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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불교, 왜 종교개혁이 필요한가 / 강병조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09-05-10 19:45 조회(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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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왜 종교개혁이 필요한가 / 강병조
 
 
 
1. 들어가는 말

인간의 삶을 위한 목적에서 생겨난 종교와 과학은 둘 다 인간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 둘은 충돌하거나 서로 외면하고 있다. 종교 교의에는 과학적인 지식으로는 수긍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종교는 과학적인 지식과 무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는 종교가 과학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고집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종교 교의는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요구는 종교에 대한 확신과 근거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일 뿐이다.
 
오늘날 중요한 종교 문제 중의 하나는 종교가 과학적인 지식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종교는 과학적 세계관 또는 우주관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와 함께 우주적 변화의 틀을 벗어나서 절대 살아갈 수 없다.
 
프로이트는 종교와 과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보호를 받아 오던 어린이가 자라나면 아버지도 언제까지나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를 떠난다. 이에 반해, 현대의 많은 사람은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나 통용되던 신앙적 태도(자기 소원을 신에게서 구하고자 하는)를 버리지 못하고, 과학이 발달한 현대까지도 그대로 고집하고 있다.”라고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아인슈타인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피력하며, 인간이 사후(死後)의 ‘벌이나 보상’에 얽매여 현재를 구속하고 사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고도 하였다.
 
종교도 변화와 진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기독교도 과학 앞에 무릎을 꿇어, 천동설을 포기하고 지동설을 받아들였다. 더 나아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창조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진화론까지 받아들였다. “몸의 진화는 인정한다. 그러나 영혼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도 뇌의 기능임이 밝혀진 오늘날, 종교는 과학 앞에 무릎을 꿀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은 불교가 가장 과학적인 종교라고 하였다. 성천문화재단 연구실장 김홍근 박사는 《불교신문》(2008년 4월 19일자)에서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미래의 종교는 자연과 정신 모두를 아우르는 우주적인 종교가 될 것이다. 현대 과학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종교는 불교이다.” 불교는 현존하는 세계 종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종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석가모니의 과학적인 근본 교리와는 거리가 먼 잡동사니의 비과학적인 불교로 변해 있다.
 
21세기는 과학의 시대이다. 과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교뿐 아니라 종교 자체가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불교가 과학 시대에도 의연하게 살아남게 하려는 목적에서, 비과학적이며 비석가모니적이라고 생각되는 한국불교의 몇 가지 교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2. 마음 또는 정신의 문제

한국 불교는 '마음자리'를 찾는 선불교(禪佛敎)를 특징으로 한다. 1,700개나 되는 공안 중에서 하나를 골라 화두로 삼아 마음자리를 찾겠다며 제각기 열심히 참선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마음이란 뇌의 기능'임이 밝혀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보면 산중에서 불철주야 "이 육체를 움직이는 주인은 무엇인가?" 하고 참선을 하는 것은 쓸데없는 헛고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참선하는 목적이 마음자리나 진아(眞我)를 찾으려는 노력이 아니고 석가모니께서 깨달으신 근본 이치인 연기, 무아, 사성제, 팔정도와 같은 불교의 근본 교리를 자기의 것으로 다시 깨닫고자 참선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마음이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 보자. 마음은 우리가 실체로서 말할 때와 기능으로서 말할 때를 구분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긴다. 마음을 기능으로 사용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마음의 정의를 따르면 편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의 구성 요소로 인지(cognition), 정서(emotion), 그리고 의지(will)를 꼽았다. "네 마음을 모르겠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네." 등의 문장에서 '마음'은 마음의 인지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상쾌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에서는 마음의 정서적인 면을 일컬으며, "네 마음대로 해라." "마음이 약하다." 등의 '마음'은 마음의 의지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란 단어를 기능이 아니고 실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할 때에는 일원론과 이원론 등 여러 가지의 마음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틀렸다는 것은 대다수가 인정한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들은 종교와 과학은 다르다며 고집스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현대 과학에서는 진화론에 입각한 진화심리학적인 일원론의 입장을 취한다.
 
