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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전문 / 한국일보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2-02-11 06:25 조회(5706)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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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인터뷰 전문 ①] "이제 변화보다는 해석이 필요한 시대"
 
 
인터뷰=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 교수
 
 
 
입력시간 : 2012.02.07 21:13:21
수정시간 : 2012.02.09 22:27:55
 
 
슬라보예 지젝은 이 시대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로 꼽힌다.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와 대중문화 현상을 독창적으로 해석해왔을 뿐 아니라, 현실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이를 학문적 영감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철학적 지평을 넓혀왔다. 1990년 옛 유고연방이 해체된 후 슬로베니아의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활발한 대외 활동 덕에 지젝은 그의 사상을 깊이 접하지 못한 대중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낯설지 않은 학자로 회자된다. 가깝게는 지난해 10월 '점령하라' 시위의 진원지인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서 한 연설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간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지젝은 지난달 30일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의 전화 대담에서 전세계적으로 복잡다단한 사회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우리는 신세계질서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당장 손쉬운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보다 사유를 해야 한다" 면서 "20세기에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너무 많이 세계를 변화시켜왔는데, 이제 변화보다는 해석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고 말했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대 연구실에서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요즘 많이 아프다" 면서도 각 분야에 걸친 질문들에 장시간에 걸쳐 친절히 답을 했다.

대담=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 교수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요즘 몸이 좋지 않다던데 괜찮은가?

"그냥 평범하게 겪는 일이다. 별 것 아니다. 온갖 진단을 다하지만 시간 낭비다."

-오늘 인터뷰할 내용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것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실제로 그들조차도 자본주의의 종언을 말하고 해결책을 만들고자 한다. 당신 의견은 어떤가? 이런 위기가 치유될 수 있다고 보는가?

"나는 이 위기가 파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 금융경제, 재산권, 생명공학윤리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단기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좀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세계 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 금융체계, 지적재산권 갈등, 사유재산 문제 등은 이미 알려진 책이나 이론으로 풀릴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신세계질서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슬럼과 배제된 자로 가득 찬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신세계다. 이 와중에도 한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은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문제는 더 악화되고 있다.

나는 지금 존재하는 어떤 제도를 통해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령하라' 시위가 남긴 교훈도 이런 것이라고 본다. 이 시위가 명백하게 보여준 것은 위기의 체제, 또는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위기가 위험하게 보이는 것은 단일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월가 점령 시위 현장에서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뉴욕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 모인 사람들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도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 보듯이 전문가들을 찾는 것이 무슨 해결책처럼 제시되고 있다. 이런 이들을 믿지 말아야 한다. 진짜 해결책 같은 것을 지금 마련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냥 앉아서 자본주의의 파국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 사회적인 연대나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다만 이런 운동이 손쉬운 해결책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과거 냉전시대와 같은) 집단적인 신념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단일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파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실재의 세계' 에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지젝은 9.11테러 직후 영화 '매트릭스' 의 대사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서 구절을 딴 동명의 저서를 출간했다. 여기서 실재란 매트릭스 속 레오가 모피어스가 제시하는 '빨간 약' 을 먹고 알게 된 '진짜 현실' 을 말한다.)

