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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서, 신비한 암호책이 아니다 (민경식)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7-01-30 16:06 조회(8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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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말한다(6)

성서, 신비한 암호책이 아니다
 

들어가는 글

지난 반 년 동안 <기독교사상>의 지면을 빌어 성서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글을 연재하였는데, 이제 마지막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까지 성서의 목적은 과학적 지식의 전달이 아니고, 역사적 사건의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진술도 아니며, 또한 성서가 체계적인 윤리적 지침을 주려는 목적으로 기록된 책도 아님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성서는 어떤 책인가?

물론 성서에서도 역사적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니, 21세기에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지저스 세미나 학자들이 성서를 중요한 사료(史料)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성서가 실증적 역사의 보존을 위해 기록된 책은 분명 아니다. “서로 사랑하여라.”(요 13:34)는 계명에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많은,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진술들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허나, 그 계명 역시 요한공동체의 절박한 상황과 밀접히 관련시켜 이해할 때,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여라.”(마 5:44)는 계명 역시 무시간적이고 무공간적인 진공상태에서 주어진 윤리적 계명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국가 권력에 복종하라는 계명(롬 13:1-7)도 문자 그래도 “영원한 진리”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이번 호에서는 성서가 신비한 암호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살펴본 후에, 그동안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성서가 왜 하나님의 말씀인지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암호책이 아니다 I : 바이블코드
『바이블코드』는 1997년에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자신은 과학자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고, 성서학자도 아니라고 밝히는 마이클 드로스닌(Michael Drosnin)이 쓴 책인데, 그는 <워싱턴 포스트> 와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활동하였던 기자였다. 이 책에 따르면, 성서 안에는 미래를 예측하는 암호가 들어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토라(오경)에는 인류 역사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이 코드화되어 숨어있다. 이것이 바로 “바이블코드”이다. 드로스닌은 자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저명한 수학자인 엘리야휴 립스(Eliyahu Ribs)가 바이블코드를 발견하였고, 자신은 그의 이론을 소개할 뿐이라고 한다. 자신은 원래 신자도 아니며, 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바이블코드가 진실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한다.

바이블코드가 다시 한 번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2001년이다. 그해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세계를 경악시킨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드로스닌은 이 사건 역시 3,000년 전에 기록된 성서에 예언되어 있음을 주장하며(그림 1), 2002년에 『바이블코드 II』를 냈고, 이듬해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나왔다.

그렇다면 누가 성서 안에 암호를 숨겨놓았으며, 그 숨겨진 암호를 어떻게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인가? 3,200년 전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건네준 성서에, 즉 토라의 “원본”에 바이블코드가 발견된다고 주장하니, 성서에 코드를 심어놓은 존재는 당연히 하나님이 된다. “그분께서 직접 주신” 304,805개의 문자들을 “수학적”으로 읽을 때, 암호를 풀 수 있다고 한다. 즉 단어와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30만 개가 넘는 알파벳을 등거리 간격으로 읽어보는 것이다. 30만 여개의 알파벳을 64개의 행으로 나누고, 각 행마다 4,762개의 알파벳을 가상의 모눈종이 위에 배열하고는, 가로로도 읽어보고, 세로로도 읽어보고, 대각선으로도, 또 거꾸로도 읽어보면서 의미 있는 단어들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암호해독이 가능하게 된 것은, 컴퓨터의 발명 때문이다. 컴퓨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 암호가 절대로 해독될 수 없었으니, 바이블코드에는 일종의 시간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던 셈이다. 그는 바이블코드가 하나님께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해독하도록 만드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종말의 때가 다가올 때까지 봉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이블코드 II』에서는 9·11 테러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일이란 지구 최후의 날이다. 2006년에 핵 대학살(그림 2)로 세계대전(그림 3)이 일어나고, 지구가 최후를 맞게 된다는 예언이 바이블코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후의 날”과 “최후의 날에”가 함께 암호화되어 있는 부분에 부시 미대통령과 샤론 이스라엘 총리뿐만 아니라, 아라파트와 바라크 같은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이름이 분명히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들 정치인들의 활동시기인 오늘날이 종말의 때라고 주장한다.(그림 4) 2006년이 지나기 전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예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 남지 않았다. 필자가 원고를 쓰는 이 순간에는 아직 유효하지만, <기독교사상> 독자들이 필자의 마지막 연재물인 이 글을 읽는다면, 이미 이 예언은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더군다나 안타깝게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인 아라파트는 2004년에 세상을 떴다. 그 외에도 2002년에 대공황이 일어날 것이라든지, 2004년에 제2의 9·11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들도 하나같이 빗나갔다.

