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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기회균등에 더해 결과의 평등도 강조” “사회·경제민주화에 가장 적합한 이념”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9-02 15:49 조회(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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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균등에 더해 결과의 평등도 강조”

“사회·경제민주화에 가장 적합한 이념”

3 사회민주주의

사회 |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고려대 교수(철학)

패널 |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정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탐욕스러운 시장, 못 미더운 국가…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북유럽의 여유로운 삶과 평화로운 풍경으로 상징되는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는 한편 부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와 너무 먼 나라의 이야기인 듯 여겨져왔다. 풍부한 자연자원과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유럽의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지정학적 조건 등 한반도와는 사뭇 다른 여건을 고려할 때, 그것이 우리의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레드 콤플렉스의 뿌리가 깊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의도적인 거리두기였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아군 아니면 적군이라는 선명한 노선 구분을 요구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사민주의는 보수뿐 아니라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여하튼 그것은 아름답지만 우리가 꿈꿀 수 없는 사회 같았다.

 

그런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어느 정도 이뤄내고,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면서 우리는 사민주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특히 1997년 말 외환위기 와중에 제기된 ‘사회안전망’의 문제는 그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거대한 초국적 금융자본의 물결 앞에서 전통적인 ‘가족의 보호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지 절감했고, 견고한 사회안전망을 갖춘 북유럽 국가들과 이제 막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국가가 어떻게 다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 철저하게 편입될 것을 강요받았고, 그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는 ‘지도자’를 따라 신질서의 ‘모범생’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목소리는 ‘카드 빚’을 내서라도 외환위기를 먼저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 뒤로 잦아들었다.

 

그러나 2008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중심지대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가 유일한 대안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 사태를 통해 제기된 문제는 ‘시장’과 ‘국가’라는 더욱 근본적인 것이었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에 맡긴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는 분명했다. 국가가 통제하지 않는 시장은 자본에 의해 얼마든 타락할 수 있고, 시장과 자본은 그것을 조절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국가는 단지 시장과 자본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국가를 압도할 만큼 거대해진 시장·자본과의 지난한 싸움을 통해 그 통제력을 확보하려고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난 대통령선거의 초점이던 ‘복지’ 논쟁을 통해 ‘사회·경제민주화’를 이 시대의 과제로 설정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공산권 붕괴,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거대한 전 지구적 사태를 겪으며 방황했던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에 관한 논의가 일단 가닥을 잡은 셈이다. 국가는 시장과 자본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안정적인 경제 발전을 추진하되 재화를 공정하게 재분배하고 국민을 사회경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 책임은 상당 부분 국가 또는 정부에 맡겨졌지만 문제는 국가가 그만큼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국민은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견고하게 구축하기를 기대하며 국가에 힘을 실어주려 하지만,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국가가 정당하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국민은 국가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 복지를 책임져주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세금을 내려 하지만, 국가가 그 세금을 공정하게 걷고 정의롭게 사용할지에 대해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복지는 국가 구성원 간, 특히 세대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나의 노후를 맡기는 데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대가족제도의 ‘가족보호망’이 국가의 ‘사회안전망’으로 대체될 수 있으려면 가족에 대한 신뢰만큼 국가에 대해, 그리고 국가 구성원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시장과 자본이 아닌 국가에 대해 ‘사회안전망’을 요청할 때,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국가를 신뢰하는가. 국민 서로를 신뢰하는가. 아니면, 국가의 권력과 재정에 대한 투명한 견제장치를 확보했는가.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김형찬 ‘사회민주주의란 이러한 것을 가리킨다’고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사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 신정완 교수는 학자로서 사민주의를 연구해왔다. 노회찬 대표는 사민주의를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활동가다. 사민주의가 뭔지 말씀해달라.

 

신정완 김형찬 원장 말씀대로 사민주의는 사전적으로 정의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다. 간략하게 정의하면 의회민주주의 질서를 통해 합법적 방식으로 권력을 획득한 후 권력 행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좀 더 평등하게 만들고자 하는 중도좌파 이념이라고 하겠다.

