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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마르크스주의 해석에 대한 강신준 김성구 두 교수의 논쟁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8-14 09:27 조회(448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2/72 
  LINK 1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c149 (1050)




  
 
미디어오늘의 외부필진인 김성구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을 통해 '경향신문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연재된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해 비판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자본을 읽다'의 필자인 강신준 교수가 김성구 교수의 비판글을 반박하는 '경향신문 연재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한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답글'을 미디어오늘에 보내와 게재하였습니다. 이후 강 교수의 반박글이 게재된 후 다시 김성구 교수가 반박에 대한 재반박글을 보내왔고 다시 강신준 교수가 재반박글에 대한 반론을 보내와 게재합니다.

미디어오늘은 경제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전세계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인 맑스주의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두 노장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통해 자본론 해석에 대
한 학문적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며 두 경제학자의 논쟁을 지면을 통해 이어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출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433
 
 
 
7. 자본론 논쟁의 결말
 
 
 
 
 자본론 논쟁의 결말
 

[논쟁 마르크스 자본⑦]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입력 : 2013-08-30  08:22:26   노출 : 2013.08.31  20:42:56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 sgkim@hs.ac.kr 
 
 
 
지난 글에서 논쟁을 끝내기 위해 내가 강신준 교수에게 제기한 5개 질문은 이러하였다. 

1. 맑스가 자본주의의 ‘개혁’을 위해 <자본>을 발간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맑스의 문헌은 무엇인가?
2. 개혁과 변혁이 같은 말인가?
3. <자본> 제3권 제47장에서 맑스가 봉건제를 착취사회로 설명한 것이 틀린 것인가?
4.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만든 것이 맑스가 아니라 레닌과 볼셰비키인가?
5. 공산주의가 아니라 사민주의가 원조 맑스주의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맑스의 문헌은 무엇인가?


강 교수는 이 논쟁의 마지막 글(“김성구 교수와의 논쟁을 끝내면서”)에서 많은 지면을 사용해 답변한다면서도 정작 위의 질문에 답한 것은 없다. 질문들을 둘씩 묶어서 답변한다는 방식으로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피해갔던 것이다. 강 교수가 답변을 못하는 것은 이 답변이 강 교수 자신의 왜곡과 날조를 인정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답을 못했지만, 논쟁을 따라온 분별있는 독자라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답은 정말 간단하다. 

1. 맑스가 자본주의의 ‘개혁’을 위해 <자본>을 발간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맑스의 문헌은 무엇인가? 문헌 확인 못함 또는 없음.
2. 개혁과 변혁이 같은 말인가? 다른 말임.
3. <자본> 제3권 제47장에서 맑스가 봉건제를 착취사회로 설명한 것이 틀린 것인가? 맑스의 설명이 맞음.
4.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만든 것이 맑스가 아니라 레닌과 볼셰비키인가? 아님. 맑스의 개념임.
5. 공산주의가 아니라 사민주의가 원조 맑스주의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맑스의 문헌은 무엇인가? 
문헌 확인 못함 또는 없음.

합리적이고 현명한 독자라면 이런 답이 의미하는 바도 분명할 것이다.
 
1. 맑스의 문헌적 근거도 없이 강 교수가 자의적으로 맑스의 <자본> 집필 동기가 자본주의를 개혁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 이는 사실관계의 왜곡이자 날조라는 것.
2. 강 교수에 있어서는 경제학 개념만이 아니라 국어 개념 자체가 문제라는 것, 강 교수 맘대로 맑스의 변혁을 개혁으로 바꿔놓고 이게 맑스의 혁명사상이라고 날조했다는 것.
3. 강 교수가 봉건제를 착취가 없는 사회로 왜곡, 미화했다는 것, <자본>의 역자가 <자본>외의 다른 저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의 내용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강 교수의 <자본> 해설에 나타난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 ‘운명의 역전’은 <자본>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안내판이라는 것.
4.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레닌이 만들었다는 강 교수의 주장은 한 마디로 어이없는 날조라는 것. 
5. 노동운동사가 전공이라는 강 교수가 공산주의, 사민주의라는 기본 개념의 역사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수정주의·교조주의 딱지놀음이나 하고 있다는 것.


   
칼 맑스의 자본론
 
장문의 답변을 했다고 생각하는 강 교수로서는 위와 같은 평가가 매우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다. 강 교수의 답변도 좀 존중해가면서 왜 이런 평가가 불가피한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문헌적 근거에 대한 강 교수의 유일한 말이다:

먼저 긍정적 이해와 관련된 구절이다.(김 교수의 질문에 따르자면 개혁에 대한 문헌적 근거가 될 것이다) “감독과 지휘의 노동은 … 모든 결합적 생산방식에서는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는 생산적 노동이다.”(<자본> 3권, 503, 504쪽). 
 
