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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인문학은 과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가 (이상헌)    
  글쓴이 : 미선 날 짜 : 12-08-16 11:15 조회(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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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과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가

이상헌 |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ㆍ존재, 삶, 사랑… 과학으론 그 의미를 오롯이 담아낼 수 없다
 
인간존재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인문학이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위협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시대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영국의 근대철학자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통해 과학의 실용적 위력을 강조하였고, 프랑스의 근대철학자 데카르트는 ‘진리의 절대 부동의 토대’를 찾는 급진적 학문 이념을 통해 기존의 모든 지식과 학문, 전통과 관습을 부정하였다. 거기에서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학문을 과학으로 환원한다?

 20세기 초 논리실증주의의 통일과학 이념은 이런 사상적 흐름의 극단으로 등장하였다. 논리실증주의는 지식의 유일한 토대로서 경험을 강조하며 과학적 방법에 의한 방법론적 통일을 주장하였다.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은 지식의 영역으로부터 추방되었다. 형이상학은 물론 종교, 윤리학, 문학, 예술 등은 더 이상 지식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인문학이 학문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은 사회과학 혹은 생물학의 한 분과로 환원되는 길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의 지속적 발전에 고무된 환원주의자들은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을 구분하고, 더 나아가 소렐(T. Sorell)의 말처럼 과학적인 것만이 오직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은 무한히 발전할 것이며, 지금까지의 모든 지식과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인간의 지식과 학문은 최종적으로 과학적 지식과 학문으로 환원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과학으로 인간과 세계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주의의 신봉자들을 양산하였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에 출간한 <컨실리언스: 지식의 통일(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은 환원주의적인 통일과학 이념의 사회생물학 버전이다. 윌슨은 “근래 자연과학이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로 그 범위를 확장하며 세 영역을 한데 묶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제 학문의 환원적 통일’을 자신의 사회생물학적 연구 성과와 최근 등장한 진화심리학을 내세워 다시금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환원주의는 과학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으며, 아가치(E. Agazzi)의 말처럼 참된 과학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등장과 더불어 거시적 대상에 대해 타당한 법칙이 미시적 대상에까지 확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환원주의는 신뢰를 받기 어려워졌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나노기술은 물질이 나노미터 수준, 즉 분자 이하의 수준에서 거시 세계에서 발견되지 않는 물리적 특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윌슨의 책은 2005년에 국내에서 <통섭>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함으로써 때 아닌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상당한 비판이 있었지만 통섭이라는 용어는 일종의 유행어가 되기도 하였다. 전문화로 높은 벽이 생긴 학문들 사이에 소통의 필요성이 한창 요구되는 시점이었고, 그래서 학제간 연구, 학문간 경계넘기 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때에, 최종덕 교수의 말을 빌리면, “하나로 포융하고 승화하는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과 성리학의 심통성정론(心統性情論)에 은근히 기댄” 통섭이라는 용어가 사람들에게 모든 학문을 평등하게 융합한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 가운데 윌슨의 통섭 개념이 이미 낡아빠진 환원적 학문통일의 이념을 되살리려는 허망한 노력임을 인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는 과학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그 신뢰에 대한 일부 과학공동체의 잘못된 반응에 상당 부분 원인이 있다. 과학주의 신봉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독특성을 인정하는 세계관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고, 나아가서 과학적 세계관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유포하고 있다.

최근 심리학이나 뇌과학 등에서 인간의 행동과 마음에 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연구 성과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해석에 언론의 과장이 더해지면 과학으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사랑의 호르몬이 그런 것이다.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등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매우 높은 수치로 측정된다고 한다. 그러면 사랑이란 호르몬의 장난일까? 사랑의 호르몬을 먹으면 사랑을 하게 만들 수도 있나?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인간의 사랑에서 호르몬은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하나 해보자. 철수에게 사랑의 호르몬을 주입하고, A, B, C, D 네 명의 여성을 만나게 해보자. 철수는 누구를 사랑하게 될까? A일까, B일까, C일까, D일까? 아니면 네 사람 모두일까? 어떤 과학자는 전설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절대적인 도파민 과다분비 환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사랑의 미약이 등장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마녀의 집에 데려가 사랑의 미약을 먹인다. 그것을 먹고 나서 파우스트가 맨 처음 만난 여인이 바로 그와 사랑에 빠지는 그레첸이다. 파우스트의 사랑의 미약은 그것을 마시고 맨 처음 만나는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파우스트의 사랑의 미약이 사랑의 호르몬보다 사랑을 더 잘 이해한 약물이다. 사랑의 호르몬은 철수가 네 여성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만일 네 여성을 모두 선택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사랑의 호르몬이 아니다. 상대가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고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과학적 사실을 통해 인간의 삶과 인간적 가치를 설명하려는 좀더 대담한 시도도 있다. 다른 박쥐에게 피를 나눠주는 흡혈박쥐의 행동을 언급하며 헌혈을 기피하는 인간을 꾸짖는 어떤 생물학자의 글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흡혈박쥐가 “헌혈의 은혜”를 베풀 줄 안다는 사실에, 흡혈박쥐의 헌혈 “풍습”이 어려울 때 피를 받아먹은 박쥐가 “그 고마움을 기억하고 훗날 은혜를 갚을 줄 알기 때문에” 유지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동양고전에서 발견할 법한 수사까지 빌려가며 교훈을 주려는 고상한 의도야 의심하지 않지만, 그런 식의 설명은 겉보기에는 유익해보이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방해한다. 자연에 도덕적 가치가 있으니 그것을 배우라는 것, 피를 나눠주는 박쥐의 행동의 현명함을 배우라는 것이 생물학자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까? 글의 말미에서 그는 “우리가 헌혈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이 피를 내줄 만큼 헌신적인 사람임을 남에게 알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심리적 이기주의의 관점을 드러낸다. 심리적 이기주의에 내포된 지배적 가설의 치명적인 문제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심리적 이기주의에는 은혜니 은혜갚음이니 하는 말들이 어울리지 않는다. 헌혈을 칭찬하거나 헌혈 기피를 비난할 이유도 없다. 모든 게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이니 말이다.

