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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과학과 신앙, 양립할 수 있다? 없다?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09-11-02 20:26 조회(7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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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장대익(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황병구(본지 편집위원장), 우종학(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복음과상황 이종연
 

과학과 신앙, 양립할 수 있다? 없다? 
[229호 특집 공룡이 버거운 한국교회] 무신론 과학자와 크리스천 과학자의 솔직한 식탁 대화
 
 [229호] 2009년 10월 26일 (월) 16:45:47 이종연  limpid@goscon.co.kr  
 
 
역사적으로 신앙과 과학에 대한 논쟁은 마치 평행선 같기도 하고, 때론 비타협적인 성전(聖戰)과도 같아서, 허심탄회한 대화나 토론보다는 지면을 통한 논박이나 서평을 통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또는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과 기존 주장의 내적인 강화 과정이 반복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복음과상황>에서는 명료한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통의 역량과 신앙적 진실성, 학문적 성실성이 담보된 열린 대화를 기대하며 특별한 대담을 기획하였다.
 
대담에 초청한 우종학 교수와 장대익 교수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확연하게 다른 면을 지닌 이들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교회에 창조 과학 바람이 불 때 대학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과학과 신앙에 대해 고민과 해답을 담은 글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최근에는 자신의 입장을 담은 책을 집필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우종학 교수는 성경의 창조 기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기독교 신앙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학문적 성실성이 깊어질수록 과학과 신앙 사이에 총체성과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온 반면, 장대익 교수는 더욱 정밀해지고 있는 현대 과학의 성과들은 궁극적으로 무신론적 세계관을 지지하기 때문에 성경의 전제인 창조적 절대자를 상정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오만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주장만으로는 정적(政敵)처럼 보이는 두 학자는 오랜 친구 사이이다. 장대익 교수가 대학원 생활을 했었고, 우종학 교수가 귀국 후 교수 생활을 시작한 서울대 관악캠퍼스 인근의 중국집에서 회포를 푸는 자리를 겸해 이루어진 대담은 3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따금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주고받으며 오간 대화를 정리했다. 혹시 모를 격렬(?)한 논쟁을 중재하기 위해 황병구 편집위원장이 동석했지만, 우려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황병구 / 두 분이 최근에 내신 책을 정독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어떠하던가? 책은 좀 많이 나갔나?

장대익 / <종교전쟁>이 4개월 만에 8000부가 나갔다. 요즘 출판 시장 상황에선 매출이 좋은 편이다.

우종학 /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는 꾸준히 나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직 판단할 만한 시간이 지나진 않았다.

황병구 / 장대익 교수는 <복음과상황> 편집위원으로 저와 같이 활동하면서 여러 글들을 기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현대 과학의 성과와 기독교 신앙이 모순된다는 지적을 방어하는 입장에 서기도 했는데, 지금은 과학과 기독교가 공존과 협력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가?

   
▲장대익 교수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런던정경대학의 과학철학센터에서 생물철학을, 일본 교토대학교 영장류연구소에서 침팬지의 인지와 행동을, 미국 터프츠대학교 인지연구소에서 마음의 구조와 진화에 관해 연구했다.  ⓒ복음과상황 이종연
장대익
/ 왜 내가 기독교라는 끈을 놓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진화론과 과학철학을 업으로 공부해 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과학과 신앙 사이를 오갔다. 유신론자이자 진화론자로서 지적 분열을 느끼지 않으며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했었다. 그때 어떤 친구가 내게 ‘어떻게 신앙과 과학을 같은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느냐’고 했다. 신앙은 핵심(하드코어)인데 그걸 어떻게 의심하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철학과 생물학을 공부하던 나에게 신앙과 과학의 접점은 실존의 문제였다. 나는 어떻게든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을 일관되게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신앙)은 점점 누더기가 될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라카토슈의 과학론과 비슷하다. 변칙 사례가 너무 많아서 핵심을 바꾸는 게 더 낫다는 거다. 결국 모든 걸 신앙 안에서 설명하려는 기독교의 사고방식을 버리게 되었고, 유신론적 진화론, 불가지론을 거쳐, 진화론적 무신론으로까지 왔다.

나는 지식의 자유주의자다. 누구든지, 무엇이든 좋은 작품을 파는 거고 결정은 독자가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어떤 지식이나 현상을 누가 독점할 수 없다. 누가 더 좋은 패를 갖고 오느냐의 싸움이다. 즉, 종교․과학․예술 각 영역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전보다 더 좋은 설명이라는 걸 다른 영역에서 얘기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종학 /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완전히 나누는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하나로 보는 것도 문제다. 자연과학을 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있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도 있다. 가령, 뉴턴역학 이후,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전자의 위치와 속도(운동량)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학의 한계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영역은 분명히 있고 종교는 과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그런 초자연적 영역을 다룬다.

