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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모더니즘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10-08 21:43 조회(8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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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한 시대를 지배하는 학문적, 예술적 경향을 대변하는 용어들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한계를 정하는 일인데, 어떻게 한계를 정한다 할지라도 그 범위를 벗어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더니즘'의 경우에는 그 어려움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배가된다. 그 이유 중에는 '모더니즘'이라는 현상에 본연적으로 내재하는 것도 있고, 우리의 경우에 각별하게 큰 의미를 지니는 특수한 것도 있다.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에 앞서 그러한 난점들에 대해 먼저 논하는 것은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 따라 그 정의가 상당히, 때로는 정반대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의 논지를 정제시키기 위하여 그 문제점들을 먼저 진단하고 나름대로의 처방을 제시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밟아야 할 단계라고 생각된다.

먼저 정의를 내리기 어렵게 만드는 본연적인 난점들에 대해 고려해 보자. 첫 번째로 넘어서야 하는 난관은 '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학문 분야에 따라,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상환 교수가 말하고 있는 "세 얼굴"의 모더니즘은 각기 다르게 이해되고 있는 모더니즘의 면모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분류이다. 그 첫 번째는 사회과학적 관점의 모더니즘이다. 이것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서구적 합리주의'를 지칭하거나 암시한다. 서구에서 합리화의 과정이란 주술의 지배력으로부터 세속적 문화가 점진적으로 해방되어가던 과정과 병행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와 관료주의적 행정 체계의 확립으로 귀결된다. 이런 의미의 모더니즘은 문화적 영역이 이론적 자율성을 획득하고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와 국가 중심적 행정 제도가 완비되는 시점에서 실현되며, 이런 모더니즘이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 시점은 1800년 전후로 추정된다. 두 번째로는 문예사적 관점에서의 모더니즘을 상정할 수 있다. 그것은 도시의 군중 속에서 자신을 의식하는 시인인 보들레르를 전환의 시점으로 하여 낭만주의의 핵심에 해당하는 루소적 자연관이 역전되는 시기인 1850년대가 그 기점으로서, 농경 사회에서 탈피하여 공업 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던 시기의 도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조를 말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모더니즘은 철학적 관점에서 본 것으로서,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종류의 모더니즘보다 훨씬 심층적인 차원의 지각 변동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철학적 모더니즘은 수학이 자연 과학의 언어로 확립됨으로써 귀결되는 사물의 이해의 변화 과정에 기원을 둔다.

이 세 가지 종류의 모더니즘은 각기 타당성을 지니며 각기 다른 차원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때때로 이렇게 다른 면모의 모더니즘이 서로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국면에서 논의됨으로써, '모더니즘'이라는 주제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하더라도 논쟁의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내용을 염두에 두고 논쟁을 진행시켜 결과적으로는 어떤 합의도 이끌어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맥락에서의 '모더니즘'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처음부터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오해의 발단을 없앨 수 있는 길이다. 본고에서는 두 번째의 모더니즘, 즉 문예사적 관점에서의 모더니즘에 국한시켜 논하려 하며 결론에 가서는 그것이 더 넓은 맥락에서 지니는 의미를 간략하게 밝히려 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첫 번째와 세 번째의 '모더니즘'은 그 내용에 있어서 이 책의 다른 부분--예컨대, '합리주의' '계몽주의' '실증주의' '상대주의' 등등--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문예사적인 관점에서의 모더니즘이 아직 우리의 실정에서 그 자체를 위해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바가 없었던 것 같다는 과문의 소치일지도 모르는 필자의 판단 때문이다.

