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36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36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새로운 기독교 운동
월례포럼
기획강좌
연구소 활동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698
어제 855
최대 10,145
전체 2,435,630


    제 목 : [도올과의 인터뷰] "나는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를 원한다"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3-27 12:52 조회(329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96 






 
도올 선생에게서 듣는 한국교회 이야기
 
 
3월24일 토요일 오후에 건강한 기독언론을 표방하는 미디어종교와문화 <크리티앙>이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를 만나서 한국 기독교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현재 기독교계에서도 도올 김용옥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오고가고 있는 형편이라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적어도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도올 김용옥 교수는 “이제 한국 기독교도 질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흐름에 서 있었다. 
 
© 크리티앙

대화의 시작은 현재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구약폐기 문제에 대한 얘기부터 풀어나갔는데 그 진의를 확인한 결과, 구약폐기는 도올 김용옥 교수의 입장이 아니며 단지 구약성서가 기독교의 직접적 신앙이 될 수 없음을 얘기한 것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정도의 입장은 누구든지 반대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에 EBS를 통해 요한복음을 강의하게 된 동기는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사셨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으며, 한국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자극과 활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강의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얼마 전에 조용기 목사와 만남을 가졌었지만, 조용기 목사의 신앙적 입장만큼은 다른 이웃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열린 신앙인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같은 입장이 80만 순복음교회 성도들과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쉽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순복음교회 진영은 이번 MBC방송에서도 보도될 만큼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 비판받고 있다. 아마도 조용기 목사는 이미 비대해진 대형교회를 다시금 추스르기엔 너무도 많은 본질적 문제들을 방치만 해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토록 열려있다는 자신의 신앙 입장과 순복음교회 성도들의 입장이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걱정되는 문제로서 목회자 수준의 저하를 들었으며, 이로 인해 한국교회에는 많은 병폐들이 나타났었으며, 적어도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한미 FTA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철저히 반대한다고 말한 점도 주목할 만하며, 가장 존경하는 기독교인은 장공 김재준 목사라고 밝혔다. 본인은 크리티앙 편집장이자 기독교 신학을 수행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터뷰를 신청하게 되었고, 대담장소는 혜화동에 있는 그의 교수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
 
 
© 크리티앙
 

“구약폐기는 나의 입장이 아니다”
 
정강길(이하 ‘정’) 얼마 전의 언론 인터뷰를 보니까 구약성경 폐기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비록 그것이 요한복음 전체 강의의 핵심이 아니라고 해도) 많은 분들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진위를 다시 확인해보길 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동영상 강의에서는 적어도 구약은 낡았다, 태워버려도 된다, 휴지 조각이다, 아무 소용없다고 말씀하셨기에 다분히 구약폐기로 볼 여지도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확한 진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주시면 좋겠다. 
 
© 크리티앙
도올 김용욕(이하 ‘도올’)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구약폐기는 나의 입장이 아니다. 구약은 폐기해야할 문헌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해야 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유대교의 경전이다. 우리가 그 경전을 구약(Old Testament)이라고 부르는 것도 엄밀하게 본다면 적절하지 않다. 이것은 마치 대승불교가 남방의 부파불교를 폄하해서 ‘소승불교’라고 부르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구약이라는 문헌은 방대한 문명의 성과가 축적되어 있는 복합적인 문헌이다.
 
‘구약’이라고 규정하기보다는 차라리 ‘히브리 성경’ 혹은 ‘타나크’라고 부르는 것이 더 바른 인식을 표출하는 것이다. 예수 때에도 우리가 말하는 ‘구약’이라는 문헌은 존재하지 않았다. ‘구약’의 핵심은 ‘모세5경’이며, 그것은 신약시대에 그냥 ‘율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애굽에서 노예상태에 있던 유대민족이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며, 그 역사적 체험은 야훼와의 율법적 계약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율법은 야훼와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이루어진 계약이다. 그 계약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민족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구약의 객관적인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독교인으로서는 직접적 신앙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을 주장할 뿐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은 율법이 아닌 사랑으로서 새로운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계약은 물론 율법의 완성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구약을 신약의 탄생을 위한 배경으로서 보는 것은 얼마든지 타당하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왜곡하여 나를 비판하는 것은 내 많은 중요한 주장에 별로 비판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많은 주장의 건강한 비판적 측면을 회피하는 방편으로서, 엉뚱한 가설에 매달려 장구치고 북치고 자기들끼리 축제를 벌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라도 씹히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씹힘으로써 자꾸만 기독교계에 건강한 담론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 요한복음 강의를 하게 된 동기는?
 
