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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복음주의와 진보 진영에 만연한 성서 우회주의자들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6-05 12:58 조회(167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54 





복음주의와 진보 진영에 만연한 성서 우회주의자들
 
성경의 역사적 사실 여부를 따져묻는 것과 신학적 의미 구현 모두 중요하다
 

성서비평에 대한 한국의 신학대학교 교육과정의 현실
 
나는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인에 해당한다. 유아세례는 예장 합동측에서 그리고 거의 스무 살 까지는 예장 통합측 교단소속 교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지녔었다. 그때까지도 나 자신은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학대에 들어가면서 이러한 나의 성서관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는 소위 성서의 역사비평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는 크게 양분되어 있는 실정이다. 보수적인 신학대에서는 성서비평학을 <자유주의 신학>의 산물로 여기기 때문에 당연히 배움의 과정에서 배제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종교다원주의 문제나 현대의 다양한 진보 신학들에 대해서도 아주 표피적으로 언급되거나 거의 이단시하고 있는 터라 올곧게 섭렵되고 있진 않는 현실이다. 어쨌든 이들은 <자유주의 신학> 혹은 <신신학>으로 낙인을 찍고는 불온한 것으로 여긴다. 마치 딱지 붙이듯 주홍글씨를 새겨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몇몇 신학대학들(예를 들면, 한신대, 감신대, 장신대, 감신대 같은 곳들)은 성서비평학을 커리큘럼에 넣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약간의 편차들은 있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교단 소속의 신학대와 보다 진보적인 교단에 속하는 신학대의 교육과정들은 사뭇 그 분위기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 현장에서 성서비평학을 가르치는 곳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목회현장에서 일반 성도들에게 성서비평학을 가르칠 경우 그다지 생산적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성서에 기록된 내용들에 대해 창조설화, 홍수설화, 동정녀 탄생 설화 라는 식으로 일반 신자들에게 얘기할 경우, 행여 평신도들의 머리가 커질까봐서인진 몰라도 그다지 유익하다고 보질 않기에 신학현장과 목회현장의 이분화 현상만큼은 진보적 교단일수록 매우 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반대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죄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평신도들을 훈육하고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모을 수 있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각해보라. 일반 교회 신자들이 머리가 커질수록 그 담임 목사는 그에 비례하여 더욱 피곤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름대로 짐작될만하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진보적인 교회를 제외한다면, 거의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통틀어서 대부분은 보수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재생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참으로 심각하고도 통탄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학적 의미가 중요하다?

나 자신이 이러한 얘길 하는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신학대에 들어가서 성서를 두고 토론할 때 곧잘 듣는 표현들이 있다. 이것은 구약성서개론과 신약성서개론 시간뿐만 아니라 교수들에게서도 그렇고 선배들도 그렇고 동료들도 그렇고 물리도록 듣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이들은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곧잘 표현한다.
 
“성서는 기본적으로 과학서나 역사서가 아니다. 따라서 성서의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신학적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라는 표현이다. 이 같은 식의 표현은 소위 오늘날까지도 진보 기독교 진영 혹은 진보와 접촉하는 복음주의자들한테서도 듣곤 한다(이에 대한 근거들은 심지어 최근의 김규항씨와 구교형 목사와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30 참조). 결국은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면면들을 <성서우회주의자들>의 모습이라고 본다(여기서 내가 말하는 국내 복음주의 진영이란 보수와 진보 간의 모호한 중간 진영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선 http://freeview.org/bbs/tb.php/d003/1 참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저 명제에 대해 반론을 취하고자 하는가? 아니다. 그러한 명제 자체는 기본적으로 동의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명제만으로 충분치 않는 오늘날 기독교계의 현실이 있기 때문에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이란 곧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읽을 때 <사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를 혼동하고 있는 현실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솔직하지 못한 성서 우회주의자들
- 애매모호한 처리로 인해 성서읽기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오늘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거의가 성서에 기록된 내용들이 역사적 사실로 보기 때문에 그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에 매우 민감할 정도로 집착되어 있는 실정이다. 축자영감설 혹은 성서무오설이 지니고 있는 핵심적 의미는 성서에 기록된 내용들이 모두 역사적 사실어이야 한다고 보는 데에 있다.