<자본>의 이 문구가 어떻게 맑스가 자본주의의 개혁을 위해 <자본>을 집필했다는 주장의 문헌적 근거가 되는가? 그렇다고 납득할 사람이 강 교수 말고 또 있을까 의문스럽다.

2. 강 교수는 개혁과 변혁이란 용어의 구별을 의식적으로 피한다고 한다.

사실 내가 이들 용어를 의식적으로 구별하지 않는 이유는 용어와 관련된 선입견(혹은 예단)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볼셰비키 이후 노선논쟁과 관련된 용어들이 “딱지붙이기”에 사용되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마르크스의 얘기를 곧바로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용어를 구별 않고 섞어 쓰는 게 마르크스의 얘기를 곧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그렇기는커녕 두 용어를 구별 않고 섞어 쓰면, 그게 바로 맑스를 왜곡하고 날조하는 직행코스가 된다.

3. 강 교수는 노동지대에 대한 <자본>의 서술을 인용하면서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강 교수의 말이다:

봉건제는 자급자족 체계가 거의 완벽하게 작동하던 초기 봉건제에서 교환이 점차 확대되는 후기 봉건제로 발전한다. 전자에는 지대가 노동지대였고 이 시기는 경제적 분석이 별로 필요없는 “투명한 생산관계”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여기에서는 잉여가치와 타인의 불불노동과의 일치가 전혀 분석될 필요가 없다”(3권, 1056쪽)고 말한다. 가난의 원인에 대한 경제구조의 분석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맑스의 말을 들어보면,

가장 단순한 시초의 지대형태인 노동지대에 관한 한 다음과 같은 것만은 분명하다. 즉 지대가 잉여가치의 시초형태이고 잉여가치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잉여가치가 타인의 불불노동과 일치한다는 것은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일치는 눈에 보이는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인데, 직접적 생산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행하는 노동은 그가 영주를 위해 행하는 노동과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어 있고, 후자의 노동은 제3자를 위한 강제노동이라는 강인한 형태로 직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본론>III(하), 김수행 역, 제1 개역판, 961-962쪽. 

맑스는 노동지대가 잉여가치 전체이고, 타인의 불불노동 즉 노동력 착취라는 것을 명시하면서, 이에 대한 특별한 분석이 필요 없는 이유는 누구 눈에도 영주를 위한 직접적 생산자 즉 농노의 노동이 영주를 위한 강제노동이라는 점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본> 제3권에서는 봉건제의 전형적 형태에서 노동지대를 통한 영주의 농노 착취가 의문의 여지없이 서술되어있다. 명색이 <자본> 역자인 강 교수는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노동지대에서는 잉여가치가 타인의 불불노동과 일치한다는 것을 분석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가난의 원인에 대한 경제구조의 분석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즉 봉건제는 착취가 없는 자급자족경제이기 때문이라고. 강 교수는 이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강 교수의 이해력을 문제 삼는 것은 이렇게 정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4. 강 교수는 <공산당 선언>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구성된 제헌의회를 해산한 볼셰비키의 독재가 마르크스의 이 구절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 나는 궁금하기만 하다.

   
칼 맑스
 
이전 글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레닌이 만든 거라고 하더니만, 이제는 레닌의 개념과 맑스의 개념이 어떻게 같은 거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전에 말한 것을 잘못이라고 정정하는 것 없이,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어투다. 내가 단순 명확한 형태로 이 개념을 만든 게 누구냐고 답을 요구했는데도 말이다. 좋게 해석한다면, 강 교수는 이전 글에서 레닌이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개념을 차용해서 왜곡했다는 취지로 쓴 모양이다. 그런데 개념의 차용과 왜곡이라는 취지를 개념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쓰는 사람이 강 교수 말고 누가 또 있겠는가? 더군다나 대학교수가 말이다.

