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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 拔本과 再構築의 변증법 (이수훈)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9-21 02:05 조회(8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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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 拔本과 再構築의 변증법




이수훈 / 경남대교수, 사회학




무턱대고 그를 칭송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 참사를 보면서 필자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 세계를 보는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1996년 한 강연에서 그는 "우리가 이미 1990년대에 목도해온 것과 같은 엄청난 혼란이 현 세계의 보스니아와 르완다에서 세계의 더 부유한 지역들―가령 미국과 같은―로 퍼져나갈 것"이라 예견한 바 있는데, 선경지명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 1998년 그의 저서 《유토피스틱스》에서 "지상의 생지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뉴욕의 상황을 예견한 것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월러스틴은 "세계체제 분석world-system analysis"의 창시자로, 20세기 주목해야 할 지성으로 평가받아 왔다. 게다가 21세기 벽두인 지금도 엄청난 지적 활동을 벌이고 있어 문자 그대로 두 세기를 넘나드는 행운아이기도 하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고,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으로 그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적잖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 그의 저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 학계에는 아직도 월러스틴의 사상과 입장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의 인식틀을 오·남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그의 저서들이 대부분 우리말로 번역되어, 앞으로 그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긍정적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1. 지적 성장과 계보

1930년 미국 뉴욕 출신인 그의 지적 성장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인을 짚어야 한다. 하나는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이며, 다른 하나는 50/60년대에 정점을 이룬 미국 헤게모니다. 그는 1947년부터 1971년까지 24년간 컬럼비아대학에서 학부부터 박사까지 교육을 받았고, 이어 교수생활을 했다. 이 자체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이 시기가 바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미국의 핵심도시 뉴욕은 세계생산과 교역, 금융, 국제정치, 문화의 센터였다.

세계문화의 거점인 뉴욕과 서구 사회과학의 정점을 이루었던 컬럼비아대학에는 칼 폴라니Karl Polanyi, 밀즈C. W. Mills, 다니엘 벨Daniel Bell, 라이오닐 트릴링Rionell Trilling 등이 어우러져 사회평론 르네상스를 구가했다. 당시 컬럼비아 사회학은 구조기능주의가 강했는데도, 월러스틴은 자신을 이단자로 부를 만큼 이에 반기를 들었다.

월러스틴을 흔히 "68혁명"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는 분명 그 혁명의 중심에 있었고, 그 혁명에 참여, 결국 컬럼비아대학을 떠나야 했다. 그는 헤게모니 국가와 도시가 제공하는 문화적 자양분을 절제하지 않고 받아먹은 사람이며, 또한 미국 헤게모니에 거세게 저항한 반항아이기도 했다. 미국 헤게모니가 아니었다면 그가 후에 펼치게 되는 그 웅대한 지적 기획을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지적 활동은 세 시기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다. 제1기는 非서구세계에 관한 연구, 특히 아프리카의 植民領과 신생국 독립의 정치에 초점이 두어졌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話頭로 서구세계의 비서구세계에 대한 지배를 꼽고 이에 천착했다. 그는 서구가 지배하는 사회과학에서 비서구인들의 소외를 극복하고자 했으며, 그들에게 역사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프란츠 파농 F. Fanon으로부터 큰 영향을 입었다. 초기 종속이론가인 A. 프랭크A. G. Frank나 사미르 아민Samir Amin 같은 이들도 유사한 관심을 가졌다.
다만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은 중심/주변의 구도를 극복하고자 하며, 그 양자간 모순이 완화되고 그래서 전체 체제가 유지되는 데 이바지하는 반주변부라는 새 범주가 추가되는 바, 이는 그의 중요한 학문적 기여로 평가된다. 자신을 아민, 프랭크, 아리기Giovanni Arrighi와 더불어 "4인방"으로 부를 만큼 학문적 유대는 강했으나 서로간의 견해차도 엄청나다.

신생국 독립과 이후 민족통합 연구에서 그가 봉착한 딜레마는 바로 국가에 관한 문제였다. 긴 고민 끝에 주권국가나 민족사회가 사회체제를 구성하지 못한다고 단정, 이들을 버리고 세계체제만이 유일한 사회체제라고 결론짓는다. 적어도 사회체제라 부를 때는 두 가지 조건, 즉 자기완결성과 내재적 발전 원리를 갖추어야 하는 데 세계체제만이 그 기준에 합당하다고 본 것이다.

