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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제국논쟁 : 지구화와 민주주의 (마이클 하트)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9-21 01:55 조회(760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2/5 


국내 좌파진영의 학자들에게서 유행하고 있는
마이클 하트와 네그리의 공저인 『제국』이 있다..

그러나 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윌러스틴이 말한
<세계 체제>(혹은 세계 구조)의 범주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둘의 이론의 차이가 없잖아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마르크스와 들뢰즈의 차이에 상응하는 정도의 차이랄까..
그렇다고 해도 들뢰즈 또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한 점을 볼 때
특별한 차이를 느끼진 않을 뿐더러 내가 보기에
예리한 분석력은 오히려 윌러스틴의 분석이 더 뛰어나다고 보여진다..

하트는 기본적으로 들뢰즈안의 시각을 갖고 있는 학자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가 말하는 변증법이 아닌 과정들의 <분화>나
<다중>의 개념들은 그 밑변에 들뢰즈적 시각이 깔려있는 고찰들이다.

나로썬 <국지화>와 <자아화>를 언급하지 않는 <지구화>란
나이브한 것으로 보지만, 이 거대한 타자를 모르는 이들 또한 부지기수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 무시할만한 글은 아니기에 하트의 글을 올려본 것이다..



.........................................................................



[쟁점 : 제국 논쟁] 지구화와 민주주의

마이클 하트/ 역자 : ATeoria



지구화와 민주주의



마이클 하트




지구화에 대한 담론은 최근에 매우 폭넓고 다양한 문맥 속에서, 좌파나 우파 모두에서, 동일하게 저널리즘에서부터 공공정책 토론들에 이르기까지, 기업전략에서부터 노동조직화에 이르기까지, 대학 내에서는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을 막론하고 대학 내에서 지배적으로 되었다. 그 담론은 약 10년 전에 꽃피기 시작했으나, 나에게는 더욱 더 광범위한 것으로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담론과 유사한 그 무엇이다. 이 논문은 지구화에 대한 담론 내에서 취해진 정치적 입장들 중의 일부를 뽑아내어, 지구화 논쟁들 속에 들어 있는 이해관심사들과 다양한 이론적 주장들 및 경험적 주장들의 정치적 결론들을 명확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다. 사실상 나의 가정은, 정치적 입장들 또는 욕구들이 대체로 지구화에 대한 다양한 분석적 성격규정들을 지시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시도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를 구분의 첫 번째 기준으로 사용하여 지구화에 관한 입장들의 유형학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먼저 이들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그룹들로 나눌 것이다. 지구화가 민주주의를 육성한다고 주장하는 그룹들과 지구화가 민주주의를 방해하거나 저지한다고 주장하는 그룹. 나는 더 나아가 이러한 입장들을 우파에서의 주장들과 좌파에서의 주장들로 나눌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맥락 속에서 나는, 내가 우파와 좌파 사이에는 매우 명백한 구분들이 여전히 남아있고, 그것들을 함께 묶는 것은 일관되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 유형학을 개략하고, 그 유형학의 서로 다른 부분들에서 나온 몇 가지의 작업사례들을 제시한 후에, 내가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함께 저술한 책인 『제국』(Empire, Hart and Negri 2000) 속에 포함된, 몇몇 주장들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작업을 이러한 다른 주장들 및 그 유형학과 관련 속에 더욱 일반적으로 위치 지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학에 시작하기 전에 지구화가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용어임을 지적하거나, 현대의 논의들 속에서 일관되지 못한 용어임을 지적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모두가 지구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가 실제로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음을 말해두고 싶다. 20세기 말 어딘가에 역사적 단절점을 찍는 시대구분론을 그들은 거의 언제나 지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변이 또는 역사적 이행의 내용은 변화한다. 첫째로 우리는 지구화의 정의들을 세그룹으로 즉 경제에 중점을 두는 그룹, 정치에 중점을 두는 그룹, 문화에 중점을 두는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1). 이러한 세 가지 범주들 각각에 속하는 지구화에 대한 가장 공통적인 정의 중에 일부를 보도록 하자.




• 경제 : 이것은, 지구화가 다양한 국민경제들 사이에서 원료, 상품들, 노동 등의 교역의 양이 증대됨에 따라 경제적인 용어로 이해되는 일반적 방식이다. 나는 그러한 정식화에는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더 특유한 개념화(나는 이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는, 지구화가 자본의 지구화라는 것이다. 한편에서, 이것은 소비의 측면에서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실현과 동일시 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생산의 측면에서, 이것은 모든 생산이 자본의 지배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생산이 자본주의적인 것임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본이 어떤 의미에서 생산의 모든 형태들을 매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통상 세계의 종속지역들 전체로 자본주의적 생산이 (혹은 자본의 통제가) 확장되는 것에서 나타나며 구 소련권 및 (좀더 덜하게는)중국의 자본에의 개방 속에서도 나타난다.

• 정치 : 지구화는 국제적 세계질서의 종말 혹은 수정을 지시한다. 바꾸어 말하면, 지구화는 국민국가의 주권의 상대적 쇠퇴를 가리킨다. 국민국가들의 주권의 쇠퇴는 때때로 정치의 쇠퇴(여타의 사회적 힘들 예를 들면, 경제적 힘들에 의한 지배나 점증하는 정치적 무정부상태와 불안정성)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른 주장들에서는 국민국가들의 주권의 쇠퇴는 #초국민적 주권의 형성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간주된다.

