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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정강길의 종교론] 진화하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4-24 10:49 조회(1479)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44 




(*이것은 본인의 종교론일 뿐이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반론이 있다면 기탄없이 얘기해주길 바란다)
 
 
 
종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
 
-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는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자기오류가능성>이 없는 종교가 있을 수 있는가?

종교(宗敎)란 말그대로 “최고의 으뜸 가르침”을 의미한다. 종교는 신, 절대, 계시, 진리 등등 이러한 것들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종교만큼 뿌리 깊게 절대적인 자기 확신을 갖는 경우란 거의 없다. 종교인일수록 절대적 확실성을 곧잘 부르짖는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수많은 종교인들은 이러한 절대적 확실성이 갖는 위험들을 곧잘 간과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다소 괜찮을 수 있다고 본다. 정작 문제는 종교들 간에 그 절대적 확실성의 내용들이 서로 달라서 서로 충돌할 경우가 가장 핵심적인 치명적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테면 신(God) 또는 진리(truth)라는 같은 언명들을 표방하지만 그 내용이 서로 충돌할 정도로 달라서 기독교와 이슬람 진영 간에 전쟁이 벌어지거나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보는 배타적 신앙관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그런데 곰곰이 한 번 잘 생각해보자. 도대체 현실 세계 안에 절대불변의 확고부동한 종교 혹은 진리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종교를 믿는 이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의 교리야말로 절대 진리라고 표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종교를 믿는 그 종교인의 주장들도 절대화될 수 있는가?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분분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속한 종교만큼은 절대적인 진리라고 보면서도 그 종교를 지지하는 자기 자신의 주장은 꼭 절대적이진 않다며 한 발 뒤로 물러날 수도 있잖은가. 그렇다면 자기종교의 진리를 전수받는 과정에서 그 굴절과 왜곡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은 꼭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인가?

나 자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안적인 논의의 출발을 해보고 싶다. 우리가 자기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 혹은 예수님에 대한 오류를 인정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를 믿는 나 자신에 대한 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로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종교가 제 아무리 절대적 진리라고 하더라도 이를 전수받는 과정에서의 굴절과 왜곡만큼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만에 하나 우리 자신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 혹은 절대 진리와 동격으로 놓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교만과 죄를 짓는 불신앙이 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진정한 종교 신앙인이라면 오히려 자기오류가능성을 필연적으로 인정하는 신앙인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경전의 구절들을 죄다 빌려와 쓴다고 해서 자기오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참고로 기독교 보수 근본주의자들 가운데는 (설령 자기오류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자기 말이 아닌 성경 구절들만을 뽑아내서 꿰맞추는 자들이 있다. 그럴 경우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성경구절 모두가 백퍼센트 진리이기 때문에 자기오류가능성조차도 제로(Zero)라고 생각한다. 성경무오설을 철썩 같이 믿고 있기에 성경 구절만 발췌해서 전달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구절들을 뽑아낼 경우 그 구절들은 자신이 보는 해석학적 관점에 따라 배치되고 배열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그 해석학적 관점만큼은 자기가 취하는 입장과 선택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여성안수 문제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 역시 똑같이 성경에서 퍼올 수 있다. 게다가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은 그 뜻이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http://freeview.org/bbs/tb.php/b001/27 참조). 성경이 자기가 생각하는 어느 한 쪽으로만 해석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가장 위험한 큰 착각도 없다. 무엇보다 성경 본문 자체가 서로 충돌하고 모순되는 구절을 얼마나 많이 보이고 있는가. 이런 문제점들은 보지 못하거나 애써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구절들을 끌어다 쓰는 보수 기독교인들 역시 자기오류가능성을 가진다고 봐야할 것이다. 자기 말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백퍼센트 성경구절들만 뽑아내어 주장했다고 해서 자기오류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은 매우 순진한 착각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기종교를 절대화할수록 자기의 주장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기가 쉽기 때문에 오히려 곧잘 더 큰 교만과 불신앙으로 빠질 위험성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종교를 절대화해선 안된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우리는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를 상대화할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제 역으로 되물어보자. “만일 종교가 자기오류 가능성을 인정할 경우 그 종교는 종교가 아닌 것이 되는가?”라는 것이다. 물론 혹자는 종교가 자기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로서 보기는 힘들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는 종교의 발생

내가 알기에 종교의 발생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은 진화론적으로도 설명가능하다. 즉, 종교란 자연세계 안에서 겪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능동적인 적응인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라는 것을 선택한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종(種)이 자연 세계 안에 살아남은 것이다.