제2기는 세계체제의 작동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 시기다. 세계체제는 지리적이고 기능적인 광범위한 분업체제이며, 현실적으로는 유럽에서 16세기 긴 과정을 거쳐 태동하게 되었다고 본다. 유럽에서 탄생한 근대세계는 그가 "세계경제"라고 부르는 유형이었으며 자본주의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단일한 분업체제 안에 다수의 정치구조와 문화들이 산재하기 때문에 단일 정치구조를 갖는 세계제국과 구분된다.

이 시기, 특히 《근대세계체제 1》을 집필하면서 프랑스 아날학파의 대부인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과 교류를 시작했다. 마르크스, 슘페터, 폴라니와 더불어 그의 사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바로 브로델이다. 시간과 공간이 사회적 창안이라는 인식, 그리고 그들이 사회분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깨우침을 준 이가 바로 브로델이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끊임없는 자본축적을 그 첫째 속성으로 삼으며, 상품생산을 위주로 한다. 그것은 중심-주변-반주변이라는 기축적 분업구조를 가지며, 이들이 이루는 세계시장을 주목한다. 이에 대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는데, 라클라우Ernesto Laclau와 브레너Robert Brenner가 월러스틴을 생산관계를 무시한 유통론자로 치부했다. 스카치폴Theda Skocpol과 졸버그Aristide Zolberg는 정치를 중시하면서 그를 경제결정론자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제3기는 사회과학 및 지식구조 연구기다. 특히 19세기 사회과학의 본격 등장이 당시 유럽 세계경제 발전의 정당화 기제로서 지니는 의미를 밝힌다. 그는 유럽중심주의로 물든 근대 사회과학의 면모들―견고한 분과학문구조, 소통과 대화의 부재, 비서구 지식형태의 야만시, 역사와 법칙의 대립,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이등분―을 밝히고 이로부터 탈피할 것을 주장한다. 역사적 사회과학, 단일 학문에 대한 실행을 강변한다. 세계의 모든 지식이 존중되고 진정한 의미의 보편성을 얻기 위해 벗어남과 열림을 강조한다.

이런 광대한 지적 기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는 기존의 제도들을 활용하고, 새로운 지적 제도를 조직하는 데 수완을 보였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의 추진력이 있고, 자신이 위치한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관련된 제도와 조직만 대충 살펴보더라도 뉴욕의 빙햄턴대학 사회학과, 페르낭 브로델 센터, 파리의 인간과학연구소, 세계체제 정치경제학회, 세계경제 콜로키움, 《리뷰》와 《세계체제분석》 저널, 사회과학재구축위원회, 국제사회학회 회장 등을 열거할 수 있다.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지식활동이 있고, 그것을 제도와 조직이 뒷받침한다. 석학이 되는 데 그런 능력이 작용했고, 이제는 석학이기 때문에 그런 능력의 발휘가 한층 쉬운 측면도 다분하다.


2. 역사적 세계체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아무래도 분석단위라고 할 수 있다. 월러스틴에게 있어 분석단위는 예사로운 사안이 아니라 분석자가 부딪히는 첫 질문이라는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 이슈다. 따라서 그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연구과제다.

그의 세계체제 분석은 개별적인 것을 전체 속에서 볼 수 있는 인식론이고, 실제 방법론에서는 "연쇄적 현실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지배적 논리들을 담아낼 만큼 시간적으로 충분히 길고 공간적으로 충분히 넓은, 그런 체제적 구조들" 안에서의 분석을 지향하기에, 분석단위가 이 같은 의도에 부합해야 한다. 그런 의도에 부합하는 분석단위는 대규모적인 역사적 "사회체제"여야 한다.

그리고 그 사회체제는 자기완결성과 내적 발전 논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체제"는 사회과학자들이 당연시하는 (국민)국가도 아니요, 민족사회도 아니고, 바로 세계체제이다. 1950/60년대의 지배적 사회변동론이라 할 수 있는 근대화/발전론은 대체로 민족사회 내적 요인들을 부각시키는 인식론이며 一國的 발상법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입론에 발본적 문제제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세계체제의 여러 유형가운데서도 16세기 서구에서 대두한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그의 관심사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분석하고자 하는 세계체제는 아주 특수하고 매우 역사적인 체제이다. 그가 이 체제가 갖는 특수성을 규명하기 위해 체계적 분석을 시도한 바는 없으나, 이 체제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근대세계체제》 시리즈를 통해 나름대로의 기여를 해내고 있다. 세계체제 분석이 기왕의 주류 사회과학에서 실종된 시간과 공간을 복원해냈다는 의의를 갖는다는 주장도 그가 "역사적 세계체제"를 분석단위로 삼았기에 가능했다.

