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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오류와 폐해에도 불구하고 세기연이 계속 <기독교>를 붙잡는 이유는?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7-04 03:37 조회(128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74 




 
이곳 세기연을 응원해주시는 분께서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심장한 질문을 메일로 해주셔서 이렇게 나눔을 갖는 바입니다.
 
 
질문 ;
 
언제 논의될지는 모르지만, 세기연 활동에 참여하시는 분들 중 저를 포함한
몇몇 분들의 또 하나의 논의 주제가 될 수 있겠다 싶어 건의를 드리면,
'Why 기독교?'에 대한 논의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세기연이 많은 허구와 오류를지적하고 있는 기독교인데
왜 그럼에도 우리가 그걸 붙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말이죠. 
 
이러한 문제제기가 다른 Anti 적 입장에서의 비난과는 다르다고 생각할 줄 믿습니다.
인류 역사를 볼 때, 그리고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특히 학문적인 분야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자그마한 오류나 허구가 발견되면 가차없이 버리는 게 새로운 데서 출발하는 게 정답인 경우가 많죠.
 
중간에 누군가 불순한 의도로 많은 왜곡을 시켰다는게 확인되더라도,
그 원초적인 실체가
이해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그 실체의 진정성 및 핵심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되어
아예 다 허물고 새롭게 출발하는 게 더 훌륭한 해결방법일 겁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 방법이 옳고요.(밑 빠진 독을 수리해보려는 노력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독 어딘가에 또 다른 구멍이
있을 수 있는거죠...다시 말해, 그 독 자체는 수리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독이 아닐 수 있어요...)
 
말 많은 기독교가 너무나 많은 왜곡과 허구로 점철되어
최초의 원 상태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 수 있는 상태에서,
일반적으로 왜 다른 것들은 다 허물고 새롭게 출발하는게 맞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붙들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서 만큼은 왜 예외가 허용되어야 하는지,,,
 
세기연의 새로운 대안 기독교 강좌 공지를 보고 불현듯 생각이 나서 불쑥 질문을 던져봅니다.
 
 
답변 ;
 
저로선 평소에 이에 대해 얘기를 하고싶어 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됩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아시다시피 질문의 요지를 말씀드린다면
오류와 비극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기독교냐?는 것입니다.
 
일단 제가 보는 기독교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예수와 성서에 있습니다.
예수와 성서를 삶의 우선적인 교본으로 삼고 있는 한 그것은 기독교이지
다른 종교가 아니라고 봅니다. 불교는 석가의 가르침을, 마르크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그들 삶의 우선적인 교본으로 삼겠지요.

따라서 세기연이 적어도 먼저는
예수와 성서를 삶의 우선적인 교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히 기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기연은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넣어서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합니다.
이때 그것이 왜 하필 <기독교인가?>라고 질문하셨을 때
그것에 대한 답변은 크게 네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세기연이 그래도 <기독교>를 표방하는 4 가지 이유

 
1.
 
첫 번째, 예수와 기존 기독교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는 안티그리스도를 표방한 니체까지도 인정하는 사실이죠..)
기존 기독교는 버릴 수 있다지만 기독교 자체를 아예 몽땅 포기할 경우에는
자칫 예수까지 포기하는 것인데 그럴 경우
목욕물이 더럽다고 버릴 순 있어도 아기까지 버릴 필요는 못느껴서입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의 예수사건은 다른 고등종교들의 건강한 차원들과도 얼마든지
함께 소통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예수사건만의 독특한 매력 역시 겸비하고 있다고 봅니다.

바로 인간 고통의 문제를 해결함에 예수의 삶은 불교의 석가에서도 찾기 힘든,
삶의 밑바닥에서 매우 다이나믹한 생명해방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를 이롭게 하는 적극적인 희생으로서의 비폭력적 투쟁과 사랑의 정점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여기서 일일이 이에 대한 신학적 설명들을 다 드릴 순 없겠고
혹시 이러한 점들에 대해선 아직까지 책을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은
신약학자 월터 윙크의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이라는 책을 꼭 한 번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http://freeview.org/bbs/tb.php/f003/3 책 참조 )

2.
 
두 번째는 그럼으로써 기존 기독교가 아닌 새로운 기독교는 이천 년 역사상 단 한 번도
실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독교라서 적어도 한 번이라도 제대로서 해보고서나
아예 장사를 접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 아닐는지요..^^;; 아직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이르다는 생각인 겁니다.
 
※ 기초전제 - 관념적 이원론에서 <현실적 관계론>으로

①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에서 <깨달음의 기독교>로
② 문자적 성서해석에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③ 초월적 유신론에서 <포월적 유신론>으로

④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⑤ 이웃종교에 배타적인 기독교에서 <함께 가는 기독교>로
⑥ 가부장적 기독교에서 <상호평등의 녹색 기독교>로

⑦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⑧ 서구식 기독교 문화가 아닌 <우리식 기독교 문화>로
⑨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공동체적 교회>로

⑩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⑪ 과학과 충돌하는 종교에서 <과학과 소통하는 상보적인 종교>로
⑫ 내세 지향적 천국이 아닌 <지금 여기서부터 확장해나가는 하나님나라>로


세기연의 새로운 기독교가 표방하는 12가지 패러다임 전환 도표를 보시면 아실테지만
우리가 언제 이러한 기독교를 맞이해본 적이라도 있었는지요?
신God 대한 개념을 떠올릴 때도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전지전능 완전무결 절대자로서의 하나님만 떠올렸잖아요.
그렇듯이 예수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구원에 대한 이해 등등
모든 것들이 뒤바뀌는 새로운 전환으로서의 기독교는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죠.

