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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1-12-13 13:34 조회(36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06 




내가 알기에 국내 중간 복음주의 진영에는 알리스터 맥그라스 신학의 팬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여러 현대 사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통 기독교를 고집스럽게 옹호하는 일종의 현대적인 변증가로서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책을 조금만이라도 깊이 들여다보면
일종의 커다란 사유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인식에는 기독교 정통이 이미 우선적으로 점유되어 있으며
다른 사안들은 죄다 여기에 끼워맞추는 식인 것이다.
 
나는 이를 그가 쓴 <복음주의 기독교 지성>이라는 그의 저작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었지만
최근 또다시 그가 주창하는 <과학신학>에서도 다시 한 번 재확인할 수 있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에게 있어서 과학이란 신학에 봉사하는 일종의 신학의 시녀다.
따라서 그가 제아무리 과학을 운운한다고 한들
기독교 정통 교리와 신학에 복무하는 그 역할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 한계는 이미 그의 전제 속에서 설정된 범주적 한계인 것이다.
 
따라서 과학이 기독교 정통 교리와 신학의 기제들을 건들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포섭하려는 전략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논리가 정작 과학 진영에 환영받을리 만무하다.
적어도 기독교를 믿는 과학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의 변증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그 시작부터 노정되어 있음에도 이를 고집스럽게 주창할 뿐이다.
사실상 알리스터의 포지션은 내용만 다를 뿐이지
크게 보면, 창조론자나 지적설계론자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종교와 과학에 있어 양립가능한 관계적 위치로서 고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종교에 복무하는 과학, 종교의 핵심 교리만큼은 건들 수 없는 과학으로 수용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보이고자 한편으로는
전투적 무신론자이자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를 공략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도킨스만큼의 깜량은 결코 되지 못한다.
 
사실 도킨스의 주장은 초자연주의 유신론에 한정되어 있다. 이 언급은 도킨스 스스로가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신론 혹은 범신론 같은 다른 유신론에 대해선 크게 고려하지 않을 뿐더러
깊은 이해도 갖고 있질 않다. 왜냐하면 도킨스가 보기에 과학 진영에 철저히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초자연주의 유신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학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유신론을 적극적으로 배격하기에 이르는 투쟁적인 무신론자가 된 것이다.
 
도킨스가 비판하는 종교도 주로 초자연주의적 유신론을 신봉하는 종교이지
종교 자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불교나 유교 같은 것은 그의 비판 목록에서 이미 제외되어 있다.
즉,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초자연주의를 신봉하는 종교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반면에 알리스터는 도킨스의 이론에 기독교 종교가 훼손당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알리스터가 생각하는 기독교 이해에는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고 있지 않은 채
대체로 초자연주의를 수용하는 기독교로 기울어져 있는 셈이다.
 
따라서 도킨스를 공략한다지만 내가 볼 때 큰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한 걸로 보인다.
알리스터에게선 도킨스가 왜 그토록 초자연주의적 유신론을 비판하는 지에 대해선 깊은 이해가 보이질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나같은 사람에겐 알리스터의 책들은 정말 읽고 나면
시간만 낭비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그 이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전히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주장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그의 주장들은 적어도 보수 기독교 진영 이상의 설득력을 얻진 못할 것으로 본다.
 
게다가 과학 진영 역시 열심 있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기독교 신학에 봉사할 만큼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서로 견제와 보완의 상호 동등한 관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종교도 과학도 그 어느 쪽도 결코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혁 (12-08-22 20:20)
 
저는 작년쯤엔가 IVP에서 나온 과학신학(이게 3부작의 요약본이던가요)을 읽어본것 같은데요..

본글이 서평인줄 알고 제가 읽었던 책내용에 대한 다른 감상을 들어볼까 클릭했더니..
정작 책내용에 대한 서평보다는 맥그라스의 위치에 대한 비판위주인듯 해서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소개보다 내용에 대한 평가가 더 앞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정적인데 익숙한 제가 변혁이라는 엄청난 담론의 무게를 지고있는 이곳의 운동성에 익숙하지 못해서
이런 분위기가 생경한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혁 (12-08-22 20:21)
 
그런데 읽다가 한가지 의아한 생각이 든것은..
도킨스가 비판하는 것이 종교 자체가 아닌 초자연주의적 유신론을 신봉하는 종교라고 하셨는데..

