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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미국 아틀란타에서의 새로운 기독교 강연과 진보에 대한 성찰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9-28 05:00 조회(1155)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89 




▲ 미국 아틀란타 도시의 마천루. 이곳 아틀란타에는 한인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미국 남부의 아틀란타를 가다
 
미국에 와서 시드니님이 알려주신 조지아주의 아틀란타에 사시는 장종식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땅에 와서 처음으로 몇몇 목회자들과 신학전공자들 앞에서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표방하는 세기연의 신학적 이념들을 간단하게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장종식 박사는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계신 분이라서
나와 죠님은 새벽5시에 일어나 무려 6시간 차를 타고 아틀란타에 도착을 하였다.
노스 캐롤라이나 남서쪽 방향으로 400마일(참고로 1마일 1.6km) 정도의 거리였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어 6시간 정도는 그다지 먼거리에 속한 것도 못되었다.

장종식 박사는 조지아 크리스찬 대학교에서 교수하는 분(기독교윤리 전공)인데 
우리는 도착한 후 식당을 가서 이 분이 마련해준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후 2시30분쯤 이 분이 속한 작은 모임에서 세기연이 표방하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에 대해 간단한 발표를 하기로 하였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에 대한 아틀란타의 몇몇 목회자와 신학전공자들의 반응
 
사실 내가 아는 분들이 아니라서 나로서는 이 분들 성향을 전혀 짐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물론 시드님이 소개해주신 장종식 박사의 경우는 대화를 해보니
어느 정도 사고가 열려 있으며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면이 있었다.
이 분의 얘기로는 이곳에서 진보적인 모임과 연대를 꾸려보고자 하는 가운데 있다고 하셔서
나로서도 이러한 얘기가 매우 기쁜 소식으로 들렸었다.
그래서 나는 이날 그러한 분들이 좀더 많이 나온 줄로만 생각했었다.
 
우리는 평일에는 교회 건물인 10-20명 정도 모일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이동해서
이곳 세기연에도 있는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이날 자리에는 이곳 아틀란타에서 거주하는 몇몇 목회자분들과 신학전공자들이 오셨다고 했다.
심지어 잠시 미국에 나와 있는 중국선교사분도 계셨다.
 
1) 세기연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한 시간 남짓 발표를 하고나서 질문을 받는 중에 나는 몇 가지 당혹스러운 얘길 접하게 되었다.
가장 당혹스럽게 들린 얘기로는 이날 세기연이 표방하는 기독교나
세기연이 표방하는 열두 가지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은
기존 성서학 연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라서 그다지 새롭지도 않다는 얘기였었다.

와우~! 기존의 성서학에 세기연이 표방하는 이런 신학적 얘기들이 있었다니..
사실상 나로서는 금시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성서신학자인 김덕기 교수조차도
몰랐던 성서신학계 정보가 꼭꼭 숨어 있었나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기존의 주류 기독교 시스템의 심층에 놓인 이원론에 맞서
이를 대체하고 있는 화이트헤드의 해석학적 존재론을
성서학이든 해석학이든 기존의 주류 기독교가 언제 제대로 수용한 적이라도 있었던가..
 
만일 있었다면 기존 성서학계는 왜 그리도 한가하고 조용한가?
예수의 성서해석학과 바리새인들의 성서해석학이 다름으로 인해서
서로 간에 일어났던 마찰과 충돌의 그 전선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얘기가 오히려 더 반가운 얘기로도 들렸었다.
그래서 나는 왜 그런 교회들과 목회자님들 그리고 신학자 분들은 왜 그리도 보이질 않느냐? 라고 묻자
자신은 기존 기독교의 폐해가 교회에서 그렇게 심한지는 잘 모르겠고
기존 교회가 목사 1인체제로 굴러간다는 그런 얘기도 처음 듣는다고 하였다.

보수 기독교의 오류와 폐해에 대해서 새로운 대안 기독교를 표방하는
세기연의 신학적 방향이 기존 성서학의 성과에서도 그것을 표방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러한 얘기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세기연이 표방하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를
새롭지 않다고 말함으로서 새로운 기독교 운동 자체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느껴지기도 했었다.
 