진화심리학은 마음이 상당히 많은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이다. 인간의 마음은 단순한 ‘디지털 컴퓨터’라기보다는 여러 모듈로 구성된 ‘스위스제 군용칼(Swiss army knife)'이다. 스위스 군용칼에는 칼뿐만 아니라 병따개, 드라이버 심지어 작은 톱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고유한 기능을 담당하는 도구들이 여럿 매달려 있다.
 
인간의 마음이 모듈화되어 있다는 말은 제럴드 에델만(Gerald M. Edelman)이 주장하는 뉴런집단선택설(Theory of Neuronal Group Selection, TNGS)과 같다. 또는 이는 인간의 마음이 뇌의 기능 회로를 통해서 기능한다는 말과도 같다. 뇌의 기능 영역과 기능 회로는 어떻게 생성될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현대 과학의 분명한 답은 유전자이다. 마음의 바탕이 되는 뇌기능 회로의 기저에는 뇌 구조회로, 뇌신경 전달물질 회로, 신경세포, 각종 단백질을 포함한 분자, 유전자 등이 순서대로 자리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마음은 뇌와 몸의 통합적 활동을 통해 발현된다. 의식, 정서, 욕구, 기억 등의 영향하에 바깥 환경의 외적 자극과 신체 내부의 내적 자극을 받아들인 다음, 뇌의 인지 활동을 거쳐 행동으로 표출하는 일종의 정보처리 과정을 마음이라 한다. 이러한 과정으로서 마음은 실체를 가진 물질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 정보처리 과정을 좀 더 상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차적인 운동과 감각 기능(시각, 청각, 신체 감각) 등은 국지화(局地化, localized)되어 있다. 둘째, 고등 기능(기억, 대상 인식, 언어, 추리, 감정 등)은 뇌의 여러 영역 사이의 상호 연결의 결과로 나타난다. 셋째, 각각 독특한 작용을 하는 다른 뇌의 영역들이 함께 작업해서 행동을 만들어 낸다.
 
마음은 뇌의 기능이다. 뇌는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게 하는 하드웨어이다. 혹자는 컴퓨터만 생각해서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넣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뇌에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넣는 것은 신(神)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하드웨어이다. 이것이 현대 과학과 현대 철학에서 인정받고 있는 창발론(創發論, emergentism)이며, 컴퓨터와 인간의 뇌가 다른 점이다.

3. 영혼의 문제

우리는 영혼(靈魂, soul)을 마음이나 정신(psyche)과는 구별되는 일종의 종교적인 개념으로 생각한다. 영혼은 모든 생명체에 깃들어 있다가 생명체가 죽으면 떠나가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성철 스님은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 확실한 것 같다. 그의 법어집 1집 6권 《영원한 자유》에서 불교의 제8식이 영혼이라고 말하며, 근사(近死)경험, 전생 기억, 차시환생(借屍還生), 전생 투시 등을 예로 들어 영혼의 존재를 주장했다. 여기서는 불교의 제8식과 근사경험에 대해서만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나머지 근거들은 논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1) 제8식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영혼을 아뢰야식(제8식)이라고도 한다. 《해심밀경》에서는 마음 중에서도 잠재의식이고 무의식인 제8식 아뢰야식만이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이며 마음이라는 유일한 실재를 차츰 절대화시켜 나간다. 그리하여 인간에게는 초자연적이고 영원한 절대정신인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세상에는 오직 마음(정신, 영혼)만이 유일한 실재다. 그리고 그 밖의 물질적 대상은 공(空)이다.’라는 유식학파의 사상은 관념론이고 유심론(唯心論)이다. 이 사상은 붓다 탄생 수백 년 전부터 고대 인도 사회를 지배해 온 철학이며 절대적 관념론인 《우파니샤드》의 사상에 현혹된 후대의 대승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각묵 스님은 <수미산정>《불교신문》(2007. 6. 20)에서 한국불교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주요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불교는 연기와 무아를 근본으로 하는 가르침이다. 불교 2,600년사(史)를 통해 전개되어 온 불교 주류의 가르침은 이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초기불교는 오온무아(五蘊無我)와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천명하였으며, 아비담마도 제법의 보편적 성질[共相]로 무상, 고, 무아를 강조하였고, 반야중관은 아공법공(我空法空)을 외쳤으며, 유식도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를 주창하였다.
 