종교를 가진 인간들은 훨씬 결집력이 높았고 그럼으로써 생존률이 더 높았다고 여겨진다. 물론 그것의 기원은 처음에 일종의 습관적 행동에 해당되는 <관행>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다가 그러한 관행에 수반되는 그 어떤 정서와 정당화된 신념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종교의 발생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호모 렐리기우스의 출현 역시 자연 선택에 따른 것이라 여겨진다.

종교의 발생은 곧 문화의 발생이기도하다. 요컨대 종교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말한 새로운 복제자인 <밈>meme의 발현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차원은 물리적이고도 생물학적인 진화에서 생각의 진화로 넘어가는 새로운 차원인 것이다. 도킨슨은 <밈>이라는 문화유전자를 고안한 바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것은 생각의 진화 곧 정신의 진화로 돌입한 차원임을 보여준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도킨슨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설파하고 있는 상당한 설명들을 받아들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이것 역시 불충분한 체계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유전자 자체 역시 이 우주가 여러 다양한 경로들을 거쳐 진화해서 나온 산물이기에 <다수준 선택론>에서의 유전자 지위가 자연생물학에선 가장 큰 핵심으로서 강조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도킨슨은 엄밀한 의미에서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진 않았었고, 유전자의 지위를 강조하다보니 단지 결정론에 가깝게 보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솔직히 유전자 운반기계라는 도킨스의 표현은 심한 왜곡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렇게 오해를 살만한 표현이라고 본다. 우주는 원자(무기물)→유전자(자연생물)→밈(인간)으로 나아가면서 각각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유전자가 아무리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하더라도 이 우주의 원자적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밈 역시 유전자 법칙을 이어받으면서 인간에게 주도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 수준에서 자연 선택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나 역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가 밈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고안했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그때까지의 자신의 유전자론에서 뭔가 새로운 도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면서 밈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생각해낸 것이다.

문화유전자, 그것은 곧 정신의 진화로 돌입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종교의 발생이 밈에 대한 국면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밈의 국면에서 특히 르네상스 이후에는 다양한 밈에 대한 발현들이 이뤄지면서 무신론자들의 발현과 심지어 종교불필요 주장에까지 이르는 현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제 종교의 의미와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봐야 할 것인가?
 

종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 :
종교의 진정한 가치는 기존의 것에 대한 <숭배>가 아닌 기존의 것에 대한 열린 <수정>에 있다

내가 보는 종교의 성격은 크게 둘로 나뉠 수 있다고 본다. 닫힌 종교와 열린 종교다. 이를 각각 숭배성 종교와 개방성 종교로도 볼 수 있다. 전자는 주로 고정되고 폐쇄된 체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후자는 주로 변화하는 개방된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전자는 기존의 것에 대해 숭배하는 성향을 띠고 있다면, 후자는 기존에 것에 대해서도 수정 가능할 수 있다고 보는 열린 마인드의 종교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종교의 역사를 보면 후자는 놀랍게도 그다지 논의되어 왔지 않다. 하지만 모든 고등한 종교들의 창시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후자의 성격이다. 이들은 오히려 기존의 절대적 확실성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한 자들이다. 종교란 그것을 가능케 한 원사건에서 비롯한다.