빠른 해결책을 기대할 수 없지만, 분명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 출현하고 있다. 점령하라 시위도 마찬가지다. 이 시위는 과거처럼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스페인에서도 정부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분노하라(indignant)' 라는 거대한 운동이 있었다. 말하자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의 문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원하는 기술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요즘 당신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그것과 당신의 학문적 작업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명확히 하자. 나에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이나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 관점에서 우리가 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자연에 대해, 어떤 국가가 좋고 어떤 국가가 나쁜지에 대해, 누가 지적 재산권을 관리하고 있는가에 대해, 갈수록 사유화되는 공통의 지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공통적인 것의 문제, 달리 말하자면 우리 삶을 떠받치고 있는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토대에 대해 공산주의 관점으로 심사숙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반(反)자본주의자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은 체제다. 과거 40~50년 동안 한국이 이루어온 것을 봐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3월 중국 전인대가 열렸을 때, 온 세계가 중국의 결정에 관심을 집중했다. 중국이 새로운 세계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2배로 올릴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가? 중국은 오히려 내수확대를 위한 예산을 2배 증액했다. 재정정책 같은 경제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설이다. 생산력은 증가하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등) 위험도 높아진다. 이런 위험은 서서히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이나 터키처럼 직접적으로 위기에 노출되지 않은(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도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은) 운 좋은 국가들도 있다. 라틴아메리카 몇 개국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국가들은 예외적인 것이다. 나는 우리가 위기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무엇인가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발 뒤로 물러나서 이 상황을 주시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에 대해 생각을 하라는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것은 금융자본주의이다. 이 때문에 위기가 왔고, 이 위기의 긴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고민한다. 이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 같은 생명윤리의 문제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고민하고, (이주노동자나 디아스포라처럼) 수많은 국가에서 많은 이들이 공공체계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유럽과 이슬람 간 문제도 그렇다. 이런 것들이 사회 긴장을 초래하고 갈등을 만들어낸다. 지난해 런던에서는 대규모 도심 폭동이 있었다(지난해 8월 런던에서 시작된 청년들의 폭동은 영국 전역과 벨기에 등지로 번졌지만, 폭동을 주도한 주체도, 요구사항도 없어 이목을 끌었다). 이 폭동은 어떤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저항행위가 아니었다.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또는 합리적인 요구가 없었다. 말 그대로 특별한 의미가 없는 순수한 폭력의 현신(現身)이었다. 가게를 약탈하고 물건을 파괴하고, 자동차를 불태우기도 했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폭력이었는데, 이것이 중대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폭력의 행동들이 어떤 일관된 이론이나 관점으로 번역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을 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행동은 하되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 아닌가? 당신의 주장이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런 지점이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주지 않는다.

"아니다. 내 말은 언제 실현될지 모를 장기적인 해결책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이다. 물론 월가 점령시위나 런던 폭동의 군중들이 해결책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시도들을 해야 한다. 금융자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은행 규제를 요구해야 하고, 정의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이 위기 자체를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

이 위기가 점점 더 깊어지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탈산업자본주의 등으로 불리는 이 문명은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이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했다는 믿음이 있다. 한국을 보면 알 수 있다. 군사독재를 거쳤지만,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이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싱가포르이나 중국의 경우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하지 않았다. 이 국가들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매우 잘 돌아가고 있다. 이 사태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자유주의자가 말했던 것과는 다른 '공산주의의 종언'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후쿠야마의 선언처럼) 자본주의는 이겼다. 그런데 그 이겼다는 것이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최고였던 공산주의자가 훌륭한 자본가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웃음) 이런 현실은 우리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래서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위기는 장기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2/h2012020721132186330.htm
 
 
 
[지젝 인터뷰 전문 ②] "새 미디어의 속성은 양가(兩價)적이라는 것"
입력시간 : 2012.02.07 21:15:26
수정시간 : 2012.02.07 22:07:26
#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빅브라더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정치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당신이 아랍혁명과 SNS의 관계에 대해 쓴 칼럼을 보면 SNS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하게 SNS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디지털기기에 의존한 미디어는 시민사회를 위한 발언 기회를 더 확대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국가의 통제 바깥에서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권력의 시도가 있다. 구글, 위키피디아 검색제한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인터넷 사용을 감시ㆍ규제한다. 아랍 봉기가 일어났을 때, 정부는 인터넷과 휴대폰 연결을 끊어서 시위 참여자들이 서로 통신을 못하게 해버렸다. 서구는 이런 사례를 야만적이라고 규정하며 우리는 절대 그렇지 않다, 민중은 자유를 원한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런던 폭동이 일어나자 영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휴대폰 통신접속을 차단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누가 이 미디어들을 통제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라. 컴퓨터는 점점 작아지고 데이터는 중앙으로 모이는 클라우드 시스템(소비자가 가진 모든 전자기기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연동 서비스)이 구축되고 있다. 아이팟이든, 노트북이든, 아이패드든, 모두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한다. 누가 이 디지털 공공영역을 관리하고 통제하는가? 이것이 문제다. 중국이든, 아랍이든, 서구든, 모두가 이 정보를 지배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SNS에 대해 전적으로 회의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 주장은 이 새로운 미디어의 속성이 양가(兩價)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당신 주장도 이런 통신기술을 바탕으로 과거보다 우리가 훨씬 더 나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처럼 들린다. 이런 조건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렇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런 측면과 더불어서 누가 이 디지털 세계를 통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모든 시스템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빅브라더' 를 상정하는 것 같지도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렇게 강박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통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하자면, 빅브라더가 아니고 다양한 브라더들, 똑똑하거나 뚱뚱하고, 또는 멍청한 많은 브라더들이 통제하는 것이다."

