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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레비나스를 아시나요?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10-08 21:25 조회(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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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얼굴 (번역:문성원-부산대학교 교수)

타자의 얼굴 Le Visage de l'autre


머리말

자크 본니오 드 뤼셀레 Jacques Bonniot de Ruisselet


맨 먼저 회상되는 것을 얘기하자면, 그건 한 이름에 대한 기억, 어느 철학 수업 시간에 헤매다가 주워들은, 엠마뉴엘 레비나스라는 이름에 대한 기억일 겁니다. 역시 수수께끼 같던 <전체성과 무한>이라는 책이름도 기억이 납니다. 꽤 신비스러워 보이던 이름, 처음엔 마치 중복된 표현처럼 울리던 그 이름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제게는 오랫동안 레비나스가 이 독창적인 책의 저자였습니다-- 저는 그 책이름에서 화해할 수 없는 양자택일의 용어들을 판독해내게 되었습니다. 전체성이냐 아니면 무한이냐, 그걸 선택해야 했던 겁니다.

전체성, 그것은 말하자면 세계화에 해당합니다. 한 철학이 현실의 전체에 관해 문을 닫아거는 가능성, 한 인간이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들을 총괄하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무한, 그것은 거꾸로 그렇게 닫아거는 일이 불가능함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타자와 만난다는 데 있습니다. 그 타자는 내가 그에 대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생각들을 도처에서 넘어서며, 스스로를 어떤 지식 속에 가두어 놓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사는 전체성의 길을 탐색해 왔습니다. 제가 볼 때, 레비나스는 전혀 다른 길을, 즉 무한으로 열린 길을 헤쳐나가려 했습니다. 미지의 애매한 무한으로가 아니라, 타자와의 진실한 만남이 열어놓는 그런 무한으로 열린 길을 말입니다.

한 책을 통한 이 최초의 만남에서 저를 경탄케 했던 것은, 형이상학이--이 형이상학이라는 용어는 그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등장하는데요--소원하고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것들, 좀 신비스러운 어떤 것들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다른 인간과의 만남이라는 단순성 가운데에서 일어난다는 발견이었습니다. 철학이 말하는 것은 언제이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 행해집니다. 눈길이 닿는 범위 내에서, 공모의 몸짓이건 공격의 몸짓이건, 환영의 몸짓이건 거부의 몸짓이건, 몸짓이 닿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한편, 모든 일은 타자가 나의 세계에, 나의 삶에 침입하는 데서부터 일어납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첫 번째로 다가오는 것은 형이상학이 아니가 윤리가 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그것을 행할 나의 권리에 대한 질문이 모든 이론적인 질문과 이해를 추구하는 질문에 앞섭니다.

타인과 직면한 나는 이제 더 이상 세계의 단순한 구경꾼이 아닙니다. 언제나 한번뿐인 타자와의 이 만남에서, 아무런 무기도 갖지 않은 채 우리가 대항할 수 없게 하는 한 얼굴의 이 나타남에서, 본질적인 것, 절대적인 것이 일어납니다.

나는 매번 내가 세계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내가 깨닫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타자입니다.

내가 세계에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세계가 단순히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 즉 나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세계는 내가 세계를 제공하는 한에서만, 세계를 타자와 나누어 쓰는 한에서만 세계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레비나스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는 "빈손으로" 타자의 얼굴에 다가갈 수가, 타자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얼굴, 시선, 목소리는 단순히 세계 속에 놓인, 이를테면 문과 테이블 사이의 어떤 자리에 놓인 그런 '사물들'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것은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를 중지시키고 그 관계에 대해 묻고 그 관계를 전복시키는 사건들입니다.