붓다는 당대의 인도 힌두이즘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 것이었고, 예수 역시 당대의 유대이즘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후자에서 보는 종교의 본질은 절대적 확실성을 신봉하거나 숭배하는 데에 있지 않다. 위대한 종교적 통찰에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 않는 혁신적인 성격이 함께 배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진정한 종교의 본질을 우리는 달리 봐야 한다. 종교의 본질은 그 어떤 진리를 확신하여 이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존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최선으로 추구하되 진리라고 여겨지는 기존의 것을 수정하는 것에 오히려 그 진정한 참맛이 있다고 여겨진다. 결국 이렇게 볼 때 종교로서의 본질도 진리에 대한 확신과 보존에 있지 않으며, 기존의 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린 개방성'에서 확보되는 그 자기 성찰>에 종교로서의 본질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그 어떤 진리를 확신하고 보존한다는 점에선 <신은 없다>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서 이를 맹목적으로 신봉한다면 그러한 무신론 역시 일종의 <숭배성 종교>라고 여겨진다. 종교도 일종의 자기 확신에 근거한다지만 그러한 확신조차도 자기오류가능성에선 열어놓고 있는 자기 개방성에도 기반해있을 때 보다 건강한 종교관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겠다.

현재로서의 나는 유신론자이지만, 아무런 근거 없이 <유신론> 입장을 따르고 있는 게 아니다. 만일 무신론이 보다 더 큰 설명력을 지닌다고 할 경우 당연히 나로서도 무신론을 따르겠지만, 서로 비교해서 고찰해 볼 경우 더 큰 설명력의 지점들을 발견했기에 나 자신은 여전히 새로운 유신론자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뿐이다. 가장 큰 관건은 오류와 비극 앞에서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선 유신론 뿐만 아니라 무신론 역시 일종의 숭배성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마저도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가장 으뜸의 가르침이라는 종교는 결코 폐쇄적이거나 자족적이지 않다고 본다. 물론 역사적으로 그러한 종교들도 있었긴 하지만 그러한 가치와 본질을 우리는 이제 달리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가장 으뜸의 가르침이라는 종교는 <열린 개방성>에 더 큰 본질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존재 자체가 역동적인 과정상에 놓여 있기에, 종교 역시 형성과정에 놓여 있을 따름이다. 내가 알기에 종교에 대한 밈 역시 우주적이고도 창발적인 진화 과정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진화의 도약을 만들어주는 지점들을 우리는 고등 종교의 창시 사건들에서 볼 수 있다. 종교밈은 종교를 창시한 원사건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복제를 의도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복제는 실상 우리의 예수사건을 온전히 자기 복제하지 못하고 있는 종교에 머물러 왔었었다. 우리가 모방을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제대로 된 기독교인이라면, 원사건이라는 예수사건이야말로 우리가 온당하게 복제해야 할 종교로서의 밈을 가질 때인 것이다.
 
이천 년 동안 기독교가 충실한 자기 복제를 해오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상 기독교는 그동안 <힘의 종교>를 자기 복제해 온 것뿐이다. 예수는 힘의 종교가 아닌 사랑의 종교며 설득의 종교이자 혁신의 종교를 꿈꾼 사람이다. 예수에게서의 종교란 곧 하나님나라다.
 
종교가 완결이 아닌 형성 과정에 있다는 얘기는
종교 역시 진화 과정에 있다는 얘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는 진화한다. 바야흐로 21세기 종교론에서는
종교에 대한 본질마저도 새롭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
 
 
(* 다시 말씀드리지만 위의 글은 본인이 생각하는 종교관일 따름이기에 혹시라도
    구체적이고도 정합적인 근거에 따른 반론이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하는 바이다.)
 
 
Joe (09-04-26 09:46)
 
정실장님;
종교가 진리의 추구라고 한다면 진리는 각자가 깨닫고 확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개 개인의 의지가 작용합니다. 
물론 진리는 반박되는 오류가 없어야 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의지가 <수호> 를 요구하고 우리를 <교만>으로 미혹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 종교의 필연적인 코스의 cycle;
인간 한계성의 자각->종교->자기확신->오류/자가당착/교만->개혁/변화/복제->전통/우상화->개혁/변화/복제->진리로 근접

논리성과 합리성이 정합된 글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글을 쓰시는 역량이 선천적인 talent 인지 후천적인 노력인지 궁금해집니다. 
억지를 내기 전에는 반론을 내기가 아주 어렵게 쓰셨습니다.  읽으면서 아주 가슴이 후련한 내용의 글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정강길 (09-04-26 13:42)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로선 합리성에 대한 것들은 아마도
매우 치열한 합리주의를 보이고 있는 백두 철학에서 배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백두는 이미 그 자신의 Religion in the Making 책에서
종교는 언제나 형성과정 중에 있을 뿐이라고 얘기한 바도 있구요.

