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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GIO 명상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8-06-21 06:28 조회(2107)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158 




(*앞으로의 새로운 기독교에서는 GIO명상이 몸 수행에 쓰일 것이다.)
 
 
나(I)라는 존재는 언제나 매순간 형성되는 신(God)과 타자(Others)에 대한 자기화 과정으로서의 존재이다.
이때 <단위 행태>란, GIO에 대한 자기화 과정에 있어 순간적인 경험의 방울이라는 단위체를 가리킨다.
이것은 나의 일련의 경험들을 형성함에 있어 가장 단위적인 나 자신의 행태 알갱이다.
이러한 단위 행태의 연속들이 결국은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는 <실재적 개인>real individuality이 되고 있는 것이다.

'GIO명상'이란, 위의 단위행태 그림에서 볼 때
거꾸로 내 안의 가장 심층적인 ①번의 차원을 찾아나감으로서
신의 본성으로부터 내게 오는 최초의 주체적 지향을 보다 정확히 찾아가는 여정이다.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게 됨으로써 신인합일의 경지에까지도 이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나와 타자들 모두에게 언제나 GIO만족에 따른 최상의 가능태를 주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신의 경우는 GIO만족에 대한 개념적 성취를 이룬 존재이며,
이에 대한 물리적 성취로서 나와 타자들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 것이다.

어떤 순간의 경험이든지 그것은 결국 전체 우주에 대한 경험이다.
따라서 어떤 순간에 대한 집중이든지 그것은 결국 전체 우주에 대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이 말하는 GIO명상은
흔히 불교의 사마타 집중 수행의 제거의 방법보다는
오히려 포용과 감화의 차원을 의도하는 명상법이기도 하다.
 
 
(*참고로 윌버가 최상의 궁극적 단계로 말한 비이원적 단계는 사실상 존재의 단계가 아니라서 제외하는 바이다.
존재로 보는 것 자체가 관념이다. 윌버의 경우 이를 영Spirit이라고 부르지만, 불교에서는 공(空),
그리고 화이트헤드에서는 Creativity를 의미하고 있다. 사실상 이것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원리일 뿐이다.) 
 
 
GIO명상법
 
각 단계마다 관찰에 대한 만족이 이뤄질 때까지 관찰한다.
관찰에 대한 만족이 느껴지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물론 관찰에 대한 만족 자체가 온전하지 않은 채로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보다 중요한 점은
일단은 계속적으로 이에 대한 습관적 수행을 해보는 것에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 조금씩 그 오차와 한계에 대해서도 극복해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에고적 단계   1. 신체적 효과성을 관찰하는 단계 (본능적/감각적)
 
일반적 단계   (1+)2. 생활반경에서의 관계를 관찰하는 단계 (전조작적/조작적)
지성적 단계   (1+2+)3. 일반적 양상의 사회적 효과성을 관찰하는 단계 (비전 이성적)
 
정묘적 단계   (1+2+3+)4. 보다 심층적인 세계 사회의 효과성을 관찰하는 단계 (직관적 판단, 여기서부터는 트랜스퍼스널 상위 차원으로 돌입)
 
원인적 단계   (1+2+3+4+)5. 보다 심층적인 세계 사회의 효과성의 원인들을 속속들이 저마다 관찰하는 단계
(내가 세계 안의 타자를 이해하는 단계,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로 들어가는 시작, 충돌 나는 것을 이해하려는 단계, 무로 들어가는 초기)
 
세계합일 단계   (1+2+3+4+5+)6. 매순간 발현하는 세계 안의 모든 다수 타자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단계
(나와 너가 나누어지지 않는 무경계의 차원을 경험하는 단계, 여여함, 변화하는 인생의 삶이 그대로 관조되는 단계, 자아가 무화(無化)됨을 겪는 단계)
 
신인합일 단계   (1+2+3+4+5+6+)7. 내 안에 흘러들어오는 GIO만족 및 신의 주체적 지향을 정확하게 포착함으로써 신의 마음을 경험하는 단계.
6번의 단계를 거치면 시공을 초월해 있는 신과의 교통 및 신의 본성을 경험하게 된다. 시공을 초월함. 근원적인 고향, 존재의 자리를 알게 함.
 
여기서 4, 5, 6, 7이 내가 말하는 트랜스퍼스널 단계에 해당한다.
4번의 경우는 과학과 신비의 경계 지점쯤 되지만(과학은 4번의 단계를 개척적으로 발견해나감으로써 신비가 합리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 이상의 단계들은 현재의 과학적 검증 수준을 넘어서는 단계라서
확인 불가능한 신비의 단계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것은 그 자신의 상상적 사고에서 나온 단계가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결코 부정할 순 없다고 본다. 이것은 분명하게 정직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세계 안의 명상 수행이나 의식 발달에 있어 상위 단계는 분명하게 검증불가능하다.
물론 그렇게 체험한 사람들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검증가능한 차원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점에서 불가지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자기 확신을 여전히 강제할 경우 그것은 자칫 관념의 폭력성으로 유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확인 가능할 것인가?
확인은 그 사람의 삶의 양태로서 드러날 뿐이다.

상위 차원으로 갈수록 나의 자아(ego)는 전체 세계를 품어내는 역량이 점점 더 커지는 확장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타자에 대한 보살의 정신으로도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합일과 신과의 합일로 들어갈수록
결국은 세계를 이해하고 신의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기에
GIO만족의 지점을 점점 더 뚜렷하게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GIO명상법은 결코 그 자체로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타자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으로
결국은 나와 타자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는 무경계의 차원로 이끈다.

윌버가 말하는 의식 발달 단계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의식 발달을 꽤하고 있다.
그러한 차원은 사실상 더더욱 확인할 길이 없다고 본다.

4, 5, 6, 7번은 아직 세계 안의 일반적 합리성의 차원으로도 가늠하기 힘든 부분이라 직관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로선 신비의 차원에 해당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상위 차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6번의 단계는 내 안의 관찰자가 모든 전체 세계를 저마다 느끼면서 남김없이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는 단계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단계.
이 단계에 이르면 나의 몸을 이루는 전체 세계의 모든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인 신과의 합일이라는 7번의 단계는 어떤 면에서 6번의 단계를 성취함으로써 얻어지는 단계이기도 하다.
7번의 단계에 이르면 나의 의식은 GIO만족의 광명한 성취를 미리 맛보게 된다.
여기에서는 내 마음이 신의 마음이요 신의 마음이 너의 마음이며, 너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단계인 것이다.

이러한 나 자신의 GIO명상은 그 자체로
이미 자비명상이자 보살정신으로도 이어지는 명상 수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안에 개입되고 있는 타자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그러한 타자에 대한 신의 우선성의 원리마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은 자의 삶은 언제나 그 사람의 열매를 통해 발견되어진다.
즉, 영성인에 대한 측정은 삶의 스타일에서 측정될 따름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 순간은 이 모두가 복합적으로 얽힌 채로 경험되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순간 경험에 대한 집중 명상은 궁극적으로는 전체 우주에 대한 명상인 것이다.

복합적 경험의 순간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감으로서
보다 차분하게 풀어서 정리해보려는 차원이다.
단계로 올라갈수록 자아는 확장을 경험한다.
그러한 자아의 확장 경험은 타자에 대한 사랑 혹은 자비심의 획득과 함께 맞물려 있다.

그리고 내가 신을 만나는 단계는 여러 단계와 같이 병렬되면서 또한 비교된다.
비교의 느낌에 의해 새로운 의욕이 나오는 것이다.
신과의 관계는 단계로 나아갈수록 함께 비례하여 성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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