그런데 성서 우회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간과한 채로 역사적 사실 여부의 문제는 두루뭉실하게 남겨둔 채 신학적 의미만 강조할 경우 내가 보기엔 온전한 신학적 진술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성서에 조금만이라도 눈을 뜬 사람이라면 축자영감설이나 성서무오설이 지닌 심각한 폐해를 알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온전하고도 정직한 대면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그 폐해는 지속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 같은 폐해들에는 결국 쓰잘 데 없는 논쟁이나 일으키는 창조론자들이나 양산해내고 있으며, 온갖 성서 문자주의자들을 교계 안에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성서를 두고 논할 때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치 않다고 곧잘 말하는 것은 기독교적 현실의 문제를 간과한 채로 넘어가는 것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정직하게 얘기하고자 한다면, 역사적 사실 여부의 문제도 정확히 표현되어야 하며, 신학적 의미 역시 둘 다 말해져야 한다. 하지만 진보적 성서관을 접했다는 사람들조차도 전자에 대해선 여전히 두루뭉실하게 나가고 있는 실정이기에 결국 이들이 그 같은 문제에 대해 두루뭉실하게 넘어갈 때 결과적으로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의 문제 역시 두루뭉실하게 남겨져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은 의도하지 않은 것일테지만 전체 맥락에서 보면 이들은 여전히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의 폐해에 대한 암묵적 동조에 서 있는 것밖에 안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말해서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하는 존 쉘비 스퐁의 저작들이 지금 이 시대에선 훨씬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보는 실정이다. 최근에 소개된 <만들어진 예수 참사람 예수>(한국기독교연구소)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주에 작용하는 법칙들을 파괴하려는 가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은 순전히 환상일 뿐이다. 즉, 하늘 위에 있는 하나님이 성령을 내려 붓기 위해 하늘이 열리는 일은 없으며, 축하객들의 갈증을 덜어 주기 위해 물은 포도주로 변하지 않으며, 귀신을 내쫓으므로 문둥병이 낫지는 않으며, 혀에 붙은 마귀를 쫓는다고 벙어리가 고쳐지지 않고, 죽은 자가 장사한 지 4일 만에(나사로의 경우), 혹은 3일 만에(예수의 경우) 육신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지 않으며, 끝으로 제트 기관 없이 이 세상 밖으로 승천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만일 내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이런 전근대적인 형태의 표현이 아직도 타당하다고 위선을 떨어야 한다면, 나로서는 솔직성이 마침내 신앙을 압도할 것이다. 나는 최소한 전통적 의미에서는 이미 크리스천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도 나는 계속 헌신적인 크리스천임을 고백한다. 나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궁극적 실재에게서 발견한 진리에 대해 여전히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나는 여전히 예수에게서 하나님과 인간 모두의 완전성을 보고 있다. 이것이 내가 예배하는 데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 『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Jesus for the Non-Religious 中에서

 
이 얼마나 솔직한 얘기인가. 내가 볼 때 성서를 대하는 이러한 솔직한 표현들이 훨씬 더 생산적인 논의로 이끌 것이라고 여겨진다. 성서를 읽을 때 <사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를 여전히 혼동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이를 간과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면하는 성서읽기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성서 우회주의자들은 성서읽기에 대한 정직한 대면을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적 사실 여부 문제와 신학적 의미 모두 정직하게 말하자

성서비평에 대해 조금 배웠다는 분들도 결국은 성서의 역사적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두루뭉실하게 넘어간 채로 신학적 의미만 구현하고 있는 실정이라 진보 진영 가운데도 성서 우회주의자들이 매우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다소 진보에 걸쳐 있는 복음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왜 아닌 건 아니라고 말 못하는가?

한국교회 현장이 워낙 보수적이라서 자신의 밥줄이 걱정되어서인가? 혹은 비난받기가 두려워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미처 깨닫지 못해서인가? 이들 성서 우회주의자들은 축자영감설이나 성서문자주의의 폐해에 대해선 도대체 어떤 투쟁들을 하고 있단 것인가? 그러고도 교회 개혁 운동인가?

진보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기독교 자체의 문제를 건드리는 데 있어서는 이를 외면하거나 혹은 다소 우회적인 방법을 쓰곤 하는데, 더 이상은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기독교가가 자족적인 사교집단으로 고립시켜서도 안되며 건강한 일반 사회와도 소통될 수 있는 그러한 상식적 기독교로 새롭게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천 년 동안 지탱해왔던 기독교라는 제국의 폐해는 매우 뿌리 깊고도 심각한 문제에 속한다. 우리는 우리의 경전인 성서읽기에서부터 정직한 성서읽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일반 신자들에게도 창세기 내용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며, 노아 홍수와 여리고성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욥기나 요나서가 고대 이스라엘의 문학서에 속하며,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나 물 위를 걸었다거나 하는 초자연적인 내용들은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것이 전혀 아니라고 분명하게 언급해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성서를 읽을 때 역사적 사실 여부 문제에 집착되어 있는 그 집착 자체를 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서는 성서의 내용들 안에 신화와 전설 및 문학적 창작이 담겨 있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읽기가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점까지도 충분히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성서의 내용이 의도하고 있는 신학적 함축이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특히 성서신학자들일수록) 정직하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참고로 기존에 나와 있는 성경공부 교재들 중에 그나마 성서비평의 성과들이 반영되어 있는 추천하는 성서신학적 성경공부 교재가 있다면, 김경호 목사의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라는 시리즈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80주 성서학당을 진행하면서 쓴 성서교재로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새롭게 성서를 읽을 수 있다. 물론 본인 역시 이 성경공부 교재로 공부한 바 있다. 그밖에 참고할 서적들에 대해선 http://freeview.org/bbs/tb.php/b001/27 참조).

