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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진보 개신교 진영의 한계 (1)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8-09-16 06:33 조회(2159)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201 





최근에 일어난 개신교 진영의 3가지 사건
 
1. 얼마 전에 SBS <신의 길 인간의 길> 방송에 대해 개신교 주류 보수 진영이 들고 일어나서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SBS 방송에 대한 온갖 압력 행사를 보인 사태를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서 한국 TV매체에서 처음으로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진보적인 신학 노선과 예수 신화학파까지 다뤘다고 해서 주류 보수 개신교 진영은 이를 기독교 전통교리에 대한 위협으로 봤기 때문에 시끌벅적하게 대응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기총’과 ‘한국교회언론회’가 주도적으로 보수 개신교 진영을 대변하면서 기독교 전통 교리의 수호를 외쳐댔었다. 현재는 좀더 보수 기독교의 결집을 모아 ‘SBS사태대책위원회’를 형성하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도 광고를 내면서 ‘SBS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진보 개신교 진영은 이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이라곤 거의 없었다.
2. 또한 얼마 전에 내가 알기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만큼이나 진보적이라는 작은 겨자씨 교단인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교단에서 김홍술 목사가 자기가 속한 교단과 교회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들고 나온 사건이 있었다. 급기야 김홍술 목사는 종로5가의 기독교 회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을 내세웠다.
그것은 바로 “1. 한국교회여, 너 가진 것을 나누어라. 2. 교리의 옷을, 교권의 관을 벗어라. 3. 예수의 삶을 살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존의 진보 개신교 진영 역시 그다지 반응을 보여주진 않았었다. 물론 몇몇 진보 기독교인들의 개인적 차원으로서 동정적이고 심정적인 호응은 있었을지언정.
 
3. 요즘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행보에 대해 전국의 불교도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보수 개신교 진영의 목사들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며 자제를 촉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타적 교리 자체를 문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장경동 목사가 스님들도 예수 믿어야 한다며 불교 폄하적인 얘기들을 해대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한국교회 전체에서 볼 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상징일 따름이다.
 
보수 개신교 진영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개신교인들의 종교 편향 사태에 대해 신앙 공동체의 일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불교를 폄하하면 괜찮다는 얘긴가? 혹자는 이에 대해 불교도 그 안에선 그렇게 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나 빈도수로 따지면 비할 바도 못되지만, 설령 불교가 그렇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기독교 역시 똑같은 식으로 나오겠다는 것인지? 즉, 그런 식의 대답은 전혀 반박이 되지 못한다고 하겠다.
 
이미 배타적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자리하는 한, 개신교인들의 종교 편향 작태들은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어찌 밖에서도 새지 않을까? 한국교회는 계속적으로 배타적 교리 및 성서 문자들은 완전 무오한 백퍼센트 사실이라고 보는 성서문자주의가 교회현장에서도 판을 치는 한, 여전히 사회적으로도 꼴통짓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배타적 교리와 성서문자주의가 뒤바뀌지 않는 한, 한국교회는 결코 치유될 수 없다. 게다가 한국교회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수정하여 이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온전한 치유를 향한 여정에 있어 겨우 그 시작일 뿐이다.

최근의 개신교 진보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과의 친화적 연합 현상에 대하여

나 자신이 최근에 일어났던 일련의 3가지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위의 사례들에 대한 개신교 진보 진영의 행보와 그와 관련한 흐름을 읽기 위해서다. 사실 개신교 진보 진영은 위의 사건들에 대해 공식적 반응을 보이질 않았었다. 신앙 교리 문제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여전히 시무룩할 따름이다. 다만 종교 편향 행보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이웃 종교들과 함께 북한 돕기 사회운동을 펼쳐나가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을 뿐이다.

