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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붓다운동으로서의 초기불교 시대 (김재영)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8-03 01:13 조회(8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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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운동으로서의 초기불교 시대
 
김재영
 
1. 초기불교 시대의 역사적 상황
::::: 목 차 :::::
  1. 초기불교 시대의 역사적 상황
  2. 초기 전법운동의 주역들
  3. 초기 전법운동의 방법론, 그 기본 전략
  4. 초기 전법운동의 개척과정
 
우리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자.
증오 속에 있으면서도 증오 없이 미워해야 할 사람들 속에서도 미움 없이 우리 자유롭게 살아가자. -Dhp. 197.
 
이것은 《담마파다(Dhammapa?a, 法句經)》 197게송이다. 널리 알려진 행복과 평화에 관한 붓다-담마이다. 그러나 이 담마는 단순한 명상의 언어가 아니다. ‘로히니(Rohin.沖) 강 분쟁과 평화 사건’이라는 절박하고 살벌한 전쟁위기에서 행한 현장의 절규이다.1) 1) 이 사건은 Dhammapa?a-At.t.hakatha?Dhammapa?a-Commentry, 法句經 古註釋書) 15, 1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 거해, 《법구경》 2(고려원, 1992), pp. 412~416. 拙稿, 《초기불교개척사》(도서출판 도피안사, 1991), pp. 190~194.
 
이 설법의 결과, 로히니 강물을 피로 물들일 뻔했던 석가족(Sa?iyas)과 꼴리아족(Koliyas)의 군사 대결은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수많은 주민들이 법의 눈을 뜨게 되었다. 이와 같이 붓다-담마는 선정 삼매의 추상적 언어이기 이전에, 치열한 현장의 발언이며 문제 해결의 수단인 것으로 보인다. 붓다-담마의 이러한 현장성(現場性)은 45년간에 걸친 붓다의 전법과정을 통하여 줄기차게 관철되고 있다.
 
이것은 붓다-담마가 본질적으로 역사적·민중적 운동의 산물이며, 따라서 불교 연구는 역사적·민중적 상황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선행돼야 한다는 방법론적 당위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불교(初期佛敎, Early Buddhism)’라는 관행적 용어를 대신하여, 본론에서 ‘초기 붓다운동’이란 보다 역동적인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초기불교를 치열한 한 시대의 역사적·민중적 운동으로 인식하려는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초기불교에 대한 이왕의 접근방식은 대개 ‘초기불교=초기교리(근본교리)’라는 교리적·교조적 입장을 견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초기불교 연구를 교리연구로 과도하게 편중시켜, 결과적으로 불교를 탈역사·탈민중적 순수관념체계로 고착시킴으로써 초기불교가 담지했던 탁월한 시대정신으로서의 적응기능을 박탈하고 만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시대의 한국불교 내지 세계불교가 격변하는 인류사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불교 일반의 고질적 취약성도 기존의 연구방식이 온존시켜 온 이런 비(非)현장적 관념성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민중적 통찰이 결여된 교리연구·수행연구가 호흡이 소멸된 유체(遺體)를 해부하는 일과 크게 다를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초기 붓다운동은 기원전 7∼5세기 북동인도의 역사적 상황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이 시기의 급변하는 정치·경제·사회적 변화가 새로운 정신적 탐구를 추동시키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빤데(G. C. Pande)는 《불교 기원 연구(Studies in the Origins of Buddhism)》에서 이렇게 논술하고 있다.
 
기원전 6∼5세기 중국, 인도, 그리고 지중해 세계에서 지적(知的)·정신적 진보와 더불어 중요한 경제적·정치적 변화들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사회적 갈등의식을 조성하고 문제 탐구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 분명하다. 사회적 변화와 고통은 의심의 여지없이 종교와 철학에서의 새로운 출구와 연결되어 있다.2)2) G. C. Pande, Studies in the Origins of Buddhism(Delhi: Motilal Banarsidass Pub., 1995), pp. 310∼311.
 
정치적으로, 초기 붓다운동 당시의 북동인도는 ‘16대국(十六大國, sodasa maha?anapa?a)의 쟁패’로 표현될 정도로 폭력적 정복과 침략전쟁이 빈번하였다.3) 꼬살라(Kosala)·마가다(Magadha) 등 강력한 군주국들이 취약한 공화국들을 압도하는 가운데, 군주들을 중심으로 하는 폭압적 통치구조가 ‘물고기의 법칙(matsya-nya?a)’, ‘강자(强者)의 정의(正義)’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다.4) 3) E쳓ienne Lamotte, History of Indian Buddhism(La Neuve: De L’Institut Orientaiste De Louvin, 1988), p. 7. 拙稿, 앞의 책, pp. 96∼98. 4) 피야세나 딧사나야케/정승석 역, 《불교의 정치철학》(대원정사, 1988), p. 175. 拙稿, 앞의 책, pp. 102∼103.
 
이러한 폭력·폭압의 시대에, 다수 민중들은 군주들의 노예로 전락되고 살벌한 전쟁터로 내몰려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강요당하였다. 초기 율장(Vinaya) 《大品(Maha?vagga)》 기록되어 있는 ‘마가다 전사들의 집단 군역탈출과 출가 사건’은 이 시대 민중들의 고통과 저항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특히 주목된다.5)5) Maha?vagga(Mv.) 1, 40, 1-4.
 
경제·사회적으로, 기원전 7∼5세기 북동인도에는 심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농업과 목축분야에서의 생산력의 증대, 수공업 기술의 발달과 전문화, 상인·대상들에 의한 활발한 상품거래와 교통로의 확장에 따른 원거리 교역의 확대, 해외무역의 발달, 화폐와 금융제도의 진전 등 북동인도 지역의 전면적인 경제 발전은 이 시대의 인도사회가 이미 농업중심의 부족사회를 벗어나 상공업 중심의 도시사회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인다.6)6) 拙稿, 앞의 책, pp. 111∼112.
 
