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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류상태 위원과 나눈 기독교 이야기, 그 첫번째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5-20 05:19 조회(3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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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태 위원과 나눈 기독교 이야기, 그 첫번째


[크리티앙 2007-05-20 05:08:29]
들어가기에 앞서

내가 류상태 위원(학교종교자유를위한시민연합 실행위원)을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 여름 한기연(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수련회를 통해서였지만, 이후에 새길교회를 같이 다니면서 좀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거침없이 솔직하게 나오는 언변과 소신있는 태도는 류상태 위원의 커다란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소에 류상태 위원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점은 이 분의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은 채, 안티기독교와 진보기독교 입장을 왔다갔다 하는 발언을 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었다. 어떨 때는 자신을 안티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어떨 때는 자신을 안티라고 얘기할 때가 있다. 또한 그가 쓰는 글에는 기독교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법 표현이 많다.
 
그렇기에 이런 모호한 점들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겸 해서 기독교 전반에 대해 서로의 허심탄회한 얘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참고로 장장 3-4시간 분량의 녹취록을 풀어내느라고 힘들기도 했지만, 중간에 이 화일을 한동안 잃어버려서 이제서야 올리게 됨을 송구하게 생각한다. 대화는 자유롭게 진행되었으며, 찬찬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다소 흥미로운 내용들도 없잖아 있다. 아무쪼록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류상태 위원에 대해 좀더 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일단 분량이 너무 많아서 반으로 나눠 1차분을 먼저 올리는 바이다. 또한 류상태 위원과 대화를 나눈 시점은 한 달 전인 4월17일이었는데, 그로부터 바로 며칠 뒤에 류상태 위원은 새길교회를 그만두었다는 점도 덧붙여 두는 바이다. 그렇기에 이 점을 감안하고서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 새길교회 사무실에 들어서자 머리를 시원하게 짧게 자른 류상태 위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크리티앙
 

류상태 위원의 행보에 따른 변화

정강길(이하 ‘정’) 류상태 선생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 것인가?

류상태(이하 ‘류’) 현재 새길교회 이름으로서 외부활동을 하진 않는다. 새길교회에서는 사무국장 및 신학연구원이지만 새길교회 이름으로 하기엔 부담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어서 새길교회측과 타협을 보았다. 그저 학교종교자유를위한시민연합 실행위원으로서 얘기해주길 바란다.

그렇지만 어차피 새길교회에 몸담고 있음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미 그렇게 알고 있는 분들도 많잖은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학자연의 실행위원으로서 함께 함이 필요하다. 이런 얘기는 그냥 그대로 쓰면 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목사직을 그만두고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많은 변화들이 있었을 터인데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교회에 대한 안타까움과 소극적인 생각들이 지금에 와서는 더욱 절망감과 적극적인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그리고 기독교의식개혁을 이전보다는 좀더 적극적 주장으로서 펼친다는 점이 아주 크다.

“나와 안티기독교의 차이는 예수정신의 부정유무”

그렇다면 그 기독교 의식개혁 운동에 대해서 얘기해 볼 때, 현재 일각에서는 기독교의식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류상태 위원이 주로 하는 얘기가 안티기독교와 분명하게 잘 구분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같은 점은 무엇이며,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안티기독교와 나와 같은 점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기존 기독교의 해체나 소멸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예수정신을 부정하진 않는다. 안티들은 기독교의 체제뿐만 아니라 예수정신마저도 부정한다. 그런 점에선 나와 다르다. 또한 나는 기독교 의식개혁운동에 관심이 많고 또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예언자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예수정신만큼은 나는 놓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 역시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고, 많은 진보 기독교인들도 동의할 수 있는 얘기로 들린다.

정선생은 동의할 수 있다지만, 정선생이나 나 같은 사람의 경우는 어차피 진보 중에서도 급진적 진보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사실 많은 진보 기독교인들도 예수정신에 동의한다고는 해도 실제로는 예수의 역사적 현존성이 무너지면 예수정신도 무너진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말하는 예수정신은 역사적 예수의 현존성까지도 부정할 수 있는 예수정신이다.

