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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공자와 예수, 도올 주장에 대한 반론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1-12-06 12:21 조회(5393)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1/104 




 
"진정한 보편적 윤리명제는 부정태가 아닌 초긍정태"
 
- 도올은 긍정태의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지 않아
 

도올 선생의 중용 내용에 따르면 
보편적 윤리명제는 결코 긍정문일 수 없고 부정문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것은 자기가 아주 크게 알게 된 깨달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는 중용에서 공자의 말과 예수의 말을 아래와 같이 비교한다.
 
공자 :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하지말라'는 부정태)
 
예수 :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 베풀라 ('-하라'는 긍정태)
 
도올은 여기서 긍정태(서양)대한 부정태(동양)의 우위를 말한다.
왜냐하면 정작 내가 원하는 것과 남이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부정문이야말로 보편적 윤리명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도올은 여기서 긍정태의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지 않은 채로 말했었다.
물론 긍정태가 도올의 주장처럼
사랑이나 자비가 상대방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있지만(기존의 보수 기독교 행태들),
그렇지 않고 상대방에게 진정한 도움의 사랑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즉, 타자의 고통, 약자의 고통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나몰라라 할 수 없고 분명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형은 이러한 차원까지도 외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위험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남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계론적 사태에서 아무런 연결관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마치 노자의 무위 사상을
'-하지 않음'으로 해결하려는 그런 식의 이해는 또다른 관념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관건은 긍정태의 이 두 가지 차원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한 해답이 같은 동양철학 분야의 학자인 강신주의 장자 해석에서 이미 나와 있긴 하다.
 
요약하자면, 1) 끊임없이 타자의 고통과 상처의 부름에 항상 자신의 귀를 기울이며 함께 하는 것..
2) 여기에 자신의 오류에 대해선 항상 겸허함을 겸비하는 것.. 
이 차원이 바로 폭력적 사랑도 아니면서 외면하는 사랑도 아닌 경지에 해당된다.
 
타자의 고통과 상처에 대한 부름에서는
분명한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긍정태여야 한다.
 
도올이 제기한 그 문제가 되는 것은 타자가 원하지 않음에도
사랑과 자비의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된다.
그것은 타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사랑으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폭력과 사랑은 한 끗 차이이기도 하다.
 
내가 볼 때 석가의 자비나 예수가 말한 사랑은
분명하게도 타자의 고통과 상처에 대한 부름에서 나오는 것으로 안다.
 
도올은 바로 이 구분을 정당하게 하지 않은 채로
부정태가 오히려 긍정태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리하지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긍정태(타자를 향한 폭력형 사랑) -> 2. 부정태(타자에게 아무 것도 안함) -> 3. 긍정태(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사랑)
 
이때 1의 긍정 차원은 폭력에 해당되지만, 3의 긍정 차원은 폭력이 아닌 사랑에 속한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 1.긍정 차원과 3.긍정 차원은
둘 다 부정형이 아닌 긍정형이기에 서로 혼동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여기서 1단계와 3단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오류를 일컬어 <전초 오류>pre-trans fallacy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전'과 '후'를 혼동하는 오류라고 해서 <전후 오류>pre-post fallacy라고도 한다.
 
3의 긍정은 1의  긍정이 아닌 초긍정태에 해당된다.
결국 부정태의 우위를 언급한 도올의 주장은 <전초 오류>를 범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자기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일방적 사랑, 반성 없는 사랑이 곧 폭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웃한 타자의 고통에도 '-하지 않음'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보편적 윤리 명제는 긍정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핵심 관건은 이웃한 타자의 고통과 상처에 얼마나 민감한 귀를 열어놓고 있느냐이다.
평소에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타자가 자리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오류>와 <비극>에 대한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놓을 때
비로소 타자에게 폭력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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