-가히 형제애라고 불러야겠다.(웃음)

"북한의 경우를 제시하면서 한 명의 빅브라더나 또는 그 아들이 통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겉으로 보기와 달리 그 통제가 제대로 먹혀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강력한 정보기관이 배후에서 민심을 조종한다거나, 국가권력이 주도면밀하게 모든 것을 계획한다는 것은 강박적 상상이라는 것이다. 권력 작동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쉽게 하나의 국가를 상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파워엘리트들이 있었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논쟁을 벌였는데, 거기에 등장한 정치인들의 모습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파워엘리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배후에서 비밀스럽게 일을 처리하는 비밀스러운 권력에 대해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멋있게 보이긴 한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위기가 왔지만 이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당사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에서 위험한 것이다."

# 아감벤, 푸코와 차이점

-당신 이야기는 통치성의 문제를 제기한 미셸 푸코의 견해와 다른 것처럼 들린다.(통치성은 18세기 전후 유럽에 등장한 새로운 통치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푸코가 고안한 개념으로 근대 국가의 통치는 인구의 감시와 처벌이 아니라 건강, 안전, 복지를 증진하는 개인과 집단의 행동, 실천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런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수단이 '폴리스' 로 불리는 행정관리 기구이며 여기 수반되는 지식이 경제적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정치경제학-고전경제학-이라는 게 푸코의 분석이다.)

"물론이다. 통치성의 문제가 아니다. 통치성에 대한 주장은 심각한 이론적 문제를 안고 있다. 푸코뿐 아니라, 조르조 아감벤 같은 이들이 범하는 오류는 너무 과도하게 권력, 지배, 통치성의 관계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경제를 너무 무시한다. 착취라든가, 자본의 운동이라든가, 여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성차별이나 저항, 국가권력의 통제, 그리고 통치성 같은 서로 다른 형식들에 너무 집중한다. 이들의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다. 명백하게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더 강하게 통제를 받고 있다. 더 많은 디지털 통제의 가능성이 있다. 이런 통제가 한 사람이나 소수를 통해 이루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에서 봤듯이, 이들이 경제까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입장이다. 이제 경제는 거의 전지구적 단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것을 일관성 있게 누군가 관리하고 지배하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무엇이 문제라는 것은 알릴 수 있지만,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줄 수가 없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말했는데, 최근 한국에서 '알튀세르 다시 읽기' 를 요청하면서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알튀세르 효과>(그린비 발행)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주로 후기 저작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오늘날 알튀세르의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알튀세르의 철학은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우발성의 유물론*을 주장하는 후기 알튀세르는 유명론**적이라고 생각한다. 푸코 역시 이와 비슷하다. 나는 이런 입장에 서 있지 않다. 우발성이나 다자성, 마주침 이런 개념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역은 언제나 근본적인 모순과 적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국가장치에 대한 견해는 여전히 효과적이다. 오늘날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준다. 대중적으로 운위되는 것처럼 공산주의가 종언에 이른 후에 이데올로기도 끝났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금 이데올로기의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 스스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알튀세르의 이론이 여전히 실질적인 효용성을 가진 이유이다."

*우발성의 유물론=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갖고 있는 필연성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서 알튀세르 후기, 고대 원자론을 참고해 유물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이론으로 현재의 철학, 현재성의 철학이라고도 불린다. 어떤 사건의 인과관계, 필연성에 대한 맹신은 폭력이며 인간이 생각해내고 지배해온 모든 의미들은 비와 어떤 곳의 만남 같은 무의미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유명론= 실재(實在)를 부정하는 철학상의 입장으로 명목론(名目論)이라고도 한다. 실재하는 것은 개체(個體)뿐으로, 예를 들면 빨강이라고 하는 보편개념은 많은 빨강이라는 공통 성질에 대하여 주어진 말, 혹은 기호로서, 빨간 것을 떠나서 빨강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후기 알튀세르보다도 그의 이데올로기론을 더 중요하게 보는 관점이 흥미롭다. 관련해서 당신은 요즘 알랭 바디우와 비슷한 노선을 견지하게 된 것 같다. 최근에 바디우와 공동으로 책도 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그에게 많이 근접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판단이 적절한가? 아니라면 바디우와 당신의 차이는 무엇인가?

