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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글쓴이 : 미선 날 짜 : 12-12-22 18:32 조회(273)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71 




 
 
 
강력한 보수 지도자를 원하는 5-60대와 가난한 서민들
 
 

세대 갈등으로 드러난 5-60대는 진보 교육의 사각지대
 
이번 대선을 보면, 알다시피 세대 갈등이 매우 뚜렷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특히 5-60대는 진보 교육의 사각지대라고 생각한다. 광주 전남은 역사적 아픔이 있기에 그나마 자연적인 역사 체험 교육이 있었겠지만, 그 밖의 다른 지역의 5-60대 분들은 그렇지 않은듯 싶다. 오랜 독재의 폐해와 5.18의 아픔은 여전히 공감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세월이 지나가게만 내버려 둘 것인가?
 
이들은 젊은 세대만큼 SNS를 많이 활발하게 하는 세대도 아닐 뿐더러 내가 알기에는 대중 매체 언론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기보다 아주 익숙한 MBC나 KBS 같은 공중파 방송(또는 조중동 주류 신문들) 매체에 많이 길들여져 있는 편이라 그러한 언론 미디어에 더욱 많이 좌우되어 왔을 것으로 본다. 다양한 언론 매체를 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론 보도 내용에 대한 비판적 독해 수용 능력보다 그러한 보도들에 길들여져 왔던 익숙한 시간이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진보 진영이 이번 선거에서 전략을 잘못 설정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서 끈질긴 박정희 유령과 싸워야만 했었다는 점을 꼽고 싶다. <유신의 추억>이나 <프레이저 보고서>가 너무 뒤늦게 나온 건지 몰라도 아직 5-60대 분들은 이런 거에 대해 거의 잘 모른다. 알더라도 그저 종북좌파 빨갱이 논리로 몰아가는 수구보수들의 주장에 휘말릴 뿐이다(물론 5-60대 전부가 그렇다는 얘긴 결코 아니며 이번 선거 결과에 근거해볼 때 대체적인 색조로서 그렇다는 얘기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실버 세대들에게 '나꼼수'가 제공하는 정보들도 여전히 사각지대일 뿐이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그런 나꼼수조차도 자칫 주변에서 종북 빨갱이 불량 언론이라는 평판이라도 날 경우, 이들에겐 곧바로 선입견과 편견이 작동되어 이를 미리부터 차단시켜 놓을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통제가 내면화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드러난 점 하나는, 사실 우리 사회의 진보 진영은 지난 이명박 정권의 실패들과 싸워야만 했던 게 아니라 실은 애초부터 대중들의 몸 속에 박혀 있는 박정희에 대한 환상과 싸워야 했지 않나 싶다. 지난 이명박 정권의 탄생도 바로 이러한 박정희 이미지가 아주 많이 작동해서 당선에 기여했을 걸로 본다. 이명박에게서 우리는 박정희의 이미지를 떠올렸잖은가.
 
더군아 이번의 박근혜는 박정희에 대한 직통 후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육영수에 대한 부드러운 이미지까지 더해져서 박정희 환상을 지닌 5, 60대 분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서민들에게도 그야말로 최상의 효과를 뿜어냈었을 걸로 본다.
 
그렇다면 오랜 18년 동안의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은 지금도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디 18년 뿐이랴. 전두환도 박정희의 연장이잖은가. 그렇기에 우리의 정치 제도는 민주화됐는지 몰라도 우리의 몸은 아직 체질적으로 민주화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 몸 안에 집단무의식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경제적 궁핍에 속하는 보릿고개 문제를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는.. 군사 독재 시절에 대한 끔찍한 사랑, 그것은 이미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에 해당한다..
 
기성 세대들의 경우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을 박정희 정권 하에 놓여 왔었기에 그것이 갖는 우리 몸 안의 통제 작용은 그야말로 어마어마 할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북한 김일성 및 김정일의 오랜 독재 통치가 얼마나 민중들의 몸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미 잘 목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독재 정치의 폐해는 남한에도 북한에도 공통적인 것이다.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허와 실
 
기존 민중신학이 지닌 핵심 교리 중에 하나로 <민중 역사 주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80년대 진보 운동권 진영에서도 많이 공유했던 신념들 중의 하나였었다. 즉, 민중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라는 것이다. 이때 말하는 민중 개념은 대체로 정치적으로 억압되고, 경제적으로 가난하며, 사회적으로는 소외된 이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들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도 설정되는 것이다.
 