오랫동안 레비나스는 제게 한 권의 책, <전체성과 무한>의 저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교수로서, 강연자로서 제게 나타났습니다. 있을 법하지 않게도 제가 레비나스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1905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남자, 여러 혁명과 전쟁, 그리고 학살을 거쳐온 사람, 상처를 입었으나 무사했고, 훗설과 하이데거에게서 배웠지만,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와 바이블과 탈무드를 읽었던 사람, 프와티에와 낭테르에서, 그리고 소르본에서 교수를 지낸 사람. 이 사람을 이번에는 제가 '실제로' 직접 만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제 기억 속에선 언제나 미소짓고 있는 가냘픈 목소리의 이 자그맣고 친절한 인물과, 제게 큰 반향을 미쳤던 한 권의 까다로운 책을--즉 철학에 대한, 세계에 대한, 타자들에 대한, 또 이 타자와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에 대한 저의 이해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던 그 엄정한 책을-- 연결짓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레비나스가 이해했던 대로의 욕망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면 좋을 것입니다. 모든 욕구나 모든 결핍을 넘어서서, 그 어떤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 그 무엇도 내게 미리 그려 놓지 못한, 그리고 나에게 전혀 결핍되지 않은 어떤 것, 그러나 그것의 침입이 야기한 놀람 때문에 모든 것이 뒤집어지고 모든 것이 다시 문제가 되는 그 어떤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 만일 이와 같은 사건이 없다면, 어찌 진정한 만남이, 진정한 타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끝으로 그와 나눈 유일한 것이자 마지막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어떤 강연이 끝났을 때 제가 던진 한 질문에 대해서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 만남의 흔적인 녹음 테이프는 하필이면 맨 마지막에 저의 질문만 담고 있는 것일까요?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을 그의 응답은 아쉽게도 녹음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귀에는 죽음에 대한 그의 정의(定義)가--정의 내리는 일이 문제라면 말이지요-- 들려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 그것은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엠마뉴엘 레비나스는 더 이상 우리에게 응답하지 못하겠지요. 그는 1995년 성탄절에 눈을 감았습니다. 유태 신앙을 지녔음을 표명했으며, '신인(神人)'의 문제에 대해 엄정하면서도 호의적으로 질문을 제기했던 사람, 그리고 이 강생(降生)의 이념에서 대속(代贖)이라는 자신의 개념을 재발견했던 사람, 이 사람에게는 그것이 참 묘한 최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타자의 응답이며, 타자를 위한 응답입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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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스스로 꿈을 꿉니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L'existence se r ve elle-m me.
C'est parce qu'elle soup onne
qu'elle se r ve, qu'elle se r veille.

환상의 힘은 단순히 생각을 미혹(迷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에서
벌어지는 놀이입니다.
Le pouvoir d'illusion n'est pas
un simple garement de la pens e,
mais un jeu dans l' tre m me.

신에 홀린다는 것, 그 감격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고독한 내면의 생각이 끝나고 새로운 참된 경험이 시작됨을
뜻합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욕망이었던 것입니다.
La possession par un dieu--l'enthousiasme--n'est pas l'irrationel,
mais la fin de la pens e solitaire ou int rieure, d but d'une vrai
exp rience du nouveau--d j d sir.

형이상학적 욕망은 선(善)과 같습니다--그 욕망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집니다.
Le d sir m taphysique est comme la bont --le D sir ne le comble pas,
mais le creuse.

욕망은 이미 행복한 존재에 있는 것입니다:
욕망은 행복이 갖는 불행이요, 사치스러운 필요입니다.
Le D sir est d sir dans l' tre d j heureux:
le d sir est le malheur de l'heureux, un besoin luxueux.

욕망하는 존재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욕망의 대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그 욕망은 절대적입니다.
Le d sir est absolu si l' tre d sirant
est mortel et le D sir , invisible.

얼굴을 보십시오, 그것은 세계의 말(發話)입니다.
Voir le visage, c'est parler du monde.

말한다는 것, 그것은 세계를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Parler, c'est rendre le monde commun.

얼굴은 감각적인 것을 파열(破裂)시킵니다.
Le visage d chire le sensible.

나는 얼굴이 없는 신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표현에, 신의 계시(啓示)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Je ne lutte pas avec un dieu sans visage,
mais r ponds son expression, sa r v lation.

신성(神性)의 차원은 인간의 얼굴에서부터 열립니다.
La dimension du divin s'ouvre partir du visage humain.

얼굴의 초월은 세계 밖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La transcendance du visage ne se joue pas hor du monde.

양심은 타인을 맞아들입니다. 양심은 나의 권력에 대한 저항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저항은 더 큰 힘으로 나의 권력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저항은 내 권력이 내세우는 순진한 권리를 문제삼는 것이며,
살아 있는 나의 교만한 자생성(自生性)을 문제삼는 것입니다.
La conscience morale accueille autrui. C'est la r v lation d'une
r sistance mes pouvoirs qui ne les met pas, comme une force
plus grande, en chec, mais qui met en question le droit naif de
mes pouvoirs, ma glorieuse spontan it de vivant.