 

사민주의의 특징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경쟁 이념과 비교해보자. 공산주의는 국유화에 기초한 전면적 계획경제를 지향하는 이념이다. 19세기 말까지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와 동의어로 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이 지향하는 경제체제를 소련식 모델과 확연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사민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분은 두 이념이 지향하는 ‘최종 사회’에 도달하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공산주의는 폭력혁명을 통해 사회를 전면적으로 변혁해야 한다고 여겼다. 반면 사민주의는 선거제도를 통해 평화적, 점진적 방식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사민주의자들은 2차 대전 이후 국유화와 계획경제를 상대화해버린다. 그것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 질서, 그러니까 사적 소유권이라든지 시장을 통한 자원 배분을 존중하되 국가권력과 노동조합의 개입을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하는 이념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와는 어떻게 다른가. 사민주의는 정치 질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전적으로 수용한다. 보통선거권, 다당제, 대의민주주의, 다수결 등을 인정한다. 자유주의 요소 중 정치적 자유주의, 다시 말해 사상과 양심의 자유, 신체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100%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와 사민주의에 차이가 없다.

 

 

자본주의 폐해 극복 시도

 

양자 간 구별이 생기는 지점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둘러싼 쟁점에서다. 자유주의 세력은 사적소유권에 대한 존중, 시장 질서에 대한 존중을 굉장히 강조하면서 가능한 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는 반면 사민주의 세력은 자본주의 질서 자체가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점을 가졌으므로 국가의 ‘경제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개입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타나날 수 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도 강력한 개입주의였다고 할 수 있지만, 사민주의적 개입주의는 평등에 방점을 찍는다. 또한 사회경제적 약자의 지위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

 

김형찬 신정완 교수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사민주의를 구분해줬다. 노회찬 대표가 이해하는 사민주의는 뭔가.

 

노회찬 똑같다. 신정완 교수 말씀처럼 사민주의에는 두 가지 강조점이 있다. 사회를 바꾸는 수단과 방식에서 민주적 과정을 중시한다는 게 하나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꾸준히 시도한다는 점이다. 또한 사민주의는 폭력적 수단에 의한 변화에 대해 완강한 반대 혹은 거부를 전제한다.

 

사민주의는 정형화하지 않은 채 시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진화해왔다. 앞으로도 변화해나갈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달리 교조화하지 않았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하겠다. 오늘날의 사민주의는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의 사민주의와는 다르다. 당시의 사민주의를 떠올리면 개념이 혼동될 수 있다. 우리에게 ‘사민주의의 현재’를 보여주는 곳은 북유럽의 복지국가다. 북유럽에선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져도 사민주의 모델을 계승한다.

 

김형찬 사민주의는 역사적으로 변천해왔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신정완 사민주의 운동의 가치는 그간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본다. 자유 평등 연대를 강조한다. 자유주의는 자유 평등 연대에 반대하나?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 평등 연대는 뭔가. 자유주의자가 생각하는 자유는 소극적 자유다. 타자의 간섭과 강제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 반면 사민주의자는 적극적 자유를 강조한다. 타자의 간섭과 강제로부터의 자유 역시 중요시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바를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까지 확보하는 자유, 그러니까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북유럽 복지 모델

 

자유주의자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의 평등은 기회균등인 듯하다. 출발선에서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 사민주의는 기회균등에 더해 결과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평등을 강조한다. 결과에서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회균등 자체가 실현되지 않는 것 아닌가. 연대와 관련해 자유주의는 결과적 연대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시장에서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결과적으로 타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비의도적 연대를 강조한다. 반면 사민주의자는 의도적이고 직접적인 연대, 다시 말해 ‘상호 배려의 원리에 기초해 사회를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에 관심을 둔다.

   

사민주의의 형태는 시대적 조건에 따라 변해왔고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유형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체로 스웨덴을 필두로 한 북유럽 국가들이 사민주의 이념을 비교적 충실히 구현한 사회다. 이들 나라는 우선 사회복지의 규모가 크다. 고용조건의 균등화 정도 또한 높다. 사회 각급 단위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한 데서도 상당히 모범적이다. 북유럽에서 이러한 체제가 구축된 것은 사민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사회개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英 노동당, 獨 사민당의 변화

 

김형찬 영국도 일찍부터 사민주의적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한 국가로 손꼽혔다.

