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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다양성의 생산과 다양성 간의 충돌에 대한 고찰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7-10 11:19 조회(7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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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생산과 다양성 간의 충돌에 대한 고찰    
다양성만 인정하는 데 그쳐선 안되며 다양성의 충돌마저 극복하려는 통합의 지양으로
 
 
 

정강길 minjung21@paran.com

 
 
변증법에서 다양성으로

들뢰즈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변증법>이란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글을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가급적 변증법적 어쩌구 하는 표현이 거의 없다. 그러한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이유는 변증법에는 다양성에 대한 기획들이 봉쇄되는 측면이 있어서다. 흔히 말하는 정반합에 대한 지양에는 의미 생산의 다수성을 간과해버리는 느낌이 있다. 창발적 생산과 다양성을 좋아하는 들뢰즈로선 헤겔의 변증법을 혐오한 까닭도 알만하잖은가.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다양성의 생산은 거의 기초 명제나 나름 없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획일화나 다양성에 대한 말살이란 분명한 반동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알만한 사람들은 나와 다름에 대한 포용과 관용을 역설한다. 알다시피 똘레랑스란 유행어도 나와 다름에 대한 관용들을 주장하잖은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주장하고자 이렇게 썰을 풀고 있는 것인가? 문제는 뭔가?

다양성만으로는 부족, 차이들 간의 <충돌>도 같이 고려되어야

문제는 다양성의 생산만 주장할 경우이다. 만일 나와 다름이라는 이 부분만 인지한다면 우리는 결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히틀러나 부시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다양성의 차원에서 그들을 인정할 것인가? 똘레랑스로서 받아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애초부터 중심화가 거세된 다양성의 기획을 꿈꾸었던 들뢰즈의 한계가 놓여있다.

앞서 변증법이란 표현을 비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증법이 완전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차이(다름)에 대한 충돌에 대한 고찰이 있다. 즉, ‘A’와 ‘not A’에 대한 충돌을 극복하고자 하는 통합에 대한 지양이 담겨있기에 변증법이란 것은 여전히 또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만일 모든 것을 그저 차이(다름)으로만 치부할 경우, 결국 문제에 대한 해결들은 더욱 요원할 뿐이다.

언젠가 최형묵 목사는 90년대 이후의 민중신학을 논하면서, 오늘날의 <다양한 민중신학들>을 얘기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그 다양한 민중신학들이 빚어내고 있는 서로 간의 충돌들에 대해선 고찰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아마도 저마다의 차이(다름)로 치부해버리면 그들에겐 속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성의 기획들에서 고려되어야 할 치명성이 있다면, 그것이 통합의 유용한 효과마저 말살하는 <파편화>를 일삼는다는 점에 있다. 그저 제각각의 입장에서 자기 넋두리들만 쏟아낼 뿐이다. 그리하여 다양성의 정치가 기반하고 있는 근거는 결국 <자기 밥그릇>이라는 근거로 귀결될 따름이다.

학문은 다양성의 기획과 그러한 다양성 간의 충돌들을 해결하려는 통합의 지양이 같이 공존할 때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가 원하는 최선은 <서로를 살려주는 양립 가능한 차이들>의 기획이어야

대화와 논쟁에 있어서도 그 사람의 입장과 나의 입장이 다를 수 있음을 염두에 두는 것은 기본적으로 갖춰줘야 할 태도이다. 정작 문제는 그 서로의 다른 입장들이 상반되게 충돌할 경우인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상대주의적으로 다양성만 인정하는데 그쳐선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 다양성 간의 충돌도 결국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A와 not A를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은 <모순>이다. 무뇌아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때 그 충돌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만일 나의 입장보다 상대의 입장이 더욱 설득력 있을 경우 그 충돌은 내게 있어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성의 창출'도 그 ‘다양성 간의 충돌’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대화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당신은 그저 우리의 대화가 서로 간의 독백들로 난무하는 <모놀로그의 합>에 불과한 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무언가 서로 합의하여 건설적으로 나가보려는 진정한 <다이얼로그>를 추구하는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줄 줄 아는 것은 기본적 태도다. 그런데 이때 나와 다르다고 해서 마냥 충돌만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서로 양립 가능한 다양성의 기획들>이다. 이러한 연유로 진리란 것은 다양성과 통합의 지양이라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이 그 안에 함께 녹아 있는 놀라운 역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늘상 말하지만, 그래서 진리란 다양성의 의미 생산들을 의도하는 온갖 실험적 모험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것을 오히려 반갑게 즐길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모든 다양성들을 꿰뚫어내려는 분명한 자기 확신의 줄기가 스며들어 있다. 화이트헤드가 말했던 <합리주의의 모험>Adventure of Rationalism이란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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