• 문화 : 문화적 지구화라는 일반적인 개념은, 이전에는 고립되었거나 묶여있던 세계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문화들의 증대된 접촉과 혼합에 불과하다. 이산과 문화적 갈등들은 이것의 일부이다. 보다 특유한 정식화는, 아마도 미국 밖에서는, 더욱 일반적일 정식화는 지구화가 미국화라는 것이다. 미국의 TV 프로그램들, 영화들, 스포츠들, 미국식 영어 자체, 그리고 미국 문화의 여타의 다양한 요소들은 그 밖의 국민적 문화들 위에 군림하면서 지배적 입장을 점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들을 파괴하고 있기까지 하다. 일부의 사람들은 또한 지구화가 유럽중심주의의 지구화라고 주장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두 가지 정식화들의 양립가능성 혹은 양립 불가능성에 흥미가 있다.




나는 이러한 성격규정들 각각이 경합하거나 적어도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해석들임을 지적해야만 한다. 경제적인 해석에서, 상반되는-주장은 지구화가 존재하지 않았고/거나 지구화는 오랫동안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임마누엘 윌러스틴의 저작과 같은) 세계 체제론들이 지구화가 오랫동안 존재해왔다는 주장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자본은 시작부터 언제나 지구적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지구화가 오늘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상반되는-주장의 가장 좋은 사례는, 폴 허스트와 그레이엄 톰슨(1999)에 의해서 제시된다. 그들은, 만약 당신들이 자료를 살펴보면, 백 년 전보다 더 많은 국제교역이 있지는 않다고(심지어는 더 적다고) 주장한다. 나는 아래에서 허스트-톰슨의 이 주장을 좀더 간략하게 언급할 것이다. 이미 여기에서 우리는, 경제적 지구화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정의함에 있어 일정한 편차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교환 및 시장인가 아니면 생산의 다른 형태들에 대한 자본의 우세 및 지배인가.

정치적 해석에서, 그 상반되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국민국가의 계속되고 있는 힘에 초점을 맞춘다. 국가들은 여전히 중요하며, 여전히 주권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등등. 다시금, 경제적인 해석에서의 상반된 주장에서처럼 여기에서의 주장은 지구화가 하나의 신화, 즉 고립된 현상들에 기초를 둔 일반화라는 것이다. 나는 이 경우에서도 그 주장들이 반드시 배타적인 것은 아님을 다시 지적해야만 하겠다. 달리 말해, 우리는 국민국가들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음과 동시에, 그것들의 주권이 정치의 쇠퇴(deficit)에 혹은 초국민적 권력에 길을 비켜주면서 약화(decline)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상반되는 주장들을 직접적으로 결합(engage)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신화이건 현실이건 간에 표제적인 지구화가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문화적인 것 중 그 어느 것으로 이해되건) 이 다양한 입장들은 모두 실제로 정치적 입장들의 효과들이며, 그러한 조건들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지구화의 실제성 혹은 그것의 신화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에 대해, ‘지구화의 정치적 결과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나의 유형학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달리 말하면, 그리고 좀더 간단히 표현하면, 지구화는 민주주의를 촉진하는가 아니면 저지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구성하면서, 나는 아래의 도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도표 1: 지구화와 민주주의

1) 지구화가 민주주의를 촉진한다


좌파
2.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
◆ 지구적 시민사회 (폴크Falk 1999)
◆세계시민적 #결정권 (헬드Held 1995)
◆ 초국민적 국가 (벡Beck 2000)
◆ 인권들
◆ 문화적 혼합은 인간적 이해와 인간적 조화를 증진시킨다(지구촌)

우파
3.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 자본의 지구화 민주주의의 지구화 그 자체이다(프래드만Friedman 2000)
◆ "미국적 삶의 방식"의 확산(US 헤게모니)은 민주주의의 지구적 승리 그 자체이다 (후쿠야마Fukuyama 1992)


2) 지구화가 민주주의를 방해한다

좌파
1a. 사회 민주주의
◆ 지구화의 신화는 국민-국가로부터 권력을 가져오며, 국민은 민주적 정치를 수행하기 위한 유일한 장이다 (허스트와 톰슨Hirst and Thompson 1999)
◆ 국민적 주권의 쇠퇴는 자본에 맞서 사회를 지켰던 보호들을 제거했다 (바넷과 카바나흐Barnet and Cavanaugh 1994)

1b. 유럽중심주의의 비판
◆ 미국 제국주의 혹은 유럽중심주의의 확산은 반-민주적이다 (콜로닐Coronil 2000, 딜릭Dirlik 2000, 탈식민주의 연구들, 하위적subaltern 연구들)


우파
4. 전통적 가치 보수주의
◆ 국가 통제의 결여는 자구적 무정부상태와 불안정성을 야기한다 (그레이Gray 1999)
◆ "미국적 삶의 방식"의 확산(US 헤게모니)은 국민적 정체성과 자기-결정을 부인한다 (그레이Gray 1999)
◆ 미국은 자기 자신의 국민적 영토와 가치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팻 부캐넌Pat Buchnan)
◆ 문화적 혼합은 갈등을 야기한다 (헌팅턴Huntington 1998)