어쨌든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보다 솔직하게 역사적 사실 여부 문제와 신학적 의미 모두 분명하게 짚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성서는 그저 “믿쑵니다”라고 맹목적으로 믿기 위한 경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건강한 삶과 생명의 증진을 얻기 위한 깨달음의 기독교 경전이다. 오늘날의 성서 우회주의자들은 바로 그러한 성서해방의 외침에 반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며, 적어도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낡은 교회 체제를 지탱하는 데에 은연중에라도 한 몫해주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낡은 식의 성서읽기가 오늘날 전체 기독교 개혁의 큰 그림에서 볼 때 얼마나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를 온전히 인지한다면, 이들 성서 우회주의자들 역시 실상은 교회 개혁의 흐름에도 거스르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성서를 대할 때 보다 구체적이고도 솔직한 성서읽기의 자세는 모든 새로운 변혁을 건강한 출발점이다. 신에게 솔직히! 성서에 대해 솔직히!

 
 
"한국 개신교, 무엇인 문제인가?" - 정용섭 목사와 박득훈 목사 강연에 대한 비평
 
 
감초 (09-06-06 16:23)
 
소도시에서 기장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평소 정강길님 컬럼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저도 성서우회주의자가 되어버린것 같군요^^....님의 기독교관, 성서관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교회 안에서 솔직히 이건 그렇다, 저건 안그렇다. 뭐 요런 말들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분들의 신앙관에 상처를 줄 수 있거나, 교회공동체안에서 그렇게 한다는게 유익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강합니다.....쩝

정강길 (09-06-06 20:09)
 
안녕하세요. 감초님..
말씀하신대로 일대일 관계나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방편적으로 그러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감초님의 말씀 역시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당장에는 상처를 받고 그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그러한 사람의 신앙이 정말로 퇴행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윗글에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기독교 안에 보다 영향력을 끼치는 범주가 넓고 보다 더 큰 책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한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위치에 있는 리더들이라면 성서에 대해 더욱 분명하고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폐해는 여전히 심각해지고 더욱 만연해질테니까요. 성서에 대해 모호하게 넘어갈 경우 성서가 사실이냐 아니냐에 집착되어 있는 그 집착 자체는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넘어서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기독교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위치에 있기에 궁극적으로는 어느 것이 더 유익할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초 (09-06-08 11:58)
 
제 생각은 약간 반대인데요. 담임목사의 성서관 신앙관이 성도들의 성서관 신앙관과는 다르게 진보적일찌라도, 어찌보면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게 그 위치에서는 전체를 조화시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 바람직할 것 같고, 그래도 저같은 일개(^^) 평신도가 조금씩 조금씩 눈치보며 각개전투(?)를 펼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참 어려운 일이네요. 정강길님 말씀도 이해는 합니다.....계속 생각해봐야죠.뭐.

    
정강길 (09-06-08 12:55)
 
이미 담임목사가 진보적으로 가르친다고 할 경우 성도들도 그러한 성향이 더욱 많지 않을까요?
지도자의 위치가 전체의 조화를 위해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야 하는 입장에 있을 경우
우리가 모범적으로 따라야 할 지도자나 신학자는 그다지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전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꼭 교회공동체의 범주에 한정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전체 일생을 놓고 보면 교회 밖에서 오히려 진정한 복음을 터득하는 기회와 계기 또한 있잖아요.
물론 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윗글의 취지는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성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성도들 가운데는 평소에 성서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도
두리뭉실한 분위기로 인해 그런 의문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조차 봉쇄되기도 하잖아요.
오늘날에는 교회가 성서에 대한 솔직한 의문들을 봉쇄하는 경우들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저 사교모임으로 여기며 마지못해 나가는 경우들도 참 많잖아요.

Joe (09-06-12 06:10)
 
정직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미덕입니다.
우선 신앙인은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정직 하여야 하고 그리고 자신이 믿는 진리/하나님에게 정직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진리에 대하여 솔직하고 정직한 것이 믿음 있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두리뭉실한 모습이 믿음 있는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두리뭉실한 모습은 용기도 신념도 없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입니다.
더구나 지도자의 모습은 더욱 아닙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인 율법을 올무로 사용 하였다면 오늘날 교회는 사랑의 멧세지인 성경을 올무로 사용하는것 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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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392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450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033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445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596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513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811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815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658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747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973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795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974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075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928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814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745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965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810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788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751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05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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