바이블코드의 결정적인 약점 가운데 하나는, 바이블코드가 사후예언(事後豫言)만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야 그 사건이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는 예언의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시켜주는 반면에,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예측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에는 모음 없이 자음만 있다. 30만 개가 넘는 자음을 등거리 간격으로 읽을 때, 무슨 단어인들 못 만들겠는가! 그러니 과거의 사건들에 얽힌 단어들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하지만 미래는 다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립스와 드로스닌이 코드를 읽어 내려간 성서가 구약 원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사용한 히브리어 성서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제2랍비 성서』이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이 성서의 본문은 여러 개의 사본들을 자료로 삼아 재구성된 본문이다. 이 본문은 오늘날의 가장 권위 있는 구약사본인 11세기의 레닌그라드 사본의 본문이나 10세기의 알레포 사본의 본문과도 다를 뿐만 아니라, 기원전 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쿰란사본의 본문과도 다르다. 드로스닌은 1008년에 쓰인 레닌그라드 사본과 현존하는 히브리 성서가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히브리 성서의 본문은 사본마다 다르며, 오늘날 사용되는 재구성된 본문을 보수적인 유대교 학자들마저도 원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물론 드로스닌은 도망갈 구멍을 마련해 놓았다. 바이블코드는 우리가 2006년에 모두 죽는다는 예언이 아니며, 단지 우리가 미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런 끔찍한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허탈하고 궁색한 변명이다.

암호책이 아니다 II : 다미선교회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종말의 때를 알고자하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20세기말에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이 종말 예언은 1988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주장이었는데, 이 예언은 예수의 “무화과나무 비유”에 근거한다.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새번역》 마가복음 13:28-30

예로부터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한다. 기원전 587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로 히브리 사람들은 2,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나라 없이 지냈다. 마치 겨우내 무화과나무가 죽어있는 것처럼 보였듯이 말이다. 잎이 없었던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긴 겨울잠을 자던 이스라엘이 주권국가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1948년 일어난 이스라엘의 독립이다. 이스라엘이 독립국가가 된 것만 보아도,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인 온 것, 즉 예수의 재림이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종말은 언제 일어날 것인가? 이스라엘이 독립국가가 되고 나서, 40년이 지나기 전에 종말이 올 것이다. 성서에서는 한 세대가 일반적으로 40년이기 때문에 1988년 이전에 종말이 오리라는 예언이다. 물론 1988년에 종말이 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은 혼란을 일으켰던 단체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다미선교회이다. 이 선교회 역시 무화과나무의 비유(막 13:28-30 또는 마 24:32-35)를 종말 날짜 계산의 성서적 근거로 삼는다. 그런데 그들은 한 세대를 약 50년으로 계산하고, 1999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을 근거로 하여, 천지창조 6일을 6천 년의 인류 역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첫 안식일 역시 천 년으로 계산하여, 7천 년째 되는 해부터 천년왕국이 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99년이 인류 역사 6,000년의 마지막이므로, “7년 대환란설”에 근거하여 1999에서 7을 빼면 1992, 즉 1992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또 다니엘 7장 7절과 요한계시록 13장 1절에 나오는 “뿔이 열 개 있는 짐승”은 유럽연합을 가리킨다고 주장하였다.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의 회원국 수는 1986년까지 10개국이었다.) 말하자면, 유럽연합은 오늘날의 로마제국인 것이다. 1991년에 중동에서 걸프전이 발발하여 온 세상에 위기의식과 혼란이 퍼진 것도 시한부 종말론의 확산에 한몫 차지하였다. 그들이 내세운 또 하나의 구절은 고린도전서 15장이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터인데,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새번역》 고린도전서 15:51-52

다미선교회는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것을 휴거와 연관시켰다. 유럽연합의 탄생에 비추어볼 때, 1992년 9월말에 있을 나팔절이 마지막 나팔절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마트리스조약이 1993년에 체결되었으며, 이때 공식명칭도 유럽공동체에서 유럽연합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마지막 때를 가르쳐주시는가? 물론 그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성서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잠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자들도 밤에 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
《새번역》 데살로니가전서 5:4-8

