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26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26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새로운 기독교 운동
월례포럼
기획강좌
연구소 활동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697
어제 453
최대 10,145
전체 2,521,815


    제 목 :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1-03-04 07:42 조회(151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577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현대의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

나 자신이 뇌과학과 인지과학 분야를 공부하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접했던 바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은 환상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이쪽 길을 갈 것인가 저쪽 길을 갈 것인가 하고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결정에 달려 있기에 자유의지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하지만 정작 뇌과학 연구에서 밝혀진 실험 결과는 그와 전혀 다른 결론을 산출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 교수는 자유의지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수정시킨다. 그의 실험에 의하면, 예를 들어 우리가 여러 숫자들 중에 그 어떤 임의의 숫자를 의식상에서 자유롭게 골라 선택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의식적 선택을 내리는 결정의 순간 이전에 이미 우리 자신의 뇌 운동피질들은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쪽 방향의 선택으로 벌써 나아가고 있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자유의지에 대한 전통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우리 자신이 뇌에 명령을 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에선 그렇지 않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뇌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나의 선택 결정은 이미 뇌에서 미리 배선된 행위를 수행한 것임에도 실제상에선 이를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식으로 역추론하여 그러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정신을 의식적으로 통제한다는 이 느낌은 언어중추를 담당하는 좌반구 뇌가 만들어낸 착각에 가깝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이미 짜여져 있는 무의식적 수행을 설명하기 위해 자유의지라는 환상을 뇌의식 속에 심어주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당연히 이 실험결과는 학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자유의지에 대한 견해가 붕괴되어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뇌신경과학자로도 유명한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좌반구가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에 가깝다고 얘기된다. 즉, 자유의지는 이미 잠재의식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선택과 결정을 의식상에서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서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유의지란 일종의 허구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아무렇게나 막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이 사실은 놀랍게도 오히려 인간의 자각력과 책임성이 더욱 확장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속한다. 이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악마나 영웅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던 심리실험가 필립 짐바르도(Phil Zimbardo)의 주장처럼 인간이 놓여진 상황성에까지 그 악마성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기에 사실상 이 지점에선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패턴에 길들여져 있는 종속된 삶

만일 위의 뇌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긴급출동 SOS에서 곧잘 방영되었던 “인간 노예”의 사례를 한 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어릴 때부터 주인집에서 일만 하면서 오랜 시간을 그렇게 길들여져 있는 사람에게 이제 주인집에 계속 남아 있길 원하는지 아니면 주인집을 떠나길 원하는지 스스로 자발적 선택을 하라고 했을 때 애초 거의 대부분은 주인집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이 자신에겐 더 좋으며 이는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은 정말로 자발적인 결정에서 나온 것으로서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인간 노예의 삶의 자취들을 바깥 시선에서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과 일반 시청자들이라면, 그 결정이 그 사람의 진정한 자유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통제시스템이 내면화되어 스스로 그렇게 길들여짐으로 인해 나온 것임을 잘 알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정작 노예로 살아왔던 당사자인 본인은 말하길, 자신이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자발성에 따른 결정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즉,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결정이 자신의 자유의지에서 나왔다고 여긴다.

경우는 다를 수 있겠으나 우리 자신들도 충분히 이 인간 노예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인간 노예가 믿고 있었던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지구적 삶의 전체를 충분히 객관화하지 못할 경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 역시 우리를 길들이고 있는 수많은 시스템들이 나의 몸 안에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왜 우리는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성공 지향의 직장을 선망하고 있는 것인가?(물론 일반적인 이런 삶이라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얘긴 결코 아니니 행여 오해가 없길 바람). 혹시라도 무언가 남들 하는 전체 시스템에 속하지 않으면 무언가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압박감에 짓눌려 있는 것인가? 패턴화된 통제시스템은 이미 나의 몸 안에 무의식화되어 있어 나의 모든 선택과 결정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상에서는 이를 나의 자발적 선택과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여긴다.

인간은 자유를 꿈꾸는 기계(?)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관련성을 보다 매끄럽게 연결시키려 했던 다니엘 데닛에 따르면 자유란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하길 결국은 인간에겐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약된 자유 안에서의 자유가 있다는 식으로 이끈다. 물론 이런 얘긴 이미 오래전에 화이트헤드 철학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제약된 자유 안에서의 자유라고 했을 때, 제약이 아닌, 제약을 넘어서는 그 진짜 자유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인가?