5. 사민주의가 원래 맑스주의라는 자신의 주장에 문헌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 없이 강 교수는 이를 반박하고 있는 엥겔스의 서술에서 딱지가 아니라 내용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엥겔스가 사민주의 딱지를 반대한 게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화화라는 내용을 갖지 않고 사민주의 딱지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론이 사민주의가 원래 맑스주의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맑스와 엥겔스는 1860년대에 그리고 1870년대 중반까지도 이른바 사민주의자는 맑스주의적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고 명백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 교수는 엥겔스로부터의 이 인용문을 거론하면서 내가 엥겔스의 말을 끝까지 읽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고 비판까지 덧붙인다. 내가 읽고서 가져온 인용문을 가지고 말이다. 글을 제대로 안 읽어봤다든지 또는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이런 식의 비난은 이제까지의 강 교수의 글들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모두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남한테 뒤집어씌울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을 독자들도 이제는 이해할 것이다. 강 교수의 다음의 말도 엥겔스의 말을 끝까지 읽고서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후 제2인터내셔널에서도 드러나듯이 당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조직은 거의 대부분이 사민당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볼셰비키 자신이 만든 조직의 이름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다. 볼셰비키는 1898년에 이 정당을 창당하는데 그것은 김 교수가 인용한 1895년 엥겔스의 글 이후이다. 그러니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엥겔스까지 그렇게 반대하는 사민주의라는 딱지를 이들은 왜 처음부터 자신들의 이마에 붙였던 것일까?

엥겔스로부터의 짧은 인용문이 강 교수에게는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다시 옮겨놓고 보자. 엥겔스의 이 글은 1894년에 쓴 것이다.

이 모든 글[1871-75년 사이 <인민국가>에 발표된 논문들]에서, 특히 마지막 글에서 내가 항상 나 자신을 사민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로 명명하고 있음을 사람들은 인지할 것이다. 이는 당시 여러 국가들에서, 사회를 통한 전체 생산수단의 인수를 결코 자신의 깃발에 써놓지 않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민주의자라고 명명했기 때문이었다. ... 독일에서는 라쌀레 추종자들이 스스로를 사민주의자라고 불렀다. ... 따라서 맑스와 나로서는 우리의 특별한 관점을 특징짓기 위해 그런 분명치 못한 표현을 결코 선택할 수 없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1870년대 중반까지도 사민주의라는 명칭에 반대하였다는 것이다. 그건 이 명칭이 맑스주의의 원칙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그 경제 강령이 단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적일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공산주의적이고, 또 국가 전체의 극복, 따라서 또한 민주주의의 극복이 그 정치적 최종 목표인 당에 이 용어[사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용어는 그만 좋다고 하자. 당은 발전하고 있는데, 명칭은 그대로 남아있다.

여전히 명칭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제는 이 명칭을 더 이상 문제삼지 말자고 엥겔스는 말한다. 이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사민당이 맑스주의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당이 맑스주의의 내용을 담은 것은 1875년 라쌀레 당과 아이제나하 당의 통합과 그 하에서 맑스주의의 원칙이 관철되면서부터다. 맑스와 엥겔스가 그 시점 이래 당의 명칭을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1894년의 시점의 엥겔스의 말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각국에서 그리고 제2인터내셔널과 함께 사민당의 당명은 보편화되고 확산되었으며, 러시아에서도 맑스주의자들이 사민당(사회민주노동당)을 창당했던 것이다. 이렇게 명확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강 교수는 반문한다. “볼셰비키는 1898년에 이 정당을 창당하는데 그것은 김 교수가 인용한 1895년 엥겔스의 글 이후이다. 그러니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엥겔스까지 그렇게 반대하는 사민주의라는 딱지를 이들은 왜 처음부터 자신들의 이마에 붙였던 것일까?” 1895년 이후 시점은, 아니 그것보다 더 앞선 시점부터 엥겔스는 이 명칭을 문제삼지 않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기서도 강 교수의 이해력 부족이 문제의 근원이다.
       
이상 강 교수와의 논쟁은 다시 말하거니와 맑스의 이론에 대한 해석의 문제, 해석의 차이에 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문제는 사실관계의 여하, 왜곡과 날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맑스가 무덤에 있고 우리는 맑스가 아니니까 맑스의 이론에 대해 이런 저런 해석의 차이가 있더라도 맑스 이외에는 누구도 사실 여하를 확인할 수 없다면서 함부로 날조라는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위의 5개 질문 어떤 것도 맑스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맑스와 엥겔스의 문헌을 통해서 사실 여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관계의 확인을 통해 강 교수의 주장은 모두 맑스에 대한 왜곡이고 날조라는 것도 밝혀졌던 것이다. 내가 강 교수에 대해 ‘날조’라는 비판을 하는 게 강 교수에게는 학자간 논쟁의 금도를 넘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날조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로만 사용했을 뿐이다. 강 교수의 인격을 폄하하거나 문제삼는 건 전혀 내 의도가 아니다. 날조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거짓으로 꾸민다’는 것이다. 강 교수가 맑스를 왜곡하고, 맑스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처럼, 또 말한 것을 말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하는데, 여기에 대해 날조라는 말 외에 어떤 말이 더 정확하겠는가? 강 교수는 통상적인 용어사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자신의 이상한 용어사용법에 대한 비판은 그냥 묵살하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의 정확한 용어사용법을 문제삼고 나서는 것이다. 내가 강 교수의 이해력이 중학교 수준이라고 말한 것도 똑 같은 맥락이다. 이건 논쟁의 품위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고, 강 교수의 인격을 모독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다만 문제가 되었던 문장에 대한 강 교수의 이해력이 객관적으로 그 수준이라는 것을 지적했던 것뿐이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었다면, 강 교수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이해를 구하고 싶다.      

