구식 교회와 목회 문화를 지향하기보다는 가급적이면 우리 문화의 고유한 멋에 기반한 창조적인 우리식 교회와 목회 문화를 지향한다.

11. 우리는 신앙의 대상을 만왕의 왕으로 떠받들며 숭배와 굴종으로서 믿기만 하려는 그런 예배를 드리기보다, 오히려 신앙의 대상을 우리의 몸으로 체득하여 주님의 몸삶을 닮으려는 예배를 지향한다.
  
12. 우리는 죄사함을 단순히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에서만 보질 않고, 하나님과 죄를 지은 자와 그 죄로 인해 피해를 당한 이웃들까지 포함하여 항상 고통 받는 약자들과 함께 진정한 회개로서의 죄사함을 성찰하고자 한다.
  
13.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현실 세계 안의 온갖 강대국들의 침략과 억압과 횡포에 반대하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한계와 병폐마저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민주적ㆍ생태학적 정치 경제 체제를 지향한다.
  
14. 우리는 생명과 평화를 유린하는 모든 세력들 및 각종 악법들에 대해 철저히 반대하며, 모든 폭력과 죽임의 세력들에 대해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까지 지속적인 비폭력적 저항의 기독 신앙을 지향한다.
  
15. 우리는 인간의 몸삶을 이해함에 있어서 신과 세계,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라는 이원론적 도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상의 총체적인 몸(Mom)으로서 성찰하는 통전적인 기독 신앙을 지향한다.
  
16. 우리는 죽은 뒤의 영혼이 불멸하여 내세 천국에 들어가는 영혼 구원보다는 그것이 내세든 현세든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를 생명살림과 평화누림의 하나님나라로 바꾸는 운동을 진정한 복음화요, 구원운동이라고 본다.
  
17. 우리는 오늘날의 기독교 선교 대상이 저 먼 나라의 오지가 아니라 놀랍게도 바로 기독교 그 자신이라고 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한국 기독교의 진정한 참회와 변혁을 갈망하고 있는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임을 선언한다. 

  
 
 
창훈 (07-02-27 10:26)
 
13.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현재의 미제국주의를 비롯한 세계 안의 온갖 강대국들의 침략과 억압과 횡포에 반대하며,

----> 이건 반대할 일도 아닌 같고(내분이 사라지고 강해지면 될문제), 신앙고백에 덧붙인 목표중의 하나인  것 같으군요

창훈 (07-02-27 10:45)
 
14. 우리는 국가보안법과 반민주 반통일 세력들을 철저히 반대하며,

-----> 보안법의 남용은 다 아는 사실이니 거론을 안해도 되는거고 ... , 세상어디에 온전한 민주가 있던가요 ? 특히 북한에... 민주가 있던가요?  없지요 또 반민주세력이라? 이게 통일을 방해한다시는데, 절차상으로는 강자가 우선 한 발 물러서면 상대도 한발씩 순차적으로 물러섬이 방법이거늘 일방적인 민주화요구는 어렵겠지요
철저히 반대한다셨는데 철저히 민주화를 하는 곳은 어디인지요(휴전상태의 나라에서)
그리고 통일이 거론되려면 상호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건만, 북한의 민주화는 어느정도입니까?
짝사랑이 나쁜 건 아니지만, 만일 상대가 배신하면 쓴 잔을 마시거나, 거리를 방황하는 것이지요
하여 도박성이 강하다는 것이지요(님이 보증서겠습니까?  물론 작격도 없겠지만 불가합니다)

님이 국가를 움직일만한 힘이나 어떤 파워를 드러내기 전에는 어려운 이야기를 쓰셨군요

답변을 기다립니다

정강길 (07-02-27 12:58)
 
내분이 사라지는 것과 하나님 나라를 일궈나가는 것은 이분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어차피 현실의 문제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보안법 남용은 다아는 사실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이를 다알지 못하고 있는 우매한 자들도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기존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아직까지도 대부분이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현실입니다..
글구 온전한 사랑이 있는 곳에 민주화도 내포되는 것 아닐는지요.. 자율성을 존중하고 억압하지 않는 것은 타자에 대한 기본적 태도여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란 것이 결국은 이 땅에 없기에 이 땅에서부터 이뤄나가고자 하는 것 아니겠어요?
체 게바라의 이런 말을 했다죠..
"우리모두 철저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한 켠에는 언제나 불가능한 이상을 품고 나가자.." 라구..

창훈 (07-02-27 17:05)
 
이분적으로 보였다면 죄송쿠요 어느 하쪽으로 많이 기운 것이 반대편으로 옮겨간다로 봐주세요

우매와 함께 고집스런 분들도 많으나 좋게 표현했습니다.

전재조건이(온전한 사랑이 있는 곳에 민주화도) 충족되기 어려운 것이므로 점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렵니다.

