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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좋다/싫다"와 "옳다/틀렸다"의 표현들, 어떻게 볼 것인가 : 감성과 이성의 문제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4-13 10:49 조회(834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1/53 




<정서적 차원의 감성>과 <논리적 차원의 이성>의 상관성에 대한 고찰 
 
 
 
"좋다/싫다"라는 말도 결국은 "옳다/그르다"에 대한 정서적 표현일뿐
 
우리는 흔히 “좋다/싫다”라는 것과 “옳다/그르다”를 구분하면서, “‘좋다/싫다’라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옳다/그르다’라고 해선 안된다”라는 얘길 곧잘 들을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얘길 하는 그 배경에는 “사람은 ‘옳다/그르다’의 잣대로서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얘기가 담고 있는 뜻도 충분히 숙지하면서, 여기에서조차도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고 본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언급들, 모든 얘기들은 기본적으로 판단작용을 하지 않는 게 없을 정도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대화하는 모든 언급들은 결국 판단작용에 서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맨 처음에 언급했던 말인, “‘좋다/싫다’라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옳다/그르다’라고 해선 안된다”라는 얘기조차도 일종의 판단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안된다’는 판단을 이미 내리고 있잖은가. 그렇게 말하는 그 자신 역시 이미 판단을 내리고 있으면서 오히려 상대에게는 “‘옳다/그르다’의 판단을 내려선 안된다”라며 상대방의 판단 자체를 봉쇄시키려한다면, 그 자신 역시 상대에 대한 폭력을 저지르고 있음을 분명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이미 “싫다”라는 표현의 함축에는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는 함축도 함께 담겨 있다. 단지 그 이유가 모호하여 뭐라고 명료하게 표현하기가 힘들기에 흔히 쓰는 말로 “그냥 싫다”라거나 “싫으면 싫은 거지 이유가 어딨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실은 이유는 분명히 있다. 단지 그 자신도 명확하게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만일 싫어하는 그 이유가 정말로 하나도 없는데 싫다고만 한다면, 그것은 싫어하는 그 상대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 히틀러에게 “왜 그토록 유태인을 증오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만일 히틀러의 답변이 “이유 없어. 그냥 싫은 거야”라고 답변했을 경우, 이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물론 히틀러의 경우는 사유적 폭력에다 행태적 폭력까지 겸비한 경우일 게다. 
 
하지만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도 해도 적어도 그 사유와 배타적 태도에서의 폭력 역시 엄연한 폭력인 것이다. "내가 싫으면 싫은 거지 뭔말이 많냐"고 하는 것은 나의 배타성에 대한 이유만큼은 절대 "묻지마!"로 군림되는 것이다. 마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솔직한 의문들에 대하여 "무조건 믿어라!"고 억압하듯 말이다.
 
따라서 이렇게 생각함이 좋다. 즉, 우리의 모든 언변들과 모든 사항들은 결국은 “옳다/그르다”의 판단에 속해진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한, “좋다/싫다”라는 것도 “옳다/그르다”에 상응하는 다른 표현일 뿐이다. 흔히 내뱉는 “좋다/싫다”라는 말은 합리적이고 명료한 의식의 차원보다는 좀더 낮은 차원의 판단작용의 표현들이다. 여기서 낮은 차원이라는 얘기는 우리 경험의 심층에 자리한다는 의미다.
 
다음과 같은 표를 한 번 보자.
 

의식적 차원(지성)

-명료함

옳다-그르다

(설명의 차원)

머리 : 논리적 차원
(경험의 상층부)

무의식적 차원(감성)

-모호함

좋다-싫다

(기술의 차원)

가슴 : 정서적 차원
(경험의 심층부)

 
 
정서나 감성은 경험의 가장 근원적이고 심층적인 차원
 
여기서 화살표 위로 올라갈수록 우리는 명료함을 획득한다. 반대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안개 속에 가려진 것처럼 뚜렷하지 않은 모호함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험들을 곧잘 할 때가 많을 것이다.
 
나는 저 사람(사물)이 너무 좋은데, 그 이유가 뭔지 잘 모를 만큼 마냥 좋다던가, 나는 저 사람(사물)이 싫은데 왜 싫은지 그 이유가 명확하게 잘 떠오르지 않는 경험들 말이다. 또는 웬지 모를 불안감 같은 경험들.. 등등 이러한 감각들을 우리는 일상 속에서 곧잘 경험할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를 일컬어 전문용어로 <인과적 효과성>causal efficacy으로서의 지각 사태라고 일컫는다.
 
이것은 경험의 가장 근원적인 차원이다. 명료하지 않지만 느낌을 갖는 차원이며, 의식상에 명확하게 떠오르기 이전의 무의식층에 더 많이 기반되어 있는 감각적 느낌이다.
 
반대로 왜 좋고 싫은지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차원들, 왜 내가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는 차원들, 이러한 감각의 차원을 백두는 <현시적 직접성>presentational immedicy의 지각이라고 일컬었다. 혹시 난해한 학문상의 표현들이 힘들다면, 그냥 명료하게 인지되는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나는 저 사람이 왜 좋은지에 대한 이유를 아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고 인지하고 있는 차원이다.
 
