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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미국 복음주의 몰락 (Richard Gamble)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7-06 00:47 조회(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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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과 복음주의의 상관성

(미국 복음주의 몰락)

Richard Gamble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스데반 번역


이 주제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단어들을 조심스럽게 정의해야만 합니다. 또한 개혁신학은 복음주의 신학보다도 더 오래되었음을 먼저 확실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주의 신학은 비교적 현대에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I.  복음주의 신학 (Evangelical Theology)

A. 배경의 근원.
저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미국 복음주의에 초점을 맞출 것이기며 따라서 영국 복음주의에 대한 논의는 피하려고 합니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는 18세기 영국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웨슬레 운동의 발생과 관련됩니다. 또한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는 18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에서도 발견됩니다. 두 개의 역사적 운동은 분명 현재의 미국 복음주의를 형성 시켰습니다.

저는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는 영국 감리교회나 독일 경건주의보다 시간적으로 어린 것을 전제합니다. 이 전제에 대하여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 강의를 간단하게 하길 원합니다.


복음주의 신학이 19세기 미국에서 그 시작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뿌리를 추적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복음주의를 하나의 운동으로 볼 때 여러가지 다른 의미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19세기 독일 자유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반작용으로 정의될 수도 있고, 침례교 및 감리교 신학과 교회론의 지속적인 발전의 결과로 정의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 두 정의를 결합하여 미국 복음주의 신학은 독일 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과 침례교와 감리교 신학과 교회론의 지속적인 발전의 결과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B.  미국에서 근본주의의 발생
19세기의 말과 20세기의 초에 일반적으로 근본주의라고 불리우는 하나의 운동이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은 어떤 특정한 가르침을 거부하는 주류 교회와 교단에 대한 반대 반응으로 일어났습니다. 많은 주류 교단들에서는 동정녀 탄생을 의문시하였고 성경의 권위를 공격하였으며 기적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반대하여 성경의 가르침 그대로 붙잡으려는 사람들을 가리켜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이 이름을 갖게된 이유는 그들이 20세기 초에 출판한 소책자 씨리즈의 이름이 “근본적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근본주의자라는 이름이 붙게된 첫 번째 사람은 그 위대한 구 프린스톤 신학자인 그레함 메천(J. Gresham Machen)입니다.
[1]  그러나 메천과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과 종종 문화적인 어떤 변화에 대하여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근본주의자들”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기에 함께 오해하면 안됩니다. [2] 

한편 지식적인 신학자들 및 제대로 배우지 못한 복음주의자들로 구성되어 발생하였던 미국 근본주의자들도 메첸을 중심으로 한 기존 신학체계에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실수함이 없이 이 두 운동의 일시적인 연합 운동과 우리가 소위 말하는 "현대 복음주의 신학"과는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C.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발생

192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신학교 인준기관인 신학협의회(ATS)는 주요 대학원 및 재정적으로 안정된 주요 신학교들과 연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후에 첫번째로 인가를 받은 복음주의 신학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풀러신학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운동으로서 현대 복음주의 신학은 아마도 2차 대전 이후의 현상일 것입니다.

D.
 현대 복음주의신학의 특징들

20세기 초 미국에서 복음주의 신학은 놀랍게도 초교파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교파를 초월한 복음주의는 연합 감리교회(the United Methodist Church), 연합 장로교회(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복음 루터교회(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그리고 남침례교회(the Southern Baptist Church)에서
 발견됩니다. 이 교단들은 주류로 간주되었는데 그 교단 내부에는 근본주의 및 복음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가끔 복음주의 신학의 운동은 특별한 교단 보다는 초교파적인 기구들과 밀접하게 연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가지의 예로 풀러 신학교와 텍사스의 달라스 신학교 기관들이 있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의 본거지라고 부를 수 있는 다른 예로서는 IVF(Inter Varsity Fellowship), CCC (Campus Crusade for Christ), 네비게이토 (the Navigators) 그리고 크리스챤 투데이 출판사 같은 파라처치(Para-church) 기관들입니다.