서로를 불신하는 상대가 있으므로 안밖으로 풀어가야 하는 난제입니다.

뭐든 순서와 간발의 차이만 극복하면 풀리는 것인데, 물러설면 무너는 것으로 몰아가는 풍토가 문제입니다.
아니 절반만 물러서면 더 밀려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버티느라 고생들하며 신경전만 치르느라
본 게임에는 종도 못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체 게바라가 한국인이며 이곳에 산다면 같은 주장을 했을까요?

저는 남북이 갈라진 원인으로
1.내부적인 문제(양반은 얀반이고 종은 대를 이어서...종)
2.정파의 세력다툼으로 내분이 일러나서 속빈강정이 됨
3.국력이 쇄약하므로 제국들이 군침을 삼킴.

위로 보아서도 2/3가 내부적인 것이고 1/3이 힘센 제국의 만행이지요

체 게바라의 무대는 휴전중이 아닌 상황에서 제국과 맞선 것이므로 이곳의 상황과는 다르지요

정강길 (07-02-27 17:45)
 
글쎄요.. 저는 체 게바라의 명언인 "우리모두 철저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한 켠에는 언제나 불가능한 이상을 품고 나가자.." 이 언급은 보편적 통찰로 봅니다만..

창훈 (07-02-27 17:56)
 
인간이라는 면에서는  보편적이지만 분단된 휴전중의 국가라는 단위에서는
통일이 우선이고 제국견제는 2차적인 사항이지요

제국이 물러나면 통일이 된다는 건 분단의 이유로 보아 적합치 못하다고 보는 바입니다.
우리는 양반과 종이라는 문제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며
지금은 불신이 생겨나서 더 꼬인 것이지요

한반도의 상황은 좀 특이하단 것입니다.

정강길 (07-02-27 18:42)
 
진정한 보편은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어야 진정한 보편이겠져..
제국이 물러나면 통일이 된다? 그런 우선순위를 제가 정했던가요?
어차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은 총체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을..

사랑법 (07-02-28 01:47)
 
배중곤 - 7.번 항목의 뜻은 이해되나  , 문장은 잘못된것 같습니다.  "여성 안수와 여성 비하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며" 라는 글은 여성안수도 반대하고 여성비하도 반대한다는 뜻이니,  이는  "여성 안수를 불허하는 기독교와, 여성 비하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며" 라고 고쳐야 할것 같습니다.  또는  "여성 안수를 불허하면서 여성 비하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며"  ??  ^^;  하여간....      그리고 창훈님의 말씀은..  지금의 한국의 상황은 보편적인 가치관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특수상황이란 소리이신가요?

관리자 (07-02-28 03:17)
 
그러네요. 사랑법님 지적에 감사합니다^^

창훈 (07-02-28 10:34)
 
체 게바라를 거론하면서 보편을 말한다는 게, 한국에서는 안어울린다는 것이지요
이건 분단국에서 보편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되는 것이지요
저와의 차이점은 이것으로보이는군요

 "우리모두 철저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한 켠에는 언제나 불가능한 이상을 품고 나가자.."

불가능에 도전한다는 거, 총칼이 있어야 하는 혁명이지요
님에게는 무슨 무기가 있는지요, 혹시와 진실과 종교입니까?
그렇다면 체 게바라의 방식이나 이상을 거론함이 불가합니다.
그의 방식은 총을 필요로 하기때문이지요

창훈 (07-02-28 10:45)
 
물론 액션이 종교에도 분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그의 조국은 한반도와는 다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대립의 현장에서 그의 이상을 추구한다는 건 무리입니다.

진정한 보편은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잇어야한다면
모든 상황을 보편으로 이해할 수도 있단 것인데 ....

창훈 (07-02-28 10:49)
 
사랑법- 그리고 창훈님의 말씀은..  지금의 한국의 상황은 보편적인 가치관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특수상황이란 소리이신가요? 
 
체 게바라의 조건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점진적이라는 조건을 거론했었는데, 된다/안된다로 흘러가는 분위기로군요

정강길 (07-02-28 11:37)
 
뭔가 단단히 오해하신 듯 한데..
"우리모두 철저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한 켠에는 언제나 불가능한 이상을 품고 나가자.." 라는 얘기가
어떻게 꼭 "총칼이 있어야 하는 혁명이다" 라는 명제로만 연결되는지요.. 총칼얘긴 한 적도 없는데..
만일 국어시간에 "서로 사랑하자"라는 얘길 했으면 그때의 '사랑'은 항상 국어시간에만 타당하고
국어시간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체 게바라의 상황 속에서도 충분한 보편적인 통찰을 할 수 없다는 얘긴가요?
한국의 문익환 목사님도 이와 비슷한 얘길 하셨지요.. 현실의 역사는 이상을 품고 가는 자들에 의해 전진한다라구..
뜻을 읽어나감에 있어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창훈 (07-02-28 16:07)
 