(도올) 요한복음 강의를 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향이 강하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어머니로부터 아주 청교도적인 기독교신앙을 물려받았다. 내가 신학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러한 기독교적인 집안배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주 전공은 철학이고 주로 철학사상을 강의해왔었지만, 인류사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나의 관점도 분명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를 마치 반기독교인인 것처럼 매도하는 불순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기독교에 적대적인 세력인 것처럼 휘모는 그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적이다. 나는 평소 인류3대지혜의 서(書)로서 노자금강경요한복음을 병론해왔다.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나의 요한복음강해는 내가 어머님께 해드릴 수 있는 간곡한 효도이자 내 삶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기독교를 믿는 일반 신자들에게도 나의 요한복음 강의가 많은 자극과 격려가 되길 바랄뿐이다.
 
 
© 크리티앙
 

조용기 목사, 종교다원주의적인 열린 신앙인이나 순복음교회 성도들과는 소통불능
 
(정) 또한 얼마 전에는 조용기 목사를 만나신 걸로 아는데, 현재 여의도순복음교회 진영은 조용기 목사의 친정체제와 재정운용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교회개혁단체와 시끄러운 마찰을 빚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MBC에서도 조용기 목사의 부동산 문제와 친인척 문제가 보도될 예정에 있다(인터뷰 시점이 방송 전이었음). 이러한 와중에서 조용기 목사를 만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
 
(도올) 나는 솔직히 순복음교회의 조직이 파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연구해본 바가 없다. 다만 이번에 만남을 갖게 된 것은, 영적인 진영에 있는 분과 기독교를 수용하는 이성적 자유인과의 만남 자체가 우리사회에 큰 상징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것처럼, 나는 예상대로 서로의 공통점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나의 삶이 대다수의 평범한 민중의 세계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모든 성령주의에는 기존의 체제를 거부하는 래디컬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제도적으로 이스태블리쉬되면 근본주의가 되기도 한다. 순복음교회도 당초에는 소외받은 민중들의 구원으로부터 출발한 건강한 종교운동이었다. 사회적 약자와 몸이 아픈 병자들이 몰렸고,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현실 개선의 희망과 병치유가 필요했다. 당시 민중들에게는 그러한 절박한 실존적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성령주의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다.
 
보수 개신교인들에게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배타성>이다. 바로 이 부분이 사회악을 조성한다고 나는 본다. 21세기의 기독교는 배타성을 버려야 한다. 크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야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만난 조용기 목사는 매우 열려 있는 사람이었고 타 신앙체계에 대한 배타성이 없었다. 그리고 그 분의 불교 이해는 심오하고 정확했다. 기독교라는 틀을 선택했지만 그 틀 속에서만 정신세계를 구성한 분은 아니었다.
 
(정) 조용기 목사의 신앙적 입장이 정말로 열려있는 분이라면, 그 분은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들, 이를테면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종교다원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얘기인가?
 
(도올) 분명하게 얘기하자면, 그렇다. 예수의 품은 무한하기 때문에, 인간이 인식하는 예수는 모두 시공의 제약을 받은 인간의 실존상황의 상대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했다. 따라서 모든 해석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했다.
 
 
© 크리티앙
 

이점에서 신학을 하는 본인으로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해, 본인의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를 위한 12가지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하자, 그 역시도 도올 선생이 보기엔 조용기 목사는 그러한 전환들을 모두 수용 가능할 만큼 열린 사람이라고 하였다. 참고로 필자가 말하는 기독교의 패러다임 전환이란 다음과 같다.
 