현대 복음주의 신학은 근본주의의 주요 교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 기초와 함께 현대 복음주의 신학은 침례교회에서 널리 가르쳐지고 있고 감리교회에서는 초기에, 그리고 웨슬리 전통에서 지금도 여전히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은 전천년 종말론을 지지합니다. 현대 복음 주의 신학은 장로교회에 있어서는 구 장로교 학교 보다는 이와 대조적인 신 장로교 학교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II. 개혁주의 신학 (Reformed Theology)

A.
 일반적으로 쉬운 정의

일반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은 복음주의 신학 보다 쉽게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16세기의 종교개혁에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대륙에서는 존 칼빈과 관련하며, 영국에서는 존 낙스의 이름과 관계를 가집니다. 미국에서의 개혁주의 신학은 보통 특별한 교단들과 연관을 가지게 됩니다. 이 교단들로는 대형 장로 교회 교단들과 대형 대륙 개혁 교단들이 있습니다.


B.
 특별한 의미에서의 힘든 정의

비록
개혁주의라고 자신들을 주장하는 미국의 교단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들이 주장하는 신학이 진정한 의미의 개혁주의가 아닌 교단들이 있습니다. 저는 구 프린스톤 신학자인 B. B. 워필드가 정의한 개혁주의 신학을 사용하길 원하는데, 그 분의 정의에 의하면 개혁주의 신학이란 성경적인 기독교의 모습이 신학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정의는 아주 심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강연의 목적을 위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 성경의 무오성을 믿으며 전통적인 개혁주의의 신앙 고백을 하는 각 개인들과 교단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문답, 그리고 돌트신조)

III.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 사이의 긴장들


A. 운동에 있어서 유사성과 차이성

1. 신학적 유사성
개혁주의 고백서들은 복음주의의 중요한 신학적 핵심들을 지지합니다. 이 점에서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은 서로 동의합니다.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고백이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동의합니다. 따라서 각 개인의 경건은 두 운동의 신학에 중요합니다.


2. 교회와 국가에 대한 자세에 있어서 유사성
일반적으로 두 운동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합니다. 복음주의 신학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대하여 확고하게 주장합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하여 다소 덜 주장합니다. 단지 그레함 메첸 (J. Gresham Machen)의 주장인
교회는 단체법인자격으로(its corporate capacity) 정치적인 분야에 참여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주장에 따를 뿐입니다. 메첸의 주장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31장 4 조항과 일치합니다. 메첸이 믿는 것은 개개인 기독교인들은 국가의 법적 문제에 관여할 수 있지만,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정치에 각 개인들이 자신의 신앙 행위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공동체 교회 기구가 정치에 참여 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3. 경건과 개인주의에 있어서 차이점
그러나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은
근본주의적이지 않고 복음주의적이지도 않습니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이 복음주의가 아닌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신앙고백서들이 신학과 성도의 삶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분명하게 진술하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경건에 대하여 제한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경건이란 개인적이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합니다. 개혁주의는 재세례파(Anabaptist) 신학과는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의 왕권으로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교육적인 것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3] 

