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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미국의 제3세계 정책과 군사적 개입 (김세균)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9-21 02:08 조회(7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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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3세계 정책과 군사적 개입






“자유가 침범 당했다.

미국이 공격을 받은 이유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밝은 자유와 기회의 횃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빛을 가릴 수 없다. 선이 악을 이길 것이다.” - 부시 미국대통령










여러분! 자유라는 추상적인 말에 속지 마십시오.

누구의 자유란 말입니까?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다른 한 개인에 대한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의 피땀을 눌러 짜내기 위해 자본이 누리는 자유입니다.

- 맑스








김세균(소장,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이 글의 목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국가들의 명실상부한 패권적 강국으로 등장한 미국의 제3세계정책이 어떤 성격과 특징들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정책의 수행에 군사적 개입이 어떤 기능을 떠맡았는가를 구명하는 데에 있다. 미국의 제3세계정책은 미국이 추구한 세계정책의 한 부분에 속한다. 때문에 미국의 제3세계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외정책 일반의 성격과 특징들에 대한 사전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비추어 이 글에서는 미국의 대외정책 일반의 목표와 성격 등을 밝히는 선상에서 미국의 제3세계정책 및 군사적 개입문제를 구명해보려고 한다.






1. 미국의 대외정책의 일반적 성격과 전개과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의 이상 내지 최종적 목표는 세계 전체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지배를 확고히 함으로써 미국의 기업들이 어떤 제한과 도전을 받음이 없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이른바 ‘자유세계’의 완성 내지 미국중심의 제국 질서로의 세계의 완전통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은 그간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왔고, 지금도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해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크고 작은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도전 속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이 그간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먼저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서 살펴보자.


독일 중심의 파시즘진영의 패배로 종결된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세계자본주의체제에게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심대한 위기를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소련의 영향권으로 편입된 동유럽에서 사회주의체제가 수립되고, 이를 뒤이어 중국혁명이 성공함으로써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항하는 세계사회주의체제가 수립되었는데, 이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가장 중대한 사태 전개였다. 더욱이 자유진영으로 편입된 서유럽의 여러 국가 및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반자본주의 의식이 노동자대중에게 확산되고 사회주의세력이 정권을 담당할 능력을 지니거나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했으며, 사회주의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면서 제국주의적 지배질서에 저항하는 반제 민족해방운동이 제3세계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했다. 민족해방운동에 힘입어 이후 정치적 독립을 쟁취한 나라들은 대체로 반제노선을 견지했으며, 그런 나라들 중 세계자본주의체제로의 통합을 거부하고 사회주의권의 지원을 받아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통해 사회주의체제를 건설하려는 ‘사회주의 지향국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세계자본주의체제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상 최초로 가장 수세적인 입장으로 몰리게 만들었다.

위기에 처한 세계자본주의체제를 다시 안정시키고 부흥시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명실상부한 지도국으로 부상한 미국이다. 미국은 무엇보다도 사회주의권의 도전에 대처하고 사회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봉쇄’(containment)와 ‘탈환’(roll-back)을 목표로 하는 대소련 및 대사회주의권 포위전선을 전세계적 수준에서 구축했는데, 한국전쟁이 그러한 포위전선 구축의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미국은 전후 초기에는 자본주의체제가 처한 수세적 처지를 반영하여 처음에는 주로 ‘봉쇄’에 주력했다. 그러나 쿠바 등지에서 패배를 겪는 가운데에서도 봉쇄에 일정하게 성공하자 미국은 이후 사회주의권에 대해 일관되게 ‘힘의 우위’ 정책을 추구했는데, 이 정책은 동-서 간에 군비경쟁을 촉발시켜 사회주의를 내부적으로 피폐화시키려는 목적을 아울러 지닌 것이었다. 실제로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행해진 군비경쟁은 사회주의 국가들 속에서 평화산업 부분에서의 공업화와 내부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외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동서관계는 데탕트국면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이 데탕트국면은 소련이 줄곧 ‘평화공존’을 주창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소 대결정책을 고수해온 미국이 이 시기에 이르러 사회주의국가들을 힘으로 압박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보다는 경제교류 등을 증대시켜 사회주의국가들을 세계자본주의의 시장권으로 포섭할 필요성을 느끼게 됨으로써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권과의 관계를 개선해 제3세계의 반제-반자본세력 등에 대한 소련의 지원 등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판단한 데에도 크게 기인하는 것이었다.