21세기 건강한 기독교 변혁을 위한 패러다임 대전환
 
   ※ 기초전제 - 관념적 이원론에서 <현실적 관계론>으로 

   ①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에서 <깨달음의 기독교>로
   ② 문자적 성서해석에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③ 초월적 유신론에서 <포월적 유신론>으로
  
   ④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⑤ 이웃종교에 배타적인 기독교에서 <함께 가는 기독교>로
   ⑥ 가부장적 기독교에서 <상호평등의 기독교>로
  
   ⑦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⑧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⑨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⑩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⑪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⑫ 저 세상이 아닌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미래에서 온 기독교』나 세기연 홈페이지 
http://freeview.org 에 보다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정) 예전의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 강연으로 일말의 짐작은 했었지만, 그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조용기 목사의 개인 입장은 현재 순복음교회 진영의 80만 성도들과는 전혀 소통되지 않고 있잖은가? 
 
(도올) 바로 그것이 문제다. 거대한 대형교회가 되면 될수록 결국 성령도 경직화된 조직의 틀을 뚫고 들어오기 어려워진다. 예전의 절박한 민중적 상황에서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 면에선 순복음도 시대적 산물이라는 제약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순복음교회 교인의 70%가 전라도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만큼 당시에 오갈 데 없던 소외된 민중이 순복음으로 몰렸던 것이다. 순복음교회의 역사를 통해 이 사회에 사회악으로만 남았을 에너지가 건강한 중산층 형성에 크게 이바지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교회가 점점 중산층화 되어가고 신도들이 지적으로 성장했으면 그때의 방식만을 여전히 그대로 고집해선 안될 것이다. 예전과 상황이 바뀌었으면 이젠 그 설교나 지도사상도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율법에 얽매여 사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점에서 나의 이번 요한복음 강의의 메시지와 조용기 목사와의 만남이 순복음교회 진영에게도 최소한의 자극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민중은 죄가 없다. 그들은 따라가는 순진한 양이며 포도나무의 열매일 뿐이다. 대접해주는 대로 성장한다. 성령주의는 이성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차원의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다. 진정한 성령주의는 이성과 양립가능하면서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
 
 
© 크리티앙
 

“한국교회 현장의 성경공부는 질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정) 현재의 성경공부에는 성서신학적 성경공부가 있고, 조직신학적 성경공부가 있다. 그런데 보수적인 한국교회 대부분의 현장에서 행해지는 성경공부는 조직신학적 성경공부에 속하는 <교리공부>이다. 이를테면 보수 근본주의의 5대 교리인 1)성서무오설 2)동정녀탄생설 3)대속설 4)육체적 부활 5)그리스도의 재림을 미리 혹은 은연중에라도 전제한 채로 성경을 읽기에, 성경을 다 읽고 나서도 이 전제들에 대한 재확인에 그치고 마는 치명적인 한계와 문제가 있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잖은가?
 
(도올) 그것은 정확하게 잘 본 것이다. 그런 점이 개선되기 위해선 오늘날의 기독교가 플라톤적인 이원론의 눈을 버리고 새롭고 다양한 합리적인 해석학적 눈으로써 성경을 읽어야 한다. 대체로 한국교회는 성경을 총체적으로 안 읽는다. 몇 개의 구절만 가지고 교리만을 가르친다. 교인들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설교 속에서 성서 전체를 총체적으로 녹여내야 한다.
 