내가 말한 바처럼, 여기에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지구화에 의해 의미되어지는 것과 관계가 있는 수많은 편차가 있음을 명심하자. 우파 그리고 좌파라는 명칭은, 물론 정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분면의 1번 즉, 오른쪽 상단에서 시작하면서 각 사분면속에 있는 하나의 사례적 주장들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해 보자. 허스트와 톰슨은 그들의 저서, ꡔ의문속의 지구화ꡕ(Globalization in Question)에서 지구화는 경제적 데이터에 기반한 신화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오늘날 국제화된 경제는 유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고(경제는 오랫동안 국제화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초국민적인(transnational) 기업체들은(다국적 기업체들과는 대조적으로) 여전히 드물고, 오늘날 상당량의 무역은 실제로 지구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단지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경제적인 지구화가 신화라고, 그러나 강력한 힘들을 가진 신화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지구화개념의 중요한 효과가 국민적 전략들을 발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을 무력화시켜온 것이었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지구화의 신화가 국민적 노력들이 경제를 통제하는 것을 막는데 일조하였고, 대규모의 민영화, 복지국가의 파괴, 등등에 기여하였다고 믿는다. 그 대신 그들은 지구화란 하나의 신화이기 때문에 우리가 국민적 수준과 초국민적 수준에서 경제에 대한 더 큰 국가통제력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활동이 침식되었던 국가의 민주적 기능들을, 가장 중요하게는 그것의 대의적 기능들과 복지 구조들을 복귀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는 앞서 예로 든 지구화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 대응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제 사분면의 2번, 좌측 상단으로 넘어가자. 그리고 특별히 그들의 작업이 매우 높은 양립가능성을 갖고 있는 저자들인 데이비드 헬드(David Held, 1995)와 리차드 폴크(Richard Falk, 1999)의 저작으로 넘어가자. 나는 그들을 이 사분면위에 위치시킴으로써 그들이 지구화의 현대적 형태들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수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은 지구화의 현대적 형태들에 대한 특히, 지구적 자본의 가장 비조절적인 활동들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본에 대항하는 주장들이 아니라 자본의 좀더 나은 제도적· 정치적 조절을 지지하는 주장이다. 그들의 저작은 지구화에 의해, 특히 정치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지구화에 의해 열려진 긍정적인 효과들 혹은 잠재력을 강조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그리는 민주주의적 잠재력은 국민국가들의 지배로부터 우리가 새로이 맞이한 상대적 자유- 예를 들어 인권 문제를 생각해 보라 에 주로 기인하는 것 같다. 인권문제는 국민국가의 권력에 대항하거나 저항하는 데에서 커다란 역할을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했다. Held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개념들이 모두 민족-국가에 매여 있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 세계시민적 민주주의를 정식화할 필요가 있다고(혹은 그러한 기회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최후의 결과는 헬드가 세계시민적 결정권(govermance)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울리히 벡(Ulrick Beck, 2000)이 조금은 덜 부주의하게, 초국민적 국가라고 부르는 것의 구축인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왜 이 사분면을 세계시민적 자유주의라 명명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왼쪽 하단의 3번사분면으로 넘어가자. 지구화에 관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담론은 종종 저널리스트들, T.V. 해설가들의 방송매체와 사설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eidman)의 ꡔ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ꡕ(The Lexus and the Olive Tree, 2000) 그리고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ꡔ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ꡕ(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1992) 은 이러한 관점에 대한 명확한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그 주장은 자본의 지배가 본래 민주적이고 따라서 자본의 지구화는 민주주의의 지구화라는 것이거나 미국정치체제와 “미국적 삶의 방식”이 민주주의와 동의어이고 따라서 미국 헤게모니의 확장이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두가지는 통상적으로 병행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이 그룹에 맞는 명명인 것 같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측하단 사분면 4번으로, 즉 지구화가 민주주의를 방해한다는 우파의 주장으로 넘어가자. 내가 이런 입장과 관련하여 읽은 가장 흥미있는 주장은 존 그레이의 책(John Gray), ꡔ거짓의 여명: 지구자본주의의 망상ꡕ( , 1998)에 나타난 주장이다. 존 그레이는 대처정부의 지지자였으나 나중에는 그것에 매우 비판적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대처의 실험이 진정 보수주의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점에서 팻 뷰캐넌(Pat Buchanon)은 미국에서 유사한 위치를 차지한다.)이제 그레이의 주요한 이론적 논점은 지구적 시장들이 국가조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적 수준에서는 점차 불가능하다. 그 결과 오늘날의 지구적 질서는 불안정하고 우리는 무질서에 의해 위협 당한다. 미국은 지구를 통치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미국 사회는 (약한 사회적 유대, 가족구조들의 쇠퇴, 높은 범죄율과 수감율 등등으로) 너무나 부패하여 지배를 감당할 자격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레이는, “세계시장이 사회들의 유대와 국가들의 통합을 촉진시키기 위해 관리되는, 지구적 결정권의 체제가 필요하다”라고 쓰고 있다. 나는 이사분면을 “전통적 가치 보수주의”로 명명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전통적 가치들 혹은 사회적 제도들(혹은 더욱 일반적으로는 헌팅턴이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견해에 따르면, 비조절적 지구적 자본 및/또는 미국의 지구적 헤게모니로 이해되는 지구화에 맞서 보호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계속 진행하기 전에, 나는 지구화가 의미하는 것과 관련하여 상당한 편차가 있듯이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의 개념은 실제로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 의한 모든 사람의 지배인 것이다. 차이는 우선적으로 개념의 절합에서 나온다. 민주주의의 개념은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의 세 가지 핵심적인 구성요소 혹은 전제조건인 평등, 자유/자기-결정,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맥락에서 분석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것은 고전적인 근대 공화제적 정식화이며, 나는 그것이 여전히 유효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민주주의에 대한 상이한 개념들은 세 가지 요소들에 대한 그들의 상이한 개념화에 의해 조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좌측 사분면의 하단에 속할 수 있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판본은 자유와 평등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즉 상품들의 자유 무역 원리에서 결합한다. 다시 말해, 모든 소유는 평등하며(그것이 우리의 부이건 노동력이건 간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판본은 평등과 자유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즉 대의기관들을 통한 정치적인 영역에의 평등한 참여권리 속에서 결합한다. 이것은 사분면들의 좌측 상단과 우측 상단 모두에 공통적일 것이다. 사회적 연대는 훨씬 더 어려운 요소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생각들은, 즉 자유를 엄격하게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생각들은 그것을 매우 부차적인 방식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사회적 연대의 가장 일반적인 형상은 아마도 민족(일차적으로 상상된 공동체)일 것이다. 즉 그것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혹은 대의제적 민주주의의 다양한 관념들과 더불어 정말로 부드럽게 작동해왔다. 특히 민족에 의해 정의된 바의 사회적 연대에 대한 이러한 개념화는, 사분면의 우측 상단과 우측 하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에게는 보인다. 확실히, 많은 이데올로기적 틀들 속에는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에, 혹은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에, 더 구체적으로는, 자유 혹은 자기-결정 대(對) 사회적 연대라는 이 술어들 속에 분명한 갈등이 존재한다.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하여, 곧 민주주의에 대한 이 정의로 되돌아올 것이다. 먼저 나는 내가 지금까지 개략 해온 이 위치들의 맥락 속에서 안또니오 네그리와 내가 우리들의 책 ꡔ제국ꡕ에서 분명히 표현한 지구화에 대한 일반적인 가정을 설명하고 싶다.