빛의 자녀들에게는 종말이 “도적과 같이 오지 않는다.”(살전 5:4)는 말에 주목하여,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린 사람들”(살전 5:6), 즉 “낮에 속한”(살전 5:8) “빛의 자녀, 낮의 자녀”(살전 5:5)는 종말의 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 24:36)는 예수의 말씀을 이들은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그들은 여기서 아들이 모른다고만 했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그래서 모든 생업과 가정과 재산을 포기하고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휴거가 있었다는 보도를 필자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암호책이 아니다 III : 요한계시록
성서에서 신비한 예언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로 구약의 다니엘과 신약의 요한계시록 같은 묵시문학에 주목한다. 모호한 상징들, 종말의 때를 암시하는 것 같은 구절들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요한계시록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되었다. 첫째는 천년왕국이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고, 둘째는 666이라는 짐승이 가리키는 것이 도대체 누구(또는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다.

전통적으로 666이라는 짐승은 로마제국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된 것도 사실이다. 13세기 이후로, 요한계시록의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교황에 적용하려는 신비적 해석이 유행하였다. 예를 들어, 베네딕트 11세가 666을 상징하는 교황으로 여겨졌다. 그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썼을 때, 그 수의 합이 666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알파벳은 숫자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한 경향은 종교개혁자 루터에게서도 발견된다. 20세기 이후에는 666이 히틀러라든지, 자본주의라든지, 컴퓨터라든지, 유럽연합이라든지 하는 주장들이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다.

천년왕국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 천년 동안의 교회의 역사가 바로 천년왕국이라는 생각에, 기원후 1000년이 가까이 되었을 때, 기독교 세계인 유럽에서는 대대적인 각성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러한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30년 후, 즉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지 1,000년이 되는 해가 가까이 다가오자, 부흥운동이 되살아났다가, 역시 다시 꺼지고 말았다. 중세 사람들은 1260년에 또 다시 천년왕국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1666년에도 이러한 일이 또 한 번 있었다. 한편, 18세기 영국의 수학자이자 성서학자였던 휘스턴(William Whiston)은 1715년에 천년왕국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가 아무 일도 없자, 이를 1734년으로 연기시켰다. 하지만 그 때에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1866으로 백 년 이상 연기시켜버렸다. 천년왕국설은 18세기 독일 경건주의자들 사이에도 유행하였다. 대표적인 경전주의자이자 신약성서 본문비평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벵엘(Johann Albrecht Bengel)은 천년왕국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두 차례에 걸친 천년왕국설을 주장하였다. 첫 번째 천년왕국은 1836년부터 2836년까지이고, 두 번째는 참된 천년왕국으로 2836년부터 3836년까지이다. 3836년에야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John Wesley)는 천년왕국의 도래와 관련하여 벵엘의 시간표에 동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20세기 말에 불었던 종말에 대한 기대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해석들도 신비적 해석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매번 기대되었던 휴거나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서의 기록

성서에서 휴거나 재림이나 종말의 “때”에 대한 예언을 찾으려는 시도, 정확한 날짜를 계산하려는 시도는 성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성서는 『바이블코드』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비한 언어나 천사의 방언으로 기록된 책이 아니다. 누가복음서에는 성서가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도하는 단락이 있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이야기를 엮어내려고 손을 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대로 엮어냈습니다. 그런데 존귀하신 데오빌로님, 나도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았으므로, 각하께 그것을 순서대로 써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각하께서 이미 배우신 일들이 확실한 사실임을 아시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새번역》 누가복음 1:1-4

위의 본문에서 누가복음서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복음서를 저술하였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그가 가장 먼저 밝히는 것은, 자기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예수 이야기들을 엮어냈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누가는 마가복음서 외에도 여러 층의 문서 자료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때마다 각 문서를 기록한 사람들이 이용한 자료는 “전승”이었다. 어떤 신적인 존재가 손으로 직접 건네준 것도 아니고, 입으로 직접 불러준 것을 받아 쓴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건들을 기록한 것도 아니다. 예수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전하여 준 “그들의” 진술들을 엮은 것이다.
천사를 통해서 받아쓰게 한 것도 아니다. 누가는 자신이 자의식이 없는 환각상태에서 복음서를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그는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순서대로 썼다. 즉, 사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정리한 것이 바로 누가복음서이다. 다른 복음서 저자들의 기록도 마찬가지리라.

