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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마르크스를 죽여야 마르크스가 제대로 산다..!!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9-21 02:34 조회(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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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 비판]

마르크스를 죽여야 마르크스가 제대로 산다..!!





지금까지조차도 많은 좌파 이론가들 가운데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혹은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정치경제학이든-이를 수용하지 아니하면 다시 또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것이라고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왜 마르크스가 아니면 부르주아 정치경제학 뿐이란 말인가.. 나 자신이 마르크스 이론을 받아들이기 힘든 근본적 이유는 마르크스가 무슨 유물론자 무신론자라고 해서 그의 이론을 수용 못하겠다는 것도 아니며, 사실상 그 이론 자체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마르크스를 살리고 싶다면 마르크스를 죽여야 마르크스가 제대로 산다고 본다.. 여기서는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중심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부정합성을 몇 가지만 기술해보고자 한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은 결국은 <노동시간>이다.. (여기서 맑스가 보는 시간 개념의 베이스에 뉴톤니안 패러다임의 단순 정위된 균등 시간 개념이 깔려있다는 비판은 그냥 접어두겠다.. 어떻든 사실상 그것은 계량화되고 계산될 수 있는 시간이다..) 맑스에게서 노동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노동시간>이야말로 바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의 가치 크기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그의 『자본론』에서 이를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의 양 혹은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그것의 가치 크기를 규정한다.” 생산과정에서 소비되는 노동력의 가치 크기는 “이 특별한 품목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노동력의 교환가치이다. 그리고는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이 가치창조적이라고 간주된다”.

이 같은 관점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서는 자연이 가치창조적이라는 관점은 철저히 배제된다.. 즉, 마르크스가 노동과정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영원한 물질대사의 이해로 봤다면, 그것은 여전히 자연을 대상화하는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말하고 있는 것밖에 안되며, 이는 곧 마르크스에게서조차도 그 역시 죽은 자연일 뿐이라는 얘기다.. 사실상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은 오늘날 인간 사회에 나타나는 다양한 경제학적 현상을 설명하기에 매우 역부족인 이론이며, -특히 생태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도 결국엔 인간 중심적인 것이고 얼마나 나이브한 것인지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공기 좋은 곳이나, 햇볕이 잘 드는 곳, 혹은 전망이 좋은 방은 그 가치크기가 더욱 비싸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일정량의 노동력을 투입시킨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이 더 비싼 잉여가치를 산출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즉, 동일한 노동량과 노동시간이 산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가치크기는 저마다 매우 다른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일조권>, <조망권>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정면으로 위배한다는 점을,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주류경제학들처럼) 이를 변수로 처리하거나 애써 예외사항으로 돌려버린다..

(주류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같은 현상들은 이를 외적 변수로 처리하고 넘어가는데, 흔히 공급량과 수요량에 따른 가격균형의 원리라는 경제학의 저 유명한 기본 모형그래프부터가 얼마나 후안무치의 도식임을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드물다.. 공급량이나 수요량이라는 것들도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 중의 하나의 요인일 뿐이지 그것은 결코 결정적인 것도 못된다.. 가격이 결정되는 데에는 수요량 공급량 외에도 수많은 외적변수들이 있다.. 사실상 수요공급 곡선이라는 그 도표자체는 매우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류 경제학에서 고심 끝에 머리를 짜내서 나온 유명한 용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라는 라틴어다.. 그 뜻은 “다른 모든 외적 조건이 동일하다면”인데, 이 같은 단서를 꼭 붙이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에게는 '세테리스 파리부스' 없이는 단 하루도 경제를 읽지 못한다.. 이것은 이들 경제학적 도식 자체의 구멍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이미 이를 <패러다임적 위기>로 읽지만 이들은 여전히 미련을 두고 못버리고 있는 것이다.. 왜냐구? 그동안 이 바탕 위에서 쌓아온 경제학 개념들이 얼만데.. 이걸 어케 버리남..)