리즈 데이비스(Rhys Davids)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 시기의 북부인도에는 바라나시(Ba?a?.as沖)·라자가하(Ra?agaha)·사밧티(Savatthi)·꼬삼비(Kosamb沖) 등 14개의 주요 상업도시가 번창하고 있었다.7) 7) T. W. Rhys Davids, Buddhist India(Delhi: Motilal Banarsidass, 1981), pp. 34∼41.
 
이들 도시들이 초기 붓다운동의 중심기지로 역할한 것은 붓다운동의 역사성을 더욱 명료하게 입증하는 사실로 인정된다.
 
도시경제의 발달은 거사(居士, gahapati)·장자(長者, set.t.hi) 등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상인계층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한편, 수많은 도시 빈민들을 양산함으로써 심각한 사회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슈만(H. W. Schumann)은 도시의 양상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왕궁 맞은 편에는 실제로 기둥에 의하여 지탱되는 단 하나의 지붕으로 된 회의장이 4면이 개방된 채 있었고, 시장(市長)의 집이 있었다. 그 다음에 귀족 등 관리들의 집들이 있었고, 근교에는 노동자들과 노비들이 진흙집과 기둥 위에 세운 대나무집에 살고 있었다.
 
그들 또한 그들 직업에 따라 모여 살고 있었다. 목수들·가구공들·마차제조공들·나무조각가들·소목장이들·금속공들·석수들·방직공들·염색공들·재봉공들·도공들·피혁공들·페인트공들·화환제작공들·동물취급자들·푸줏간종사자들·어부들·요리사들·이발사들·목욕탕업자들·세탁꾼들·마을 하인들의 거리들이 있었다.
이들 직업 각각이 사종성(四種姓, caste) 속의 작은 카스트(sub-caste, ja?i)를 형성하였다. 카스트 체제 밖에는 카스트 속의 사람들과는 사회적 접촉이 없는 아웃-카스트(out-caste)들이 있었다.8)8) H. W. Schumann, The Historical Buddha(London: Arkana, 1986), pp. 25∼26.
 
도시 빈민들과 하층 카스트·아웃-카스트(不可觸賤民)들, 이들이 바로 초기불전 속에 흔히 등장하는 ‘도적들’ ‘5백 명의 도적들’의 실체와 관련 깊은 것으로 보인다. 앙굴리마라(An?ulima?a)도 이러한 집단도적의 두목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9)9) Ibid., p. 126.
 
정복전쟁의 확대와 폭압적 군주권의 강화, 카띠야(khattiya-caste, 끄샤뜨리야) 그룹의 성장, 도시경제의 발달과 자산가(vessa, 바이샤) 그룹의 대두, 도시빈민과 하층 카스트·아웃-카스트들의 집단화, 다수 민중들의 고통과 저항의식의 성숙 등으로 표현되는 기원전 7∼5세기 북동인도의 정치·사회적 격동은 그 자체로서 기존의 브라만적 가치관의 위기와 새로운 정신적 질서에 대한 강력한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붓다운동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깊이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종교학자 토카레프는 이렇게 논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전통적인 세계관의 위기를 조성하였다. 사람들은 이제 위대한 브라마(Brahma? 자신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여겨지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금욕주의와 유랑하는 수도생활이 광범하게 확산되었고, 이것은 상류 카스트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기존의 제도에 대한 불만족이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단적 교리, 분파, 그리고 순세파(順世派, Ca?va?a)와 같은 무신론적 철학체계까지 발흥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일반적인 불만족·불성실성, 그리고 절망감을 반영한 새로운 믿음 중의 하나가 바로 불교였다.10)10) S. 토카레프/한국종교학회 역, 《세계의 종교》(사상사, 1991), p. 316.
 
 
2. 초기 전법운동의 주역들
 
1) 출가 대중의 주역들
쿠주따라(Khujjutara?는 꼬삼비의 우데나(Udena) 왕의 왕비 사마와띠(Sa?a?at沖) 부인의 꽃시중 노비이다. 어느 날, 쿠주따라는 수마나(Sumana)의 꽃가게에서 붓다를 친견하고 담마를 들었다. 그 즉시 쿠주따라는 법의 눈을 뜨고 깨달음의 길(預流)로 들어서 성자(聖者, A?iya)가 되었다. 그는 궁중으로 돌아와 사마와띠 왕비와 5백 궁녀들 앞에서 붓다-담마를 설하였다. 그 즉시 왕비와 5백 궁녀들이 법의 눈을 뜨고 성자가 되었다. 왕비와 궁녀들은 쿠주따라를 ‘어머니 스승(a mother and a teacher)’으로 받들고 수행하였다. 그들은 붓다를 친견하고 싶었으나 궁중을 떠날 수 없어, 궁중 벽에 구멍을 뚫어놓고, 매일 아침 붓다가 탁발하러 길을 가실 때 구멍을 통하여 붓다를 우러러 보고 경배하였다.
 
우데나 왕의 후궁 마간디야(Ma?andya?가 사마와띠 왕비에게 원한을 품어 음해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마간디야는 사악한 무리들과 결탁하여 왕비의 궁에 불을 질렀다. 왕비를 비롯하여 쿠주따라와 5백 궁녀들은 피하지 못하고 불길 속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붓다의 가르침을 지켜 마음집중(念處)하여 삼매에 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고요히 죽음을 맞이하였다. 삼보헌신(三寶獻身)으로 불멸(不滅)을 실증한 것이다.
 
붓다는 이 소식을 듣고 대중들에게 담마를 설하였다.
    마음집중은 죽음을 벗어나는 길
    마음집중하지 못함은 죽음의 길
    마음집중하면 결코 죽지 않는다.
    마음집중하지 못한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과 같다.
    -Dhp. 21 ; Dhp-Com. 2. 1 11) 11) Dhammapa?a-Commentry 1(tr. Eugene Burlingame), pp. 247∼293 brief. ; 《법구경》 1(거해 역), pp. 97∼113. 拙稿, 앞의 책, pp. 288∼292.
 