모더니즘의 정의를 내리기 어렵게 만드는 두 번째의 본연적 이유는 그것의 시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모던'이란 '현대'를 가리킬 수 있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던'이란 어떤 시대이건 전통적인 것과 결별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시각이나 감수성을 창출하려던 행위들을 가리키는 형용사일 수 있다. 그럴 경우 그 단어에는 어떤 특정의 역사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배태시켰던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예술적 감수성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율배반 때문에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혼란이 발생하고,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까지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라이오넬 트릴링의 말을 빌린다면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너무도 급격하게 바뀌어서 이제는 상반되는 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예컨대, 첫째로 우리는 지금은 소멸하고 있거나 혹은 소멸한 특징적인 양식상의 단계를 지칭하기 위하여 '모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토모던, 포스트모던, 네오모던 등과 같은 용어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그 말을 통해 언제 어디서건 영속적으로 무엇인가 사물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만드는 것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개념 정의상의 문제를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문예사적인 면에 있어서 우리는 대체로 20세기로의 전환점을 전후한 몇십년간을 모더니즘의 시대라고 통칭한다. 그러나 18세기의 소설인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나 <라모의 조카>,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람 섄디>와 같은 작품들은 현대 소설의 모든 특징들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들을 '모더니즘'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아닌가? 어떤 방향으로 대답이 나오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는 과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현대적(moderne)이 되어야 한다"는 랭보의 선언을 모더니즘의 표어로 받아들일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즈음 계속하여 창출되는 새로운 문물을 따라가려는 시도는 '모던'인가 '포스트모던'인가? 이러한 딜레마는 '모던'이라는 용어가 갖는 공시성과 통시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그 양자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정의를 내리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성급한 패배주의일 뿐이다. 필요한 것은 주어진 제약 속에서 적용 가능한 틀을 정하고 그 속에서 작업을 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본고에서 설정하려는 모더니즘의 틀은 20세기로의 전환점을 전후한 몇십년간의 새로운 실험 정신을 구현한 예술적 미적 감수성이라는 다소간 막연한 것이다. 시기가 모호한 것은 본디 도시 중심적인 모더니즘 운동이 유럽과 미국의 각 도시에서 핵심을 이루었던 시기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며, 이 시기의 예술적 문학적 창작물들 중에서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들과 다른 것들을 구분시키는 근본적인 기준이 실험 정신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더니즘의 정의를 내리기 어렵게 만드는 모든 난점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더니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 언제나 새로워지려는 실험 정신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실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완전히 발굴이 끝나 잔디를 심고 도로가 포장되어 이정표 팻말이 붙은 유적인 것처럼 모더니즘이 대표하는 장소에 대해 냉정히 조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현상의 본질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에 정의를 내린다는 일은 매너리즘에 입각하여 그 현상을 고정관념화시키는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모더니즘의 정신에 가장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더니즘을 문화와 예술에 국한된 현상이라고 파악한다고 할지라도, 여기에는 상징주의, 퇴폐주의, 인상주의, 이미지즘, 보티시즘, 표현주의, 미래파, 다다, 초현실주의 등등 때로는 서로 합치되고 때로는 서로 상반되는 방향을 가리키는 사조들이 포괄된다.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일관된 정의로 묶는다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어떤 체계적인 정의를 내린다기보다는 이 현상들이 지니는 특징적인 단면들을 모자이크 식으로 조립하거나 혹은 캐리커쳐 식으로 다루어 그 윤곽이 드러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다음으로 논해야 하는 것은 모더니즘에 대한 정의를 어렵게 만드는 우리만의 특수한 상황이다. 불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모더니즘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먼저 존재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의 열기 속에서 정작 그것의 모체가 되었던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는 잊혀지거나,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간략하게 대비시켜 설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모더니즘의 이해에 그것이 끼친 악영향은 상당히 심각하다. 그 첫 번째의 해악은 모더니즘을 이해하려 할 때 그 자체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과 대비시켜 봄으로써 결과적으로 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반대되거나 대립되는 사조인 것으로 인식시킬 소지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초판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룬 항목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논리적 계승이면서 동시에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단절이다"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어떤 방식으로든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사용할 리가 만무하다는 논거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차별성에 더 큰 비중을 두며 다루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논리적 계승이자 동시에 비판적 반작용이라면 마땅히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그 자체를 위하여 이루어지고 난 연후에 포스트모더니즘이 계승하거나 단절시킨 측면이 고려되어야 하나 오히려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 당연한 논리적 결과의 하나는, 원래 모더니즘의 본질적인 속성이었다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수용하여 확장시켰던 측면들까지도 때로는 모더니즘에는 존재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만의 특성인 것으로 간주되거나, 기껏해야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함께 나누고 있는 공통점 정도인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 그것보다 더 큰 해악은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체적인 현상이 그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지니는 다양성을 반영하며 파악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개념화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립되는 하나의 '개념'으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당 부분 해체적 전략과 동일시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비된 모더니즘의 모습은 거대 담론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통일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틀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모더니즘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환원주의적으로 보는 것이며, 그것은 각 시기마다 각 나라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정당한 평가로서는 미흡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해악에 대한 해독제는 모더니즘이 역사 속에서 지니는 시간적, 공간적인 다양한 면모를 구체적으로 복원시켜, 비역사적인 성격을 지니는 이 용어의 역사성을 찾아주는 작업이다. 그 작업은 본고의 범위를 벗어나는 방대한 작업이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먼저 모더니즘 출현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고, 다음으로 모더니즘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를 '개념'이 아닌 '역사적 사실'의 차원에서 해명한 뒤, 모더니즘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에 대해 결론적으로 논하려 한다.



II



1851년에는 런던에서, 1867년에는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김상환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기계의 신화'가 탄생한 역사적 시점으로서, 바로 그 시기에 서구는 농경 사회에서 탈피하여 공업 사회로 들어갔다. 그는, 다량의 공업 생산품은 예술적 생산품과 경쟁하면서 미학적 지위를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현대적 의미의 모더니티는 낭만주의적 자연 예찬을 대신하는 도시적 감수성에서, 그리고 전통적 예술미에 도전하는 기계적 인공미와 더불어 탄생하고 있었다고 논한다. 이런 간략한 모더니즘의 역사적 배경은 19세기 후반기에 발생하였던 여러 가지 변화와 만족스럽게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실로 19세기 후반기에 일어났던 제2차 산업혁명은 1차 산업혁명과는 기술이나 규모의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변화를 초래하여, 산업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의 여러 방면에 있어서도 미증유의 변혁을 파생시켰다. 자본주의의 계속적인 팽창의 결과로서 19세기 말에 이르면 부르주아 계층이 자신들이야말로 진보의 필수적인 열쇠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인구가 증가하고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소비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소비 시장이 확대되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을 시민으로 만들려던 민족주의적 계획의 일환으로 서구의 각국에서 촉진된 국가 교육의 결과로서 문맹율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소비자의 숫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자본주의 신문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영국,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태동한 선정적 저널리즘은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연재물이나 문예란을 만듦으로써 새롭게 만들어진 대중 시장을 파고들었다. 예컨대, 비인의 부르주아들이 탐독하던 신문의 문예란인 페유통(feuilleton)에서는 다루는 주제의 사실성보다 비평가나 보고자의 주관적인 반응, 감정의 기조와 같은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따라서 그 문체에 있어서는 형용사들이 명사를 현란하게 수식하였던 것이다.