즉, 개신교 진보 진영은 직접적인 교리 신앙의 문제를 삼지 않으면서 그저 사회운동을 주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대를 넘어 21세기 초반의 현재까지 개신교 진보 진영의 이러한 흐름은 묘하게도 보수적인 전통교리와 사회정의 운동이 양립 가능하다고 여기는 일군의 국내 복음주의 진영과도 묘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파할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교리는 건들지 않으면서 사회참여만을 표방한다는 복음주의 진영의 언론인 '뉴스앤조이'나 '복음과 상황' 언론들 그리고 이들 언론에서 빈번하게 접하는 인물들인 방인성, 박득훈, 구교형 목사 등등 이런 복음주의 진영의 활동가들도 언제부턴가 개신교 진보 진영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볼 때 현재의 개신교 진보 진영은 사실 이러한 복음주의 진영과 그다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한국의 복음주의 진영 전반에 대해서도 좀더 세밀한 분석을 가해야겠지만(실은 '복음주의'라는 개념 자체부터가 어폐가 있기에), 사실상 오늘날의 개신교 진보 진영은 진보적 사회운동과 결합된 복음주의 세력들과 그 노선에 있어서도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되어진다. 우선은 일단 이러한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논하고자 한다.

현재의 진보 개신교 진영의 운동은 예전의 7, 80년대의 민중 해방적 신학 노선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주요 색조로서 계승해왔었지만 다양한 시민사회가 형성되어갔던 90년대 이후로는 이를 올곧게 넘어서지 못하고 여전히 예전 시대의 기독운동으로서 정체되어 있는 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듯 진보 기독교인 하면 으례히 떠올리는 그림은 ‘기독교인으로서 다소 좌파적 성향의 사회운동을 하는 기독교인’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한 와중에 태생적으론 보수 개신교 진영에 속하면서도 그 가운데 민중운동, 사회정의 운동에 관심을 보인 일군의 복음주의 진영으로선 기존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어받고 있는 진보 개신교 운동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때 사실상 가장 우호적일 수 있었던 핵심 이면에는 기존의 진보 개신교 진영조차도 신앙적 교리 문제만큼은 그다지 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보수 개신교 진영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 한국의 복음주의 세력들로선 기독교의 교리 문제란 워낙 민감한 사항이라고 생각한 점도 없잖아 있을뿐더러 그걸 언급할 경우 세력의 기반을 잃게 된다고 본 점도 있고, 또한 혹자는 신앙적 교리와 진보적 사회운동이 같이 갈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 나는 분명히 말하지만, 작금의 이런 현상이 개신교 진보 진영의 발전이라고 보질 않으며 그것은 분명한 진보 개신교 진영의 정체요 퇴행이라고 볼 따름이다. 물론 기존의 복음주의 진영에서 보면 다소 발전적이라고 볼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예전의 진보 기독교 운동의 관성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개신교 진보 진영의 입장은 보수 기독교 진영과의 전선을 분명하지 못한 가운데 여전히 정체되어 있다고 본다.

역으로 현재의 복음주의 진영은 예전의 7, 80년대 성격의 개신교 진보 진영의 모습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하겠다. 보수 기독교 진영의 동네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이만큼이라도 얼마나 진보적으로 보이겠는가. 어이없지만 실제로 보수 기독교 진영이 볼 때 뉴스앤조이 같은 복음주의 진영의 언론이나 복음주의 진영의 활동가들을 정작 진보 개신교 진영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마치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이 중도개혁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정권을 자기들이 보기엔 진보 좌파 세력으로 평가하는 어이없는 시각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한국 복음주의 진영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따로 언급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개신교 사회운동의 주도권과 그 흐름에서도 많은 부분들이 오히려 현재의 복음주의 진영으로도 많이 포섭되어가는 가운데 있다고 하겠다.

어쨌든 21세기에 들어서도 진보 개신교 진영은 여전히 발달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면 기존의 복음주의 진영은 마치 예전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따르고 있는 것이 현재의 흐름인 것이다

기존의 진보 기독교 운동이란 그저 기독교인으로서의 사회운동일 뿐!

진보 개신교 진영의 기독운동이 그 색조에 있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나의 지론에 대해 혹자는 이 지점에서 <예수살기> 모임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진보 개신교 진영의 행보를 보면 기존의 NCC 한계를 극복해보자는 심산도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행보는 기존의 NCC가 추구하는 운동과 크게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보는 <예수살기 운동> 역시 지나치게 사회운동쪽에 몰입되어 있다. 보수 기독교 자체를 바꾸려고 맞짱 뜨는 운동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운동의 범주에서는 보수 기독교 진영과는 늘쌍 마찰을 빚고 있다. 정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개인적으로 아는 예수살기의 몇몇 목사님들의 견해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역시 알지만, 나 자신이 지금 말하는 바는 여하튼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행보에 대해서 말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바이다).