물론 전태일 사건의 경우를 보더라도 민중 역사 주체론이 유효한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맥락의 차이를 보다 세밀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본인은 이미 이에 대해 민중신학적인 구분과 분석을 언급한 바 있다(http://freeview.org/bbs/tb.php/d001/81 참조).
 
어쨌든 이러한 민중 개념은 매우 모호한 형용모순을 띠고 있는데, 예전에 본인의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인 새로운 민중신학에서도 언급한 바 있었지만(졸저,『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참조), 나는 이러한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해 다시금 새롭게 제고할 것을 권했었다. 그런데도 이 취약한 주장은 아직도 기존의 주류 민중신학을 떠받치는 핵심 교리에 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실제로 생각해보자.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었듯이 정작 가난한 민중은 박정희를 대망하며, 이명박근혜를 원한다. 농촌에 살면서도 한미FTA 문제는 아랑곳없이 이명박근혜를 지지하며, 전통 재래 시장에서 장사하면서도 이명박근혜를 대통령감이라고 주장하며 당선시키려 애썼다. 또한 민중은 경제적으로 궁핍하면서도 부자 증세를 반대하는 이명박근혜를 지지한다. 한때 우리는 가난한 서민들이 오히려 부동산 종부세를 반대하는 기이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런 현상은 종교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민중들은 조용기 같은 목사를 더 많이 원했으며, 오히려 진보 개신교 진영의 목사들에 대해선 별로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같은 개신교 종파에 속하면서도 문익환 목사를 종북 빨갱이라고 비판하는 민중들이 훨씬 더 많았었다. 민중들은 사회 혼란시 이상한 종교나 사이비 교주 뿐만 아니라 종교의 종말론 교리에도 너무나 잘 휘둘리기도 한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보면 종말론은 민중들에게 훨씬 더 잘 먹혀 들어갔었다.
 
 
▲ 오랜 독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도 민중을 구원했던 강력한 지도자로 기억되어 있다.
 
 
혹자는 말하길, 민중이 그러한 것은 지배자들의 오랜 통제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물론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부분에선 민중이 주체적이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 아니겠는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환상 이전에 인간에 대한 기본적 이해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민중은 과연 합리적 이성적 존재일까?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언급했듯이,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아직 인간에게는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면들이 훨씬 더 많다.
 
결국 민중도 이러한 인간론에서부터 가늠해봐야 할 것이며, 그런 한에서 인간의 의식 성장과 발달의 측면도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사회 시스템의 변화도 함께 중요하지만 진보 정치를 향한 우리의 교육 역시 이런 점에 대한 효과적 대응과 전략이 있어야만 할 것으로 본다. 민중은 역사의 주체이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인간에 속한다.
 
실제로 우리는 타자에 길들여진 통제를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 착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자각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결코 주체적일 수 없다. 주체화는 그 자신의 의식 성장 및 발달에 따라 그리고 전체 사회의 문화와 시스템의 발달에 따라 비례할 뿐이다.
 
