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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경험의 두 측면 : <측정가능의 경험>과 <측정불능의 경험>    
  글쓴이 : 미선 날 짜 : 16-04-27 11:05 조회(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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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두 측면 : <측정가능의 경험>과 <측정불능의 경험>


책상에 손바닥을 가만히 대어보자. 이 짤막한 인간 경험 속에도 언제나 그 안에 <측정가능의 경험>과 <측정불능의 경험>이 함께 뒤섞여 있는 채로 경험되어진다.

<측정가능의 경험>은 매우 명석 판명한 뚜렷한 느낌을 제공해주고 있는 경험들을 말한다. 우리는 사각형 형태의 책상이 매우 딱딱하고 차갑다는 점을 아주 명료한 느낌으로서 지각한다. 그리고 이 명료한 느낌을 보다 분명하게 해두고자 책상의 형태와 딱딱한 정도 그리고 접촉 온도를 측정하며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명료하게 떠오른 이 <측정가능의 경험>이 책상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을 남김없이 모조리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순 없다. 사실상 책상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 경험들 속에는 표현하기조차도 힘들만큼의 무수한 경험들이 발생 전달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자각되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명료하게 떠올랐던 ‘차갑고 딱딱함’이라는 지각은 그러한 무수한 경험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에 속하는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지배적인 경험에 속하는데, 우리는 그 <압도적인 명료성> 때문에 전체에서의 일부분에 속하는 뚜렷한 특정 경험을 마치 책상에 대한 전체 경험인 것처럼 일반화해서 뒤덮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매순간마다 우주 전체를 경험하지만 의식상에 명료하게 떠오르는 느낌은 매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분석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경험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주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상에서의 분석은 우주에 대한 여러 세부사항들 중에서도 극소한 선택일 뿐이다”(MT 89)

오늘날 과학이라는 학문은 주로 <측정가능의 경험들>을 추구한다. 물론 그것이 꼭 직접 경험이 아닌 간접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대상과의 관계에서 어떤 측정의 성과들을 일반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측정이 없으면 과학도 없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의 발달이 주로 관측 장비의 기술발달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점도 있는 것이다.

만일 현재 유럽에 있는 <입자가속기>보다도 훨씬 더 거대하고 정교한 입자가속기가 훗날에 또 건설된다면, 혹은 현재 기술의 관측망원경보다 수십만 배로 더 멀리 더 크게 관측 가능한 천체망원경이 건설된다면, 어쩌면 기존의 과학 이론들 역시 새롭게 뒤집힐 지도 모를 새로운 과학적 발견 역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에 <측정불능의 경험들>은 상상적으로만 그려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지점에선 상상적 일반화를 추구한 형이상학(철학)과 관련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가장 마이크로한 <극미(極微) 차원의 경험>과 가장 매크로한 <극대(極大) 차원의 경험> 역시 <측정불능의 경험>에 해당할 것이다. 인간이 시공적 제약을 온전히 극복한 신적 존재가 아닌 한, 우리에게는 이러한 <측정불능의 경험> 역시 필연적으로  수밖에 없다.

우리가 궁극적 맥락으로 다루고자 하는 전체 우주에 대한 밑그림 작업은 이미 과학이 다룰 수 있는 측정의 한계마저도 훌쩍 넘어서는 그러한 차원에 놓여 있다. 이것이 형이상학의 지평으로 이 지점에선 측정느낌의 경험을 넘어 측정불능의 경험들까지 상상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경험들은 한편으로 <숨어 있는 경험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순간 일어나는 플랑크 규모 이하의 사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거의 자각하지도 못하고 가늠하지도 못한다. 나의 몸을 구성하는 온갖 세포들과 미생물조차도 나의 경험과 연관되어 있다지만 나는 그것들의 작용을 경험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은 <측정불능의 경험>에 속할 뿐이다.

<측정불능의 경험>은 그 역시 경험되고는 있지만 우리의 인식에는 거의 붙잡히지 않는 경험들이라 할 수 있는데, 크게 보면 이것은 <모호한 느낌의 경험들>과 <숨어 있는 경험들>로 나눌 수 있겠다.

<모호한 느낌의 경험들>은 지극히 희미하게만 경험되는 것들이라고 한다면, <숨어 있는 경험들>은 그런 희미한 느낌조차도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그야말로 무자각으로 숨어 있는 경험인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도 전혀 가늠할 수도 없는 그러한 경험 차원에 해당한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이러한 점을 매순간마다 항상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인식에 죄다 파악되지 않을 뿐이다. 바로 그 점에서도 형이상학은 분명한 <상상력>이 요구되고 있다. 정합성과 논리성을 갖춘 자유로운 <상상력의 비행>은 우리 <경험의 구조>를 해명함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경험의 구조>라는 것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겠다.

한편으로 보면 이는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 작업에 다름 아니기도 한 것이다. 인류의 지성사는 이처럼 모호하거나 무자각적인 이러한 총체적 양상의 경험들을 보다 명료한 언어를 갖고서 합리적으로 해명해보려는 열망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좀 더 우리 안의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고 전망의 예측성을 좀 더 높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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