B. 각각의 운동이 서로 상반되는 두려움들


1. 사회주의 복음(the social gospel)에 대한 복음주의의 두려움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복음에 대항하여 연합하였습니다. 1917년 자유주의 신학자 월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ch)가 사회주의 복음을 위한 신학을 출판하였습니다. 그러나 라우센우쉬 자신은 사회주의 복음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보수적입니다. 사실 사회복음주의 운동을 분류할 수만 있다면 이는 사랑의 영역이요 노동의 복지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진지한 관심과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면 사람들을 바르게 사회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악한 사회구조들은 죄악의 상황을 계속 지속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회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반쪽 신학이 마치 개혁주의 신학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2. 금주에 대한 복음주의의 두려움
 복음주의 신학은 음료로서 술의 사용을 반대하는데 연합하였습니다. 심지어 시카고의 복음주의자 무디(Dwight Moody)도 교회와 정치의 분리를 강력하게 주장하였고 금주운동을 주장하는데 동의하였습니다. 한편 개혁주의 신학은 이 문제에 대하여 복음주의 신학의 입장을 반드시 지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금주운동은 사실 미국 시민 전쟁 (the American Civil War)전에 시작되었는데 14개 주가 술 소비를 금지하였고 1919년에는 미국 헌법 수정 제18조 (금주법)가 인준되면서 최고점에 이르르게 됩니다. 이 법안에 의하면 술과 관련한 제조, 판매, 수송을 금하는 법안이었습니다. 이때 교회와 국가 관계에서 상당한 긴장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금주에 대한 문제는 장로교회 안에서 대단히 많은 어려움을 만들어 냈습니다. 예를들면 정통장로교회(Oxthodox Presbyterian Church)의 제 3차와 4차 총회에서는 일곱 노회에서 함께 안을 내었는데 (OPC) 교회의 모든 목사들과 장로들은 절대로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안건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제 4차 OPC 총회에서는 그들의 안건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5년간은 이 교단에서 이 안건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통장로교회가 술문제에 대하여는 애매한 태도를 취합니다. (OPC)  총회는 마침내 위원회를 선출하여 의탁하길,
OPC와 사회에 대한 관계를 일반적으로 연구하고 특별히 다른 교회 기관들과의 관계를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 총회에서 우리 교회의 메시지와 방법이 이 세대의 필요를 채우고 OPC의 영향력을 증가시키며 오늘날 사람들의 삶에 큰 충격을 줄수 있는 추천할 만한 방법과 수단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위원회에서는 많은 노력과 모임을 가진 후에 (총회) 다수의 보고와 소수의 보고를 제출하였고 해체되었으며 따라서 더 이상 이 술문제에 대한 총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하여는 어떤 공식적인 답변이 한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3. 개인과 사회의 관계성에 대한 개혁주의의 두려움
비록 메첸은 자신이 근본주의자임을 선언했지만, 심지어 출판을 통하여, 그는 말하기를
근본주의자란 전 천년주의자들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주의에 대항하여 초자연적 기독교를 분명하고도 극단적으로 믿는 자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회주의 복음에 대한 복음주의의 두려움을 알고 있는 메첸은 사회주의 복음을 공격하였습니다. 비록 메첸은 사회주의 복음이란 문구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주장하길, 역사적 기독교는 사회적이기 보다는 개인적인 것으로 오해되어 마치 모든 사회적 발전에 원수적인(inimical) 것으로 생각되어 왔었습니다. 구 복음주의는 개인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으로 말해졌습니다. 한편 새로운 좋은 복음주의는 개인만을 구원하고 세상을 운명에 맡기는 대신에 삶의 물리적 조건을 향상시키고, 여기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로 불리우는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향상시키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첸은 확신하기를 이러한
개인과 사회를 완전히 따로 구분하여 개인과 사회를 반대편에 놓는 구도는 잘못된 이분법의 전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었습니다. 한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영적으로 구원을 받았을 때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는 세상을 도피해서 신비한 묵상의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의를 위한 전투를 위해 다시 세상으로 보내져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더 그가 우리에게 상기 시키는 것은 기독교 그 자체는 각개인의 영혼 구원에 우선권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근본주의 혹은 그가 부르는 역사적 기독교는 실제적이기 보다는 교리적이다라는 반대 주장에 대답하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가 먼저 말하는 것은 이러한 반대 주장은 좁은 편견의 마음을 가진 자들의 반대라고 밝히고, 교회는 믿음의 기초를 분석하는 것과 인간의 물리적인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 사이의 이원론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교회는 두 개를 모두 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를 무시하는 것은 분명히 재앙을 불러올 것입니다.  후에 메첸이 말하기를 "만일 우리의 믿음의 지적인 방어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소홀하게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는 종교개혁 시대의 부흥처럼 기독교의 부흥을 고대하였었는데, 이 부흥의 때에는 아름다운 마음들, 이타적이며 고귀한 행위들을 유지할 것입니다. 이때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눈에 보이는 방편들을 더욱 촉구할 것이며 이 사회의 조건들을 개선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4. 인종 차별로 인한 분리에 대한 개혁주의의 두려움
1959년 헐버트 알리버(C. Herbert Oliver)는 장로교회의 흑인 목사로서 인종관계와 인종 차별에 대항하여
육신은 결코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
(No Flesh shall Glory)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의 한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종차별은 기본적으로 비인간적이며 비자연적인 것으로서 철저한 인종 차별 제도는 차별되는 구룹을 다루는데 있어서 모든 도덕과 예의를 잃게 됩니다. 기독교 가르침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양심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자신들 집단의 지적이며 교육적인 표준을 높이길 원하지만 오히려 고통스런 딜레마에 직면하기 되는데, 이들은 교육과 인종차별은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이요 상호 배타적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계몽이 번성하는 곳에서는 인종차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인종차별이 심한 곳에서는 (계몽이 없기에) 지적인 성장도 거의 억눌려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미국 복음주의는 남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복음주의안에서 특별한 문제로서 인식되었습니다.