장대익 / 나는 그게 무임승차라고 생각한다. 지식이나 과학이 설명을 못 해주니까 종교가 그 영역을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 말이다. 초자연적 존재가 물질을 만들었다는 유신론적 견해와 물질이 신을 만들었다는 유물론적 관점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 난 실존적으로 잡고 있었던 유신론의 끈을 놓았다. 또 무신론자이면서 인지과학자인 미국 터프츠대 대니엘 데닛(Daniel C. Dennett) 교수에게 배우면서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 진리로 자유를 얻었다 랄까. 현대 과학은 무신론을 지지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우종학 / 그 논리를 따르자면 무임승차를 한다는 비판은 무신론자들에게도 해당한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만들어진 신>(김영사)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종교를 비판했다. 과학자가 어떤 내용을 과학적으로 주장하려면 정량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는 기독교의 신 존재 증명을 비판하는 데 그쳤다. 종교가 그저 인간이 만들어 낸 신에 대한 현상이라는 그의 주장은 과학적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학이 입증해 주지 못하는 내용을 교조적으로 선포하는 건 과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런 방식이라면 창조과학회가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과연 과학이 무신론을 지지하는가? 현대 과학은 결코 무신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자로서의 내 입장이다. 진화심리학은 과학으로서의 엄밀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진화심리학이 무신론을 지지하는가? 나는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과학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영적 세계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 통일되게 설명할 수 없었다는 고민을 이야기 했는데, 무신론자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물질이 먼저 존재했고 우주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전제하는 그들의 전제에 대해서는 지적 성실성의 위기를 느끼지 않는가? 신에 대해 전제한 상태에서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 과학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장대익 / 내가 말하는 건 과학의 영역 자체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종교현상을 자연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잘해야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봤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종교현상에까지 ‘마수의 손’을 뻗쳤다. 과학은 매우 생산적인 프로그램이다. 

우종학 / 과학의 영역을 먼저 정의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주제를 다룰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경험적으로 연구한 결과들이 얼마나 엄밀하게 신의 존재 혹은 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지를 따져봤을 때 별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장대익 / 여전히 핵심은 ‘자유 시장(free market)’이다. 가치든 사실이든 이제는 완전히 자유 시장에 놓여 있다는 게 중요하다.

우종학 / 가치도 사실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패러다임에는 문제가 있다. 설명하지 못하는 자연 현상을 ‘신이 그렇게 했다’라고 말하다가, 그걸 과학이 설명하게 되면서 무신론이 등장하는 데 기여한 꼴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빈틈의 하나님’(God of the gaps)이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런데 자연현상의 인과관계가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자연계에 넣어둔 것이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과학이 발견한 사실이 신을 믿는 믿음과 아무 문제없이 양립할 수 있는 거다.

장대익 / 그게 기독교가 가진 교만한 태도다. 이미 진리를 갖고 있다는 태도, 누가 얘기하면 발만 얹으려고 하는 그 태도 말이다. 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그게 지식이다. 그런데 믿음에서 출발해 버리면 설득이 안 된다.

우종학 / 물질이 신을 만들었다는 것도 전제일 뿐이다. 경험적 얘기를 하자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밤하늘에 장시간 노출을 주고 사진을 찍으면 나선팔을 가진 갤럭시(은하수)가 찍혀 나온다. 그 안에 들어있는 수백억 개의 별, 그 모든 물질들이 동일한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자체를 나는 사실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유신론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장대익 / 그건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이 말한 자연에 대한 경이감이다. 거기서 신이 있다고 말하는 건 비약이다.

   
▲ 우종학 교수는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후,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예일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교(UCSB)와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복음과상황 이종연
우종학
/ 자연 세계가 신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 같은 시공간 안의 모든 것이 동일한 법칙을 따르느냐가 불가사의하다는 말이다. 과학은 패턴을 발견할 뿐이고 설명해 낼 뿐이다. 가령, 컵이 떨어지는 것은 중력의 힘이다. 중력은 지구가 컵을 당기는 힘이고 이는 지구와 물체의 질량이 비례해서 커진다. 뉴턴은 이 패턴을 발견했을 뿐이다. 우주가 대폭발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우주가 동일한 패턴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 자체, 이게 설명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자연주의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다.  