"바디우는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좋은 벗이다. 하지만 엄연히 차이가 있다. 바디우와 나는 헤겔과 라캉을 참조하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바디우는 국가 아래에서 일어나는 여러 다른 작동들에 깊은 신뢰를 주고 있다. 나는 본래적인 정치는 오직 국가로부터 떨어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바디우는 지난해 일어난 월가의 점령하라 시위나 스페인의 분노하라 시위, 아랍혁명 같은 사건에 깊은 공감을 표명했다. 이와 같은 공공적인 저항운동이 국가를 압박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국가가 어떻게 권력을 조직할 것인가, 어떻게 경제를 재조직할 것인가,' 이런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바디우는 경제이론을 누락하고 있다. 경제는 그의 정치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점이 알튀세르와 바디우의 다른 측면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무엇보다도 정치경제학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을 발전시킨 것이다. 젊은 알튀세르가 썼던 <자본을 읽는다>는 오늘날에도 엄청나게 유효하고 중요하다. 이런 시도를 재평가하고 갱신해나가야 한다. 지금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의 생각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나도 이 생각을 발전시키고 싶었다. 지난 책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어떻게 착취가 오늘날 작동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한 이탈리아 경제학자가 했던 말에 동의하는데, 예를 들어, 자애로운 빌 게이츠 같은 경우 전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쓰게 되어 있다. 월가 점령시위를 보더라도 그렇다. 시위 중에 의사전달을 하려고 해도 (마이크소프트나 애플사의 기계) 장치를 동원해야 한다. 최근 들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실업이다. 실업이 모든 운동의 중심에 놓여 있다. 실업률이 거의 20~30%에 육박하는 현실이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로 직장을 잃어버리면 다시 취업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부르주아는 정말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 까닭이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토대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런 현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을 아직 가지지 못했다."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말인가?

"이런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있다. 즉흥적 자본주의, 탈산업 자본주의, 탈근대 자본주의 등등. 그러나 이런 용어들은 이론이 아니다. 때로 통찰력을 주지만, 기업의 로고 같은 것이다. 충분히 이론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결국 문제는 정치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집단적인 정치 주체를 구상할 수 있는가? 사회운동은 언제나 정치적 주체성에 대한 전망을 요구하는데, 이런 윤리적 요청에 대해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요즘 너무 도덕주의적인 경향이 짙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도덕적 분노는 정치적인 분석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주변에 보면 정말 많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들을 수가 있다. 신문을 봐도, 이 회사는 친환경적이고, 저 회사는 선량하지 않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좋다. 그러나 이렇게 부정과 부패, 그리고 비리에 대한 도덕주의적 비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점령하라 시위의 경우도 도덕주의적인 비판이 많았다. 주로 기업들의 부도덕에 대한 성토였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훨씬 더 구조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사적인 생활에서 윤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는 대답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도덕주의적 비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해결책은 간단하다. '본래적인 정치' 를 직시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그 비판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묻는다면 대답을 못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비판은 속이 비어 있는 말이나 되돌려줄 것이다. 노동자가 복직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좋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다면, 정확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40~50년 전이라면 우리는 비록 틀렸지만 명쾌하게 대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를 생각해보자. 그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면 당 규율을 준수하며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런 큰 이야기를 해봤자 틀렸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고작 국가를 재조직해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쉬운 해결책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해결책을 찾기보다 사유를 해야 한다. 유명한 마르크스의 구절이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 이라는 말인데, 20세기에 우리는 이 말에 따라 너무 많이 세계를 변화시켰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변화보다도 해석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생산력은 높지만, 자본주의는 내재적인 한계를 보유하고 있는 체제다. 또한 이 체제는 점점 위기가 깊어져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나는 마르크스주의자지만, 예전의 마르크스주의로 다시 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공통적인 것(관습, 이데올로기와 같이 한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의 문제이다. 20세기에 공통적인 것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제로 포인트에서 다시 정치에 대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당신은 점령하라 시위가 있던 주코티 공원 현장에서 연설을 했던 것 같다. 거기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가?

"근처 뉴욕대학에 특강을 갔다가 우연히 참가하게 되었다. 사전에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연설한 내용은 앞서 출판했던 내 책에 나오는 내용을 조금 수정한 것이었다. 나의 메시지는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 말라' 였다. 끝까지 무엇인가를 요구하라는 것이었다. 이 시위가 끝난 뒤에 정상이라고 불리는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지금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모른다. 그냥 사유를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삶의 토대를 고민한다는 것은 어떤 사회를, 어떤 자유를, 어떤 정부를, 어떤 행복을 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사람들 반응은 어땠는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다.(웃음) 앞에서 말했듯이, 이 시위는 다분히 도덕주의적이었다. 내 문제 제기는 이 시위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이 없다면, 쉬운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 ③에 계속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2/h2012020721152686330.htm
 
 
[지젝 인터뷰 전문 ③] 지젝이 헤겔을 주제로 책을 내는 까닭은
 
인터뷰=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 교수
입력시간 : 2012.02.07 21:17:06
수정시간 : 2012.02.07 22:07:51
# 헤겔을 다시 읽는 이유

-예전에 가디언에서 당신은 소유물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헤겔전집>이라고 답했다. 올해에 헤겔에 대한 당신의 책이 나올 예정이다. 이 책에 담길 내용들은 무엇인가?