C.
 낙태논쟁에 대한 복음주의와 개혁신학의 연대
미국 대법원이 1973년에 그 유명한 로(Row)와 와드(Wade)의 싸움에 대한 판정이 있기 전에 앞서, 보수적 장로교회의 지각있는 지도자들은 낙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1968년 OPC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문제를 조사하고 입장 성명서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이 성명서에서 OPC는 낙태가 합법적으로 되기 전부터 낙태에 대한 강한 반대를 보였습니다. 이 보고서의 시작의 문단은 실로 예언적입니다. "만일 낙태가 살인이라면, 현재의 낙태 자유화는 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헤롯 대제의 만행보다 더 무서운 만행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연약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갓난아이를 무차별하게 살인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성경 본문들과 함께 이에 대한 상세한 신학적 분석을 제안하면서 위원회는 그들의 분석에 대한 3가지 조치를 추천하였습니다. 첫째는 총회가 낙태 반대 결의를 받아들이고 이 문제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회중들과 당회와 노회에 의하여 집행됨으로
이 문제에 관한 성경적 원리를 가르쳐주며, 따라서 회중들로 하여금 이 문제를 다루는 법안과 관련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며 그들의 속한 사회에서도 적절히 행동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약 일년 후에 대법원은 미국 전역에서 낙태를 찬성하는 것으로 판결했습니다.
다시 한번 보수적인 장로 교회 내부에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일치된 선언을 함으로 인한 긴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총회의 낙태 보고에 대한 소수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소수 보고의 저자들에게 나타난 것은 교회가 1937년에 거절하기로 한 것을 해야하는 지경에 있습니다. 성경 목록에 부가적인 의미를 첨부해야할 직전에 있는 것입니다.
후에 소수 보고서는 진술하기를 : 국가법률에 의해 종교적 원리를 강요하는 일에 대항하여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거절해야 합니다. 교회의 운명을 이러한 위치에 두는 것은 종교적 자유를 거부 당하며 살아야 사람들을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역사를 살펴볼 수록 오히려 (이러한 정부 정책에 대항하는) 많은 증거를 제공합니다.