장대익 / 과학이 모든 걸 설명하는 건 아니다. 미스터리는 아직도 남아 있다. 종교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과학은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우종학 / 그렇다. 과학의 많은 전제들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적 성실성을 갖고 이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모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과학자들은 그런 전제를 가지고 경험적 연구를 할 뿐이다. 같은 논리로 신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고 과학을 하는 것이 지적 성실성을 약화시키거나 파괴하는 건 결코 아니라고 본다.

장대익 / 나는 그래도 자꾸 ‘빈틈의 하나님’이 생각난다.

우종학 / 역사적으로 그 빈틈을 과학이 메워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빈틈이 앞으로 다 메워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틀렸다. 다만 우리는 현재의 과학으로 세계를 볼 뿐이다.

황병구 / 장 교수의 솔직한 답변 덕분에 첫 질문부터 기대 이상의 격론을 벌인 것 같다. 장 교수가 강조한 자유 시장이라는 개념이 과제로 남는다. 자유 시장엔 사실 제품의 성능과 가격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소비자의 기호와 행태라는 면에서 보면 과학적 사실이 혹 성능 면에서는 우수하다해도 기존 고객의 선택을 받으려면 다각적인 면들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이야기를 바꾸어서, 대중적인 저술로 주목 받고 있는 도킨스 외에 장대익 교수가 <종교전쟁>에서 많은 부분 할애해서 소개한 데닛, 윌슨 등 기독교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무신론자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면 좋겠다. 세 사람이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또 다른지 그에 대한 코멘트도 해 달라. 또 우종학 교수가 프란시스 콜린스를 비롯한 학자들을 소개해 주면 좋겠다. 
 
   
장대익
/ 도킨스, 데닛, 윌슨, 이 세 사람이 어떻게 보면 가장 분명한 무신론자 과학자로 볼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자기 연구를 해 오고 무신론을 주장한 사람들이다. 재미있게도 2006년, 세 분이 모두 책을 냈다. 다니엘 데닛이 ‘마법을 풀며’라고 번역할 수 있는 <Breaking the spell>을 썼고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 에드워드 윌슨이 <생명의 편지>(Creation)를 썼다. 도킨스가 종교를 박멸해야 인류가 제 갈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다는 입장이라면 데닛은 종교는 의미 있는 지적 전통으로서 문화적 유익이 많고, 도킨스처럼 병리적으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윌슨은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지금은 종교와 싸울 때가 아니라 생태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생태 보호 정신이 기독교의 청지기 정신과 꼭 맞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의미 있는 싸움인지에 대해 각자 입장이 갈린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데닛의 입장이 세 사람 중 가장 그럴듯하다고 본다. 종교의 ‘전통적․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종교가 주는 유익도 많다고 생각한다. 또 때로는 종교와 과학이 공통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위해 손잡을 수도 있다.

가끔 강의를 하러 다니다 보면 한국에 무신론운동 지부를 만들자는 등의 주장을 하는 분들이 연락을 해 온다. 하지만 한국이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내가 무신론 운동을 할 수는 없다. 나의 관심은 과학적 세계관, 합리성에 있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에 더 필요하다. 근거 없는 이론이 판을 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종학 / 세 사람 모두 대가이고 그들의 주장에 대해 내가 덧붙일 말은 없다. 그러나 과학에는 자연세계 전체를 다루는 매우 다양한 영역이 있다. 그 세 사람이 과학을 대변하는 건 지나치다. 장 교수의 경우도 나는 과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과학자를 과잉 대표하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진화론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받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학문의 세계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는 다양한 과학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생물학만 예를 든다고 해도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S. Collins) 박사를 꼽을 수 있다. 물리학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보면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그려내려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도전의 책임을 맡은 콜린스 박사의 연구가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에 비해서 훨씬 더 엄밀해 보이고 과학적 매력을 느끼게 한다. 콜린스 박사는 <The Language of God>(신의 언어)이라는 자전적 책을 통해 자신이 무신론자였다가 신앙을 갖게 된 과정을 그린다. 사실 그는 보수적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 과학자이지만 진화론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미국의 근본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그밖에 많은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있지만 물리학자였다가 성공회 신부가 된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의 다양한 논의들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장대익 / 내가 과학자를 대변해서 말할 입장은 안 된다. 다만 현재 주류 지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다. 예컨대, 주류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종합해 봤을 때 어떤 얘기가 더 합리적인지 아닌지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지금 기독교는 협공을 받고 있다. 과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에서도 얘기하고 있기에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이미 무너진 기독교’가 이런 위기 속에서 어떻게 그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지식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아마 기독교가 사회에 대안적 존재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Too much confident! 기독교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안일함은 사회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도 녹아 있는 것 같다. 