 

신정완 영국의 사민주의는 출발부터 유럽 대륙 국가의 사민주의와 달랐다. 대륙의 사민주의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출발했다가 종국엔 공산주의와 분리됐는데, 영국 사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별반 관계가 없는 영국의 독자적 전통에서 비롯했다. 영국 노동당의 전성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다. 애틀리 정부가 들어서면서 광범위한 국유화를 단행했다. 고용인구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주요 산업을 국유화한 것이다. 또한 국민의료서비스(NHS)를 도입했으며 복지를 강화했다. 2차 대전 직후의 영국은 사민주의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영국에선 북유럽과 다르게 노동당의 집권이 간헐적으로 이뤄졌다. 자유주의적 전통이 워낙 강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엔 대처 정부가 들어섰고 노동당이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했다. 노동당은 활로를 이른바 ‘제3의 길’에서 찾았다. 지금의 영국 노동당은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요소를 가장 많이 수용한 사민주의 정당이다. 유럽 사민주의 정당 중 이념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미국 민주당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그런 정치 세력이 됐다.

 

김형찬 현재의 영국 노동당을 사민주의 정당이라고 볼 수 있나.

 

신정완 글쎄…. 보수당과 비교하면 사민주의라고 볼 수 있지만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면 자유주의에 오히려 가까워졌다.

 

사실 사민주의의 종주국은 독일이다. 그런데 독일도 북유럽과 비교하면 사민당의 집권기간이 짧았다. 통일 이후 경제적 부담이 늘면서 노동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가 신(新)중도를 표방한다. 신중도는 영국 노동당수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과 큰 차이가 없다. 독일 사민당 역시 영국 노동당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오른쪽으로 갔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한 경험이 별로 없다. 미테랑 정부가 있었는데, 미테랑의 사회당은 초기에는 스웨덴의 사민당보다 급진적인 정당이었다. 공산주의 세력도 일정 부분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국유화, 계획경제, 기업에서의 노동자 자주관리를 강조했는데, 금융자본 이탈이 일어나면서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미테랑 집권 후반기는 좌우동거 정부였다. 우파에서 총리를 차지하면서 사회당이 큰 틀의 정책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우파인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를 거친 후 프랑수아 올랑드의 사회당이 다시 집권했지만 미테랑 정부 때처럼 영향력이 크지는 않은 듯하다.

 

한편 남미 쪽에서는 사민주의의 새로운 성공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브라질의 PT다. PT는 ‘노동자당’이라는 뜻이다. 룰라가 집권한 후 경제정책은 자유주의적으로 시행했지만, 기본소득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서민의 삶을 개선했다. 남미의 작은 나라들 중에도 사민주의를 공식적으로 표방하진 않지만 중도좌파적 이념을 가진 정당이 집권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를 보는 시각차
 

노회찬 내가 속한 진보정의당이 당명을 개정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상당수 당원이 ‘사회민주당’을 대안으로 거론한다. 찬반이 나뉘는데, 반대하는 쪽의 논리도 상반된다. 한쪽에서는 “사회민주주의는 일종의 수정주의, 개량주의 아닌가. 진보의 원래 노선에서 일탈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사민주의 정책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당 전체를 사민주의로 포장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진 것이다. 다른 쪽에서는 사회민주당이라는 당명을 붙이면 ‘사회’라는 낱말 탓에 사회주의당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한쪽은 오른쪽으로 가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고 다른 쪽은 지나치게 왼쪽으로 보일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진보정의당 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사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체로 그런 것 같다.

   

레닌이 쓴 팸플릿 중 ‘민주주의 혁명에 있어서의 사회민주주의자의 두 가지 저술’이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사민주의와는 무관하다. 당시엔 폭력혁명에 기초를 둔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사민주의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오래전 얘기다. 1996년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내걸고 집권할 때 영국을 방문했다. 한 노동당원에게 “노동당의 노선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사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라고 답했다. 깜짝 놀라 “당신은 사회주의자냐?”고 되묻자 “사회주의자”라고 하더라. 그래서 “토니 블레어는?” 하고 질문을 던졌는데 “그 역시 사회주의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국인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우리가 사민주의의 왼쪽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주의와 개념이 다르다. 영국인은 사민주의를 그냥 사회주의라고 한다.