이 ‘쿠주따라 여인과 5백 궁녀 견성 순교사건’은 초기 불교사에서 매우 유명한 사건으로 《담마빠다》 21∼23게송에 해당된다. 이 ‘쿠주따라 사건’은 오랜 수행-선정 없이도 진지하게 통찰하면 누구든지 즉시 눈뜰 수 있는 대중견성-만인견성의 역사적 현장을 여실하게 보임으로써 깨달음에 관한 이전의 왜곡된 고정 관념을 타파하는 데 큰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쿠주따라 사건’이 초기 전법운동의 실상에 관하여 많은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전법은 초기 붓다운동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해내는 가장 실제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붓다운동은 곧 전법운동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논의가 전법 없이는 불교 없으며, 전법 없는 불교는 이미 불교일 수 없다는 기본적 명제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원전 589년 성도로부터 기원전 544 입멸에 이르기까지,12) 붓다의 45년이 전도전법의 고행난행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도 이러한 진실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레버 링(Trevor Ling) 교수가 불교를 ‘전도의 종교(a religion of mission)’로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13)12) 불기(佛紀)의 연대 산정에 관해서는 많은 이설들이 착종하고 있으나, 본론은 1956년을 불멸(佛滅) 2500년으로 인정한 세계불교도협의회의 공식 연대를 존중 채택한다. 따라서 붓다 연기는 기원전 624년 탄생∼기원전 544년 입멸이 된다.; 中村 元 /김지견 역, 《佛陀의 世界》(김영사, 1984), pp. 181∼182. 拙稿, 앞의 책, pp. 26∼27. 13) Trevor Ling, Buddha, Marx and God( New York: St. Martin’s Press Inc.), p. 42.
 
초기 전법운동은 붓다를 비롯한 사부대중들에 의하여 역동적으로 추구되었다. 붓다와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사부대중들이 전법운동의 주역을 담당한 것이다. 붓다와 비구·비구니 등 출가대중의 경우, 그들은 유행자(遊行者, parivra?aka)·사마나(saman.as, 沙門)로서 전도전법이 그들의 본분사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법 본분은 매일 일상적으로 준수되는 탁발행(托鉢行)에 의하여 담보되었다. 초기불교가 전통적인 은둔자의 삶을 청산하고 탁발 유행자의 길을 택한 것은 전도전법의 길로서의 불교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크나큰 성공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빤데는 이렇게 논하고 있다.
 
숲 속의 삶(은둔자의 삶)에 대한 탁발 유행승들의 승리는 브라만교에는 없었던 보다 후기에 거둔 승리이다.14)
 
비구·비구니 등 출가대중의 탁발 유행은 곧 가장 민중적인 전도전법의 실천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전도전법이 탁발 유행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초기불전의 기록들로 비춰볼 때, 바로 이 탁발 유행이 초기 붓다운동-전법운동의 성공을 이끌어낸 가장 실제적인 방법의 하나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한 것으로 생각된다.
 
후일 사원의 장원화(莊園化)가 진행되면서 출가대중들이 탁발 유행을 포기하며 아비담마(abhi-dhamma)와 선정을 본분사로 표방하게 되고, 이것이 전도전법 의지의 쇠퇴로 귀결되면서 인도불교가 쇠망의 길을 걷게 된 역사적 사실은 우리 시대의 불교도들에게도 심각한 경종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탁발 유행은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만나고 담마를 전파함으로써 개인적·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가장 본질적인 출가수행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탁발 유행의 삶을 거의 망각해버린 한국·일본 등 동북아시아 불교권이 자기 정체성의 문제에 있어 심각한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15) 15) 拙稿, 앞의 책, p. 207.
 
《우데나(Udena)》에서는 마하까샤빠 비구의 탁발행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붓다께서 라자가하 대나무숲 절(竹林精舍)에 머물러 계실 때이다.

그때 마하까샤빠 장로(thera)는 핍팔라 석굴에서 중병을 앓고 있었다. 얼마 후, 마하까샤빠 장로는 병에서 회복되었다. 그때 그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라자가하로 탁발하러 가면 어떨까?’
 
그때 5백 명의 하늘 사람(天人, devata?)에게는 마하까샤빠 장로에게 공양 올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일어났다. 그러나 마하까샤빠 장로는 모든 하늘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라자가하의 가난한 사람들의 거리, 궁핍으로 크게 고통 받는 사람들의 거리, 베짜는 사람들의 거리로 밥을 빌러 들어갔다. 붓다께서 마하까샤빠 장로가 가난한 사람들, 궁핍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베짜는 사람들의 거리로 밥을 빌러 가는 것을 보았다. 붓다께서는 이 일을 살피고 이러한 우다나(uda?a, 게송)을 읊으셨다.
    다른 사람의 부양을 받지 않고
    잘 이해하고 마음이 순해지고 근본 위에 선 사람
    번뇌가 소멸되고 잘못을 떠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수행자라고 일컫는다네.
    -Ud. 1. 6 16) 16) Udena(P. T. S.), p. 5.
 
 
2) 재가 대중의 주역들
우바새·우바이, 재가 대중들 또한 출가 대중들과 더불어 초기 전법운동의 주역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은 재론의 여지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재가 대중들이 단순히 출가 대중들에 대한 외호세력으로 머물지 않고 교단의 한 주역으로서 역동적인 전도전법 활동을 전개한 것은 ‘쿠주따라 사건’에서도 이미 명쾌하게 드러나고 있다.
 