우종학 / 기독교가 이미 함락했다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과학이나 진화심리학 같은 학문을 접하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사실 학문의 세계는 굉장히 넓다. 자연과학 쪽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불가지론자들이 다수인 듯하다.

장대익 / 20~30%가 유신론자이고 나머지는 불가지론자이거나 무신론자이다. 유신론자들이 주류는 아니다.

우종학 / 여러 통계의 신빙성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무신론자들도 주류는 아니라는 점이다. 불가지론자들이 무신론자들은 아니니까. 그들은 다만 신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그걸 과학이 말해주지 않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황병구 /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과거 창조 과학자들이 내세우던 논쟁의 소재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아직 창조 과학자들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지난 여름, 좋은교사운동의 과학 교사 모임에서 지적 설계를 과학 수업 시간에 적용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대익 / 그 모임의 핵심은 지적 설계도 수업 시간에 가르쳐서 진화론과 지적설계론 중 어느 게 더 그럴듯한지 논쟁으로 판단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가령, 천문학에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가르치고 어떤 것이 더 그럴듯한지를 논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논쟁과 레벨이 다른, 창조론자 입장에서 천문학을 보는 관점도 가르치자는 얘기를 하는 건 황당한 거다. 과학이 아닌데 (과학 시간에) 가르치라고 하니 말이다.

우종학 / 같은 입장이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다. 만약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가 과학이라고 한다면 과학적 대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론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 전략만 취할 뿐이다. 문제점을 지적해서 위상을 떨어트리는 전략 말이다. 과학 자체가 처음부터 완벽한 게 아니라 논쟁을 거쳐서 다듬어지고 발전하는 건데, 논쟁 자체를 부각시켜 과학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겠다는 전략은 어떻게 보면 웃긴 일이다. 과학적 설명을 갖고 와서 얘기하면 논쟁을 해 볼만도 할 텐데 이건 말도 안 된다.

황병구 / 과학 수업 시간에 지적 설계를 소개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두 분이 모두 손사래를 치시는데…. 물론 도킨스의 무신론을 특정 과목 수업 시간에 소개한다고 해도 두 분 모두 반대 의견일 듯싶다. 리차드 도킨스는 오랫동안 공격적인 무신론 운동을 해 왔고, <만들어진 신> 출간으로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기독교인이 견지해야 할 바람직한 대응 또는 태도는 무엇일까. 특별히 <복음과상황> 독자들에게 조언이나 당부를 해주시기를 바란다.

장대익 / 일단 도킨스의 책을 제대로 읽고 말하면 좋겠다. <만들어진 신>은 무신론 운동을 위해 쓴 책이다. 그 책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 없다. 그 전에 쓴 <이기적 유전자>에서 보인 엄밀성이 떨어진다고도 하는데, 이 책은 학자들을 위해 쓴 책이 아니라 운동을 위한 책이다. 오히려 왜 도킨스가 이런 운동을 하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좋겠다. 또 도킨스가 신학을 잘 모른다는 비판을 흔히 한다. 이건 <도킨스의 망상>을 쓴 신학자 앨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가 진화 생물학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비판과 똑같다. 그럼에도 일부 신학자들은 도킨스가 아주 얄팍한 지식으로 말한 게 아니라 신학적인 면에서 중요한 부분을 건드렸다고도 한다. 어쨌든, 도킨스를 비판할 때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조목조목 밝히면 좋겠다. 종교의 진화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고, 자신들은 뭘 얘기하고 있는지 얘기하면 좋겠다. 종교와 과학 모두 자유 시장에 놓였다고 하는 걸 사람들이 인식을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우종학
/ 과학을 하면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데, 과학이 담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에 겸손함이 안 보인다.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도킨스가 유명한 과학자이긴 하지만 생물학계 안에 프란시TM 콜린스 등 뛰어난 업적을 낸 다양한 과학자가 있고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다. 진화론이 밝혀낸 사실들이 바로 하나님이 창조한 방식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은 곧 무신론이라고 생각해서 눌리고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또, 종교가 신을 ‘전제’하듯, 과학이 물질을 ‘전제’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과학은 물질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런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과학을 공부하면 좋겠다.