 

과거 사민주의는 국유화에 대한 태도를 놓고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최근엔 신자유주의 수용 여부를 놓고 사민주의 정당이 분화하고 있다. 어떤 폭으로 수용하느냐 혹은 반대하느냐를 놓고 갈래가 생겨난 것이다. 덧붙여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와 해법을 가졌는지를 두고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독일, 영국에서는 사민주의 정당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정당이 이따금 집권했다. 복지 시스템에서 미국과 차이가 나는 이유다. 하지만 영국과 독일 사회의 공기는 미국을 필두로 한 자본주의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다르다. 노르웨이에서 일반 시민과 사회 제도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은 사민주의가 지배적 가치관 혹은 문화로서 통용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인정하지만 자본주의의 폐해를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담론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주요 정당의 이념적 좌표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배적, 주류적 담론으로 사민주의가 수용되고 있었다.

 

김형찬 한국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많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사민주의의 성공 모델이 있는 것인가. 한쪽에선 대안이 사민주의라고 주장하지만 “스웨덴 모델도 이젠 통하지 않는다, 끝났다”는 견해도 있다. 사민주의가 가장 발달한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이 이념이 거둔 성과는 뭔지, 구체적으로 배울 만한 것은 뭐가 있는지 말해달라. 또한 특정 지역에서 성공했더라도 한국 사회는 그 나라들과 조건과 환경이 다르다. 유럽 사민주의 모델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스웨덴 우파의 집권 전략

 

신정완 복지국가 형성이 대표적 성과다. 시장 경쟁에서의 성과와 무관하게 의식주, 교육, 의료 등 기본적 필요를 무조건으로 충족시켜준 것이다. 북유럽 사민주의 정당이 가장 역점을 둔 게 복지였다. 서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평범한 서민이 누리는 삶의 질을 한국의 서민과 비교해보면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성과는 노동권의 개선이다. 사민주의 정당은 대체로 노동조합과 긴밀하게 결합해 활동해왔다. 노동자는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적 약자 아닌가. 사민주의 정당은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의 지위를 개선했다. 스웨덴, 독일 은 분배 차원의 노동자 처우 개선을 넘어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참여하는 제도도 만들어냈다. 여성, 장애인, 외국인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노력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렇다면 한계는 무엇인가. 좌파적 시각에서 보느냐, 우파적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민주의가 태동할 때의 목표는 자본주의를 평등주의적 방향으로 개혁한다는 것을 넘어 개혁이 누적되다보면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가 건설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수준에는 어느 나라도 도달하지 못했다. 가장 사민주의적인 것으로 평가 받는 스웨덴의 경우도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라고 얘기할 수 없지 않은가. 좌파에서 보기엔 초기 사민주의자들이 가졌던 원대한 야심이 실현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노회찬 얼마 전 주한 스웨덴대사와 대화를 나눴는데,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스웨덴은 사민주의 정당이 장기 집권하다 우파연합으로 정권이 넘어온 지 꽤 됐다. 대사의 설명에 따르면 우파연합이 집권한 후에도 스웨덴 정부의 정책이 사민주의에서 다른 것으로 변하지 않았다. 우파연합이 사민당과 다르기는 하지만 사민당 장기 집권 때 이뤄진 사민주의적 시스템을 전제하고 동의하는 기반 위에서 정책을 운용하는 것이다. 세금제도 등에서 소소한 차이가 있지만 사민주의 안에서 우파와 좌파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정도다. 요컨대 스웨덴 우파는 사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적 태도를 갖고 있지 않다. 반면 노르웨이의 집권 노동당은 외국인 정책이나 이라크 전쟁 등에 대한 태도에서 다른 북유럽 사민주의 정당과 달랐다. 이렇듯 사민주의는 변화하는 생물이다. 한국에 이식되거나 한국에서 실현될 때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김형찬 ‘노르웨이 덴마크 등의 사민주의 세력은 이라크 문제 등에서 오른쪽으로 갔는데, 한국의 사민주의 세력도 현실을 반영해 그렇게 갈 수 있다’는 뜻인가.