천민 출신의 한 여성이 담마를 듣는 즉시 견성하고 왕비와 5백 궁녀 앞에서 당당히 담마를 설하고 전파하며 그들을 깨달음으로 이끌고 그들의 ‘어머니 스승’으로 존경받는 이 사건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은 초기교단의 실상에 새삼 개안(開眼)하며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쿠주따라 사건’은 초기불교사에서도 널리 일컬어진 사건으로서, 붓다도 쿠주따라 여인을 재가법사로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다. 붓다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담마에 대하여 학식이 있고 담마를 해설(설법)할 수 있는 나의 재가 여성제자(우바이) 가운데서 쿠주따라가 가장 탁월하다.
    -Dhp-Com. 1, p. 282 17) 17) cf. An. 1. 47(text i. 27).
 
재가법사(在家法師, dhamma-bha?.aka, dhamma-teacher)의 존재 여부에 관하여 많은 논쟁이 있어 왔고 일부 논자들이 재가법사의 근거를 대승경전 《법화경(法華經)》 〈법사품(法師品)〉에서 구하고 있으나, 이것은 전혀 과문의 소치인 것으로 보인다. 붓다는 초기 불전 《앙굿따라 니까야(An?uttara-nika?a)》에서 분명히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나의 재가 남자제자(우바이) 가운데서 법사 제일은 마치까산다의 거사 찌따(Citta)이다.
    -An. 1. 14(text i. 25)18) 18) “Monks, chief among my disciples, lay-followers, of Dhamma-Teacher, is Citta, the house-father of Macchikasanda,” ; The Book of The Gradual Sayings 1(P. T. S.), p. 23.

    《앙굿따라 니까야》의 ‘제일가는 제자들의 품’에서는 사부대중의 법사(法師)들을 이렇게 거명하고 있다.-An. 1. 14. 1(text i. 23); An. 1. 14. 27(text i. 26)19) 19) Ibid., pp.16∼25.

●비구 법사 : 뿐나(Punna?
●비구니 법사 : 담마디나(Dhammadinna?
●우바새 법사 : ?따(Citta)
●우바이 법사 : 쿠주따라(Khujjuttara?
 
초기불교 시대 재가법사의 존재와 출가대중과의 평등한 전법활동은 더 이상 다툴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초기 전법운동이 소수의 특별한 인물들-법사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는 해석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붓다운동에 동참하여 전법운동의 평등한 주역으로 헌신하고 있고 또 이로 인하여 희생을 감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붓다운동-전법운동은 각계각층 진보적 시민 그룹들의 거대한 시민연대운동으로서 역동적으로 민중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초기 붓다운동의 이러한 시민연대적 특성은 빈번했던 시민들의 공양거부운동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다.20)20) 拙稿, 앞의 책, pp. 311∼314, 328∼340.
이 가운데서 이 시대의 지배세력을 형성하는 귀족들-까티야(Katthiyas, 끄샤뜨리야)와 상인들-베싸(Vessas, 바이샤)들의 활동이 뚜렷하고, 상인들의 역할이 특히 주도적인 것으로서 주목된다. 초기불교는 ‘도시의 종교’ ‘상인들의 종교’로 불릴 만큼 초기 붓다운동은 상인-자산가 그룹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사밧티의 자산가 ‘수닷따(Sudatta, Ana?hapin.d.ika, 給孤獨) 장자의 제타숲 절(祈園精舍) 기증 사건’에서 보듯21) 도시 상인·자산가들의 축적된 부(富)가 초기 붓다운동-전법운동의 물적(物的)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상인·대상(隊商) 그룹들이 육로와 해상의 교역로를 통하여 붓다-담마를 널리 전파하여 끊임없이 변방으로 불교 세계를 확대시켜 나간 주역들이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변방으로 떠나는 대상들을 위하여 붓다가 담마를 설하여 그들을 격려하거나(《雜阿含經》 980, 〈念三寶經〉),22) 무인 광야에서 도적들을 만난 상인들이 붓다-담마를 염하며 극복해가는 사건들이 흔히 등장하고 있다.21) Cv. 6. 4. 1-5. 22) 한글대장경 《雜阿含經 3》, pp. 16∼17, brief.

 
이것은 상인·대상 그룹들의 목숨을 건 전법-개척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역사적 현장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슈만은 이렇게 논술하고 있다.
불교의 사회적 적응과 확산에 있어서 베싸-상인들이 담당한 역할에 대해서 지금까지 거의 언급된 적이 없다. 상인들은 부유한 재가대중으로서 여타의 어떤 사람들보다 더 많이 사원을 헌납하는 지위에 있었고, 또 그들은 빈번히 왕래하는 그룹으로서 담마의 지식을 먼 지방으로 실어다 날랐다. 고따마의 교의가 동서남북 모든 방면으로 길을 잡아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대상들의 거친 우차(牛車)에 의해서였다.23)23) H. W. Schumann, Ibid., p. 190.

 
3. 초기 전법운동의 방법론, 그 기본 전략
 
1) 초기 상가(San?ha, 僧伽)의 존재 문제
    어느 때, 한 사람이 도둑질을 하고 도망가서 출가하였다. 그러자 왕궁 벽에 방이 붙었다.
    ‘그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라.’
    사람들이 (비구가 된)그를 보자 이렇게 말하였다.
    “저 자는 방이 나붙은 바로 그 자 아닌가. 같이 가서 저 자를 죽이자.”
    그때 몇몇 사람들이 말하였다.
    “여러분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니아 빔비사라 왕이 이렇게 명령을 내렸소. ‘석가족의 자제들, 출가수행자들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라. 붓다-담마는 잘 설해져 있다. 그들이 담마를 잘 수행하여 고통을 끝내도록 하라.’”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이 번져나갔다.
    ‘석가족의 자제들, 출가 수행자들은 안전하고 신분이 보장되어 있구나. 그런데 어떻게 도둑들을 출가시킬 수 있단 말인가?’
    비구들이 이 문제를 붓다에게 아뢰었다. 붓다가 말하였다.
    “수행자들아, 방이 나붙은 도둑을 출가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 자를 출가시키는 자는 누구든지 악업을 짓는 것이다.”
    -Mv. 1. 43. 1 24) 24) The Book of The Discipline 1(Maha?agga)(P. T. S.), p. 94.