내가 볼 때 신앙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바로 <행동주의 신앙>과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이다. 기존의 진보 기독교 신앙을 정리한다면 어쩌면 간단하게 표현될 수도 있다. 그저 우리 사회의 약자들과 함께 연대하며 투쟁하는 것! 이것만 그저 평생토록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 나 자신이 그 어려운 일을 너무 쉽게 내뱉고 있지 않느냐 라고 볼 진 모르나 나 역시 그렇게 하는 삶이 쉽지 않다는 것또한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길을 걷는 행동주의 신앙의 여러 진보 개신교 목사님들께 기꺼이 존경의 념을 표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다는 것 역시 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존의 진보 개신교인들의 행동주의 신앙은 기존의 보수 기독교 신앙의 간단함과 똑같이 비견될 수 있다. 기존의 보수 신앙 역시 매우 간단하게 정리되는 것이면서도 행하기는 힘든 것이다. 즉, 무조건 믿고, 기도하며, 찬양하고, 은혜 받으면서 죽기까지 전도만 하면 된다. 그러면 보수 신앙 진영에서 캡짱 먹는 것이다. 둘 다 행동면에서는 똑같이 실천적이다. 그런데 무엇이 정작 이 둘을 달라지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세계를 이해하는 신념으로서의 신학적 사고다.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이 빠진 행동주의 신앙은 기독교 사상의 논쟁적이고 핵심적 사안들을 비껴가기엔 딱 좋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예수의 드러난 행태만 볼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신학, 예수의 세계관, 인간관 등등에 대해서도 설득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기존의 예수살기 운동도 그저 행동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또 다른 기존의 진보 개신교 모임일 따름이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보수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진보적 사회운동은 양립 가능한가?" 나는 매우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특히 복음주의 진영들에서 많이 보이지만, 진보 개신교 진영에서도 있기에 이들은 서로 사실상 이미 친화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물과 기름으로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미 보수적인 기독교 교리가 우리 안에 얼마나 강요적 전제로서 놓여 있는 현실인가. 기독교인으로서 세례를 받으려면 교리문답에 따른 교리의 세뇌를 받아야만 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성서비평의 수용 여부, 동정녀 탄생의 비역사성 문제(혹자는 이에 대한 신학적 의미만 취하고 내빼면 된다고 말함), 예수의 육체적 부활이나 재림설, 각자 해석하기 나름인 삼위일체설, 기독교 종교의 구원만 참된 구원이라는 배타주의, 동성애나 진화론과 창조론의 문제에 대해서도 모호한 양비론적 입장이나 혹은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에도 여전히 많은 게 우리네 현실이잖은가. 이는 한국교회 설교 현장에서도 곧잘 저질러지고 있다.

혹자는 한국교회의 근원적 병폐의 원인이 <맘몬주의>요, <기복주의>며, <성장제일주의>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요즘은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이를 곧잘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것은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 그것 역시 그저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정말이지 한국교회의 근원적 병폐의 원인은 애초의 예수정신과 너무나도 다른 기괴하고 흉물스런 <교리>dogma라는 괴물에게 많은 사람들이 그 신념을 사회적으로도 올인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그것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교권을 충실하게 정당화해주고 있을 뿐더러 우리 사회의 보수 지배 이데올로기와도 매우 친화적인 힘의 논리일 뿐이다. 그것은 지금도 기독교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수정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어 있다. 지금까지 세계 안의 보수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전통 교리를 신념으로 하여 일어난 행동주의 신앙이 대부분인 것이다.

보수 개신교 진영의 핵심 뇌관인 교리를 건드려라!