모방을 가능케 한다는 거울 뉴런의 발견이나 밈(Meme)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기계라고 보고 있다. 물론 밈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던 리처드 도킨스 역시 인간을 유전자 운반기계로 묘사한 적 있지만, 수잔 블랙모어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인간은 유전자보다 더 강력한 <밈 기계(machine)>라고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자유의가 있는 게 아니라 밈 머신으로서의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이라는 종(種)은 결코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대부분의 뇌신경과학자들 역시 인간을 꿈꾸는 기계(루돌포 이나스) 혹은 의식을 가진 기계(마이클 가자니)라는 표현을 곧잘 많이 쓰고 있긴 하다(본인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많은 부분 동의하나 다만 '기계'라는 표현에 대해선 정확한 표현이라고 보질 않는다. 이에 대해선 언젠가 따로 언급해두고자 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정말로 없는 것인가? 필자가 추구하는 몸학에 따르면 나는 대부분의 인간을 <패턴의 노예>로 본다. 물론 이 패턴은 선행하는 과거로부터 물려받고 있는 길들여진 패턴이다. 이것이 나의 안에 무의식화되어 있는 기제로서 작동되면서 나의 의식을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불교문화권에서 태어난 사람은 불교를 접하는 것이 익숙할 것이며, 이들이 기독교를 믿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기인한 선택과 결정이었다고 여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점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 자신도 예외일 순 없다. 내가 현재로서 예수를 내 신앙의 모델로 선택한 것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배선된 동선을 쫓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패턴의 노예라는 사실은 직전의 과거를 포함해 자신의 몸을 형성하는 여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자유하는 인간 존재가 되기 위해선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의 출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전에 없던 익숙한 것들과의 과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창조성의 발현에 있다고 본다. 물론 형이상학적으로 따지면,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타자원인성>과 <자기원인성>을 함께 지니고 있듯이 <결정성>과 <창발성> 역시 존재가 지니고 있는 두 요소에 해당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논하고 있는 차원은 그러한 형이상학이 적용된 현실적 지평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그것은 정도의 차이에 따른 문제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질적인 차이를 낳는다.

내가 보기엔 현실 세계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인간들에게선 거의 자유의지가 없이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그저 패턴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사랑을 자신만의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많은 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한참이나 길들여져 있음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몸학에 따르면 정말로 진정한 의미로서의 자유의지를 지니려면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자신의 몸 전체(신체만이 아닌 B/L/W/M/G층 모두)를 파악할 줄 아는 자각된 관찰력과 낡은 패턴의 몸에서 새로운 패턴의 몸으로 끊임없이 이행할 줄 아는 능력이다. 여기에는 잘못 길들여진 버릇이나 오래된 생활습관뿐만 아니라 자신의 편견과 가치관 그리고 낡은 형이상학적 전제에 대한 포월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상 진짜 자유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꼽는 사람은 거의 몇 사람 없다고 볼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는 붓다와 예수를 언급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간이었으나 인간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러한 삶을 닮고자 하는 사람의 경우는 자유하다기보다 그저 소박하게 예수와 붓다라는 밈(Meme)을 끊임없이 쫓는 불나방 같은 존재일 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과정에서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과는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고 약간의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현재의 자기를 제어하고 있는 그 패턴을 자각하고 관찰할 줄 알 것
그리고 그 패턴으로부터 도출되는 그 필연적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능력적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내가 보기엔 바로 그러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다.
 

 
 
onefineday… (11-03-04 08:28)
 
위의 글 아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네요.^^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화상 (11-03-04 12:22)
 
프로파간다에 의해 길들여진 의식이 본래  자기것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느껴집니다. 내안의 파시즘적인 요소들을 포함해서 말이죠.