D. 결론: 미국 개혁주의 신학은 지금도 여러 문제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우리를 한바뀌 돌아오게 합니다. 메첸의 죽음 이후 보수적 장로교회는 절대금주 문제와 씨름하였고 이 주제에 열띤 토론을 띄었습니다. 어떤이들은 금주를 찬성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교단 회원들에게
 비성경적인 요구를 강요하지 않기를 주장하였습니다. 비록 절제는 바람직하고, 술취함은 정죄 되었으며,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금주를 선택하였지만, 그러나 교회는 그 금주를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낙태에 대한 소수 보고서는 오직 교회가 1970년과 같은 패턴을 따를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낙태에 대한 소수 보고서는 두 번째 원리를 질문하였습니다. 국가 법이 종교적 영역을 강요함이 옳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수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은 위험한 진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관찰한 것은 메첸의 시대부터 시작하여 1970 년대까지의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한 정확한 역할에 관한 의견들에 관한 것입니다. 원리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 줄어질 때까지 장로교회에서 내에서는 사회적 활동에 대하여 표면상 지그자그의 경로가 계속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IV. 개혁주의 신학의 부흥이 없이는 복음주의 신학은 몰락하게 될 것이다.

A.
 명제

 이 발표의 나머지 명제는 개혁주의 신학의 부흥 없이는 복음주의 신학은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미국 복음주의의 몰락을 예측할 때, 이러한 예측은 매우 거만하고 시기 상조인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문제는 아주 시급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진단하기 위하여 우리는 복음주의 신학에게 몇 개의 어려운 질문을 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B.
 복음주의 신학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복음주의 신학 안에 상당히 문제가 되는 여러 불편한 경향들이 있습니다.


1. 성경의 포기
자기의식이 있는 복음주의는 의도적으로 성경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도전들에 대하여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포기하였습니다.

 

 a. 기독교 상담과 교육에서 성경의 가리침을 포기한 구체적인 예
보이스(Boice)는 "그들은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이루는데 있어서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세속적 치료 단체들을 의지하게 되었다
”라고 통탄합니다.


b. 예배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포기한 구체적인 예
보이스는 말하기를
많은 목사들은 그들의 예배에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하여 성경의 날카로운 내용들을[4]  허물었다. 그들은 오락을 전공하고 있다” 고 탄식합니다.


2. 이 세대의 정신을 본받는 미국 복음주의자들.
바울은 로마서 12 장 2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개인의 윤리적 문제를 포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단지 개인적인 경건을 말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오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의 전적인 개혁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  세속주의
세속주의는 복음주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건축하며, 실내장식은 어떻게 하며 심지어 설교를 어떻게 해야하는지까지 세속주의의 영향이 자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b. 물질주의와 학문 존중심의 발생

물질주의:
미국 복음주의에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고액의 사례비를 받고 사회에서도 상당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사례를 잘 받는 목회자를 깍아내리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저도 목회자인데 어떻게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일반 목사의 사례비의 6 내지 7배의 사례를 받습니다.


학문 우월 주의의 발생:
[5] 
분명 복음주의 세계에서도 학문적 능력을 도움보다는 방해가 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학문적 존경과 인정을 받으려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습니다. 학문적 평판을 얻기 위하여 성경 교리 및 성경의 무오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명한 자칭 복음주의자들은 이제 성경의 축자적 영감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교수이며 정통장로교회 장로인 마크 놀(Mark Noll)은 그의 책 복음주의 정신의 스캔들(Scandal of the Evangelical Mind)이라는 책에서 주장하기를 복음주의자들은 (구)프린스톤학자들이 가졌던 성경 무오성에 대하여 오해를 하던지 또는 오해토록 한 후, 기독교의 본질이란 단지 우리로 구주께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지적합니다. 영국 복음주의 신학자 맥그래스(Alistair McGrath)의 경우, 그는 성경의 축자적 영감을 반대합니다. 특별히 맥그래스는 찰스 핫지(Charles Hodge)를 비판하면서 말하기를 "성경의 권위에 대한 핫지의 분석은 궁극적으로 성경의 영감설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언어의 성격에 대한 맹목적 신앙에 근거했다"고 반론합니다.


