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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2)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8-02 00:32 조회(265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122 




(* 이미 전문은 이번 월간 『기독교사상』 8월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2) 

[신학특집] 미래의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미래,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4.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변화 양상
 
현재 서구 기독교의 뚜렷한 현상 하나는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였던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가 이제는 더 이상 서구 현대인들에겐 통하지 않을 만큼 서서히 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불교의 경우는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 그 관용적 성격과 서구인들의 동양 문화권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매우 뚜렷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대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또한 불교가 현대 자연과학의 성과들과도 다소 잘 조화되고 있다는 점 역시 호감 요인 중의 하나다.
 
서구 유럽 사회에선 기존 기독교가 퇴행하고 있다지만, 한편으론 남반구 쪽의 남미나 아프리카 혹은 동남아시아 같은 제3세계에서는 여전히 오순절스런 기독교가 부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간과되어선 안된다. 그런 점에선 기독교의 중심 이동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서서히 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중국의 경우도 앞으로를 전망해볼 때, 중국식 자본주의의 발전적 전개와 함께 기독교의 인구가 지금보다는 늘어날 수 있다. 특히 한국 선교사들의 눈부신 열씸도 한 몫하고 있잖은가.
 
한국의 경우 아직 선진국까진 아니더라도 선진국 대열로 가까이 향하고 있으면서, 적어도 제3세계 같은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벗어나고 있는 중간기에 서 있다고 여겨지는데, 한국 기독교는 박정희식의 경제발전이라는 돌진적 근대화의 시기―대체로 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에 기독교 인구가 유달리 급성장한 그래프를 보여줌으로써 일찌감치 이를 예증시킨 바도 있다.
 
어쨌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존 기독교를 놓고 현재로선 제1세계와 제3세계가 왜 이 같은 대비들을 보여주고 있는가? 물론 필자가 이를 단순도식화한 점도 없잖아 있겠지만 어쨌든 주요 흐름에서 보자면 분명하게 그렇다는 얘기이며, 이미 이에 대한 여러 분석적 자료들도 나와 있는 실정이다.
 
종교와 사회 현상의 여러 통계자료를 조사했던 감신대 종교사회학자 이원규 교수는 “사회ㆍ경제적 박탈감이 강한 국가일수록 그에 대한 심리적 보상 차원에서 종교에 기대는 경향이 높다는 가설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다”며, 보다 발전된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의 분명한 위기와 쇠퇴 현상은 이제 "21세기에 접어든 세계 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이자 과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즉, 쉽게 말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안정적으로 접어든 국가일수록 기존의 주류 기독교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은 인간 욕구의 스펙트럼을 분석할 때, 가장 원초적인 1차적 욕구와 종교적 성향의 상향적 욕구들을 분류했던 매슬로우의 욕구위계론마저도 잘 설명해주고 있는 요인들이다. 소위 “잘 사는 나라들은 기독교 국가”라는 공식도 이젠 서서히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5. 기존 기독교에서 <새로운 기독교>로
 
이러한 시점에서 이전에는 관념적 이원론의 패러다임으로 기독교라는 건물을 축조하고 유지시켜왔었지만, 이제는 그것과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토대에서 기독교라는 건물을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대안 기독교 운동>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직시되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은 분명하게 말하지만, 현실적 관계론으로서의 패러다임에 기초된 이 대안 기독교 운동은 지난 이천 년 기독교 안에는 없었던 새로운 흐름이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16세기 종교개혁에서도 없었던 보다 근원적인 기독교 변혁을 갈망하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다. 물론 그것은 이천 년 전 예수의 역사적 삶을 다시금 새롭게 구축하고자 하는 기독교 운동이자 그러한 예수공동체를 다시 구현시키고자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이른바 기존의 기독교 전통들이 처음부터 전반적으로 다시금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변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크게 보면 그것은 다음과 같다.
 
 
♣ 미래의 기독교가 갖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들 
 
 
  ※ 기존 기독교에서 <새로운 기독교>로
 
  ○ 관념적 이원론에서 <현실적 관계론>으로 (가장 기초 관점의 이동) 
 
  ①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에서 <깨달음의 기독교>로
  ② 문자적 성서해석에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③ 초월적 유신론에서 <포월적 유신론>으로 
 
  ④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⑤ 이웃종교에 배타적인 기독교에서 <함께 가는 기독교>로
  ⑥ 가부장적 기독교에서 <상호평등의 기독교>로 
 