정관 (11-03-05 10:00)
 
버트란드 러셀도 자유의지가 없는 것으로 얘기한줄로 아는데 얼마전에 아들녀석 면회때에도 아들녀석이 자유의지가 없다고 얘길하길래...
 왜? 이미 태어날때부터 자기의지로 태어난게 아닌데....  아주 복잡한 논리를 갖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닥칠게 닥쳤구나 하는
심정이지만  이거 분명히 해결하고 넘어가야할 사항인것 같아요.. 뇌과학이 참 흥미롭기는 한데 그 한계성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신과학 쪽에서는 '가능태'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그것이 '근저'를 얘기하는지 좀더 익숙해질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여하튼 많은 사람들의 의식들이 깨어나는것 같더군요..

범돌 (11-03-18 09:22)
 
화이트헤드의 책에서
인간은 외적으로는 조건지워져 있으면서 동시에 내적으로는 자유롭다..라는 구절을 본 기억이 납니다.
결국 그 두 가지 요소 가운데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삶이겠죠?

그 두 요소 가운데, <모험>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상향과 하향의 계기 앞에서,
익숙하지만 이미 수명을 다 한 기존의 관습에 매달릴 것이냐
아니면 위험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모험할 것이냐...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재미 있는 것은,
화이트헤드가 그 결단의 시점에 대해 <운>을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었죠.
<운>이 좋으면, 새로운 상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도박과 용기,
참 백짓장 하나 차이인 듯 한데,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니, 참으로 어렵기만 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하구요^^

뙤똥 (11-10-22 17:32)
 
뙤똥 (11-10-19, 17:00)
 댓글들이 한 마디로 과학 맹신자들의 넋두리 같네요. 곡선도 짧게 끊으면 직선처럼 보이지요.
의식 현상을 전기 신호로 환원시키려는 미시적인 실험을 탓할 생각은 없어요. 그런 과정이 쌓여서 의식이 생성되는 전 과정이 드러날 테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실험 성과로 마치 의식의 생성과정이 다 밝혀진 것처럼 흥분하는 것은 마치 근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근대 과학적인 성과를 받아들여
신학을 재정립한다는 과정에서 신을 해체해버리고 우주와 역사와 사회에 대하여 의미있는 주장을 하나도 못하고 신의 영향력을 개인의 실존과 심리 현상에
가둬버린것과 다를 것이 있겠나요.

인간의 문명이 여타 동물들의 삶에 비춰볼 때 얼마나 다른지, 다르다면 자유의지 없이 다를 수 있는지  좀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근거를 찾아  판단해 보세요.
백두씨의 말대로 자유의지 즉 단위 존재들의 자기 결정력 없이 우주의 진화가 가능하고 역사의 발전이 가능하고 개인의 성숙이 가능할까요.
진화의 과정이 경험의 가능성과 의식과 자유의 확장 과정이엿는데 말입니다. 만약에 자유없이 생각이라는 의식과 자기 생성의 경험이 가능하겠어요.

임의의 숫자를 선택하는 것조차도 인간은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려다보니 무의식에 가라앉아있는 경험를 검색할 수도 있겠지요. 그걸로 결판 난듯이 호들갑을 떠는 느낌이군요.
만약에 정말로 근거없이 아무 숫자나 집어드는 것이 자유라고 한다면 이는 우연을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요.
발제에서 '제약되지않는 자유'를 찾고 있는데 신조차도 만물의 자기 결정성에 제약을 받는데 어찌 인간이 환견적인 조건과 경험적인 조건을 넘어선 자유를 누릴 수 있겟어요.

물론 대다수의 인간이 고정관념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인간 경험의 현실성이자만 우주와 만물의 진화의 축적인 인간의 경험의 가능성은 전제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폭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겠지요. 아무튼 '제약 없는 자유'를 원한다는 것은 백두선생의 말씀과 너무 거리가 머네요.

    
미선이 (11-10-23 08:47)
 
어느 분께 하시는 말씀인지는 잘모르겠으나
아마도 환원주의를 궁극적인 자신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봐요.
다만 암암리에 그런 오류를 저지르거나 혹은 합리주의적 신념으로서 전략적으로 그런 선탠스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자연과학자들 중에는 후자인 분들도 꽤 있지요.

슈나벨 (12-01-03 01:00)
 
글이 좋아 퍼갑니다.  혹시 어떤 책들을 읽고 이러한 의견을 내신것인지 궁금합니다.