이렇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조건 발생[緣起生]이요, 그래서 무아라고 불교 주류의 가르침은 한결같이 설하였다. 무엇보다도 무아의 가르침은 오온, 12처, 18계로 정리되는 존재의 배후에 자아니 절대아(絶對我)니 참나니 순수이성이니 이데아니 창조주니 하는 어떤 불변하는 실체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대사자후이며 불교 만대(萬代)의 표준이다.

각묵 스님은 불교의 간판으로 연기, 무아를 내세우면서 속에서는 자아, 영혼, 윤회, 불성, 여래장을 인정하는 현실 불교를 크게 비판했다. 이를 현양매구(懸羊賣狗) 즉 가게 밖에 양고기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한국불교를 대표했던 성철 스님은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원론자(二元論者)였다. 성철스님의 유식(唯識) 사상에서는 마음이니 유식이니 제8식(Alaya)이니 하는 것이 하나의 자기동일성(identity)을 지닌 실체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각묵 스님도 지적한 것처럼 석가모니 자신은 윤회의 주체인 영혼이 있다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았다. 그는 힌두교의 자아(Atman)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연기(緣起)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아(無我)를 설했다.
 
영혼의 문제는 수천 년 전부터 철학의 주제가 되어 왔으나, 뇌의 기능을 간접적이나마 볼 수 있게 된 최근 20~30년 사이에 결론을 내려 버렸다. 그리하여 현대 의학(특히 정신의학) 뿐만 아니라 현대 철학에서도 "마음이니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은 뇌의 기능이다."라고 말한다. 2,600년 전에 석가모니가 현대 의학과 일치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통찰이라고 생각된다.

2) 근사(近死)경험
근사경험을 영혼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뇌 기능의 변화로 현대의학은 설명한다. 필자는 근사경험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하나의 논문만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정신과 의사 칼 얀센(Karl L.R. Jansen)이 근사경험 전문 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이다. 얀센은 자신이 직접 근사경험을 경험하였던 사람이며, 또한 케타민(ketamine, 반감기가 짧은 환각제이며, 인격을 해리시키는 마취약)을 주사 맞아 케타민에 의한 의식의 변화가 근사경험과 같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서 오타고(Otago)대학에서 내과 수련을 받은 칼 얀센은 그 후 오클랜드(Auckland) 대학에서 뇌 연구 팰로우로 활동하였다. 이때 케타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논문도 썼다. 그러고 나서 영국으로 가서 옥스퍼드(Oxford)대학에서 임상약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런던의 모슬리(Maudsley) 병원과 런던정신과 병원에서 정신과 수련을 받았다. 지금은 영국 왕립 정신과의사회 회원이며, 근사경험의 케타민 모델과 환각제인 엑스타시(Ecstasy, NMDA)에 대하여 흥미를 느끼고 연구하고 있다.
 