초기 율장(Vinaya)의 첫 장, 《대품(大品, Maha?agga)》 출가편에는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마가다에서 일어난 이들 소외대중들의 출가 사건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Mv 1. 39. 1-52. 1) 25)25) Ibid., pp.89∼100.

 
① 나병 등 다섯 가지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
② 왕의 명을 거부하고 군역을 집단 탈출한 전사들
③ 살인강도 앙굴리마라
④ 탈옥한 도둑들
⑤ 방이 나붙은 도둑들
⑥ 태형을 받은 죄인들
⑦ 낙인의 형벌을 받은 죄인들
⑧ 빚지고 도망친 사람들
⑨ 주인집에서 탈출한 노비들
⑩ 부모와 다투고 도망친 대장장이
⑪ 말라리아에 걸린 부자(父子)
 
악성 전염병 환자들·군역 집단탈출자들·살인강도·탈옥한 도둑들·방 붙은 도둑들·형벌받은 죄인들·빚지고 도망친 자들·탈출한 노비들·가출한 대장장이·말라리아 환자들―이들이 초기 교단-상가(san?ha, 僧伽)의 구성원들이다. 초기 교단은 이들 사회적 소외 그룹들을 유예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히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들을 구호하고 보호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나병 등 다섯 가지 전염병 환자들의 경우, 비구들이 밤 세워 그들 동료들을 손수 간호하며 거리로 나가, “병든 비구들을 위하여 밥을 주시오. 약을 주시오.” 이렇게 탁발하고 있다.(Mv. 1. 38. 1)
 
이들 ‘마가다 소외대중들의 출가 사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가(san?ha)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을 흔들어놓은 일대 충격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상가를 출가 엘리트들의 전문적 수행집단으로서 어디까지나 재가 대중들과는 차별적으로 보려는 전통적 인식에 길들여져 온 사람들은, ‘그것은 예외적 경우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악업이라고 규정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반문해올지 모른다.
 
그러나 초기불전을 분석해보면, ‘마다다 출가 사건들’이 보여주는 양상이 초기 상가의 원형(原形)이며, 소외계층의 출가를 금지하는 권위주의적 제도화는 훨씬 후대의 일임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법구경 고주석서(Dhammapa?a-Commentry, 法句經 古註釋書)》에 등장하는 12,975명의 견성대중들의 신분구조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비구 상가의 경우, 2,174명 중 왕·왕족·자산가 등 상류층이 1,057명(48.6%), 상인 등 중류층이 502명(23.4%), 난장이·노동자·곡예사·무용수·노비·도둑 등 하층민이 609명(28.0%)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초기 상가에서는 하층민-소외집단이 주요 구성요소를 형성하고 있으며 수행과 견성, 사회적 역할에서 어떤 차별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26) 26) 拙稿, 《붓다의 대중견성운동》(도서출판 도피안사, 1991), pp. 122∼131.

 
보다 거시적으로 보면, 수행과 견성,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 출가·재가가 공동의 주체로서 평등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붓다운동의 이념적 특성을 ‘대중견성운동’으로 규정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27)27) 앞의 책, pp. 131∼153.

 
그러나 여기서 출가·재가의 우열, 평등을 논하려는 것이 본론의 의도가 아니다. 본론은 보다 본질적으로 초기 상가가 담지하는 사회적·민중적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마가다 출가사건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초기 상가의 존재 그 자체가 기원전 7∼5세기의 북동인도 사회가 온존시켜온 사회적·민중적 문제들에 대한 초기 불교도들의 응답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는 의미이다.
 
 
2) 사회적 변혁운동의 물결

초기 붓다운동-전법운동이 성공한 원인은 무엇일까? 초기 불교의 전법운동이 동시대의 많은 유력한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불과 1, 2세기의 짧은 기간에 광막한 인도대륙에 ‘불교국 인도(Buddhist India)’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 가장 본질적인 방법론적 요인은 무엇일까?
 
교리, 사상의 우월성 때문일까? 참선 등 탁월한 수행법 때문일까? 대기설법에 입각한 미묘한 상담치유의 방법 때문일까? 교단 조직의 효율성 때문일까? 불교도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일까? … 이런 것들이 유효한 요인들로 작용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인도대륙 그 중첩한 역사의 현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이런 요인들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갈등을 느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도 헌법의 기초자이며 인도불교의 위대한 중흥자인 암베드까르 박사(Dr. Bhimrao Ramji Ambedkar)의 개종 연설을 생각하게 된다. 1956년 10월 14일, 나가뿌르(Nagapu?), 이제 막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한 50만 명의 불가촉천민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생각을 위하여 음식을 필요로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 속에 희망을 불어넣어야 하고 인간을 행동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힌두교는 피압박 민중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종교를 바꾸고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긴요하다고 깨달은 이유입니다.힌두사회는 불평등의 또 다른 이름인 사성제도 위에 서 있습니다. 힌두교에는 억압받는 계층들에게 노예와 농노와 같은 삶이 있을 뿐입니다. 힌두교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로지 평등과 우주적 동포애 위에 서 있는 붓다의 종교만이 있을 뿐입니다.28) 28) D. C. Ahir, The Pioneer of Buddhist Revival in India(Delhi: St. Satguru Pub., 1989), p. 147.; 拙稿(번역), 〈암베드까르 박사의 생애와 개종운동〉(傳記), 《인도 불교성지 순례기도문》(도서출판 도피안사, 2002), p. 323.
암베드까르 박사의 이 짤막한 연설은 2천 6백여 년 전 북동인도에서 붓다의 전법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을 일깨우는 데 충분한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는 현대사의 한 중심에서, ‘노예와 농노’로 묘사되는 20세기 인도의 민중적 상황은 붓다 당시 인도 민중의 절망과 고통의 실상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붓다와 초기 전법운동의 주역들은, ‘마가다 출가사건들’의 경우에서 보듯, 이들 민중들의 절망과 고통을 수용하고 그들 앞에 평등과 우주적 동포애의 신천지를 활짝 연 것이다. 구원과 희망의 문을 크게 연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모순과 구체제를 바꾸려는 사회적 변혁운동의 물줄기를 터놓은 것이다.
 