 

노회찬 그런 얘기가 아니다. 내가 민주노동당 소속일 때 스웨덴 우파연합이 처음으로 집권했다. 그때 굉장히 놀랐다. 우파연합의 선거공약이 민주노동당의 2002년 대선 공약보다 훨씬 좌파적이었다. 스웨덴 정당의 이념 차이는 사민주의적 특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구분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스웨덴의 정치 지형

 

신정완 스웨덴 우파연합의 중심 정당은 ‘보수당’이다. 하지만 영어로 번역할 때 ‘Conservative Party’이지, 스웨덴 말로는 ‘온건주의자 집결당’이다. 노회찬 대표의 설명 중 사실과 다른 게 있는데, 보수당 중심의 우파연합은 1991~1994년에도 집권한 적이 있다. 금융위기 국면이었는데, 영국의 대처를 본 떠 정통 신자유주의를 해보려 하다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해 실패했다. 이후 ‘온건주의자 집결당’ 내에서 이념 논쟁이 벌어졌다. 결론은 ‘스웨덴 풍토에서는 신자유주의로 가면 절대로 집권할 수 없다’는 쪽으로 내려졌다.

 

스웨덴 보수당의 정강정책 첫 문장이 흥미롭다. ‘우리는 오늘날의 노동자 정당이다’로 시작된다. 보수당 정책의 핵심은 중하위 소득자 감세 정책이다. 사민당이 노동자에게서도 세금을 많이 거둬 복지로 되돌려주는 정책을 구사한다면 온건주의자들은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는 아예 세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대목이 스웨덴 국민에게 주효했다. 노 대표 말씀처럼 스웨덴 복지국가의 골격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되 현대화하고 개선하겠다는 게 보수당 정책의 핵심이다. 비합리적, 비효율적인 부분을 바꿔가겠다는 것이다. 경쟁을 강조하는 요소를 일부 도입했지만, 복지국가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우파연합이 집권했지만 수십 년간 누적된 사민주의 헤게모니의 그늘 속에서 운신한다고 할 수 있다.

 

김형찬 오늘 토론의 주제 중 하나는 사민주의가 한국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느냐다. 두 분 패널은 그렇다고 주장한다. 두 분이 사민주의를 지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노회찬 지난 대선 때 여야 모든 후보의 공통된 슬로건이 경제민주화였다. 한국은 그간 등한시됐으며 진척도 없었고 다소 후퇴하기까지 한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뤄야 할 상황에 도달했다. 재분배 차원에서 복지를 강화하는 문제뿐 아니라 시장에서의 자유 문제와 관련해서도 경제민주화는 중요하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강자에 대한 지원, 배려가 지나치게 이뤄졌다.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는 자본에 대한 규제의 역사다. 그런데 거꾸로 간 것이다.

 

시장의 강자에 대한 규제가 굉장히 후퇴하면서 사회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한 축을 강력한 사민주의적 지향을 갖는 정당이 차지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경제민주화이고, 그것이 바로 사민주의의 과제다. 사민주의적 개혁이 한국 사회의 변화 목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사민주의를 이데올로기로서 채택하자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경제 시스템을 재정립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역사가 검증한 이념” 

 

신정완 동의하면서 보충하겠다. 사민주의를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정당이 없다보니 ‘신동아’ 독자 여러분은 우리가 느닷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한국 사회에 사민주의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대다수 서민의 욕구를 종합해 그것을 말로 표현한 게 사민주의다. 한국 사회에서 사민주의는 잠재적 수요는 많은데 아직 공급이 제대로 안 이뤄진 이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1987년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냈다. 물론 정치적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볼 순 없다. 권력을 가진 세력은 여전히 탈법적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적어도 민주 대 반민주가 핵심적 대립 구도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2단계 민주화의 과제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다. 그것이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현실 정치에 등장했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이념,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매진해본 경험을 가진 이념이 사민주의다. 따라서 사민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없을 뿐이지 의제 자체는 이미 올라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에서 비롯한 여러 이념 중 역사를 통해 검증받았고 아직도 살아남은 유일한 이념이 사민주의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진보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사민주의는 어떻게 보면 가운데에 서 있다. 진보 이념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게 개혁적 자유주의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일 테고, 가장 왼쪽에 있는 게 세력은 별로 없지만 급진적 사회주의다. 개혁적 자유주의자도 급진적 사회주의자도 ‘복지국가를 발전시키자, 부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어 가난한 사람을 더 지원하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조건 격차를 줄이자’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사민주의는 합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의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여러 세력 중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민주의 이념을 갖고 있다고 본다. 급진 혁명을 고려하거나 준비하는 세력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또 하나의 이념 스펙트럼이 교차하겠지만, 사회경제적 이슈와 관련해서는 진보 세력이 대체로 사민주의에 동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외엔 대안 없다?