강 교수가 제기한 그 밖의 문제들, 예컨대 실천적인 전술문제라든지 볼셰비키와 현실사회주의의 문제 등은 이 논쟁의 원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들이고, 다분히 주 쟁점을 왜곡하고 희석시킬 우려가 있어 나도 그냥 묵살하였다. 다만 앞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내 글 하나를 참조시켰을 뿐이다. 강 교수는 내가 볼셰비키의 관점과 어떤 관계냐, 내 이론적, 정치적 정체가 뭐냐,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 이런 걸 자꾸 추궁하는데, 이런 건 위의 질문들에 답변하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것들이다. 강 교수는 정작 위의 질문들에는 답하는 것 없이 상관없는 문제들을 들고 나왔을 뿐이다. 

강 교수가 학자로서, 교수로서 <자본>을 어떻게 자의적으로 해석, 왜곡하면서 어떤 책을 쓰든 논문을 쓰든 사실 난 별로 관심이 없다. 어차피 연구자 세계, 그것도 맑스주의 연구자의 세계는 범위가 제한되어있고, 또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어쨌든 전문적인 연구를 토대로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을 통한 대중적인 강의라면 사정이 다르다. 경향신문 같은 중앙일간지에서의 <자본> 연재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의 왜곡과 날조는 정화되지 않고 그대로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마련이다. 이는 맑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거나 토론을 활성화하기는커녕 맑스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가로막고 왜곡하는 독소로서 작용할 것이다.

내가 강 교수의 <자본> 해설을 문제삼고 나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이 논쟁에서 경향신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경향신문으로서는 지면만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해설의 책임은 강 교수가 지는 것이다. 이 점은 나도 분명히 하고 싶고, 그래서 “경향신문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라는 제목으로 쓴 ‘바심마당’의 원래 글 제목도 온라인 판에서는 “강신준 교수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로 변경해달라고 미디어오늘에 요청했던 것이다.  
 
 
 
미선 (13-08-14 09:46)
 
논쟁은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애초 경향신문에 연재된 강신준 교수의 글에 대해 김성구 교수가 딴지를 건 것인데, 이러한 논쟁을 통해 좀 더 서로 간의 논지와 해석 차이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나로선 좀 더 흥미를 불러 일으켰던 지점은 지금 올린 바로 이 글이다. 나는 마르크스가 살아 있을 당시 마르크스를 따르던 노동자들이 사회민주주의자 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볼셰비키의 딱지 놀이에 의해 결국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마치 서로 다른 것마냥 이간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민주의에 관심하는 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강신준 교수의 마르크스 해석은 상당히 참신한 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오해도 있어보인다. 자본주의를 존속하면서 새로운 이행을 한다는 얘기는 상당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라는 블럭 위에 무언가를 새로 첨가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반대로 김성구 교수의 입장이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만 강조된다면 강신준 교수의 비판처럼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매우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어떤 점을 어떻게 강조하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적실한 표현과 용어 채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과정은 물론 긍정 부정 종합이라는 지양의 과정이지만,
내 개인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는 결국 진화상의 <포월>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논쟁은 계속 이어지길 희망하며
나는 좀 더 이분들의 마르크스 해석을 더 듣고 싶은 마음이다.