폭력-폭압의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비폭력(非暴力, ahim.sa? 운동을 전개하고, 구제도(舊制度)에 저항하여 반(反)카스트·여성해방운동을 펼치며, 도시경제의 발전 속에서 몰락하는 소외계층을 구제하기 위하여 빈민·장애자 구호운동-보시운동을 주도하는 등, 초기 불교도들의 이러한 사회변혁운동은 실로 전면적이고 본질적이며 역동적 지속적으로 추구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운동의 중심에 사부대중의 상가(san?ha)가 서 있었고 또 이 상가 자체가 문제 해결의 핵심적 처방이 된 것이다. 상가는 교조적(敎條的)·제도적으로 보면 출가자의 독점적 권위집단이 되지만, 역사적·기능적으로 보면 사부대중의 공동체가 되고 시민적 연대의 변혁 주체가 되는 것이다.29) 이것은 상가 문제의 논의에 있어서 일대 획기적인 시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29) 拙稿, 《초기불교 개척사》, pp. 316∼327.

 
사회적 변혁운동, 사부대중의 상가에 의하여 주도된 초기불교의 사회적 변혁운동, 이것이 기원전 7∼5세기 북동인도의 격동하는 전환기에서 초기불교도가 추구한 전법운동의 기본적 전략이며 성공의 방법론인 것으로 관찰된다. 불교가 추구하는 깨달음도 이런 사회적 변혁운동의 관점에서, 사회적 변화를 위한 대중들의 사회적 각성으로서 새롭게 조명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담마에 관한 과도한 정신적·관념적 해석이 심각히 재고되어야 한다는 우리 시대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붓다-담마의 철학적·사상적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치열한 역사의식,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에서 불교는 수많은 모순이 중첩되는 역사의 현장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운동으로서, 민중적·사회적 변화운동으로서 제기되고 시대의 물결로 확산되어 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학승 담마라따나 박사(Ven. Dr. U. Dhammaratana)는 이렇게 논하고 있다.
 
우리는 불교가 어떻게 카스트 제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붓다의 메시지가 외부 세계에서는 정신적 문화적인 힘에 의하여 확대되었지만, 여기 인도 본토에서는 문화적인 힘과 사회적 운동 양자의 측면에서 확장된 것이다. 불교는 동시대의 사회적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작용하였다. 불교는 자유화의 세력들을 개방하였다. 불교는 카스트 제도의 엄격함을 완화시키는 데 머나먼 길을 가야만 했다.30)30) Ven. Dr. U. Dhammaratana, The Social Philosophy of Buddhism, A Panorama of Indian Buddhism, ed. D. C. Ahir (Delhi: Sri Satguru Pub., 1995), p. 132.
 
4. 초기 전법운동의 개척과정
 
1) 지리적 영역

기원전 589년은 전법 원년이다. 이 해, ‘바라나시의 첫 전도(初轉法輪) 사건’과 ‘전법부촉 사건’이 있었고, ‘까샤빠 3형제의 개종 사건’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평가돼야 할 것은 ‘마가다의 대행진 사건’으로, 12만 명의 마가다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개종한 사실일 것이다.(Mv. 1. 22. 2-6)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붓다의 전법운동은 인도 전역으로 급속히 확장되어 갔다. 초기 전법운동이 출발점에서부터 대규모의 집단적 개종운동으로 추구되었다는 점에서 붓다운동의 민중적 특성이 새삼 명료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31)31) 拙稿, 앞의 책, pp. 367∼387.

 
기원전 589년(전법 원년)∼기원전 544년(전법 46년), 붓다와 초기 주역들의 전법운동은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편년사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작업으로 보인다. 큰 흐름으로 관찰하면, 전법 초기에는 강가 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인도에서 ‘중국(中國)’이라 불리는 문화·사회적 중심 지역에 불교가 널리 퍼짐으로써, 불교 중국(Bhuddhist-madhyadesa)이 형성되었고, 전법 후기에는 멀리 변방이 개척되어 갔다.
 
불교 중국에는 마가다·꼬살라·밤싸·밧지족 공화국이 포괄되는데, 고대 측량에 의하면 폭 2백 50리그, 주위 9백 리그로 선량한 주민들의 나라였다. 이 지역은 붓다가 몸소 나아가 전도한 영역이기도 하다.32)32) E? Lamotte, Ibid., pp. 8∼9.

 
변방 개척 포교의 주역은 상인·대상들이다. 이 변방 개척에서 특히 주목되는 곳은 서인도와 서해안 지역이다. 이 지역은 아반띠(Avanti) 국의 영토로서 수도 웃제니(Ujjen沖)는 동서 교통의 요충이며 동시에 남방 포교의 거점이다. 이 지역을 개척한 전법사는 이곳 출신의 마하 까짜나(Maha?kacca?a, 摩訶迦?延)·수로나 꼬띠까르나(Surona-kot.ikarn.a)·부루나(Purna, 富樓那) 등 세 사람의 비구들이다.33) 33) 拙稿, pp. 428∼430.

 
서북 간다라 지방 전도에는 붓다 자신이 앞장섰다. 《앙굿따라 니카야(An?uttara-nika?a)》에 의하면, 붓다는 이 지역의 중심지이자 수라세나(Surasena) 국의 수도인 마투라(Mathura)를 방문하여 담마를 전파하고(An. 4. 6. 53: text 2. 57), 북행하여 베랑자(Veran?a) 마을까지 나아갔다. 베랑자에서 공양을 거부당하고 붓다가 말먹이로 연명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佛說中本紀經》 下, 〈佛食馬麥品〉) 동쪽 변방 앙가(An?a? 지금 벵골) 국의 전도에는 사밧티의 자산가 수닷타 장자의 딸, 여성 전법사 쭐라 수밧다(Culla-subhadda)의 헌신이 큰 계기가 되었다.
 
