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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 맑스, 유물론, 존재론적 형이상학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11-11 20:07 조회(841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1/28 


[2003-02-03 05:04:20 ]

밑의 글은 Byond라는 분이 www.marxkorea.org 라는 사이트에 올렸던 글인데
이 사람이 본래 화이트헤드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몰라도
오래 전부터 제가 맑스주의자들에게 퍼붓고 싶었던 핵심적 얘길
거의 다 해주고 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암튼 제 견해로는 맑스의 인간해방론은 다시 쓰여져야 합니다..
결국은 별수없이 형이상학에서부터 기초공사하고 집을 지어야 하니까요..

밑에 퍼온 글은 캐나다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시는 전공자분의
홈피 자료실에서 우연히 읽고서 퍼온 글입니다..
퍼온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jazzchul.x-y.net/cgi-bin/board/CrazyWWWBoard.cgi?db=board&mode=read&num=15&page=4&ftype=6&fval=&backdepth=1

현재 이 글의 본래 출처인 www.marxkorea.org 라는 사이트는 클릭이 되지 않더군요..
그렇기에 결과적으론 한 집 건너서 온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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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Marx Korea (www.marxkorea.org)의 토론 게시판에 Byond님이 쓰셨습니다. 드물게 좋은 글이라 생각되어 저자의 동의없이 제 자료실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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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쓴게 마음에 안들어서 두 번의 수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게 마지막 수정글 입니다 ^.^****
 

발상은 자유롭게 사유는 치밀하게
 

몇몇 자유게시판과 토론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다보면 발상의 자유발랄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논거는 비록 미약하지만 어떤 주어진 공식보다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는 모습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가 하나의 교의가 아니라면 그 사상의 발전은 이런 자유로운 발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게다. 하지만 제 아무리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발상은 치밀한 사유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을때 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체계와 논거. 이것이 없이는 분위기에 취해 근본을 잊어버리거나 어지러움에 취해 제 스스로 휘청거리다 끝날수 밖에 없다. 맑스주의가 체계를 부정한다고 하는 항간의 통념은 진실이 아니다. 모든 이론은 체계를 가져야 하고, 그것이 이론인 한 체계를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그 의의를 가질 수 있는 변혁이론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이론적 체계를 부정하는 대개의 이론은 관념적 몽상가의 고독한 백일몽으로 머물거나 혹은 자기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횡행했던, 혹은 횡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1. 헤겔과 맑스

맑스는 철학박사였다. 당연히 그의 논문 역시 인간의 존재이유와 그에 따른 인간적 삶의 전형을 탐색하는 철학적 주제였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본주의=공산주의라는 명제로 집약되어서 경제철학수고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에 반해 헤겔은 개념으로부터 출발해 신에 이르는 절대이성의 정교한, 통일된 체계를 마련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처음과 끝이 완벽하게 이어지는 이론의 완성이 바로 헤겔의 철학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여기에서부터 인간학이, 국가론이, 역사이론이 끄집어 내질 수 있었으며, 당대를 헤겔철학이 지배했던 것은 셸링, 피히테 등의 창조적 생성이론이 갖는 그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이성과 그것의 완벽한 표현인 헤겔철학의 이론적 체계가 얻어낸 승리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맑스는 경제철학 수고에서 헤겔에 대항해 헤겔을 거꾸로 세울 것을 요구하고, 거꾸로 세워진 헤겔이 어떠할 것인지를 예시적으로 보여준다.물론 이 거꾸로 세우기의 핵심은 체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 체계의 생성과정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다. 포이에르바하라는 불의 강을 건넌 맑스는 개념으로부터 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조건인 노동으로부터 인간과 역사를 도출하려 했다. (덧붙이자면, 헤겔의 체계를 비판했던 사람은 정작 마르크스가 아니라 레닌이었다. 특히 [철학노트]에서 자주 그런 언명을 발견할 수 있다. 변증법은 구체적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유명한 경구와 그것의 근거가 서구형이상학의 역사를 거슬러오면서 거듭 지적된다.)

