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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하는 <몸학 기독교>로!    
  글쓴이 : 미선 날 짜 : 17-02-10 12:37 조회(16)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728 





<몸학 기독교>와 <기존 기독교>와 다른 점들

- 자연주의적 종교로서의 <몸학 기독교>
 
 
(* 이 글은 일전에 쓴 글을 다시 정리해서 올려놓은 글입니다. <왜 기독교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만은 이곳의 <왜 예수인가> 글을 참조하면 되겠습니다. 적어도 예수와 성서를 1차 교본으로 삼는 한에서는 기독교로 불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밖에 기독교의 신과 인간에 대한 존재 이해 그리고 예수와 성서를 보는 관점의 틀은 기존 기독교와는 완연한 차이를 갖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신학에서 몸학으로의 전환에 기반합니다. 그래서 <몸학 기독교>로 명명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 몸학에선 신학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아래 링크 참조.



* 몸학의 7가지 대원칙

1. 모든 사건들은 <몸의 현실>을 통해 경험되어진다.

2. 모든 사건들은 <몸의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

3. 모든 사건들은 연관된 정도에 따라 <몸형성>에 기여한다.

4. 몸형성은 매순간 <몸살림>과 <몸파괴>라는 두 가지 선택적 흐름 속에 놓여 있다.

5. 몸형성의 궁극적 목적인 <몸살림>을 지향할 때 건강한 몸삶의 성장이 가능하다.

6. 몸삶의 성장은 <몸성이 발달>하는 만큼만 몸의 현실에 대해 깨닫도록 알려준다.

7. 몸성의 발달 및 성장은 몸살림으로의 몸수행이라는 <몸의 훈련>을 요구한다.





1) 몸학 기독교는 <발달론적 성장 신앙>을 추구한다

- 몸학은 <진리도 진화한다>고 보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절대 불변으로서의 진리는 없다고 보며, 오히려 진리와 퇴리가 있다고 볼 뿐이다. 따라서 그 어떤 절대 불변의 교리를 믿는 절대적 신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몸학 기독교의 경우, 교리를 불변으로 보질 않으며, 솔직한 의문으로서의 의심을 장려하는 신앙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의심은 신앙을 더 단련시킬 수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보면, 합리적 의심과 믿음은 필수 한 짝이라고 생각될만큼 상호의존적이며, 진정한 신앙의 필수 두 요소라고 생각한다.

의심을 배제하는 믿음은 오히려 정체된 것이요 불신앙일 여지가 많다. 불가지론과 의심은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기에 불가피한 현실인 것이며, 삶을 풍부하게 하는 그 고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가운데 최선의 합리적 종교 신앙을 추구할 뿐이다.

단, <방법론적 회의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지 궁극적으로 회의주의 입장은 아니다. 진정한 회의주의라면 회의주의라는 입장 그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어야 할 것이며, 이는 결국 상대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
 
합리적 신앙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라는 두 가지 입장을 경계하며, 절대적 신앙이 아닌 <그때까지 가능할 수 있는 최선의 신앙>을 추구할 뿐이다. 최선의 신앙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점차로 그 자신의 오류를 줄여나가는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2) 몸학 기독교는 성서무오설이 아닌 <성서오류설>을 채택한다 

- 오류를 통해 계시에 접근하는 성서 공부를 추구한다. (기독교 대전환 제2-3장 문자적 성서해석에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내용 참조) 기존 기독교가 말하는 성서무오설이야말로 인간을 무지로 이끄는 매우 교묘한 사탄의 교리일 뿐이다.

<성서오류설>의 핵심은 성서를 죄다 불변의 진리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여전히 오류와 미완의 여백들이 있는 참여적 경전으로 보는 것이며, 그러한 성서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문을 갖고 스스로 참여하며 해석하도록 독려하는 점에 그 진의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진실로 계시는 여전히 가려져 있으면
그 같은 성서에 대한 참여를 통해서만이 찾아갈 수 있을 뿐이다.
몸학 기독교는 오류를 통해 계시로 접근하는 길을 택한다.
 