현재로서 기독교 정통 교리를 중점적으로 문제 삼는 진영이라곤 오히려 '안티기독교' 진영을 제외하면 새로운 대안 기독교를 표방하는 데 말고는 거의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정의 운동을 표방하고 싶다면 이제는 다양한 시민사회가 형성된 터라 기존의 다양한 NGO 사회운동들과 연대하면 된다. 정작 여전한 문제는 우리네 기독교 내부의 종교 갈등 문제다. 실은 기독교 안의 종교 갈등이 이제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사회 갈등으로까지 연장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곽선희, 김홍도, 장경동, 조용기, 추부길, 장경동 등등 이런 골 아픈 목사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는 대운하 공사 논의가 아예 나오지 않도록 하고 싶은가? 기존의 보수 개신교 자체를 공략하라! 좋은 방송프로그램을 어이없게도 금지시키려는 SBS 사태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가? 기존의 보수 개신교 자체를 공략하라! 우리 사회에 촛불 집회 참여와 한미 FTA 체결 반대를 더욱 촉구하고 싶은가? 사학 비리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싶은가? 기존의 보수 개신교 자체를 공략하라!

앞으로는 한국 개신교 진영에서 이명박 장로 같은 사람이 결코 대통령으로 나오지 않도록 혹은 그런 인물이 당선되지 않도록 보다 근원적인 대책 마련을 세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존 개신교 진영을 전방위적으로 공략하라! 물론 어쩌면 더욱 멀고도 힘든 싸움이 될 수 있을 진 모르나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건강한 기독교를 위해 가야할 <정석>이라고 본다.

현재의 개신교 진보 진영은 7, 80년대 기독운동의 관성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사회가 다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운동에만 몰입하는 목사들은 그저 7, 80년대 기독운동 노선의 충직한 후배 목사들일 따름이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의 삶을 따르며 살겠다고 고백하시는 기독교 신앙인들이라면 분명하게 잘 생각해봐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늘날의 보수적인 한국교회 현장들을 비롯하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같은 집단을 퍽이나 좋아하실까 싶다.

오늘날의 진정한 진보 기독교 진영이라면 이제는 또다시 <새로운 공의회>가 결성되어 기존의 낡은 기독교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 기독교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WCC(세계교회협의회)를 통해 이를 정식으로 제안하고 싶은 바다. 기독교, 정말 다시 세워야 한다. 왜? 제대로 예수를 살아야 하니까!
 

[관련글] 현재의 한국 기독교의 진보 진영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치노 (08-09-18 15:55)
 
요새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정강길 선생님처럼 논리적으로 기독교적 도그마를 반박하지 않지만 생활 속에서 기독교의 교리가 틀렸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왜 틀린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책에 써 있더군요. 예수님이 삶을 충실하게 살지 않았다면 부활도 의미가 없었을 거라고,,,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학적 해석에 따라 사후 천당이라는 곳이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면 저곳이(Out there) 아닌 이곳(right here)가 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요새 "우리들의 하느님"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도 이제 문제를 풀려면 교리 문제를 다루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세기연'은 소중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미선이 (08-09-20 04:13)
 
진보 개신교 진영에도 비겁한 학자들이 많다는 점은 이번에 
'신의 길 인간의 길'을 연출한 PD와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질문) 방송을 보면 주로 종교학자 위주의 인터뷰였다. 우리나라의 신학 교수나 목사들을 만날 생각은 없었나?

답변) 많이 만났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 알지만 말하지 못한다며 얘기하기 꺼려 하신 분도 있었다. 그 분 중에는 보수 신학교에 있는 교수도 있었다. 그 분들 얘기를 들으면 설득력이 있을까 했는데. 어떤 분들은 성경에 대한 논증을 꺼려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신학자적 양심을 느낄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았다. 진보 신학교 교수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얘기하면 시끄럽다고 대답한 분들도 있었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863

미선이 (08-09-30 03:18)
 
윗글에 대한 반론이라며 에큐에 올라온 글이 하나 있어 링크를 걸어둔다.
http://freeview.org/bbs/tb.php/d0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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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310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342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433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350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324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342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424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617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491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235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272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682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266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351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302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483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602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438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499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702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590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689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721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705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596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1932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761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604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579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557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8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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