방금 그 말씀은 내가 듣기엔 이천 년 전 예수의 역사적 현존성을 부정하는 예수신화학파의 논리에 가깝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역사적 예수의 현존 없이 어떻게 예수정신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공상의 산물일 수밖에 없잖은가.

바로 그래서 결국 진보 기독교인들도 역사적 예수의 현존에 너무 집착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기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내겐 그러하다. 물론 나 자신이 진보 계열의 기독교 진영을 대표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역사적 예수의 현존 여부 문제에 대한 궁극적 입장은 그것도 결국 설명력의 차원에서 가늠되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어차피 역사적 예수 문제는 결코 확정될 수 없는 문제다. 그렇기에 만일 더 큰 설명력으로서의 가령 예수신화 학파의 입장이 더 잘 들어맞는다면 받아들이겠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는 요인들이 더 많기 때문에 예수신화학파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예수신화학파의 경우라도 이해는 하지만 그에 따른 반론들도 얼마든지 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논의들은 얼마든지 열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보다 세밀하게 고찰되어야 할 지점들이 많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로서 역사적 예수의 현존을 우리가 얘기하는 건 오히려 너무 멀다. 진짜 실재성을 가지고서 현재 우리의 의식 속에 활동하고 있는 실존으로서의 예수, 만일 팩트fact라고 하면 내게는 이게 확실한 팩트fact라고 여겨진다. 이 예수는 현재 우리들의 삶과 정신 속에 뚜렷이 부활해있다.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바로 이러한 예수를 붙들고 씨름을 해야 한다.

과거나 현재는 이분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문제를 다루지만 실상은 현재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수 교인들은 교리적 예수를 역사적 실재로서 보고 있고, 진보 기독교인들은 민중해방으로서의 예수를 역사적 실재로 주장하는 것도 사실상은 현재의 싸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류상태 위원 역시 나름대로 기독교개혁운동을 통해 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로서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로서의 기독교는 예수정신과 먼 것이기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도그마로부터의 자유와 경천애인 사상을 추구”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기독교 교리는 나 역시도 반대한다. 류상태 위원은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한다고 얘기했다. 개혁이란 reformation인데, 그렇다면 류상태 위원이 추구하는 그 기독교개혁운동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기독교개혁운동의 목표는 기독교도그마로부터의 자유라고 볼 수 있겠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의 교리가 갖는 독선과 배타성 극복이라고 말하면 될 것이다. 근데 개혁이라고 할 때 그것을 너무 지나치게 어원적으로 따지고 개념적으로 따져서 그럼 다시 세우는 것 아닌가 하겠지만, 그것은 대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극복하려는 시도를 나는 개혁이라고 보는 것이다.

개념은 그것이 지시하고 있는 내용들과 맞아 떨어져야 의사소통을 제대로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개념은 고만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하지만 개념에 매여서도 안된다.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개념을 분명히 하자는 것과 개념에 매이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만일 방금 류 위원이 말한 그것을 개혁이라고 한다면, 비판이나 혹은 안티들이 말하는 교리로부터의 자유와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묻고 싶다. 즉, 내가 안티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류위원 역시 예수정신으로부터 자유한 것은 아니잖은가 라는 것이다.

내가 보는 예수정신은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서의 보편가치에 속한다. 보편가치에 대해서는 자유하다 마다의 표현은 적절치 않다. 속박이 있을 때는 자유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보편가치는 무언가를 속박하는 차원이 아니잖은가. 평화, 사랑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 것처럼 말이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그런 이념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말은 가능한데, 예수정신에는 속박적인 요소가 없다. 정의 평화 사랑 같은 것은 내가 보는 예수정신에도 있고 그것은 구약의 예언자 정신에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구약의 예언자 정신을 위대하게 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안티기독교인들의 경우는 예수정신을 보편가치로 생각지 않는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렇다. 안티들은 예수정신을 보편가치로 생각지 않는 거다.
 