이야기가 돌고도는 것에서 벗어나질못하네요
조건으로 점진성을 제시했으므로 대단한 오해는 아니구요
체 게바라를 거론하다보니 또 혁명을 거론하면서 무력이 없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공산주의도 총칼이 필요했던 것이구요
공산주의 이론은 평등이니 좋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이상이란 것이지요
총칼없이 공산주의 시작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어찌 채택하는냐도 중요한 것이지요
혁명군은 무기없이 못합니다. 이러한 정황들이 도출해낸 것들이지요

공산당의 실세들이 기득권을 독식한단 것이 문제입니다.
엄밀히 하면 공산주의적인 평등은 없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 속은 것일뿐이지요

대한민국은 특수한 경우이므로 말하기나 행동이 어렵다는 것이며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으 경우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즉, 하나씩 풀어가야 한단 것이지요( 좀 아타깝지만 ...)
남들은 둘을 한꺼번에 잡는 경우도 있는데 왜서 포기부터하냐고 누군가 오해한다면
전례가 없음이 아닌 경우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고로 안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지요

* 오해의 시작은 체 게바라가 거론되면서 나탄난 것입니다.

모든 게 점진성이라는 절충으로  풀려가던 중이엇는데.... 말입니다.

창훈 (07-02-28 16:23)
 
우리는 국가보안법과 반민주 반통일 세력들을 철저히 반대하며,
********************************************************

민주가 국가의 안위를 보장하던가요 ?
혹시나 때문에 말을 아끼는 것이지 민주를 누가 싫어하겠어요

분단의 상태가 민주의 싹을 자를는 건 나쁘지만 필요악이라는 건이지요
고로 민주가 득세하려면 통일이 우선이지요

그럼 통일이 왜 늦어질까요
...차치하고, 하나씩 물러서지 않으면서 많이 물러서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로얄그룹에서야 통일하면 자리가 줄잖아요 (누가 왕을 할것이가?)

한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인구가 적은 1억2천이하의 국가는 동맹국이 없이는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사대주의 같지만 등소평도 약은장사하는 데 이익을 따져야지 체면따지다가
나라를 팔아먹고 고생하던거 잘 아니까 약게 살아야지요

정강길 (07-02-28 17:33)
 
만일 체 게바라의 언급 없이 단지 그 말만 전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로선 체 게바라가 언급을 하면 그것은 항상 그 뜻이 총칼혁명으로 연결되는 건 좀 의아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엔 같은 뜻을 지녔다고 보는 문익환 목사님의 언급도 그러면 총칼혁명으로 가는 것이겠군요..

창훈 (07-02-28 17:41)
 
북한의 정권도 반민주 세력입니다.
그런데 방북인사중에 그들에게 반민주라고 했던가요
오히려 민주를 도아준다고 했겟지요 손잡고 사진찍고 ....

결국 권력과의 결탁이 없이는 어렵지요 (총을 가진자와 함께하는 것은 무기를 소지하는 게 아닐런지요)

방문자들의 뜻과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앞세우다 그들에게 속는 것이 아닐런지요
남한에서 방북자를 욕하는 거  봤습니다만 너무하지요(무지해서 그렇고)

다만 멀리본다면 양쪽에 반감을 줄여가는 게 유익이란 생각입니다.

창훈 (07-02-28 17:44)
 
문목사님이 북한의 지도부를 반민주세력이라고 말했다면 입국이 되었을까요?
아마 반감이 없이 말했겠지요

저는 이것이 궁금하단 것이지요

뭔가 한 곳에는 빈곳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 빈곳을 숨기려고 하겠지만 ....

정강길 (07-02-28 21:14)
 
다소 논의가 애초의 윗글 신앙고백 얘기와는 조금 멀리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 하네여..
문목사님 방북해서 북한정권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비판했었지요..권력은 인민으로부터 오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당시로선 방북이나 만남 그 자체 그리고 그들과 인사만 해도 북한찬양이니 뭐니 떠들어대며 잡아가던 시절이니....

P.S-혹시 괜찮다면 댓글 쓰실때 가급적 나누지 말고 한꺼번에 다 올려주시면 더 감사..ㅡㅡ;;

사랑법 (07-02-28 22:15)
 
정강길님의 "저로선 체 게바라가 언급을 하면 그것은 항상 그 뜻이 총칼혁명으로 연결되는 건 좀 의아스러울 따름입니다.. "에 한표. ^^
게바라를 말하는게 굳이 총칼로까지 확대해서 받아들어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저 그것이 보편적인 말을 하는 것으로 저는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므로 급진적인 내용을 말하려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삶 속에서라니까 점진적이겠지요.