"거의 1,0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인데,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한다.(웃음) 누가 이 책을 사겠는가. 출판사는 정치에 관한 작은 문고판 책을 내자고 했는데, 두껍고 어려운 책을 써도 팔린다고 고집을 부렸다. 독자들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일갈을 해줬다. 여기에서 다룰 내용은 최근 관심 있는 이론적 주제들이다."

-그런데 왜 헤겔을 주제로 책을 내는 것인가?

"헤겔을 선택한 까닭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스터리한 측면마저 있다. 나는 어떻게 헤겔을 재현실화할 것인지(최근 서구 학계에 '헤겔 다시 읽기' 붐이 일고 있다. 물론 예전 헤겔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 맞춰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에 정신분석학 등 최근 주목받은 인문학 연구 성과를 헤겔 독해에 반영하기도 한다. (지젝은 이런 새로운 독해방식을 '재현실화' 라고 표현했다),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오랜 전부터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지금 우리가 헤겔이 살았던 시대와 유사한 처지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헤겔을 되풀이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 두꺼운 책에서 나는 지금까지 쓴 책보다 더 체계적인 내용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헤겔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른 철학자들도 있는데, 쓰는 동안 즐거웠다. 내 멍청한 정치적인 저작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철학자로서 나는 추상적 사고를 하는 것에 흠뻑 빠져 있다."
-철학자로서, 요즘 같은 시절에 철학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늘날 철학은 매우 특별한 것이다. 철학자는 대답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환경위기나 경제위기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도 않는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섣불리 문제를 제시하고 대답을 구하는 것은 철학자의 본분이 아니다."

-한국 독자에게 해줄 말은 없는가?

"사유를 시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종교만 해도 복잡하다. 내가 믿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신일 수 없다.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알고 있나?

"한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한국 독자의 관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한다. 나는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전에 방문했을 때 느낀 것이지만, 활력 넘치는 지적인 환경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한국인을 존경한다."

-아마 당신의 영향력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당신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 끝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히 전할 말을 해 달라.

"아마 그런 영향력은 대부분 오해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다. 영향력 자체가 오해이다. 오해는 최초의 이해보다도 더욱 지적인 것이다. 역사적인 것이다. 원조 철학자보다 더 훌륭한 지적인 성취가 오해에서 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모두 (서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외국인이 되어야한다. 나는 사도 바울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제자 12명에 속하지 않지만, 가장 훌륭하게 기독교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예수를 본 적도 없다. 내 책을 한국인들이 읽어준다는 점에 감사한다. 경제적 발전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지적인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 끝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2/h2012020721170686330.htm
 
 
 
"슬럼과 배제된 자로 가득한 세상… 사회적 연대 나서야"
[위기의 시대 지성과의 대화] <1> 슬로베니아 철학자 지젝
 

정리=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입력시간 : 2012.02.07 21:08:30
수정시간 : 2012.02.09 22:26:
슬라보예 지젝은 이 시대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로 꼽힌다.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와 대중문화 현상을 독창적으로 해석해 왔을 뿐 아니라, 현실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이를 학문적 영감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철학적 지평을 넓혀왔다. 1990년 옛 유고연방이 해체된 후 슬로베니아의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활발한 대외 활동 덕에 지젝은 그의 사상을 깊이 접하지 못한 대중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낯설지 않은 학자로 회자된다. 가깝게는 지난해 10월 '점령하라' 시위의 진원지인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서 한 연설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간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지젝은 지난달 30일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의 전화 대담에서 전 세계적으로 복잡다단한 사회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우리는 신세계질서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당장 손쉬운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보다 사유를 해야 한다"면서 "20세기에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너무 많이 세계를 변화시켜왔는데, 이제 변화보다는 해석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대 연구실에서 전화 대담에 응한 그는 "요즘 많이 아프다"면서도 각 분야에 걸친 질문들에 장시간 친절히 답을 했다.