2) 세기연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도 이분법 구도에 빠져 있다?

두 번째는 기존 기독교의 이원론적 폐단의 문제를 지적한 것에 대해
그렇다면 기존 기독교에서 새로운 기독교 라는 열두 가지 패러다임 전환 역시
‘……에서 ……로’ 라는 것이기에 그 자체도 이미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냐라며
마치 그 어떤 대단한 발견인 양 지적하였다.
즉, 세기연이 기존 기독교의 이원론적 폐단을 말하지만 세기연이 표방하는 언명들 역시
‘……에서 ……로’라는 이원론적 도식에 머물고 있지 않느냐 라는 것이다.

언뜻 그럴 듯 하게 들리겠지만 이분법에 대한 비판적 의미는
뭐든 둘로 나누어서만 생각한다는 것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둘로 나누어서 생각함으로서 드러나는 그 오류의 폐해에 비판의 메스가 있다.
즉, 기존 기독교는 신/인간, 영혼/육체, 내세/현세, 남자/여자 등등 본질과 파생 혹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라는 사유의 구도의 폐단이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기에
이를 지적한 것임에도 둘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 문제가 있는 양 지적하고 있었다. 

세기연이 표방하는 ‘……에서 ……로’는 일종의 선언적인 캐치프레이즈의 의미가 크지만
그래도 이것의 진정성은 more than이라는 의미에 있으며 그럼으로써
적어도 기존의 것보다는 좀더 나은 방향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으로서의 언명일뿐이다.
어찌 이를 이분법의 폐단과 연결시킬 수 있는지가 나로서는 매우 아이러니하기만 했다.

두 가지를 대비시켜서 보여주는 모든 언명들은 그 대비(Contrast)의 효과를 의도한 것으로
그 자체만큼은 이분법적 오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보다 뚜렷이하자는 데에 그 진정성이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그 옛날 이천 년 전에 기독교의 탄생에서
“기존의 유대교에서 예수의 기독교로” 라고 표방하는 것 역시
이분법적 오류이며 여전히 이원론적인 폐단에 놓여 있는 것인가?
나로서는 오히려 더욱 되묻고 싶을 따름이다.

게다가 세기연은 기존 기독교 안의 여러 다양성까지 무시하자는 것 역시 아니며
적어도 주류 보수 기독교에 대해서만큼은
차별적 선언이 분명하게 부각되어야 하지 않느냐라는 점으로서 채택한 것이다.
 
 
 
 
아틀란타 몇몇 목회자님들을 통해서 본 진보의 의미

나 자신이 약간 당혹스러웠던 점은 이날 함께 있던 목회자님들의 자기 교회는
매우 진보적으로 목회를 해왔었다고 밝혔었는데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는 그 교회 목사님의 기도는 흥미롭게도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는 단어를 놀랄만치 매우 수십번 넘게 쓰고 있을만큼 이미 몸으로 체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를 위해 아버지 우리에게 아버지 지혜를 아버지 주시옵고 아버지....”

물론 하나님에 대해 ‘아버지’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을 두고
본인 스스로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이미 체화되어 잇기에
하지만 내 생각엔 적어도 여성신학자들의 문제의식은 매우 다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적어도 그 점에서만큼은 진보적으로 볼는지 의문스럽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진보적인 표방을 한다고는 믿고 싶기에
나로서도 그러한 얘기가 매우 반갑다고 생각되며
제발이지 그런 교회가 있다면 서로 흩어져서 각개 전투를 하지 말고
좀더 기존 기독교의 교회 폐단에 대해서만큼은 날을 세움으로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진보적인 교회가 있다고도 알려주고
그리고 제발이지 그러한 교회들끼리 작은 연대라도 좀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고 말씀을 드렸다.

또한 중국선교사로 계신 분은 발표가 끝난 뒤에 내게 얘기해준 것 중의 하나가
국가보안법 잘못된 노동악법에 찬성하는 기존 기독교는
새로운 기독교의 입장에선 선교대상일 뿐이라고 한 대목에서
자신의 견해로는 북한을 주적으로 보는 국가보안법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하셨다.