제국




내 유형학의 여러 부분으로부터 제기된 논의들 중 다수가, 지구화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으로든, 아니면 지구화의 밝은 전망으로든 간에 어떤 형태의 지구적 국가나 지구적 정부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것은 지구화의 밝은 전망이 새로운 형태의 세계시민적 #통치성(#결정권)의 가능성으로 나타나는, 사분면의 좌측상단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허스트와 톰슨이 좀 더 커다란 국민적 통치성 그리고 상위국민적 통치성을 요구하는 우측 상단과 존 그레이가 사회적 연대의 보증을 위한 새로운 지구적 조절 구조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우측하단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논의가 새로운 지구적 통치성이 이미 여기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제 이것을 설명해 보자. 우리의 책은, 자본주의적 지구화의 정치적 형태를 명명하는 것으로 의도된, 제국이라는 개념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의 주된 질문은 ‘지구적 질서의 정치적 구성(constitution)은 무엇인가?’이다.

제국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주권의 관점에서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주권,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지배를 명명하기 위해 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위의 저자들 중 다수가 주장하듯이, 지구화의 과정들에 발맞추어 국민국가의 주권이(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점차 쇠퇴해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생산과 교환의 주된 요소들―화폐, 테크놀로지, 인간 그리고 상품―은 점점 더 용이하게 국경을 넘나든다. 그러므로 민족-국가는 점점 더 이러한 흐름들을 규제하고 경제에 대해 자신의 권위를 강제할 힘을 상실해 간다. 가장 지배적인 민족-국가들조차도 이제 더 이상 외부에 대한, 심지어는 그들 자신의 국경 내부에서조차도 내에서도 최고의 주권적 권위들로 생각되어져서는 안 된다. ꡐ그러나 민족-국가의 쇠퇴하는 주권이 주권 그 자체가 쇠퇴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ꡑ 현 시기의 변환들 전반에 걸쳐서, 정치적 통제들, 국가 기능들 그리고 조절 메커니즘들은 생산과 교환이라는 경제적이자 사회적인 영역에 대한 지배를 그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기본적인 가설은 주권이, 단일한 지배 논리 하에 결합된 일련의 국민적, #상위국민적 유기체들로 구성된 새로운 형태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지구적 형태의 주권이 바로 우리가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달리 말해, 제국은 오늘날 주권의 궁극적 주체이다.

그러나 이것이, 제국이 동질적이고 단성적(單聲的)인 주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제국은, 그것이 상이하고 종종 상충하기까지 하는 요소들로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잡종적 주체이다. 제국은 혼합된 혹은 잡종적인 구성(constitution)을 갖고 있다. 혼합된 구성(constitution)은 폴리비우스가 고대 로마 제국을 묘사하기 위해(그리고 찬양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이것이 우리가 현대 세계에 제국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한 가지 이유이다. 폴리비우스에 따르면, 고대 로마 제국은 정부의 세 가지 주요한 형태들(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모두를 단일한 구성(constitution) 안에 가져다 놓았다는 점에서 혼합된 구성(constitution)이었다. 달리 말해 제국 안에서 군주적, 귀족적, 민주적 권력들은 모두 함께 기능한다. 오늘날, 때로는 세계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군주적 권력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걸프전 동안은 펜타곤이 군주적인 지구적 권력인 것처럼 보였다. 또 어떤 때는 IMF나 WTO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귀족적 세력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하나의 지배)가 아니라 소수의 지배.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국가가 종종 귀족적이듯이, 초국적 기업이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민주적 권력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적어도 민중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민족-국가들은 지구적 무대에서 종종 이러한 역할도 수행한다. 그러나 제국 내에서 가장 흥미롭고 복잡한 민주적 세력들은 NGO들이다. 어쨌든 혼합된 구성(constitution)이라는 이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응집적인 지구적 구성(constitution) 내에서 이러한 힘들 모두를 인식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힘들이 단형적이라거나 단성적(單聲的)이라고 주장하도록 강제하지는 않는다. 혼합된 구성(constitution)이라는 이론은 단일한 질서 체제 내부에서 권력들의 다양한 분리들을 허용하는 구성(constitution) 내부의 차이에 대한 이론이다. 따라서 혼합된 구성(constitution)으로서의 현대적 제국이라는 우리의 생각에 대한 도전은, 다양한 권력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들은 협조 속에서 그리고 대립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협상하거나 서로를 지배하는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혼합된 구성(constitution)은 단지 문제틀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실제로 지배의 #역학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당신에게, 우리가 제국을 이해하는 틀에로의 최초의 접근을 제공하기를 바란다.