대담=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

-지난해 주코티 공원에서 한 연설은 외신에 보도될 만큼 화제였는데, 어떻게 하게 됐나?

"근처 뉴욕대에 특강을 갔다가 우연히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의 메시지는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 말라'였다. 시위가 끝난 뒤 현실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위를 계기로 우리 현실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삶의 토대를 고민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어떤 자유를, 어떤 정부를, 어떤 행복을 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사람들 반응은 어땠는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다.(웃음)"

-점령하라 시위를 비롯해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 위기의 본질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가?

"나는 이 위기가 파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 금융경제, 재산권, 생명공학윤리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단기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좀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세계 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 금융시스템, 지적재산권 갈등, 사유재산 문제 등은 이미 알려진 책이나 이론으로 풀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신세계질서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슬럼과 배제된 자로 가득 찬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신세계다. 이 와중에도 한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문제는 더 악화하고 있다. 나는 지금 존재하는 어떤 제도를 통해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령하라' 시위가 남긴 교훈도 이런 것이라고 본다. 이 시위는 위기의 체제, 또는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줬다. 이 위기가 위험하게 보이는 것은 단일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좌파이긴 하지만, 20세기에 제기됐던 사회주의 해결책이 성공적이었다고 믿지 않는다. 지금 새로운 공산당 운동을 조직할 수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이런 실패한 기획들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위험의 실체다. 위기가 왔는데, 아무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제시하지 못한다. 뉴욕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 모인 사람들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냥 앉아서 자본주의의 파국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 사회적인 연대나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다만 이런 운동이 손쉬운 해결책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유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냉전시대와 같은) 집단적인 신념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파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실재의 세계'에 직면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지젝은 9.11테러 직후 영화 '매트릭스'의 대사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딴 저서를 냈다. 실재란 매트릭스 속 레오가 모피어스가 제시하는 '빨간 약'을 먹고 알게 된 '진짜 현실'을 말한다.)

빠른 해결책을 기대할 수 없지만, 분명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 출현하고 있다. 점령하라 시위도 마찬가지다. 이 시위는 과거처럼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스페인에서도 정부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분노하라(indignant)'라는 거대한 운동이 있었다. 말하자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의 문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원하는 기술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요즘 당신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견해는 학문적 작업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명확히 하자. 나에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이나 해결책이 아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우리가 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자연에 대해, 어떤 국가가 좋고 나쁜지에 대해, 누가 지적 재산권을 관리하고 있는가에 대해, 갈수록 사유화되는 공통의 지식에 대해 말이다. 공통적인 것의 문제, 달리 말하자면 우리 삶을 떠받치고 있는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토대에 대해 공산주의 관점으로 심사숙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반(反)자본주의자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은 체제다. 과거 40~50년 동안 한국이 이루어온 것을 봐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3월 중국 전인대가 열렸을 때, 온 세계의 관심이 중국의 결정에 쏠렸다. 중국이 세계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2배로 올릴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가? 중국은 오히려 내수확대를 위한 예산을 2배 증액했다. 재정정책 같은 경제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설이다. 생산력은 증가하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등) 위험도 높아진다. 이런 위험은 서서히 증가할 것이다. 물론 한국이나 터키처럼 직접적으로 위기에 노출되지 않은(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도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은) 운 좋은 국가들도 있다. 라틴아메리카 몇 개국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국가들은 예외다. 나는 우리가 위기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무엇인가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발 뒤로 물러나서 이 상황을 주시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에 대해 생각을 하라는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당신의 이론과 책들이 비판을 받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주지 않는다.

"아니다. 내 말은 언제 실현될지 모를 장기적인 해결책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말이다. 물론 월가 점령시위나 런던 폭동(지난해 8월 런던에서 시작된 청년들의 폭동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벨기에 등지로도 번졌지만, 폭동을 주도한 주체도, 요구사항도 없어 이목을 끌었다)의 군중들이 해결책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시도들을 해야 한다. 금융자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은행규제를 요구해야 하고, 정의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이 위기 자체를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