 

노회찬 스스로 진보라는 이념을 표방하면서 정치활동을 해온 세력들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활동하는 것은 한계에 봉착한 게 아닐까 한다. 민주당도 스스로를 진보라고 일컫기에 구분이 안 가는 측면도 있다. 도대체 진보 정당의 정체성은 뭔지, 진보 세력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려고 하는지에 대해 좀 더 책임 있는, 좀 더 분명한 청사진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보 세력 내부를 들여다보면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패권주의니 정파투쟁이니 하는 식으로 파당으로 갈리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사민주의를 진보 세력이 연대하는 바탕으로 삼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정완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다. 보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인 거고, 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인 거다. 진보, 보수는 이념적 위치를 제대로 규정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 세력이 진보라는 말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는 반공주의 영향력이 강한 사회에서 예컨대 ‘좌파’ 등 사회주의를 연상시킬 수 있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다른 하나는 에토스로서의 진보, 평등주의적 지향은 있으나 스스로 어떤 이념을 가졌다고 규정하기에는 아직 공부가 덜 된 측면도 있다. 진보라는 말은 가장 쉽게 묻어갈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진보 세력이 명명(命名)을 분명하게 할 단계가 된 것 같다.

 

김형찬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라는 가정 아래 현실적 대안으로 성공의 경험을 가진 사민주의가 매력적임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럼에도 높은 속도의 경제 성장을 원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관성이다. 또한 사람들이 경쟁의 논리를 체화한 지 오래다. 스웨덴은 잘살지만, 어딘가 뒤처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일각에선 북유럽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표현을 내놓기도 한다. 한국 사회 역시 자본주의의 폐해를 절감하면서도 자본주의 외엔 대안이 없다는 식의 관성이 존재한다. 한국적 사회민주주의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신정완 북유럽 복지국가와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부분도 꽤 있다. 우선 둘 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가. 복지국가 발전 역시 서구 사민주의 운동 경험을 잘 공부해 한국 사회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면 된다.

 

경제민주화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자유주의적 과제로서 경제민주화다.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이 대표적인데, 한국 사회엔 이게 잘 구축돼 있지 않다. 독과점 문제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재벌의 전방위적 영향력 행사, 자본의 탈법적 행태,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반칙이 다반사다. 이러한 문제는 사민주의적 과제라기보다는 자유주의적 과제다. 자유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이러한 숙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사민주의자들도 이러한 자유주의적 과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다. 공정한 시장경제를 이뤄내더라도 시장원리 자체에 한계가 있다. 불평등, 경제적 불안정, 생태계 파괴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사안은 사민주의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경제적 의사 결정권의 분점 문제 등도 논의돼야 한다.

 

한국적 특수성을 살펴보자. 솔직히 한국은 사민주의 세력이 예측 가능한 장래에 집권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회다. 한국인이 집단적 차원의 노력을 통해 공공선을 획득한 것은 정치적 민주화 경험밖엔 없는 것 같다. 수십 년간의 투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냈고 이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초보적 수준의 노동자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노동자 권리를 인정받은 것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었다. 서민 대중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공공선을 집단적 차원에서 쟁취한 경험이 아직 없는 것이다.

 