권위있는 서양사의 한 개설서에 따르면, 현대의 문학과 예술은 이런 세태의 흐름에 대한 반발로서 대중으로부터 더욱 멀어져갔다고 한다. 잠시 그 논지를 따라가보자: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저널리즘의 발전은 작가와 예술가들로 하여금 속물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문화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그들은 예술과 문학의 목적은 대중에 영합하는 것도 대중에 도덕을 설교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단지 영원한 진리와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하여, 즉 예술 자체를 감상하기 위하여 예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낮은 취향의 대중들과는 떨어져 자기들끼리 서로의 교감을 구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부여하였다. 그들의 작품에는 사회로부터 떨어져 살고 싶을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떨어져 살려는 그들의 자의식적 욕구가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1850년대의 식자층은 디킨스의 소설이나 도미에의 판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읽고 감상할 수 있었지만, 1900년대에 들어 사람들은 폴 세잔의 그림이나 폴 발레리의 시에 대해 이해하기조차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예술가와 대중은 동일한 언어로 이야기하기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더니즘의 예술과 문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훌륭한 요약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대부분의 예술가나 문필가들은 본디 출신이 부르주아로서, 자신이 속했던 그 계급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 반드시 거리를 두려고 의도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에 대한 해명은 어떤 통계적 자료나 인과적 설명보다도 토마스 만의 자전적 단편소설 <토니오 크뢰거>의 내용이 훌륭하게 제공할 것이다. 예술가로서 비평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토마스 만의 분신 토니오 크뢰거는 예술과 삶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데, 그의 친구인 이바노브나는 그의 본질을 간파해낸다. 그것은 토니오 크뢰거가 "무엇인가 모자라는 부르주아"(bourgeois manqu )라는 것이다. 즉, 예술로 길을 잘못 접어든 부르주아라는 것으로서, 토니오 크뢰거는 삶에 거리를 두고 관조해야 하는 예술가의 길을 걷지만, 그 부르주아의 삶을 남모르게 동경하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것과 동화되려고 하는 양면성을 승화시키려는 인물로서 그려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모더니즘 계열 예술가나 문필가들의 대중들과의 괴리는 시초부터 범주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심화되었던 것이며, 모더니즘이 지니는 진정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부르주아였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배출한 사회와 결별하게되는 과정에 앞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이 새로운 종류의 예술가들이 타도하고자 하였던 종래의 미적 감수성이다.

모더니스트들이 공격의 목표로 삼았던 조류는 19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사실주의(realism)이며, 그것을 지탱시켜주던 사회 집단은 특권 귀족 계층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근세 초 유럽의 대중 문화>에서 피터 버크가 논하는 바에 따르면, 원래 사회의 모든 계급은 대중 문화의 여러 측면에 참여하였다가 종교개혁 이후에 상층 계급이 평민들의 관례로부터 물러났다고 한다. 자신들만의 문학적, 고전적, 학술적, 궁정적 문화를 소유하고 있던 그들의 이탈은 1800년 정도에 이르러 완결된다. 또한 <라블레와 그의 세계>에서 보이는 미하일 바흐친의 주장에 의하면, 카니발로 요약되는 대중 문화는 참여의 문화로서, 여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참가했다. 모든 사회적 정신적 위계질서는 풍자되고 전도되거나 무효가 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신성한 것과 불경스러운 것, 정신과 육체, 공연자와 관람자가 뒤섞여 어우러진다. 바흐친에 따르면 이러한 카니발레스크의 정신은 르네상스 이후 귀족층의 고급 문화의 저류에 잠복하여 있다가 플로베르와 마네로부터 시작하는 모더니스트들의 반역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게 된다.

