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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글쓴이 : 미선 날 짜 : 16-07-05 06:17 조회(3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723 





[나의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 과학이든 철학이든 모두 포함해서 하는 얘기임)
 

 
진화하는 진리
- 정지된 상태 혹은 최종 완결이란 없다! 오직 과정만 있을 뿐!
 
우리는 흔히 진리(眞理)를 영원한 참됨 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고정불변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공초월의 고정불변한 진리는 오히려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진리(眞理)란, 말뜻 그대로 '참된 이치'를 뜻합니다.
 
그러나 유동적으로 진화하는 현실세계 속에서 과연 영원불변의 참된 이치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진리도 진화 중에 있는 것이며, 참된 진리의 성격은 적어도 더 나은 성장성을 확보함에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즉, 오류와 비극을 더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이끄는 성찰의 방향으로..
 
저는 이러한 진리관을 <진화적 진리관>이라 하겠습니다. 이 진화적 진리관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진리(眞理)가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진리(進步)가 있다고 봅니다.
 
전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리(眞理) 개념으로서, 시공초월 영원불변의 참인 명제로서의 이치를 말한 것이라면, 후자는 과정상에서 더 나은 성장 방향으로 진보(進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이치를 말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알다시피 그동안 세계 안에서는 주로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시공초월의 영원한 절대 진리라는 고정불변성을 강조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절대 진리 고정불변이 진리관을 고수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절대적 확실성의 진리관>이 갖는 폐해 역시 세계 안에 숱한 비극들을 안겨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진리관은 시대와 소통적 의미로서 새롭게 바뀔 필요 역시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적어도 <고정불변성의 진리관>에 대해 반대하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우리의 현실세계 자체가 끊임없는 진화적 유동성을 갖는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진리'는 진화하는 이 우주와 함께 결부되면서 끊임없이 더불어 진화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마도 유일하게 가능할 수 있는 고정불변의 진리치 명제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All things flow)"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진리(眞理)와 진리(進步)는 한자뜻이 다른 점에서도 보듯이 의미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완전무결한 고정불변성의 진리 개념이 오히려 현실세계의 삶을 퇴보로 이끄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현실세계 자체가 끊임없는 유동성을 갖고 있기에, 고정불변의 진리란 불가능하다고 보며, 오히려 같은  표현의 언술이라도 때마다 상황마다 달리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동성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과거엔 진리로 간주된 것들이 있었고 그때 당시엔 그것이 옳았다지만 지금은 더이상 진리로 보기 힘든 옳지 않은 것들 역시 참 많습니다. 또한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그러한 안개 속에 놓여 있습니다. 언젠가 또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과학 진영 안에서도 과학 법칙마저도 진화한다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능할 수 있는 고정불변의 진리치 명제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일 것입니다.
 
'진리'는 시공초월 고정불변의 완결된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 역시 진화하는 이 우주와 함께 결부되면서 끊임없이 더불어 진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자 뜻을 고쳐서 진리(眞理)가 아닌 진리(進理)라고 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進理)의 반대를 저는 <퇴리>(退理)라고 일컫습니다. <진리>進步가 '진보 성장의 이치'라고 한다면 <퇴리>退理는 '퇴행으로 이끄는 이치'라 하겠습니다.
 


퇴리(退理), 진리라는 미명하에 시대를 퇴행시키는 이치나 가르침들
 
그리고 진화에는 매순간마다 선택결정이 있는데, 우리는 진보(進步)쪽으로 갈 수도 있지만, 퇴보(退步)쪽 방향으로 갈 확률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진화가 곧 진보(進步)는 아닙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진화를 진보로 볼 수도 있긴 하지지만 정확히는 이 개념은 동의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화는 진일보한 성장으로 갈 수도 있지만 퇴행과 멸망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결정은 현재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일보한 성장으로 이끄는 이치와 가르침들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우리의 몸삶을 퇴행과 멸망으로 이끄는 이치와 가르침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몸삶을 퇴행시키는 퇴보(退步)쪽으로 이끄는 이치나 가르침들은 저는 <퇴리>(退理)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에게는 진리(進理)와 퇴리(退理)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흔히 생각하는 시공초월 영원불변의 진리(眞理) 개념은 오히려 퇴행으로 이끄는 이치나 가르침이 되기도 하기에 <퇴리>(退理)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퇴리>退理의 반대가 되는 <진리>進步 개념은 삶을 진보하는 과정으로 이끄는 이치와 가르침들을 일컫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진리>進步는 영원불변의 참인 명제로서의 이치가 아니라 진화하는 과정상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수 있도록 기능하는 이치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리>進步와 <퇴리>退理의 분별 기준 4가지
 