독특한 이곳만의 합의가 따로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종교가 초자연주의적이지 않은 종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불교의 원론적 무신론적 입장은 이해하겠습니다만..  무신론적 불교와 유교가
과연 종교의 초월성에 대해 대표성을 부여할만한 주류적 위치에 있는 입장이 아닌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조금은 생경한 뉘앙스였습니다.

진혁 (12-08-22 20:22)
 
그리고 맥그라스의 도킨스비판에는 ID쪽입장에서의 비판보다는
오히려 콜린스박사의 바이오로고스적인 입장에서의 비판이 더 많았었지않았나..? 그런 제 기억에서 보자면..

맥그라스의 도킨스비판 자체는 초자연주의적 견해의 옹호입장보다는 오히려
(방법론적 자연주의겠지만)자연주의적 입장에서 도킨스가 과학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과학을 과잉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한게 아닌가 싶구요.. 
저는 그런 대목의 비판은 적절했다고 생각됬었거든요..


괜히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네요..    좌우간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말씀에 외람되나마 댓글을 달아봅니다..
(그러고보니..  댓글이 태클이 됐군요..  발음도 비슷하다는..  죄송.. )

미선 (12-08-22 23:11)
 
안녕하세요. 진혁님,
정확한 근거가 있다면야 태클도 언제든 환영입니다.

인류의 발달사를 생각해보면 아직까진 초자연적이지 않은 종교가 얼마나 있겠냐는 말씀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언급에서 불교나 유교를 얘기하면서 종교에 대한 주류적 위치를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진혁님의 얘기대로라면, 기독교는 종교를 대표할만한 주류에 속하지만, 불교는 종교를 대표할만한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얘긴지요? 하지만 대체로 고등종교를 대표하는 종교로서 일반적으로 기독교와 불교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동양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본다면 이는 종교 자체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를 수 있는 논의가 되겠구요.
불교와 유교가 초자연주의를 거부한다는 건 대체로 동양종교와 서양 종교와 다른 점에 속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자연주의적이지요. 붓다는 가능한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보았구요. 다만 신화와 전설을 믿는 민간 무속 신앙과 결합된 민간 불교나 유교에선 초자연주의 신앙이 나타날 순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건, 종교라는 말뜻 그대로 그 가르침의 내용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흔히 종교가 과학을 비판할 경우, 그 주된 레퍼토리는 과학의 과잉성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 얘긴 마찬가지로 과학이 종교를 비판할 때 그 주된 레퍼토리로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는가 라고 비판하지요. 따라서 우리는 그 싸우게 된 경계 지점을 정확히 지적할 필요가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초자연주의라는 얘깁니다. 과학은 결코 초자연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반면에, 초자연주의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해버리는 종교의 경우는 결국은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지요. 맥그라스는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지도 못한 채로 나온 것들입니다. 아, 그리고 콜린스의 바이오로고스도 사실 오래전 떼이야르 샤르뎅의 순화된 복음주의 버전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나마라도 낫긴 하지요. 그래도 콜린스 역시 창조주를 언급하면서도 그 신관의 맥락은 정확히 짚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이 부분을 신학자들의 몫으로 넘기는 거겠지요.

아무튼 솔직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진혁 (12-08-23 01:32)
 
/미선님

저는 기독교를 모든 종교의 대표로 상정하고 불교를 그럴 위치에 있지않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통상의 상식적 구분에 따른 말씀을 드리려는 것일뿐입니다.

굳이 특별한 시각으로 보지않더라도 대부분의 종교는 어느종교를 막론하고 초자연적 존재를 신앙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초자연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종교를 일반적이라고 말하는것에 과연 종교학자들이 공감할까요?  그렇지는 않을것입니다.   

도킨스는 단지 초자연적 유신론을 비판하려고 했을뿐이라고 한다면..
도킨스는 대부분의 종교 모두를 비판하려고 한것이 맞겠지요.  종교중에서 특이한 몇몇 종교만 비판하려고 했다고 보는것은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기는 어렵지않나 하는 차원에서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미선님께서는 불교도 어엿한 대표종교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에는 현실속의 불교와 이론으로서의 불교가 가지는 차이점을 간과하는 면이 있습니다.
현실속에서 대중들이 신앙하는 불교는 초자연주의적인 존재들이 존재하는 불교입니다.

