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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왜 <새로운 기독교>인가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9-11 04:35 조회(753)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514 
  FILE #1 : 왜_새로운_기독교인가-정강길.pdf (1.3M), Down:8, 2010-09-11 04:38:07




이 글은 지난 2010년 6월19일 새로운 기독교 대토론회 때 발표한 원고글 중에서
결말 부분만 따로 해서 편집해서 올린 글입니다.
 
왜 <새로운 기독교> 인가 라는 표현은 
"새로운"에 대한 강조와 "기독교"에 대한 강조가 함께 들어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논점에 해당되는 글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행여 발표된 원고 전부를 보시려면 파일을 다운 받으시면 됩니다.
 
 
.........................................
 
 
 
왜 ‘새로운 기독교’인가
 
- 새로운 종교 시대의 새로운 기독교 신앙
 
 
정강길 (세기연 연구실장)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꼭 기독교를 고집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답변들
 
새로운 기독교 건설 운동이 지금은 미약한 시작으로서 출발하지만 머잖아 조만간에 피부로서 뚜렷이 체감하게 되는 그날이 곧 도래할 것으로 본다. 적어도 이는 빠르면 십 년 늦어도 삼십 년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기존의 보수 기독교 집단이 망하는 데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워낙 가진 게 많이 있으니까!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낡은 기독교 세력들에 의해 새로운 기독교 운동 역시 상당한 충돌과 박해를 겪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건강한 시민 사회를 향한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요청이면서도 이미 세계적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변혁의 물결이기도 하다.
 
기독교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기독교가 그토록 잘못된 오류와 폐해 및 참담한 비극들을 지금까지 저질러 왔었다면 왜 그러한 기독교 세계를 빠져나오질 않고 왜 계속 기독교를 고집하느냐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는 네 가지 이유를 그 답변으로서 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로 예수와 기존 기독교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안티그리스도를 표방한 니체까지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새로운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예수와 기존의 현실 기독교는 너무나 분명하게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오늘날 양식 있는 기독교인들조차도 주류 보수 기독교를 향해 오히려 예수 없는 기독교, 예수 없는 한국교회라고 언급할 정도잖은가. 보수 기독교인들이 지닌 대부분의 신앙은 실상 예수 아닌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존 기독교는 버릴 수 있다지만 기독교 자체를 아예 몽땅 포기할 경우에는 자칫 예수까지도 포기하는 것인데 그럴 경우 목욕물이 더럽다고 버릴 순 있어도 거기에 담긴 아기까지 버릴 필요성은 못느끼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 관건은 기독교 자체를 버릴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떤 기독교인가 하는 것이 보다 핵심적인 사안일 뿐이다. 무엇보다 기독교의 예수사건은 다른 고등종교들의 건강한 차원들과도 얼마든지 함께 소통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예수운동만의 독특한 매력 역시 겸비하고 있다고 본다. 인간 고통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붓다는 주로 설법으로 널리 알리고자 했다면, 예수는 삶의 밑바닥에서의 활동을 통해 매우 다이나믹한 생명해방을 보여주었다. 이는 세계를 이롭게 하는 적극적인 희생으로서의 비폭력적 투쟁과 사랑의 정점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두 번째는 그럼으로써 기존 기독교가 아닌 새로운 기독교는 이천 년 역사상 단 한 번도 실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독교라서 적어도 한 번이라도 제대로서 해보고서나 아예 장사를 접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라는 것이다. 즉,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기에 아직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이르다는 것이다.
 
이미 앞서 표방된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패러다임 대전환을 언급했듯이, 사실상 우리가 언제 이러한 새로운 기독교를 맞이해본 적이라도 있었던가? 신God 대한 개념을 떠올릴 때도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전지전능 완전무결 절대자로서의 신 이해만을 곧잘 떠올렸잖은가. 그렇듯이 예수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구원에 대한 이해 등등 모든 것들이 뒤바뀌는 새로운 전환으로서의 기독교는 이천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온전히 시도해보지도 않은 터라 미리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본다.
 
세 번째는 기존 기독교 자체를 아예 포기할 경우, 이미 기존의 낡은 기독교에 대해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까지도 나몰라라 하는 것이 되기에 그들의 영혼에 대해서도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의 길까지 아예 봉쇄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에 대해 사로잡혀 있는 그러한 사람들은 여전히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은 이미 나의 가족이며 나의 형제들 가운데도 많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까지도 자기들의 기독교 신앙을 그 유산으로 전수해 줄 것이다. 그럼으로써 기존 기독교 세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끈질기게 남아 있으려 할 것이다.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악순환적인 고리가 끊어져야 마땅하다고 본다. 기존의 낡은 기독교를 좀 더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로 만들려는 운동은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건강한 사회로 만들려는 운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독교라는 영역 자체를 아예 떠나서 방치할 경우 가깝게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 및 이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잘못된 기독교가 계속 강화되거나 확장되는 것에 대한 무책임과 방관자가 될 수도 있을뿐더러 결국엔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성까지도 무책임하게 방치해두는 것이 될 수 있다. 고로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이유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일 수도 있겠는데, 본인은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라는 문화가 오히려 나에겐 더 익숙한 점이 있기에 지금까지의 성장 배경들을 몽땅 다 무시하고 기독교를 완전히 떠나서 새로운 다른 출발을 하기에는 오히려 좀 더 많이 더디고 더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자라면서 기존 기독교의 문화들을 습득해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기존 기독교에 대한 정보와 그것이 돌아가는 생리들에 대해선 적어도 보수적인 기독교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며, 이러한 점들은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운동을 지향함에 있어 더 큰 장점으로 자리할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본인에게는 바로 이러한 이유들이 바로 기존 기독교의 오류와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독교를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네 가지 이유에 해당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의 기독교 선택 입장은 제안적인 의미이지 결코 강요적인 의미가 아니다. 즉, 기독교를 완전히 떠나는 것이 오히려 좀 더 자신의 몸삶에 더 맞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으며,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는 그러한 분들에 대해서도 하등 반대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지만, 기독교를 꼭 고집해야만 하는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이유 같은 것은 없다.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구원 및 생명해방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 상식과 충돌할 경우에는 적어도 그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리라. 만일 기독교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우리 사회에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평화와 화해에 기여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기독교와도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적 동반자로서의 파트너이자 이웃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로 닮지 않아도 서로 연대할 수 있다는 차원으로서 이는 손가락이 아닌 달의 지평에서 비로소 함께 합류되는 차원에 해당된다.
 