케타민을 사용하여 생기는 근사경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근사경험은 인격을 해리시키는 약인 케타민을 사용해서 유도해 낼 수 있다. 신경과학 발전은 뇌-마음 중간 영역에 관여하는 기작에 관하여 최근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뇌󰡑쪽에서 볼 때, 근사경험이란 뇌 수용체에 의한 신경 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glutamate) 차단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이들의 결합 장소가 NMDA(N-Methyl-D-Aspartate) 수용체이다. 근사경험을 촉진시키는 조건들(저산소, 저혈류, 저혈당. 측두엽 간질 등)이 글루타메이트를 대량 방출시키고, NMDA 수용체를 과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용체가 과활성이 되면 뇌 세포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케타민은 과활성(흥분성 독성)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여 뇌 세포를 보호한다. 글루타메이트 방출을 유발한 조건들 또한 뇌 세포를 보호하려고 케타민을 방출한다. 그래서 케타민의 작용으로 의식 상태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고전적인 근사경험의 전형적인 양상은 다음과 같다. 󰡐진정으로󰡑 죽은 것 같은 경험을 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과 함께 시간이 사라지고 통증을 느낄 수 없으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신체와 분리된다는 지각이 있을 수 있다.
 
흔히 환각 속에서 풍경, 배우자, 양친, 선생님들과 친구들 보인다.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천사와 같은 무리와 빛과 같은 신(神)의 대변자도 환각으로 나타난다. 대개는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상태이며 기억은 의식계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 기억들로 말미암아 '자기 인생의 재검토'를 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근사경험의 초기에는 어떤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링(Ring)은 1980년, 근사경험을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다섯 단계로 분류하였다. ⓵평화와 만족감을 느낀다. ⓶신체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느낀다. ⓷과도기적인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다(터널을 통한 빠른 움직임, '터널 경험'). ⓸밝은 빛이 나타난다.
 
⓹그 빛 속으로 들어간다. 경험에 참여한 사람의 60%가 1단계를 경험하지만, 5단계까지 경험하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다.
 
정맥주사로 50~100mg의 케타민을 투여하면 근사경험의 모든 양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칼 얀센 자신이 직접 근사경험을 하였고, 또한 실험적인 차원에서 케타민을 투여하기도 했다. 근사경험과 케타민 경험은 명백하게 같은 형태의 변형된 의식 상태였다. 케타민은 레이먼드 무디(Raymond Moody)가 기술한 근사경험과 같은 경험들을 반복해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근사경험이나 케타민 경험 어느 것도, DMT(Dimethyltryptamine)와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 같은 환각제의 효과와는 유사하지 않았다.

4. 윤회(輪廻)와 내세의 문제

윤회란 산스크리트어 '삼사라(samsâra)'를 번역한 말로, 전생(轉生)·재생(再生)·유전(流轉)이라고도 한다. BC 600년경 《우파니샤드》의 문헌에서 비롯되어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천상(天上)의 육도(六道, 六趣)가 있다고 말한다.
 
이 윤회 사상은 불교의 고유한 사상이 아니다. 인도의 인더스 강 서북지방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문명의 사상이었던 것이 힌두교의 사상으로 흡수되었다. 힌두교는 이 윤회 사상을 카스트제도를 유지하고자 받아들였다. 만인 평등을 주장한 혁명가 석가모니는 이 힌두교식 윤회 사상을 거부하였다.
 
석가모니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자아(Atman)를 인정하지 않았고 무아(無我)를 주장했다. 모든 것은 연기(緣起)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아라고 했다. 내세에 대해서는 침묵했다[無記]. 그러면서도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 윤회를 설법했다. 무아와 윤회는 모순이 아닌가. 이 윤회를 현대 과학에 맞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윤회는 실체로서 파악해서는 안 되고 기능으로 파악하여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윤회는 심리적 윤회(心理的 輪廻)로 파악하여야 한다. 죄를 지으면 이 세상에서도 마음이 괴롭다. 그것이 지옥이고 그 삶이 짐승 같은 삶이다. 이것이 심리적 육도윤회이다.
 
실체로서 윤회를 파악하려면 에너지의 흐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던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로 변한다. 인간의 시체를 개가 먹으면 개의 에너지로 변하여 개가 된다. 사과 밭에 거름으로 주면 사과 에너지로 변하여 사과가 된다. 우주 전체로 보면 에너지의 증감은 없다. 즉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다만 에너지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불생불멸 부증불감(不生不滅 不增不感)이며 이것이 에너지의 윤회이다.
 
