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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예술에 대한 감상과 유희 그리고 진리 담론과 미적 가치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9-19 09:19 조회(7181)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1/94 




 
예술에 대한 감상과 유희 그리고 진리 담론과 미적 가치
 

현대의 <새로운 후기합리주의>는 근대 모던의 합리주의와 다르게 다음과 같은 성찰을 기본 전제로서 깔고 있다.
그런데 이를 섬세하게 구분할 줄 아는 이는 거의 많지 않다고 했었다.
 
첫째, 객관적이고 완결된 진리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주관적 상대주의는 기초 출발로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셋째, 주관이든 객관이든 일단 모든 사유들은 기본적으로는 권력적이다.
 
현대 철학 담론에선 나는 기본적으로 이를 너무나 당연한 전제로서 생각하고 있기에
행여라도 만일 내게 이러한 비판을 들이민다면 참으로 어이없는 것일 따름...(이역시 허수아비의 오류일 뿐..)
왜냐하면 근대 합리주의는 결코 저러한 전제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도대체 어느 근대 담론이 그러한가..
그렇기에 이는 나 자신이 서 있다는 맥락을 온전히 이해치 않고서
근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내게도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면 적어도 그것은 내겐 정말로 순진한 아규일 뿐이다..
 
물론 나의 철학적 기반은 백두철학일테지만 아직 국내엔 잘 소개되어 있진 않으나
(게다가 윌버와 백두의 차이는 근대와 탈근대 이후의 새로운 차이만큼이나 다소 큰 것임..나의 최근 논문 참조.)
그러한 사상의 성과가 깔려 있는 최근 예술 이론의 입장으로서
오히려 막스 벤제(Max Bensen)의 <신(新)미학>을 따르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임..

굳이 국내에 알려진 사상가들 중에 본인과도 비슷한 입장을 찾는다면, 진중권의 다소 절충적 입장의 미학론이나
또한 유명한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의 문화비평 입장과도 비슷할 순 있겠다.
그러나 이와 흡사해보일 순 있으나 정확히는 나와 똑같은 동일한 이론적 입장은 아니다
(이를 테면 그가 현대 포스트모던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대목은 충분히 동의하나
지젝 사상이 갖는 그 이론적 기반의 궁극적 출처에 있어선 동의하지 않는 점들도 역시 있기 때문이다..)
암튼 그렇다고 여기서 어려운 말로 썰을 풀 생각은 없고 몇 가지만 쉽게 얘기해보고자 함..
 
일단 예술에 대한 정의에 있어, 나는 예술(art)이란 것을 의도적인 표현들(말, 행동, 글, 그림, 음악 등등 뭐든)이라고 보는데,
이를 테면 단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예술론에 입각할 경우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등을 구부리는 것이나
벽에 다 못을 박는 행위조차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봄.. art에는 <기술>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물론 예술은 무의식적인 것도 표현하고자 하지만 그러한 표현 자체는 의도적인 작가의 배열에 따른다고 봄..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볼 때 나는 기본적으로 예술과 의도적 언술 행위를 표방하는 정치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함..
 
즉, 이렇게 볼 경우 기본적으로는 의도적인 언술 혹은 행동 및 표현 양식들은 몽땅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임..
결국은 백남준 식의 파격적인 예술론도 이미 기본적 전제로서 깔려 있는 것이다..
즉, 모든 의도적인 프로세스들은 기본적으로는 예술이 될 수 있다..그리고 보다 깊이 살펴보면 어차피
작가와 독자의 경계도 모호한 것이다.. 모두가 예술 창조 프로세스의 참여자들이고 주체이자 객체일 따름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주관적 표현들에도 일종의 공감을 표해줄 수 있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따라서 나는 이런 점에서 대중성과 재미와 변덕과 즉흥성을 일삼는
이를테면, 백남준식의 파격적인 예술 이해도 기본적으로는 충분히 동의가능하다.
오늘날 포스트모던의 예술 세계는 다양한 개성의 발휘와 이를 즐기면 된다는 유희론을 많이 표방한다.
 
문제는 모든 의도적 표현들이 예술일 수 있고 이를 즐길 수 있는 유희적 의미라면
그러한 예술론으로 충분한가 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 세계를 대할 때
그저 마냥 즐겨라 예술은 그냥 즐기면 된다고 말들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인식의 끔찍한 즐거움을 누릴 지언정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유희적 예술론만 갖고는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느낌이란 건 나홀로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주관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각각의 주관성들끼리도 서로 부딪히며 교류하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각자의 세계 이해로 이어지는데, 나는 객관이라는 것도 결국은 지구적 보편에서의 공감 사태라고 본다.
물론 이는 곧 소통의 차원일텐데, 이때의 핵심 관건은 도대체 어떨 때에 예술이 비로소 보편적 공감을 획득하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이 뜻은 영원불변의 절대 보편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지구적 차원의 소통성을 지향함을 의미한다.
 