이론으로서 무신론을 근간으로 삼는 불교는 학문적, 원론적인 접근일 수는 있으나 대중들이 실제로 신앙하는 불교와는 거리가 있지않겠습니까..


뭐 대단치 않은 일반론적인 얘기인데 굳이 이런 말씀을 적어본 이유는..
미선님의 글속에서 과학적 접근에 대한 긍정성이 강하신 나머지 어느정도 종교라는 분야에서 거의 본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초자연적 존재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신앙을 신앙의 본질이 아닌 외곽의 것으로 보시는 차원이 있으신듯해서..  사실상 종교에서 초자연적 요소를 제거하면 그후에 남은것은 사실상 종교가 아닐것인데..  그런 면에 대해서는 저와 생각이 다르신듯해서 적어본 것입니다.

    
미선 (12-08-23 04:55)
 
/진혁님

>표시는 님의 글이고,
-표시는 저의 글로 표시하겠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모든 종교의 대표로 상정하고 불교를 그럴 위치에 있지않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통상의 상식적 구분에 따른 말씀을 드리려는 것일뿐입니다. 굳이 특별한 시각으로 보지않더라도 대부분의 종교는 어느종교를 막론하고 초자연적 존재를 신앙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그 통상의 상식적 구분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얘길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적어도 동양종교는 초자연주의적이라고 보질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종교학자가 "동양종교는 초자연주의적이다" 라거나 "모든 종교는 초자연주의적 신앙이 있다" 라는 그러한 식으로 일반화한 주장을 알지 못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님과 제가 달리 보는 지점입니다.


>초자연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종교를 일반적이라고 말하는것에 과연 종교학자들이 공감할까요?  그렇지는 않을것입니다.

- 이 얘긴 허수아비의 오류네요. 저는 제글 어디에도 "초자연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종교를 일반적"이라고 주장한 바가 없습니다. 만일 제 글을 그렇게 이해하셨다면 이는 제 견해를 왜곡하신 것입니다. 저는 초자연주의든 자연주의적이든 한묶음으로 일반화될 수 없다고 보며, 단지 서양종교의 경우 대체적으로 초자연주의적 성격이 강하지만, 동양종교 특히 제가 예를 들었던 불교와 유교의 경우는 초자연주의적이라고 보질 않습니다. 오히려 불교학자나 유교학자들은 초자연주의적이라기보다 자연주의적 성격의 종교에 가깝다고 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요.



>도킨스는 단지 초자연적 유신론을 비판하려고 했을뿐이라고 한다면.. 도킨스는 대부분의 종교 모두를 비판하려고 한것이 맞겠지요.  종교중에서 특이한 몇몇 종교만 비판하려고 했다고 보는것은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기는 어렵지않나 하는 차원에서의 말씀입니다.

-님이 쓴 글을 보면, 도킨스의 초자연적 유신론 비판은 대부분의 종교 모두 비판이라고 주장하셨는데, 저는 불교나 유교가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봅니다. 도킨스의 초자연적 유신론 비판에 불교와 유교도 도매급으로 들어간다는 건 정말 금시초문입니다.


>그리고 미선님께서는 불교도 어엿한 대표종교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에는 현실속의 불교와 이론으로서의 불교가 가지는 차이점을 간과하는 면이 있습니다. 현실속에서 대중들이 신앙하는 불교는 초자연주의적인 존재들이 존재하는 불교입니다.

-오히려 이 얘긴 제가 앞서 이미 말한 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불교의 종교 가르침 내용과 민간 불교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론으로서 무신론을 근간으로 삼는 불교는 학문적, 원론적인 접근일 수는 있으나 대중들이 실제로 신앙하는 불교와는 거리가 있지않겠습니까..
 