이 부분은 역사가인 브로델로부터 크게 영향을 입었다. 월러스틴은 브로델의 시간유형 가운데 특히 "장기지속" 개념에 주목하여 "장기지속은 세계체제의 공간적 특질에 대한 시간적 상관물"이며 "세계라는 공간과 장기지속이라는 시간이 한 쌍으로 어울려 모든 특정한 역사적 세계체제를 구성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세계체제"만이 구조적 사회변동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단위가 된다.

세계체제를 분석단위로 삼은 월러스틴은 국가나 민족사회, 그리고 심지어 이들을 다수 포괄하는 지역에서조차도 포착할 수 없는 여러 현상들을 분석의 과제로 삼아왔다. 가령 장기적 추세, 주기적 파동, 대규모 긴장과 갈등, 헤게모니체제와 같은 권력편제, 상품연쇄 등을 꼽을 수 있다.
세계체제 분석이 세계체제를 분석단위로 삼는다고 해서 국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세계체제의 창출물이긴 하되 그 역할과 기능이 있는 매우 중요한 제도적 구조라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국가는 자본축적의 규칙을 정하고 자본축적의 극대화를 위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자본가들은 시장과 경쟁을 외치면서도 항상 독점을 추구하는 바, "모든 독점은 정치적 기초를 지닌다"는 언명은 국가의 지원 없이는 경제의 지배에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국가가 "자본가들의 국가"일 필요는 없으며,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 메커니즘이라는 인식도 이래서 가능하다.

반대급부로 국가는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실상 국가가 강대하다―중심국가―는 의미는 국가의 결정적 필요가 있을 때에 그런 자본가들의 합의된 지원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이런 차원의 국가권력은 개별 국가가 세계경제의 어느 구역에 위상 지워지는가를 결정하는 데도 핵심적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국가들은 공백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정치적 표현이자 그 상부구조인 "국가간 체제"의 틀 안에 존재한다. 국가간 체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榮枯盛衰와 대체로 고락을 같이 해왔다.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공고화되고 팽창함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국가간 체제의 공고화와 팽창이 뒤따랐다. 따라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국가들은 국가간 체제의 작용에 의해서 그 형태와 힘, 그리고 영역이 끊임없이 변해왔다.

근대국가의 자율성이나 국가주권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국가들은 국가간 체제의 필수 부분으로서 형성되어 왔고, 국가주권이란 것도 불평등적으로 부여되거나 박탈되었다. 국가간 체제는 국가들이 작동해야만 했던 일련의 규칙이자 정당화체계였다. 이 규칙은 형성이나 시행에서 동의나 합의가 아니라 강제와 제약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상부구조로서 국가간 체제가 아주 특이한 점은 그것이 과거와 달리 "세계제국"으로 전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분석단위 문제는 단순히 분석단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변동론의 온당한 분석단위가 세계체제임이 주창된 이상, 분석단위는 다른 사안들과도 깊은 내적 연관을 맺는다. 그런 사안들 가운데 월러스틴은 국가발전, 변혁운동, 사회과학인식론 등을 중시하였다. 이들 사안들을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 월러스틴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바가 一國수준의 사고를 경계하고 조망을 세계체제 수준으로 높이라는 주문이다.

국가발전 문제만 하더라도 기존의 인식론을 단번에 뒤집는다. 70년대의 캐치워드였던 "발전" 문제는 사회과학의 핵심 이슈였다. 당시 다수의 주류 사회과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부 지역의 발전에 이해관계가 있었던 국제기구들도 "국가발전/저발전"을 유행으로 삼았다. 민족사회 내부의 인간자본 양성―문화적 개화, 심리적 전환, 교육과 훈련―과 외부로부터의 생산자본 유입이 근대화/발전론의 다양한 갈래 속에서 강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월러스틴은 "국가발전"이 대다수의 경우 환상이라는 지적과 함께, 막상 발전하는 것은 (국민)국가가 아니라 세계체제이며, 특정 국가가 "발전하였다"는 의미는 바로 그 국가가 늘어난 세계체제의 물질적 富를 보다 더 많이 자기 이름 앞으로 옮겨놓은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발전주의적 환상 혹은 발전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월러스틴의 공격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발전의 격차가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양극화와 절대적 양극화 논리 때문에 세계체제의 상층과 하층간의 격차는 계속 벌어져왔다는 것이다.