혹자는 말하길, 모든 의도적 표현들이 예술일 수 있다면 예술 작품들 가운데서도
등급과 층차가 나누어지는 것은 왜 그러한 것인가를 질문해볼 수 있다..
왜 작품상을 뽑을 때 포르노물이 아카데미상을 받을 순 없는 것이며
왜 저마다 그 나름대로 등급과 기준으로 분류하는가 라는 의문을 들 수 있겠다.
물론 극단적인 예술론자는 그러한 처사를 두고 그건 오히려 예술에 잣대를 두는 것이며 예술을 죽이는 것이기에
예술에 대한 반역이 아닌가라며 이에 대해 저항하는 순수 예술주의자들도 있긴 하다.
 
모든 의도적 표현들이 예술일 수 있으나 그것의 형성 자체는 맥락적 상황속에서 일어나게 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예술작품들 간에 층차와 등급으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도 맥락적 상황으로 인해 발생된다.
(여기서 말하는 건 포스트모던에서 말하는 맥락주의(contextualism)와는 좀 다른 것임..)
 
같은 화장실의 변기라도 유독 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좀더 유효한 예술적 의미로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화장실의 변기를 뜯어와서 전시장에 놓은 뒤샹의 변기가 예술사적으로 역설적 의미를 갖는 이유도
바로 결국은 맥락적 상황에 따른 것으로서 적절한 때에 대중들에게 통찰을 주는 유효한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핵심 관건은 바로 작가의 예술작품이 그 작품이 놓여지는 맥락적 상황과 얽히게 되면서
대중에게 전이되는 바로 그 통찰의 내용이다. 어떤 경우 그 통찰의 내용은 그 시발점이 예술작품에서 나오긴 해도
뜻밖에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대중의 독자적 입장에서 전혀 새롭게 형성되기도 한다.
따라서 어느때는 독자나 관객도 예술 작품의 수동적 대상이 아닌 적극적 참여자가 되기도 하는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작가가 이를 의도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이러한 맥락에서 전이되는 그 통찰의 내용도
 
결국은 작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존재 및 세계 이해>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알고보면 예술론이라는 미학도 철학에서 나왔잖은가)
나는 이런 점에서 종교와 과학 및 예술은 결국 한 나무에서 나온 여러 가지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것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거대하고 복잡한 덩어리에 대한 제각각의 면들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이 때로는 한낱 주관적 유희에도 그칠 수 있으나
어느 정도의 소통을 요구하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경우에는 그 책임성까지 묻는 경우 역시 종종 발생되는 것이다.
 
그저 예술 감상을 유희로서만 본다면 혼자 보는 포르노적 유희와도 아무런 가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물론 때로 예술도 의도적으로 그 표현 형식을 포르노로 표방할 순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포르노와 정확히 동일할 순 없다.
게다가 어떤 예술작품으로 인해 그것이 사회적 담론으로 증폭되며 형성되는 차원은
결국 그 어떤 가치가 정치적 성향의 이데올로기화로 이어지는 경험들을 보다 분명하게 겪게 되는 차원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다양성과 개성 및 유희를 추구하는 포스트모던의 예술론은
담론 형성의 이데올로기적 사태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처사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그것은 무책임한 유희가 될 뿐이다.
예술에 대한 감상은 즐기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이는 모든 존재 자체가 이미 연결된 관계망에 놓여 있다는 점 때문에 부득이하게 발생되는 사태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들도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는
자기 입장(작품)의 정당성의 획득을 주장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이는 인류사의 권력 게임들이 마냥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부득이하고
구차하게 진리 담론을 빌어와서 자기 권력의 정당화를 말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에 속한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저 권력이 좋다"는 솔직함만으로는 대중들을 설득하기엔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술 역시 "그냥 이유없어 근거없어 그냥 좋아/싫어"만으로는 공감은 표해줄 수 있으나 그것만으론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물론 감정적 공감조차도 그 어떤 맥락적 차원에서는 유효한 예술론이 되기도 하겠지만,
또다른 맥락적 차원에선 그저 취향의 사회화가 무책임한 유희적 폭력으로 돌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자기가 좋다고 느낀 것에 대해선 조금도 상반된 느낌의 딴지나 토를 달아선 안되는 거다..
 