한국 기독교도 이제는 토착화된 담론으로 발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나의 생애에서 만난 분 중에선 허혁 선생님 같은 분이 성경을 매우 치열하게 공부를 하신 분이셨다. 성서연구에 대한 그 같은 학문적인 치열함이 일반 성도들 혹은 대중들과도 결합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분의 순학구적 태도의 한계도 나는 절감한 사람이었다. 허혁 교수는 나의 고등학교시절부터의 은사였다.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의 강의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한국 기독교라면 거의 희망이 없다고 봐야 한다. 조용기 목사님이 나를 만나면서 한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올을 왜 만나냐고 말렸다고 했다. 그런데 도올에게서 배울 것만 배우고 나의 신앙체계에 맞지 않는 것은 수용하지 않으면 됐지 왜 만나는 것까지 거부하냐고 야단을 쳤다고 했다. 그리고 내 『요한복음강해』와 『기독교성서의 이해』전권을 탐독했다고 했다. 그리고 실로 많이 배웠다고 정직하게 말씀했다. 나의 지적인 성취가 경탄스럽다고 말씀했다. 그리고 학자로서 계속 기독교에 대하여 건강한 비판을 하는 것이 도올의 소임이라고 말씀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KBS 『논어강의도 거의 빠지지 않고 봤다고 했다. 한학을 어려서부터 공부했기 때문에 『논어』공부하는 것이 그냥 즐거웠다고 했다. 아무리 신령한 기독교인이라도 배우는 것(好學)이 나쁜 일일 수는 없다. 마음을 열고 배우면서 신앙을 굳건히 해나가면 우리사회가 얼마나 신사적인 사회가 되겠는가?
 
(정) 그런데 신학대 공부를 왜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는지?
 
(도올) 당시로서는 잘못된 길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를 나 개인의 힘으로 그 방향을 전환시키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그 조직에 들어가면 그 조직의 죄악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 된다. 또한 내가 신학대를 나와서 목사가 되면 나의 카리스마로 인해 엄청난 성도들이 몰리는 대형교회를 만들게 될 것 같아서 미리 그만두었다(웃음). 나는 신학대학을 들어가자마자 큰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내 설교가 인기가 높아 나의 신도들이 많이 생겨났다. 나는 그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결정은 두고두고 후회스럽지 않다. 잘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을 나는 나의 삶속에서 더 넓게 구현해 왔다고 확신한다.
 
 
© 크리티앙
 

"교회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나눔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정) 성경에는 가난한 자를 우선적으로 위하는 약자해방의 전통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사회는 '빈익빈부익부'라는 양극화 현상과 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시장만능주의에 전염되어 있는 현실이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란 것도 있겠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기독교와 사회에 대한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도올)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 사회와 역사의 한 가운데 있다. 다시 말해서 “종교자유”라는 명목으로 고립된 사유를 하면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기독교는 엄연히 우리 사회의 혜택을 받고 있다. 면세나 공제제도가 없으면 한국교회는 지탱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만큼 국고로 들어가야 할 돈이 교계 내에서 악순환하면서 서민생활에 나쁜 영향을 준다. 휘발유나 생필품에 붙는 간접세와 같은 세율이 높아져, 서민은 교회에 연보내고 또 국가에 더 비싼 세금을 내야 된다.
 
다시 말해서 세제혜택을 받는 모든 종교는 수입의 일정부분을 반드시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 교인들에게는 신약성경에 근거도 없는 십일조를 꼭 내라고 강요하면서, 교회는 사회에 십일조를 안낸다면 그것은 참으로 음험한 착취가 아닐까? 종교는 종교의 순수성만을 말하면 안된다. 이 사회의 혜택을 받고 이 사회 사람들의 헌금으로 유지되고 있다면, 반드시 그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의 삶이 그러한 “나눔”의 삶이었다. 다섯 개의 보리개떡과 두 마리의 북어쪼가리조차 5천명과 나누어 먹는 케리그마였다. 교회가 이런 각성을 한다면 한국기독교는 희망이 있다.
 
교회가 건물을 크게 짓는 데에만 힘쓸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신학의 질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내 책 『요한복음강해』와 『기독교 성서의 이해』속에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했지만 교회가 목회자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비상한 노력을 해야 한다. 신학대학에 많은 장학금을 내놓아서 신학도들이 질 높은 유학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또 세계 신학계를 리드하는 명저들을 번역하는 출판 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마디로 교회는 인적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목회자 수준의 저하다. 이것은 각종 신학대학의 난립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세속적 집념에서 떠나야 한다. <공생공영>이 아닌 <공생공빈>, 즉 서로 공생하기 위해서 서로 좀 가난해질 필요도 있다. 교회는 세속적 가치의 경쟁구도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자본주의적 논리를 초월하는 나눔의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가 당시 불가촉천민처럼 인간대접도 받지 못했던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것을 보라! 그리고 사마리아인들과 더불어 이틀을 유숙하며 같이 뒹구는 개방적 삶의 자세를 보라! 예수는 2000년 후에나 실현될 21세기적 인간평등관을 이미 AD 1세기에 구현한 분이다. 그런데 교회는 점점 더 소수집단의 특권층으로 전락되어가고만 있다. 오늘날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교회를 찾기 힘들다.
 