1989년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역시 一國노선의 "시효만료"로 본다. 마르크시즘의 변형인 "레닌이즘-스탈린이즘"의 좌초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되며, 舊좌파의 피날레로 파악한다. 국가중심적 변혁론은 항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국가는 변혁을 관리·통제할 수는 있으되 전체 세계체제의 이행에는 오히려 "주요한 장애"가 된다.

1989년에 대한 해석의 특이점은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승리가 아니라 패배라는 것이다. 사회주의권이 세계체제의 버팀목 기능을 했는데,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건물의 한 기둥이 뽑혔다고 본다. 동시에 舊좌파가 패배했다는 인식이다. 광범위하게 집권한 舊좌파는 평등이라는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으며, 다른 집권세력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쥐어짠다는 비판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1968년에 일대 문제제기 후 1989년에 마감되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국가에 대한 결정적 문제제기가 일어나며, 反국가주의의 물결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과학 인식론 문제는 이후에 별도로 상술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역사적 세계체제"라는 분석단위와의 연관성 차원에서만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월러스틴이 사회과학의 분과학문구조를 타파하고 단일학문을 지향한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 지향의 근거는 인간의 사회행위가 정치·경제·시민사회 등의 영역으로 나누어질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런 구분 위에 기초한 사회과학으로부터 시급히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회과학 학문들의 통합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사회과학과 역사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 이는 그의 분석단위에서부터 그 출발점이 있다.

그는 특히 법칙정립 對 개성기술이라는 허위적 대립구도를 넘어선 통일학문 혹은 단일학문을 지향하는 바, 이는 특정 역사적 체제의 과정을 해석하는 일 외에 다른 길을 갖지 않는다고 보았다. "역사적 세계체제"는 보편주의 인식론을 탈피하되 단순 기술들의 집합에 빠지지 않기 위한 대안적 인식론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주창하는 역사적 사회과학은 특정한 시공간의 매개 속에서만 타당성을 가지며, 그 시공간이 바로 "역사적 세계체제"가 되는 셈이다.


3. 자본주의론

그는 자본주의를 16세기 서구에서 대두한 매우 특이한 "역사적 세계체제"로 보았고, 이를 세계체제의 한 유형인 "세계경제"라 했다. 단일한 세계경제 안에는 위계적이고 지리적인 분업구조가 존재하며, 그 분업으로 상호연결된 생산의 구조들이 있는 공간에서 다수의 정치 및 문화구조들이 창출되고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런 과정 속에 장기적 추세와 주기적 파동이 작동하여 체제를 진전시키며 팽창시키고, 그 결과 유럽에서 시작된 세계경제가 19세기말경에는 전지구를 그 논리와 경계선 안으로 편입시켰다고 했다. 세계경제의 상부구조로서 국가간체제 역시 공고화와 팽창의 궤적을 보였다는 점은 이미 지적한 바 그대로다.

위계적이고 지리적인 분업은 복잡한 "상품연쇄"들에 의해 얽혀 일어나며, 창출된 정치구조(국가)에 의해 "상품연쇄"상의 독점이 유리한 다수의 과정들이 소수 지역에, 보상수준이 낮은 과정들이 다수 지역에 집중시켜진 결과 핵심-주변(반주변이라는 제3의 구역과 더불어)이라는 階序的 구조를 탄생시켰다. 창출된 물질적 富는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하며, 국가들도 세계경제의 특정 구역에 자리매김 당해 정치적 양극화를 동반한다. 아울러 지리적 분업은 상품연쇄와 맞물려 상품생산을 우세하게 만들고, "세계시장"을 탄생시킨다. 세계체제 분석에서 자본주의는 세계경제가 되며, 세계시장도 동의어로 사용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세계체제 분석은 흔히 역동적인 생산관계를 무시한 유통론이며 계급투쟁을 간과한 경제주의라는 비판이 있어왔는데, 그 비판의 근거가 바로 지리적 분업에 기초한 상품생산, 그리고 세계시장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라는 차원에서 이는 중대하다. 그러나 그가 자본주의 제일의 특징으로서 자본의 끊임없는 자기확대를 꼽은 점, 그리고 생산구조들간의 상품연쇄를 중시한 점을 감안할 때 그의 분석을 유통론이라고 몰아부치는 데도 무리가 있다.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되는 것이고 자기확대하는 자본은 생산수단이 되어 교환가치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세계경제 혹은 세계시장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 이상 월러스틴에게는 그의 비판가들이 주목하는 非자본주의적 요소들도 당연히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간과할 수 없는 특징적 일부이거나 체제의 기능적 구성요소가 된다. 가령 非임금노동의 존재, 주변지역의 존재(그리고 半주변부의 정치적 중요성), 사회주의 국가,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모두가 자본주의의 주된 특징인 끊임없는 자본축적을 위해 구조적 요인으로나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한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인식이다.