그 어떤 국가의 상황도  그 나름대로 특수성은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있는 보편성을 살펴보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저에게 그저  "살인하지 말라"는 보편성과 같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이상이란,  이 글을 보는 사람들중 많은 사람들에겐 기독교가 아닐까요?
의지할 대라고는 신앙이란 무기 하나뿐인....

그것으로 점진적으로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점진적으로...

창훈 (07-03-01 19:34)
 
마지막으로 간단히 마치렵니다.

북한정권은 주민들에게 비판을 허용하지않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공개적으로 반민주를 반대하며 투쟁할수 있릉까요?

문목사님이 인민 앞에서 북한정권의 반민주를 비판햇을까요?

왜서 그 주민들의 몫을 남한에서 대신해야 하는지요
그들은 입이없나요 ? 총이 무서워서이겠지요 ....
유선 투쟁할 대상을 정한다면 제 1 번에 북한정권이 해당된다 ㄴ 것이지요
헌데 2번 부터 우선으로 한다는 건 순서가 바르지르 ㄹ못하므로 오해를 받는 것이지요

* 우선 북한정권을 믾이 때리고 남한 정권을 그에 준하여 때린다면 오해는 없단 것이지요

창훈 (07-03-01 19:37)
 
북한에 가서 인민들이 보느 ㄴ앞에서 프랭카드에다
---> 14. 우리는 국가보안법과 반민주 반통일 세력들을 철저히 반대하며,
위와 같이 적어서 휘날리며 돌아다닌다면
문목사님도 잡아가둡지 놔두겠어요 ???

창훈 (07-03-01 19:38)
 
---------------끝입니다.--------------

정강길 (07-03-01 23:26)
 
당시 문목사님은 아예 김일성에게 그런 얘길 했었지요..
북한정권이 독재정권이라고 저또한 그렇게 보지만 제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에서부터 평화를 일궈나가야 한다는 거져..
참고로 제가 보는 북한인권에 대한 접근은 서경석 목사와의 논쟁글에서 상세하게 논한 바가 있습니다..
[서경석 목사와의 논쟁] http://freeview.org/bbs/tb.php/d004/32

kiswon19 (07-04-10 09:18)
 
11. 우리는 주님께 만왕의 왕으로 떠받들며 숭배와 굴종으로서 예배를 드리기보다, 그 분의 선함을 알고 그 분의 삶을 몸으로 체득하여 결국은 그 분을 닮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자 한다. .....글쎄요?!?!
"그 분의 선함을 알고 그 분의 삶을 몸으로 체득하여 결국은 그 분을 닮기 위함" 은 생활 과 삶으로서 이뤄지고...,  "전능자로서의 숭배적,  글자 그대로의-예배-" 는  계속 지켜 나가야 할 부분 아닐까요? 
물론 "생활" 이 "예배" 가 되야한다는 측면에선 나름 이론적 타당성이 있지만..., 경배받아 져야 하는 "하나님의 예배적 속성" 은 그렇게 쉽게 간과 되어서는 않될 부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배" 에 대한 저의 짧은 소견이었습니다.

정강길 (07-04-10 15:39)
 
kiswon19님~ 반갑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얘기 역시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예배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 글은 곧 나올 것입니다..
그 글도 조금 놀라운 글이 될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의 예배 모델 혹은
예배의 요소들이 본래 기독교적 전통에서 비롯하지 않았다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암튼 예배 문제는 좀더 앞으로도 더욱 디테일하게
그리고 본격적으로 고찰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배가 기독교에 있어 아주 중요한 사항임은 틀림없으니까요..



게시물수 180건 / 코멘트수 490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3137 11-04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1268 01-16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1154 12-06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161 10-14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64 04-11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67 02-17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49 02-02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208 01-13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488 11-28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624 11-03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리인가 정강길 5018 04-27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3531 02-18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조직신학적 성경공부 (신론) (2) 관리자 6229 05-28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26) 관리자 5383 05-23
180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몰락이냐? 도약이냐? 미선 1181 06-16
179 "함께 만들어가는 종교와 진리" (2) 미선 1227 06-10
178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병치유 귀신쫓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미선 1343 06-10
177 몸에 모시는 하나님 (탈유무신론의 신앙) 미선 1100 06-09
176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1289 06-07
175 과학의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 입장들 미선 1245 05-30
174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하는 <몸학 기독교>로! 미선 1141 02-10
173 신의 영어 표기 God ----> Gio 로 바뀌어야 미선 1093 02-07
172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미선 1183 12-08
171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면 나타나는 문제들.. 미선 826 11-04
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808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933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796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931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763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835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796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767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925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920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797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903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1031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1028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1254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832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794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1268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1001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784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736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1154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3137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782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817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898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946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751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743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747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846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161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798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751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783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64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1512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67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587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703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49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691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892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768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208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1107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932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1045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1310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1089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1308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488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1240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1094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624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1226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1114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1034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991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394 10-11
 1  2  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