그는 완강한 자이나 교도(Nigan.t.has, 泥乾子, 裸形外道)들과의 목숨 건 투쟁을 통하여 이 불모의 땅에 담마의 씨앗을 심는 데 성공하였다.(Dhp. 304)34)34) Dhp-Com. 21. 8. ; E, Burlingame, Ibid. 3, p. 185. 拙稿, 앞의 책, pp. 432∼435.

 
초기불교의 변방 전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남방 한계선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불교 전파의 남쪽 경계는 대개 북위 23도인 아반타 지역까지로 한정되고 그 이남의 데칸 지역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 결과, 붓다 당시 담마는 데칸 남로(Dakkhinapatha)를 따라 데칸 고원을 넘어, 중부 인도의 대하(大河) 고다바리(Godavari) 강 유역까지 전파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것은 초기 전법운동이 북위 20도선까지 진출한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전법이 고다바리 강 유역의 주민 자신들의 의지와 힘에 의하여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지따(Ajita)·삥기야(Pin?iya)를 비룻한 16명의 구도자들이 왕복 1만km의 멀고도 험한 길을 왕래하면서 붓다-담마를 구하고 또 전파하고 있다. 가장 오래 된 초기불전으로 인정되는 《숫따니빠따(Suttanipa?a)》의 마지막 품 〈도피안품(到彼岸品, Pa?a?an.avagga)〉은 바로 이 장엄한 구도-전도과정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35)35) Rhys Davids, Ibid., p. 30. 拙稿, 앞의 책, pp. 435∼442.
 
붓다 석가모니,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 장자·거사 전법사들, 대상·상인 전법사들, 여성 전법사들·요가 전법사들·브라만 전법사들, 이름 모르는 대중들, 백성들, 민중 전법사 등 이들 초기 붓다운동의 전법 주역들은 그들의 열성적인 헌신 개척에 의하여 놀랄 만큼 빠른 기간에 인류사상 최초의 불교국가, 불교국 인도(Buddhist-India)를 건설하는 데 성공하였다. 거대하고 광막한 인도 대륙의 ‘정신적 정복(spiritual conquest)’36)에 성공한 것이다. ‘승리’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들 초기 전법사들이 개척한 불교국 인도의 영역을 정리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37)36) E. Lamotte, Ibid., p. 78.

 
●동쪽으로 현재의 벵골 지방인 앙가 국까지
●서쪽으로 현재의 봄베이 북쪽 소팔라 지방인 쑤빠라까까지
●남쪽으로 현재의 데칸 남부 지방인 고다바리 강까지
●북쪽으로 현재의 네팔 타라이 지방인 까삘라밧뚜까지
●서북쪽으로 현재의 탁실라 지방인 타카실리까지
 
리즈 데이비스는 기원전 7세기경 북인도 전체 인구를 대개 5백만∼2천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38) 슈만은 불교화된 당시 인도의 중국 지역의 주민 가운데 대개 15∼20%가 불교로 전향하고 2∼3%가 출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39) 이를 근거로 어림잡아 보면, 붓다 당시 강가 강 유역에서 대개(크게 봐서) 3∼4백만 명의 불교도와 8만∼12만 명의 출가 대중들이 붓다운동의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강가 강 유역을 멀리 넘어서 고다바리 강 언덕까지 이르는 불교국 인도(Buddhist India)의 광활한 영역을 생각하면, 불교도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생각된다.37) 拙稿, 앞의 책, p. 447.38) Rhys Davids, Ibid., p. 34. 39) H. Schumann, Ibid., p.191.

 
2) 박해와 분열, 궁핍을 뛰어넘어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붓다는 대중들을 이끌고 말라(Mallas) 족의 바라문 마을인 투나 촌으로 유행하여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러자 투나 촌민들과 거사들은, ‘친구들이여, 석가족의 아들로 출가한 수행자 고따마가 많은 무리를 이끌고 말라족 나라를 유행하다가 투나 촌으로 왔다.’ 이런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그들은 풀과 쓰레기로 마을의 우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말하였다.
    “머리 빡빡 깎은 중들이 물을 못 마시게 하라.”
    -Ud. 7. 9 40) 40) The Udena(tr. Peter Masefield, P. T. S.), pp. 157∼159.

고다바리 강 언덕에서 간다라까지, 벵골만에서 서해안 뭄바이(봄베이)까지, 이 광대한 불교국 인도(Buddhist India)의 건설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붓다의 신통력으로 실현한 기적도 아니었을 것이다. 초기불전의 분석을 통하여, 이 시대의 전법운동이 수많은 장애와 곤경을 겪으면서 한발 한발 피땀으로 이루어낸 고행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앞의 ‘투나 마을 우물사건’에서 보듯이, 붓다와 초기 전법사들은 어디서나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인도 주민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바라문과 그 추종 세력들은 그들의 기득권이 도전받자 도처에서 줄기찬 저항과 방해 작업을 펼쳤다. ‘힌두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대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이런 추측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붓다운동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붓다는 쉬바신의 아홉 번 째 화신이다.’ 이런 주장 또한 힌두의 관용적 태도가 아니라 불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생각된다.41) 41) 拙稿, 앞의 책, pp. 46∼50.

 
지금 현재 인도의 불교 중흥운동을 공공연히 탄압하고 있는 힌두교의 행위를 통해서도 그들의 반(反)불교적 적대의식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 불교 소멸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힌두교도의 불교 말살정책이었다는 사실은 새삼 분명히 인식돼야 할 역사의 교훈일 것이다.
 
초기 전법운동의 주역들이 겪어야 했던 가장 심각한 장애는 다음 3가지로 요약된다.42)42) 앞의 책, pp. 396∼405.