데탕트국면의 조성을 통해 사회주의권을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포섭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은 일정하게 성공을 거두었다. 실제로 예를 들어 폴란드는 데당트국면이 조성되자 서구로부터의 차관 도입에 기초해 수출산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을 적극 추진했는데, 그 결과 폴란드는 이미 1970년대에 세계자본주의체제에 깊숙이 통합되었으며, 이로 인해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불어닥친 세계불황의 여파에 고스란히 노출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데탕트국면의 조성은,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군사적 압박을 통한 롤-백 정책의 추구’를 ‘평화적 방식, 특히 시장관계의 확대-심화를 통한 롤-백 정책의 추구’로 전환시킨 것이었다. 이 점에서 냉전국면이든 데탕트국면이든 둘 다 동-서관계를 특징지운 ‘동서간 대결체제’ 내지 ‘냉전체제’의 상이한 두 국면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 초에 성립된 데탕트국면은 1980년대에 레이건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신냉전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신냉전국면은 소련의 군사력이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미국과 전세계적 수준에서 ‘전략적 균형’을 이룰 정도로 성장하고 미국의 베트남에서의 패배와 이란혁명의 성공 등으로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가운데 70년대 중반 이후 제3세계에서 반제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다시 고양되고, 이 운동을 소련이 적극 지원하기 시작한 데에 대해 미국이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을 배경으로 성립하였다. 아프카니스탄 사태에 대한 소련의 개입은 신냉전국면 조성의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해 주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 소련의 군사력은 미국과 전세계적 수준에서 전략적 균형을 이룰 정도로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소련 경제는 - 동유럽의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 국가사회주의체제의 모순들이 누적되고 심화됨으로써 그 성장의 잠재력을 이미 소진당하고 있었다. 이로써 소련 경제는 197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침체국면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초에 조성된 신냉전국면은 소련의 내부사정을 한층 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한 고르바초프노선은 소련체제가 직면한 그러한 구조적 위기를 배경으로 출현한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내부적으로는 ‘국가사회주의체제’를 ‘민주적 사회주의체제’로 전환시키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군사적 경쟁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와의 협력체제를 구축해 소련 사회주의체제의 위기를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시도는 오히려 소련 사회주의체제의 ‘안락사’를 가져오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수행했다. 이로 말미암아 소련이 동유럽에서 대한 지배권을 포기한 가운데 발생한 동유럽의 인민혁명이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킨 데에 이어 1990년대 초에 옐친의 집권으로 소련 사회주의체제 역시 붕괴했다. 이로써 1990년대에 들어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위협은 최종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다른 한편, 미국은 전후에 서독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국가들과 일본을 대소련 및 대사회주의권 포위전선 구축의 핵심적인 전략적 동맹국가들로 삼았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이 사회주의 확산의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도록 미국은 이들 지역에서 공산당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부르주아세력과 개량주의적 사민주의세력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서유럽경제와 일본경제를 대미종속적인 경제로 재편하면서도) 마샬플랜(Marshall Plan)주의 실시 등을 통해 이들 국가들의 경제부흥을 적극 지원했다.주 나아가 미국은 소련의 외적 팽창을 막기 위해 서유럽국가들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그리고 일본과 실질적인 군사동맹을 구축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서유럽과 일본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군사적 우산 하에서 군비지출을 최소화하고,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 등을 규제한 ‘연계된 자유주의적 세계경제질서’의 혜택을 입어 유례 없는 성장을 거듭했는데, 이를 통해 서유럽과 일본은 1980년대에 이르면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미국과 일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경제력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로 인해 전후의 세계자본주의체제는 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 중심의 ‘일극 중심체제’로부터 일정하게는 미국, 일본, (독일 중심의) 서유럽이 중심이 되는 ‘3극 중심체제’로 변모했다. 일본과 서유럽 경제의 이러한 성장은 이들 국가들이 미국의 세계지배에 대한 잠재적으로 유일한 정치적-경제적 도전자로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1990년대에 이르러 유럽연합 국가들은 성장한 경제적 힘을 배경으로 한편으로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발전시키고 자본축적의 지역화된 형태와 결부된 보다 순수한 ‘유럽안보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러시아와 유기적 관계를 증진시키고 동구권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동아시아로의 경제적 진출에 힘을 쓴 일본은 남한, 대만,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하는 지역적 정치경제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런 사태발전은 미국과 다른 중심부국가들간의 갈등을 야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미국과 다른 중심부 국가들간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광범위한 공통의 이해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특히 중심부국가들 전체는 제3세계의 새로운 경제개방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제3세계의 정치-경제 등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는 데에 공통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면 세계사회주의체제의 붕괴된 조건 속에서 중심부국가들에 대한 제3세계국가들의 중대한 도전이 사라졌기 때문에, 다른 중심부 국가들은, 제3세계국가들의 도전을 제압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서 군사력 사용을 앞세우는 미국과는 달리, 제3세계의 도전에 대한 비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의 사용 및 보다 동등하면서도 유엔의 지원에 기반하고 국제법에 근거한 접근을 옹호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과 일본은 국제제도들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관리에 반대했으며, 세계관리를 위한 보다 동등하고, 규칙에 기초한 메커니즘의 창출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사태진전은 세계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른 중심부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재조직화하는 것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적인 관심사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90년대에 이르러 서유럽국가들과 러시아와의 결합을 방지하고, 미국의 지배를 받는 국제정치경제체제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유럽에 강력한 압력을 가했으며,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지역적 정치경제블록의 등장을 봉쇄하고 이 지역의 정치 및 경제를 보다 강력하게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재편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에 힙 입어 미국은 1990년대 중반이후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기초하여 세계경제 전체를 ‘미국화’시키고 서유럽과 일본이 미국의 정치적 지배 하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지역에 대한 미국의 핵심적 전략은 오늘날 ‘핵미사일방어계획'(Nuclear Missile Defence)으로 집약되고 있는데, 이 계획은 이른바 ‘불량국가들’(rogue states)을 제거하고 중국과 같은 핵보유국가들을 정치적-군사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중심부자본주의국가들을 보다 강력한 대미안보종속체제 하에 편입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미국지배에 대한 중심부국가들의 잠재적-현실적 도전들 역시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그러한 도전들은 ‘국제상공회의소'(ICC)와 같은 민간적 규범에 기반한 국제기구의 창설, 교토협약의 방어, 보다 친팔레스타인적인 중동정책의 강구 및 기타 이니시아티브들의 추구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나아가 유럽연합국가들은 NMD에 반대하고 있고, 대서양동맹 내부의 순수 ‘서유럽안보회의'를 통해 자신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코카서스 지역과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력 사용에 참가하거나 ‘불량국가들‘에 대한 범세계적 공격을 감행하는 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2000년에 들어와 전 세계의 희생 위에서 번영을 구가한 미국경제의 ‘좋은 시절’은 종말을 고했으며, 이와 더불어 세계경제는 오늘날 언제 파국적 대공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지극히 불안정한 장기불황국면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위기부담을 타국과 전세계의 인민들에게 전가시키고, 자국경제의 일방적 회생을 강구하려는 미국지배층의 시도는 노골화되고 있으며, 집권한 부시정권의 노선은 그런 시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일방주의적, 군사케인즈주의적 노선으로 경도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9.11. 대미 테러공격사건의 발생을 계기로 ‘범세계적 반테러전선’의 구축 및 ‘세계적 공안정국’의 조성을 중심부국가들을 자신의 주위에 묶어두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이익의 일방적 추구와 군사력 사용을 앞세우는 미국의 일방주의적-군사케인즈주의적 노선은 다른 중심부자본주의국가들의 저항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으며, - 중심부국가들간의 이해를 조절하고 전 세계를 관리하기 위한 세계적 레짐형태의 조직들을 더욱 발전할 것이지만 - 경제위기의 부담 문제와 제3세계의 관리문제 등을 둘러싸고 그들간의 경쟁이 앞으로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 미국의 제3세계정책