 
 
ⓒ크리티앙
 

“내가 부정하는 건 현실 기독교이며, 마땅히 되었어야 할 기독교와는 구분”

그렇다면 류상태 위원이 지향하는 기독교는 어떤 기독교인가?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앞서 말했듯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서의 기독교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기반한 기독교를 말한다.

그렇다면 류위원님은 안티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쓰신 글에서는 안티기독교인들이 주로 쓰는 표현인 기독교로부터 자유하고 싶다든가 기독교가 죽어야 한다 라는 말도 곧잘 쓴다. 그래서 조금 언어적 혼란이 있다. 분명히 기독교 자체에 대한 단절이나 탈피는 아니잖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해두자. 내가 부정하는 기독교는 현실기독교다. 즉, 마땅히 되었어야 할 기독교와 현실기독교는 구분했으면 한다. 마땅히 되었어야 할 기독교는 주류가 되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민중신학, 해방신학도 20세기 후반에 나온 것이고 영성 신비 운동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자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있었지만 한 번도 주류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내가 기독교를 부정했다고 해도 그것은 틀린 얘기는 아니잖은가.

무슨 얘기인지 이제서야 알겠다.

내가 보는 현실기독교는 예수정신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실기독교는 교리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조직화된 기독교로서 오히려 예수를 배반한 역사를 가진 기독교다. 마땅히 되었어야 할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조직체로서의 기독교는 없어져도 괜찮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안티와 같이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조직이나 제도 자체를 악으로 보는 건가? 어차피 연대나 효율성에 있어서 조직이나 제도의 형성은 불가피하잖은가. 기독교도 애초에는 예수의 말씀 전달과 보존의 문제로 인해 조직과 제도의 형성을 갖게 된 면도 있다. 조직 제도에 대한 불신의 핵심적 문제는 그 조직이나 제도가 기득권의 재생산구조로 완악하게 굳어져 가는데 가장 심각성과 폐해가 있다고 본다.

물론 조직이나 제도 자체가 없어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 그것은 인간 생활에 필요한 면이 있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조직이나 제도보다 삶으로서 나타나는 기독교를 말한다. 문화로서 삶 속에 스며드는 기독교 말이다. 그런데 만일 기독교와 관계된 조직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한다면, 다른 조직으로 가는 건 어떤가. 예를 들면 불교로 간다든지 말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는 예수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예수 정신은 기독교에서도 완전히 자유롭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말할 때는 예수정신이 곧 기독교라고 여겨진다. 물론 그것은 앞서 류위원이 말했던 <마땅히 되었어야 할 기독교>를 의미하겠지만 말이다.

“진보 기독교는 주류 보수 기독교의 쑥주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정선생을 진보기독교로 보고 내가 진보기독교를 공격하는 이유를 말하겠다. 진보 기독교는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예수정신으로부터도 나왔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기존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보다 진보기독교가 더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냥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만 있고 그대로 놔둔다면 오히려 퇴행하고 일찍 사라질 수 있을 터인데, 진보 기독교가 있기 때문에 주류 기독교를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진보 기독교가 오히려 주류 보수 기독교의 방패노릇을 하고 쑥주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정작 보수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그 말을 인정 안 할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진보 기독교가 없다면, 엉뚱하고 사회갈등만 일으키고 문화파괴적인 이런 주류 개신교가 기독교의 전부라고 한다면 나는 우리 사회에서 좀더 빠르게 역사의 선택에 의해서 정리되고 쇠퇴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보수 기독교가 살아가는 토양을 누가 주느냐 하면 진보 기독교가 거름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진보기독교의 정신은 조금 전에 류위원이 말한 예수정신으로부터 온 거 아닌가?