바울서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각 교회가 처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바울은 각 교회의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쓴 더디오(롬 16:22)는 하나님이나 천사의 음성을 받아쓴 것이 아니라, 바울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썼다. 바울 역시 전승에서 받은 것을 전한다고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렸습니다. 그것은…입니다.”(고전 15:3 이하) 천사의 말이나 예언의 능력, 또 모든 비밀이 사랑만 못하다는 사도 바울의 증언(고전 13:1-2)이 오늘날 우리가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준다.

나가는 글

성서는 특정한 사람들이 골방이나 산 속에서 신비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손으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책이 성서이며, 따라서 성서 안에는 성서 저자들을 둘러싸고 있던 문화와 세계가 들어있다. 또한 그들의 제한된 과학적 지식과 역사관과 당시의 윤리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서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인가?
우리는 성서에서 저자들의 하나님 체험을 발견할 수 있다. 성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기에, 그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인류 역사에 개입하시고, 우주만물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뜻을 기록하였기에,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뿐만 아니라 당신 스스로를 계시하신 결정적인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생생한 계시이며, “말씀”(요 1:1)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을 알게 하며, 그분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밝혀준다. 그러므로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딤전 3:16)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서의 문자들을 우상화하면, 성서는 더 이상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 되어버린다. 문자란 원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상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서의 문자를 절대화한다고 해서 성서의 권위가 살아나고, 상대화한다고 해서 그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말한 것처럼, 성서의 권위는 성서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근원적인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성서 없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겠는가? 오실 그리스도를 예언적으로 증언하는 구약성서와 오신 예수를 경험적으로 증언하는 신약성서는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성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알려주는 책이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책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새번역》 요한복음 20:30-31
 

민경식 l 박사는 연세대학교 신학과(B. A)와 같은 대학원(Th. M)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Dr.theol.)에서 신약성서 본문비평 및 신약성서 사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연세대학교와 감리신학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Die fruheste Uberlieferung des Matthausevangeliums (Berlin/New York:Walter de Gruyter, 2005)가 있다.

글쓴이 / 민경식
 
  