미국의 기업들이 어떤 제한과 도전을 받음이 없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세계’의 완성 내지 미국중심의 제국 질서로의 세계의 완전통합을 추구한 미국은 그러한 이상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 제3세계에 대해서는 어떤 정책을 추진해 왔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에서 식민지적 지배로부터의 해방과 정치적 독립을 요구하는 민족해방운동은 어느 곳에서나 강력하게 대두했다. 이로 인해 제국주의열강들이 구식민지 지배체제를 계속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게다가 영토적 분할에 기초해 성립한 구식민지 지배체제는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려 한 미국의 제국적 세계질서 이상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제3세계의 정치적 독립과정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정세 속에서 영국이 가장 먼저 구식민지적 지배를 포기한 반면 프랑스와 네들란드 등이 그 뒤를 이었고 포르투갈이 1970년대까지 아프리카에 남아있었던 자신의 식민지령을 유지하려고 최후까지 버티었다.

1950년대에는 중국과 북베트남 및 북한에서 민족해방혁명과 결부된 사회주의주의혁명이 성공했는데, 이들 혁명은 제3세계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의 시발점이 이룬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민족부르주아 내지 쁘디부르주아 세력이 주도한 민족해방운동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많은 신생국들이 이념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1950년대 말의 쿠바혁명은 제3세계 혁명의 새로운 파고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쿠바혁명에 이어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케이프 버디, 남베트남, 라오스, 캄푸챠에서 혁명이 성공했다. 이 시기에는 또한 형식적 독립의 획득 이후에 나타난 내부발전의 위기상황으로부터 칠레에서는 1970년 11월 아옌데 인민연합정권이 출범해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이 실험되었으며, - 1975년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패배와 1979년 이란혁명의 성공 등으로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정세 속에서 - 베닌, 콩고,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및 니카라카에서 사회주의정권이 출현했다. 1979년의 니카라카혁명은 1960년대와 79년대 혁명과정의 대비를 장식하는 사건이었다.

다른 한편, 반제노선을 추구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비동맹운동’이 출현했다. 1954년 인도 수상 네루와 중국 수상 주은래가 행한 ‘평화5원칙 선언’ - 영토와 주권의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호혜 평등, 평화 공존 - 및 1955년에 개최되어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평화공존, 전면군축 등을 결의한 제 1회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가 이 운동의 효시를 이루며, 1961년 9월 ① 평화공존, ② 민족해방운동의 지지, ③ 군사 블록 불참여, 외국군사기지의 설치・주둔의 금지 및 비동맹주의를 내세우는 ‘비동맹국회의’가 유고의 티토, 인도의 네루 및 이집트의 나세르 등의 주도 하에서 설립되었다.주 이러한 모든 움직임들은 제3세계에서 미국은 물론 제국주의국가들 모두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사태전개를 배경으로 전개된 미국의 그간의 제3세계정책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지닌 것이었다.