 
3) 몸학 기독교는 <무시무종 우주론>을 채택한다
 - 즉, 시작과 종말의 창조설 우주론이 아닌 시작도 없고 종말도 없는 영원한 과정으로서의 우주론을 지지한다. (기원 없음의 유신론 http://freeview.org/bbs/tb.php/h001/74 참조)
그런 점에서 최신 이론물리학에서 연구되는 다중우주설(아직은 가설이라고는 하나) 역시 못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4) 몸학 기독교는 <과학과 철학의 3자 소통 관계의 종교>를 추구한다.
-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며 상호 견제적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는 과학으로부터 사실의 영역에 대한 정보와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닐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은 종교로부터 의미의 영역에 대한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올바른 철학과의 유기적 관계도 필요하다. 과학은 의미를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의미장에 강력히 종속되어 있다. (중력장<감각장<의미장 ) 삶은 언제나 논리나 이성 그 이상의 것을 드러낸다. 따라서 의미를 다루는 철학과 종교는 유기적인 소통 관련성을 맺을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당연히 몸학 기독교는 지적 설계나 창조설이 아닌 <자연주의적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5) 몸학 기독교는 God로서의 신이 아닌 'Gio로서의 신 존재'를 수용한다.
신(God)과 나(I)와 타자(Others)와의 관계 속에 있는 신이며, 이때의 신은 전적인 초월자나 절대자 혹은 초자연주의적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신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많이 오염되어 있어 자칫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Gio가 맞다. 이를 국역하면 나와 타자를 합쳐 우리라고 했을 때 한울님이 적절하다고 본다. 혹시 이를 동학의 신관과 연관지을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동학 사상보다 화이트헤드 철학사상에 기초된 것임을 밝혀둔다.

만일 동학의 신관이 고전 유신론과 다르게 가장 진화된 형태의 고등 유신론이라고 한다면 몸학이 말하는 신 존재와 연관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시천주 사상은 우리 몸 안에 모시는 신 존재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는 몸학 기독교의 신관과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울님은 인간과 관계 하는 한에서 인격적이며, 인간 외의 다른 사물들과 관계하는 한에서  비인격적이기도 하다. 인격이냐 비인격이냐 하는 것은 관계상에서 나온 개념일 뿐이다.
 
한울님은 매순간마다 그때까지의 세계 안에 없는 새로움을 세계 안에 제공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움을 세계 안에 실현시키고자 하는 최종 선택은 행위주체자에 달려 있기에 결국은 신과 세계는 상호 협력의 동반자적 관계로 봐야 한다.

신과 세계는 근본적으로 상호 의존적이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화이트헤드의 잘못은 그의 철학 사상이 많은 새로운 신조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신 존재에 대해서는 이전의 낡은 용어를 채택함으로서 개념상의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의 신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 <몸학 기독교>는 신을 꼭 믿어야 한다는 식의 신앙을 고집하지 않는다

기에 무신론자도 수용 가능하다

니체는 무신론자이면서 예수를 높게 평가한 철학자다. 이러한 니체가 만일 살아 있다면 그를 신을 안믿는 사람으로 무조건 배제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신체를 이성이나 영혼보다 더 중요하게 봤던 그의 입장에서 보면, 몸학 기독교에도 큰 관심을 가질 지도 모를 일이다.

 
 
6) 몸학 기독교는 거짓보편성이 아닌 약자우선성의 원리를 추구한다.
- 신은 세계 안의 고통받는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느 분이며, 구약의 예언자들 및 신약의 예수운동 역시 세계 안에 약자우선성의 원리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여긴다.
 
8체제 변혁 없는 영성 혹은 관념적 초월은 거부하며, 사회와 개인에 대한 변혁은 함께 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성서에 나온 예수사건을 몸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성서와 예수를 내 삶의 1차적인 신앙 모델로서 삼는 이유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51 참조)
 
 
7) 몸학 기독교는 의례적인 예배보다 <몸수행>을 중심으로 삼고자 한다.
- 그런 점에서 몸기독교는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한다.

종교란 최고의 으뜸 가르침.. 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만일 무신론을 최고의 으뜸 가르침으로 삼는다면 그 역시 종교적인 것이다.
과학주의의 경우 과학을 으뜸 가르침 곧 종교로 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각의 견해들 중, 초자연주의를 종교의 속성으로 받아들이는 건 타당치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불교나 유교 같은 동양종교의 경우들은 초자연주의보다 오히려 자연주의 성향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 종교에서는 초자연주의적 존재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자연주의적 종교 역시 가능하다는 점에서 초자연주의는 종교를 규정짓는 필수 특성은 아니라고 본다.

몸기독교 역시 초자연주의를 거부할 뿐더러 자연주의를 방법적 토대로 삼고 있는 자연주의적 종교를 지향한다.
 
 
8) 몸학 기독교는 <영혼수명설(몸얼수준설)> 채택한다
- 죽은 뒤에도 영혼이 불사한다는 영혼불멸설이 아닌 영혼수명설의 입장으로서 이는 앞서 말한 몸수행과 관련해 몸얼 발달의 단계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 싶다. (사후 영혼의 문제 이해 http://freeview.org/bbs/tb.php/b001/384 참조)
 
적어도 지금 여기에 1차적인 초점을 맞추되 사후 지옥심판설은 거부하며 초기 기독교에는 있었던 윤회설을 재검토해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 윤회는 업보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수정된 윤회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신(Gio)의 몸에 자리함으로서 그 지겨운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불교의 해탈 개념과는 다소 다름).

..................................
 
 
생각해보자!
 
이천 년 기독교 중에 그 어떤 기독교가 이러한 형태의 기독교가 있었던가?

바야흐로 몸기독교는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을
 
보다 구체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로서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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