http://www.clsk.org/gisang/index.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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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美 복음주의권 내에 새 목소리..“동성애를 포용해야” 관리자 4188 08-20
107 무신론자는 모두 신을 싫어할까? 대답은 "NO" 관리자 3911 08-14
106 2020년 세계 기독교인구 '26억명'…유럽·미주↓ 亞·아프리카↑ 관리자 4196 07-23
105 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WCC의 타종교 입장’에 대한 비평적 고찰 (2) 관리자 5146 07-21
104 통합총회 “차별금지법, 새 정부 최초 악법 될 수 있다” 관리자 4108 04-12
103 정성진 목사 “WCC 반대하는 건 레드 콤플렉스” 관리자 4743 04-02
102 새 교황 프란치스코, 신학적으론 보수, 경제문제에선 개혁 미선 3984 03-21
101 “세속 성자들 많이 등장하고, 새로운 교회 생태계 만들어 나가야” (1) 미선 4799 11-23
100 한국 신학의 세계화 위한 ‘동서신학포럼’ 창립 (1) 관리자 6154 10-29
99 세계 기독교 양대산맥 WEA-WCC 첫 대화의 장 열렸다 관리자 4179 10-24
98 개신교 주요교단 예장통합, 한기총 탈퇴 미선 5084 09-21
97 “지난 100년… 이슬람은 2배, 무신론은 10배 성장” 관리자 4534 07-18
96 힉스 입자, 창조에 말을 걸다 (3) 관리자 6271 07-14
95 중산층, 사회운동 주체…‘시민신학’ 제기 (1) 관리자 4938 07-01
94 현재의 한국 복음주의 진영을 알 수 있는 좋은 글들 (1) 미선 5652 04-07
93 "기독교인이 가톨릭과 '맞장' 뜨겠다고 했다" 관리자 4972 03-04
92 한국교회 분열의 원인과 연합의 방안 관리자 4832 02-14
91 “개신교 ‘자기보기’ 안 돼” 관리자 4928 12-08
90 "한국교회 부패는 '자기신학' 없기 때문" 관리자 5309 10-29
89 “보수-진보 신학의 주제들, ‘양자택일’ 아니다” (1) 관리자 5546 10-18
88 <뉴스앤조이>가 증발할 뻔 했다! 관리자 9173 09-01
87 예장통합 한기총 탈퇴 운동 본격화 관리자 5281 08-12
86 전세계 교회 분열시키는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 (1) 관리자 6139 07-29
85 英복음주의 거장 존 스토트 목사 타계 (1) 관리자 5907 07-29
84 '새 시대를 위한 새 신학과 설교' 주제로 신학 심포지엄 개최 (1) 관리자 5716 06-21
83 "한국교회 '제2의 종교개혁'해야" (1) 관리자 5922 06-21
82 이형기 바른교회아카데미, "사역자가 권력 되면서 한국교회가 무너졌다" (1) 관리자 5761 05-26
81 한기총 해체가 과연 답인가 관리자 7097 04-09
80 한기총, 왜 리모델링이 아닌 해체인가? 관리자 4831 04-09
79 “한기총은 불필요 악, 개혁 아닌 해체가 답” 관리자 4680 04-05
78 ‘개신교의 사회적 책임’ 평가 표준 만든다 (1) 관리자 5537 03-17
77 개신교 단체들, "한기총이 해체되야 개신교가 산다" (1) 관리자 5293 03-17
76 필립 얀시가 말하는 미국교회의 미래 희망찾기 (1) 미선이 7096 02-21
75 한국교회 신뢰도 또 추락...기윤실 "한국 교회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 관리자 7168 12-15
74 “종교를 배격하는 과학은 맹목적 신앙만큼 惡하다” (1) 관리자 6175 09-04
73 [펌] 미국 복음주의 몰락 (Richard Gamble) (1) 미선이 8061 07-06
72 과학과 신앙, 양립할 수 있다? 없다? (3) 미선이 7858 11-02
71 “기독교 언론, 서클주의에서 벗어나라” (1) 미선이 6186 08-08
70 손봉호 박사 “땅에선 자본주의, 하늘에선 사회주의” (1) 미선이 7400 07-31
69 목사의 원래 자리 찾기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 (1) 미선이 5973 07-20
68 '오방 최흥종 목사' 기념길, "이런 목사라면 길을 내줘도 아깝지 않아!" 미선이 7542 07-13
67 "예배 중 정부 비판하면 소환됩니다!" 미선이 5834 07-06
66 한동대 총학, 노 분향소 설치 반대 '파문' 미선이 5978 06-03
65 김진홍 목사, '盧전대통령 폄훼' 발언 파문 (1) 미선이 6829 05-26
64 몰트만 박사, “하나님의 정의는 자비입니다” 미선이 6790 05-18
63 서구신학 폐해, 동양과 접목으로 극복해야 (1) 미선이 5826 05-06
62 교리 개혁 없이 교회 개혁은 보이지 않는다 미선이 5882 05-01
61 루터와 칼빈과 웨슬레를 버려야 개혁이 보인다! (1) 미선이 6002 04-27
60 부산장신, 배현주 교수 '조건부 복직' 결정 (2) 미선이 7420 04-21
59 TV 속 목사들, 설교인가 쇼인가? (2) 미선이 5985 04-18
58 '교회 타락 시키는 베스트셀러' 쓴 조영엽 박사···'릭 워렌 목사가 교회 … 미선이 6825 04-06
57 미국, ‘기독교 국가’색 점점 옅어지고 있어 미선이 7546 03-27
56 진화론과 종교는 상호보완적 관계 미선이 7009 03-20