세상에 존재하면서
나는 누군가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습니까?
Est-ce qu'en tant
au monde, je ne prends pas
la place de quelqu'un?

나를 문제삼는 것, 이것은 얼굴에서 타인이
나타남을 보는 것과 겹치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언어라고 부릅니다.
La mise en question de moi, coextensive
de la manifestation d'Autrui dans le visage
nous l'appelons langage.

타인의 현존(現存)에 의해
나의 자생성을 문제삼는 것,
이것을 윤리라고 합니다.
On appelle cette mise en question
de ma spontan it par la pr sence
d'Autrui, thique.

언어에서 본질적인 것:
드러내는 자와 얼굴에 드러내지는 것이
합치하는 것.
L'essentiel du langage:
la coincidence du r v lateur
et du r v l dans le visage.


쳐다보는 나를 쳐다보는
얼굴에서 이미 나타난 말--이것이
계시(啓示)의 으뜸가는 솔직함을 보여줍니다.
La parole qui pointe d j dans le visage
qui me regarde regarder--introduit
la franchise premi re de la r v lation.


내가 타인을 향하면서 탐욕스런 시선을 거둘 수 있으려면
그 향함이 타자에게 빈손으로 다가갈 수 없는
관대함이 되어야 합니다.
Mon orientation vers Autrui ne peut perdre
l'avidit du regard qu'en se muant en g n rosit ,
incapable d'aborder l'autre les mains vides.


가리키는 행동은
사물들을 타인의 관점에
놓는 것입니다.
L'acte de d signer
place les choses dans
la perspective d'autrui.


얼굴을 맞대는 것이 언어의 토대입니다.
Le face- -face fonde le langage.



대화에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을 우리는 정의라고 부릅니다.
Nous appelons justice cet abord de face, dans le discours.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라는 원리를 제한한 결과가 사회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인간은 인간을 '위해' 있다는 원리를
제한한 결과가 사회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Il est extr mement important de savoir si la soci t est le r sultat
d'une limitation du principe que l'homme est un loup pour l'homme,
ou si au contraire elle r sulte d'une limitation du principe
que l'homme est pour l'homme.


얼굴이 얼굴로서 드러나면
인간성이 열립니다.
L'epiphanie du visage
comme visage ouvre l'humanit .


의지에는 책임을 자신이 원하는 의미로 떠맡을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는 없습니다. 얼굴이 보여주는
의미화된 세계를 외면할 자유는 없습니다. 얼굴을 맞아들이는 가운데
의지는 이성을 향해 열립니다.
La volont est libre d'assumer sa responsabilit dans le sens qu'elle
voudra, elle n'est pas libre de refuser cette responsibilit elle-m me,
elle n'est pas libre d'ignorer le monde sens o le visage l'a introduite.
Dans l'accueil du visage, la volont s'ouvre la raison.


이성의 본질은 인간에게 어떤 기초나 권력을 보장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성의 본질은 인간을 문제로 삼으며 인간을 정의(正義)로 초대하는 데
있습니다.
L'essence de la raison ne consiste pas assure l'homme
un fondement et des pouvoirs, mais le mettre en question
et l'inviter la justice.


사랑은 타자성과 맺는 관계, 신비와 맺는 관계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미래와 맺는
관계, 모든 것이 거기 있는 세계에서 결코 거기 있지 않은 것과 맺는 관계입니다.
ros est la relation avec l'alt rit , avec le myst re, c'est- -dire avec
l'avenir, avec ce qui, dans un monde o tout est l , n'est jamais l .


인간의 업적들은 모두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인간 존재는 곧 그 자리를 비웁니다.
Les oeuvres de l'homme ont toutes un sens,
mais l' tre humain s'en absente aussit t.


'나'는 언제나 모든 타자들보다 '더 많은' 책임을 갖습니다.
Le moi a toujours une responsibilit de plus que tous les autres.
2001-12-13 20:37:50
라크리매 (10-01-21 00:44)
 
작년에 타자와 시간이라는 책을 통해서 레비나스를 알게 됬는데 이곳에도 글이 있었군요
그의 사유가 이성적이면서도 낭만적으로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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