비록 국민국가들의 주권이 제국의 성립과 함께 쇠퇴해 왔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는 국민국가들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며 매우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한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혹자는, 국민국가들의 다양한 권력들-경제적 권력, 재정적 권력, 사회적 권력, 법적 권력 등등-은 쇠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새로운 틀에서 재조직되어 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다양한 국민국가들마다 상이할 것이다. 나의 요점은, 제국과 국민국가들을 마치 한쪽의 증대하는 권력에 상응하여 다른 쪽은 축소되는 것인 양, 직접적 대립 혹은 반비례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족-국가들의 권력은 제국 하에서 재조직화 된 형태로 새로운 형태의 주권 내부에서 지속된다. 그러므로 주권은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논점이다.

국민국가의 주권은 유럽적 권력들이 근대 전반에 걸쳐 구축했던 제국주의들의 기초였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을 “제국주의”와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 근대 민족-국가 체계에 의해 규정된 경계들은 유럽의 식민주의와 경제적 팽창에 필수적이었다. 국민의 영토적 경계들은 생산과 유통의 흐름들을 번갈아 가며 촉진하고 방해하는 채널들과 장벽들의 체계를 통해 대외적 영토들에 대한 지배를 행하는 권력 중심의 범위를 규정했다. 제국주의는 실제로 유럽 민족-국가들의 주권이 그들 자신의 경계 밖으로 확장하는 것을 뜻했다. 제국주의 시대는 (미국, 일본과 더불어) 국제무대에서의 유럽적 권력들 사이에서의 경쟁으로 특징지워졌다.

제국주의와는 반대로, 오늘날 제국은 어떠한 영토적 권력중심도 설정하지 않으며, 고정된 경계들이나 장벽들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제국은 그것의 개방적이고 팽창적인 경계 내부로 전지구 영역을 점진적으로 통합시키는 탈중심적이고 탈영토화하는 지배장치이다. 제국은 #조율하는 명령 네트워크들을 통해 잡종적 정체성들, 유연한 위계제들, 그리고 복수적 교환들을 관리한다. 그리고 마침내 제국은 유일한 주권적 권력이 된다. 그것은 동일한 유형 중에서는 자신에 필적할 만한 어떠한 상대도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제국을 비유로서, 오늘날의 세계 질서와 로마 제국, 중국 제국, 미국 등등 간의 유사점들에 대한 설명을 요할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이론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개념으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제국 개념은 근본적으로 경계들의 결여에 의해 특징지워 진다. 제국의 지배는 어떤 한계도 갖지 않는다. 무엇보다 먼저, 제국 개념은 효과적으로 공간적 총체성을 둘러싸는 체제, 혹은 ‘문명화된’ 모든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의 모습을 띤다. 어떠한 영토적 경계들도 그것의 통치를 제한하지 못한다. 둘째로, 제국 개념은 그 자신을 정복 속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체제로서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역사를 중지시키고 그리하여 현상태들을 영원히 고정시키는 체제로서 드러낸다. 제국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이 바로 사물들이 항상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또 늘 그렇게 존재할 방식이다. 달리 말해, 제국은 그것의 지배를 역사운동 속의 일시적인 계기로서가 아니라, 어떠한 시간적 경계도 갖지 않는,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의 외부 혹은 역사의 끝에 있는 체제로서 제시한다. 셋째로, 제국의 지배는 사회적 세계의 심층에까지 뻗어 내려가 있는 사회적 질서의 모든 등기부들에서 작동한다. 제국은 영토와 인구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거주하는 바로 그 세계를 창조한다. 그것은 인간적 상호작용들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직접적 지배를 추구한다. 그 지배의 대상은 전체로서의 사회적 삶 자체이고, 따라서 제국은 패러다임적 생체권력 형태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비록 제국의 실행들이 줄곧 피로 물들어 있다 하더라도, 제국 개념은 언제나 평화(역사의 외부에 존재하는, 영속적이며 보편적인 평화)에 바쳐진다.

비록 내가 제국 개념을 무엇보다도 정치적 술어로(새로운 형태의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제시하긴 했지만, 우리는 그 개념을 동일하게 지구적 경제질서와 지구적 문화질서를 명명하기 위한 것으로도 사용한다는 사실을 덧붙여 말해야 하겠다. 사실 오늘날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 혹은 순전히 정치적 관점에서, 혹은 순전히 문화적 관점에서 지구화 또는 지구적 질서를 분석하려 하는 것은 아마도 반(反)생산적일 것이다. 경제는 점차 문화적이 되고, 문화는 점차 경제적으로 되며, 정치는 점차 앞의 둘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프레드릭 재임슨(2000)이 탈근대성과 연관시키며, 분야들의 탈구별화라고 부른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제국 개념과 지구화에 대한 모든 설명에 제기하는 도전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이렇게 다양한 분과학문적 관점에서 동시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국은 간분과학문적 혹은 초분과학문적 분석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진보의 변증법




이제 내가 설정한 유형학속에 제국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위치시키려 할때, 나는 왼쪽 더 위사분면과 오른쪽 더 위 사분면에 그것을 위치 시켜야 한다. 제국은 민주주의를 방해함과, 동시에 (현재적 현실이 아니라 할지라도)민주주의를 위한 잠재력을 증대시킨다. 처음 접근하기로는, 이 외관상 역설적인 주장을 변증법적 형식으로 정식화하는 것이 가장 쉬울지도 모르겠다. 아래에 우리의 변증법적 설명이 있다.