버크와 바흐친의 논지를 종합한다면, 모더니스트들의 반역은 19세기 전반까지 풍미하던 귀족이나 상층 부르주아의 문화에 대한 재검토에서 출발한다. 그 사실주의(寫實主義) 문화의 특징은 문어적(literary)이고 모방적(mimetic)이다. 즉, 글로 된 것이 아닌 예술의 경우에도 예술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며, 묘사하는 대상을 모사하듯이 전달하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관학파 예술의 주된 미학적 원리는 모방과 서술이었던 것이다. 풍경화를 그린다고 하더라도 "사실적이고 설명적인" 묘사가 필요했으며, 단지 보이는대로 그린다는 인상파의 현대성은 이런 측면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관람자들은 환각적인 삼차원의 명암 대비를 통해 화폭의 평면성을 잊도록 요구되었다. 그림은 이야기를 말해야 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역사를 다룬 그림이었다. 그것은 역사적, 신화적, 성서적 사건들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고급의 문학 수업을 받은 사람들만이 감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사실주의를 이루는 한 가지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는 전통을 중시하는 역사주의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으며, 모더니즘은 전통이나 역사와의 의식적인 결별을 추구하던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갱, 고호, 피카소의 영향에 대해 허버트 리드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은 모더니즘의 이런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유럽 회화 예술의 논리적 발전 과정이나 어떤 역사적 유례를 찾을 수 있는 발전 과정이 아닌, 모든 전통과의 급격한 단절에 관심을 지닌다. [......] 지난 다섯 세기 동안의 유럽 회화의 목표는 이제 공개적으로 포기되었다." 경제학의 역사학파에 대한 반발에서 태어난 한계효용학파에 의해 출발된 반역사적 태도는 정신분석학, 음악, 철학, 건축 등으로 파급되어, 모더니즘의 위대한 지적 혁신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의식적으로 자신들이 자라났던 19세기의 자유주의적 문화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역사적 전망과의 결별을 추구했던 것이다. 예컨대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무용시인 <월츠>는 19세기의 급격한 사멸을 기록하였다. 즉, "회의는 춤춘다"던 메테르니히의 비엔나 체제, 명랑하고 안정된 비엔나의 오랜 상징이었던 월츠는 이제 라벨의 수중에서 죽음의 무도회로 바뀌었다. 그것은 중앙으로부터 분리되어 전체로부터 벗어나려는 불협화음의 와중에서 갑자기 휴지부가 등장하여 곡이 정지된다. 전체성의 혼란 속에 끝을 맺는 이 무용시는 음악 기법의 면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19세기 자유주의적 오스트리아의 붕괴를 찬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이나 역사와의 결별을 보여준다. 다른 측면에서 모더니즘의 역사와의 결별을 보여주는 예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바우하우스에서 고안해낸 가구의 도안이나 건축의 설계이다. 그것은 기하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실용성과 미학적 감수성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전 시대의 건축물이나 공예물에서는 고딕, 바로크, 로코코 등의 시대적인 양식상의 특징이 나타나며, 이에 따라 어떤 예술품을 볼 경우 그것을 역사상의 특정 시대와 결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적 실험 정신의 산실이었던 바우하우스에서 고안해낸 창조물에서는 그런 역사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19세기 말에 출현하여 20세기에 개화된 실험적 모더니즘은 도시의 예술, 그것도 대도시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파리, 베를린, 비인, 뮌헨, 모스크바, 뉴욕, 런던, 취리히 등등의 문화적 수도에서는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예술을 위한 분위기가 열렬히 고조되어 자국의 문필가나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부터 지적 편력을 구하려던 자들이나 망명가들이 모여들었다. 카페, 카바레, 잡지사, 출판사, 화랑 등이 모여있는 이러한 도시에서는 새로운 미학이 정제되고, 새로운 운동이 다투어 등장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명분이나 유형을 위한 투쟁과 도전이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도시들은 우연히 만들어진 사람들의 회합 장소가 아니었다. 이 도시들은 새로운 예술을 배태시킬 수 있는 환경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지적인 긴장과 충돌의 중심지였다. 낭만주의 문필가들이나 지식인들은 도시의 악, 인간상, 번잡함, 즉물성과 같은 것들을 혐오하며 목가적 문학이라는 유형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제 모더니스트들은 예술과 경험과 현대의 역사에 대한 체험을 얻기 위해, 그들의 예술적 잠재력의 충실한 구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시로 향하였다. 보들레르, 도스토예프스키, 디킨스, 제임스 조이스,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등등의 많은 작가들에게 있어서 도시는 장소라기보다 하나의 메타포로, 하나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도시 내에서 모더니즘 계열의 예술가나 문필가들은 자신들이 어느 정도 망명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에서, 즉 일종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신들의 관점을 찾기도 했고 전망을 구하기도 했다. 이런 거리감이나 망명의 상태라는 것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떠났다는 것 뿐만 아니라 계급에의 충성으로부터도 떠났음은 물론 전통적인 응집적 문화 속에서 각자에게 할당된 특정한 의무나 충성으로부터도 떠났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도 모더니즘은 전통이나 역사와의 의식적인 절연이라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에 집착하고 헤밍웨이가 미시간의 숲에 집착하듯 작가들이 한 지역에 매달려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경우에도 그들은 미학적 국제주의, 혹은 세계주의라는 망명자적인 거리를 둔 관점에서 자신들의 고향을 인식했다.