월러스틴의 자본주의관을 논함에 있어 그가 브로델로부터 주고받은 교감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브로델은 자유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고전적 자본주의 인식을 "거꾸로 뒤집었"는데, 월러스틴은 이런 개념규정을 주목한다. 즉,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자유경쟁시장"을 확립했다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자본가들이 "전문화"(상업, 산업, 금융 등으로 전문화)를 실천하였다고 보았는데, 이런 두 가지 인식을 뒤집었던 것이다.

브로델에게 있어 "진정한 자본주의"는 경쟁과 시장이 아니라 투기와 독점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고, 어둡고 불투명하며 힘과 농간이 판치는 "정글"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反시장적인 체제이며, 시장경제 위에 존재하는 "예외적 이윤"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 그에게는 경쟁과 독점이 자본주의 시장의 서로 투쟁하는 두 개의 구조다. 그리고 오직 "독점의 꼬리표"로서 "자본주의"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자본가들이 전문화를 실천했다는 인식도 뒤집는다. 흔히 상업자본, 산업자본, 금융자본을 三位로 구분하고 그들에 일종의 단계를 매기며 도덕적 평가를 하기도 하는 인식론을 반대한다. 자본가들은 "무한한 유연성"을 확보하고 "변화에 대한 수용력"을 높이기 위해 절대로 투자를 집중하거나 전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브로델의 인식이다. 이런 점이 자본주의의 全역사를 놓고 볼 때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했다.

브로델에게 있어 "시장"―물론 1980년대와 90년대 들어 얘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의미의 시장과는 전혀 다른―은 해방을 의미한다. 공정한 가격에 따라 경쟁이 이루어지는, 폴라니가 말하는 "자기조절적 시장"이 출현했다면, 그 체제는 노동에 의한 잉여만 남는 "작은 이윤의 영역"이겠기에 해방과 개방을 要諦로 하는 또 하나의 세계에 접근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브로델은 시장 세력과 반시장 세력간의 끊임없는 긴장관계 혹은 투쟁구도를 주목하고, 대다수의 자유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공유하는 맹신 즉 자본주의의 발전 결과 유토피아에 이른다는 "필연적 진보"에의 맹신을 경계하는데, 월러스틴의 여러 저술에는 그 영향이 드러난다.
물론 월러스틴이 이런 브로델의 관점을 전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지만, 그 역시 "해방하는 시장" 체제 정도만 된다면 공급과 수요가 진정한 가격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렇게 되면 소비자가 투명하게 자신의 경제생활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평등을 지향하는 체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4. 사회과학론

"역사적 세계체제"를 분석단위로 삼은 월러스틴이 산산조각 난 기존의 사회과학 인식론에 일대 뒤집기를 시도하고, 뒤이은 재구축을 요청하는 일은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는 현대 사회과학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만들어낸 피조물이자 그 문화의 일환으로 본다. 끊임없는 축적을 요체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등장, 그리고 이와 상호작용관계 속에서 태동한 국가간 체제가 근대적 의미의 사회과학을 형성시킨 역사적 배경이었다.

특히 19세기에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자신을 체제로서 정당화하기 위해 현실에 대한 구체적 지식을 필요로 했다. 대학 내에 여러 사회과학 학문들, 즉 국가와 시장을 다루는 정치학과 경제학, 그 나머지 잔여 영역들을 다루는 사회학, 그리고 非서구세계를 다루는 인류학 등이 근대적 지식체계로 제도화된 것은 이러한 체제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현대 사회과학 인식론은 19세기에 제도화된 것이며, 지식의 한 형태로서 그 당시 지배적 사유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매우 역사적인 지식이다. 우선 19세기 사유는 산업자본주의시대의 반영이며, 자본주의의 발전과 중앙집권국가의 본격 등장이라는 19세기 거대한 사회적 전환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19세기 사유의 시대적 배경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이라는 두 사건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이 두 사건은 새로운 사회 이론을 자극하였고, 진보에 대한 신념의 융성을 초래하였다.