이분의 말씀은 국가보안법이 있기에 어느 정도 북한에 대한 경계를 할 수 있는 것이며
진보 진영의 지식인이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표방하는 자들에게
좌파빨갱이 라고 부르는 것도 그다지 틀린 얘기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향린교회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 향린교회 입장과 강정구 교수의 얘기는
자신으로서 매우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분의 얘기를 듣고서 잠시 머리가 띠잉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약간은 이해되는 대목도 있었다. 즉, 이분은 중국 선교사 분인지라
이분의 상황에서 본다면 공산주의 정부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표방한 북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적대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이 들게되자 나로선 이 분의 말씀에 대해 크게 그다지 반론을 취하지는 않았다.

모임이 끝난 후 우리를 초대해 준 몇몇 분들과 함께 미국식 뷔페 같은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난 뒤
같은 모임장소에서 다시 금요기도회가 있는데 내게 짧은 설교를 부탁하였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일반 교회 신자분들이다. 교회 이름은 열린교회로서
예전에 복음교회 교단의 지관해 목사 담임을 한때 한 적도 있다고 하였다.

모임장소를 제공해주셨던 열린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인상이 늘 웃는 인상으로서 매우 좋으셨다.
그냥 조용조용히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보곤 하시는 성격이셨고,
매우 진솔한 느낌을 주는 목회자님이셨다(이분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얘기할 것이다)
이분은 민중신학자였던 박재순 교수와도 예전에 인연이 있으셨다고 하였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때까지도 이 분 목사님의 교회가 매우 진보적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서른 분 정도 참석한 이곳 아틀란타 한인교회의 금요기도회 풍경은
여느 다른 교회의 부흥회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뜻밖에 2시간 동안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듣는 게 나로서는 약간 곤혹스러운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왜냐하면 뜻밖에 나로선 그렇게 오래까지 진행할 줄은 몰랐었으니..ㅡㅡ;;;

무엇보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문화적 기제, 이를 테면 찬양 노래들은
여전히 기존 기독교 교회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성도들은 그저 아멘이었다. 한국이나 미국땅에서나 예수를 믿어도
그다지 큰 차이를 못느낄 만큼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선 도대체 무엇이 진보적인 교회인지에 대한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진보 기독교인인가?
 
한 가지 나 자신에 대해 새삼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오랜만에 통성기도를 하려니 잘 나오질 않았었다는 점이다.
내게는 이제 명상이 익숙하게 되었고 입으로 다다다 얘기하는 통성기도는
다소 불편스러운 느낌이 없잖아 있는 나 자신을 새삼 발견하였다.

예전에 보수 기독교 시절엔 나도 꽤나 통성기도를 해 본 사람이었고
한때 눈물콧물 질질 짜면서 옆사람에까지 은혜를 끼칠 정도의 경우도 있었다.
통성기도 형식은 특별히 한국교회 문화라고 하는데
감정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찬양이나 기도의 형식들은
이제 내겐 다소 안맞는 불편한 옷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나 자신은 명상의 효과를 체험하면서
GIO명상의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소중한 기도의 시간이었다.
(*GIO명상에 대해선 http://freeview.org/bbs/tb.php/b001/158 참조)
이것이 소위 말하는 관상기도와 향심기도와 어케 다른지는 여기선 논하진 않겠다.
물론 솔직히 말해 기존의 통성기도보다는 관상기도가 좀더 낫다고 생각하는 면은 있다.

금요기도회가 끝나고 남은 몇몇 분들과 몇 가지 토론이 있었다.
내 생각에 이 날 자리는 장종식 박사를 제외하고는 말씀하시는 입장들이
대체로 보수적인 신앙의 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어 보였다.

이 날 토론자리에 함께 했던 또 한 분의 목사님(이 분은 열린교회 담임목사님이
자신의 절친한 형님으로 모시는 목사님이라고 하였다)은
기독교 개혁운동 같은 거 백날 해봐야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기에
신학적인 거 말고 하나님께 다른 걸 구해야 하지 않냐고 하였다.
간단히 요약적으로 말해서, 기독교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항상 있어왔고 또한 그런 문제들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해결되어 있지 않은데 왜 그런 개혁운동 같은 것에 대해 자꾸 목메냐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저마다 다양한 삶의 포지션이 있는 것처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뿐이며
대상을 개혁하는 것과 나를 개혁하는 것은 어차피 하나로 연관되어 있기에
그러한 가운데 그 어떤 완결된 결과나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최선으로 임하는 삶의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었다.
 