윤회의 실체는 없고 업만 윤회한다는 설도 있다. 석가모니는 힌두교의 윤회 사상에 물들어 있던 당시의 인도인에게 근기에 맞춘 하나의 방편으로 윤회를 설법했다는 설명도 있다.
 
동국대 정암 스님은 《불교신문》 2007년 9월 8일자에서 윤회론의 방편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고하였다.

부처님의 윤회론 수용은 인도 문화의 특수성을 고려한 방편임을 추측할 수 있다. 전생과 후생의 유기적 연관 관계가 없다는 것은 윤회론의 실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상통되는 측면이 있다. 함허 스님의 ‘현정론’도 삼세윤회가 방편적 속성에 지나지 않음을 반영한다. 윤회론은 부처님에 의해 창도된 금구직설(金口直說)이 아니며, 윤회설이 없어도 불교 교리는 무리 없이 모든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할 개연성이 있다.

영국불교학회 회장이며 옥스퍼드대학에서 28년간 불교를 가르치신 리처드 곰브리치 교수(71)도 윤회를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기는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곰브리치 교수가 진짜 불교신자이다.
 
윤회 사상을 거부했음이 분명한 붓다의 윤회관을 간단히 살펴보자. 붓다 탄생 당시인 기원전 6세기에는 원시 이래로 내려온 영혼을 주체로 한 윤회 개념이 베다교와 《우파니샤드》의 영향을 받아 지적 엘리트인 사상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까지 사실로 여겼다. 그러나 과학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명상을 통하여 자연과 인간이 기능하는 원리와 자연법칙을 발견한 붓다는 당시에 사실처럼 인정되는 미혹한 관점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바차고타라는 수행승은 ‘인간이 죽고 나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붓다에게 물었다. 《아함경》에서 붓다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불타는 땔감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즉 “사람이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땔감이 다 타서 불이 꺼지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꺼진 불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따라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이와 같으니, 죽은 자가 어디로 간다느니 가지 않는다느니 설명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러한 붓다의 말에서 우리는 또다시 이성적이고 실증적이며 과학적인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5. 보살(菩薩)신앙의 문제

성철 스님은 설법집에서 관음보살과 문수보살을 설법하고 있다. 불교신자들은 대부분 신앙의 대상으로 무슨 보살이든 믿는 보살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철 스님이 설법한 내용을 여기에 길게 옮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석가모니 자신은 '보살'에 관하여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불자는 보살신앙을 믿고 있다. 소원 성취를 하고자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죽어서 극락을 가고자 아미타불을 외우며, 병의 쾌유를 위해서는 약사여래불을 염송한다. 지장보살, 문수보살, 미륵보살 등등 수많은 보살이 있다.
 
이 보살신앙도 대승불교에서 생긴 신앙이다. 대승불교의 누가 이 보살신앙을 만들어 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 개인이 추측건대, 석가모니가 사후, 400~500년이 흐르면서 인도의 불교신자들은 무엇엔가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막상 의지할 대상이 석가모니의 사리탑이나 불상으로는 미흡함을 느낀 것 같다. 특히 석가모니는 열반하면서, "나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가 설한 법과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라는 말을 남겼으니, 근기가 약하고 의타심 많은 일반 신도들은 당황하고 방황하였을 것이다. 어느 선각자가 이런 신도들의 마음 상태를 달래는 하나의 방편으로 '보살'이라는 소원 성취적 의지처(依支處)를 만든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인간은 종교 본능이 있다. 종교 유전자도 있다. 또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소원성취를 바란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가 종교의 기원이라고 말한 '소원 성취적 투사(wish-fulfillment projection)'가 보살, 신(神) 등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된다.
 