그는 세계경제의 전개과정과 사회과학의 제도화를 연계시키고자 하였는데, 19세기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발전시킨 일련의 사회과학 제도화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언급하였다. 첫째, 인간공동체가 정치, 경제, 사회/문화라는 세 영역으로 분리될 수 있고, 실제로 분리되어 작동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이에 따라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이라는 사회과학의 분과 학문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후 학회가 이 같은 삼분법에 조응하는 형태로 형성되고 대학의 제도화가 뒤따랐다. 19세기의 이 같은 사회과학 제도화는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회과학을 "칸막이 치고", 학자들을 제도적으로 분리시켜 교류와 소통을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반인의 사고와 행위를 삼분법적으로 분리시킨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제도화의 배경 논리는 지식의 파편화이자, 지적 분업체제의 성립이다. 사회체제는 분명 총체적이며, 이에 대한 지식마저도 총체적이어야 하는데, 사회체제를 분석의 편리를 위해 영역별로 나누었고, 그에 따라 지식의 파편화가 뒤따랐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과정에서 사회체제의 많은 영역들이 배제되었다.
그는 특히 '개성기술 對 법칙정립'이라는 허구적 긴장구도를 주목했다. 이 둘의 갈림 역시 19세기에 있었던 사회과학의 제도화 과정의 산물이다. 전통적인 역사학도 근대적인 과학으로 변형되어 대학 내에 자리를 잡으면서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인식론적 측면이 '개성기술 對 법칙정립'이라는 양분법으로 갈려졌다는 것이다.

그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리고진느I. Prigogine의 복잡성 연구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예측성, 정확성, 단순성 전제에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며, 흔히 단순하다고 인지하는 현상들이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다는 인식과 더불어 단순한 현상이란 실제로 세상에 없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어떤 체제도 평형상태로부터 너무 멀어지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점, 분기에 도달한다는 점, 분기에서는 체제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등은 이행론과 관련해 프리고진느로부터 영향받은 결과이다.

그가 "복잡성"을 강조하는 또다른 이유는 복잡성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수렴시키는 요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복잡한 체계의 다이내믹 속에서 질서를 찾는 방법을 옹호한다. 복잡한 사회를 분석적 편의를 위해 작은 부분들로 해체시켜 다루어서는 안 되며, 복잡한 문제들을 복잡한 대로, 인간과 자연을 함께, 그리고 그들간의 연관성을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이 사회과학 재구축의 노선 가운데 하나다.

그는 세계체제분석이 가령 아날학파 전통이나 역사사회학 분야보다 좀더 구체적이며, 양자에서 흐릿하게 되어 있는 몇몇 요소들을 적시하였다고 주장한다. 앞서의 분석단위 논의에서 이미 논급한 대로, 그는 전체로서의 세계체제, 역사적 체제로서의 세계체제 인식과 함께, 이 역사적 체제의 해석도구로서 "역사적 사회과학"을 주창한다.

그는 이를 통해 개성기술 對 법칙정립, 특수성과 보편성, 역사성과 구조결정성 사이의 긴장을 두고 대립·방황해온 사회과학을 탈피하여 그 극복을 모색한다. 그는 현재 "칸막이 쳐져" 있는 사회과학 분과 학문들을 "통일과학"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단 하나의 총체로 이해하여야 하며, 이 총체는 그 구조와 動因에 관한 이론화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전체로서의 체제의 역사를 그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에 걸쳐 추적함으로써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그는 파악한다. 이를 위해 "발견적" 방법과 "전체론적" 방법을 옹호한다.

그는 뒤집힌 사회과학을 재구축하기 위해 기왕의 보편주의가 "지역 편파주의적"이자 "특정주의적"이었다는 점, 인간과 자연이라는 인위적 이분법은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 "사회행위가 발생하고 또 사회행위가 분석되어야 할 일차적 경계선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라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 "객관성"의 현혹성에 빠지지 말 것 등을 우선 제시한다.

진정한 보편은 기왕의 특정주의가 배제한 세계의 무수한 부분들이 분석의 중심에 복귀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문화적" 사회과학 혹은 "문화간" 사회과학을 요청한다. 그리고 객관성의 정치적 함축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지식의 사회적 기초, 연구자의 정직성과 "間주관성inter-subjectivity"에 대한 존중, 지식의 파편화에 대한 거부 등의 방향으로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지식의 파편화를 문제삼는 차원을 넘어서 지식 일반과 제반 지식제도들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삼분법으로 구분되어 있는 보다 큰 학문현실도 문제삼는다. 세계체제를 단일한 전체로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인식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그의 "뒤집기" 사유방식이 드러난다.

