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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왜 《왜 동양철학인가?》인가    
  글쓴이 : 장동우 날 짜 : 06-11-11 19:40 조회(7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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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 동양철학인가?》인가
 
장동우
 
 
 

책제목 : 《왜 동양철학인가?》

지은이 및 : 한형조 지음, 문학동네, 2000
 
 

우리 앞에는 지금 방금 출판된 어느 동양철학 연구자의 글이 있다. 이 글은 같은 同學으로서 기대와 설레임을 갖게 하는 제목을 지니고 있다. "왜 동양철학인가?" 이 책은 저자가 지금껏 단편적으로 썼던 동양철학과 관련된 많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매 章마다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미덕은, 연구자 스스로가 충분히 내용을 소화하고 쓴 것이기 때문에, 마치 저자와 직접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저자의 이 책은 솔직하다. 아니 순진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만 할 것이 있다. 저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자리에 있고, 또 그래서 저자의 이 글은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의 솔직함과 순진함은 결코 긍정의 대상만은 될 수 없다. 또한 저자의 이 책 자체가 이미 저자가 진지하게 던지는 대화 아닌가? 더군다나 저자는 "왜 동양철학인가?"라는 도전적인 제목을 던지고 있다. 동양철학은 고사하고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위기의 시대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이 "왜?"라는 질문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기대감으로 이 책을 읽게 된다.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런 자문을 하곤 한다. "왜 동양철학을 나는 하고 있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동양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질문이다. 그것은 이 '나'의 존재의미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나는 지금 왜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실존적 의문에 포섭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왜 동양철학인가?"라는 의문을 자신의 저서의 제목으로 삼았을까? 우리는 저자가 선택한 이 제목에 오래 머물러서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그렇게 한다면 어렵지 않게 저자의 책제목에는 "동양철학의 고유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지금 왜 동양철학을 연구하면서 사는가?"라는 질문이 錯綜착종되어 있음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이 표면적으로 명료하고 간결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두 질문이 착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전자의 질문에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너무 쉽게 후자의 질문으로 돌아오고, 또 역으로 후자의 질문에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너무 쉽게 전자의 질문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글이 주는 명료함과 간결함은 표면적인 인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아닌가? 착종된 두 질문은 복잡함을 가중시켜야 하는데, 저자의 글은 오히려 명쾌하고 분명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렇게 비판받을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저자에게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는 왜 지금 동양철학은 연구하면서 사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가슴에 자주 들린 결과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은 삶의 카운셀링이다(p.5). 그래서 저자는 철학의 주요변수는 체계성이나 일관성이 아닌 適實性과 유효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이 공허한 추상이나 독단이 아니라 삶과 적실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자는 체계성과 일관성이 서양철학의 특징이라면 적실성과 유효성은 동양철학의 특징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는 것이다.

"동양철학 또한 체험적 진실을 통한 삶의 조언과 경구로서 내게 다가왔다. 동양철학은 머리로 말하지 않고 가슴으로 말하며, 객관적 추상적 진리가 아니라 주관적 구체적 진실을 전해주고 있었다."(p.6)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있어 '구체성'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지금 '존재'라는 말에서 여기 있는 하나의 꽃을 연역해낼 수는 없지만, 여기 있는 하나의 꽃에서 '존재'라는 말을 추상화할 수는 있다는 점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관적 구체적 진실이 우리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의미 있으려면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규정이 매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규정이 배제된 구체적 현실이 주관적 감상이나 편견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겠는가? 적실성과 유효함은 철학이 지닌 체계성과 일관성이 어떤 구체적 사태를 적절하고 유효하게 규정하였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저자가 적실성과 유효함만을 동양철학의 정신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저자가 그토록 비판하는 "동양철학의 신비주의"(p.7)와 어떻게 구별될 수 있겠는가?

이런 우리의 비판을 예상해서였을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사색을 진행한다.