그렇다면 <진리>進步와 <퇴리>退理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물론 진리와 퇴리도 근본적인 완전한 구분이라기보다는 <정도 차이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이 기준 조건을 저는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론 측면
1. 논리적 일관성(무모순성) logical consistency (주로 수학과 논리학에서 추구되는 성격) 
2. 정합성 coherence (조각난 여러 생각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총체적 연결성)
 
(* 하지만 1번과 2번만으로도 부족하고, 이론은 경험과 연결되어야 함)
 
- 경험 측면
3. 적용가능성 applicability (앞의 이론이 현실의 경험과 일치하고 적용될 수 있어야 함)
4. 충분성 adequacy (3번의 요소가 널리 충분해야 함)

 
즉, 진리와 퇴리의 구분은 바로 이 4가지 조건의 확보 여부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 구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고정불변성의 완벽한 이론을 제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진화하는 현실에 있어 그때까지 축적된 성과들을 반영하며 시대적 소통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라고 봅니다.
 
알다시피 이론과 경험은 근본적으로 서로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이론의 조건에선 <논리적 일관성>과 <정합성>을 필요로합니다. 가능하면 모순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무모순성의 조건을 잘 구비했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점에서 경험의 적용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이론이 갖는 경험에의 적용이 국소적이지 않고 더욱 충분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경험의 조건에선 <적용가능성>과 <충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겉보기엔 완벽한 이론이 정작 우리삶의 경험들에 적용되지 못하고 충분성을 상실한다면 그 이론은 분명히 수정 또는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그 어떠한 이론조차 없이 곧바로 경험의 실행 속으로 뛰어들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뭔가를 수행한다는 것도 그야말로 많은 수고와 곤란을 겪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은 끊임없는 상호 보완과 상호 자극에 의해 수정 진화를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진보의 진화란 곧 계속적인 상향적 업그레이드를 도모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리(眞理)가 아닌 <진리>進步는 기본적으로 <오류>error와 <비극>tragedy에 대한 성찰을 품고 있어야
 
기본적으로 모든 주장과 이론들은 우선은 일종의 가상적인 지도 같은 것에 해당할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최대한 다양성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나마 지도를 갖고 경험할 땅을 찾아가는 것이 아무런 지도조차 없이 무작정 돌아댕기는 것보다는 좀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정작 지도상의 표시된 곳이 실제 경험의 적용과 어긋난 경우가 있다면 반드시 그 지도를 다시 재수정하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저는 <오류>error와 <비극>tragedy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얘기입니다. 시행작오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좀 더 유용한 지도 사용의 발달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론이라는 가상적 지도는 오류와 비극에 대한 경험과 맞물려서 계속적으로 재수정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론 따로 경험 따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많은 곤란과 폐해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 우리가 비극을 겪고도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은 퇴행과 멸망의 길로 갈 수 있다! (사진은 세월호 비극)


만일 우리가 제대로 된 진리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적어도 그때까지 발견된 <오류>error와 <비극>tragedy에 대한 성찰에 기반되어야 한다는 점과, 그럼으로써 가능한 최선의 합리적 소통을 확보하는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정불변의 절대적 이치를 구하기보다는 최선의 합리적 소통을 갖는 이치를 추구함이 더 필요한 태도라 여겨집니다. 바로 그것이 현시대를 더 나은 시대로 진보하도록 이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공초월 고정불변성의 진리(眞理)를 추구하기보다는 실은 나의 몸삶의 성장적 진화로 이끄는 <진리>進步와 그리고 퇴행적 진화로 이끄는 <퇴리>退理가 우리 앞에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좀더 낫다고 보고 있습니다.
 
진리(眞理)는 <절대적 불변>를 추구하지만
진리(進步)는 <최선의 소통>을 추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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