3. 미국 복음주의는 정신을 잃고 있다.
정신이 없다(mindless)는 의미는 삶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점을 주시하려면 현재의 미국 사회와 지난 19세기의 미국 사회를 비교해 보면 당장 큰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100년 동안에 미국 대중들은 노예제도나 연방정부와 관련한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바른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글을 읽을 수 있도록 교육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정신이 없는 상태는 복음주의의 문제만이 아니고 전 미국의 문제입니다. 특히 복음주의자들도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 역시 이러한 정신없는 상태의 질병에 걸려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문제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보이스(Boice)는 슬프게도 지금 문화의 텔레비전의 지배력은 교회와 설교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예배는 오락화 되어가고 설교자는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도와 줌으로 군중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태어나 살던 시대였던 1923년, 미국 장로교회(남장로교회: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에서는 14,000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소요리문답을 암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이언 머레이(Ian Murray)가 말하는 것처럼, "신학생들 가운데서도 성경에 대하여 전혀 무식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20년 이상을 가르친 우리들도 같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4. 미국 복음주의는 실용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복음주의가 집회를 할 경우 사람들을 앞 자리로 초청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는 미국 실용주의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짐 보이스는 다음과 같이 한탄합니다. "교회 성장이론가들이 세미나를 주도하고 있다. 이 세미나에서는 설교자들이 일반 대중을 장사 시장터(Market)로 생각하게 하고 복음은 그들 대중을 매혹하는 하나의 패키지 물건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적 관심을 끌수 있는 유명한 이름의 사람들과 함께 어떠한 관계를 맺으려 갈망하고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Billy Braham)에 대하여 우리는 듣는 것은 "그가 자신의 설교를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그 설교와 관련되는 최고의 유명인사들과 함께 친목을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좋은 결과보다는 악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에게 유익만 된다면 자유주의자들, 로마카톨릭자들, 그리고 유대인들과 협력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복음주의가 실용주의를 따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5. 복음주의자들은 예전의 오류를 새로운 형태로 받아 드리고 있다.
18세기에 어떤 스코틀랜드 신학자가 가르치기를, "자신(혹은 그녀)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 없느냐와 관계없이 사도신경에 증언한 것처럼 예수께서 실제로 죄 때문에 죽으셨다라는 것에 설득만된다면 의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오래 전 신학적 오류가 달라스 신학교의 어떤 교수들을 통하여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은 젠 핫지스(Zane C. Hodges)가 쓴 글에서 나타나는데 이에 대하여 옳바른 복음주의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달라스에서 가르치는 Zane Hodges와 다른 사람들) 회개, 제자도,  그리고 내면의 영적 변화의 증거로서의 행위에 대한 필요성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은 이것을 믿음에다 행위를 부가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분명 어떤 개신교나 복음주의자나 개혁주의자들이라도 구원에 있어서 믿음에 행위를 연결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믿음의 본질이란 죄로부터 회개를 요구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길 원하는 새로운 갈망이 동반된다는 사실입니다.

 
6.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합류하고 있다.
1994년 3월에, 복음주의자들과 로마카톨릭주의자들이 함께: 3천년에 있어서 기독교 선교"(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The Christian mission in the third millennium) 라는 제목의 25 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뉴욕에서 출판하였습니다. 패커(J. I. Packer)를 포함한 25명의 복음주의적 루터란 지도자들과
 카톨릭 지도자들이 거기에 서명하였습니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Christianity Today)도 ECT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존 맥아더(John F. MacArthur)는 즉시 ECT를 거절했고 "무모한 믿음"(Reckless Faith)이라는 제목으로 ECT를 반대하는 책을 내었습니다. 이안 머래이(Ian Murray)는 ECT 사건 이후에 판단하기를 이제 "복음주의자들 가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발생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잘 알려진 신학자 웰스(David Wells)가 개탄을 하며 말하길, "한때 복음주의의 영혼에 물을 주었던 역사적 정통주의의 흐름이 이제 문화를 통하여 들어온 세속적인 것들을 세속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세속화되어 파멸 당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과거 수십년 동안 현대문화와 쉽게 연합하여온 기독교 신앙의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인 것이며 이에 "복음주의 자체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나 복음주의의 특성을 다 잃어버린 것이다고 말하였습니다
.