이런 불교의 보살신앙은 힌두교가 여러 신(神)들에 의지하는 것과 닮은 점이 많다. 창조의 신 브라마(Brahma), 죽음과 파괴의 신 시바(Shiva), 보존의 신 비슈누(Vishnu) 등 기능에 따라 많은 신(神)이 있는 것처럼, 불교도 기능에 따라 많은 보살이 있음이 서로 닮았다.

6. 신격화와 영험

석가모니는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석가모니를 부처 내지 신(神)으로 모신다. 그리고 그의 행적 일부를 기적으로 만든 것이 많다. 이렇게 되면 한국불교는 기독교가 된다.

《불교신문》 (2008년 10월 8일자) <新불교 100문 100답>에 한 스님은 "부처님은 이적(異蹟)을 행했나요?" 하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고타마는 불을 섬기는 집단의 지도자 우루빈나(우루벨라) 가섭을 찾아가 화룡(火龍)을 모시는 사당에 하룻밤 머물기를 청했다. 가섭은 화룡에게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며 만류하다가 결국 허락하였다. 밤이 되자 화룡은 자기의 처소에 들어온 사문을 향해 불길을 토하기 시작했다.
 
고타마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광삼매에 들었다. 고타마의 몸에서도 불이 나오기 시작하여 밤새도록 사당은 불길에 휩싸였다. 그것을 지켜보던 가섭과 제자들은 '안타깝게도 저 사문이 목숨을 잃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불쌍히 여겼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고타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당문을 열고 나왔으며, 놀랍게도 고타마의 발우 안에는 화룡이 작은 뱀처럼 변해 있었다. 가섭은 매우 놀랐으나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거듭해서 신통력을 겨뤘지만 계속 패했다. 이윽고 가섭은 자신이 고타마를 이길 수 없음을 실토하고 제자가 되었다.

이러한 기적을 행한 고타마의 행적을 경전에 나온다고 해서 이것을 사실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재미로 들려주는 신화나 전설 따위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스님들은 이런 문답을 조계종단 대표 신문인 《불교신문》 '종교 문답'란에서 이야기하고 있을까? 문자주의를 맹신하는 기독교처럼 성경의 글자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든 것을 사실로 믿는 바람에 이런 답변을 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경전도 인간이 만든 것이요, 시대 상황에 맞게 편집된 하나의 출판물이다. 수세기 전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출간된 경전을 그대로 믿고, 오늘 같은 과학 시대에도 그 기적을 사실로 설법해서는 곤란하다. 또 어쩌면, 받아들이는 신도들을 생각하여 하나의 방편으로 그렇게 답변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편도 상대방 근기에 맞아야 먹혀들지 이런 시대에 엉터리없는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먹혀들겠는가? 먹혀들 신도들은 일부 무지한 불자들뿐일 것이다.
 
이렇게 신도들의 수준을 얕잡아보는 이런 식의 설법 때문에 한국의 지식인들이 불교를 멀리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불교를 개혁하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인슈타인은 미래의 종교가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종교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종교도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또한 종교 교의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현대의 생활에서 인과율의 믿음이 보편화하는 현실에서 인격신(人格神)을 고집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종교도 인간의 문화의 하나로서 거기에는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종교인은 종교의 신화적인 요소에 대해 신화로서 만족해야 한다. 신화적 요소는 방편적인 문제로서 중요한 기능을 할 뿐이지 신화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이제는 신을 위한 종교가 아닌, 인간을 위한 종교라는 믿음이 보편화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종교는 과학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종교와 과학은 상보성(相補性)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도 교사적인 태도로 종교를 운행해야 할 것이다.
 
초기불교를 연구하고자 인도에 거주하는 호진 스님이 영천 은혜사에 주석하는 지안 스님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석가모니를 신격화시키지 말 것을 당부한 글이 있다.