 
① 이교도의 박해
② 교단의 내부적 분열
③ 궁핍
 
붓다와 초기 전법사들은 이런 장애들에 대하여 결코 타협하거나 유예적 태도로 물러서지 않았다. 단호한 의지로 이들 적대적 세력들과 당당히 대결하고 비폭력 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꼬삼비의 ‘쿠주따라 사건’ 때, 후궁 마간디야와 결탁한 이교도들이 붓다를 추방하기 위하여 사악한 방법으로 도전해 왔다. 붓다가 꼬삼비 성으로 들어오자 그들은 뒤따르며 온갖 욕설로 모욕하였다.
    “너는 도둑이로구나. 얼간이·바보·낙타·소·당나귀·지옥의 거주자·짐승이로구나.”
    아난다 비구가 다른 도시로 갈 것을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모든 시민들이 우리를 욕하고 있습니다.”
    “아난다야, 나는 싸움터로 가는 코끼리와 같으니라. 마치 사방에서 날라오는 화살에 맞서며 싸움터로 나가는 것이 코끼리의 임무이듯이, 바로 그와 같이 사악한 자들의 모욕을 참고 견디는 것이 나의 임무이니라.”
    -Dhp-Com. 2.1 43) 43) Dhammapa?a-Commentary 1(tr. E. Burlingame), pp. 32∼60, brief. 拙稿, 앞의 책, pp. 288∼291.

이 과정에서 붓다와 수많은 불교도들이 희생되고 삼보헌신(三寶獻身) 하였다. 붓다 자신이 분파주의자들의 음모로 몸에 피를 흘리고(Cv. 7. 3. 6-10), 사랑하는 제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붓다가 특히 사랑했던 목갈라나(Moggalla?a) 비구는 자이나교도들의 공격을 받고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불전은 그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드디어 도적들(자이나교도)이 장로(목갈라나)를 붙잡는 데 성공하였다. 그를 붙잡자 그들은 그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그의 뼈를 두들겨서 작은 쌀알처럼 만들었다. 그들은 생각했다.
    ‘장로는 죽었다.’
    그리고는 뼛조각들을 숲속 덤불에 던져버리고 가버렸다.
    -Dhp-Com. 10. 7 44) 44) Dhammaopa?a-Commentry 2(tr. E. Burlingame), p. 305.
    몸을 던져 죽어간 것은 목갈라나와 부루나 같은 몇몇 뛰어난 제자들만이 아니었다. 초기불전에는 수많은 대중들, 민중들의 헌신과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루나 장로의 고백과 전법순교 사건’(SN. 35. ⅱ. 4. 88(text ⅳ. 60))45)에서 보듯, 그들에게는 ‘순교’라는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45) The Book of Kindred Sayings 4(P. T. S.), pp. 35∼36. 拙稿, 앞의 책, pp. 430∼

     
몸을 버리는 것, 정법을 위하여 몸을 버리는 것, 그들에게 그것은 수행이며 삼보를 위한 헌신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불교도의 순교는 ‘삼보헌신(三寶獻身)’으로 기록된다. 《디가 니까야(D沖gha-nika?a)》 《자나바사바 숫따(Janavasabha-Sutta)》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 나디까(Nadika)의 벽돌집에 계셨다. 그리고 붓다께서는 까시인·꼬살라인·밧지인·말라인·체티인·밤싸인·꾸루인과 빤찰라인·맛차인과 수라세나인 등, 죽고 사라져간 여러 나라들의 여러 헌신자들의 재생(再生)에 관하여 설하고 있었다.
    붓다는 이렇게 설하였다.
    “이 사람은 저기에 태어났고 저 사람은 또 저기에 태어났다. 50명 이상의 나디까인 헌신자들은 다섯 가지 번뇌(五下分結)를 여의어 자동적으로 재생하여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은 열반을 얻었고 …”
    이 소식이 나디까에 있는 헌신자들의 귀에 들리자 그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답을 듣고 즐거움으로 충만하였다.
    그리고 아난다 비구도 붓다의 소식과 나디까인들의 기쁨에 관하여 들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하였다.
    “오랜 기간에 죽고 사라진 마가다인 제자들도 또한 많다. 앙가나 마가다에는 (삼보를 위하여) 죽어간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 또한 삼보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DN. 18. 1-4(text ⅱ. 200) 46) 46) Dialogues of The Buddha 2(P. T. S.), p. 233.
죽어가는 사람들, 삼보를 위하여 화살을 맞으며 죽어가는 사부대중들, 붓다-담마를 전파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뼛가루가 산산이 부서지도록 기꺼이 몸을 던지는 수많은 대중들, 이름 없는 민중들, 이것이 초기 붓다운동, 초기 전법운동의 실상이며 또 그 성공의 방법론인 것으로 보인다. “불교사에 종교전쟁은 없다.” 이 주장은 어쩌면 무기력과 비겁함의 변명으로 들릴지 모른다. 불교도가 스스로 일으킨 침략적 전쟁은 없었을지라도, 도전자들의 박해와 공격에 의하여 불교도는 끊임없이 피를 흘려왔기 때문이다.
 
왜 초기불교인가? 왜 새삼스럽게 초기불교를 찾는 것일까? 그 대답이 바로 여기 있을지 모른다. 역사의 현장을 전제하지 않는 경전 해석·교리 연구, 거기서 삼보헌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민중적 고통을 잃어버린 참선 수행, 거기서 살아 있는 깨달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한국불교는 근본에서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초기불교적 상황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
 
 
김재영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동덕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청보리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저서에 《은혜 속의 주인일세》 《우리도 부처님같이》 《민족정토론1》 《내 아픔이 꽃이 되어》 《이 기쁜 만남》 《나는 빛이요, 불멸이라》 《룸비니에서 구시나가라까지》 《초기불교개척사》 《붓다의 대중견성운동》 《인도 불교성지 순례기도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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