하나의 상품에 대한 가치의 규정은 노동시간이 아니라 전체의 상호관계적 시스템에서 산출된 규정이며, 이는 오히려 보다 복잡한 분석들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고정값을 취하지도 않으며, 기껏해야 보다 느슨한 확률적 근사값을 취할 수 있으며, 오늘날엔 그나마 경기변동을 연구하는 <경제동학>Economic Dynamics정도만 이에 대한 시간차까지 고려할 따름이다.. 노동가치설 뿐아니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경제학이 말하는 교환가치설 역시 심각한 구멍뚫림을 안고 있는데, 예컨대 『자본론』입문서를 썼던 채만수씨는 화폐의 발생과 함께 가마솥1개=쌀2가마의 사례를 언급한다.. 하지만 사실상 가마솥1개가 쌀2가마일 때도 있고 쌀1가마나 쌀3가마일 때도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은 그의 글에서 빼먹고 있다.. 동일한 시공간에서조차도 그것의 교환가치는 참으로 천차만별인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경매 시장 같은 곳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이 점 역시 주류경제학에서도 확실히 설명치 못하는 예외로 처리되는 사항이다..

오늘날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생태주의를 접목하고 있는 그룹들은 <생태 맑스주의>Ecological Marxism 진영을 형성한다. 이들은 마르크스가 언급한 <물질대사의 균열>metabolic rift이라는 개념에 그 전거를 두고 있는데, 하지만 마르크스 자신은 자본과 관련한 생태학적 문제에 대해 이를 충분하게 체계화하진 못했었다.. 단지 이 개념은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목해서 뽑아낸 것뿐이다.. 오늘날 생태 맑스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이론가들로는 제임스 오코너나 조엘 코블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 극복을 <제1모순>과 <제2모순>으로 나눠서 본다.. 전자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과 관련한 계급모순이며, 후자는 지구적 산업화가 불러 온 생태위기에 따른 모순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자본주의의 붕괴 위기를 불러온다는 생태 맑스주의자들의 주장들은 어떤 면에선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기도 하다.. (참고로 인본주의적 낙관주의 역시 마르크스 철학에 끈질기에 달라붙어 있는 함의다..)

마르크스의 언급처럼 생산과정을 은폐하는 장막이 <시장>이라고 할 때, 계급투쟁은 이에 대한 변혁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있어 환경운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산과정의 기반들, 즉 생산조건에 대한 변혁을 요구하는 운동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생태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조차 이 두 가지가 제각기 따로 놀고 있다는 점이다.. (존 벨라미 포스터라는 맑스주의자는 앞서의 생태 맑스주의자들의 이론에 대해 이점을 지적하면서, 제2모순에 대한 해결에 중점을 맞추게 되면 제1모순에 해당되는 계급투쟁 운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될 위험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 자신 역시 이를 하나의 구도에서 온전하게 해명하고 있진 못하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여전히 유용한 것으로 보이는 생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에서조차 우리는 마르크스 철학의 한계를 만나게 된다.. 마르크스의 한계, 생태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 포함하는 그 한계란 무엇인가? 즉, 마르크스는 모든 사물에게서 그 목적인을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이는 근대 철학이 목적인을 거세하고 작용인을 강조한 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취급한 자연 역시 죽은 자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근대 철학에서의 목적인은 오로지 인간 <이성>에게만 허락된 것이며, 마르크스에게서는 이것이 변증법적 생산관계를 낳게 하는 노동/실천으로 대체되고 있었을 뿐이다.. 사실상 마르크스는 근대 철학의 수해자인 동시에 그 자신 역시 피해자인 것이다..