이 위기가 점점 더 깊어지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탈산업자본주의 등으로 불리는 이 문명은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이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했다는 믿음이 있다. 한국을 보면 알 수 있다. 군사독재를 거쳤지만,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이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싱가포르나 중국의 경우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하지 않았다. 이 국가들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매우 잘 돌아가고 있다. 이 사태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자유주의자가 말한 것과는 다른 '공산주의의 종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자본주의는 이겼다. 그런데 그 이겼다는 것이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최고였던 공산주의자가 훌륭한 자본가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웃음) 이런 현실은 우리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래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위기는 장기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최근 한국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정치가 긴밀히 연결되고 있다. 당신은 아랍혁명과 SNS의 관계에 대해 쓴 칼럼에서 SNS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하게 SNS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디지털기기에 의존한 미디어는 시민사회를 위한 발언 기회를 더 확대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국가의 통제 바깥에서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권력의 시도가 있다. 구글, 위키피디아 검색제한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인터넷 사용을 감시ㆍ규제한다. 아랍 봉기가 일어났을 때, 정부는 인터넷과 휴대폰 연결을 끊어서 시위참여자들이 서로 통신을 못하게 해버렸다. 서구는 이런 사례를 야만적이라고 규정하며 우리는 절대 그렇지 않다, 민중은 자유를 원한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런던 폭동이 일어나자 영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휴대폰 통신접속을 차단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누가 이 미디어들을 통제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라. 컴퓨터는 점점 작아지고 데이터는 중앙으로 모이는 클라우드 시스템(소비자가 가진 모든 전자기기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연동 서비스)이 구축되고 있다. 아이팟이든, 노트북이든, 아이패드든, 모두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한다. 누가 이 디지털 공공영역을 관리하고 통제하는가? 이것이 문제다. 중국이든, 아랍이든, 서구든, 모두가 이 정보를 지배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SNS에 대해 전적으로 회의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 주장은 이 새로운 미디어의 속성이 양가(兩價)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빅브라더'를 상정하는 것 같지도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렇게 강박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통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하면, 빅브라더가 아니고 다양한 브라더들, 똑똑하거나 뚱뚱하거나, 또는 멍청한 많은 브라더들이 통제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한 명의 빅브라더 또는 그 아들이 통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겉으로 보기와 달리 제대로 그 통제가 먹혀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강력한 정보기관이 배후에서 민심을 조종한다거나, 국가권력이 주도면밀하게 모든 것을 계획한다는 것은 강박적 상상이라는 말이다. 권력 작동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쉽게 하나의 국가를 상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파워엘리트들이 있었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논쟁을 벌였는데, 거기에 등장한 정치인들의 모습은 정말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파워엘리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배후에서 일을 처리하는 비밀스러운 권력이 멋있게 보이긴 한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위기가 왔지만 이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당사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요즘 같은 시절에 철학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철학자는 대답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환경위기나 경제위기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섣불리 문제를 제시하고 대답을 구하는 것은 철학자의 본분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철학자다. 알고 있나?

"한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한국 독자의 관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한다. 나는 경제 발전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몇 해 전 방문했을 때 느낀 것이지만, 활력 넘치는 지적인 환경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한국인을 존경한다."

-한국에서 당신의 영향력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당신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

"아마 그런 영향력은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오해는 최초의 이해보다도 더욱 지적인 것이다. 원조 철학자보다 더 훌륭한 지적인 성취가 오해에서 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모두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외국인이 되어야 한다. 나는 사도 바울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제자 12명에 속하지 않지만, 가장 훌륭하게 기독교를 발전시켰다. 심지어 그는 예수를 본 적도 없다. 내 책을 한국인들이 읽어준다는 점에 감사한다. 경제적 발전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지적인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유를 시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

■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은 누구
영화·SF소설 등 대중문화를 철학의 대상으로… '지젝거리다' 조어도


2000년대 한국 사회를 풍미한 사상가 맨 앞줄에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 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가 지난해 <실천문학> 가을호에 기고한 '포스트 근대문학의 시대, 또는 연장선에 대하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국내에 출간된 지젝의 저서는 23권으로, 가라타니 고진(12권), 위르겐 하버마스(10권), 미셸 푸코(7권)를 압도한다.

