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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요가철학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4-24 01:15 조회(692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1/73 




전통요가라 함은 "요가 경전"에 의거한 요가를 의미합니다. 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여러 요가들인 다이어트 요가,수험생 요가,어린이 요가,임산부 요가 등등 이러한 것들은 웰빙 경향과 맞물려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게 변형한 것이지요. 정작 인도철학적 맥락에서 가르치는 정통요가는 매우 드물답니다. 정통요가란 인도의 요가 경전들에 의한 요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보는 정통요가 역시 상당한 관념론적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어쨌든 요가는 감각의 소멸을 지향함으로서 참자아 혹은 순수의식 또는 초월적 자아를 의도합니다. 아래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요가철학에는 부정법 언술이 상당히 발달해있는데, 불교 창시자인 싯달타가 당시의 힌두이즘과 결별하면서도 여전히 불교 안에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는 점은 역으로 그만큼 초기불교에서부터 힌두이즘의 영향 또한 컸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암튼 그래도 요가가 신체적인 척추 교정이나 생활습관으로서의 치유에는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점에선 부분적으론 유용한 수행이라고도 봅니다.
아래 글은 한국 요가연수원 자료실의 글입니다.
,,,,,,,,
 

1) 요가의 본질

요가는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또한 다양한 의미를 갖기때문에, 요가를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요가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발달하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 형성된 많은 유파들의 일치된 견해들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요가가 갖는 다양한 의미나 많은 유파들 사이에 일치하는 견해이다. 그것은 요가를 수행하면 '황홀한 상태' 또는 '무아지경'과 같은 의식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가는 이러한 상태를 궁극목표로 하든가 아니면 요가의 수행과정에는 이와 같은 상태를 반드시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상태를 보통 우리는 불교의 술어를 빌어 삼매(定)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요가의 고전에는 '요가는 삼매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이 요가 문헌에는 삼매에 관한 심리적 철학적인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요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삼매의 의미부터 알아야 하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三昧라는 말은 범어 sam dhi를 한자로 음사한 것이다. 범어의 이 말을 분석하면, '함께'라는 의미의 접두어 sam과 a 그리고 '놓다'라는 동사 dha의 여성형 dhi로 구성된 단어이다. 그래서 문자의 구성 자체로 보면 삼매는 '함께 놓다' 또는 '결합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함께 놓거나 결합하는 것은 의식 주관과 그 의식의 대상이다. 따라서 삼매는 요가를 통해서 의식이 대상과 결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의 의식이 삼매의 상태와 같이 어떤 대상과 하나로 결합된 심리상태는 황홀경 또는 무아경에 이른다.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은 이러한 상태를 신비적 융합(unio mystica)이라고 한다. 요가에 관한 많은 정의가 있기는 하나 요가는 이러한 삼매상태를 궁극목표로 하든가 아니면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한다. 따라서 요가는 삼매에 도달하기 위한 의식주관과 객관을 결합하는 기술 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요가의 실제적인 내용을 통해서 요가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요가의 본질은 이미 요가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된다. 요가라는 말은 이미 인도의 구약이라고 할 수 있는 Rig-veda에서부터 사용된 말이다. 리그베다가 기원전 1500년 이전의 문헌이기 때문에 인도-유럽어의 언어학 연구의 가장 오래된 길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yoga는 '멍에로 연결하다, 결합하다'라는 의미의 yuj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결합'이라는 명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원학적으로 이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어족에 속하는 영어(yoke) 불어(joug) 독일어(joch) 그리스어(zugos) 라틴어(iugum) 러시아어(igo) 스페인어(yugo) 스웨덴어(ok)도 모두가 yoga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산스크리트 문헌에도 빈번히 사용되는 요가의 의미는 개인적 자아(j va- tman)와 초월적 자아(parama- tman)의 '결합'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요가의 정의는 인도철학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일원론적인 전통을 유지하는 베단타학파의 영향이다. 베단타의 사상은 비밀리 전수되는 우파니샤드 사상을 이어받은 것인데, 그 가르침은 모든 존재의 유일한 근원에 대한 고찰과 그것과 합일하는 명상이다.
 
이 사상에 따르면 우리의 개인적 자아는 본래 브라흐만이라는 초월적 자아로서 영원하고 유일한 존재인데, 현재의 자아는 그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고통과 윤회가 있다는 것이다. 요가는 이러한 인간이 본래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재결합의 기술인 것이다. 요가를 이러한 베단타적인 일원론적 결합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기원전의 초기 요가 사상에서 부터 현대의 인도요가 사상까지 일관된 견해이다.

그러나 2-5세기 경에 성립됐다고 추정하는 요가의 고전으로서 요가철학의 핵심이 교설된 요가경전(Yoga-s tra)에는 요가에 이상과 같은 결합이라는 의미는 없다. 이 철학은 비슷한 시기에 지중해에서 번성한 신비주의적인 기독교 Gnosticism과 같이 이원론을 형이상학으로 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내부에는 초월적인 정신적 자아가 있고 인간이나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의 근원이 있다는 사상이다. 그래서 인간의 초월적 자아가 물질과 결합할 때 고통과 윤회가 있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해탈한다고 한다. 따라서 요가의 궁극목표는 개인의 자아가 객관세계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이 경전에서는 단순히 '요가는 마음 작용을 억제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정신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다른 정신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존재의식의 정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때에 죽음과 같은 무감각이 아니라 새로운 초자아적인 의식이 일어난다.
 