아틀란타에 와서 우리는 1박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숙소 문제가 다소 아쉬웠다. 
우리는 1박을 하고나서는 마틴 루터 킹 기념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낯선 이곳 땅에 와서 자기 전에 도대체 무엇이 오늘의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틀란타 모임에서 만난 몇몇 목회자분들과 신학 전공분들은
진보적 신학사상을 접했었고 마치 그것이 별것 아닌 양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만큼은 그리고 자기 교회만큼은 진보적인 것처럼 얘기하였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보수적 신앙의 기제들을 쓰면서 그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기에
나로서는 다소 안타까우면서도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물론 이곳 미국땅에 와서 세기연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에 대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자체는 다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자리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우리를 안내하신 장종식 박사님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나름대로 기존 기독교의 신앙 체계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 같았다.

진보란 뭘까? 한국교회 현장에서 얘기되는 진보 기독교인이란
다소 파적 색조의 민주화 운동, 통일운동, 환경운동 등등
다양한 사회운동을 하는 그리스도교인을 일컬어 주로 진보기독교인들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종교운동보다는 사회운동에 대한 의식이 매우 강하다.
 
그런 점에서 세기연은 이들을 지지하면서도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과도 다소 변별적인 그룹이다.
우리로선 다양한 시민사회 형성 이후에는 적어도 기독교인의 몫은
사회운동보다는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의 변혁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나는 미국의 부시나 이명박 보다도 이러한 자들을 지속적으로 낳고 있는
이천 년을 이어 온 기독교라는 제국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세기연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가늠하고 있는 선교 타겟은
바로 그 기독교라는 무시무시한 제국을 향해 있다.
 
그런 점에서 세기연은 오늘 기존의 진보는 아니지만
다음 시대를 내다보는 진보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진보의 의미는 아무래도 말그대로
<진짜 보수>를 <진보>라고 하는 게 아닐는지..
 
 
(* 계속 이어집니다..)
 
 
정강길 / 세기연 연구실장 
 
sydney (09-09-28 07:44)
 
정 실장 님!
수고 많았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풍차를 향하여 달려가는 돈키호테가 떠오르더군요.
(보통 돈키호테를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으로 표현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거고
 세르판테스는 현실을 풍자하며 꿈과 이상을 그리는 인물로 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그쪽 분위기가 그런 정도 였다면 미국 동부에 있는 다른 지하조직(?)을 가동하기에 좀 거시기 한데...?
일단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문제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것 보다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방향으로 나가보시면 어떨지....

정강길 (09-09-28 08:39)
 
시드니님 감사합니다. 너무 걱정 안하셔도 괜찮습니다..^^;;
안그래도 이번에 모임을 주선한 장 박사님도 바쁘셔서 시간적 경황도 없고 해서
조금 갑작스럽게 형성된 점도 있다고 하여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는 뉴욕에서의 모임이 있는데 거기는 제가 아는 분들이 좀 계신데
현경 교수와 그리고 감리교 목사님을 뵙게 되어 있고 강연도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외 접선 가능한 다른 지하조직(?)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쪽지로 주시길 바랍니다..^^*

onefineday… (09-09-28 11:23)
 
정강길님, 안녕하세요?
뉴욕에서 비교적 가까운 뉴 헤이븐이라는 곳에서 유학 중인 김일규입니다.
혹시 뉴욕에서 있다는 강연의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를 알 수 있을까요?
시간이 되면 저도 가서 강연을 듣고 싶어서요.^^
암튼 시간이 맞지 않아 뉴욕에서 뵙지 못하더라도 미국에서의 일정 즐겁고 유익하게 마치시고 무사히 귀국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june8th (09-09-28 12:59)
 
안녕하세요. 저도 뉴욕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공개세미나와 비슷한 자리가 있다면 듣고 싶은데, 일정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컨설턴트 (09-09-28 11:43)
 
많이 당황하셨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칼럼으로 쓰려는 주제이기도 한데....... 교회말입니다. 진짜 한국의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대해서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지만 입고 있는 옷이 수구라면, 당연히 잘못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사람들은 미국 말고도 한국에도 많이 있어요. 소위 90년대 초반에 많이 이야기 되었던 '강단PD'라고 불렸죠? 입에서 나오는 강의의 내용은 대단히 혁명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주장을 하는 개체의 삶은 철저히 '교수사회'에 편입을 하려고 하는 '주류지향성'을 보였던 이들이요.......