먼저, 미국은 제3세계를 무엇보다도 ‘미국과 소련과의 전투장’으로 간주하고 제3세계에 대한 소련 ( 및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것을 자신의 제3세계정책의 가장 중요한 일차적 목표로 삼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소련 영향력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1950-53년 한국전쟁을 치렀으며, 소련 및 사회주의권 포위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인 한국과 대만 및 필리핀 등과 안보군사동맹체제를 구축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여러 지역에 미군을 배치했다. 그런데 소련과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이후에도 그러한 안보군사동맹체제와 해외에 설치한 미군기지 등을 다른 중심부자본주의국가들을 견제하고, 전 세계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둘째, 미국은 이른바 ‘더러운 전쟁’이라 부르는 요인암살이나 국가적 테러의 감행 등을 포함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제반 수단들을 사용해 제3세계 국가들의 내정과 사회과정에 폭넓게 개입하여 사회주의적 국가나 반제 민족주의국가들의 전복과 와해 등을 꾀하고 사회주의적, 반제민족주의적 운동의 발전을 저지해 왔으며 - 대표적으로 필리핀에서 1953년에 대통령이 된 막사이사이를 지원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일게릴라 조직이 모태가 된 후크단(후크발라하프)의 반란을 소탕한 것, 인도네시아에서 스카르노체제를 전복시키고 1968년에 수하르토체제가 출범하도록 지원한 것, 1964년~1972년 베트남전쟁을 수행한 것, 칠레에서 피노체트중심의 군부세력이 1973년 9월 쿠데타를 통해 아옌데정권을 전복하도록 지원한 것, 1979년의 니카라카혁명을 통해 수립된 니카라카에게 압박을 가해 산디니스타정권이 1990년 2월 선거에서 패배하도록 만든 것, 1978년에 수립된 아프카니스탄의 친소사회주의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이슬람근본주의세력들을 지원한 것 등이며, 1980년대에 이르러 레이건 정부는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선 제3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반란을 조직적으로 지원했다 -, 제3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친미적-친자본주의적 국가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사회주의국가나 반제적 민족운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정책은 군사적-정치적 압박, 대내정책 및 대외정책 상의 굴복을 강제하기 위한 보이코트, 경제봉쇄 또는 무역상의 차별대우와 같은 경제적 압박 및 제반 이데올기적 압박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3세계의 사회주의국가 내지 사회주의 발전도상국들에 수립된 계획경제체제들은 1970년대에 이르러 외연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치면서 위기국면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이를 배경으로 1978년부터 중국이, 그리고 1986년부터 베트남이 시장주의적 개혁에 착수했다. 아울러 제3세계에 수립된 ‘사회주의지향국’들 역시 1980년대 들어와 미국의 강화된 반혁명개입과 내전, 1980년대의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불황의 여파, 경제발전 계획의 실패, 소련과 동유럽으로부터의 지원의 감소 등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심각한 체제위기를 봉착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제3세계의 대부분의 ‘사회주의 지향국’ 내지 ‘사회주의 발전도상국’들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항하는 노선을 포기하고 세계자본주의체제로의 재통합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지배권은 1990년대에 이르러 그야말로 전지구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셋째, 미국은 제3세계국가로의 사회주의의 확산 등을 막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종속국가들에서 군부독재체제가 수립되도록 개입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친미국가들,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들에게는 ‘개발원조’를 행하고 ‘근대화정책’을 추진해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을 지원했다. 이로써 제3세계에서는 ‘종속적 자본축적’을 통해 경제성장에 성공한, (‘중진자본주의국가’로 불리기도 하는) 이른바 ‘반주변부국가’들이 출현했으며 - 이 과정에서 제3세계의 군부독재체제는 ‘개발독재체제’로서 기능했다 -, 세계자본주의체제가 장기적 성장국면에 있었던 1970년대 중반까지는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 역시 제국주의적 착취와 수탈을 당하는 조건 속에서도 그러한 성장의 혜택을 일정하게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 세계경제 불황의 여파로 동아시아지역을 제외한 제3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심대한 ‘발전의 위기’를 경험하게 되며, 이에 따라 군부독재체제 등이 내부로부터 광범위한 민중저항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1980년대에 이르면 미국에게는 자국이 빠져든 경제불황의 부담을 외부로 전가시키고 경제불황의 탈출구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제3세계국가들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요구되었다. 더욱이 소련의 붕괴 등으로 제3세계에 대한 경제지원 등이 미국에게 더 이상 긴요한 것이 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민주화과정이 군부정권 등을 덜 권위주의적인 친미정권으로 대체시키는 수준에서 끝나는 ‘보수적 민주화’ 과정이 되도록 제3세계의 정치과정에 개입하고주, IMF와 세계은행 등을 앞세워 제3세계국가들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강제했으며, 1990년대에는 ‘세계경제의 미국화’를 가져온 ‘금융적 세계화’에 기초하여 제3세계에 대한 금융적 수탈을 강화했다. 이로 인해 제3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탈국민적인 종속적 신자유주의국가’로 변모했으며, 제3세계의 다수민중들이 절대적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 과정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새로운 민중운동의 출현과 성장의 배경을 이룬다.