진실의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 역사적인 부처님의 참모습을 보려면 신화와 전설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 나의 공격 목표는 신화와 전설이다……. 종교가 인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헌신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달라이 라마 존자는 신격화되어 있지 않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닙니까. 고타마 싯다르타는 왜 이렇게 될 수가 없겠습니까.

호진 스님의 주장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와 같은 올바른 스님들이 최근 많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한국불교의 르네상스가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다.

7. 미신적 행위의 문제

승려도 인간이므로 돈이 있어야 먹고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천주교에서 팔아먹던 면죄부가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불러일으켰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절이라는 간판을 달고 점을 치고 부적을 파는 행위를 하면 불교를 미신과 다름없는 종교로 보게끔 한다.
 
필자는 일간지에서 승려복을 입은 승려가(물론 조계종 승려는 아닐지라도) 사주팔자를 본다는 광고를 접할 때면 불교에 대한 염증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굿하는 무당들이 왜 절이라는 '만(卍)' 자를 간판에 걸어 놓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가? 과학을 많이 배운 지식인들이 불교를 멀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절에 가면 산신각과 칠성각이 있다. 이것은 한국의 샤머니즘을 받아들여 습합된 흔적이다. 과거에는 샤머니즘을 용인해야 할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버려야 한다. 근기에 맞추어 설법하거나 구제하는 것이 불교의 방편이라 하더라도 이제 산신을 믿을 근기의 소유자는 거의 없지 않을까.

8. 깨달음의 문제

우리나라 선(禪)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중시한다. 무엇을 깨달을 것이며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

먼저 깨달은 상태에 대해서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선사들은 참선하는 동안에 나타나는 시공간 개념을 초월한 몸의 상태나, 작은 물소리도 크게 들리는 지각의 변화나, 화두의 의문이 풀리는 어떤 해답을 깨달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러한 생리적 또는 심리적 현상은 오랜 참선 후에 생길 수 있는 뇌의 상태에 불과한 것이라고 현대 의학은 말한다.
 
한 예를 여기 소개한다. 《뉴스위크》에 실린 ‘신경 신학(neuro-theology)’이란 제목의 내용 일부이다. 제임스 오스틴(James Austin) 박사는 미국 보스턴에 사는 신경과 교수이다. 그는 참선을 오래했으며 이날도 참선하면서 영국 템스 강가에 서 있다가 이상한 경험을 하였다.

오스틴은 갑자기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 다른 어떤 깨침(enlightenment)의 느낌을 받았다. 주위의 물리적인 세계와 구분된 그의 개인 존재(individual existence)의 느낌은 밝은 새벽에 아침 이슬처럼 증발되어 버렸다. 그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as they really are)' 보였다고 말한다. '나, 나에게, 나의 것(I, me, mine)'의 감각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영원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동경, 혐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나 자신을 불어넣으려는 생각은 사라졌다. 나는 사물의 종국적인 성질(the ultimate nature of things)을 이해함으로써 아름다워졌다.'라고 그는 말했다.

오스틴 박사가 신경과 의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 순간을 불교에서 말하는 깨침의 순간으로 생각했거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해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기가 경험한 것을 뇌 회로로 설명하였다.

위협감을 모니터하고 공포심을 등록하는 편도체(amygdala)의 활동이 감소하여야만 한다. 공간 지남력(指南力)을 담당하고, 자신과 세계를 분명하게 구별하게 하는 두정엽 회로는 조용해져야만 한다. 시간 지남력을 담당하고 자의식(self-awareness)을 느끼게 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의 회로는 분리되어야만 한다. 개인(selfhood)의 고등 기능으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잠깐 중단되거나, 용해되거나, 의식에서 삭제되는 것 같다.