하나만 더 비판해보자.. 마르크스주의 담론에서는 공장근로자 중심의 담론이기에 오늘날의 영세자영업자나 구멍가게, 포장마차, 노점상 같은 민중들은 처음부터 배제된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볼 때에는 이들 역시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부르주아 자본가들에 속할 수 있다.. 사실상 『자본론』의 허점은 이미 여기서부터 그 담론의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는 내가 볼 때 생산수단에 대한 잘못된 정의에서 빚어진 한계로 보인다.. 마르크스에게서 생산수단은 토지를 포함한 노동대상을 통해 생산물을 얻기 위한 노동수단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이것들 없이도 여전히 소득이 가능한 현상들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실상 생산수단이란 “지성적 느낌이 갖는 상상적 명제”인데, 쉽게 말한다면, 이는 일종의 <아이디어>idea라고 불리는 것을 떠올리면 되겠다. 물론 이것은 물적 토대에 기반하면서도 그 인과율에 포섭되어 있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는 발생론적 구조주의자인 부르디외의 <아뷔튀스>를 떠올리면 감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언표화한 것이 곧 <정보>며, 정보란 아이디어에 대한 표현이다.. 이러한 것이 결국은 신체에 명령을 내림으로서 움직이는 것인데, 사회적으로 봤을 때 생산수단이란 것은 머리 뿐 아니라 인간의 <몸>Mom 그 자체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회적 생산물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이를 통해 물리적으로 창출되며, 이를 <실현화>시킴으로서 모든 사회적 생산관계를 형성한다.. 사실상 이는 문명의 창출이 되는 소스sources들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흔히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라는 것은 사실상 애초부터 불가능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에도 여러 사회주의들이 있겠지만- 만일 그것이 가능한 형태를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보의 소통, 곧 <정보의 공유>야말로 현싯점에선 가장 바람직한 최선의 지향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사이버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이런 점에서 우리가 이와 매우 유사함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어떻든 생산수단에 대한 개념도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마찬가지로 다시 재정의되어야 할만큼 그 한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위협하는 <지식가치설>이 대두되는 배경에는 이와 긴밀히 관련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나 자신이 제시한 생산수단에 대한 개념정의는 기존의 지식가치설이 말하는 바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아이디어가 벌이를 목적으로 할 때 그것은 노동으로써 실현화될 뿐이다.. 자본가들에게는 이것이 노동력으로서 포섭된다.. 지식 역시 노동에 한 범주에 속하며, 땅을 경작하거나 공장에서의 육체적 일이라는 것 또한 근본적으로는 그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화시키고 있는 노동인 것이다.. 즉, 생산수단은 누구에게나 지니고 있는 것이며, 단지 그 노동의 범주적 성격에 따라 계급적 분류를 논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좌파 이론가들은 마르크스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가진다.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오류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마르크스 패러다임의 위기 요인들은 이들의 눈에도 귀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오류를 지적하면 단박에 부르주아 반동으로 내몰리기 십상이거나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된다.. 정작 반론의 구체적 근거를 대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그리고선 단지 마르크스 패러다임이 설명치 못하는 변수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보완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외에는 달리 얘기하진 못한다.. 상당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에 기대고 그를 부활시키는 것이야말로 여전히 현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기제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삶이야말로 자본주의와 씨름한 자였으니까 충분히 이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그 스스로 선택의 폭을 축소시키고 있다. 즉, 자본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지 않고 오히려 마르크스 진영 자체를 벗어나면 괜시리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이론이 아닌가 하는 미심쩍은 눈길로 보는 것이다.. 허나 이제는 제3의 새로운 대안, 곧 자본주의를 넘어서고 마르크스마저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제3의 길은 절충주의자 기든스의 어줍잖은 제3의 길 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제3의 새로운 대안은 근대 철학의 완연한 탈피에서 후기 근대의 다양성과 복잡성까지도 끌어안은 채 일관된 관점에서 새롭게 처음부터 다시 벽돌을 쌓는 새로운 차원의 정치경제학 패러다임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그나마 제3의 길을 제시하는 자들은 마르크스주의 담론과 긴밀히 연결된 알튀세 혹은 들뢰즈/가타리의 이론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롭게 처음부터 벽돌을 다시 쌓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마르크스의 오류마저 간직된 채로 거기에서부터 다시 벽돌을 쌓고 있는 것뿐이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맑스에 있어서 정말로 우리가 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면 나는 그의 삶 혹은 그의 학문하는 태도라고 본다. 이는 곧 맑스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없는 자를 위해 기꺼이 프로메테우스가 되고자 했던 <맑스의 얼>이야말로 우리가 결코 버려서는 안될 무엇이다.. 나는 이것 외에 마르크스의 그 어떤 것에도 기본적으로는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지구적 자본과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일은 마르크스의 얼을 이어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한 발만 주의 깊게 세계 사회를 관찰한다면, 이미 마르크스 패러다임의 위기는 오류를 넘어 이것이 얼마나 현실에서 설득력이 미흡한 것인지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지 현재 노동자들의 생존적 삶을 그저 정당화시켜주는 -사실상 그것은 한편으로는 의미있다고도 보지만 불충분한 것이라는 점에선- 가리개로서 자리할 뿐이다.. 정말로 이것은 현단계의 민중신학 만큼이나 죽은 자식 불알 만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들이야말로 마르크스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본다..

이 지구 행성을 볼모의 황폐화로 만드는 저 무서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이론적 기반들은 처음부터 다시 재검토 재구성되어야 마땅하다..
진정으로 마르크스를 살리고 싶다면 마르크스를 죽여라!
마르크스를 죽여야 마르크스가 사느니..!!






2004-06-29 18: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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