지식의 제도화라는 것도 결국 역사적 창출이기 때문에 분명 저간의 맥락이 있었을 터이므로 그 과정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며, 그런 과정에 개입된 세력이 누구였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무엇이었는가를 따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스노우C. P. Snow가 말하는 "두 문화"의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창안으로 "사회과학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인문학과 자연과학간의 만남을 사회과학이 중매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5. 위기론

월러스틴은 "역사적 세계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1970년대 초 이후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의 "위기" 개념은 체제의 이행과 같은 의미라고 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 데는 우선 그것이 바로 "역사적" 세계체제이기에 그렇다는 근본적 인식에서 비롯된다. 하나의 "역사적 체제"에 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체제 속에 "구조적 重壓"이 존재함을 뜻하고, 그 중압이 너무 커 "그 체제의 소멸이 유일한 결과로 나타나는 상황"을 가리킨다.

정황이 그렇게까지 된 것은 그 "역사적 체제의 내부 모순들이 축적된 결과" 때문이고, "현행 제도적 패턴 내의 조정을 통해서는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는 정황"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그런 구조적 중압이 세계체제의 경제, 정치, 문화의 세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작동 원리상 구조적 위기가 왜 오는 지에 대한 논급은 그의 저술 여러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세계체제의 현 정황을 위기로 파악한 데는 1970년대 초 이후 시작된 세계경제의 "축적 위기"와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퇴조가 근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제1특징으로 "끊임없는 자본 축적"을 꼽았다는 점은 앞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현 체제가 위기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은 바로 그 체제의 속성인 "끊임없는 자본축적"이 어려움을 맞고 있다는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는 현 정황을 역사적 자본주의의 위기로 진단하는 데 있어 지난 50여 년간에 걸쳐 일어났던 체제의 세 가지 구조적 변화에 주목한다. 첫째, 전세계에 걸친 "脫농촌화"이다. 이는 가속적 도시 프롤레타리아化와 동의어로서 값싼 노동력 충원의 불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바, 끊임없는 축적을 다이내미즘으로 삼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서는 결정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의 상품화, 즉 프롤레타리아化가 임계점에 가까워지면 자본주의는 존립상의 근본적 위기를 맞게 된다는 그의 "위기론"에 부합하는 인식이다. 자본축적자에게 있어서 완전한 프롤레타리아化는 지연되는 것이 유리하며, 半프로 가계가 선호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 자본축적자들이 국가의 비호아래 "비용의 外部化"를 과도하게 추진시켜버린 결과 그 중압이 구조적 위기에 한 몫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역사적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축적자들은 가능하다면 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윤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것이 철칙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자신이 내야 할 "청구서"를 지불하지 않고 축적활동을 하는 자본축적자들의 아주 "더러운" 비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세계체제적 "비용의 외부화"는 "생태 위기"라는 감내하기 힘든 부메랑이 되어 자본축적자들과 국가들의 부담으로 돌아와 해결을 요구하게 되었다.

셋째, 세계체제의 하층과 중간간부층에 의해 가해지는 부단한 "민주화의 압력"이 있다. 이에는 최저임금보장, 후세들에 대한 교육 및 건강의 보장 등과 같은 항목들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 비용은 매년 상승하는 특징을 갖는다. 다시 말해 자본축적자들의 "청구서" 규모가 점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자본축적자들이 이를 "사회화"한 결과 오코너J. O'Connor가 말하는 국가의 "재정위기"가 대다수 복지국가들에게 초래되었다. 문제는 국가도 "재정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고, 다른 메커니즘은 현 체제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이를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바, 우리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러한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월러스틴에게 있어 1989년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가 "자유주의"로 규정한 세계체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1989년의 공산권 붕괴 이후 나온 자유주의의 승리라는 일반적 주장을 논박하는 것이다. 월러스틴에게 있어서 "자유주의"란 프랑스혁명에서 싹이 터서 미국 헤게모니 기간동안에 꽃을 피운 후, 1970년대 초 이후부터 급격히 퇴조하다가 1989년에 공식적으로 붕괴되는 세계경제의 이데올로기다.

"자유주의"는 중도적 개량주의로서 자본축적자들에게는 축적의 자유를, 그리고 세계체제의 하층에게는 최소한의 정치적 참여와 물질적 복지를 담보해주는 일종의 합의이며, "위험한 계급들"을 길들이는 세계체제의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1989년은 그런 자유주의적 합의가 깨진 역사적 시점이며, 세계체제는 "자유주의 이후"라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입장이다. 이것이 암흑기이자 위기인 것은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된 후 정확히 200년만에 그것이 붕괴되고, 세계체제가 "위험한 계급들"을 길들일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해내야만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는 차원에서다.