헤겔과 불장난을 하면서, 혹자는 제국의 구축이 즉자적으로는 선하지만 대자적으로는 선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 제국주의적 권력구조들의 가장 강력한 기능 중의 하나는 대중들을 적대하는 진영들로 혹은 수많은 갈등하는 당들로 나누면서 지구의 대중들 사이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지배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 계층들은, 심지어, 그들의 이익이 배타적으로 그들의 국민적 동일성과 제국적 운명에 묶여있다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근대 권력 구조들에 맞서는 반란과 혁명의 가장 중요한 사례들은 민족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들과 더불어 착취에 대항하는 투쟁을 동시에 제기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사건들에서, 인간은 마법적인 순간에는 해방를 위한 공통된 열망으로 통일된 것처럼 보였고, 우리는 지배의 근대적 메커니즘들이 일거에 파괴되어질 미래를 엿본 것처럼 보였다. 반란하는 대중들, 해방을 위한 그들의 열망, 대안을 세우기 위한 그들의 실험들, 그리고 구성적 권력의 그 심급들은, 그들의 최고의 순간들에는, 모두 국민적,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지배의 분할들을 넘어서 관계들의 국제화와 지구화를 가리켰다. 우리의 시대에 다중들이 가동시켰던 이 열망은 제국의 구축으로 (이상하게 왜곡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적인 방법으로)귀착되었다. 심지어 혹자는 제국의 구축과 그것의 지구적 네트워크들이 근대적 권력기계들에 대항하는 다양한 투쟁들에 의해, 특히 자유를 위한 다중들의 열망에 의해 추동된 계급투쟁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중은 제국을 존재 속으로 불러냈다.

하지만, 제국이 즉자적으로 선하다고 말하는 것은 제국이 대자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국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끝장내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많은 점에서 그것이 파멸 시켰던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한 착취에 기반한 그 나름의 권력관계들을 구축한다. 근대성의 변증법의 종말은 착취의 변증법의 종말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오늘날 거의 모든 인간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네트워크들 내에 어느 정도 흡수되었거나 그것에 종속되었다. 우리는 이제 무기력의 극한에서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다중들로부터 거대한 부를 통제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발본적 분리라는 더욱더 극단적인 상황을 본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 동안에 확립된 적대와 착취의 지리학적 및 인종적 선들은 많은 점에서 쇠퇴하기는커녕 오히려 대신에 지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나는 여기서 우리의 입장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생에 대한 맑스의 역사적 취급과 매우 밀접하게 닮아있음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맑스의 견해에서 자본은 맑스의 해방양식과 더불어 잔인한 착취체제와 해방을 향한 거대한 잠재력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러한 논리는 단지 처음보기에 변증법적일 뿐일지 모른다. 이딸리아의 붉은 여단과 독일의 적군파를 포함하는 1970년대에 수많은 유럽의 공산주의적 테러리스트 집단에 의해 발전된 주장들처럼 고유하게 변증법적인 주장을, 대비를 위해서 살펴보자. 가난한 사람들은 국가와 자본의 지배하에 고통 받고 있었고, 혁명적인 길은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드는 거라고 그들은 믿었다. 왜냐하면 부정을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이는 것을 통해서만 가난한 사람들이 혁명으로 일어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종류의 변증법적 논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장을 보았던 타이백화점을 폭파시키기 위한 프랑스 테러주의 집단의 캠페인을 이끌었다. 이것이 고유하게 변증법적인 역사이다. 부정 혹은 모순을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혁명적 종합을 가져오리라고 믿어졌던 것이다.

제국의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인 성질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이와는 달리, 제국의 요소들 사이에 설정한 우리의 구별에 의해 설명되어야만 한다. 달리말해, 지구화라고 알려진 것은 많은 요소들과 과정들로 구성된 하나의 복합체이다. 이러한 과정들의 일부는(부자와 가난한자 사이에 전지구적으로 증대하는 격차, 기근이나 군사력을 통한 특정한 주민들에 대한 잔인한 억압, 노동에 대한 새롭게 강화된 성적인 분할과 인종적인 분할들 등등)완전히 반민주적이며 건져낼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비민주적 형식들로 나타나지만, 사실상 민주주의와 해방에 대한 거대한 잠재력을 제시하는(주민들 사이의 증가된 상호작용들 그리고 점차 강력해지는 사회적 네트워크들과 같은)또 다른 과정들이 지구화 내부에 있다. 이런 두가지 측면들(공동적 삶을 위한 증대된 잠재력을 가져오는 더 큰 사회적 상호작용과 강화된 사회적 협력)은 실제로 맑스가 무엇보다도 더욱 민주적인 비자본주의적 미래를 약속하는 것으로 보았던 자본주의 사회의 동일한 측면들이다. 나는 이것이, 부정적인 요소들이 긍정적인 미래의 (변증법적인 전환을 통한)약속을 유지하기 위해 주장된 것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변증법적인 견해가 아니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거부되어야만 하는 부정적인 것들과 (만일에 좀더 밀어붙인다면) 보다 나은 미래의 약속을 유지하는 긍정적인 것들 사이에는 지구화를 구성하는 과정들 간의 분화가 있다.




다중




나는 지구화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의 몇 가지 차이점들을 지시했다. 첫째, 제국 또는 하나의 지구적 질서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 둘째, 제국의 주권은, 국민-국가와 같은 다양하고 오래된 주권의 형태들을 그것의 질서 내부에 배치하는 혼합된 구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주장, 셋째, 제국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질서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주장, 그리고 넷째, 제국은 더욱 악성적인 새로운 지배 형태들을 가져옴과 동시에 해방을 향한 새로운 잠재력들을 가져온다는 주장. 이 네 가지 주장 모두는 또한 우리들의 관점이 민주주의에 대한 남다른 생각에 정초하고 있음을 암시해 줄 것이다. 우리들의 민주주의 개념은, 내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세 가지 공화주의적 요소들, 즉 평등, 자유 혹은 자기-결정, 사회적 연대 등에 여전히 기초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전의 정식화들이 이 세 가지 요소들을 제시했던 방식들과의 부정적인 관계 속에서 가장 쉽게 특징지어진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의 민주주의 개념은, 자본에 의해 제시된 평등과 자유에 대한 개념화를, 즉 재산 소유자들의 평등과 자신의 재산을 사고팔 자유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우리들의 민주주의 개념은 대의적인 제도에 의해 제공되는 평등과 자유의 개념화, 즉 사람들의 자유 혹은 자기결정이 통치기관에로의 권력 위임만을 의미하게 되는 개념화 역시 거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민주주의 개념은 국민에 의해 제공된 사회적 연대의 개념화를 거부한다. 그에 따라 부정적인 술어로 표현하면, 우리들의 민주주의 개념은 비자본주의적이며, 비대의적이며, 비국민적이다.