이러한 의식은 모든 인도사상의 유파들이 인정하듯이, 단순한 추론에 의해서 나온 개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에 의해 발견된 개념이다. 이 요가경전에는 이렇게 의식이 정지될 때 초월적 관조의식이 빛난다고 하며, 이 관조의식(dra )은 순수의식(cit)으로 모든 변화하는 모든 의식을 초월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조의식은 육체는 물론 감각이나 감정 더나아가서 지금까지 자아라고 여겨왔던 의식까지도 자아가 아님을 알고, 그러한 것들이 자아로서 작용하지 않을 때 순수정신적 자아(purua)만이 남아서 작용하는 상태이다. 이와같은 상태가 곧 해탈로서 고전요가에서는 '홀로 독립해 있다'는 의미의 獨存이라고 한다. 이처럼 요가는 진정한 자아가 철저하게 일탈하는 것을 궁극목표로 하기 때문에, 11세기에 요가수트라의 주석서를 쓴 Bhoja 왕은 요가의 진정한 의미는 결합(yoga)이 아니라 분리(viyoga)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요가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고전요가의 분리라는 의미는 앞에서 본 요가라는 술어나 요가에 의한 삼매나 요가의 일반적인 사상에 일관되게 흐르는 결합이라는 요가의 의미와는 반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원론의 베단타 전통의 요가나 이원론의 고전요가 사상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두 사상의 체계가 결합과 분리라는 완전히 상반된 견해이나 초월을 향한 방법과 내적 의식변화가 '부정(apav da)'이라는 공통된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古우파니샤드에서부터 발견되는 '아니다, 아니다(neti-neti)'라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진정한 자아로 착각되는 육체-정신-자아의식을 점진적으로 소멸시켜나가는 심리적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8세기 경의 인물인 a kara는 그의 저술 Nirv a-S kta에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옴, 나는 이성, 직관, 자아의식, 기억(이라는 정신작용)이 아니다.
나는 듣는 것, 맛보는 것, 냄새맛는 것, 보는 것(이라는 감각작용)도 아니고,
더우기 (육체를 구성하는) 흙, 불, 공기는 더욱 아니다.
나는 환희의식 속에 있는 시바신이다.

나는 시바신이다.(1)

이것은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한 자신의 해체작업이며, 동시에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을 하나하나 버리는 자신의 소멸작업이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이러한 부정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현상을 초월한 자아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일원론적인 베단타의 해탈방법이 철저히 자신을 해체하는 이원론적인 분리라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해체를 통한 분리는 곧 자신은 현상적 존재로 한정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길이며 또한 영원.절대적인 전체성과 합일하는 길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요가의 본질이 분리라고 하는 고전요가의 주장과 어원학적으로 결합을 의미하는 요가나 삼매가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요가는 의식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키는 삼매(=결합)를 통해서 초월적 자아를 현상적 자아로부터 독존(=분리)시켜 절대성과 결합(요가)시키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분리를 통하여 '나는 시바이다. 나는 브라흐만이다. 나는 영원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이 전체성과 합일하는 방법은 우파니샤드 이래로 인도사상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에 대한 관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유일 절대자로 선포하는 동시에 그러한 존재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순간적 착각이 아닌 영원한 자각이며 초월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탈이라는 개념에 철학적인 문제는 남아있다. 그것은 해탈이 일원론의 주장과 같이 초월적 자아가 절대성과 합일하여 하나의 전체성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원론의 주장과 같이 초월적 자아가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절대 독립의 상태가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해탈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동일하다. 구차한 설명을 덧붙인다면, 영혼과 같은 자아는 물질이 아니라는 동서양의 종교.철학의 일치된 견해이다.
 
영혼이나 아트만 또는 푸루샤 등으로 불리우는 초월적 자아는 정신적 실체로서 물질과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인 크기(延長)가 없다. 이 말은 곧 이것은 물질처럼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어디에도 한정되지 않는 무소부재의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현상적 인간에 한정되지 않을 때 독존이라는 절대 자유의 상태이고 또한 크기가 없는 것이 어디에도 한정되지 않는 절대자유라는 것은 곧 범아일여라는 전체성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해탈이 자아의 독립인가 아니면 합일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여기서 문제삼지 않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혼은 나의 어디에도 붙어있을 수 없으며, 붙어있어도 물질로 구성된 현재의 나에게 작용할 수 없으며, 본래 자유로와서 해탈할 필요도 없게되기 때문이다. 더우기 의문을 계속하면 이러한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종교나 철학의 근본문제에 부딫치게 된다. 누가 이러한 문제만을 평생 붙들고 매달려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붓다의 '독화살 비유'를 상기시키며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이 의문은 수행을 통한 삼매의 세계에서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해답은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각개인의 내적인 체험할 문제이다. 형이상학이나 종교에 대한 본인의 태도가 이러하기 때문에, 요가의 본질을 삼매라고 정의하고 싶다. 삼매가 요가에 한정된 의미는 아니나, 삼매와 같은 의식상태에서만이 우주나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속박된 현실의 삶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상적인 목적이 일반 요가수행자의 목적이 아니라도 요가의 본질은 삼매이다. 왜냐하면 삼매와 같은 의식의 경험은 각 개인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을 것이며 적어도 심신의 건강은 남기때문이다.

 
http://ask.nate.com/knote/view.html?num=128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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