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01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01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화이트헤드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켄 윌버(Ken Wilber)
불교와 심리학
학술번역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299
어제 846
최대 4,780
전체 2,045,614



    제 목 :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에 빠진 들뢰즈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5-01 22:43 조회(1232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1/3 
  FILE #1 : whitehead&deleuze.hwp (80.7K), Down:60, 2006-05-01 22:43:32


* 2006년 연세대에서 있었던 화이트헤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셨던 김영진님과도
들뢰즈가 화이트헤드를 넘어서지 못했던 지점들에 대해 얘기들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올린 파일이지만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라며,
가능하면 화일을 다운로드 하셔서 각주까지 보시는 게 좋을 듯 하네염..^^;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에 빠진 들뢰즈
 
혹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들뢰즈적 영화읽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진경의 "들뢰즈: 사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을 중심으로-
 
 
 
 
<차례>
 
 
Ⅰ. 들어가며
 
Ⅱ. 몸말
 1. 화이트헤드 철학의 몇 가지 개념들
 2. 이진경의 "들뢰즈: 사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에 나타난 들뢰즈 비판
 
Ⅲ. 나오며
 
 
2001-09-22 09:53:31    573 
  
정강길 (06-07-14 03:34)
 
들뢰즈적 모순

부유하는 노마드를 선호하는 들뢰즈안들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의 정치를 역설한다.. 그것은 기존의 수직적 가치들을 수평적인 것으로 전복하고자 하는 모든 탈주선들에 유쾌함을 부여하는 작업들이다.. 이들은 지배하는 자본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그 외부적 감행을 창조적으로 열어놓는 데에 힘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적 행보들은 노동자 계급을 포함한 세계 안의 밑바닥 사람들이나 소수자 정치를 위해서도 도움을 주고 있는가? 내가 보기엔 “그렇다”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만일 이해관계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이 들뢰즈의 사상을 교본으로 삼고자 할 경우 이들은 오히려 분명하게도 프롤레타리아에게서조차 탈주선을 의도하고자 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은밀할 이유도 없다.. 그야말로 그것은 노골적인 횡단이어도 들뢰즈안들은 찍소리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심화가 거세된 리좀적 세계를 지향함으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는 노마디즘의 불가피한 모순에 해당한다..

또한 들뢰즈의 철학이 실은 유물론적 형이상학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포스트구조주의와 매우 친화성을 띠는 맥락도 바로 여기에 있다(어떤 이는 푸코와 데리다를 버무려놓으면 들뢰즈가 나오기도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래서 이 모순은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자들(주로 들뢰즈안들인데 재밌게도 들뢰즈는 그 자신을 맑시스트로 고백한 바 있음)이 실제로 노동자 중심의 정통 맑스주의자들에게 번번히 논쟁에서 얻어터지는 빌미들을 제공하기도 일쑤였던 것이다.. 얼마 전에도 맑스꼬뮤날레 당시 조정환은 당시 청중들에게서 거의 비웃음에 가까운 야유소리까지 받기도 했었다.. 물론 몇몇 긍정적인 부분들 이를테면 맑스의 노동가치설을 위협하는 비물질적 노동에 대한 강조 등은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엔 맑스나 들뢰즈나 근원적인 해결은 못주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독교와 관련해서 볼 때도 이들에게서 신을 말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가? 그저 신이 아닌 <신 담론>에 지나지 않을 뿐인가.. 즉, 소수자들을 위한 의미 부여로서의 신 담론 말이다.. 내가 보기에 신학과 들뢰즈 사상과의 관계를 말한다면, 이는 맑스주의와의 관계와 마찬가지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 관계란 사회적 실천 안에서만 합의를 맛보는 영원한 평행선적 관계를 말한다.. 그런 신은 오로지 프락시스의 시녀일 뿐이다.. 물론 그걸로서 만족한다면야 자유지만..

일찍이 앨런 소칼의 폭로성 정치적 글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도 했었지만,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지적만행들을 일일이 열거해서 뭣하랴, 들뢰지안도 내가 보기엔 어느 정도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 테면 ‘역량’이라고 써도 될 말을 굳이 어렵고도 낯선 표현으로 들리는 ‘역능’이라고 쓰는 이유는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무지한 대중들에 대한 지적 과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역능은 역량이라고 바꿔써도 되는 말이며, 그것은 들뢰즈 사상만의 유별난 독특성을 담고 있는 기술적 용어도 아닌다.. 물론 탈주(도주)나 기계 뭐 그런 말은 자신의 의미가 함축적으로 부여되어 있기에 이해한다만..