사민주의가 제기하는 이슈들이 좋다는 걸 알아도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각개전투를 할 수밖에 없다. 줄 잘 서려 노력하고, 연줄 따라 살고, 자식에겐 ‘공부 잘하는 게 최고다’ ‘돈 잘 버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가르친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그러한 생각이 일종의 유전자가 돼버렸다. 사람들이 수십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문화를 극복하는 과정은 지난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영역에서 가시적 성과를 쌓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노회찬 사민주의는 2차 대전 때부터 힘을 얻기 시작했다. 유럽의 역사적 경험이 21세기 한국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당시의 사민주의는 국가사회주의나 소련의 패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측면도 있다. 유럽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민주의가 자리 잡기에는 한국의 환경이 다르다. 한국 사회의 운영방식이 사민주의적 질서와 매우 큰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국민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사민주의 의제들을 수용해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00년 총선 때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등을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대단히 급진적인 주장으로 평가됐다. 2010년 내가 서울시장선거에 나갔을 때 0~4세 무상보육을 하겠다고 했다. 굉장히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들었고, TV 토론에서 오세훈 당시 후보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2년 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내 공약보다 더 나아간 0~5세 무상보육을 들고 나왔다. 사민주의 세력의 집권이 가능할지는 의문으로 남겨두더라도 사민주의적 정책에 대한 국민적 호응은 앞으로도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통일한국과 사민주의

 

김형찬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통일한국의 이념으로서 사민주의가 그것이다. 북한은 한국 진보 세력에게 곤란한 존재이기도 하다. 북한의 존재로 인해 진보진영의 운신이 크게 제약을 받는다. 사민주의의 경우는 더 심하지 않겠는가. 통일 한반도를 생각했을 때 사민주의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노회찬 현실성의 문제는 둘째치고 사민주의가 통일한국의 이념이 되는 게 아주 바람직하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만 보면 자본주의의 폐해가 심각하다. 북한의 현 체제에 대해선 별다르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수차 방북한 경험에 따르면 북한 경제와 사회의 작동 시스템은 교과서에 나오는 스탈린주의가 그대로 유지되는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남쪽이 그러한 체제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조차 유지하기가 힘든 체제 아닌가. 그러나 약육강식 시스템이 적나라한 남측 자본주의 시스템이 통일 한반도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통일을 이뤘을 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도 가장 바람직하고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체제가 사민주의 아닐까 싶다.

 

신정완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은 사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와 남한식 자본주의의 가운데 있는 이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일이 과연 될지, 어떻게 이뤄질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문제다. 나는 북한 체제가 상당히 오래가리라고 보는 쪽이다. 정변이 일어나더라도 중국이 접수할 소지가 크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어쨌거나 통일은 결국 남한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남한 사회가 북한 사회보다는 진보적이다. 통일 이후 사민주의자들이 중요한 정치 세력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통일 이후 북한 인민을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문제와 관련해 생각해보자. 서독처럼 손꼽히는 경제대국도 동독과 통일하면서 진통을 겪었다. 북한 인민이 남한 체제 안으로 들어올 때 발생하는 실업, 빈곤, 사회적 갈등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남한 사회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

 

또한 남한 기업에 북한 인민이 취업하면 노동력 과잉 공급 탓에 임금이 하락할 것이다. 통일은 남한 노동자의 임금 하향 평준화와 고용조건 악화 압력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이럴 경우 노동시장을 적절하게 규제하는 비(非)시장적 원리가 필요한데, 사민주의 세력이 그 부분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북한 인민 처지에서도 남한식 정글 자본주의보다는 사민주의를 표방하고 복지가 상당 정도로 발전한 사회가 적응하기 쉬울 것이다.

 

 

‘격조 있고 정돈된 꿈’

 

노회찬 북한이 지금 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도 없거니와 한국이 걸었던 코스를 밟아야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성급한 얘기이긴 하지만 상당 기간 전쟁이 아닌 평화가 보장되는, 다시 말해 통일은 아직 안 됐으나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되는 시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한다. 통일의 역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변화가 남과 북에서 다 있어야 한다. 통일만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논리는 굉장히 정치적인 구호라고 생각한다.

 

김형찬 사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참 격조 있고 잘 정돈된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장시간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더 해주신다면.

 

신정완 사민주의가 민주주의에 가장 충실한 이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게 사회경제적 차이라든지 능력, 개성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다 한 표씩 주는 제도다. 인격의 등가성을 정치적 의사결정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영역까지 확장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보다 사민주의가 더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하다. 민주주의는 우리 국민이 모두 공유하는 가치다.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자라면 종국엔 국가 체제가 사민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대단히 자연스럽다.

 

노회찬 정치적 민주화에 이은 사회경제민주화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교육·의료·주택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것이 앞으로의 정치 과정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사민주의는 한국 사회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끝)

 
 신동아 8월호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3/07/23/201307230500007/201307230500007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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