넷째, 미국은 앞에서 말한 개발원조의 제공 등을 친미국가들에 대한 지원책으로서만이 아니라 반제적 성향의 제3국가들을 친미화시키고, 제3세계의 경제적 착취와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원들에 대한 미국기업의 접근을 확보하는 수단으로도 사용해 왔다. 실제로 미국은 제3세계국가들에 대한 경제원조를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지지여부에 종속시켰으며, 에너지와 자원 확보 및 자본투자 및 상품판매 시장으로서의 중요성 역시 경제원조를 제공하거나 그 액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러한 경제원조는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차관공여로 변경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직접투자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제3세계의 지역들 중 미국의 뒷마당인 라틴아메리카가 미국의 직접투자가 가장 집중되고 있는 지역이지만 - 이들 지역의 무역 역시 미국과의 무역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오늘날에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직접투자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알제리, 리비아에서부터 걸프지역을 거쳐 카프피해,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는 산유국들에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석유의 운송로를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가 의존하고 있는 에너지 자원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통제권을 유지-확대하는 것인데, 이러한 통제는 세계 전체에 대한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지렛대로서도 사용되고 있다. 제3세계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려는 미국의 노력은 금융, 무역정책의 활용을 통한 압력의 행사, IMF와 같은 국제기구의 활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해당국가 내에 미국기업의 자회사의 설립, 인수와 합병, 상품 및 자본의 수출, 주식시장 지배 및 인프라구축 등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미국은 유엔과 기타기구에서 특히 제3세계의 이익에 직결되는 지구적 문제의 해결 및 동등한 권리와 국가주권성의 존중에 기초한 국제질서수립 요구 등을 무시해 왔는데, 이런 태도는 부채탕감 및 국제정보체계의 새로운 수립, 노예무역에 대한 보상 등을 주창하는 개발도상국들의 요구를 미국이 계속 거부하고 있는 것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다섯째, 미국은 그간 반공주의를 선전하고 미국의 전지구적 목표와 활동 등에 대한 찬양을 홍보하는 것 등을 통해 제3세계주민들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미국식 자본주의사회의 ‘가치관’ 및 ‘미국식 생활방식’을 제3세계인민들이 따라야 할 이상으로 단지 선전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반제적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압박수단으로 사용해 왔으며, 반제해방투쟁을 ‘국제테러’ 행위로 규정해 이들에 대한 국가적 테러의 감행을 정당화해 왔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에 이르면 미국의 세계지배를 위협하는 제3세계의 심각한 도전은 거의 소멸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90년대에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수립해 온 국제질서에 반대하는 심각한 민중폭동에 직면하지 않았으며, 밀로세비치 치하의 유고슬라비아, 루카센코 치하의 벨로루시, 서구의 영향권을 벗어나 있는 몇몇 산유국 및 북한과 쿠바와 같은 일탈적 국가들은 주변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주변부-반주변부국가에서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적인) 정치적-경제적 재조직화와 빈곤의 확산 등은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을 누적시키고, 이들 국가에서 반제투쟁 등이 재연될 가능성을 높였는데, 미국은 그러한 미래의 위험요소들과 투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① 국가의 주권성 보장이라는 유엔의 원칙을 약화시키고, 그러한 주권국가들에 개입할 수 있는 국제공동체 - '유엔상임이사국'이 아니라 '중심부국가들' -의 권리라는 새로운 '제한적 주권 독트린'(doctrine of conditional sovereignty)의 확립, (2) 위험국가들에 대한 경제봉쇄(economic blockade)와 국내반란군에 대한 재정적, 행정적 지원과 공중폭격 등이 포함된 '현대적 포위전'(modern siege warfare)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했다. 밀로세비치 치하의 세르비아와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는 이러한 새로운 원칙이 적용된 전형적 대상이 되었다.

다른 한편, 중동지역에서는 초기 대중공산주의운동의 파괴 이후 1960년대와 70년대에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에 가장 심각한 위협을 준 것은 '세속적 아랍민족주의' 운동이었는데, 이 조류와 대항하기 위하여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미국의 중동 거점으로 삼는 동시에 이들 국가에게 보수적 이슬람운동을 육성하도록 조장하였다. 특히 1970년대 말의 이란혁명 이후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로 하여금 급진적이고 반동적인 '수니파'를 보다 호전적인 형태로 육성하도록 지원하였고, 사우디 아라비아정부와 파키스탄정부가 소련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의 좌파정권과 소련 군대에 대항하는 전쟁을 치르도록 이슬람의 보수적 혁명세력들의 성장을 조장했다. 이를 배경으로 미국은 세속적 민족주의세력의 성장을 막기 위해 1990년에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에 미군기지를 설치했다. 이후 중동사태는 ① 이스라엘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가하는 억압에 대한 미국의 묵인, ② 앵글로아메리카의 봉쇄정책의 결과로 인한 이라크인들의 고통의 가중(1990년대에 모두 약 120만명이 사망하고, 약 50만명의 어린이들이 기아로 죽음)과 봉쇄정책에 아랍국가들의 이탈(쿠웨이트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이 이라크포위전의 지속에 반대함) - , ③ 이로 인한 미국과 중동지역 아랍국가들 -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도 포함됨 -의 상호협력관계의 약화 및 ④ 사우디아라비아의 내적 분열 징후 발생 등에 의해 대변되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1990년대의 미국의 대중동정책은 자기만족과 표류라는 특징을 지닌 것이었다. ‘자기만족'의 이유는 소련이 붕괴하고, 다른 곳에서는 무기시장이 축소되고 있었던 시기에 중동 내부의 긴장이 중동을 미국 무기수출의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만든 사실 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표류'의 이유는 중동지역에서의 잠재적인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변화가 매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위에서 말한 이러한 문제들 중 어느 것도 9.11사건이 발생하기까지는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라파트가 미국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고, 시리아의 이라크 지원과 다른 아랍국가들의 봉쇄정책 거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가 봉쇄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 데다가 미국의 아랍동맹국들은 미국정책에 반대하는 항의를 할 수는 있었지만 소련이 붕괴한 상황 속에서 미국에 등을 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계산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은 무엇보다도 아랍민중의 분노가 크게 증대하고 있었고, 이를 배경으로 반미노선으로 자신의 노선을 전환시킨 이슬람근본주의세력의 한 분파가 미국에 일대 타격을 가할 힘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사실인데, 이를 배경으로 지난 9월 11일 대미 항공기공격사건이 발생했다.






