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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연과 신과 인간, 그리고 근대 학문의 탄생    
  글쓴이 : 이현휘 날 짜 : 06-10-08 21:58 조회(772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1/13 
  FILE #1 : NovumOrganum.hwp (28.8K), Down:9, 2006-10-08 21:59:04



프랜시스 베이컨, 진석용 역, 『신기관: 자연의 해석과 인간의 자연 지배에 관한 잠언』(한길사)
 
 
이 현 휘
 
 

중세 신학의 논리적 근간을 이루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기관』(Organum)을 근원적으로 대체하면서 근대의 여명에 부응하는 학문 방법을 새롭게 제시해 보겠다는 명시적인 의도 하에 집필된 베이컨(F. Bacon, 1561-1626)의『신기관』(Novum Organum)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선 인간 '사변'(speculation)을 극단으로 불신하는 베이컨의 관점이 다양한 예증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는데, 유명한 네 가지 '우상'(종족, 동굴, 시장, 극장)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진 곳 또한 여기였다. 후반부에선 인간 '사변'을 철저히 배제한 것으로 간주된 순수 '관찰 데이터'에 입각해서 베이컨이 의도한 새로운 학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근대 경험론의 효시를 이룬 이른바 '귀납법'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면 베이컨이 인간 '사변'을 그처럼 극단으로 불신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한 그 불신의 대안으로 순수 '관찰 데이터'를 상정하고, 오직 그것만을 '귀납법'의 진정한 기초로서 간주했던 까닭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는 것인가? 근대의 여명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학문이란 오늘날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나는 한 마리의 이(Laus)를 해부하여 신의 섭리를 입증해 보이겠다'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궁극적으로 '신에 이르는 길'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신의 섭리는 자연이라고 하는 신의 피조물을 진지하게 탐구해 나갈 경우 가까스로 추량(推量)해 낼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의 섭리를 희구하는 탐구는 중세이래 보편적으로 채용되어왔던 방법, 즉 인간의 '사변'에 기반한 철학적 방법을 통해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으며, 대신 신의 피조물과 직접 대면한 자연과학적 방법이 유력한 대안으로서 선호되었다. 전자는 결국 인간적인 한계에 구속될 수 밖에 없는 반면, 후자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당대의 자연과학적 경험주의란 '자연 속의 신'을 찾아낼 수 있는 일종의 금욕 실천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근대 학문의 태동 배경을 상기와 같이 이해할 때 우리는 베이컨의 다음과 같은 언명들이 의미하는 바 또한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성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약하거나 비상하지 못하도록 안정추(安定錘)를 달아주어야 한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인간의 지성 안에 세계의 모형을 세우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세계를 주도 면밀하게 해부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철학적 공상으로 날조해 놓은 어리석은, 말하자면 원숭이 흉내를 낸 세계의 모상(模像)부터 철저히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인간 정신의 우상이 신의 이데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전자는 완전히 추상의 산물에 불과한 반면 후자는 진실의 정교한 선으로서 질료에 확실하게 표시해 놓은 창조주의 진정한 인장(印章)이다..."
 
이후 근대 학문은 대체로 베이컨이 제시한 비전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고대사 연구는 사실 상상력을 어떻게 억제하느냐는 것이 오히려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국내 학자가 집필한 역사책의 서문에서 필자가 우연히 확인하게 된 구절인데, 이는 우리의 역사 연구가 여전히 베이컨의 영향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변'(상상력)을 극단으로 배제한 채 진행되는 연구는 예컨대 코끼리 '다리'를 보고서 코끼리가 '다리'처럼 생겼다고만 이야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코끼리 '다리'의 관찰을 기초로 해서 코끼리 '전체'의 형상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통제된 인간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동원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좁게 분획(分劃)된 탐구 영역에 한정해서 인간의 '상상력'을 극도로 억제한 채 추구되어 온 근대 학문의 위기의 요체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석용 교수님의 명료한 번역으로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까워진 베이컨과 함께 우리 시대의 학문과 우리 시대의 과제를 진지하게 숙고해야만 할 때이다. <월간 하늘북>, 2/8(2001. 11.), pp. 39-40. 
 

 2002-03-25 04: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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