모더니스트들은 전통이나 역사와의 유대는 끊었지만 그 대신 새로운 유대감을 발전시켰다. 즉, 그들은 자신들 내부의 교류를 강화시키며 세계시민주의에 입각한 문화의 제국과 흡사한 것을 건설하였다. 대도시 내에는 예술가들의 세계주의적인 구역이 존재하며, 이곳이 이른바 보헤미아 같은 곳으로서 이곳에서 예술의 기능이 수행되었다. 파리의 몽파르나스, 런던의 소호,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같은 곳이 그런 지역으로서, 프랑스의 전위예술에 대한 책인 <향연의 해>를 저술한 로저 샤툭은 그런 지역의 분위기에 대하여 '세계주의적 지역주의'라고 표현하였다. 문화 인사들이 그런 지역에 몰려있었음에도 그곳이 세계주의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지역에서 발산되었던 영향력들이 다른 지역에 쉽게 전파되어 국제성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작가나 예술가들 자신이 여러 도시를 편력하며 문화를 연결시켜주는 교량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그런 영향력이 쉽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미국은 나의 나라지만, 파리는 나의 고향이다"라고 말하였던 미국의 여류 소설가 저트루드 스타인은 20여년간을 파리에서 생활한 뒤 미국으로 되돌아가 미국의 소설과 유럽의 입체파를 연결시켰고, 스트린드베리는 남쪽으로 여행하며 스칸디나비아의 희곡과 중부 유럽의 표현주의를 연결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파리와 같은 대도시들은 붕괴와 혼돈과 타락의 와중에서도 적극적이고 급진적이지만 통제되어 있는 이상적인 세계주의의 수도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대도시에 근거를 두고있는 모더니즘의 주창자들이 사실주의의 역사성과 결별을 선언하였던 결과 이제 전통적인 가치는 문화의 거의 모든 측면에 있어서 현대적 정신의 소유자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면, 의도적인 역사성의 거부에 따른 전통 상실의 결과로 나타난 불확정성의 감정은 오히려 실험적 정신을 배양시킬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였다. 예술가들은 사실주의가 그다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실재'(reality)를 천착하면서 자신들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 매체의 성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공간을 화폭의 평면에 집어넣는다는 허구성에 대한 회의가 입체파의 감수성으로 연결되었고, 도전을 받아본 일이 없었던 8음계의 지배에 대한 의혹이 무조성과 12음계의 음악을 탄생시켰다. 어쩌면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 전략의 맹아는 아마도 이런 모더니스트들의 실재에 대한 철저한 의문 제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논한다 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 매체인 언어의 성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작가들은 언어가 결코 실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됨으로써, 의사를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라는 관념이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토니오 크뢰거는 자신이 사랑하지만 접근할 수 없었던 부르주아 친구들인 한스 한젠과 잉게보르크 홀름과의 문제가 "자신의 언어가 그들의 언어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희곡 <윤무>는 사람들의 말이 그들의 생각과 어떻게 다르게 발설되는가를 여러 상황을 통해 정교하게 표현함으로써 언어의 나약성을 노출시켰다. 한편 슈니츨러와 동시대 동향인인 후고 호프만슈탈은 <찬도스 경의 편지>에서 언어를 재생시키려는 가능성에 대한 극단적인 회의를 표명하면서, 언어의 미래는 언어가 아닌 언어, 혹은 언어 이전의 언어에 존재할 것이며, 그런 언어가 발견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침묵이라고 시사했다. 호프만슈탈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재해석하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오페라 <엘렉트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인 엘렉트라로 하여금 "우리처럼 행복한 사람들에게 맞는 일은 단 한가지 뿐이야. 입을 다물고 춤이나 추자!"라고 말하게 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불신을 명료하게 하였다. 물론 언어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의문의 제기가 곧바로 그에 상응하는 해결책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천착의 시도 자체가 현대의 불안감의 증거로서, 새로운 실험 정신을 위한 밑거름으로서 작용하였다는 사실마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서 남겨두었던 주제로 되돌아갈 시점이 되었다. 즉, 태생적으로 부르주아였던 예술가와 문인들이 자신들을 배출하였던 계급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등을 돌리게 되는 상황에 대해 논할 시점이 된 것이다. 부르주아 예술가들은 '부르주아'라는 형체를 잡기 어렵고 여전히 변화하던 계급 내에서 불안정한 지위를 차지하던 집단이었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 자체에 대해 양면적인 감정을 표출하였다. 귀족이나 궁정의 후견인 제도가 사라진 뒤, 그들은 개인적인 위촉이나 익명의 구매자를 위해 중산 계급에 더욱더 의존하게 되었다. 반면 예술가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증가하여, 궁극적으로 그것은 예술가들을 궁핍하게 프롤레타리아로 만들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문인과 예술가들은 박탈감과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심도 키우게 되었다. 성공적인 예술가라 할지라도 중산 계급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혐오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부르주아 정신'의 확연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산 계급의 즉각적인 물질주의적 향락 문화는 진정한 예술가들의 기질과 맞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들이 택할 수 있었던 대안은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로의 도피로서 그런 꿈은 플로베르에 의해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내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 것에 대해서도 쓰지 않은 책을 쓰는 것, 어떤 외적인 관련도 없는 책을 쓰는 것, 그 자체의 문체의 내재적인 힘을 통해서만 지탱되는 책을 쓰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대안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서, 그 가장 특징적인 예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두 대안은 모두가 모더니즘의 발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에서는 예술가와 문인들의 프롤레타리아화가 이미 19세기 전반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17세기부터 프랑스의 귀족들은 사회적 규약에 의해 상업에서 엄격하게 배제되었고, 리슐리외 추기경의 행정 개혁 이후로 정치적 권력 구조에서도 밀려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치, 사냥 같은 사소한 일에 몰두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예술에 대한 취향을 발전시켰고 예술가들을 후원하였다. 중세로부터 18세기에 걸쳐 예술가들은 후견인의 지원을 받거나 길드에 가입함으로써 생존하였다. 구체제의 말기에 이르면 길드는 대체적으로 붕괴되기에 이르러 "화가나 작가는 그들의 물질적 지위의 결정 요인으로서 사적이건 공적이건 후견인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맡겨지게 되었다." 19세기에 이런 관계는 그것을 배태시켰던 귀족 계급과 함께 퇴조하였다. 프랑스의 부르주아 계급은 귀족들의 예술 취향을 물려받았고, 자산 투자를 위한 기회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술에 그들의 이윤을 낭비했다. 이제 후견인 제도가 시장 경제에 굴복하게 되자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종속 관계에서는 벗어나게 되었지만 확대된 문화적 상품의 시장에서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런 새로운 상황은 예술가에게서 "자신의 재능을 전개시키기에 필수적인 여유"를 뺏어간 것이었지만, 반면 "보다 오래되고 보다 강압적인 형태의 사회 생활이라는 불행한 영향으로부터 문화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예술가들 내부에서의 경쟁이 그들의 집단적 자아 의식과 결합되면서 보헤미아 문화라는 주변적인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것은 이후 아방가르드 문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독일의 경우에 사실주의에 함축되어있는 역사주의에 대한 (아직 모더니즘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대적 반발은 1880년대 초 뮌헨에서 시작하여 베를린과 다른 문화적 중심지로 전파되었던 자연주의 운동이었다. 그것은 부르주아 도덕관과 자본주의를 공격했다. 이런 운동이 배태된 이유로서는 빌헬름 제국 내의 젊은 작가들이 느꼈던 환멸을 들 수 있다. 이들이 배웠던 고전 교육은 인간 정신의 고귀한 이상을 구현하는 고급 문화를 강조하였으며, 이런 교육 제도와 함께 출판업, 신문, 언론, 극장 등등의 새로운 문화적 시장이 크게 확장되었다. 교육과 확장된 시장이 결합된 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작가로 나섰다. 그러나 곧 그들의 숫자는 시장의 수요를 넘어섰고, 그리하여 많은 숫자의 작가들이 문학적인 프롤레타리아로 바뀌게 되었다. 문화계에서 직업을 얻을 전망이 사라지고 수입의 감소에 직면하게 된 이 젊은 세대는 그 당시의 역사주의적인 양식과 자본주의적인 관례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노동 계급과의 만남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프롤레타리아가 됨으로써 노동 계급과의 친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부르주아의 문화에 비판적이며, 예술가의 곤경과 노동자의 투쟁에 동조적인 글을 썼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떤 측면에서 현대 아방가르드의 특징으로 바뀐 사회 전반에 대한 영속적인 반발이라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었다.