물론 예수정신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건 좋은데 그것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뭐라고 하냐면, 진보 기독교 때문에 보수 기독교의 말썽과 배타성과 독선들을 우리 사회에서 정리할 수 있는 힘을 오히려 약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류위원이 앞서 인정했던 그 예수정신을 다시금 부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결국 모순 아닌가?

그렇다면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만일 일본이 나쁜 짓을 뚜렷하게 했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명확하게 들여다봤을 것이다. 일본의 죄악은 더욱 만천하에 드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에 일본에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일본의 범죄가 감춰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때 말하는 좋은 일본사람들은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이라면 애초부터 보편 가치를 추구해선 안된다는 얘긴가?

만일 일본의 경우에서도 일본의 죄악에 대한 연대 책임을 가진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보는 진보 기독교인들은 기존의 보수 개신교에 대한 연대 책임의식을 갖지 않는 진보 기독교인들이 훨씬 많다고 본다.
 
"하지만 솔직당당한 진보 기독교인은 쑥주 역할에 해당한다고 보진 않는다"

보편가치를 추구한다면 당연히 거기에는 연대책임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서 류위원이 좀전에 표현한 경천애인을 지향하며 기존 기독교의 오류와 폐해에 대해서도 연대책임을 갖는 진보 기독교인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도 쑥주 노릇에 해당한다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묻고 싶다.

그렇지 않다. 내가 공격하고 비판하는 진보기독교인은 솔직하지 못한 진보 기독교인을 얘기한다. 즉, 잘못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시스템의 한계에 갇혀있는 진보 기독교인들인데, 대체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제적 밥통 문제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들을 얘기한다. 흔히 우리 사회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평화운동, 생태운동, 사회운동을 하곤 한다. 그것도 좋다고 하자. 그런데 왜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저지르고 있는 범죄적인 일들, 즉 교리적 독선 배타성 등등 이것은 우리 사회에 갈등을 유발하고 문화파괴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왜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극렬한 저항을 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공감한다. 현싯점에서 기독운동의 1차적인 텃밭은 기존 기독교라고 본다. 온전한 기독교인이라면 1차적으로 할 일은 내가 속한 집안 정리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은 류위원의 말씀은 제 집안 문제도 해결치 않은 채 그저 사회운동에 앞장서는 진보 기독교인에 대한 비판이요 성토라고 여겨진다.

그렇다. 나는 그들이 오히려 주류 보수 기독교인보다 더 싫다는 것이다. 적어도 먼저 그렇게 해야 하거나 동시적이거나 해서 기독교 집안 내부 정리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앞선 논의들에선 그러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채로 뒤섞여 얘기되었기에 나로서는 분명하게 여쭤본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 기독교인들이 왜 집안 정리를 하지 않고 사회운동에 더 관심하는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이를테면 KNCC는 한기총과 연합해서 부활절 연합예배도 치루곤 한다. 또한 사학법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관심을 갖고 보는데 이러한 점들에서 보여지는 NCC의 태도는 내가 봤을 때 NCC는 죽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내가 알기에는 KNCC가 통합측 교단으로부터 받는 돈이 1억이 넘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진보 기독교가 그 내부적으로 목소리를 못내는 중요한 이유는 뭐냐면 결국 보수 기독교의 돈줄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진보 기독교는 ‘모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진 않았으면 한다. 단지 대부분 그렇다는 것뿐이다. 적어도 나 역시 그 연대책임을 느끼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확한 것이다.

구분을 하지 않는다면 솔직 당당하게 나오는 진보 기독교인도 지금 말씀하신 솔직하지 못한 진보 기독 진영과 도매급으로 넘어간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연대책임의식에 대해서는 이미 공감을 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독교 운동>도 그런 맥락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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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521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410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381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399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526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691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620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286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336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796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335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427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374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595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674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497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591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791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643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782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849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781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672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189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831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663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643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620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89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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