특히 한국교회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안 믿는 자들에게 변증을 하는 것 보다 믿음 있는 자들을 잃어버리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 주일학교에서 지구의 나이가 만 년이라고 배우고 자랐는데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며 지구의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교회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교회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하고 의심하게 된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주일 학교에서 창조 과학 같은 내용 말고 보다 과학을 하나님의 것으로 품어내는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 영역만 신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으로 설명되는 것들도 신의 작품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과학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면서 신의 위대함을 보이려는 수고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아이들에게는 신의 창조가 다양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창조에 관한 신앙이 독단적이 되지 않게 도와주어야 한다.

초반에 모든 과학적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는 것에 대해 교만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건 오해다.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 인간이 그대로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과학 연구의 노력은 무시하고 무임승차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런 피땀 어린 노력을 하는 과학자들 중에는 분명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다. 전능한 창조주를 믿는다는 것 자체를 교만이라고 지적한다면 나는 그 지적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장 교수가 다음 약속시간에 쫓겨 먼저 자리를 뜨고 난 후,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뒤풀이 대화에서 우 교수는 장 교수의 저술과 외부 강연 활동이 과도하지 않기를 바라는 우정 섞인 바람을 나누었다. 표현은 달랐지만 이는 사실 장 교수가 헤어지면서 우 교수에게 당부한 말이기도 하다. 과학과 신앙 모두 한때 인간을 도구화하려고 했고 지배하려고도 했던 역사가 있다. 두 주장이 대화와 관용을 잃어버렸을 때, 인류는 더 어두운 시대를 경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과학은 엄밀한 과학의 언어만으로, 신앙은 진실한 신앙의 언어만으로 우주의 본질과 인간의 궁극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겸손히 대화에 나서야 하는 것일까?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거대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주로 연구하며 이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블랙홀 교향곡>(동녁사이언스)이라는 대중 과학서를 냈고 장기적인 대중 과학 작업을 모색 중이다. 모태 신앙에 보수적 교회에서 자랐고 대학 시절 한국기독학생회(IVF)를 거쳐 미국에서 유학하고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코스타를 섬겼다. 과학과 신앙에 대해서는 전공이 전공이니 만큼 중학교 시절부터 고민했고 대학원 시절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과학 때문에 신앙을 버렸다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올해 초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라는 책을 냈고 이 책에서 과학과 신앙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를 전개한다. 리차드 칼슨의 <현대 과학과 기독교의 논쟁>(살림출판사)과 존 폴킹혼의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SFC출판부)를 번역하기도 했다. 

장대익 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1997~2000년까지 <복음과상황>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더 이전에는 한국 라브리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과학철학과 행동생태학, 그리고 인지과학을 업으로 공부하게 되면서 서서히 무신론자가 됐고, 올 여름에 출간된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을 통해 비로소 ‘커밍아웃’했다. 이 책은 신학자, 종교학자, 그리고 과학적 무신론자(장대익)가 과학과 종교에 대해 1년 동안 주고받은 이메일(당시 인터넷 신문인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다)을 정리해서 엮은 책이다. 책에서 장대익 교수는 지식과 삶의 체계로서의 종교가 과학‧기술 시대와 지식 융합 시대인 오늘날에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작년에는 현대 진화론자들의 치열한 논쟁을 다룬 <다윈의 식탁>(김영사)을 출간했다. 기계‧동물‧인간‧신의 경계가 주 관심 분야이며, 한국의 지식 문화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정리·사진 이종연 기자 limpid@goscon.co.kr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165
 
미선이 (09-11-02 20:34)
 
윗글을 읽고나서...

신이 있다는 전제와 신이 없다는 전제가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한다고 할 경우, 힘을 받는 쪽은 당연히 후자다. 왜냐하면 이미 지금 여기(Now and Here)라는 인간 경험의 현실부터가 현실적으로 출발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바로 그 지점을 윗글에선 유신론을 변호한 우종학씨가 간과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거부할 수도 없고 부인할 수도 없는 명백한 감각 현실의 세계부터 살고 있다. 근대 이후 지금까지 왜 날이 갈수록 과학의 탐구들이 계속적으로 호응과 탄력을 받고 있는지도 새삼 깊이 한 번 잘 성찰해볼 필요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렇기에 신이 있다 없다라는 전제 자체를 떠나 이미 경험되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보다 설득력 있는 신 존재 이해로 나아갈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럴 경우 굳이 기존의 신 개념만 꼭 고집할 필요도 없잖은가. 바로 이 지점에서 무신론 입장을 택한 장대익씨 역시 너무 일찍 손을 놓은 감도 없잖아 있다. 그 자신도 언급하고 있는 라카토스 과학론에서 보듯 변수가 많으면 핵심을 바꾸면 되듯이, 신을 버릴 수도 있지만 신에 대한 고정관념 자체를 바꿀 수도 있잖은가 라는 것이다.

