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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몸학의 <몸얼>의 발달 단계와 다석 유영모의 몸나/제나/얼나 개념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7-01 01:50 조회(107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68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몸얼>이란, 관계들의 복합체인 몸(Mom)에서 가장 중심적인 중추부 역할을 맡고 있는 <몸센터>Mom-Center를 의미한다. 참고로 처음에는 <진아>(眞我)라고 하였다가 진아는 웬지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자아' 개념을 상정하는 것 같아서 그냥 우리말로 <몸얼>이라고 하였다. <얼>은 '정신의 줏대'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따라서 몸얼은 '몸 전체를 관장하려는 정신적 줏대'를 의미하는 우리말 표현이라고 하겠다.
 
<몸얼>은 몸의 센터 역할을 맡고 있지만, 이것은 몸의 특정한 어느 한 부분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 몸 전체가 진화과정에 놓여 있듯이 몸얼 역시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몸 안의 어느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서 몸을 관장하는 주체라고 확연히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몸얼은 매순간 유동하는 과정의 몸 전체에 스며 있다. 물론 몸에 대한 중추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면에서 적어도 그 핵심 센터가 머릿골인 <뇌>brain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뇌를 아무리 해부해서 뒤져본다고 한들 몸의 주체에 해당하는 <몸얼> 자체를 구할 수는 없다.
 
게다가 뇌 또한 전체 우주와의 유기적인 관계 흐름 속에 있을 때만이 <살아 있는 뇌>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는 터라 우리는 몸에서 <뇌>를 따로 떼어내서 이것이 곧 <몸얼>에 해당한다고도 말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뇌도 결국은 몸 전체 안에서 유기적인 관계 흐름에 놓여 있을 때만이 살아 있을 수 있으며 몸을 통제하는 <제어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몸의 관장하는 주체라고 볼 수 있는 <몸얼> 자체는 텅 비어 있는 주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몸의 모든 부분들이 매순간마다 유동하는 과정 속에 놓여 있기에 사실상 몸의 어느 부분을 몸얼이라고 가리킬 만한 것이 딱히 없다는 얘기다. 아마도 그래서 석가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란 없다고 본 <무아>無我를 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차원은 <없음의 무(無)>가 아닌 <충만의 무(無)>에 가깝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몸의 중추부를 맡고 있는 몸얼은 어차피 몸 전체를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얼은 몸 전체이면서 동시에 그 핵심적 기능이 주로 <몸의 뇌>를 통해 드러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몸얼은 <살아 있는 인격>living perso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넋> 혹은 <영혼>soul이라고도 불릴 수 있다. 물론 불사적 존재로서의 영혼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동하는 관계적 현실 속에서 가능할 수 있는 영혼 개념이다. 이처럼 몸학에서 보는 몸얼은 전체 우주와 맺는 온갖 관계들을 <수렴>하고서 <발산>하는, 우리 몸의 궁극적이고도 핵심적인 몸센터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본인의 몸학에서 보는 몸얼 개념과 다석 유영모의 몸나/제나/얼나 사상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다석 유영모가 말하는 몸나/제나 /얼나 개념은 다음과 같다.
 
"나서 죽는 것이 몸나이다. 몸나가 죽어서 사는 것이 얼나이다. 얼나는
제나(自我)가 죽고서 사는 삶이다. 말하자면 형이하(形而下) 생명으로 죽고
형이상(形而上)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몸나로 죽을때 얼나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몸나의 인생을 단단히 결산을 하고 다시 얼나의 새 삶을 시작한다.
몸삶을 끝내고 얼삶을 시작한 얼삶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얼나는 영원한 생명이다."(1956)

내가 보기에 이러한 다석 유영모의 <몸나/제나/얼나> 사상은 몸얼의 발달 과정과 관련있다고 본다.
처음에 다석의 이러한 생각을 접했을 때는 인간의 신체를 터부시하는 이원론적 개념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다석에겐 얼마 간의 육체를 터부시하는 금욕적 마인드의 색조가 다소 없잖아 있다고 보지만 그래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석이 말한 <몸나-제나-얼나>는 다석이 제시하고 있는 자아 발달 단계라고 여겨졌다.
 
자아는 다석이 말한 제나와 흡사한데 그러한 제나가 죽어야 얼나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때 다석이 말하는 참자아는 얼나에 해당한다. 즉, 얼나를 추구하려면
앞서의 몸나 제나를 벗어나야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할 경우 다석의 그러한 자아발달론은 결국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몸얼의 포월적 발달 단계> 과정과도 비교될 수 있다고 본다.
 