힘을 숭배하는 우리 몸 안의 뿌리 깊은 종교의 작동과 진보 교육의 접근
 
사실 강력한 지도자였던 박정희 환상 이면에는 인류사의 뿌리 깊은 종교가 하나 작동하고 있다.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넘치는) 힘에 대한 숭배와 동경>이라는 종교다. 세계 안에는 (넘치는) 힘을 숭배하는 종교와 힘의 균형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두 가지 흐름의 종교가 있다고 하겠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맥락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맥락에 놓여 있는데, 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민속종교 등등 많은 종교들 위에 군림하는 가장 최상의 뿌리 깊은 종교라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숭배나 초자연적인 메시아(영웅)과 파워에 대한 동경도 바로 이런 맥락에 놓여 있으며, 이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도 쉽게 잘 맞물린다. 민중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 강력한 지도자야말로 민중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 지도자는 민중을 구원할 정치적 메시아로 추앙되는 것이다. 박정희 탄신제 같은 박정희에 대한 신격화는 사실상 강력한 힘에 의존해왔던 민중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강력한 지도자(힘)에 대한 의존은 결국 그 자신의 주체성을 그 지도자에게 일임하는 내적 통제로도 이어진다. 오랜 동안 노예의 삶을 살았을 경우, 노예는 해방되더라도 한동안은 주인을 그리워한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러하다는 얘기다. 몸화된 권력으로서의 박정희는 지금도 살아 있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행보들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강력한 힘에 대한 의존적 습성들은 우리 사회가 그나마 이룩해 왔던 민주화에 대한 성과들마저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도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에 맞추기보다 오히려 박정희 환상에 대한 평가와 심판이 더 유효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얘기들은 다소 인문학적 성찰과 고려 역시 필요한 사안에 속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민중들은 이런 정보들에 대해선 대체로 취약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경제적 소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보의 소외 문제다. 정보 교육의 문제는 정말로 중요한데,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드러난 진보 진영의 낙선 역시 너무나 안타깝기 짝이 없다. 사실 되도 않은 종북빨갱이로 몰아가는 논리들도 알고보면 분단 상황의 비극이 낳은 역사의 트라우마에 속한다. 그것은 이성과 논리의 문제 이전에 아직 씻겨내지 못한 원한어린 감정의 문제일 것이다. 심지어 인혁당과 5.18광주의 아픔마저 공유하지 못한 5, 60대 분들은 여전히 너무나도 많은 게 작금의 현실이다.
 
또한 이것은 5-60대 보수 세대만의 문제에 제한되지도 않는다. 예컨대 일베 같은 젊은 극우 세대의 출현 역시 우리는 또한편으로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다시 말해 박정희 이미지가 오래도록 신망을 얻는 만큼 젊은 세대들에게도 유익하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이는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진보 진영은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패했잖은가.
 
그런 점에서 시민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농어민도 함께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우리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 몸 안의 끈질긴 군사 독재 시절의 체내 바이러스와 휴우증들을 치유해내지 못하는 한 민주화에 대한 실현들도 그만큼 더디거나 요원해질 것임은 자명하다. 즉, 제도적으로 민주화가 됐을는지 몰라도 우리의 몸은 아직 민주화가 되어 있질 않은 것이다. 우리의 몸은 이명박근혜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그러한 몸이잖은가. 우리의 몸은 여전히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어쩌면 방향은 다르지만 진보 진영 역시 강력한 지도자를 원할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한나라당 연정이나 품었던 노무현 정권의 실패는 사실 진보 진영에게도 커다란 상심만 안겨주었잖은가. 그래서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건 보수나 진보나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는데 문제는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그 방향일 것이다. 어쨌든 강력한 권력에 대한 숭배는 일상에선 더욱 치열한 경쟁 시스템에서의 독점적 우위를 추구하는 행태로도 나아간다.
 
내 생각에 이제 진보 진영은 바로 이 점에 대한 지혜로운 성찰적 접근을 할 수 있어야 앞으로의 새로운 정치 전략에도 훨씬 더 유효할 것으로 본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에 있다. 역사 바로세우기는 지금도 투쟁 중에 있으며 그것은 몸 밖이 아닌 몸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는 그 어떤 기억들 간의 싸움이기도 하다. 제대로 올바르게 몸화하지 않은 민주화는 여전히 독재에 대한 미화와 찬양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며, 그것은 아마도 다음 세대들에게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도 결국 몸의 일이다. 그것에 관심하든 무관심하든 간에 그것은 항상 우리의 시냅스와 뉴런 연결에 심각하게 관여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분들도 학업, 취업, 실업, 물가, 생활고 등등 이런 거에 자유로운 국민은 거의 없다. 그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정치는 우리의 몸삶에 깊숙이 관여한다.
 
결국 우리 앞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유발하는 정치가 있는가 하면 기분 좋은 세르토닌을 생성시키는 정치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독재 정치와 민주화의 역사 그리고 체내 신경전달물질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건 그야말로 넌센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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