미선 (13-08-20 20:18)
 
쟁점은 수정주의·교조주의가 아니라 ‘자본’ 곡해 여부다
[논쟁 마르크스 자본⑤] 강신준 교수의 두 번째 답글에 대한 반론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540

미선 (13-08-28 13:45)
 
김성구 교수와의 논쟁을 끝내면서
[논쟁 마르크스 자본⑥] 강신준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논쟁 글 순서>
1. 강신준 교수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
2. 경향신문 연재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한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답글
3. 강신준 교수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4.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두 번째 답글
5. 쟁점은 수정주의·교조주의가 아니라 ‘자본’ 곡해 여부다
6. 김성구 교수와의 논쟁을 끝내면서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686

강신준 교수의 자본 이해는 오늘날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 중점을 두려는 해석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정말 사민주의와도 많은 흡사점마저 느껴지고 있다..

약간의 과도한 폄하적 표현만 제외한다면(특히 김성구 교수의 글에서 많이 나타남),
그럼에도 두 교수의 논쟁은 상당히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해석의 차이를 극명하게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숫돌 (13-08-28 18:28)
 
좌파 쪽에서는 강신준 교수의 해석을 날조로 보는 것 같은데, 흡사 개신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서 해석에 관한 입장 차이를 여기서도 보는 듯 합니다.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 권력을 가진자의 해석이 해석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문제는 텍스트를 중요시 하는 모든 분야에서 동일하게 부딪치게되는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논쟁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선 (13-08-29 15:11)
 
네..맞습니다. 텍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아무래도 어딜가나 있기 마련일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텍스트 해석의 권위를 독점한 세력들은 아무래도 새로운 해석을 마땅치 않게 생각할 것이구요. 뚫고 나갈 길은 결국 합리성 밖에 없을 듯 합니다.