또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자들이 말할 때의 그 민중은 일단은 people이다.. 주체 지양의 과정에 있는 소수자는 내가 볼 때 자각인에 가깝다.. 들뢰즈가 말하는 주체는 '위로 상승하는 자'로서의 주체다(주름).. 하지만 들뢰즈안들의 소수자와 내가 말하는 자각인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결국은 중심화의 여부 문제다.. 아나키적 사태에서 모든 자율성들이 정합성을 가질 때, 그것은 소멸되는 것이자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할 뿐이다.. 진정한 중심화는 결코 다양성 및 자율성들과 배리되지 않는다..

세계 안의 온갖 창조적 생성들과 실험들에 빛나는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는 들뢰즈의 사상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혹하고 넘어갈런진 모르나 그것은 단지 거기에 그칠 뿐이다.. 그 이상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의미를 둘러싼 정치 역학상의 교전들이 있을 뿐..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권력확보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곧 민주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 아마도 나의 이런 얘기는 들뢰즈에게서조차 노마드적으로 사고하고 탈영토화를 구축하려는 자의 언급일지도 모를 일.. 바야흐로 새로운 도주선은 들뢰즈 그 자신마저도 균열을 내버리는 위협적인 칼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강길 (06-11-08 01:33)
 
김광현님과의 토론
(2001-11-13 11:45 - 2001-11-23 14:03)


김광현 wrote:
>저도 전에는 이정우, 이진경의 글을 보고 들뢰즈가 근대적인 물질 개념을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다른 글들을 접하면서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분명히 <의미와 논리> 2계열에서는 사건을 스토아 학파의 '비물체적인 효과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들뢰즈의 생각은 아닙니다.
><의미의 논리> 22-25계열을 보면 사건이 물체들의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반효과"임, 즉 물체가 사건으로 구성됨을 분명히 말하고 있거든요.
>
>들뢰즈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이정우와 이진경이라는 들뢰즈에 관한 전문가인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철학자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의 글보다는 서동욱이 쓴 <차이와 타자>라는 책이 들뢰즈나 그 외 그쪽 철학자들에 대해 더 잘 전달해 주는 것 같습니다.
>
>그 책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무전제에서 출발하고자 하는 들뢰즈 철학은 '사건이 있다'라는 명제로 표현될 이 익명의 거대한 사건 덩어리를 결국 더 이상 임의적인 전제로서 제거할 수 없는 최종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다."(<차이와 타자>244쪽,서동욱,문학과지성사)
>이 말은 화이트헤드가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를 벗어나서 만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실재과 과정이었던 것과 유사한 결론이라 생각됩니다.
>
>제가 아직 위의 결론을 확신있게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지만, 님도 이정우 이진경을 벗어나서 들뢰즈를 살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김광현님의 이 글은 아주 오래전에 철학아카데미에서 올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땐 그냥 틈이 없어서 걍 읽고만 지나가버렸는데..

암튼 늦게나마 화이트헤드에 관심있는 분을 제 홈피에서 뵙게되서
반갑습니다...

제가 보는 들뢰즈는 다른 게 아닙니다..
김광현님이 지적하셨듯이.. 들뢰즈 철학은 일관성이 없다는 거죠...
<의미의 논리>안에서조차 상반된 주장을 하는 판국인데..

<주름>이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보면 잘도 화이트헤드를 들먹이며
갖다 붙인답니다.. 그의 철학은 <접붙임의 철학>이지 일관성이 있는
기술의 철학은 못된다고 봅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우주론>에 대한 고찰을 들뢰즈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그가 말하는 형이상학은 전통적 의미의 <형이상학>이 아닌
<형이상학적 표면학> 혹은 <선험적 객관론>에 해당할 뿐임다..

김광현님 말씀대로 들뢰즈에게서 <구체적 실재>라는 것이
<익명의 거대한 사건 덩어리>라고 할 경우 이것은 <현실적 존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 것인지
아니면 궁극자의 범주에 해당하는 화이트헤드의 <창조성>에 유비되는 것으로 보는 것인지
설명이 더 필요하리라 여겨집니다...