    
미선이 (12-01-03 06:23)
 
글의 출처만 명시하신다면 퍼가는 것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위의 쓴 글을 다시 살펴보니 주로 뇌과학과 심리학 책들이 참조된 거 같습니다.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의 책은 <왜 인간인가>인 거 같고
필립 롬바르디는 <루시퍼 이펙트> 그리고
로돌포 이나스는 <꿈꾸는 기계의 진화> 등등
여기에다 도킨스의 밈 이론도 가미되어 있군요..
하지만 보통 글 쓸 때는 그냥 머리 속에 있는 여러 책들을 종합화해서 쓰는 편입니다.
물론 가장 기초 틀은 저의 몸학적 관점에서 종합화한 글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늘 말씀드리는 바지만, 저의 입장은 항상 <몸학>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치노 (12-01-09 15:49)
 
보통 타성이나 관습에 젖는다고 하죠. 저는 요새 왜 많은 사람들이 굳이 세상에서 성공을 해야 할까? 혹시 강박 관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성공하면 보장되는 게 많은 건 사실입니다. 일단 안락한 삶이 보장되고 경제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습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장점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목적이 성공만이 목적은 아니겠죠. 그리고 무턱대고 성공의 룰에 따라 살아간다고 해도 성공하는 것은 아니구요. 이 점 또한 묘한 점입니다. 그렇다고 생각해보니, 성인이 돼서 성공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나 공자 등이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한게 아닐까요?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라 외치는 사람들보면 무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저 사람들은 성공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줄 안다하면서, 가끔은 좋게 생각될때가 있습니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무엇을 쫓아가야 할까요? 참 궁금합니다.

    
미선이 (12-01-10 07:43)
 
일단 새해복많이 받으시구요. 말씀하신대로 세계 안에는 일반적 삶을 사는 사람도 많지만 그밖에도 다양한 삶의 사람들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기에 제 생각은 인간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점에 대해선 제가 몸얼의 발달 단계에서도 밝힌 바 있지요.
http://freeview.org/bbs/tb.php/b001/384 (중간에 몸얼 도표 참조)

몸얼의 발달론은 저의 몸학에서 새로운 인간론에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윌버의 의식 발달론까지 참조된 것입니다.

그리고 파울러의 신앙발달론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freeview.org/bbs/tb.php/f005/260

제 견해로는 예수천당불신지옥을 외치는 보수 근본주의 인간은 집단주의에 휩쓸리는 자로서 여기에는 열혈 파시스트 당원들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소시민적인 개인의 삶을 넘어선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삶과는 구분됩니다.

물론 둘 다 일반적인 삶 곧 개인 혹은 가족주의 삶은 아니기에 혼동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윌버는 <전초오류>라고도 불렀었지요. 같은 목사라도 같은 목사라도 문익환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와는 천지 차이듯이 말입니다.

결정적인 구분은 합리주의에 있습니다. 일반적 성공을 쫓아가는 개인적 삶이 아니라고 해도 만일 그것이 합리주의와는 배치될 경우 하위 단계일 뿐입니다. 열혈 신앙인은 그 자신의 근본주의 신앙을 위해 가족도 버릴 만큼 목숨까지 버리기도 하지요. 비슷하게 보일는지 모르나 전태일의 삶 역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어머니께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가족주의를 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이 둘의 삶은 엄연한 질적인 차이를 갖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종주의에 대해 열혈적인 입장이었던 히틀러(인종차별)와 마틴 루터 킹(인종차별철폐)의 삶은 서로 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둘다 일반적인 성공을 쫓는 개인의 삶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발달심리학 분야에 관심을 가져보시면 좀더 인간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이라고 해도 그 속에도 엄연히 발달 단계가 있다고 봅니다. 몸학에서 보는 발달 이론은 아직 이곳 게시판에 풀어놓진 않았지만 몸학 강좌때는 자료로 나눠드리기도 했었지요.