그러나, 물론 그와 같은 부정적인 정의들이 매우 만족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의 주체에 대한 우리의 긍정적인 개념화는 우리가 다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용어에 대한 우리의 사용법은 우리들의 책 속에 시적인 상태로 머물러있고, 이론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보다 더 발전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개념의 몇 가지 기본적인 개요들을 분명하게 했다. 유럽정치이론사의 맥락 속에서, 무엇보다도 다중의 개념을 민중의 개념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민중은 단일하고 통합된 정체성이고, #주민the population의 대의 혹은 종합이며, 이런 의미에서 민중 개념은 다중 개념과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예를 들어, 토마스 홉스는 이 구분을 매우 강조한다. 민중은 그것이 단일한 것이기 때문에 주권의 능력을 갖고 있음에 반해, 다중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나는 국민 개념 그 자체와 국민적 주권의 전통 전체가 이러한 민중 개념에 근거를 둔다고 말하고 싶다. 민중은 주권적 주체이며 다중은 명백히 그렇지 않다. 대의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다중 개념은 단지 국민적 형성체뿐만 아니라 주권 그 자체를 거부한다.

다른 한편, 우리는 또한 유럽정치이론사의 맥락 속에서 또 하나의 구분을 해야만 한다. 만약 다중이 한편으로 민중이 아닌 것으로 정의된다면,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다중을 대중 혹은 군중과 구분해야 한다. 대중과 군중은 비합리적이며 수동적인 사회 세력, 즉 더 정확하게는 매우 쉽게 조종당하기 때문에 위험하고 폭력적인 사회 세력을 명명하기 위해 매우 자주 사용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다중은 능동적인 사회적 행위자, 즉 행동하는 다양성이다. 다중은 통일체가 아니며, 조직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중과 군중과는 대조적이다. 그것은 능동적이며, 자기-조직화하는 행위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다중은 민중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적 힘들의 다양성이며, 다른 한편으로 다중은 군중과는 대조적으로 공동의 행동 속에서 결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중의 개념은 사회적 장에서 복수성의 불가피한 영속(다중은 차이의 표지자(標紙者)이다)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그것은 우리를 일련의 파편적이고 삽화적이거나 비절합적 사회적 요소들에 남겨두지 않는다. 다양성은 다중의 사회적 조건인 반면, 공동의 행위는 그것의 기획이며, 그러므로 다중은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작동하는 조직형식을 명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달리 말하면, 다중의 개념은 역설적이지만 다양성과 공동적 삶을 결합한다. 다중은 공동체적(common) 특이성들의 조직화이다.

다중에 대한 이 물음은 이론적 맥락에서뿐만 아니라 경험적 맥락에서도 제기되어야만 한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이러한 전지구적 다중이며, 그것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다중은 무엇이며 혹은 누구인가라는 경험적 문제는 무엇보다도 노동의 현대적 형식들과 실행들의 맥락 속에서 제기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책에서 비물질적 노동의 새로운 형식들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루기 시작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노동의 그 새로운 형식들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지금 출현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경향적으로는 지배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주체로서의 다중이라는 문제는 실제로 정치적 문제이며, 정치적 조직화에 관한 문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험적인 문제는 오늘날 정치적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이 그리고 최근에 생겨나고 있는 조직화의 새로운 형태들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WTO, World Bank 그리고 IMF에 대항하는 항의들, 미국에서 다양한 무정부주의 집단들의 명백한 재-출현, 인도네시아와 한국에서의 학생운동, 지난 12월 에콰도르에서의 반-달러화 투쟁, 그리고 대개는 NGO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조직화의 형식들과 같은 다양한 현대의 투쟁들의 조직화 형식들에 대한 경험적 탐구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종류의 정치적 조직화에 대한 경험적 탐구는 다중의 현존하는 그리고 잠재적인 주체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중의 이러한 개념은 이미 실존하는 것을 명명하기 위하여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언급하기 위하여 사용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다중은 조직화의 기획이며, 공동의 특이성들의 기획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제국에 대한 민주주의적 대안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의 바로 그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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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자들은 이 도식에 테크놀러지를 네 번째 범주로 추가하기를 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테크놀러지의 지구화를 경제적 주장과 문화적 주장 양자에 속하는 것으로 포함시키고 싶다.
2002-08-04 09:51:39
Rosa (06-10-19 20:43)
 