"인간의 의미와 목표는 세속적 가치와 관행의 저편에 있다는 생각은 유교만의 독창은 아니다. 그것은 東西의 현자들이 공히 동의하는 바이다. 老莊과 佛敎의 동양철학은 물론, 소크라테스 이래의 그리스적 전통과 로마의 스토아, 그리고 중세 기독교의 근본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본과 소유와 탐욕의 쾌락주의를 반대한 스피노자, 칸트, 소로와 슈바이처의 주지이기도 하다."(p.238)

그런데 이 구절에서 철학은 삶의 카운셀링이라고 말한 저자의 주장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카운셀링의 논점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의미와 목표가 세속적 가치와 관행의 저편에 있다는 생각을 지닌 카운셀러가 도대체 고민하는 來訪者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는가? 저자는 앞에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애써 구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구분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위의 언급은 그 구분 자체를 스스로 해소시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저자에게는 동양철학 혹은 서양철학이라는 구별이 있는가 없는가? 아니면 저자는 "왜 동양철학인가?"라는 착종된 질문의 전자의 측면, "동양철학의 고유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다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려고 한다.

"유교와 불교, 노장은 공히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실현을 감시하는 '자기 안의 입법자'와 화해하는 법을 가르친다. 사람들은 爲人, 즉 밖을 향해 헐떡거리느라, 이 자기 안의 존재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 존재는 우리의 오랜 습성인 타자적 습관으로 인해 곧 바로 선명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려는 주시와 반성이 필요하다."(p.240)

저자는 동양철학 일반을 본질주의적으로 讀解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자기 안의 입법자와 현상적 자아'로 분열되어 갈등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의 실존적 삶이 불안한 이유는 오직 이 '자기 안의 입법자=나의 본질'과 화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근원적이고 실존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내 속에는 나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자기'"(p.240)와 화해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동양철학의 정의는 《성경》에 나오는 방황하다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편안해 하는 탕아와 무엇이 다른가? 이 입법자와 화해하던가 아니면 계속 불안하던가? 저자에 따르면 이것이 동양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우리는 이 입법자와 화해했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불안의 해소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것이 新儒學에서 그리도 강조했던 '즐거움, 혹은 樂'의 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즐거움'은 결국 '나의 본질'에 대한 나 자신의 복종에서 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저자가 "단 하나의 조건이라면 자신과 관계하고 동시에 타자와 관계하는 인간 조건이 있을 뿐"(p.240)이라고 말했을 때, 본질적으로 저자에게는 타자와의 관계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단지 나와 나 자신의 본질 사이의 관계가 外化된 형태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에게 있어 나와 본질 사이의 관계는 영웅적 기획이고, 철저한 개인주의적 기획이다.(p.240)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삶을 둘러싼 외면적 영향력을 궁극적으로 無化시키고 내면성의 자발성에 전적인 힘과 책임을 부여한 철저한 개인주의의 기획이다."

삶이란 결국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고, 이런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즐거움과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타자와의 관계를 전적으로 내면적 자기 관계로 환원하고 있다. 결국 이런 자기 관계를 통해 확보되는 타자와의 관계는 우연적이고 비본질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란 결국에는 자기 관계의 투사이고, 나아가 설정된 진정한 자기 본질이 실현되는 장소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미와 존재를 '자신의 밖에서' 추상적으로 찾으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 日常은 곧 聖事이다."(p.243)

우리는 저자가 역설하는 '주관적인 진실, 구체적인 진실'의 실상을 이제야 알게 된다. 그에게 있어 구체성이란 聖事의 핵심인 '자기의 본질'이 타자의 일상적 관계에 철저하게 실현되는 것에 다름 아니게 된다. 결국 저자에게서도 철학은 카운셀링 이상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저자에게서 明道가 말한 "길 쓸고 물 뿌리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적인 것이다"라는 言說이 다시 반복됨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면 욕망을 추구하고 이익을 다투고 사람을 죽이는 현실은 어디로 간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자기 관계, 혹은 자기의 본질과의 극적이고 영웅적인 확인으로 해소될 성질의 것인가?

결국 저자의 현실은 두 가지로 나누어지게 된다. 인간의 본질에 부합되는 현실과 그렇지 않은 현실로 말이다. 이것은 이상과 현실이라는 도식에 다름 아니다. 어느 노인네의 신세 타령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당숙을 회고하면서 "유교는 이제 없다"고 단언한다.(p.228) 그러나 또 그는 이 당숙의 한탄을 되풀이하고 있다.