        
치노 (12-01-10 13:05)
 
저는 범위를 일반인 또는 생활인으로 좁혔으면 합니다. 물론 일반인이라고 해서 전태일이나 마틴루터 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들도 처음엔 일반인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일단 대한민국안에서만 생각을 하죠. 얼마전에 도올의 중용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인문학자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들의 강의가 책이 어느 정도 인기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성공에만 목달리다보니, 소위 영적 허기를 느끼는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성공이데올로기를 대체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보통 사람들은 신에 의한 보상체계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오로지 세속화 이론에 파묻혀 성공 신화에만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기업가정신이나 창의력이나 이런 단어가 환영받는 시대가 아닙니까? 그래도 암흑시대라고하는 중세에는 영적인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세계는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 앞만 보고 달리는 거겠죠. 그리고 세기연이나 기타 인문학 단체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상향적 발달은 안타깝게도 학계에서만 언급되는 걸로 그치는 것 같습니다.

            
미선이 (12-01-10 14:17)
 
당연히 처음부터 위인이나 성인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처한 위치에서 시작할 뿐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상향적 발달은 주로 학계나 종교에서 언급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발달이 있는 사람은 일반 대중은 고사하고 학계나 종교에서도 정말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 분이 있다고 해도 당연히 초희귀인일 것이구요. 물론 초희귀인이지만 아예 없는 것또한 아닌거죠.

사실상 우리의 교육 시스템 자체가 상향적 발달의 교육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지요. 알다시피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이 가장 일차적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적극적인 정치사회참여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만일 상향적 발달이 일반적이라면 이미 사회와 세상은 변화됐겠죠. 기독교도 벌써 변화됐을꺼구요..

재리 (12-05-22 22:43)
 
뒷북 댓글이 되지만, 처음으로 올려 봅니다.
윗대 선조로부터 관성에 의해 행동 패턴이 형성되지만,
태어나면서 주위 환경, 파장, 소리, 빛에 의해 받은 미세한 영향이 순환구조로 증폭되어,
 세월이 지나면, 카오스 이론처럼 아주 다른 결과가 나오는게 생명체의 원리 아니겠습니까?
당장 내가 어떻게 생각 하느냐가 지금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나중에는 크게 달라져 있을수 있는데,
위 실험을 제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합니다만,
시넵스구조들이 장기간에 걸쳐 변화한다는걸 배제한 실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미선 (12-05-23 00:30)
 
재리님 반갑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저 역시 장기간에 걸쳐 변화한다고 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자연과학자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우리의 보통 삶을 돌아볼 경우,
대부분은 자본주의 문화와 체제에 길들여진 경우나 그리고
인생의 목적을 가족주의 범주의 삶을 살고 있는 그 패턴만큼은
한 사람의 일생 정도는 매우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봅니다.
물론 정작 그 자신은 의식상에서는 자기가 패턴의 노예에 있다는 사실을 잘알지 못한다는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 대한 과학적 해명과 이에 대한 철학적 이해 역시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점에서 윗글은 바로 그런 점과 관련해서 쓴 글로 보시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게시물수 180건 / 코멘트수 490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3139 11-04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1269 01-16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1154 12-06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162 10-14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65 04-11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68 02-17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50 02-02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210 01-13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489 11-28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628 11-03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리인가 정강길 5021 04-27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3532 02-18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조직신학적 성경공부 (신론) (2) 관리자 6230 05-28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26) 관리자 5385 05-23
180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몰락이냐? 도약이냐? 미선 1182 06-16
179 "함께 만들어가는 종교와 진리" (2) 미선 1227 06-10
178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병치유 귀신쫓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미선 1345 06-10
177 몸에 모시는 하나님 (탈유무신론의 신앙) 미선 1103 06-09
176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1290 06-07
175 과학의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 입장들 미선 1246 05-30
174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하는 <몸학 기독교>로! 미선 1141 02-10
173 신의 영어 표기 God ----> Gio 로 바뀌어야 미선 1093 02-07
172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미선 1185 12-08
171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면 나타나는 문제들.. 미선 828 11-04
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809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934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797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931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764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836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796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767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925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920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797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903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1031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1029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1259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832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795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1269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1002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785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736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1154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3139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784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819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900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946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752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744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751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847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162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799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751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784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65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1513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68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587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705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50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692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893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769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210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1108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933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1047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1312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1090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1311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489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1241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1096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628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1229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1116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1036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994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396 10-11
 1  2  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