3. 미국의 군사적 개입






앞에서 우리는 미국의 제3세계정책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군사적 개입 역시 미국이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였으며, 군사적 개입수단은 주로 사회주의국가나 반제 민족주의국가들을 전복하거나 와해시키고 사회주의운동이나 반제민족주의운동의 성장 등을 저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지적했다.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방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에게 있어 군사적 개입은 대외정책 수행의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미국은 자신의 정책수행에 요구되는 군사적 개입의 확장 수준과 미국화 수준을 가능하면 최대한 최소화시키는 정책을 추구해 왔다. 이를 위해 미국은 그간 수많은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 군사전문가들을 ‘반란대응’(counter-insurgency)체제의 가동을 위해 동원해 왔으며, 이들의 도움을 받아 제3세계에 대한 매우 다양한 개입수단과 개입방식들을 개발해 왔다.

미국이 그간 가장 자주 사용한 군사적 개입방식은 직접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은폐된 간접적 개입’ 방식이었다. 이 방식의 군사적 개입은 미국의 무기와 원조 및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기본적으로 뒷받침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단지 군훈련관, 지원장교나 지원 기술전문가로서만 개입하면서 일종의 ‘대리전’을 치르게 하는 것인데, 미국은 이런 방식의 개입을 괴멸시켜야 할 저항운동과 혁명운동이 아직 강력하게 성장하지 못하거나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에 불리한 국제정세 등이 조성되어 있을 때 선호해 왔다. 1945년 이후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미국의 그런 방식의 개입의 풍부한 실험장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유나이트 푸르트 회사의 토지에 중세를 과하고 토지개혁을 단행한 과테말라의 아르벤츠 정권을 1954년 CIA가 육성한 데스페라도스군을 앞세워 전복했다. 그리고 1961년 케네디행정부는 유사한 방식을 채택해 혁명쿠바의 전복을 위해 CIA가 조직한 망명 쿠바인들로 하여금 피그만을 침공토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소수의 가시적 사례들에 불과하다. 오히려 무기공급 - 예를 들어 1950년에서 1964년 사이 미국이 무상으로 제공한 무기들의 총가격은 아프리카의 경우 1억4천6백만 달러, 근동 및 남아시아의 경우 52억7천만 달러, 극동의 경우 55억8천2백만 달러,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5억4천만 달러에 해당하며, 1950년에서 1965년 사이에 라틴아메리카는 총 16억달러에 해당하는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유-무상으로 획득했다 - , 반게릴라 및 기타 군사학교에서의 장교훈련 - 이런 종류의 가장 중요한 시설은 파나마에 소재하며, 1949년에서 1965년 사이 약 2만명에서 2만5천명의 라틴아메리카 군사요원들이 이런 종류의 군사학교를 졸업했다 -, 군사자문단의 파견 등 일상적인 반란대응체계의 가동과, 광범위한 해외기지의 설치, 해병대와 전투비행기들 싣고 해양에 상주하는 함대 운용 - 특히 지중해의 제6함대와 대평양의 제7함대가 중요하다 - 등을 ‘예방적 반혁명’체계로서 작동시키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은 그러한 체계들을 활용하여 혁명거점의 형성을 처음부터 방지하거나 최소화시키는 데에 주력해 왔는데, 이러한 기법은 쿠바혁명의 성공 이후 갈수록 세련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장개석정권과 디엠정권을 앞세운 예방적 반혁명의 수행은 중국과 베트남에서 실패했는데, 이는 대리전의 수행이 혁명운동이 인민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등 아직 취약한 상태에 있을 때에만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대리전을 통한 예방적 반혁명의 수행이 한계에 부딪칠 때 미국이 행한 군사적 개입의 다른 한 종류는 ‘부분적인 직접개입’이다. 이러한 형태의 개입은 시간적으로 (개입기간과의 관련하여), 공간적으로 (개입의 목표물과 관련하여), 그리고 물적으로 (사용하는 무기 등과 관련하여) 제한성을 지닌 개입으로서 미국이 보호하려는 종국국가의 정권이나 사회구조 등이 직접적인 위협에 처하게 되었지만 단기적인 군사적 직접개입을 통해 저항세력에게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에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개입의 전형적인 예로서는 1958년의 레바논 상륙과 1965년의 도미니카공화국 내정에의 군사개입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미국은 부분적 직접개입으로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태에 직면해서는 ‘전면적인 직접개입’을 행했는데, 그 전형적인 사례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수행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시 미국은 사태의 긴급성에 비추어 처음부터 육-해-공군의 전면투입으로 사태에 대처해 나갔지만, 베트남의 경우에는 대리전을 지상군의 제한적인 투입과 결부시킨 공중폭격으로 엄호하는 방식의 대처가 실패로 끝남에 따라 1965년부터 미지상군을 대규모적으로 투입하는 등 ‘전면적인 직접개입’에 나섰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베트남은 게릴라전의 전개를 통해 미국을 패배시켰는데, 이 전쟁에서 베트남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혁명운동과 인민대중이 높은 수준으로 결합한 데에 기인한다. 이와 관련해 모택동이 말한 ‘전략적으로는 10 에 대해 1이, 전술적으로는 1에 대해 10이 대처한다’는 게릴라전의 원칙이란 경제적-기술적으로 뒤지지만 정치적 우위를 차지한 혁명운동이 전개할 수 있는 전쟁수행 원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그간 미국이 제3세계에 대해 행한 중요한 직-간접적 군사적 개입은 아래와 같다.