-이 얘기는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죠. 무속화된 불교가 있을 수 있듯이 무속화된 기독교가 있는 것처럼 종교의 본래 가르침과 다른 대중들의 신앙은 또다른 면이 있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예컨대, 기복 신앙도 그 중의 하나일테죠. 이런 점들은 어느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뭐 대단치 않은 일반론적인 얘기인데 굳이 이런 말씀을 적어본 이유는..
미선님의 글속에서 과학적 접근에 대한 긍정성이 강하신 나머지 어느정도 종교라는 분야에서 거의 본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초자연적 존재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신앙을 신앙의 본질이 아닌 외곽의 것으로 보시는 차원이 있으신듯해서..  사실상 종교에서 초자연적 요소를 제거하면 그후에 남은것은 사실상 종교가 아닐것인데..  그런 면에 대해서는 저와 생각이 다르신듯해서 적어본 것입니다. /미선님

- 그렇습니다. 진혁님과 저의 견해 차이는 초자연주의를 모든 종교에 적용가능한 종교의 본질과 핵심이라고 보는 것에 있습니다. 저는 적어도 그렇게까지 보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견해가 좀 더 설득력 있는지는 종교학자들의 글에도 잘 나와 있을 걸로 봅니다.

(아래 저의 댓글로 다시 계속 이어집니다.. 미선 드림..)

진혁 (12-08-23 02:06)
 
/미선님


과학이 초자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일차적인 이유는..
초자연주의의 본질적 비합리성이라기보다는 과학이 취하고 있는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초자연주의적 실체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의 반영일뿐인것이겠죠..

경험적 입장에서야 개개인의 과학자별로 측정불가, 계량화불가의 대상을 신뢰할만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그 개인의 경험론적인 인식이지 과학적인 범주에서 내려지는 판단일 수는 없는게 아닐까해요..

그리고
"과학은 결코 초자연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반면에, 초자연주의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해버리는 종교의 경우는 결국은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지요."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신앙과 과학은 어느정도 서로 겹치면서도 다른 접근원리가 작동하는 두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신앙에서 창조주로서의 신을 생각해볼때..  그 존재의 자기표현은 자연적 방식인것도 사실이겠지만
초자연적 방식을 통한 자기표현이 제약받는다고 볼 필연성은 없지않나 싶거든요..

창조주로서의 신이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그 원리로 우주를 운영한다고 할때..
그 원리를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과학적 사고겠지만..
그 과학적 사고가 신이 다른 방식-초자연적 방식-으로서의 자기표현을 필연적으로 제약하는 굴레가 될 이유는 없어보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바이오로고스의 입장이 "오래전 떼이야르 샤르뎅의 순화된 복음주의 버전에 불과"하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신학사에 대해 많이 공부해보지도 못했고..  신학전공한 친구들에게 주워듣는 풍월입니다만..
우리가 오늘날 새로운 사조다..라고 주장하는 신론중에서 정말 근본적으로 새로운 얘기는 사실상 거의 없다는 얘기들을 하더군요..

거의다 신학의 역사속에서 논의되어져온 과거의 이야기들속에서 조금씩 변형되어져 나오는 이야기라고..


기독교가 기독교일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의 모양새가 어느정도까지 바뀌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겨우 어떤것의 무슨 버전에 불과한걸로만 비췰 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시대의 변화속에서 신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물로 비췰 수도 있고..  뭐 그런 생각입니다..  ㅎㅎ..


기독교에 있어서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것도 사실이고 바꾸어야할 문제들도 산적해있습니다만..
어떤 것이든 새로운 요소를 강조할수록..  정체성의 문제에서 다른 차원의 문제들이 생길 수도 있죠..

가령..  새로운 라면 새로운 라면하다가  정말 새롭게..  이전라면과는 면모를 일신해서 나온 새로운 라면이다..했는데..

사람들 반응은..  "이건 라면이 아니라 냉면이네"..해버리면..    그건 본인에게는 새로운 라면이겠지만
바깥에서보기에는 라면이 아닌 다른 무엇인걸로만 규정되고 그렇게 끝나버릴 수도 있잖아요..  ^^;



그런 차원에서 봤을때..  새로움에 대한 추구는 때로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는 인식도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

진혁 (12-08-23 02:23)
 
아..  새로움에 대한 추구얘기는 과연 어느정도의 변화가 기독교적 정체성이 유지되는 경계선안의 변화인가에 대한 얘기였구요..

한국개신교의 부패에 대한 얘기는 전혀 아니니 오해없으셨으면 합니다..