물론 인간에게는 이 두 가지 양태가 언제나 뒤섞여 있다. 이때 나 자신이 상대와 교감할 때 먼저 오는 차원은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차원이다. 명료하게 이해하는 의식적 차원은 언제나 그 이후에 획득되는 차원이다. 낯선 느낌, 문득 드는 불안감, 낯익은 듯한 호감 등등 이러한 차원이 먼저 선행된다는 것이다.
 
<이성>이란 무엇인가
 
따라서 인간을 일컬어 이성적 존재라고 하는 말은 틀린 얘기다. 인간은 결코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비이성적일 때가 훨씬 많다. 인간은 결코 머리형의 존재가 아직 못된다. 언제나 감정의 선을 따라 좌우될 만큼 기복이 심한 패턴을 보이는 불안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이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일종의 고위적이고 2차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는 많은 욕구들을 가지고서 살아간다.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놀고 싶고 등등 곧바로 느끼는 1차적인 욕구의 차원이 있다면, 이성의 차원은 이러한 1차적 욕구들을 다시 한 번 더 치리하는―혹은 다스리는― 2차적 욕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내 몸이 1차적으로는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의 현재 상황을 한 발짝 더 깊게 생각해보니까 그래선 안된다는 점을 자각할 때, 우리는 그 1차적 욕구들을 다시 한 번 치리하게 된다. 이성이란 바로 1차적 욕구를 치리하는 또다른 2차적 욕구를 의미할 따름이다. 이때 이러한 욕구들의 치리에 대해 가장 효율적인 고차원적 차원이 바로 수학적 지평인 것이다. 수학은 인류가 발명해낸 것 가운데 가장 진리에 가까운 개념놀이인 것이다.
 
그런데 이때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나는 지금 머리형 인간 혹은 이성적 인간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얘길 하려는 게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보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바로 머리와 가슴이 온전하게 통합되는 차원의 전인적 인간이다. 즉, 근본적인 문제는 머리형이든 가슴형이든 이 두 가지 지평이 한 사람 안에서 서로 괴리될 때 자아분열증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머리와 가슴이 통합된 그러한 사람을 찾기란 힘들 수 있겠지만, 어쨌든 항상 그 지향점만큼은 머리와 가슴의 통합적 차원으로 나가야 하는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믿는 예수에게서 그 탁월한 건강성을 느끼고 있다.
 
머리와 가슴의 통합뿐 아니라 온몸을 상향시키는 훈련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수련
 
흔히 감정과 정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말하길, “머리로 알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알아라”는 말도 곧잘 내뱉곤 하는데, 언뜻 듣기엔 상당히 그럴듯하고 멋있는 말 같지만, 이는 엄연히 틀린 말이며, 여전히 결핍을 갖고 있는 표현들일 뿐이다. 보다 더 온전하게 이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머리 뿐 아니라 가슴도 포함하여 온몸으로 알아라”라고 말해주는 게 더 적절할 것이리라.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 혹은 그 사물에 대해 그것이 내게는 왜 좋고 싫은지에 대한 이유를 그 자신조차도 명확하게 잘 모르고 있다면, 한 번쯤 곰곰이 그 이유를 찾아서 밝히 알아둠이 좋다. 왜냐하면 그 같은 여정은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무의식적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명료한 의식의 차원에서는 옳고 틀리고 하는 사항들이 명확하게 인지되지만, 좋다 싫다의 차원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의식에 떠오르기 이전의 그 심층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의식의 차원>과 <무의식의 차원>은 서로 괴리되지 않고 통합이 되는 차원을 지향할 때 그 자신의 Self(자기)는 건강해진다. 심리학 같은 분야들은 보다 무의식을 탐험하는 전문 분야로서 특히 인간에게서 보여지는 감정과 정서의 차원들을 매우 중요시한다. 건강한 셀프를 가진 사람은 가능하면 자신의 무의식적 지평을 의식의 차원에까지 되도록 끌어올려서 통합을 지향한다. 그럼으로써 무심코 내가 왜 그랬는지 혹은 왜 내가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해서 밝히 체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이 통합의 차원의 지향은 단순히 개인 안에서 해결되는 개인주의적 성격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물론 자신의 신체적 느낌들이 많은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것은 주변의 생활환경과 이를 넘어 세계 사회가 돌아가는 사태와도 관계되어 있다. 즉, 내 몸은 내 개인을 넘어서 연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앞서 내가 말한 그 통합의 차원이라는 것은 세계 안의 모든 것을 내 안으로도 능히 소화하고 품어내는 차원인 것이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Self가 바로 그러한 차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물론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해 싫어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다. 그것 자체가 일어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결코 나쁘거나 틀린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작 더 중요한 점은, 우리가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그 연유들을 밝히 이해함으로써 가능하면 온전하게 내가 점차적으로 세계를 품어나가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Self가 치유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건강>의 형이상학적 표현은, 곧 과정적 통합에서의 능동적 조화harmony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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