그들중 몇몇은 '교수님'이 되어서 안락한 연봉과 혜택을 받으며 주류사회에 편입하여 살고 있지만 얼마전에 1000여 명의 강제 해직된 시간강사들에 대해서는 '침묵의 카르텔'에 동조하여 입도 뻥끗하지 않고 있지요. 그런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기대할 부분이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개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썩은 부분을 도려낼 곳이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전체를 들어내야 하는 판이니까요~

불의한 체제, 불의한 권력, 불의한 세력에 대해서 정직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대항을 해야 하지요.
잘못 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 이야기 하지 못하게 하는 - 그것이 교회권력이든 사회권력이든 - 현실에 대해서 대대적인 항거(抗拒)를 해야지요.
그람시 선생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교회는 '진지'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소명입니다.
이 불의한 체제와 불의한 권력과 불의한 세력에 대해서 대항하는 '戰士'를 양성하는 '진지'를 구축해야 합니다.

값싼 은혜와 통성기도와 눈물콧물 빼내는 감상적 기제들은 즐~
기존 기독교의 폐해와 그로부터 (고통인지도 모르고)고통받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씨앗'들을 구하기 위해서
좀 더 날선 이성을 벼리시고
폐부를 찌르는 경험을 하시고
미국 기독교의 정체를 똑똑히 목도하시고 오십시오.

국가보안법 문제와 그 카테고리에 갇혀서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은 즐~
나 자신이 전체주의와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북한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나
백척간두에 서 있는 한반도의 핵문제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문제에 있어
이 부분은 대단히 냉철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좌파빨갱이니 우파꼴통이니 하는 이분법적 접근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 일단 말씀드립니다.

특히 위 어느 목사님 말씀에
“기독교 개혁운동 같은 거 백날 해봐야 云云~”은
저 수구진영의 좌빨 발언보다 더 해악이 큰 발언이라는 것을 직시했으면 합니다. 정선생의 대답....... “최선으로 임하는 삶의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라는 답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항상 개혁하고 또 개혁해야 하는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답이며 질문을 愚問으로 돌리는 명답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정선생이 벌이고 있는 미국 순회(?)는
멀게는 이천 년 동안 숨겨져 있던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길이요
가깝게는 개화기 시절부터 조선에 큰 영향을 주었던 미국 남부의 근본주의자들의 형태를 똑바로 직시하는 대장정이라 생각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정선생의 행보 하나하나가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도래에 작은 발걸음이라는 것을.......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정강길 (09-09-28 22:02)
 
onefineday님, june8th님 반갑습니다..^^*
뉴욕은 아마도 10월6일쯤에 올라갈 계획이고 10월11일쯤에 강연일정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일정이 잡히는대로 시간과 장소를 공지해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컨설턴트님 고맙습니다.
용기를 주시는 님의 말씀 꼭 잊지 않고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돌아가서 뵐테니 님도 건강하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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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병치유 귀신쫓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미선 451 06-10
177 몸에 모시는 하나님 (탈유무신론의 신앙) 미선 365 06-09
176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397 06-07
175 과학의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 입장들 미선 394 05-30
174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하는 <몸학 기독교>로! 미선 375 02-10
173 신의 영어 표기 God ----> Gio 로 바뀌어야 미선 350 02-07
172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미선 389 12-08
171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면 나타나는 문제들.. 미선 305 11-04
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276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279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288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292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276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283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269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303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447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402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319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383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442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364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320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318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347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554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457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288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275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452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1538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314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342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402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447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375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353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362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422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525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410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382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401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529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692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625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286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338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798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337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429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375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595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675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499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593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793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644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788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849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784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673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200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832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665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646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620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89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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