(정)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라 있는 한미 FTA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올) 당연히 철저히 반대다(이 부분에서 도올 김용옥 교수는 ‘철저히’라는 표현을 쓸 만큼 매우 단호하게 얘기하였다). 그런 식의 경제논리 개발논리는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할 뿐이다. 새만금도 그렇고 경부대운하의 발상도 그렇고, 하나님께서 주신 삼천리금수강산을 그런 식으로 농단하면 결국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사역만을 망가트리는 것이다. 본(本)을 버리고 말(末)만을 좇고 있다. 진정한 경제개발은 로고스의 진리로 회귀하는데서 오히려 융성하게 된다.
 
(정) 끝으로 혹시 존경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누구인가?
 
(도올) 나의 친형 김용준의 영향도 있지만 친근하게 어려서부터 뵌 분으로는 함석헌 선생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항상 마음속에 존경의 염을 품고 있는 분은 바로 장공 김재준 목사다. 나는 그분에게서 한국신학대학 1학년 때 동양사를 배웠다. 진시황, 한나라, 당나라 이야기를 그분에게서 처음 배웠다. 그리고 반독재투쟁으로 캐나다에 망명하고 계실 때도 내가 찾아가 뵈웠다. 그분의 인품은 허세가 없고 항상 잔잔하시지만 매우 단호하고 매섭다. 언제나 그 분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고 있다. 두 분 모두 한학의 대가들이다. 그리고 젊었을 시절 영락교회에 가서 한경직 목사의 설교도 많이 들었다.
 
 
© 크리티앙
 

한국 기독교계에 새롭고 건강한 바람이 불기를...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학문의 자유와 역사참여를 부르짖으며 기독교장로회교단을 세웠던 장공 김재준 목사를 존경한다는 그의 언급은 필자에게도 뜻밖의 놀라움과 상당한 반가움마저 안겨주었다. 그도 역시 한국 기독교가 건강한 기독교로 새롭게 바뀌기를 열망하고 있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라는 점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바야흐로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를 위한 운동이 이 땅에 강물처럼 들풀처럼 그리고 폭풍처럼 일어날 때가 아주 가까이왔는 느낌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혜화동 거리가 사뭇 고즈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대담 및 정리 / 정강길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 신간『미래에서 온 기독교』의 저자)
- 사진촬영 / 오진환 (크리티앙 대표)
 
 


게시물수 180건 / 코멘트수 490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2503 11-04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951 01-16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860 12-06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851 10-14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873 04-11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981 02-17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173 02-02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930 01-13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190 11-28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055 11-03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리인가 정강길 4642 04-27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3192 02-18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조직신학적 성경공부 (신론) (2) 관리자 5864 05-28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26) 관리자 5054 05-23
180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몰락이냐? 도약이냐? 미선 838 06-16
179 "함께 만들어가는 종교와 진리" (2) 미선 881 06-10
178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병치유 귀신쫓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미선 979 06-10
177 몸에 모시는 하나님 (탈유무신론의 신앙) 미선 811 06-09
176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896 06-07
175 과학의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 입장들 미선 878 05-30
174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하는 <몸학 기독교>로! 미선 802 02-10
173 신의 영어 표기 God ----> Gio 로 바뀌어야 미선 770 02-07
172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미선 845 12-08
171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면 나타나는 문제들.. 미선 609 11-04
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594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627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577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628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563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610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583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578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723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694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595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656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737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689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605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612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602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951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786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576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553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860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2503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579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634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682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744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579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557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557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659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851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632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600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613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873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1035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981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458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513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173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511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676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590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930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919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750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833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1090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866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1091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190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1017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902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055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1046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899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859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830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164 10-11
 1  2  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