고대의 신화이든 종교이든 현대의 과학 이론이든 간에 무릇 인간에겐 자연과 문명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에 대한 해명과 설명에 대한 욕구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생래적으로도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신이 있든 신이 없든 또한 그것이 어떤 종류의 신 개념이든 간에 결국은 설명력 싸움에 해당한다. 하지만 과학이든 종교든 그 어떤 설명적 이론이든 간에 필연적으로 오류가능성으로서의 한계 역시 지닌다. 인간 자체가 이미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그저 최선의 설명력을 추구할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윗글에서 두 사람 모두 합의가 되고 있는 부분인 창조과학과 지적설계의 폐해에 대해서다. 사실 창조과학과 지적설계 같은 이론들은 쓰레기 같은 교설들이며, 알고보면 종교와 과학 진영 모두에게 폐를 끼치는 공해일 뿐이다. 그것은 이미 오늘날 의식 있는 자들이라면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잡설들에 해당한다. 제발이지 복음주의 진영들도 게임 끝난 얘기들로 더이상 왈가왈부할 일이 없었으면 싶다. 그것들은 그저 부끄럽기까지 한 근본주의 기독교의 폐해일 뿐이다.

끝으로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하는 세기연의 포지션은 위의 두 사람과도 다른 위치라 여겨진다. 세기연 추구하는 바는 유신론 입장이긴하나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한 기존의 유신론을 거부하는 또다른 유형의 유신론 이해에 서 있다. 그러면서도 신이 있다 없다 같은 전제가 아니라 현실 경험에서 출발하여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을 취하겠다는 자세에서만큼은 앞으로도 수정 가능한 현대 과학의 탐구 자세와도 동일하다. 유감스럽게도 윗글에선 그러한 제3의 포지션은 빠져 있는 듯 싶다.

기존의 복음주의 진영도 기존 기독교의 오류와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 형성 진영을 버겁게 여기나(혹은 잘모르거나 또는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앞으로 여러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취재를 하고자 한다면 부디 다양성의 미덕을 잃지 말고 공정한 시각으로서 함께 찾아서 취재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보다 많은 분들이 정보의 소외를 겪지 않게끔 말이다. 아직도 새로운 대안 기독교 운동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도 모르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 http://freeview.org

불독사랑 (10-05-11 01:02)
 
1.처녀가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다  2.죽어서 무덤에 3일동안 묻혀있던 사람이 '일어나라'는 말 한마디에 되살아났다 3.사람이 바다위를 걸어다녔다 4.전병 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천명이 배불리 먹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위 사건들의 주인공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났다!! ->이런 것들을 믿으면서도 과학과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과학도 종교도 아니고 하나의 '정치'가 아닐가요? 그리고 저런 것들을 죄다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도대체 성경책에서 건질만한게 뭐가 남을까요. 정말 누더기 기워입기 같네요.

미선이 (10-05-11 01:57)
 
말씀하신대로 그러한 사항들은 과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봅니다. 보다 정확히 얘기한다면
과학과 양립가능할 수 없는 지점은 바로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입니다.
제가 볼 때도 종교에서 초자연주의 요소들은 정확하게 사실이 아닌 것들로서 인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남은 게 뭐가 있을까 의문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사실 정치 아닌 것도 없지요. 이것은 과학도 일종의 정치이기도 하니까요.
결국은 그것이 신화적 얘기든 혹은 과학적 주장이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또한
약자우선적인 정치로서의 의미에 서 있느냐 아니냐도 함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저로선 어떤 면에서 종교조차도 진화의 메커니즘에서 보면 여전히 새롭게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데
아시다시피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에는 종교와 초자연주의는 거의 동일시되거나 혹은 필수요소로 여겨져 있기도 하죠.
또한 초자연주의가 꼭 있어야만 종교가 성립될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도 있기에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지점이 될 것으로 봅니다.

또는 불교나 유교를 서구의 기독교와 달리 자연주의적 종교로 본다면 아마도 앞으로의
새로운 기독교도 어쩌면 그러한 자연주의적 종교의 차원으로 진화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의 흐름은 이미 발견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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