따라서 취향과 유희로서의 예술론이 특히 인간세의 도덕 및 윤리적 가치와도 끊임없는 갈등 관계를 빚기도 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이를 테면 예술 세계는 많은 상상적 가치들을 표방하기에
좀더 자유롭고 싶으나 그것이 현실 세계 안에 놓여지게 될 경우에는 도덕과 윤리로서의 어느 정도 책임을 요구하기에..
 
그래서 어느 정도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및 검열 장치가 예술에는 뒤따르기도 하는 것이다.
(참고로 검열의 수준은 그 국가 및 사회적 소화의 성숙도와 관련된다..)
이와 관련해 화이트헤드는 <카르멘> 오페라 관람을 예를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배정된 대본을 노래하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동안에는
도덕이 자취를 감추고 아름다움만이 남아 있게 된다.
..... 음악과 춤 들떠있는 극장 분위기 앞에서 도덕의 문제가 뒤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철학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인데 반해 공연물을 검열하는 관리에게는 매우 당혹스런 사실이 된다."
 
진리냐 아니냐는 1차적으로 예술의 가치를 창조함에 있어선 나 역시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1차적인 예술의 창조는 결코 진리를 논하는 수준에서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창발적인 상상 혹은 자유로운 아이디어에서 새롭게 시작되고 마련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그러한 창조적 부분에 제약을 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창조된 예술의 가치가 한낱 자기 주관적 만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향유 대상이 자신을 넘어 다른 대중에게 표현되고 표명될 때에는 그러한 예술 작품 자체 역시
(물론 작가가 부여한 의미도 함께 얽히면서) 일종의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갖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주관적 예술 작품이라도 그것이 놓여지는 현실 상황과의 조화를 모색할 경우엔
이를 그저 한낱 자기 취향과 자기 유희적 안목으로서만 고려한다면
그 사람의 예술 세계는 매우 협애할 뿐더러 사회적 관점에선 무책임한 유희와 방치가 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진리 담론은 한낱 주관적 공감이 아닌 보다 좀더 확장된 <보편적 공감>의 획득을 위해 부득이하게 마련되는 논의일 뿐이다.
 
어떤 면에선 <보편적 공감>이란 것도 주관적 공감들끼리의 충돌과 갈등들을 보다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보편적 공감을 위한 그 어떤 절대적인 고정된 원칙 같은 것은 없다. 나는 논리적인 차원 역시
그저 발생되고 있는 오류와 모순과 비극과 부조리를 가급적 최소화하기 위한 편의적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볼 따름이다.
 
바로 그렇기에 혼돈과 질서는 상호 의존적인 파트너인 것이다.
우리는 한편으론 충돌과 갈등을 통해 더 큰 성장의 기회를 얻고 배우기도 하잖은가..
 
.................
 
그렇다면 끝으로 이러한 질문이 남겨질 수 있다.
보편적 공감을 지향하는 진리야말로 미적 차원을 갖는 것이며 보다 직접적 근원에 속하는가?
단호히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한다면 난 오히려 그 반대가 더 옳다고 본다.
즉, 미적 차원이야말로 진리 차원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것이다.
 
백두 역시 말했듯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진리란 기본적으로는 관심의 변종variation이다. 
단지 모든 표현들은 표현되어 있지 않은 전제들을 알게모르게 수반하고 있기에
예술 역시 그에 담긴 철학적 함의가 중요한 논의로서 들어오는 것뿐이다.
 
도덕과 예술의 갈등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지만 그 창조적 전진의 근원적인 원동력은
진리나 도덕에 있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움>이라는 미에 대한 탐구에 기인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동안에는 도덕은 자취를 감추고 아름다움만이 남아 있게 된다..
 
이는 명제를 진리 판단의 유무로 보는 건 명제의 2차적 기능일 뿐이지
명제의 1차적 기능은 어디까지나 흥미와 유혹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따른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인간 이해에 있어서도
정서와 감정이 어디까지나 1차적이고, 인지와 이성적 요인들이 2차적인 점과도 상응한다.
 
존재의 궁극적인 향유를 지향하는 지점에 있어선 미적 아름다움의 차원이야말로
체계를 다루는 진리치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직접적 차원에 서 있다.
쉽게 말해, <진,선,미>라는 가치에 있어서 진과 선의 발생도
결국은 <미>beauty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유효하게 발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우주의 에로스를 다룰 때 <미>가 보다 무의식적 차원에 가깝다면
진과 선은 보다 명료한 감각으로서 느끼는 의식적 차원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우리들이 진리나 도덕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후의 차원에서 유효한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진리와 도덕 그것 자체를 무용하다고 보는 처사야말로
우리 경험들 간의 소통의 패턴이 갖는 질서적 차원을 무시한 한심한 처사일 뿐이다.
우리의 몸삶은 허허로운 벌판 속에서 홀로 난장을 펼치고 사는 삶이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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