C. 결론
오늘 여러분에게 발표한 제 논문은 개혁주의 신학의 부흥이 없이는 미국 복음주의 신학은 스스로 파괴하거나 아니면 이미 파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임무는 미국 복음주의 신학의 연속을 위하여 필요한 대답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게 맡겨진 주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는 바는 모든 올바른 신학은 하나님에게 궁극적인 영광을 돌린다는 점입니다. 만일 미국 복음주의 신학이 하나님께 올바른 영광을 드리지 못한다면 이 신학은 결국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미국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도 인간의 능력을 그 영광에 혼합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영예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개혁주의 신학에 그들의 목소리를 합류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고 선포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맞이하게 될 종국적 비참(their demise)에 대하여 그 누구도 통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1]필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1927년에 창설하셨습니다. 역자 주

 [2]신학적 근본주의와 문화적 근본주의를 구별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역자 주

 [3]한편, 재세례파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신앙 및 경건이라는 종교적 특성에 제한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문화와 신앙을 분리시키는 성향이 강합니다. 강사는 복음주의 신학을 간접적으로 재세례파 신학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역자 주

 [4]성경대로 심판을 가르치지 않고 사람들의 죄악을 지적할 경우 군중들이 불편해 할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5]하바드, 예일 등의 학교로부터 학문적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자신의 신앙 보다는 여러 학문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선이 (10-07-06 00:52)
 
(윗글과 관련하여.. 기사 하나)

명문 하버드대, 종교 과목 경시 논란

 기사입력 2010-02-15 15:43
 
별도 종교학과 없고 교수 3분의1 '무교'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성용 특파원

=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대 중 하나인 하버드대가 인문 교양 과정 등에서 종교 과목을 가르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해 종교를 너무 경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신호에서 전했다.

종교가 개인적으로 신앙을 갖고 있느냐 여부를 떠나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사회의 지도층 인사를 많이 배출해 온 아이비리그의 하버드대 같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종교학을 가르치는 데 소홀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14일 이 잡지에 따르면 하버드대 교수진은 종교를 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고 경제나 생물, 문학 등 다른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하버드대는 2006년 커리큘럼 개정 과정에서 종교학 강좌의 비중을 놓고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루이스 미난드 영문학 교수 등 커리큘럼 개정팀은 당시 학부생들이 종교 관련 강좌를 최소 1개 이상 이수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다른 교수진의 반대로 표결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종교학 강좌를 필수 과목으로 정하는 데 반대한 스티븐 핀커 심리학 교수 등은 하버드대 교육의 주된 목표가 이성적 물음을 통한 진리의 추구에 있다며 종교는 비중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대가 1636년 창립 당시 기독교 목사들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하버드대의 학과목으로서 종교에 대한 혐오적 태도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고 뉴스위크는 지적했다. `진리'(VERI TAS)라는 모토가 하버드에서 공식 채택된 것은 1843년의 일이다.

하버드대에서 독립적인 종교학과는 없으며 종교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인류학과에 소속돼 있다. 다이애나 에크 종교학 교수는 "종교 과목이 2류로 취급됨에 따라 최고의 자질과 능력을 가진 교수진을 영입하고 똑똑한 학생들을 전공자로 유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지난해 하버드 학부생 중 종교를 전공으로 선택한 학생은 33명이었다. 경제학 704명, 정치학 408명, 역사 217명, 고전 45명 등과는 대조적이다.

하버드대 엘리트 교수 중 3분의1 가량은 종교가 없다. 미국내 종교 인구 비율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로 하버드대의 종교에 대한 경시적 태도를 일순 이해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게 뉴스위크의 평가다.

미국 천주교 분야의 석학으로 하버드대에서 7년간 재직했다 2007년 노스웨스턴대학으로 옮긴 로버트 오시는 "종교는 매우 중요하고 인류 역사에서 흥미로운 부분"이라며 "중소 대학이나 주립대 등은 종교를 거의 전부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ksy@yna.co.kr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sid1=&oid=001&aid=0003123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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