1949년 옛 유고연방에서 태어난 지젝은 1972년 류블랴나대에서 철학 박사학위, 85년 파리8대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89년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통해 이름을 알린 뒤 세계 철학ㆍ사상계에 파장을 일으켜 온 그는 '동유럽의 기적'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 발표하는 것보다 더 정기적으로 책을 발표'(이현우 <로쟈의 인문학 서재>)해 이미 50여권을 출간한 그는 영화, SF소설 등 다양한 대중문화를 철학의 대상으로 끌어들인다.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는 "국내에서는 지젝의 저서가 특히 비평계에서 많이 읽힌다. '지젝거리다'는 조어가 있을 정도로 담론장에서 많이 회자된다"고 말했다. 지젝 연구자인 민승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인문학계에서 지젝의 사유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가장 대중적인 대상에서 철학의 정수를 뽑아내고, 일상에서 철학적 사유를 하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지젝의 이론ㆍ사상적 토대는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관념철학,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지젝이 해석한 헤겔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하나의 닫힌 체계를 완성하는 것의 정반대 편에 있다. 정(正)도 반(反)도 아닌, 하지만 동시에 정이면서 반인 합(合)을 지향하는 변증법이다(지젝에 따르면 영화 '에일리언' 속 에일리언이 사람도 괴물도 아니면서 동시에 사람과 괴물인 것처럼). 그는 새롭게 해석한 헤걸의 변증법을 일상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깨부수는 비판의 도구로 활용한다. 지젝의 라캉도 이렇게 해석된 라캉이다. 자기동일적 주체?존재하지 않으며 주체란 언제나 분열된 주체, 분열된 채로 자기정체성을 구성해나가는 주체다.

민승기 교수는 "지젝은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지금 상황을 뒤흔들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생산해내는 절차를 만들고자 한다. 현실적인 문제에 개입하면서 손쉬운 해결책이 주는 이데올로기적의 함정을 지적하고 '왜 이게 문제가 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학자"라고 말했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2/h2012020721083086330.htm
 
 
미선이 (12-02-11 08:20)
 
인터뷰 말미에 바울을 좋아한다는 언급은 뜬금없이 보일만큼 이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도바울'을 펴냈던 바디우와도 공통점이 하나 더 추가되는 듯..
하지만 바디우나 지젝이나 정작 고등 비평 신학계의 역사적 예수 역사적 바울 담론에 대해선 그다지 이해가 깊은 것 같진 않다. 바울이 전한 예수는 리얼 예수도 아니었고, 바울이 전한 기독교 역시 그야말로 제국 하에서 전파된 기독교였었다. 그러한 기독교가 나중에 <제국>이 된다. 콘스탄틴 이후의 기독교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암튼 바울은 기존 기독교 형성에 큰 공헌을 했을 지언정 그로인해 이후의 기독교가 한계를 가지게 된 점도 없잖아 있다.
그런 바울을 (이미 바디우는 읽어봤지만) 지젝이 좋아한다기에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한 점도 없잖아 있다. 물론 헤겔처럼 바울도 지젝에게 들어가면 지젝식으로 이해가 될테지만 말이다.

미선 (12-07-01 09:21)
 
"버려지고 배제된 사람들 찾고 싶다"… 철학자 지젝이 간 곳은… 쌍용차 분향소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06/h2012062921284421950.htm

나는 지젝을 볼 때 그 옛날 아메리칸 하드록 그룹 반 헤일런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에디 밴 헤일런(Eddie Van Halen)의 기타 연주가 생각난다.
그는 다양한 기타 연주에 있어 다양한 실험과 변주들을 뒤섞으며 기타 연주의 혁신을 가져온 바 있는데
그 결과물이 매우 신선할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다.
어느 록평론가는 이를 묘사하길 반 헤일런의 기타는
계단을 내려올 때 온갖 잡다한 곡예를 선보이다가 아슬아슬하게 잘 착지하는 것과도 같다고 하였는데,
이는 내가 지젝에게서 받는 느낌과 거의 흡사하다.

지젝의 글은 거의 잡다함과 번잡스러움의 세계다. 그의 글이 라캉, 헤겔, 마르크스 등등을 뒤섞어서 그런 것만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의 글이 꼭 현대 대중문화의 평론적 성격을 띠기때문인 것만도 아니다. 다소 복잡하게 보일지언정 그의 문제의식은 너무나 간명하고 분명하다. 우리 시대 가장 소외되고 은폐된 폭력의 현장들을 찾아내어 들추어내는 것.. 그는 이 점을 고무시키고 격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안에는 마르크스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큰 줄기만큼은 잘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그의 진정성을 믿고 있다.  물론 그는 나의 관점으로 보면 W층(몸의 세계사회층)에 한해서다.

그러나 철학 신학 그리고 종교와 영성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W층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관념적 아편에 기울어진 경향을 보일 때가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철저히 체제의 노예로(상품화 산업화로서) 복속되어질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지젝의 활약은 혁명을 꿈꾸는 낭만적 운동가들에게도 상당히 사상의 리더로서 여겨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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