미선 (12-08-23 05:11)
 
여기서부터는 다시 저의 덧말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과학이 초자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과학 자체의 한계에도 있지만
더 핵심적인 것은 그것이 지금까지 인류 역사 속에서 밝혀졌던
그동안의 자연의 인과적 법칙들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초자연주의가 가능하다면 밝혀 놓은 지동설은 얼마든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일테죠.

따라서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를 구분하실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이는 합리성의 훼손 여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즉, 쉽게 말해서
철저히 과학적 합리성의 잣대를 들이댄다고 하더라도 신비는 여전히 남는 경우가 있지만,
반면에 축적된 과학적 합리성을 무시하고 해달별이 뚝딱 생길수 있다거나
단군신화에서 환인이 구름타고 왔다는 얘기들은 과학의 주장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될 것입니다.
과학에 철저함으로서 오히려 그 한계에 부딪힐 때 비로소 신비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초자연주의가 갖는 입장은 과학 자체를 시작부터 무시할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신앙과 과학은 어느 정도 서로 겹치면서 다른 접근 원리가 작동하는 두 세계라는 점에 대해선 저도 공감합니다. 삶 생명을 연구하기에 서로 겹치기도 하지요. 아인슈타인이 언급한대로 종교와 과학은 한 가지에서 서로 나온 것이라고도 하잖아요. 하지만 겹치기도 하면서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 데 그 충돌의 부분이 초자연주의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의 구분 자체도 무의미할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둘의 차이도 궁극적으로는 신 마음대로 내키는대로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엿장수 마음이듯 신은 언제든지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를 뒤섞어놓을 수 있는 것이고, 자연의 인과적 법칙을 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초자연주의를 반대하는 또 다른 사안으로는 그것이 세계 안의 악과 고통에 대한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는 점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직 진혁님께서 이곳 세기연의 글이나 책을 잘 읽지 않고서 언급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괜찮다면 다음의 글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초월신론에서 포월신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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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reeview.org/bbs/tb.php/b001/21
http://freeview.org/bbs/tb.php/b001/22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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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reeview.org/bbs/tb.php/b001/465
http://freeview.org/bbs/tb.php/b001/516

이 글들은 초자연주의적 유신론을 공격하는 글이니 혹시라도 진혁님 입장에서 한 번 읽어보시고서 꼼꼼한 반론을 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이오로고스 논의에서 새로운 거냐 낡은 거냐를 언급하셨는데, 혹시 떼이야르 샤르뎅의 유신론적 진화론 입장을 읽어보셨는지요? 제가 보기엔 이미 그 안에 바이오로고스 내용들이 다 흡수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콜린스 얘기가 크게 보면 새롭진 않다는 것입니다. 다만 세부적인 지점들, 이를테면 유전학 연구자의 전공 내용들이 다소 깃들어있다는 점에선 새롭겠지요. 즉, 각론은 새로운 점이 있을는지 몰라도 그 총제적인 사상의 틀은 이미 기존에 나와 있는 얘기라는 겁니다. 기존에 이미 나와 있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을 콜린스식으로 이름하여 <바이오로고스>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마도 생물학자로서 가능할 수 있는 신학적 관점을 피력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끝으로 맨 마지막에 하신 새로움과 기독교 정체성 유지 논의 문제는 다음 기회로 남겨두지요. 우선 위의 언급들에 대해서만이라도 답변을 드렸습니다. 가능한 저의 포지션과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시고서 반론을 해주신다면 그것은 제게도 훨씬 더 유익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감사합니다.

진혁 (12-08-23 09:29)
 
도킨스나 맥그라스나 둘다 하나같이 굴드의 NOMA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저는 굴드의 그런 겸손한 불가지론적 입장이 학자로서의 지적성실성을 잘 반영해주는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초자연적 사건의 가능성을 인정하는것이 과연 축적된 자연과학적 성과에 훼손으로만 기능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저는 미선님과 조금 의견이 다른것 같습니다.

초자연적 사건의 발생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언제나 자연주의의 엄중한 현실을 훼손하고 무시하는걸까요..?

미선님께서 '미래에서 온 기독교'라는 제목을 내거셨듯..
때로 초자연적 관점은 또다른 차원의 자연적 법칙이 지금차원에서 초자연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다른 얼굴일 수도 있죠..