  ⑦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⑧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⑨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⑩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⑪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⑫ 저 세상이 아닌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내가 앞서 기존 기독교가 퇴행될 것이라고 말한 지점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흐름들과는 담 쌓고 그저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기존에만 안주할 경우를 의미한 것이다. 이와 달리 주류 기독교 신학이 아닌 남미의 해방신학이나 기존의 한국 민중신학의 경우는 세계사적인 특정의 상황에서 태동된 상황신학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현재까지도 유용한 신학적 통찰들이 번뜩이고 있지만, 이를 발전적으로 전개하여 보다 큰 지구적 상황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선 기초 패러다임의 문제들도 제대로 확실하게 짚어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질 못했었다. 나로선 이 점이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 민중신학의 경우 <반서구신학>을 표방했었지만, 기존 기독교를 아예 전면적으로 대체하고자 한 <대안 기독교 신학>을 표방하거나 그 방향으로 온전하게 나아가진 못했었다. 하지만 기존 기독교와 또 다른 방향으로서 20세기에 나온 생태여성신학이나 과정신학의 대두들은 바로 이러한 전환시대의 새로운 흐름들을 다소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새로운 기독교에 걸맞는 신학적 흐름에 해당한다.
 
그래도 개인적인 평가일진 모르겠지만, 근대 이후 기독교 신학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두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도 서슴없이 성서신학의 역사비평과 제3세계 약자해방의 신학들(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등)의 등장을 꼽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그 자체로만 본다면 미완의 것들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기독교가 새롭게 구축됨에 있어서도 언제나 함께 숙고하고 품고가야 하는 기독 진영의 빛나는 유산들이기도 하다.
 
혹자는 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이 성공적인 교회 목회엔 별로 도움되지 못한다고도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은 이미 시각이 전도된 것이다. 오히려 성서비평학은 잘못된 성서관을 걸러준다. 솔직히 작금의 한국교회 현장이야말로 성서오류의 문제조차 제대로 소화해내질 못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기독교 성서의 유니크한 특별함과 가치를 온전하게 찾아내질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교인수불리기에는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기독교 신학의 전반에 대해선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목사 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오죽하랴만.
 
6. 점점 붕괴되어가는 전통교리 :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에 따른 기독교 분류
 
현재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보수 기독 진영에 속해 있지만, 보수와 진보 간의 정보 취득 스타일을 분석해보면 ‘무조건 믿어라’의 내용과 그 전제 유무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해볼 수 있겠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요?

보수 

진보

진보 

진보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 여부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있다. (O)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있다. (O)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없다. (X)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없다. (X)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 내용
(이는 범주적 한계를 의미)


성서무오설
예수의 유일회성
동정녀 탄생
예수의 피 대속설
부활 승천 재림
삼위일체 등등
전통 교리들


민중해방 전통 or
생명평화 전통
(* 진보 기독 진영에는 이것을 당위로서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진리는 없다.
온갖 오류들과
권력(힘)만 있다.
(그러나 진리가 없다는 명제 자체만큼은 진리로서 통용된다는 점에서 그 모순이 있다)  


진리는 있지만
우리에겐 없다.
그 진리는 우리 자신들의 오류와 비극을 통해서만 부분적 성취로서 근접해나갈 수 있을 뿐이다.

나타나는 행태

전통교리는 무조건 믿어야 하며, 성경을 읽어도 여기서 벗어나면 안된다고 말한다.

(전통교리를 포함, 사도신경,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사영리 등등은 많은 성경공부 교재들의 핵심적 전제들이자 결론으로서 자리함)

민중해방 전통을 가장 중요시하기에, 타자를 위한 사회변혁이 시작부터 강요될 수 있다.

(나 자신은 이것도 당위로 보면 곤란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진리는 없다고 보기에 회의주의 혹은 상대주의에 곧잘 빠진다.

(후기구조주의와 친화적이기에 가장 냉소적인 집단에 속한다.)

자기해체에까지도 열려 있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적 구성 모색

(진리 탐구 과정 자체에서 얻는 합리주의적 성취를 중요시)