제 자리에서 제 일 제대로 하기 : 어떤 기독교를 일궈낼 것인가의 문제가 더 중요
 
끝으로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기독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관건은 제대로 된 종교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본다. 기독교에 있다가 기독교를 떠난 몇몇 분들 가운데(특히 안티기독교 진영)서는 예수와 성서를 버리지 않는 것 자체를 폄하하는 분들이 있는데 본인으로선 거기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히 반대하는 바이다.
 
흔히 안티기독교인들은 기독교냐 아니냐의 문제에 많이 집착되는 경우가 많은데, 만일 예수의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류상태 목사의 표현임)에 기반한 기독교 수립 운동이라고 할 경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잖은가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티들도 기독교 박멸주의 자체를 굳이 절대화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혹자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조차 제대로 온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로 아직도 기독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러 있냐는 식으로 비아냥대면서 기독교를 표방하는 것 자체를 수준 낮은 차원으로서 인식하는 부류들도 있는데 오히려 내가 보기엔 이들이야말로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만일 여러 종류의 과일이 있다고 할 경우, 수박에도 맛있는 수박과 맛없는 수박이 있을 것이고, 참외에도 맛있는 참외와 맛없는 참외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관건은 그 과일에 맛이 있냐 없냐의 문제이지, 넌 아직도 수박이냐 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정녕 깨닫지 못한 것 아닐는지.
 
내가 볼 땐 수박이 맛있는 수박이 되면 맛있는 과일이라는 범주에서 수박과 참외는 서로 맛있는 과일로서 함께 어울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든 불교든 유교든 간에 그 종교가 온전히 제 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지 그 어떤 특정 종교 자체에 대한 한계를 지을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 뿐만 아니라 기존의 불교 안에도 기복신앙적인 요소가 매우 많아서 어떨 때는 기존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 자체가 한계가 있다고 설정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의 오류일 것이다.
 
어떤 종교의 길을 가든지 간에 혹은 아예 무신론적인 비종교의 길을 가든지 간에 그것이 지구적 차원의 건강한 보편성과 맞닿아 있으면서 각자 제 역할을 잘 감당하면서 건강하게 잘 굴러갈 수만 있다면 겉보기엔 서로 다르더라도 우리들은 가장 크고 깊은 곳에서 함께 만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문익환 목사의 신앙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독교 신앙이 달라이 라마나 틱 낫한 승려의 불교 신앙과 서로 충돌한다고만 보는가? 내가 보기엔 서로에게 훨씬 더 잘 이끌리지 않을까 싶다. 이때 문익환 목사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디까지나 기독교인일 따름이지 불교인이나 다른 그 어떤 종교인이 결코 아닌 것이다.
 
한편으로 같은 개신교 기독교인이자 같은 감리교단 출신임에도 이현주 목사와 김홍도 목사는 서로 이질적으로 느껴질만큼 완전히 서로 다른 기독교인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현주 목사와 법륜 승려는 아예 서로 다른 종교인이면서도 왜 둘은 그토록 서로 잘 어울릴만큼 친화적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는 바로 이러한 점들을 더욱 깊이 성찰적으로 이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건강한 기독교인과 건강한 불교인 혹은 건강한 종교인과 건강한 비종교인이라면 상호 이해를 깊이 심화해야 할 문제가 있을 뿐이지 실은 서로를 응원하는 가운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상호 파트너인 것이다. 이를 두고 노장사상을 공부하신 함석헌 선생께선 다음과 같이 말씀한 바 있다. “제 자리에서 제 일 제대로 하는 것은 이미 개인을 넘어선 전체의 일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기독교만이라도 제 자리에서 제 일 제대로 해낸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성에 제대로 기여하는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21세기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약자해방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펼쳤던 본래의 예수정신에 입각해서 기독교만이라도 제대로 세워보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천 년 전의 예수사건은 그때까지의 기존 유대교 안에 없었던 새로움(novelty)이었고 어떤 면에서 그것은 새로운 유대교 운동이었다.
 
당시 예수공동체와 바리새인들 간에 전선을 상기해보라. 그 새로운 유대교가 결국은 기독교로 이어지기도 했잖은가. 이 같은 불연속적 연속성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작금의 21세기는 이천 년 기독교 역사상에도 없었던 거대한 종교변혁으로서의 새로운 기독교 시대를 목전에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우리는 기독교 대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교회에서 새로운 신랑을 맞이할 준비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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