주어진 자연주의적 법칙과 현실의 엄중함을 그저 초자연적 관점을 남용하여 그것을 흐리게 하는 경우에는 문제겠습니다만.. 
우리가 있는 우주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현상들이 모두 우리의 과학수준에서 자연주의적으로 비추어야지만 과학의 성과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축적된 과학적 성과와 그 무게를 무시하지 않되 다른 가능성에 대해 열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종교나 사상의 차이를 넘어서 충분히 현대를 살아가기에 그리 부족하지 않은 합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선 (12-08-23 13:26)
 
진혁님이 글은 >표시로
제 글은 - 표시로 합니다.


>도킨스나 맥그라스나 둘다 하나같이 굴드의 NOMA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저는 굴드의 그런 겸손한 불가지론적 입장이 학자로서의 지적성실성을 잘 반영해주는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불가지론적 입장이라고 해서 그것이 학자로서의 지적성실성을 보장해주는 근거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과학자들도 과학 자체의 한계 혹은 인간 지성의 한계를 언급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근거들로 여러 사건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최선의 시도를 할 뿐이지요. 이때 동원되는 치밀한 근거들의 합리적 설명성의 확보 여부야말로 학자들의 지적성실성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초자연적 사건의 가능성을 인정하는것이 과연 축적된 자연과학적 성과에 훼손으로만 기능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저는 미선님과 조금 의견이 다른것 같습니다. 초자연적 사건의 발생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언제나 자연주의의 엄중한 현실을 훼손하고 무시하는걸까요..?

-이 부분은 오히려 초자연주의에 대한 개념 이해부터가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초자연주의를 자연을 초월하는 초월적 존재 혹은 힘을 상정하고서 이를 통해 현실 세계의 사건들을 설명하려는 사상적 신념으로 봅니다. 이런 신념은 철학과 종교에서 드러나곤 하죠.
일반적으로 말하는 초자연주의에 대한 국어사전적 개념 정의 역시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실재를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나 인류를 설명하려는 철학적ㆍ신앙적 태도."
그렇기에 이러한 입장에서는 자연의 인과적 법칙을 간헐적으로라도 언제든지 깨트릴 수 있다고 보는 사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과학과 충돌을 야기한다고 보는 것이구요.



>미선님께서 '미래에서 온 기독교'라는 제목을 내거셨듯.. 때로 초자연적 관점은 또다른 차원의 자연적 법칙이 지금차원에서 초자연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다른 얼굴일 수도 있죠..

-이 얘긴 제가 앞서 말씀드린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의 구분을 반영하지 않은 언급에 불과합니다. 제가 받아들이는 건 신비주의지 초자연주의가 아닙니다. 도킨스 역시 과학의 한계에서 맞닥뜨리는 신비는 인정하지만 초자연주의는 분명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이라는 최근 책에도 이점이 잘 피력되어 있지요.



>주어진 자연주의적 법칙과 현실의 엄중함을 그저 초자연적 관점을 남용하여 그것을 흐리게 하는 경우에는 문제겠습니다만..  우리가 있는 우주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현상들이 모두 우리의 과학수준에서 자연주의적으로 비추어야지만 과학의 성과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는것 같습니다.

-이 지점에서 남용이라고 하셨을 땐 그 기준이 무엇인지요? 어디까지가 남용이고 어디까지가 아니라는 얘긴지요? 저는 과학이 모든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죄다 설명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주장하질 않았습니다. 다만 자연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학의 분야에서 감행하는 최선의 시도일뿐입니다.

 

>그것보다는 축적된 과학적 성과와 그 무게를 무시하지 않되 다른 가능성에 대해 열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종교나 사상의 차이를 넘어서 충분히 현대를 살아가기에 그리 부족하지 않은 합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의 문장만 보면,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저의 생각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그 태도를 초자연주의를 믿는 입장에서는 축적된 과학적 성과와 그 무게를 무시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애초에 초자연주의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가 서로 다른 것 같다는 얘길 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단군 신화를 몽땅 과학적 사실로 보는 입장이라면 이 역시 과학과 충돌할 것입니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것 역시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 또한 초자연주의적 신념을 지닌 것입니다. 그 사람의 주장 왈, "현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 말라"라고 주장한다면 참으로 웃기는 것입니다.