한국전쟁 (1950~1953),

이란의 모사디그 정권 전복 (1953),

과테말라 정권 전복 (1954),

중동 위기 선동 및 레바논 상륙 (1958),

케모이섬, 마쓰섬 주변에서 무력시위 (1958),

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 선동 (1960),

피그만 침공 (1961),

통킹만 무력도발 (1964),

베트남 전쟁 (1964~1972),

도미니카 공화국 내정개입 (1965),

엔크루마 정권 전복 (1866),

라오스, 캄보디아 무력개입 (1970),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

포르투갈에서 파괴활동 (1974~1975),

케냐의 무왕기 카리우기 암살 (1975),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권 전복 (1975),

콩고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1977),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79~1981),

카스트로 암살 기도 (1960~1981),

전두환중심의 군부세력에 의한 광주민중 학살 방조(1980)

카다피 암살계획 (1981),

파나마의 토리호스 암살 (1981),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

잠비아 대통령 암살계획 (1981)

폴란드 내정간섭 (1980~1984),

아프가니스탄 군사개입 (1980~1984),

엘살바도르 내전 군사개입 (1981~1983),

니카라과에서 군사도발 (1981~1983),

시드라만에서 리비아에 대한 군사도발 (1982),

그레나다 침공 (1983),

파나마 침공(1989)

걸프전 (1990-1991),

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

수단, 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 이라크 공격 (1998),

유고연방 침공 (1999)

대아프칸전쟁 수행(2001)






4.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의 제3세계정책의 주요특징과 전개 양상 및 미국의 군사적 개입방식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은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세계경제의 미국화를 가져온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이루어짐으로써 미국의 대외정책의 이상인 자유세계의 완성 내지 미국중심의 자본주의적 세계제국의 건설에 일정하게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WTO뉴라운드가 체결되고, 9.11.대미공격사건에 대한 응징으로 행한 대아프칸전쟁에서 신속하게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이상은 이제 거의 완전한 실현단계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미국패권이 최정점에 도달한 것 같은 이 시점은 동시에 미국패권 몰락의 진정한 시작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2000년에 들어와 미국중심의 세계자본주의체제는 전면적 위기국면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미국중심의 세계제국의 출현과정이란 사실은 자본축적 위기에 대한 자본주의적 대응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런 제국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일방주의적-군사케인즈주의적 노선으로 경도되고 있는 미국과 다른 중심부자본주의국가들간의 갈등은 앞으로 증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유세계의 완성 내지 미국중심의 제국질서로의 세계통합이라는 미국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는 과정이 전 세계 민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드리고 절망적 상태로 내모는 민중억압과 민중배제에 기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 그 과정이 지닌 최대의 문제점이다. 이로 인해 미국중심의 세계제국에 대한 민중저항은 크게 증대할 것인데,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9.11.공격사건은 앞으로 전개될 전 세계적 수준의 민중저항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대아프칸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미국에 대한 아랍민중의 분노는 더 깊어지고 있고, 그들의 대미투쟁은 앞으로도 어떤 방식을 통해서이든 이어질 것이다. 더욱이 9.1.1공격사건은 하나의 작은 민간단체들의 활동만으로도 미국의 심장부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이에 비추어 더 많은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살특공대 등의 대열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제4세대 전사들의 양산, 이들에 의한 이번 공격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대재앙적 테러'의 감행 등이 앞으로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은 높으며,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은 사태를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몰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아랍민중의 투쟁은 세계민중투쟁의 일부분을 이룰 따름이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와 '반전운동'으로 결집하고 있는 세계 민중들의 투쟁은 갈수록 더욱 급진화되고 반미적 성격을 강화시키고 있고, 그 힘을 증대시키고 있다.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궁극적으로 군사력 등이 아니라 대중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미국의 패권은 외형적으로는 강화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심대하게 훼손되고 약화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세계사는 오늘날 새로운 혼돈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혼돈은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기 위해 겪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피한 진통일 것이다.