55 촛불교회, 용산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비추다 미선이 5967 03-10
54 "나를 태워 어둠 밝히는 교회 세운다!" 미선이 5859 03-02
53 고통의 현장, 촛불예배로 함께 하라 미선이 5964 03-02
52 복음주의 지성들도 '이슬람 포비아' 망령 미선이 6481 02-20
51 용산참사 추모기도회, "당신의 죽음을 막지 못해 죄송합니다" 미선이 5711 01-27
50 한국교회의 죄를 고발합니다 (2) 미선이 6896 01-14
49 복음으로 포장한 '성공주의' (1) 미선이 6407 01-09
48 "나보고 불쌍하대, 지옥 간다고" 미선이 6237 01-05
47 저명 목회자 등, 성탄 맞아 이웃돕기 나서 (1) 미선이 7077 12-27
46 목사여, 신천지에 이렇게 대응하라 (2) 미선이 7289 12-01
45 기윤실, 한국교회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로 나와 (3) 미선이 7087 11-22
44 오바마의 등장, 미국 복음주의자들 ‘시큰둥’ (2) 미선이 6199 11-07
43 “동성애 잘못이지만 동성애자 사랑하자” 미선이 6902 10-18
42 "한국 교회에 창궐하는 사이비 과학" 미선이 7575 10-03
41 개신교 진보진영의 한계? (정강길님 칼럼에 대한 반론) (3) 미선이 7246 09-30
40 뉴스앤조이 사기성 모금, 시민단체에 고발당해 (2) 미선이 7915 09-22
39 창조 과학인가? 창조 신앙인가? 미선이 6953 09-22
38 "사회정의 설교했다면 대형교회는 없었다" (1) 미선이 7024 09-20
37 구교형·정연길 목사, '8·15 촛불행진'서 연행 미선이 7608 08-16
36 예수역사학 상식수준에 왜 흥분하는가? (1) 미선이 6911 07-17
35 손봉호 등 사회 원로 "이제 촛불을 내리시오" 미선이 6650 07-01
34 소득세 내는 목사 "아니 이런 혜택까지!" 미선이 7370 06-27
33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 참관기, 조 목사 영향력...벗어나 성숙한 교회 될 때 미선이 7771 06-13
32 한국교회, 신자유주의에 감염되다 (김종희) 미선이 7061 05-16
31 이명박 정부가 살 길, 미친 소 수입이 아니다 미선이 6099 05-08
30 “인권문제 말하되 올림픽은 존중하자” 교계, 성화 봉송 저지에 우려 미선이 6659 04-27
29 장로 대통령 당선 이후 교회 정치세력화 가속 미선이 6803 04-27
28 대운하 백지화 위한 '기독교행동' 본격 출범 미선이 6169 04-22
27 KBS시사기획 쌈 나신하 기자 인터뷰, "지금 교회 모습 바람직한가" 미선이 7452 04-19
26 이번에는 KBS, '교회의 정치바람' 다룬다 미선이 6306 04-16
25 [좌담]박득훈·백종국이 말하는 개혁연대와 교회 미선이 6782 04-05
24 [단신] 17개 기독 단체, 기독교정당 행보에 제동 미선이 6689 03-28
23 교회개혁실천연대와 웨신대 산학협정 체결 미선이 8188 03-25
22 바알주의, 한국교회를 위협한다 미선이 7744 03-14
21 한미FTA를 저지해야 할 신앙의 이유 미선이 6132 02-13
20 세금 납부가 세속화? 종교개혁 이전 얘기일뿐! 미선이 6938 02-06
19 "한국교회 타락 주범, 맘몬신앙과 기복주의" 미선이 9657 01-24
18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박득훈 목사 인터뷰 미선이 8787 01-20
17 질문 없고 복종만 있는 교회, 청년 등 돌린다 관리자 7660 01-19
16 복음주의 신학의 모순 (김주범) 미선이 7229 01-04
15 개혁적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진보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문법 (구교형) 관리자 7261 12-29
14 복음주의 진영의 통일운동과 그 한계 넘기 정강길 7079 07-06
13 통전적 신학을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정강길 7746 03-14
12 소위 <복음주의>라고 불리는 기독 진영의 한계 (김경재) 정강길 8273 06-06
11 "한국개신교, 무엇이 문제인가?" 정강길 8663 03-02
10 성서, 신비한 암호책이 아니다 (민경식) 관리자 8092 01-30
9 성서, 윤리적이지 않다 (민경식) (1) 관리자 9368 01-07
8 성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민경식) 정강길 9499 12-14
7 [펌] 복음주의와 성경 무오설에 대한 문제 (목창균) 정강길 10094 12-14
6 [펌] 여전도사가 고백한 한국교회의 뿌리깊은 성차별 관리자 8113 11-12
5 [필독] '무조건 믿어라'의 내용에 따른 기독교 분류 정강길 10717 07-02
4 전체 한국 기독교 신앙을 보는 개괄적 이해 (처음 오신 분들은 필독!!) 미선이 15736 04-21
3 문제점 많은 책, 목창균의 『현대신학논쟁』 정강길 8762 07-14
2 [펌] 한국교회의 신학적 정체성 탐구 관리자 9253 06-06
1 복음주의 진영, 어떻게 볼 것인가 (2) 정강길 26638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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