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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12-31 14:22 조회(31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99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출발하여 <몸학>Mommics으로

모든 분야들이 가장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꾀하고자 한다면 그 첫 작업은 항상 형이상학에 대한 재검토 및 재정립이어야 할 것이다. 형이상학은 가장 근원적인 지평을 탐구하는 학문이기에 그 깊은 초석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형이상학이 세계 안의 다양한 실제적 경험 사례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적용하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무익한 사변으로서 폐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알다시피 형이상학은 모든 학문을 터놓는 가장 궁극적인 기초 뼈대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에 하나 구축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만에 하나 잘못된 형이상학에 기반된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잘못된 문명화의 길로 접어들 확률은 높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형이상학에 대한 재검토는 항상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세계 안의 그 어떤 형이상학도 절대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또 한편으로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그 어떤 형이상학도 절대화할 수 없고 단지 그때까지의 인류의 지성사에 나온 것들 중 가장 최선의 형이상학을 추구하거나 어떤 탁월한 이론가의 작업으로 새롭게 정립해나갈 따름이다. 물론 그것이 진짜 최선의 것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불분명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그때까지 나온 이론들 가운데 가장 정합적인 설명력 확보로서 이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과 그러한 가운데 가장 오류와 모순이 덜 한 이론을 취하고 할 뿐이다.

형이상학은 <상상적 일반화>imaginative generalization로서의 작업이지만 그것이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논리적인 무모순성과 정합성(coherence) 그리고 경험에 대한 적용가능성(applicability)과 충분성(adequacy)을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자의 두 가지는 이론적 지평에 후자의 두 가지는 실천적 지평과 관련된 요소에 해당한다.

현재 시점에서 나 자신이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Whitehead’s Metaphysics을 택한 맥락도 바로 이런 점에서다. 화이트헤드 철학에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 한 혹은 보다 훨씬 더 큰 설명력 확보를 해주는 형이상학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몸학>Mommics도 일종의 철학이지만, 2차적 성격의 철학에 속한다. 왜냐하면 몸학은 기본적으로 1차적인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을 그 밑변에 깔고서 나온 응용철학으로 여기에다가 화이트헤드 철학 외의 여러 다양한 사상가들의 아이디어와 개념들을 끌어들여 정립한 <혼종적>hybrid 성격의 학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런 중심 없이 잡탕시킨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을 그 중심에 놓고 이를 훼손하지 않는 한에서 여러 다양한 개념들과 아이디어들을 비판적으로 필요하다면 수정 보완을 해서 수립한 체계인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몸>Momm이 있다.

몸의 현실을 중심으로 세계 안의 모든 사건들을 몸을 통해 사유하고자 하는 몸의 철학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몸학은 앞으로 다양한 학문의 분야들과도 결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몸화>된 자본주의

여기서 앞으로 몸학 연구소가 중점을 두고자 하는 지점은 새로운 기독교로서의 <몸학 기독교>와 몸학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학으로서의 <몸학 사회주의>가 될 것 같다.

가끔 TV에 나오는 여러 다양한 고발프로들을 보면 불량 식품 및 불량 상품에 대한 고발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판매자들은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소비자들한테 속여서 파는 것이다. 심지어 먹는 식품에도 위험한 것들을 넣어서 버젓이 시중에 판매하기도 한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게끔 만드는 시스템, 그게 자본주의가 지닌 본성에 해당한다.

자본주의는 철저히 <몸화>되어진다. 모두 자본(종)교에 포획된 노예의 몸삶을 드러내는 사례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오늘날 88만원 세대들이 일찍부터 학업과 취업 그리고 온갖 스펙 쌓기의 준비들은 모두 자본주의 체제 하의 성공 삶에 맞춰져 있다. “성공하세요”,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 등 돈 많고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추구는 애초부터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자기실현>Self-realization과는 거리가 먼 선택을 하도록 이끌고 있다. 돈 때문에 울고 웃고 사태를 넘어서 심지어 돈 때문에 가족들까지 죽이기도 하는 참혹한 비극의 뉴스들은 한 둘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종)교다"
 
무제한적인 이윤 추구에 대한 욕망은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오늘날에는 어느 사회에서든 볼 수 있을 만큼 자본주의는 이미 현대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몸삶은 자본주의와 필연적으로 결합된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것이 일종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라는 철학자는 "자본주의란 세속화된 종교다"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

몸학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주로 몸의 W층을 중심으로 발현된 것이지만 우리 몸의 L층과 B층까지 도대체 관여되지 않는 현실이 없을 만큼 전방위적으로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는 현대의 새로운 유형의 종교인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라는 용어 대신에 <자본(종)교>라는 용어를 가능하면 종종 쓰고자 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의도적이며 전략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문제를 일종의 경제 분야에만 관련된 개념으로 이해하는 맥락이 너무나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는 이미 정치적이면서도 문화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삶의 전방적인 가치 체계를 무너뜨리는 근대로부터 출현한 새로운 유형의 종교라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는 시대 전체를 통째로 포섭하고 있는 세속화된 종교다.

우리가 기존 기독교를 포함해 세계 안의 여러 종교들을 일종의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 차원의 종교>라고 한다면 자본주의는 우리 시대 전체를 점하고 있는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 차원의 종교>라고 할 만하다. 현대의 몸삶은 통시적 종교와 공시적 종교가 함께 결합된 종교에 묶여 많은 이들이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몸학 사회주의

몸학에서는 <자본 대 노동>이 아니라 <자본 대 건강>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자본주의는 실제로 많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이기기 때문이다. 이는 추상적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자본주의는 온갖 착취 구조를 통해 지구상의 많은 생명들을 억압하고 피흘리게 만들어 죽인다는 얘기다.

현재의 몸학 사회주의는 대략적인 스케치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수 기존 경제학 도식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의 오류를 발견한 바 있다. 이미 이 지적들은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E. Daly)와 존 캅(John B. Cobb)이 공저한 『For the Common Good』에서 언급된 바가 있기도 하다. 기독교의 해묵은 문제에는 신학적 병폐가 노정되어 있듯이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에는 기존 경제학의 병폐와 오류들이 노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 말하는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 구조를 폭로한다는 기존의 마르크스 경제학 역시 몽땅 포함해서다.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근대적 사유들이 기본 전제로서 스며들어 있음에도 이에 대한 근원적인 재고찰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후기구조주의에 기반하는 네그리-하트 계열의 신좌파의 맥락도 몇몇 유용한 통찰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낭만화된 요소들도 없잖아 있다. 게다가 국가적 현실에 대한 지나친 과소평가들은 실제 돌아가는 세계사적 현실에선 더욱 들어맞지 않는 점들도 있기에 보다 철저한 사유를 요청하는 점들이 있다.

오늘날 노동계급의 퇴패 현상은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계급적 분석들까지 새롭게 다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실제 노동계급 안에 이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나누어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이라는 용어는 대부분 임금노동 중심에 맞춰져 있어 이반 일리치(Ivan Illich)가 언급한 우리 사회의 절반에 해당하는 노동인 <그림자 노동>을 분명하게 은폐시키고 있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생산이란 무엇인가? 시장이란 무엇인가? 등 이 모든 개념들이 진정 새롭게 달리 봐야 한다. 경제학을 경제학만 따로 분리시켜 고찰해선 안 될 것이다. 경제학도 어디까지나 우리네 삶의 전체 맥락에서의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몸화된 종교들을 총체적인 몸삶 건강으로 온전히 극복하기, 바로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우리 스스로의 근본적인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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