<미주>


1) 정식 명칭은 유럽부흥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이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의 경제부흥을 위해 미국 국무장관 조지 C. 마샬이 발의함에 따라 수립되었다. 이 플랜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견제를 전제로 한 것이었으로 소련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이후 동유럽국가들은 이 계획으로부터 탈퇴했다.

2) 이러한 정책은 대소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1947년 그리스와 터키에 4억달러의 원조와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기 위해 발표된 ‘트루먼 독트린’에서부터 본격화되었다. 2차대전 중 나치스 점령하에서 그리스의 해방운동을 주도한 것은 좌익세력인 ‘민족해방전선(EAM)'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왕정복귀를 노리는 우익세력과 민족해방전선 사이에 정치투쟁이 벌어졌는데, 영국은 우익세력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 당시 영국은 이 지역과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힘이 상실하고 있었는데, 이에 따라 영국은 1945년 가을부터 워싱턴에 이 지역에 대한 개입을 요청했다. 결국 1947년 미국이 개입하여 16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이 발생했는데, 이 내전은 고문과 수만명에 이르는 그리스인들의 정치망명, 또 다른 수만 명의 이른바 ‘재교육캠프’로의 강제 수용 등을 가져오고, 노조를 비롯한 모든 독립적 정치세력의 가능성을 짓밟아 버리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미국은 서유럽의 사회주의화를 방지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원조계획인 마샬플랜(Marshall Plan.)을 수립했는데, 1948년 2월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공산당 쿠데타에 뒤이어 이탈리아에서 곧 실시될 총선에서 공산당의 의회 다수파를 구성할 공산이 커짐에 따라 1948년 3월말 미국의회는 서둘러 이 계획을 승인했다. 미국 정부는 만약 선거운동의 방향을 통제하기 어렵다면 군사적 개입까지 불사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군사적 위협, 식량통제 등의 수단을 모두 동원해 미국은 이탈리아에서 공산당 집권의 위협을 극복하는 데에 성공했다.

3) 비동맹국 제1회 회의는 1961년 9월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28개국이 참가하여 개최되어, ‘베오그라드선언’을 채택하였고, 제2회 회의는 1964년 10월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57개국이 참가하여 ‘평화와 국제협력의 강령을 채택했다. 제3회 회의는 1970년 9월 잠비아의 루사카에서 54개국이 참가하여 ‘인도차이나에서의 외국군의 철수 결의’ 를 채택했다. 제4회 회의는 1973년 9월 알제리의 알제에서 개최되어 천연자원의 국유화와 신국제경제질서의 확립을 다진 ‘알제헌장’을 발표하였다. 제5회 회의는 1976년 8월 콜롬보에서 개최, 쿠바・베트남・북한 등을 포함하는 86개국의 정식 가맹국과 9개국 및 13개 국제기구가 옵서버로 참가하여 베트남사태를 감안한 ‘정치선언’・‘경제선언’ 등을 발표하였다. 1978년 국제연합에서 최초의 군축특별총회(軍縮特別總會)가 개최된 것은 제5회 회의의 결의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런데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친서방노선으로 기울려짐에 따라 비동맹국회의가 이후 반제블록의 성격을 점차 탈피하는 과정이 나타났다. 1979년 9월 쿠바의 아바나에서 95개국(3개기구 포함)이 참가하여 개최된 제6회 회의는 개최되었는데, 개회 시작부터 의장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의 반미・반중공・친소・친베트남 연설로 온건파와 급진파의 논쟁이 전개되는 등 커다란 분열상이 노정되었다. 1982년 9월 바그다드에서 열릴 예정이

4) 이와는 달리 미국은 중동의 석유자원을 확보하고 아랍세계에서 진보적 민족주의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성장을 막기 위한 보루로서 반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정을 줄곧 지지해 왔고, 복고적인 이슬람근본주의운동의 성장을 지원해 왔는데, 이런 형태의 개입은 민주화과정과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결합시키는 정책을 추진한 1990년대의 미국의 제3세계 개입의 일반적인 유형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팔레스타인문제에서 이스라엘을 계속 지지해온 데에다가 대이라크전쟁을 개시하고 사우디아비아에 미군기지를 건설한 것 등에 촉발되어 이슬람근본주의운동의 한 파인 빈 라덴 중심의 알카에타 조직이 1990년대에 이르러 자신의 노선을 반제노선으로 변경시킨 것은 미국의 대중동정책이 아랍세계의 엘리트층의 일부에게도 참기 어려운 것이 되고 미국정책에 대한 아랍민중의 분노와 원한이 크게 증대한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72호(2001년 12월호), 41-61쪽
2002-09-29 17: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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