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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2-06 05:11 조회(61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83 




종교에 대한 어원적 정의는 동서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양

영어의 종교(Religion)는 라틴어의 Religio에서 나온 것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는 세 가지 해석이 있다고 한다.
 
키케로(Cicero)는 렐레제레(Re-legere)에서 나왔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다시 반복해서 읽어본다'는 뜻이다. 이때 읽는다는 것은 안다는 것과 통하는 뜻이기에 이전에 알았던 신을 재인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는 신에게로 삼가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단다.
 
락탄티우스(Lactantius, 약 240–320년경)는 렐리가레(Religare)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묶어 맨다'는 뜻인데, 이전에 신과 인간이 하나로 결속되었던 것이 중도에 어떤 잘못으로 이간되었다가 다시 신과의 결속을 꾀하는 것을 종교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좀 더 부연하자면, Religare는 Re(back/되돌아가다)와 ligare(to bind/묶는 것)의 합성어로써 "결속" "회귀 또는 돌아감"(to bind back)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중세 어거스틴에 따르면 레엘리제레(Re-eligere)로 보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시 선택한다'는 뜻으로, 이전에 신을 소유했던 인간이 죄악으로 인해서 잃어버렸던 신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는 큰 틀에서 보면, 앞서 말한 두번째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출처 : 가톨릭 교리 사전, 박도식, 종교)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프랑스의 언어학자인 에르누(A. Ernout)와 메일레(A. Meillet)는
어원론적으로 락탄티우스의 해석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채필근. 비교 종교론. 대한기독교서회. 1960. pp.41~42)
 

동양
 
동양에서 말하는 종교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19C 후반 일본과 독일이 통상조약을 맺을 때 조약문에 종교란 말이 언급되었다고 한다(Religion Subung, 종교행위 또는 선교행위). 따라서 일본에서 종교란 말이 사용되면서(1869년) 한국과 중국으로 변천되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 종교는 宗(마루 종), 敎(가르칠 교)로써 "으뜸의 가르침" 또는 상종이 되는 교육을 뜻한다.
 
특히 한문권에서는 유교와 관련하여 종교의 의미를 해석하기도 하였다. 가령 종(宗)은 갓머리는 제상 보(보자기)와 보일시 示는 제상의 제물을 차리는 의미로 유교의 제사와 관련적 의미로 해석하였다고 한다.
 
불교권에서는 경전 릉가경에서 종(宗)자로 번역하였다. 또 인도 경전 Siddhanta(Siddha, 성취, 완성, 극치)를 중국권에서 종(宗)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황보갑. 비교 종교학. 기독교문화사. 2000. pp.23)
 
......................
 
 
이상으로 볼 때 본인이 생각하는 종교의 의미는
 
영어권의 의미로는 '신과의 결합'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한문권의 의미로는 말그대로 '으뜸 가르침'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다만 영어권의 의미에서는 신과의 결합이
신에게 구속됨 묶여 있음이라는 뜻이기도 해서
노예 도덕으로 볼 수도 있기에
부정성의 의미도 함께 함축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그 신이 어떤 신이냐에 따라
종교는 부정성을 띨 수 있거나 혹은 긍정성을 띨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일방 관계에 있는 전제군주 유형의 신(God)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상호 관계에 있는 동반자로서의 신(Gio)을 믿을 것인가?
이에 따라 종교 신앙의 색조는 정말 많이 달라질 것임은 자명하다.
 
또한 한문권의 의미에서 볼 경우
가장 최고의 궁극적 가르침을 뜻하지만
이것은 그 자신이 가장 궁극적인 기초 전제로 삼는다는 것이기에
그 내용 여부에 따라 이 역시 부정성과 긍정성을 함께 지닐 수 있다고 본다.
 
시공에 제한된 인간의 능력으로선 부득이하게
그 어떤 궁극적인 기초 전제를 향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유의 이러한 행태로 인해 결국 형이상학(철학)에 대한 탐구와 모색이 있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나 자신이 어떤 형이상학(철학)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 인생 전체 삶을 좌우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내가 믿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그 같은 궁극적 가르침에 결속되고 묶이게 되는 한
인간은 누구나 종교적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유신론도 무신론도 심지어 과학주의도 종교가 될 수 있다.
결국 당신이 어떤 종교를 선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종교가 제대로 된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내가 기초 전제로 삼고 있는 형이상학(철학) 또한
매우 유심히 세밀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지금 어떤 가르침에 따라 이를 기초 전제와 관점으로 삼고서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늘 이에 대한 부단한 점검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만일 자각하지 않을 경우 이는 내 안에 무의식화되어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러한 것에 조종당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그것은 자유하는 삶이 아닐 것이다.
 
진정으로 자유한다는 건 깨어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신과의 결합에 대한 두 가지 의미와 전후 혼동의 오류
 
위의 종교의 의미와 관련하여 다음의 세 가지 단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1) 원시적 Gio (원시적 비이원)
 
2) 분별적 Gio (이원화)
 
3) 궁극적 Gio (궁극적 비이원)
 
 
이때 1) 단계는 선악과 이전의 단계로도 볼 수 있다. 신(God)과 나(i)와 타자(Others)가 분별없이 자각없이 그냥 한데 결합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2)단계는 선악을 알게되는 분별 상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신과 인간 뿐만 아니라 나와 타자에 대한 개체분리적 사고를 하게 되며 이를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3)의 단계는 비이원적 합일이라는 점에서 다시 1)의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1)단계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3)단계는 적어도 2)단계를 거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단계와 3)단계는 2)의 단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슷한 것으로 여길 수 있으나 실은 다른 차원에 해당한다. 만일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경우, 이것은 윌버가 말한 전초 오류 곧 <전후 혼동의 오류>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원시적 비이원 상태와 궁극적 비이원 상태는 엄밀하게 다른 것이며, 회귀라는 관점보다 오히려 발달론적 관점으로 본 것이다.
 
결국 궁극적 비이원 상태란 신과 나와 이웃(타자)과의 합일(결합)을 의미한 것으로
나는 이것을 GIO만족(GIO-Satisfaction)이라고 일컫고 있다.
건강한 종교와 철학사상들은 궁극적으로 바로 이 GIO만족을 지향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건들은 신과 나와 타자(이웃)이라는 3자 관계에서 일어나며,
우리의 몸 역시 GIO관계체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종교가 부정성을 극복하고 보다 건강한 의미를 지니려면
몸살림을 지향할 때 진정한 건강성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는 결국 몸살림의 가르침이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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