"절개와 지조를 강아지가 부끄럽게 바꾸고 현실의 이익과 권세를 위해 영혼을 파는 사람들이 널부러진 세상에서 義를 위해 목숨을 놓은 사람들이 그토록 비난받아야 할까. 나는 그들이 무장무장 그립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이 궁핍의 시대에 나는 그들의 타협없는 비현실주의를 빛과 소금으로 기린다."(p.232)

저자는 한편으로는 현재 시대에 동양철학이 없음을 인정하지만, 또 한편으로 동양철학이 지니고 있던 종교적 자기 확신을 기억하고 있다. 결국 카운셀링으로서의 철학은 비현실주의적인 독단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비현실주의를 그리워하는 저자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그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책의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고백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금, 시간이란 길 위에서의 설레임이고, 산다는 것이 결국은 나를 향해 돌아오는 도정이라는 생각만이 또렷하다."(p.9)

내면 속에서 동양철학의 고유성과 서양철학의 고유성은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저자에게 이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은 그 고유성에서 사유되기보다는 관조되는 풍경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거듭 동양철학의 고유성을 역설하고 있다.

"한 사상이나 철학은 기존의 사유와의 대결과 착종에서 형성되지만 그 바탕에는 실존적 경험이나 사회적 요청이 깔려 있다. … 그 동안 동양철학은 텍스트가 갖는 經典的, 즉 절대적 초시간적 권위에 눌려 이 측면을 유의하고 탐색하는 데 소홀했다."(p.30)

그러나 곧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孔子를 위시한 유교적 사유의 토대를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표'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으로부터 유학은 시작된다."(p.235)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은 철학적 물음 중 가장 평범하지만 포괄적인 물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자. 여기에 무슨 구체적인 실존적 경험이나 사회적 요청이 있는가? 오히려 그냥 동양철학의 경전들은 모두 이런 근원적 물음에 대한 모색의 여정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구별이 사라진 저자에게는 이제 "나는 지금 왜 동양철학을 연구하면서 사는가?"라는 후자의 질문만 남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동양철학은 이제 철학 일반에 규정된 하나의 양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질문은 이제 "나는 지금 왜 철학을 연구하면서 사는가?"라는 일반적 물음으로 물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철학은 기존의 사유와 대결과 착종으로 형성되고 또 실존적이고 사회적인 요청에 대한 답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이런 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저자는 한국에서의 철학함, 특히 동양철학 연구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비판하고 있다. "근대 이후 동양철학은 자생적 학문의 주체성을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은 애당초 변명과 저항으로 시작했던 것이다."(p.16) 이어지는 곳에서(p.17) 그는 현재 우리 나라 내의 동양철학 연구의 성격을 냉정하게 규정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 동안 동양철학은 주문이나 다라니 같은 비전의 언사들을 논문이라는 형식성의 비호 아래 학문의 이름으로 통용시켜왔다. 이 시대착오적인 태만으로 하여 동양철학은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p.19)

중요한 것은 시대착오적 태만이라는 저자의 지적이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동양철학의 연구자가 실존적이고 사회적 요청에 무관심했다는 말일까? 그러나 이것은 동양철학을 팔아먹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우리는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동양철학은 특히 대중에게 어필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다행, 수요는 줄지 않았다."(p.21)

결국 저자의 권고에 따르면 동양철학은 영원히 자생적 학문의 주체성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단지 쉬운 언어로 값싼 교양을 제공하는 문화상품으로 전략하는 길 이외에 동양철학이 가야할 길은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계속 "나를 향해 돌아오는 道程"이라는 자기 본질과의 화해를 강조하고, 옛 동양의 哲人들의 타협 없는 비현실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저자가 "왜 동양철학인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만족스럽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여전히 떨쳐 버릴 수 없게 된다.

장동우 / 인하대 강사.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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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 한형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교수. 59년 출생.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율곡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주희에서 정약용으로》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등의 저서가 있다.
 
 2002-09-29 17: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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