오스틴의 이 논문은 1998년 MIT출판사가 《선(禪)과 뇌(Zen and the Brain)》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불교신문》 2008년 10월 22일자에는 부산 해운정사 조실 진제 스님이 용맹정진에 참가한 사부대중에게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라는 화두를 내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진아(眞我)를 찾으라는 이 화두를 여래장이나 불성처럼 불변하는 실체가 상주한다는 여래장 사상을 따라 존재의 배후에 있는 그 무엇을 찾으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불성설(語不成說)에 불과할 것이다.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논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8. 맺는 말

필자는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을 우리 불자들이 다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욕심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없애려면, 자연이 기능하는 원리(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원리)를 깨달아 욕심을 적게 부리며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이란 자연법칙을 제대로 아는 것을 말하고, 무지에 의한 고통에서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해탈이요 열반이며, 이런 상태가 깨달은 상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진리를 미리 알고 바르게 살아서, 편안히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열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불교는 종교인 동시에 철학이요, 과학이며, 심리학이고 정신수양의 도(道)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간 싯다르타는 생존 당시 연기(緣起), 무아(無我), 사성제(四聖諦), 삼법인(三法印), 팔정도(八正道), 공(空)사상, 중도(中道) 등 아주 과학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현대 과학에 맞지 않는 교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석가모니의 과학 정신을 현대 과학으로 재해석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된다.
 
원래의 석가모니의 과학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한국불교 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한국불교는 이제 위에 열거한 비불교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석가모니의 깨침과 근본 가르침 즉 연기, 무아, 사성제, 삼법인, 팔정도, 공사상, 중도사상 등으로 돌아가야 한다.
 
혹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현대과학에 맞지 않는 교리가 있다면 석가모니의 과학정신을 받아들여 현대 과학에 맞게 재해석하면 된다. 이와 같은 개혁은 석가모니의 원래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지 결코 개혁이 아니다.

강병조
1968년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1973년 신경정신과 전문의. 1975년 의학박사(경북의대). 1976년부터 경북대학교 의학대학원 정신과 교수(현). 1983~1984년 미국 뉴욕 앨버트 아인슈타인의대 정신과 방문교수. 1995~1997년 대한정신약물학회장, 1998~2000년, 대한생물치료정신의학회장, 2007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회장 등 역임. 의대 재학 시절 불교학생회를 창립하고 1998년 경북대학교병원 불자회와 종교 간화합을 위한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연구논문으로 Can the expression of histocompatibility antigen be changed by lithium? 외 130여 편과 《뇌 과학과 마음의 정체》등의 저서가 있다.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441 
 
정강길 (09-05-11 02:11)
 
백퍼센트 동의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근래 들어 발견한 불교 진영의 글 중에서는
가장 뛰어나다고 느껴질만큼 눈에 확 띠는 좋은 글이다.

불교 관련 서적들이나 불교 수행자들을 만나 대화를 해보거나 혹은
본인이 직접 불교 수행을 배웠을 때도 내심 솔직하게 느낀 바를 말한다면
불교 또한 그 사상에서부터도 많은 지점들이 <관념화>되어 있고
사상 뿐만 아니라 실제 신앙에서도 <기복화>되어 있음을 너무나 많이 목격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나는 불교 역시 크나큰 개혁들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에 서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얘길 한다는 건 웬 참견이냐며 참으로 어불성설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있는 불교에 대해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토로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미 불교 진영에서 그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선각자들이 있기에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워서 이러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 것이다.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는 이웃 종교에 대해서도 <새롭고 건강한 불교>와 함께 하고 싶어하지
초기의 붓다 사상에서 멀어짐으로써 <낡고 변질된 불교>와 함께 가고자 할 마음은 없다.

크게 보면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혹은 그 어떤 종교이든 간에
그것은 결국 <위계적 관념론>으로서의 종교와
<현실적 관계론>으로서의 종교로 역시 나뉘어 질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전자는 <'힘의 과잉'을 숭배하는 종교>로 드러나며,
후자는 <'힘의 균형적 성장'을 도모하는 종교>로 드러난다.
그럴 경우 둘 중에 어떤 종교가 생명을 온전하게 살릴 수 있는 종교이겠는가 하는 건 자명한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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