3.
 
세 번째는 기존 기독교 자체를 아예 포기할 경우
기존 기독교에 대해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까지도 나몰라라 하는 것이 되기에
그들의 영혼에 대해서도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의 길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 기독교에 대해 사로잡혀 있는 그러한 사람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나의 가족이며 나의 형제들 가운데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까지도 자기들의 기독교 신앙을 전수해 줄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기존 기독교 세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끈질기게 남아 있으려 할 것입니다.

기존의 낡은 기독교를 좀더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로 만들려는 운동은
우리 사회를 좀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독교라는 영역 자체를 아예 떠나서 방치할 경우
가깝게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 및 이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잘못된 기독교가 계속 강화되거나 확장되는 것에 대한 무책임과 방관자가 될 수 있을뿐더러
결국엔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성까지도 무책임하게 방치해두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랍니다.

4.
 
마지막으로 네 번째 이유로는 이것은 제 자신에게만 해당될 수도 있는 사항인데
저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라는 문화가 제겐 더 익숙한 점이 있기에
지금까지의 성장 배경들을 몽땅 다 무시하고 기독교를 완전히 떠나서
새로운 다른 출발을 하기에는 그것이 오히려 좀더 많이 더디고 더 힘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자라면서 기존 기독교의 문화들을 습득해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기존 기독교에 대한 정보와 그것이 돌아가는 생리에 대해
보수적인 기독교에 있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좀더 잘 알 수 있다는 점이 있으며
이것은 적어도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운동을 지향함에 있어
더 큰 장점으로 자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기존 기독교의 오류와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독교를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네 가지 이유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저의 입장은 제안적인 의미이지
결코 강요적인 의미는 아니랍니다. 즉, 기독교를 완전히 떠나는 것이 오히려
좀더 자신의 몸에 더 맞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으며,
저는 그러한 분들에 대해 하등 반대하지 않는답니다. 반대할 이유도 없구요.

기독교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우리 사회에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평화와 화해에 기여할 수 있다면 저로서도 참 좋은 것이라 봅니다.
그것은 손가락이 아닌 달의 차원에서 합류하는 것이지요.
 
덧붙임 - 기독교냐 아니냐 보다 더 중요한 관건은 제대로 된 종교냐 아니냐의 문제다
 
다만, 기독교에 있다가 기독교를 떠난 몇몇 분들 가운데(특히 안티 진영)서는
예수와 성서를 버리지 않는 것 자체를 폄하하는 분들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선 단호히 반대하는 바입니다. (물론 님은 안티는 아니기에 해당되지 않는 얘기지만요..)

이들의 시선은 새로운 기독교 운동조차 제대로 온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로
아직도 기독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러 있냐는 식으로
기독교를 표방하는 것 자체를 수준 낮은 차원이라고 인식하는 부류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이들이야말로 사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고 보는 것이죠.
여러 종류의 과일이 있다고 할 경우
수박에도 맛있는 수박과 맛없는 수박이 있을 것이고
참외에도 맛있는 참외와 맛없는 참외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작 중요한 관건은 그 과일에 맛이 있냐 없냐의 문제이지
넌 아직도 수박이냐 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정녕 깨닫지 못한 것이지요.

제가 보기엔 수박이 맛있는 수박이 되면
맛있는 과일이라는 범주에서 수박과 참외는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든 불교든 민족종교든 간에
그 종교가 제대로 제 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지
그 어떤 특정 종교 자체에 대한 한계를 지을 이유가 하등 없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불교 안에도 기복신앙적인 요소가 매우 많아서
어떨 때는 기존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 자체가 한계가 있다고 설정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의 오류인 것이죠.

어떤 종교의 길을 가든지 간에 그것이 제대로 제 역할하면서 건강하게 잘 굴러갈 수만 있다면
겉보기엔 서로 다르더라도 우리들은 가장 크고 깊은 곳에서
함께 만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제 자리에서 제 일 제대로 하는 것은 이미 개인을 넘어선 전체의 일을 한다”라는 의미인 것이죠.
이는 노장사상을 공부하신 함석헌 선생님의 얘기이기도 합니다.

늘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며..
 
그럼 이만 총총..
 
 
- 정강길 드림
 
 
 
순리선인 (10-02-08 12:12)
 
예수의 죽음과 노무현의 죽음을 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갈증이 있어 왔습니다. 어
찌하여 인류역사에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모순구조가 깨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인지, 인류전체에 평화와 행복의 구원을 주어야할 종교들이 특히 기독교가 오히려 강자의 편에서 강자의 이익과 강자의 행복만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인지, 이러한 모순구조를 타파할 수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나름대로 심도있게 생각해 왔습니다.제가 생각한 방법은 이땅에 만인을 위한 만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이를 위한 사상적 토대를 찾고있던 중에 정강길님의 하나님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이는 제가 생각하고 있던 하나님사상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보고  진리는 통하는 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많이 배우고 많이 깨닿고 있습니다.정강길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정강길 (10-02-08 13:47)
 
순리선인님,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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