2. 마르크스와 포이에르바하

포이에르바하는 특히 헤겔의 절대정신에 대해 그것이 "인간의 밖에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 사유행위의 밖에 존재하는 사유의 본질"임을 밝혀 내었으며, 이어서 "사유와 존재의 통일은 이 통일의 근거와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파악될때에만 의미를 갖고 진리가 된다. ...그 자체로 고립되고 폐쇄된 사유, 즉 감각이나 인간이 부재하고 인간의 밖에 있는 사유는 절대적인 주관이며 그것은 다른것에 대해서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되며, 바로 그것 때문에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대상이나 존재에로 나아가는 통로를 찾지 못한 것이다."라고 헤겔을 통렬히 공박한다. 특히 포이에르바하는 소비에트 국정교과서인 [철학의 기초이론]중 물질과 그에 결부된 시공간 개념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시간과 공간은 존재의 양식이다. ....시간을 벗어난 감정, 시간을 벗어난 의지, 시간을 벗어난 사유등은 무이며 허깨비이다......사변철학은 시간에서 유리된 하나의 발전을 절대자의 형식과 속성으로 만들었다""라고 힘주어 강조할 때, 이미 서구형이상학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었던 존재-신학의 테두리를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러한 포이에르바하의 존재론적 관점에 근거함으로써 당대의 지배적 사조였던 청년헤겔학파의, 그리고 관념적 급진성의 대표자인 유행하던 셸링주의를 현실 그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전화시킴으로써 종교로부터의 해방이 인간관계와 인간세계를 인간 그 자체에로 환원함으로써 인간해방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3. 포이에르바하를 넘어서

이러한 관점은 경제철학 수고에서 보다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다. "나의 자연주의 혹은 휴머니즘은 관념론도 아니고 유물론도 아니다. 차라리 그 양자의 통일적 진리이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선언은 유물론자들에겐 대단한 충격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다음과 같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비판적 접근으로부터 비롯된 필연적 결과일 따름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에 대한 포이에르바하의 비판을 좀더 확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겔에게 있어서) 역사란 그것의 주체로서 전제되는 인간의 현실적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생성하는 행위, 인간의 생성사로서 파악된다" 이는 헤겔의 철학체계가 존재에 대한 절대적이고 고정된 추상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 따라서 서구 형이상학의 존재론이 갖고 있었던 영원불변하는 추상적이고 독립적인 실체라는 관념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부르쥬아적 물신성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헤겔에게 있어서는) 자기의식의 외화가 물성을 정립한다. 인간은 자기의식이기 때문에, 인간의 외화된 대상적 본질 혹은 물성(인간에 대해서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과 대상은 진실로 인간에 대해서만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현실적 대상이며, 따라서 인간의 대상적 본질이다. 이제 현실적 인간 그 자체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따라서 자연도 주체가 되지 못하는 대신 오직 인간의 추상물 곧 자기의식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물성은 외화된 자기의식일 수밖에 없다)은 외화된 자기의식이며, 물성은 이러한 외화를 통해 정립된다. 대상적인 따라서 물질적인 자연적 존재, 고유한 자기능력을 갖추었거나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자연적 존재가 자기 존재의 현실적인 자연적 대상들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존재의 자기외화가,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외면성이라는 형식아래 있는, 따라서 자신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 강압적인 대상적 세계의 정립이기도 하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마르크스는 위에서 헤겔비판을 통해 헤겔적 체계는 정신의 자기외화에 의해 모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물성(인간 및 자연)이 강압적으로 지배될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기의식에 의해 규정적으로 정립될 뿐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현실적 조건을 변혁하는 대신 자기의식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현실적 모순이 관념적으로만 지양될뿐 실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모순을 은폐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헤겔적 체계는 정신 혹은 이성의 세계지배일뿐만 아니라 현실적 고통을 은폐하는 환상적 종교형태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에 대한 비판의 핵심적 지점을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한다.

"인간은 직접적으로 자연물이다. 인간은 한편으로 자연물로서, 그리고 생명을 가진 자연물로서 자연력 곧 생명력을 갖추고 있으며, 활동적 자연물로서 존재한다. 이 힘들은 인간속에 소질들과 능력들로서, 본능으로서 존재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연적이고 몸을 지니고 있고, 감각적이고, 대상적인 존재로서 동물과 식물처럼 감응하고 조건지워져 있고 제약된 존재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본능의 대상들은 인간 바깥에 인간과 무관한 대상들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상들은 인간의 욕망의 대상들이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실증하고 확인하는데 필요불가결한 본질적인 대상들이다.....스스로 제3의 존재를 위한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는 어떠한 존재도 자신의 대상으로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존재는 대상적으로 처신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성은 결코 대상적 존재성이 아니다"
 