성서에 보면, 당나귀가 말을 했다거나 여호수아가 해를 멈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경우 역시 그러합니다. 이는 축적된 과학적 성과 그 무게를 무시하는 것이며, 충돌하는 것이니까요. 성서에 기록된 초자연적 사건만 역사적 사실이고, 다른 나라의 신화나 설화에 기록된 초자연주의적 내용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보수 근본주의 입장은 아니실테죠? 그럴 경우 이중 잣대에 대한 근거와 설명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축적된 과학적 성과와 그 무게를 무시하지 않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이 오히려 초자연주의가 아니라 신비주의라고 보는 것입니다. 철저히 과학적으로 설명하되 여전히 남게 되는 한계와 물음들이 있을 터입니다. 신비주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축적된 자연의 인과적 법칙을 깨트리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남는 의문들.. 저는 이 부분을 언급한 것입니다. 하지만 초자연주의 입장은 자연의 인과적 법칙으로서의 과학적 설명을 무시하는 입장에 속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래 댓글로 계속 이어집니다..)

진혁 (12-08-23 09:43)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딱히 정통기독교인의 그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독교의 정체성이 현대성과 함께 어느정도까지 어울릴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어요..

미선님의 글들이 흥미롭게 보이는 지점도 그런 제 관심을 자극하는 글들이 많이 쓰시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의 문제와 현대성의 문제를 동시에 고민하게 만드는 글이랄까요..    ^^;

자주는 아니지만 미선님의 글에서 그런 배움이 있어서 감사드리구요..



사실 앞의 얘기들은 그다지 본질적인 얘기는 아니었지 않나..  싶습니다만..
뒤에서 제가 말씀드린..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새로움과 기독교의 정체성의 유지문제는..
 
소위 정통적인 관점을 가진 기독교의 관점이건 새로운 "기독교"운동을 주장하는 관점이건 그 경계선의 문제에 대한 대화들이 참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그런 차원에서 저같은 기독교 평신도들이 이해할만한 글들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댓글 감사하고..  주신 링크는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m(-L-)m

    
미선 (12-08-23 13:47)
 
(위의 댓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저는 예수와 성서를 자신의 삶을 고양시킴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1차적으로 삼되 그것에 대한 설명방식 혹은 소통방식은 현대성을 지녀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예컨대, 성서에 기록된 내용들이 죄다 역사적 사실이다라는 입장으로 보진 않습니다. 그렇게 본다고 해서 신앙의 가치가 떨어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히려 성서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은 현대 과학의 성과들도 함께 반영되어 소통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던 시절에는 서로 간의 소통 방식이 초자연적인 내용의 신화나 전설들로 서로 간에 통용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번개가 친다거나 가뭄이 이는 현상들도 초자연주의적 설명들로 서로 소통하곤 했지요. 그러나 이후 과학의 등장은 그러한 소통 방식을 전환시켜 놓은 것입니다. 보다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일어났고 그러한 설명들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역시 이 점에 있어선 그러한 축적된 과학의 성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운데 소통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미 진보적인 성서비평 학계에선 그렇게 해왔었구요. 창조설화, 동정녀 탄생 설화로 보는 입장인 거죠. 그럼에도 성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훼손된다고 보질 않습니다. 성서는 여전히 삶을 변화시키는 내 삶의 1차적 텍스트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인 거죠. 물론 그 핵심은 예수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선 새로운 기독교 운동 게시판에서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에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라는 글을 권하는 바입니다. 물론 책을 읽어보시면 좀 더 최신의 내용까지 반영된 채로 정리가 잘 되어 있기도 합니다.

http://freeview.org/bbs/tb.php/b001/27
http://freeview.org/bbs/tb.php/b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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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reeview.org/bbs/tb.php/b001/31
http://freeview.org/bbs/tb.php/b001/32

그리고 이곳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인 화면 옆에 배너를 보시면 "처음 오신 분들께" 권하는 글이 있을 것입니다.

http://freeview.org/bbs/tb.php/f001/775

그 부분부터 차분히 읽어보신다면 나중에 좀 더 서로 간에 유익한 생산적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신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목사과정을 그만둔 저 역시 현재로선 평신도에 불과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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