아무튼 제가 보는 들뢰즈는 그 자신의 철학이 <생성>을 말하나 그는 단지 <생성>을 강조할 뿐이며.
<있음(존재)>의 흔적을 완죤히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과도 상관됩니다..
그 자신이 <유기체>라는 용어보다 물질이라는 용어와 뚜렷하게 친화적이었다는
사실만 짐작 하더라도 들뢰즈가 화이트헤드의 사상과 흡사하다거나 그의 사상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꺼 같지 않을까 싶슴다..

문창옥 선생님이 최근에 제게 'process study'학술지에
들뢰즈와 화이트헤드를 비교연구한 논문이 실렸다고 하더군여..
참고로 그 글 역시 들뢰즈와 화이트헤드는 다르다고 보며 결국은 들뢰즈를
사건의 철학, 생성의 철학자로 보긴 어렵다고 결론짓고 있는 글이라고 하더군여..

만약 일찌감치 들뢰즈가 그 자신의 우주론을 그 자신의 창조적 용어로써
구상하거나 거기에 대한 정립이 제대로 되어있었다면
화이트헤드와 흡사한 결론으로 나갔을런 지는 몰라도
적어도 일관성은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즉, 전체를 묶을 수 있는 일관성이 결여됐기에 들뢰즈에 대한 해석도
이정우,이진경의 해석만 있는 게 아닌 다른 해석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던 거라고 봐짐다.....
그래서 코스몰로지라는 게 더욱 중요한 사변이성 아니겠슴까...





김광현 wrote:
>아직 제가 들뢰즈의 원전한번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들뢰즈는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처럼 체계적인 도식을 만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들뢰즈 철학을 에어리언 같다고 표현한 것을 봤었는데, 처음에는 남의 얘기를 끌어다가 한참 말하다가 결국은 그것을 해체하고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은 처음에 다가가기가 너무 어렵지만 어느정도 그 틀에 익숙해지면(물론 그 이상 진전하기는 더 어렵지만) 상당히 편리한 사고의 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가 '이성의 기능'에서 강조했듯이 도식적인 사고의 장점이겠지요.
>근데, 님의 말씀대로 들뢰즈의 글은 능력이 부족했든지 의도적이었든지 잡다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
>그렇지만, 일관성이 없다는 것에는 아직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의미의 논리> 책을 구해보기 어려운 상황이여서(설명하기는 복잡합니다...) 정확히 근거를 대기는 곤란하지만, 제 기억에 계열 2에서 얼핏보면 스토아학파의 견해를 자신의 의견처럼 말하는 것 같지만, 딱부러지게 그게 자신의 생각이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계열2에서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에서 '사건'이라는 개념의 한 실마리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지, 들뢰즈가 고립된 물질의 실재를 인정한다고 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22-25계열에 가면 분명히 스토아 학파의 물질로서의 실재에 대한 견해를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은 이렇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에어리언은 숙주를 버리는 것이지요.





안녕하세요..광현님..
답변이 좀 늦어진 거 같아 지송함다.. 글은 읽어봤지만
부산갔다가 다시 설에 올라오느라구 잠시 겨를이 없었음다..
그리고 광현님이 말씀한 의미의 논리의 그 부분도 다시 찾아보기도 했슴다..

어쨌거나 광현님과 들뢰즈와 화이트헤드에 관한 논의자체를 하게 된
점은 진심으로 아주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됨다..
특히 들뢰즈의 사상이 에어리언 같다는 얘긴 재밌는 표현으로 들리기도 함다..

제가 말한 일관성이 없다는 얘긴 궁극적으로 우주론이 없다는 것과
상관하지만 그로 인해 일관된 논리에서 볼 때 양립할 수 없는
언급을 부지불식간에 한다는 것이져...

예컨대 주름에서 화이트헤드의 영원적 객체를 언급하는 걸 보면
그는 물질 너머의 차원을 인정하는 걸로 보임다.. 즉, 그것은 들뢰즈가
가장 주목하는 <표면>에 대한 고찰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들임다..

또한 광현님의 그 얘긴 의미의 논리에 한정되는 것인지.. 그래서
광현님이 말씀한 의미의 논래 22-25 부분(한길사에서 나온 이정우 번역판)을
다시 읽어봤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저는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스토아의 물질 견해를 비판적으로 피력하는지 잘 짚어내진 못했습니다..
솔직히 별다른 점을 읽어내질 못했다는 것이져..