4. 실천적, 역사적 존재론으로의 도약

여기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자기의식에 대한 문제제기뿐만 아니라 그러한 철학체계가 가능했던 근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마르크스가 위에서 헤겔에 대해 비판한 내용이 단순히 자기의식 그 자체의 활동에 의해 대상적 세계가 정립되는, 거꾸로 선 철학체계를 비판하는데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해도, 마르크스는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헤겔의 존재론, 더 나아가서는 서구 형이상학의 존재론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도한 셈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서구 형이상학에서의 존재론은 자존적 실체, 따라서 비대상적 존재를 존재론의 핵심적 실체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인간과는 무관한, 자연에 대해서도 무관한 철학체계를 정립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철학체계는 그 본래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는 철학체계를 구축하게 된 근원으로 역할했던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의 존재론은 자연적이고 직접적인, 독립된 개별적 물성으로서 파악된 것이 아니라 인간실천의 역동적 생산성 그 자체였으며, 인간실천의 역동적 생산성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혁신되는 공산주의적 과제와 목표로 인해 공산주의란 실현되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자기지양의 과정으로 위치지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존재와 당위의 긴장스러운 변증법을, 자존적 실체인 추상적 존재에서 직접적으로 연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적인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인간의 창조적 실천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지양태로서, 인간적 본질의 역동적 실체로서 정립했던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철학이란 세계를 변혁하기 위한 창조적 활동이다. 철학은 세계변혁의 창조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이유와 존재목적, 그리고 성취해야할 목적과 그 방법을 통찰하기 위한 원리적 근거를 찾는 작업이다.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우리는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러한 질문과 대답이 가능할 수 있는 원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철학적 문제설정은 단순한 인식론으로도, 인간실천과 무관한 추상적 존재를 설정함에 의해서도 가능하지 않으며, 세계의 시원적 기원을 찾는 것으로도, 인간과 무관한 세계의 내적 통일성을 확립하는 것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철학의 과제는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방법과 근거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여기까지만 맞았다.

......................................................................
 
5. 잘못된 일반화, 철학의 종말과 과학의 시대

마르크스는 (마르크스가 쓰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 공동명의의 저작이므로 마르크스 역시 그 내용에 책임이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철학의 종말을 선언한 뒤 자연과학과 역사학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자연과학과 역사학의 실체는 그의 조악한 역사이행론과 [자본론]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고, 불행하게도 전복된 헤겔은 변증법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거꾸로 세워져 맑스의 이론적 체계내로 재도입 되었다. 서구형이상학을 지배해온 존재-신론, 그 최고의 정점인 헤겔의 절대이념의 존재론을 대체하는 역사적, 실천적인 인간학적 존재론을 정립하는 대신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해부라는 과제로 돌진함으로써 그 해부의 존재론적 기초, 철학적 근거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론적 작업은 그것의 철학적 근본, 세계관적 기초를 요구한다. 다시말해 자본론의 그 정교한 이론적 체계는 그러한 체계를 가능케 하는 특정한 철학적 원리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존재-신론에 대한 비판에 멈추었을 뿐 대안적 존재론을 구성하지 않았다. 요구되었던 대안적 존재론은 철학의 종말이라는 선언에 의해 진즉 폐기되었으므로, 결국 자본론 곳곳에서 나타나듯 헤겔 변증법의 차용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경철수고에서 나타났던 풍부한 인간학적 존재론의 유산은 사라지고, 헤겔의 부정의 부정법칙, 본질과 현상의 이원화, 개념의 자기전개가 자본론의 방법론적 체계를 구성했다. 맑스는 철학의 지양과 과학으로의 도약을 시도함으로서 대안적 존재론도, 헤겔적 존재-신론도 모두 거부했으므로 자본론에서 나타난 헤겔적 변증론의 문제점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잠복된 문제는 맑스주의의 체계화를 시도했던 맑스의 후예들, 특히 레닌에 이르러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레닌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에서 물질우선성으로 규정한다. 특히 레닌은 "우리의 감각과 지각, 행위의 밖에 존재하는 것은 비존재"라고 주장하는 불가지론자들에 대항하여 유일한 진리의 제일 근거,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원리론적 기초로써 물질개념을 제시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불가지론자들이 주장하는 핵심명제가 마르크스의 그것, 비대상적 존재는 비존재라는 언명과 동일하다는 점일 것이다.
 