물론 세계체제가 정확히 200년 전으로 복귀한 것은 아니다. 월러스틴은 우리가 진정한 해방을 기획하고자 한다면 지난 200년 동안에 세계체제의 "지리문화"상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당대의 지리문화는 변했고, 세계체제의 주역들도 다소간 과거와는 차이가 난다. 세계체제의 상층은 다시 한번 이데올로기적 편제를 만들어내어 순조로운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월러스틴은 이번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리라고 본다. 미국을 비롯한 북반구의 정치지도자들은 전세계의 경제적 부담을 떠맡을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그래서 더욱 이 시기를 암흑기, 移行期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행기는 세계 대다수 대중에게 있어 분명 혼돈스럽고 고통스런 기간이라는 것이 월러스틴의 입장이다. 그리고 이 "해체"의 기간이 앞으로 50년 정도 계속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 기간은 "복잡성"과 "불명확성"이 우세한 "시공간"이다.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이 시공간은 첨예한 정치적·문화적 투쟁과 도덕적 선택을 강요하는 시공간이 될 수밖에 없으며, 어떤 "분기점"에 이르러 새로운 질서가 도출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공간이다.

그는 계몽주의의 산물인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맹신에 대해 강한 회의를 여러 곳에서 표시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체제는 지금보다 퇴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정해두어야 한다는 경고도 간혹 던진다. 그는 우리에게 "법칙적" 사유가 아니라 "열린" 사유를 요청한다. 우리가 "소용돌이"속에 빠져 있다면, 우선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나서 빠져나가야 할 방향을 잡아야 하며, "지금 해야 할 자신의 노력이 그 방향으로 향하는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역사적 대안에 대한 평가에 천착하기를 요구하고, 대안으로 가능한 역사적 체제들을 "실질적 합리성"―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하는―이라는 관점에 서서 분석하고 실천하기를 당부한다.


6. 맺음말

월러스틴은 애당초 미국의 국내정치에 학술적 관심을 두었던 사회학자였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에 인종이라는 범주가 중대하다는 인식에 이르러 아프리카 지역연구로 그 학술적 기획을 넓히게 되었다. 또한 아프리카는 "유럽 세계경제"가 팽창하면서 발명된 하나의 지역적 산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 세계경제"의 대두에 관련되는 서구경제사에 뛰어든다. 그 결과 그의 주저인 《근대세계체제》 시리즈가 구상되고, 그 제1권이 출간되면서 "세계체제 분석"이라는 거창한 학술 기획을 제출한다.

애초에 세계체제 분석은 근대화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출발했다. 그것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이론에 대한 요청이었다. 그리고 70년대 사회과학 지형내부의 한 운동이었던 것이다. 세계체제 분석은 기존의 지배적 사회과학 인식론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자 "문제제기"이며 하나의 전망이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발전하여 세계 사회과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제는 보다 나은 사회과학을 위한 틀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월러스틴은 이런 성취를 위해 광대한 기획을 실행했다. 《사회과학의 개방》에서 사회과학 再구조화에 대한 몇 가지 구체적 실험 프로그램을 제시한 이후, 그는 전세계의 학문공동체가 참여하는 "진정한" 보편과 "단일과학"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을 열성적으로 추진한 결과, 1998년에 《사회적 지식: 유산, 도전, 그리고 전망》이라는 10권의 시리즈를 출간했다. 이 시리즈는 동서양의 경계, 남북간의 경계, 모든 학문들의 구분을 허무는 그런 대화와 소통의 지식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과 투쟁이 담긴 기획의 결과이며,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월러스틴은 역사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이행기로 접어들었다고 확신한다. 이행기는 대략 50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 이행기는 "지상의 생지옥"이라는 표현이 은유하듯이 대단히 혼란스럽고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그런 시기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후 새로운 세계체제가 지금 체제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며, 그 대안적 체제는 그 성격이 순전히 유동적일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에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그리고 있는 대안이란 "실질적으로 합리적인 역사적 체제"이며, 그것은 대체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세계체제이다. 이 대안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본축적의 우선성을 제거하는 과제가 선행되어야 하고, 비영리적 경제단위들의 설립이 그러한 대안적 체제의 구조적 요소가 된다. 그는 효율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비영리 단위가 왜 효율적일 수 없는가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본축적의 우선성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불평등의 가장 강력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모든 부수적인 불평등 요인들―性·인종·민족 차별 등―보다 우선권을 갖는다고 본다. 그렇게 그의 지적 투쟁은 아직도 계속된다.



2002-09-29 17: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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