김성구 교수가 윗글에 대해 다시 또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본이라는 텍스트를 놓고 서로 간의 해석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차이를 엿볼 수 있는 가운데
숫돌님 말씀대로 마치 성서 해석 입장 차이처럼 텍스트 해석의 권력전 양상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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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한국경제 담론의 지형] 경제민주화론 VS 복지국가론, 과연 얼마나 같고 다를까? 미선 2365 11-28
71 나름대로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경제정책들 미선 1993 11-26
70 사민주의와 근본주의.. 미선 2290 11-11
69 "기본소득은 일용할 양식이다"-기본소득의 기독교적 검토(강원돈) 미선 2575 09-05
68 <복지자본주의>를 통해 <민주사회주의>로 나아가야 미선 3254 09-03
67 노벨경제학 수상자들도 경제학을 비판하고 있다 / 레디앙 미선 3232 08-27
66 독일의 정치 정당 소개와 정치 문화 (조성복) 미선 2639 08-24
65 <노동> 개념의 한계.. <노동중심성>에 대한 회의.. (1) 미선 3946 06-26
64 새로 나온 정치 성향 테스트입니다. 미선 4218 06-05
63 <사회민주주의 기본소득론>은 가능한가? (2) 미선 2690 04-16
62 <사회민주주의 기본소득론>은 가능한가? (1) 미선 2960 04-12
61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미선 3647 04-11
60 "직접 민주주의는 더 좋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 (대담 브루노 카우프만 박… (1) 미선 4306 04-08
59 윤도현 교수의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강연 후기 미선 3580 02-18
58 왜 사회주의인가? (WHY SOCIALISM?) / 알버트 아인슈타인 미선 4080 01-19
57 기존의 주류 경제학의 한계와 세테리스 파리부스 미선 3857 12-26
56 경제학은 근원적으로 새롭게 변해야 한다! 미선 4685 12-24
55 [BIEN/해외동향] 2013년 비엔 뉴스레터-'브라질' 기본소득 관련 글들 미선 3163 12-21
54 "생존은 기본! 복지는 권리! 세금은 연대!" (1) 미선 3084 12-02
53 살림살이 경제학의 홍기빈 소장 강연 내용과 후기 미선 3521 11-05
52 낯선 진보의 길, 그러나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길 미선 3164 11-01
51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분리적 불행의 비극 미선 3212 10-18
50 기본소득론 연구 (3) 기본소득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자료들 (1) 미선 3275 10-01
49 기본소득론 연구 (2) 그 효과와 장점 그리고 단점 미선 3903 09-29
48 기본소득론 연구 (1) 미선 3786 09-29
47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미선 3295 09-24
46 <노동 중심성>에서 배제되는 <그림자 노동> 문제.. (2) 미선 4406 09-20
45 [펌] “기회균등에 더해 결과의 평등도 강조” “사회·경제민주화에 가장 적합한 이… 미선 3509 09-02
44 마르크스주의 해석에 대한 강신준 김성구 두 교수의 논쟁 (5) 미선 4481 08-14
43 [펌] ANT 이론가 브루노 라투르 인터뷰 기사 (1) 미선 4349 07-02
42 [필독] <사회민주주의> 선언 (조원희, 정승일 / 홍진북스) (1) 미선 7760 06-20
41 [펌] 마이클 샌델 교수 인터뷰 내용과 독자들과의 토론 내용 미선 3809 06-09
40 (자신의 정치성향 자가진단) 폴리티컬 컴퍼스 모델 설문 (2) 미선이 7930 08-31
39 [초강추!] 한국사회를 너무나 깊고 예리하게 잘 분석한 눈부신 통찰의 글!!! (3) 미선이 5291 11-21
38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 (1) 미선이 10213 07-15
37 정치성향 자가 진단(*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직접 테스트 해보시길~^^*) (7) 미선이 17207 05-18
36 美 아르코산티ㆍ日 야마기시…세계 8대 유토피아 도시 (1) 미선이 7009 04-19
35 “부동산 거품 붕괴, 이제 시간문제일 뿐” - 한겨레 (2) 마루치 6390 07-30
34 노동 문제와 활력 넘치는 민주주의: 확장된 자아의 지평을 향하여 (더글라스 스텀) 정강길 5417 04-07
33 나눔 강조하는 새로운 실험, 공동체자본주의 관리자 6188 01-15
32 일상적 권력과 저항: 탈근대적 문제설정 (이구표) 정강길 6863 06-13
31 공동체 화페 (베르나르 리에테르) 정강길 7849 05-17
30 3. 한국사회 진보 100대 과제 만들자 (박래군) (필독~!!) 정강길 5721 02-25
29 2. 권력재편기에 진보세력은 무엇을 할까 (박래군) (필독~!!) 정강길 5647 02-25
28 1. 왜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인가 (박래군) (진보운동가들에겐 필독 권함~!!) 정강길 5753 02-25
27 [펌] 한국과 일본의 미래세대, 동북아시아 평화연대를 위해 하나 되는 길 (김민웅) 정강길 5696 01-07
26 [펌]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야말로 가장 큰 희망"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정강길 5795 12-15
25 [펌]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惡의 유산' 정강길 7121 12-01
24 [펌] 제국과 다중론은 미국식 자유주의에의 투항 (사미르 아민) 정강길 5472 09-21
23 맑스꼬뮤날레 참관기-고전적 맑스주의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냐 정강길 5644 09-21
22 [펌]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반… 정강길 5513 09-21
21 [펌] 대안세계화와 한국 사회운동 정강길 6203 09-21
20 마르크스를 죽여야 마르크스가 제대로 산다..!! 정강길 6565 09-21
19 [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점에 대해 정강길 15512 09-21
18 [자료] 노동의 문제와 활력이 넘치는 민주주의(더글라스 스텀) 정강길 5086 09-21
17 [펌]경제학자 스티글리츠의 '세계화가 가져온 불만-' 정강길 6374 09-21
16 화이트헤드 철학의 사회학적 용용 개념 : <단위 행태>unit attitude 고찰 정강길 6551 09-21
15 [기사] 자살률, 경제성장률.실업률과 밀접한 관련 정강길 7396 09-21
14 현대사회주의론 (김세균) 정강길 6862 09-21
13 [펌] 일상적 파시즘론의 공허함 (이구표) 정강길 6165 09-21
12 [펌] 세계적 석학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버그스텐 논쟁 정강길 6473 09-21
11 [펌] 미국의 제3세계 정책과 군사적 개입 (김세균) 정강길 7119 09-21
10 [펌]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 拔本과 再構築의 변증법 (이수훈) 정강길 7581 09-21
9 [펌] 월드컵의 이면 : 축구공 만드는 아이들 (김선형) 정강길 8587 09-21
8 지구화 시대의 대안적 노동 세계에 관한 구상(강원돈) 정강길 6451 09-21
7 [기사] 세계 경제- 위기의 자본주의 두가지 '동력' (월든) 정강길 6171 09-21
6 [기사]세계 환경 유엔보고서, 지구위기상황 엄중 경고 정강길 5955 09-21
5 [펌] 제국논쟁 : 지구화와 민주주의 (마이클 하트) (1) 정강길 7151 09-21
4 [펌] 경제학 인터뷰 정강길 6047 09-21
3 [펌] 한미FTA, 노무현 정부의 자살인가 이일영 6819 05-08
2 [펌] 새로운 문명과 한국의 사회운동 이시재 5778 05-08
1 문명의 ‘충돌’과 ‘공존’ 이현휘 774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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