6. 레닌과 철학의 근본문제

레닌의 대개의 저작은 정세적, 전술적인 성격을 갖는다 (과거 레닌의 저작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였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이런 주장은 확실히 파격적인 것이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 골수 레닌주의자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아마 유일하게 [철학노트]만이 이런 정세적, 전술적 저작의 성격을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경비]역시 정세적, 전술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데, 혁명운동의 상대적인 퇴조기에 러시아 맑스주의에 침투해들었던 불가지론은 레닌의 눈에 단일한 조직대오, 혁명운동의 정당성, 맑스주의가 갖는 객관적 과학성에 심대한 위협요인으로 비춰졌고, 이러한 경향에 대항해서 진리의 절대성, 맑스주의의 유일객관성을 증명함으로서 조직과 사상을 정비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맑스주의 이론의 모든 체계를 통합해내는 제일근거, 인식의 상대성으로부터 독립된 자존적 실체, 현존하는 모든 존재자를 규정하는 단일한 원리를 제시해야만 했고, 그것의 개념적 표현이 바로 레닌의 물질개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레닌의 물질개념은 서구형이상학의 출발점부터 철학자들을 괴롭혀왔던 존재의 제일근거, 존재와 인식의 통일을 구체적인 인간행위로부터 분리시켜냈던 바로 그 존재-신론의 다른 모습이었을 뿐이다.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물질의 개념에 대한 가장 세련된 정식은 레닌에 의해 표현되었다. "물질은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만 접촉되고, 인간의 감각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면서 감각에 의해 복제되고 촬영되며 반영되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레닌의 물질개념 규정은 상당히 이중적인 것이다. 우선, 철학의 근본문제로서 제기되는 물질개념은 질료적 실체가 아니라 추상적 실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질료적 실체로서의 물질이란 가변적이고, 무한히 다양한 것이며, 특정한 성질을 가진것이기에 질료로서의 물질을 세계의 궁극적 본질, 원리적 근거로 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앞선 레닌의 물질규정은 질료적 실체로서의 물질개념이다. 하지만 질료적 실체로서의 물질개념은 철학의 근본문제가 요구하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철학의 근본문제가 요구하는 물질개념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편재하는 물질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실체를 전제해야 한다. 다시말해 물질 그 자체를 철학적 개념으로 추상화 한 뒤, 존재하는 모든 실재를 물질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본질과 현상을 구분할 수 있고, 현상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신비하고도 오묘한, 그러나 그 오묘함의 실체는 오직 주창자에 의해서만 보여지는 '물질의 근본원리'가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레닌이 말하는 물질은 보편적 전체의 각인을 내재하고 있으며, 영원성, 불멸성, 창조불가능성을 본질로 한다. 뿐만 아니라 물질의 운동형태인 공간과 시간 역시 물질의 보편적 존재형식으로서 이해되며, 물질이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라면 시간과 공간 역시 무한하고 불변적이다. 유물론자에게 있어서 시공간은 절대적인 것이다.

결국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물질이란 서구형이상학이 견지해온 존재론의 재판일 뿐이며, 그것조차 인식론적으로 이해되어온 반쪽자리 존재론이다.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인간행위나 그 결과등은 물질의 표현형태로서, 그것의 반영이거나 반사에 불과하다.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자유란 물질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조응할때에만 존재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레닌의 물질개념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물질개념으로 이해한 뒤, 물질과 의식의 상대적 자율성을 운운하거나, 혹은 물질개념을 사회적 생산양식 개념으로 치환하거나, 혹은 물질만이 아니라 의식도 중요하다고 웅얼거리는 사람들은 맑스는 물론이고 레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자면, 아래 인용된 안상헌의 맑스주의 철학이해가 그렇고, 그에 연관되어 물질우선성을 놓고 왈가왈부했던 두 사람의 주장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또 오만하다는 말을 들을까 겁나긴 하지만, 할 말은 해야지^.^ 덧붙여 나와 유사한 논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리있게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는 설헌영씨가 번역한 코제브의 저작이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은 기억이 안난다---)