사실 생성과 해체의 시대라는 20세기에 있어서 그 어떤 누구도 드러내놓고
고립된 물질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봅니다..
들뢰즈는 여전히 생성과 <됨>으로써의 사건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성과 됨을 온전히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임다..
(이 점은 제 글 전문에서 논하고 있는 점이구..)

그는 변화와 운동과 사건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들뢰즈를 <유기체론자>라고
하는 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유물론자>이며, 그것은
그저 생성을 좀더 많이 강조하고 변화와 운동을 강조함으로써 그 자신의
이론에 독창성을 창조적으로 부여하고 있을 뿐임다..

들뢰즈의 일관성 없음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것이며, 그것은
<표면>에 대한 주목에서 오는 심층적인 고찰에 대한 부주의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생각함다..

들뢰즈에 대한 논의는 최근의 프로세스 스터디에 실린
들뢰즈와 화이트헤드의 비교논문을 구해서 보신다면
좀더 진전된 논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김광현 님이 쓰신 내용 <<
:
: 일관성이 없다는 말을 그런 뜻으로 쓰신 거라면 저도 동의합니다.
: 그렇지만, 들뢰즈가 유물론자라는 말에는 아직...
:
: 제가 근거로 들었던 <의미와 논리>의 내용을 저도 지금 확인하지 못하는 입장이라 더이상 제 주장을 말할 수가 없네요. 제가 그 책을 정독한게 아니라 제가 완전히 제 추측으로 그렇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구요.
:
: 일단은 어떻게든 빠른 시간내에(?) <의미와 논리>를 구해봐야겠습니다. 저는 지금 자유롭게 집에 가지도 못하고, 큰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지도 못할 상황에 있거든요. 다행이 인터넷은 할 수 있습니다.(물론 제가 원해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
: 앞에서 말씀하신 프로세스 스터디에 실린 들뢰즈와 화이트헤드에 대한 비교논문을 쉽게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혹시 번역본도 구할 수 있으면 더 좋구요.
: 저도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기쁘네요.
:

2001-11-23 14:03



게시물수 67건 / 코멘트수 37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철학의 기초가 없는 분들께 권하는 좋은 동영상 자료 (*재밌습니다^.^) (2) 관리자 12459 07-16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1) 정강길 12894 04-23
67 몸의 M층을 형성하는 형이상학.. 그 진화적 기원, 미선 47 03-11
66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 미선 126 02-23
65 서구 근대를 지배했던 <데카르트-뉴턴 세계관>이란? 미선 126 02-21
64 종교, 철학, 과학이라는 3가지 전통의 소통 관계 미선 173 01-17
63 통분석적 사고 미선 639 10-11
62 불교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생각 미선 660 09-16
61 경험의 두 측면 : <측정가능의 경험>과 <측정불능의 경험> 미선 944 04-27
60 "존재(being)을 힘(power)"으로 정의한 플라톤 저작의 희랍 원문과 영역 미선 2017 05-24
59 인문학자는 과학이 무섭다? 진짜 '융합' 가능하려면…(최종덕) (4) 미선 3603 01-12
58 편향 중의 편향, <형이상학적 편향> 미선 4398 07-28
57 김재인 연구원, 지젝의 들뢰즈 독해 비판 (1) 미선 4214 07-10
56 형이상학의 역할을 무시하는 분들에게.. (6) 미선 5181 09-03
55 인문학은 과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가 (이상헌) (1) 미선 4812 08-16
54 지젝이 만난 레닌 (조배준) (1) 미선 4332 07-18
53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전문 / 한국일보 (2) 미선이 5008 02-11
52 공자와 예수, 도올 주장에 대한 반론 미선이 5120 12-06
51 철학의 기초가 없는 분들께 권하는 좋은 동영상 자료 (*재밌습니다^.^) (2) 관리자 12459 07-16
50 국내외 철학상담 관련 문헌 (출처: 철학상담치료학회) 미선이 4955 06-07
49 한국갤럽 최초 한국인 철학 인식 조사 (1) 미선이 6019 01-31
48 [펌] 동양철학사상 음양오행설 비판 미선이 10853 12-17
47 철학을 생전 처음으로 공부하는 진짜 초심자분들을 위한 안내 책들 미선이 5302 11-06
46 삶과 학문적 탐구에 대한 나의 생각..(윌버 비판도 약간..) 미선이 6415 09-30
45 예술에 대한 감상과 유희 그리고 진리 담론과 미적 가치 미선이 6451 09-19
44 그것은 나의 <주관적 느낌>일까? 참된 <객관적 이해>일까? 미선이 5779 09-03
43 과학책『우주의 구조』에 대한 어느 철학자의 서평 (2) 미선이 7043 03-13
42 철학 성향 테스트 (그린비) (6) 정강길 7444 03-02
41 철학이 필요한 이유 하나 정강길 7345 11-20
40 [펌] 안토니오 네그리 (Antonio Negri, 1933~) 고골테스 7203 05-25
39 [펌] 페터 슬로터다이크 (Peter Sloterdijk, 1947~) 고골테스 7510 05-25
38 [펌] 요가철학 정강길 6924 04-24
37 '알랭 바디우'에 대하여 미선이 8296 03-07
36 알랭 바디우-진리와 주체의 철학 (서용순) 미선이 8932 03-07
35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2) 미선이 11736 10-14
34 호모 모미엔스 (김용옥) 정강길 7915 03-28
33 주체 해체의 시대에 주체 말하기 (2) 산수유 7482 12-05
32 '아님/비움/반대/버림/끊음/없음' 같은 부정법 표현이 갖는 한계 미선이 6812 06-07
31 철학과 신학의 관계2 (*권하는 글) 정강길 9281 05-07
30 철학과 신학의 관계1 (*권하는 글) 정강길 8779 05-06
29 언어와 우주 그리고 철학 정강길 6927 04-21
28 "좋다/싫다"와 "옳다/틀렸다"의 표현들, 어떻게 볼 것인가 : 감성과 이성의 문제 정강길 7540 04-13
27 마르틴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 이기상 19165 11-12
26 논리와 직관, 그리고 감각에 대한 논의들 (답변: 정강길) 이재우 8433 11-11
25 심리학 및 정신분석 그리고 철학(존재론) 정강길 8419 11-11
24 [펌] 윤회, 사실인가 사상인가 정강길 10716 11-11
23 [To. 들뢰지안 김재인] 두 가지 질문.. 정강길 7434 11-11
22 [To. 들뢰즈안 김재인] 부정성을 간직한 탈주fuite 번역은 어떨지요.. 정강길 8503 11-11
21 [자료]『천 개의 고원』이 『노마디즘』에게 (김재인) 정강길 8770 11-11
20 네그리, 유물론과 비유물론의 경계선에서 정강길 6645 11-11
19 〈탈중심주의〉혹은〈해체주의〉의 한계 정강길 7514 11-11
18 [펌] 맑스, 유물론, 존재론적 형이상학 정강길 7975 11-11
17 [펌] 왜 《왜 동양철학인가?》인가 장동우 7221 11-11
16 무정체성/다정체성 혹은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우화 정강길 7650 11-10
15 다양성의 생산과 다양성 간의 충돌에 대한 고찰 정강길 7422 07-10
14 슬라보이 지젝Slavoj Zizek 정신분석학적 사회이론 양운덕 7678 10-08
13 [펌] "포스트모더니즘" 에 대한 촘스키의 견해 정강길 9910 10-08
12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계 개념 (서동욱) 정강길 10381 10-08
11 [책] 『라깡의 재탄생』 김상환ㆍ홍준기 엮음 관리자 8642 10-08
10 자연과 신과 인간, 그리고 근대 학문의 탄생 이현휘 7047 10-08
9 [20세기 사상을 찾아서] 질 들뢰즈의 철학 정강길 10579 10-08
8 [펌] 모더니즘 정강길 8557 10-08
7 [펌] 타자의 현현, 윤리의 지평(레비나스 사상 소개서) (3) 정강길 9035 10-08
6 레비나스 사상에 대한 좋은 개론서 정강길 7859 10-08
5 [펌] 레비나스를 아시나요? (1) 정강길 9614 10-08
4 [참고자료]본인과 이정우(들뢰즈안)와의 논쟁 글모음 정강길 10879 10-08
3 [펌] 아퀴나스, 하이데거, 화이트헤드 정강길 6350 10-08
2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에 빠진 들뢰즈 (2) 정강길 12329 05-01
1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1) 정강길 12894 04-2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