미선이님~ Rosa입니다. 가끔 여기 들어와서 눈팅만 하고 갔습니다.정보 좀 공유하자는 부탁을 드릴까 하구요. 마음은 전부 한국에 있는데요. 제 몸은 아직도 독일에 있어서요. 윌러스틴의 최근 고대 강연 "자유.진리.정의:시장근본주의를 넘어서"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은데 검색에 안 잡히는 듯... 혹시 자료를 손에 넣으실 수 있으면 좀더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게 여기 올려주시던지 제 메일이나 블로그로 업로드해주실 수 있으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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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BIEN/해외동향] 2013년 비엔 뉴스레터-'브라질' 기본소득 관련 글들 미선 3499 12-21
54 "생존은 기본! 복지는 권리! 세금은 연대!" (1) 미선 3493 12-02
53 살림살이 경제학의 홍기빈 소장 강연 내용과 후기 미선 3942 11-05
52 낯선 진보의 길, 그러나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길 미선 3518 11-01
51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분리적 불행의 비극 미선 3529 10-18
50 기본소득론 연구 (3) 기본소득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자료들 (1) 미선 3768 10-01
49 기본소득론 연구 (2) 그 효과와 장점 그리고 단점 미선 4402 09-29
48 기본소득론 연구 (1) 미선 4245 09-29
47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미선 3647 09-24
46 <노동 중심성>에서 배제되는 <그림자 노동> 문제.. (2) 미선 4951 09-20
45 [펌] “기회균등에 더해 결과의 평등도 강조” “사회·경제민주화에 가장 적합한 이… 미선 3964 09-02
44 마르크스주의 해석에 대한 강신준 김성구 두 교수의 논쟁 (5) 미선 4841 08-14
43 [펌] ANT 이론가 브루노 라투르 인터뷰 기사 (1) 미선 5181 07-02
42 [필독] <사회민주주의> 선언 (조원희, 정승일 / 홍진북스) (1) 미선 9278 06-20
41 [펌] 마이클 샌델 교수 인터뷰 내용과 독자들과의 토론 내용 미선 4115 06-09
40 (자신의 정치성향 자가진단) 폴리티컬 컴퍼스 모델 설문 (2) 미선이 8393 08-31
39 [초강추!] 한국사회를 너무나 깊고 예리하게 잘 분석한 눈부신 통찰의 글!!! (3) 미선이 5680 11-21
38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 (1) 미선이 10941 07-15
37 정치성향 자가 진단(*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직접 테스트 해보시길~^^*) (7) 미선이 18718 05-18
36 美 아르코산티ㆍ日 야마기시…세계 8대 유토피아 도시 (1) 미선이 7412 04-19
35 “부동산 거품 붕괴, 이제 시간문제일 뿐” - 한겨레 (2) 마루치 6759 07-30
34 노동 문제와 활력 넘치는 민주주의: 확장된 자아의 지평을 향하여 (더글라스 스텀) 정강길 5701 04-07
33 나눔 강조하는 새로운 실험, 공동체자본주의 관리자 6498 01-15
32 일상적 권력과 저항: 탈근대적 문제설정 (이구표) 정강길 7247 06-13
31 공동체 화페 (베르나르 리에테르) 정강길 8259 05-17
30 3. 한국사회 진보 100대 과제 만들자 (박래군) (필독~!!) 정강길 6036 02-25
29 2. 권력재편기에 진보세력은 무엇을 할까 (박래군) (필독~!!) 정강길 5958 02-25
28 1. 왜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인가 (박래군) (진보운동가들에겐 필독 권함~!!) 정강길 6086 02-25
27 [펌] 한국과 일본의 미래세대, 동북아시아 평화연대를 위해 하나 되는 길 (김민웅) 정강길 6014 01-07
26 [펌]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야말로 가장 큰 희망"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정강길 6088 12-15
25 [펌]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惡의 유산' 정강길 7439 12-01
24 [펌] 제국과 다중론은 미국식 자유주의에의 투항 (사미르 아민) 정강길 5786 09-21
23 맑스꼬뮤날레 참관기-고전적 맑스주의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냐 정강길 5994 09-21
22 [펌]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반… 정강길 5810 09-21
21 [펌] 대안세계화와 한국 사회운동 정강길 6502 09-21
20 마르크스를 죽여야 마르크스가 제대로 산다..!! 정강길 6844 09-21
19 [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점에 대해 정강길 16223 09-21
18 [자료] 노동의 문제와 활력이 넘치는 민주주의(더글라스 스텀) 정강길 5356 09-21
17 [펌]경제학자 스티글리츠의 '세계화가 가져온 불만-' 정강길 6854 09-21
16 화이트헤드 철학의 사회학적 용용 개념 : <단위 행태>unit attitude 고찰 정강길 6870 09-21
15 [기사] 자살률, 경제성장률.실업률과 밀접한 관련 정강길 7745 09-21
14 현대사회주의론 (김세균) 정강길 7211 09-21
13 [펌] 일상적 파시즘론의 공허함 (이구표) 정강길 6501 09-21
12 [펌] 세계적 석학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버그스텐 논쟁 정강길 6815 09-21
11 [펌] 미국의 제3세계 정책과 군사적 개입 (김세균) 정강길 7569 09-21
10 [펌]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 拔本과 再構築의 변증법 (이수훈) 정강길 8035 09-21
9 [펌] 월드컵의 이면 : 축구공 만드는 아이들 (김선형) 정강길 8973 09-21
8 지구화 시대의 대안적 노동 세계에 관한 구상(강원돈) 정강길 6798 09-21
7 [기사] 세계 경제- 위기의 자본주의 두가지 '동력' (월든) 정강길 6574 09-21
6 [기사]세계 환경 유엔보고서, 지구위기상황 엄중 경고 정강길 6295 09-21
5 [펌] 제국논쟁 : 지구화와 민주주의 (마이클 하트) (1) 정강길 7609 09-21
4 [펌] 경제학 인터뷰 정강길 6388 09-21
3 [펌] 한미FTA, 노무현 정부의 자살인가 이일영 7115 05-08
2 [펌] 새로운 문명과 한국의 사회운동 이시재 6212 05-08
1 문명의 ‘충돌’과 ‘공존’ 이현휘 818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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