이렇게 레닌은 그의 물질개념 정식화를 통해 헤겔적 존재-신론을 확실하게 맑스주의 내로 이끌어들였지만, 그 스스로 역시 이러한 시도가 갖는 위험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여진다. 그가 [철학노트]를 통해 끊임없이 변증법이 갖는 상대주의적 성격, 운동이 가지고 있는 생성과 창조의 힘을 강조했던 것은 바로 존재-신론의 문제설정에 갇혀있던 그의 물질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 역시 변증법의 상대주의적 성격, 구성하는 인간행위가 아니라 구성되는 인간행위, 운동이 절대적이고 통일은 제한적이라는, 그 스스로가 강조했던 명제의 존재론적 근거를 끝내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레닌의 이러한 철학적 한계는 스탈린에 이르러 하나의 교조로 격상되었으며, 이로서 생성과 창조로써의 인간행위, 노동이 갖는 역동성을 통해 스탈린을 넘어서려했던 서구 맑스주의자들의 등장이 예고된 것이다. 대표적인 서구 맑스주의 이론가, 콜렛티, 코지크, 사르트르, 후기 루카치, 그람시 등은 모두 노동의 변증법이 가지고 있는, 혹은 인간의 실천적 행위가 갖는 생성과 창조의 성격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콜렛티는 명시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주장하는 물질개념이 헤겔의 존재론과 이형동체임을 지겹도록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제자라고 자처했던 사르트르를 제외하고는 노동의 변증법이 갖는 그 독특한 성격을 존재론의 차원으로까지 밀고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도 기억되어야 한다 (사르트르의 삼성출판사에서 번역출간한 [존재와 무]라는 책은 숙독의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늘 사람들은 읽기쉬운 책을 선호한다. 두껍고 어려운 [존재와 무] 보다는 [지식인의 변명]이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류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책을 집어들고, 그것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사르트르를 싸구려 실존주의자로 매도한다. 웃기는 짬뽕들 같으니라구!)

7. 맺으며---헤겔인가 하이데거인가?

인간실천 일반 혹은 노동의 변증법은 공식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인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항하기 위해 서구 맑스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애용했던, 혹은 기댔던 철학적 근거가 되어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이 노동의 변증법을 찻아낸 곳은 경철수고에서 맹아만을 드러냈던 맑스의 존재론적 문제설정이 아니라 헤겔 정신현상학의 노동에 관한 장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헤겔은 항상 공식석상에서는 "죽은 개"로 취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찾아 헤매는 서재의 등불 아래서는 항상 "크게 소리짖는 개"로 부활할 수 있었다. 실제로 공식석상에서 죽은개 취급을 받았던 헤겔 철학은 누구라도 한번 제대로 들여다 본다면 반드시 유혹에 빠질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인간이성의 위대한 승리 그 자체이다. 아마도 죽은개라고 치부돼왔던 일반적 인식에 대한 반발이 작용한다면 헤겔이야말로 맑스를 살려낼 수 있는 영감의 유일한 원천으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며, 실제로 그러해왔다. 하지만, 노동의 변증법을 그토록 강조했던 서구 맑스주의자들은 끝내 왜 노동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제시하지 못했다. 노동 변증법의 존재론적 기초, 이것이야말로 맑스가 경솔하게 일반화했던 "철학의 지양과 자연과학에 의한 철학의 대체"를 넘어서 인간학적 존재론으로 나아가기 위해 던져야 할 첫번째 질문이다. 

2003-02-03 0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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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경험의 두 측면 : <측정가능의 경험>과 <측정불능의 경험> 미선 1314 04-27
60 "존재(being)을 힘(power)"으로 정의한 플라톤 저작의 희랍 원문과 영역 미선 232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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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편향 중의 편향, <형이상학적 편향> 미선 477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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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인문학은 과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가 (이상헌) (1) 미선 5214 08-16
54 지젝이 만난 레닌 (조배준) (1) 미선 4705 07-18
53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전문 / 한국일보 (2) 미선이 5504 02-11
52 공자와 예수, 도올 주장에 대한 반론 미선이 5506 12-06
51 철학의 기초가 없는 분들께 권하는 좋은 동영상 자료 (*재밌습니다^.^) (2) 관리자 14142 07-16
50 국내외 철학상담 관련 문헌 (출처: 철학상담치료학회) 미선이 537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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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펌] 동양철학사상 음양오행설 비판 미선이 11628 12-17
47 철학을 생전 처음으로 공부하는 진짜 초심자분들을 위한 안내 책들 미선이 5649 11-06
46 삶과 학문적 탐구에 대한 나의 생각..(윌버 비판도 약간..) 미선이 6814 09-30
45 예술에 대한 감상과 유희 그리고 진리 담론과 미적 가치 미선이 6815 09-19
44 그것은 나의 <주관적 느낌>일까? 참된 <객관적 이해>일까? 미선이 615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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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네그리, 유물론과 비유물론의 경계선에서 정강길 7003 11-11
19 〈탈중심주의〉혹은〈해체주의〉의 한계 정강길 787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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