한편 자신들이 경멸하는 중산 계급의 부르주아를 겨냥하여 그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 익명의 고객을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만나야 한다는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창조적인 재기를 부르주아의 속물적 취향과 조화시켜야 한다는 갈등을 겪게된다. 그런 내적 갈등이 외적으로 표출되었을 때 그것은 양면적인 성격을 지니는 예술품으로 나타나며, 그런 작품에서는 '애매모호함'이 심미적인 가치로서 새롭게 부각되었다. 서구의 문화사에 있어서 양면성 혹은 애매모호함(ambiguity)이란 언제나 경멸적인 함의를 담고 있었지만, 이제 20세기에 들어서 그것이 현대의 상황을 가리키는 미적 기준으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패러디한 마네의 <올랭피아>는 모더니즘 예술품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그 그림은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인지 추한 여인을 '벗겨놓은' 그림인지 분간이 어렵다. 올랭피아의 눈은 관람자를 바라보는 것 같지만 상세히 살펴보면 그것조차 모호해진다. 어깨의 선은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그린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손을 관찰한다면 손가락의 그림을 마무리지은 것인지 아닌지 말할 수 없다. 창녀를 모델로 했다는 이외에도 그런 여러 이유에서 이 그림은 많은 스캔들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 이 그림이 우리의 미적 감수성의 영역을 확장시켜놓았다는 평결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III



이런 모더니즘의 예술과 문학이 대중들에게 즉각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웠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며, 그 이후 "예술가와 대중은 동일한 언어로 이야기하기를 그만두었다"는 판단 역시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대중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포스트모던 문학에 비교하여 "다분히 엘리트주의적이고 고답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모더니즘은 대중문학에 이렇다 할 만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서둘러 나아간다는 것은 대중 문화의 여러 입장을 수용하려고 시도하였던 모더니스트들의 노력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바흐친의 이론에 따르면 대중 문화를 대표하는 카니발레스크 정신은 고급 문화의 저류에 잠복해 있었다가 플로베르와 마네로부터 시작하는 모더니스트들의 반역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게된다.