해당 진영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 대부분

기존 민중신학 혹은
이와 비슷한 성격의 
에큐메니칼 진보 진영

3세대 민중신학
혹은 탈기독교나
탈교회, 탈중심주의를 표방하는 진영

정강길의
새로운 민중신학
(=살림신학)
그리고 과정신학 진영


 
대부분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는 ① 성서무오설 ②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③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④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⑤ 그리스도의 재림설 같은 교리적 전제가 있다. 이것은 이들이 읽는 성경의 전제이자 결론이다. 이것을 벗어나면 결코 안된다. 사실 기존의 주류 기독교가 믿음을 강요하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거기에는 언제나 무조건 믿어야만 성립이 되는 필수적인 전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동정녀로 탄생했다고 쓰여 있으면 이해되지 않더라도 의심치 말고 믿어야 한다. 신념을 꺾는 강요가 동반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어쨌든 우리가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사도신경이나 기독교사상사의 니케아 신경(“니케아 신경 이후의 기독교사상사는 니케아 신경의 각주에 불과하다”) 혹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이나 C.C.C 캠퍼스동아리 회원들이 그토록 들고 다니며 전파하는 『사영리』같은 것들도 바로 위와 같은 기독교 전통교리들에 대한 축약적 설명문들에 해당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은 내가 성경을 읽을 때도 실은 성경 그 자체를 투명하게 만났던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나서도 내가 미리 전제하고 있었던 저 전통교리들에 대한 <재확인 작업>밖에 안된다는 충격적 결론부터 제대로 직시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한국교인들이 제아무리 성경을 지지고 볶고 한 대도 결국 보수 근본주의가 쳐놓은 저러한 교리들의 그물망을 벗어나진 않는다. 그 교리의 범주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야 저들은 안심인 것이다. “성경이 교리(dogma)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얘기나 “한국교회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에 관한 교리>를 믿는다”는 표현도 바로 이런 점을 두고 의미하는 말들이다.
 
따라서 저들이 그토록 수호하고자 하는 전통의 실체란 놀랍게도 <성경>이 아니라 <교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어떤 전통도 ‘오류'와 ‘비극'에 선행할 순 없다. 이것이 바로 어느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새로운 기독교가 기존의 전통교리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에겐 전통교리식의 성경해석만 있는 게 아니다. 전통교리에 대한 붕괴현상은 이미 기존의 진보 기독 진영에서도 곧잘 발견되어진다. 진보 진영의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은 사도신경 혹은 보수 근본주의의 해석학적 전제인 5대 강령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꿰뚫어지고 있다. 예컨대, 진보 진영에서 곧잘 해석하는 <민중해방 전통>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민중해방의 눈> 혹은 <생명평화의 눈> 같은 해석의 틀로 성경을 볼 경우, 위와 같은 저 전통교리의 명제들은 그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혹은 새롭게 해석되거나 좀더 부차적 사안에 지나지 않게 된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이젠 제법 알려진 『함께 읽는 구약성서』와 『함께 읽는 신약성서』(한국신학연구소)나 최근의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가 펴낸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시리즈』(평화나무출판사)도 여기에 속한다.
 
기존의 전통교리적 성경해석만 알다가 이러한 진보 기독 진영의 성경공부 교재를 접할 경우 매우 생경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수적인 한국교회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들 성경공부 교재들은 매우 추천할만하다고 본다(하지만 아쉬운 점 하나는 진보 진영의 성서공부 교재에도 성서신학적 성경공부 교재는 있어도 조직신학적 성경공부 교재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공부 교재 어떻게  할 것인가"  참조)
 
그렇기 때문에 결국 성경 자체는 해석학적 관점에 따라 <열려 있는 책>이며, 근본적으로는 어느 한 부분으로서 범주를 그어놓을 수도 없고 한계를 지어놓을 수도 없다.
 
<교리>dogma란 대내적으로는 기준점을 잡고 대외적으로도 공식화된 신앙의 신조들을 표방한다. 하지만 자칫 어떤 절대불변의 명제들을 이미 못박고 상정해놓는 것만큼이나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바보짓도 드물다. 미래는 언제나 창조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과거의 역사가 앞으로 도래할 창조적 미래까지 미리 봉쇄해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반역이 아니고 뭐겠는가.
 
내가 보는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는 크게 두 가지 원칙만 지니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아주 최소한의 원칙이기도 하다.
 
1) 오류와 비극 앞에서는 언제나 겸허한 기독교
2) 솔직하고 건강한 합리성에 기반하려는 기독교

 
궁극적으로 합리성은 신성에 속하지만, 인간의 합리성은 아무래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선의 합리성을 위해선 가능한 설득력 있는 합리적 자세를 견지하되 시행착오의 오류와 비극 앞에선 언제나 겸허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인간의 합리성은 오류와 비극 앞에서 수정될 때 보다 나은 진보로 나갈 수 있다. 그 어떤 막강 파워 전통도 오류와 비극 앞에선 수정가능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의 기독교가 이러한 원칙적 자세를 가지고서 성서 속에 담긴 예수사건을 붙잡는다면 그나마 최선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여기에 굳이 하나 더 덧붙인다면, 3) 약자를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기독교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단지 나로선 1)과 2)만 가지고도 충분히 3)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보기에 넣질 않았던 것뿐이다. 알고 보면, 3)은 진리에 대한 예증과 적용 사례에 해당한다.
 
 (* 다음 글에서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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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427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374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595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674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497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591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791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643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782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849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781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672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189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831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663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643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620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89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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