인간존재의 다층성과 다면성, 인문학을 요구한다

 과학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객관성에 있다. 연구자가 연구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거리를 둠으로써 연구자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고 사태 자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물리화학, 경제학, 철학 등 다방면에서 학문적 업적을 이룬 마이클 폴라니는 이와 같은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 늘 지식의 조건으로 전제되며 통합하는 인격적 행위 없이 지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암묵적 지식이란 한 인격체가 성취한 지식으로 개인적이고 인격적이다. 암묵적 지식의 한 측면을 우리는 못질하는 행동에서 파악할 수 있다. 우리 눈은 못대가리에 의식적으로 초점을 두어야 하지만 망치를 든 손과 공간에 대한 보조적인 의식이 없다면 못질은 실패할 것이다. 이런 보조의식이 암묵적 지식이다. 암묵적 지식은 완전히 검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완전한 검증을 거친 지식 체계가 가능하다는 객관주의의 지식이념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철학자 로티(R. Rorty)도 인간을 거울과 같은 존재로 파악하는 잘못된 은유의 결과물인 유물론과 실재론을 전제하는 과학이 인간의 다른 활동들에 비해 특권적 지위를 주장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사물 존재와 달리 가치론적·의미론적 차원을 갖는다. 인간존재의 가치와 삶의 의미는 과학의 단선적 시각을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과학은 인간의 물질적 차원을 드러낼 뿐이다. 인문학은 인간 존재의 다층성과 다면성에 귀를 기울인다. 삶의 주관성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런 인간의 독특성을 탐구하는 한 방법으로 강영안 교수는 텍스트 읽기를 강조한다. “전승된 텍스트를 수용하고 그것을 매개로 자신의 삶과 주변세계를 이해하고 또 다시 새로운 텍스트를 생산, 전승하는 인격적 활동이 인문학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늘 밖으로, 대상으로 향하는 과학과 달리 인문학은 안으로,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반성적 학문이다. 인문학은 주변 세계와 관련하여 자기를 인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완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철학, 문학, 역사, 종교, 예술을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자기 이해를 풍요롭게 하려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 과학기술 사회에서 인문학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NBIC(나노기술, 생명공학, 정보통신기술, 인지신경공학)로 대표되는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들은 그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면 인간의 삶과 인간 사회에 전례 없는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급격한 변화는 우리의 삶과 기술 사이를 크게 괴리시킬 것이다. 더욱이 이런 기술들에 내재된 위험은 우리의 상상 이상일 수 있다. 나노오염, 바이오 테러리즘, 네트워크 붕괴, 인명살상 로봇, 다소 허구적인 잿빛 덩어리 지구 시나리오까지. 인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존재와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과학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감소시키고 위험을 예방하며, 과학기술과 인간존재의 가치가 조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역할 말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101953475&code=900308
 
미선 (12-08-16 11:20)
 
통섭의 한계를 잘 파악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지 사실로부터 연유되는 다양한 개념적 의미들을 다룰 수가 없다. 삶의 의미를 다루는 것은 철학과 종교를 비롯한 인문학 진영이다. 궁극적으로는 철학(형이상학)에 대한 기반 없이 과학주의 혹은 첨단 과학기술의 안락한 삶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과학기술을 제각기 종교화하고 우상화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은 서로 견제하고 대화하면서 같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몸삶의 건강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본인은 통섭이 아닌 <몸섭>Momm-sub을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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