굳이 바흐친의 이론을 원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더니즘의 예술가와 문인들이 대중 문화에서 영감을 얻으려 하였던 시도는 도처에서 손쉽게 예를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프랑크 베데킨트, 막스 라인하르트,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같은 극작가들은 독일 전래의 인형극, 무언극, 써커스 등 농민이나 도시의 하층 계급과 관련된 주제들을 무대에 올리려 시도하였고, 프랑스에서는 알프레드 자리, 페르낭 레제, 앙토냉 아르토 등이 같은 일을 하였다. 슈니츨러의 <윤무>는 죽음의 춤이라는 중세 농민들의 의식에서 그 구조를 빌려왔다. 회화에 있어서도 대중적 판화와 농민들의 예술이 칸딘스키, 청기사 집단, 마티스, 곤차로바 등등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피카소와 고갱이 아프리카와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에게서 받은 원시적 상상력을 화폭에 옮긴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쿠르트 바일, 힌데미트, 오르프,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등은 유럽의 민속 곡조를 미국의 재즈와 접목시켰다.

요컨대 모더니즘의 예술가들은 대중 예술의 주제와 형식을 의식적으로 전유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앞 장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예술가들이 전통적인 귀족들의 문화를 배격하고 자신들의 태생적인 부르주아 문화에도 거리를 두게 되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대안을 대중 문화와의 접합에서 찾으려 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전통적인 고급 문화란 역사주의적 문화이며, 그것은 이야기로 된 즉 '말'로 된 문화이다. 그에 대항하려는 모더니스트의 문화는 "입 다물고 춤이나 추자"는 엘렉트라의 대사가 웅변하듯, 언어보다는 몸짓과 행동의 문화이며, 그것은 유럽의 농민들에게 전래되던 문화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와 다르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모더니스트들은 상층 부르주아 문화에 저항하기 위한 반부르주아적 감수성의 원천으로서 대중 문화에 의존하였거나, 고급 문화를 변형시키고 재생시키기 위하여 대중 예술의 여러 측면을 이용하였거나,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서 대중적 문화의 형식을 차용하였다.

물론, 대중 문화의 여러 측면을 이용하려고 의식적으로 시도하였다 하여, 그 결과가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대중 문화가 갖는 사회적, 예술적으로 전복적인 성격을 감지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남부 독일 바이에른의 정치를 주도하던 자유주의적 왕정 관료들과 보수적 가톨릭 정치가들에 대항하려던 오스카 파니차와 프랑크 베데킨트의 시도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시도였다 할지라도, 그 결과에 있어서까지 그런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호소력을 갖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고 고급 문화와 정치적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비민주주의적인 것이었다." 시각적 사실주의와 관학파 회화의 설명적 내용을 거부하면서 유럽의 농부들과 비유럽의 "원주민들"에게서 예술을 위한 정신성을 찾으려던 칸딘스키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가 비록 미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감식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예술 행위에 몰두했다 할지라도, 그의 생존 기간 동안 그의 예술을 추종하던 사람들은 소수의 엘리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대중 문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그들의 고상한 시도를 사소한 것으로 만듦과 동시에 역사의 무수히 다양한 측면에 대한 무관심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이는 대중 문화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대중 문화의 차원을 예술 속에서 복원시키려던 모더니스트들의 시도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모더니스트들이 비정치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결론 역시 일면에 불과한 진리만을 담고 있다. 앞 장에서 진술하였듯 모더니즘의 한 특성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침잠하여 세련된 표현상의 양식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 반대되는 특징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비판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스카 파니차, 프랑크 베데킨트, 막스 라인하르트 등이 시도한 극작과 무대 연출이 대중 예술의 여러 측면을 도입하여 지배 계층의 자유주의적 문화에 대항하려던 것임은 앞에 말한 바와 같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교량'(Br cke) 동인에 속했던 에리히 헤켈이나 막스 펙슈타인의 판화에는 지치고 부상당한 군인의 모습과 같은 것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 그림을 보면서 1차대전에 반대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읽지 않기는 오히려 어려울 정도이다. 또한 표현주의자들의 포스터는 정치적 구호로 가득 차 있다. 왜곡을 통하여 환상을 파괴하고 이야기 외부의 관점을 도입시켜 극의 서술을 중단하는 것은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Verfremdung) 이론의 핵심으로서 그것은 대중 문화의 무대 형식에서 빌어온 기법이다. 이런 장치를 통하여 브레히트가 의중에 두었던 것은 사회적 도피주의가 아니라, 청중들의 사회관을 변혁시키려던 도덕주의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사의 아이러니는 존재한다. 그가 그렇게도 타파하려고 시도하였던 부르주아 계층과 자본주의 사회가 <서푼 짜리 오페라>을 비롯한 그의 극들을 환호하는 청중이 되었던 것이다.