 
본인의 몸학에서 보는 몸얼의 발달 단계에서 볼 때 대체로 몸나와 제나의 차원은 
다소 거칠게 말해서 유아적 차원과 일반적 차원 및 초기 합리적 지성의 차원을
그리고 궁극적인 얼나는 합리적 지성과 이를 넘어서는 신비적 차원에 놓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대략적인 거친 도식으로 비교해 본 것이지만 어쨌든 내가 여기서 더 강조하고 싶은 바는
적어도 다석 유영모의 <몸나-제나-얼나> 개념은 다석 나름대로의 자아 발달상의 개념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몸얼은 여러 수준의 발달 과정 혹은 퇴행 과정에 놓여 있다고 했을 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바로 GIO합일이다. 즉, 신(God)과 나(I)와 타자(Others)가
모두 합일되는 차원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차원의 몸을 <한몸>Han-Mom이라고 부른다.
결국 몸얼은 신과 나와 타자가 합일되는 단계로서의 한몸을 지향한다. 아마도
다석 유영모가 말하는 얼나 혹은 참나는 궁극적으로는 한몸에서의 나를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자신의 몸얼은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 이때 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비록 현재 자신의 몸얼이 낮은 단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발달 과정에 있느냐
퇴행 과정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이다. 내가 보는 몸얼은 어디까지나 과정상의 개념이지
결코 고정된 실체로서의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은 매순간 그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이것이 발달 과정인지 퇴행 과정인지를 자각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차원이라고 하겠다.
 
나의 몸얼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내리고 있으며, 그것은 어느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늘오늘 (09-07-01 03:20)
 
‘발달하는 자아’는 성장의 경험에 비추어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리고 죽음, 특히 ‘신체에 앞서 정신이 죽는 것으로 보이는 <치매>’ 현상은
명백한 ‘퇴행’을 드러냅니다.
‘발달’에서는 우리의 의지가 작용할 수 있지만,
‘퇴행’에서는 우리의 의지가 무능하기만 하군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컴퓨터를 떠올립니다.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활동력이 증가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폐기되어 사라집니다.

창발적인 컴퓨터로서의 인간을, 폐품 더미에 버려진 시점에서 생각해볼 때,
그간의 ‘발달과 퇴행’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를 묻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몸얼, 관계의 그물망이 빚어낸 또하나의 무지개.
들판에 제비꽃 하나 잠시 피었다 사라졌고,, 그것으로 충분한 거겠죠?

정강길 (09-07-01 04:21)
 
늘오늘님 감사합니다.
치매를 말씀하셨는데 치매 같은 병은 그러한 증상으로 발현되기까지 이미 퇴행이 지속된 상태에서의 증상이어서
결국은 그렇게되기까지 자각하지 못한 터라 자신의 의지 수준을 넘어서버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병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의식 상에선 갑자기 찾아온다고 여길 수 있지만요.
대체로는 알게 모르게 저질러지는 무의식적 생활 습관들의 축적들이 결국은 질병을 불러오잖아요.
그것은 분명한 퇴행의 전조들입니다.

그리고 요즘 치매도 초기 정도에서는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병이란 것도 어느 순간부터 퇴행이 지속될 때 축적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말씀하신 몸얼의 발달과 퇴행의 의미는 결국 내가 어디에 서 있든
최선을 다하느냐 아니냐 라는 그러한 삶 과정 자체에 있다고 봅니다.
특히 발달과 퇴행을 가르는 전조는 매순간 살아가면서 가급적이면
<알아차림>의 훈련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결정적 분수령이라고 생각됩니다.
뭐 이런 얘긴 저 말고도 이미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바잖아요.

죽음의 경우 신체는 썩어 없어지더라도 그 정신은 살아서 남아있는 자들에게 전이된답니다.
그래서 우리의 웰빙(Well-Being)은 웰다잉(Well-Dying) 역시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잘 죽어야 잘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웰다잉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현실 세계의 웰빙을 추구한 죽음이었으니까요. 폐품인 줄 알았는데 부활했다고나 할까? ㅋ

어느 한 생명의 삶은 이전 세대의 삶을 거둬들여서 다음 세대에 자신의 생명의 삶을 내어주는 데에
보다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신의 몸삶이 궁극적으로 GIO만족으로 향해 있는 흐름에 놓여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발달 과정에 있는 것이며, 의미 있는 몸삶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능하면 이번 몸학 강좌 꼭 들어보시길 권유하고 싶습니다.
더없는 기회일뿐더러 게다가 늘오늘님은 세기연 회원이시니..ㅎㅎ

암튼 늘오늘님의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우도 (09-07-03 08:35)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석이 말하는 무는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빔(空,虛)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대세계(太極)에서나 존재하는 충만이라 것도 없는 빔(無極)이 아닐런지요
무극은 합일보다는 물질의 본향임으로 고향을 알아채라는 것이 다석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다석은 빔을 하느님이라 부르고 우리는 빔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나(제나+육)는 거짓나이기에 빔으로부터 온, 영원 전부터 있던 참나를 찾으라는 것인데
참나가 바로 하느님이고
예수의 말대로 아브라함이전부터 있던 참나를 찾으라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참나를 깨달은 자는 거짓나의 삶이 두렵기 때문에
참나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다석의 이러한 생각이 옳다고 느끼기에
정선생의 말씀대로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점수(점진적 수행)보다는 돈오(순간의 깨달음)가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짧은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정강길 (09-07-03 08:55)
 
그렇지요. 저도 돈오가 먼저고 점수가 그 다음인 돈오점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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