그렇기에 Joe님이 말씀하신 종교 형성 코스의 사이클은 잘 정리해주신 거라 생각됩니다.
"인간 한계성의 자각->종교->자기확신->오류/자가당착/교만->개혁/변화/복제->전통/우상화->개혁/변화/복제->진리로 근접"

이때 세계 안의 진보는 '오류, 비극->새로운 개혁/변혁'으로 나아갈 때 일어나는 것일테구요.
저는 세계 안의 예수사건이나 붓다의 가르침 같은 고등 종교를 발현케 한 원사건들이야말로
세계 안의 분명한 진보를 목격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핵심도 기존 전통에 대한 유지와 보존이라기보다는
끊임없는 수정 또는 변혁에 해당하는 <새로운 체계화>에 있음을 느끼구요.

"지혜란 질서의 한 가운데서 신선한 변화를 의도하는 것이며
 또한 변화의 한 가운데서 안정어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A. N. Whitehead

sydney (09-05-03 02:07)
 
바이러스는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생명체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세포의 도움 없이는 복제가 불가능하고 또한 스스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무생물로 분류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도킨스는 종교를 바이러스라고 부름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성질을 돋구었지요.

"이천 년 동안 기독교가 충실한 자기 복제를 해오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상 기독교는 그동안 <힘의 종교>를 자기 복제해 온 것뿐이다."
라고 했는데 원래 복제란 '자기복제'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즉 진화가 안되고 같은 것이 반복되는?
진화와 복제의 관련성을 잘 몰라서 하는 질문입니다.

    
정강길 (09-05-04 04:36)
 
바이러스 이전에 애초 유전자의 특성이 <자기 복제>라는 것이지요.
도킨스는 모든 생명체가 결국은 그러한 유전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기계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물론 바이러스도 그런 점에서 보면 자기 복제 성격을 가지고 있구요.

그리고 종교의 차원을 얘기했을 때는 생물학적 유전자를 넘어서 밈(meme)의 차원을 얘기한 것인데
이것은 이전의 생물학적 유전자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차원의 유전자 성격을 띱니다.
도킨스는 이를 다른 표현으로 <문화 유전자>라고도 말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킨스가 보기에 종교를 바이러스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인간의 무지를 먹고 살며 기생한다는 것이죠.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도킨스는 밈을 얘기할 때 이전의 유전자 기계론을 넘어서는
또다른 진화의 메카니즘을 제시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점은 제 생각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읽은 진화론 저서들을 보니 도킨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장대익 같은 생물학자도 이미 그렇게 보고 있더군요.
물론 저역시 동의하는 바구요. 도킨스의 유전자와 밈은 결국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서 있는 개념이라 사료됩니다.
우리는 밈을 통해서 인간들이 이제는 문화의 진화 혹은 정신의 진화로 돌입한 것임을 생각해볼 수 있지요.

인봉 (09-05-03 12:50)
 
종교가, 진리가 진화한데서야 종교고 진리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방편이 진화하는지는 몰라도 그때그때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반듯이 진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본체가 진화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것을 처음부터 군데군데 말이 안되는 부분이 있으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끼리의 논의는 거의 불필요한 논의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그것이 신학을 통해서든, 어느 종교가 되었든지, 신앙이든지 각자 그 분량만큼 받고 그 믿는 바대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 분량을 변화시켜주는 만남도 우연일 수 없고 필연인데 그런 필연도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다고 했어요. 그 마음이 꼴리는대로 가는 것이지요.*

    
정강길 (09-05-04 04:38)
 
불변하는 본체를 여전히 상정하는 것이라면 결국 또 이원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는지..
글구 뇌가 없는 그런 마음만 아니라면야 마음 꼴리는대로 가도 좋을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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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464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460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705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2058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491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532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584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636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504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474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482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567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724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529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508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536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741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870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843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389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445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024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443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591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511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807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810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654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742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966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791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969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068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923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811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729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961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806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781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748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05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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