모더니즘과 관련되어 만연되어있는 또다른 오류는, 모더니즘에서는 "한 문학 장르와 다른 문학 장르 사이에 마치 베를린 장벽처럼 높다란 장벽이 가로놓여" 소설 장르와 시의 장르가 결합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이민족과의 결혼처럼 금기시되었다"는 판단 및 고전 음악과 대중 음악의 영역을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잠깐만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허구성이 쉽게 입증된다. 이미 설명하였듯 모더니스트들은 대중 문화의 여러 차원을 창작 행위 속에 투입하려는 시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여러 가지 장르에서 시도한 바 있었다. 보들레르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비평가였으며, 오스카 슐레머는 무대 장치 디자이너이자 무용수였으며, 칸딘스키는 화가이지만 네 편의 희곡을 저술했고, 쇤베르크는 무조성의 음악을 창출하면서도 많은 풍경화를 남겼다.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에서는 철학자건 소설가건 시인이 되기를 갈망하며 시인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현대적 실험 정신의 산실인 바우하우스는 영역을 넘나드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다른 좋은 예이다.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의 이상이란 예술과 장인 정신을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래된 예술의 학파들이 예술과 기술을 분리시켰기 때문에 건축에 있어서의 통일성을 산출할 수 없었다고 말하며, "건축가, 조각가, 화가들은 모두 다 기술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장인과 예술가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라이오넬 파이닝거에 의해 초안된 바우하우스의 선언문은 그런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술가란 최고 형태의 장인이다. 모두로 하여금 속물적인 구분을 잊고 건축, 조각, 회화가 모두 단일한 형상 속에 뭉쳐있는 미래의 새로운 건축에 참여하도록 하여 새로이 출현하는 신념의 순수한 상징으로써 수백만의 장인들의 손으로부터 천상으로 올라가자." 이렇듯 다방면에 걸친 장르의 종합의 결과로서 실용성과 미적 감수성을 동시에 충족시킨 창조적 산물이 인쇄술, 가구 도안, 등잔, 직조, 도예, 제본, 무용 등의 분야에서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모더니즘에 대한 오해는, 모더니즘이 지니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서 문학의 자기 반영성을 강조하면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작품이 창작되는 과정 그 자체를 작품의 중심적인 주제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성격들이야말로 모더니즘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작품에서 그런 면모가 보이는 것은 모더니즘의 결실을 거두어들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토니오 크뢰거>는 작가인 토마스 만의 전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서, 그 작품 자체가 왜 그 작품을 쓰게 되었는가를 고백하는 소설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인 스티븐 디달러스가 제임스 조이스의 분신이듯, 많은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은 작가 자신의 인식의 변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이들은 작가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대한 성찰로 눈길을 돌린다. D. H.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이나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스버그 오하이오>와 같은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도시적인 실존의 상황에 대해 성찰을 하며, 막바지에는 그것을 재해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되는 것이다. 슈니츨러의 다른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구스틀 소위>는 현대인들의 심리 세계를 파고들며 그 상태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제공한다.

이렇듯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모더니즘에 대한 오해나,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모더니즘의 특성의 전유는 모더니즘의 본질적인 성격을 훼손시킬 정도로 만연해있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봇물처럼 쏟아진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시류를 탄 논의 속에서 모더니즘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립되는 '개념'이나 '이론'으로서만 우리에게 존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모더니즘에 대해 실체론적으로 접근해들어가 그 구체적인 다양한 모습 속에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사조를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본고에서 현금의 우리에게 잘못 인식되고 있는 모더니즘의 얼굴을 굳이 지적한 것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빠져들고자 함이 아니라, 건설적인 측면에서 그 역사성을 거부한 사조의 역사성을 찾아주어야지만 우리는 그것을 진정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것이 바탕이 되어야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도 실질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IV



이제 모더니즘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을 정리해보자. 그것은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주관을 객관화시키는 것, 들을 수 없는 마음 속의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만드는 것, 흐름을 정지시키는 것, 합리적인 것을 비합리화시키는 것, 예상되는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 특이하고 비범한 것을 인습화시키는 것, '일상' 생활의 정신병리학을 규정하는 것, 감정을 지성화시키는 것, 영적인 것을 세속화시키는 것, 공간을 시간의 기능으로, 질량을 에너지의 형태로, 불확실성을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로 보는 것." 말하자면 모더니즘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지적 행위와 어느 정도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20세기초 모더니스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의 지적 혁신성과 미적 감각은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실재'에 대해 천착하면서 그들은 종래의 '실재'가 지니는 허구성을 노출시킴으로써 새로운 실험 정신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마련하였다. 거대한 우주의 차원에서 그런 인식은 뉴턴의 절대 공간에 대한 가정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로 이어졌다. 실재에 대한 그런 천착은 인간의 심리라는 소우주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다. 프로이트에 의해 무의식의 세계가 발견되고, 무의식의 세계가 더욱더 확고한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정신병자의 삶이 아닌 '일상' 생활이 오히려 정신병리학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 인간은 하찮은 이드의 지배를 받는 가련한 동물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인간 존재에 대한 다른 차원의 불확정성의 느낌이 싹트게 되었다. 계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모더니즘의 한 속성은 인간 존재를 영원한 불안감 속에 위치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불확정성과 불안감의 다른 한 쪽 끄트머리에서 그것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성숙한 인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오늘날 우리가 모더니즘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통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포스트모던의 가장 본질적인 여러 조건들을 이미 배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모더니스트들은 대중적인 차원의 문화를 수용하려는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것은 대량 문화라는 새로운 규모의 (때로는 조작된) 그물망을 통해 고전주의와 대중 문화를 일원화시킨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남겨진 과업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제기한 문제점이야말로 아직도 우리가 고심하며 풀어야할 우리의 문제로 남아있기 때문인 것이다.

참고문헌

서양의 지적 운동 II
2002-02-20 15:4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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