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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신영복의 고전읽기 - 묵자    
  글쓴이 : 거시기 날 짜 : 09-01-21 17:26 조회(8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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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됩니다
 

 고전 강독은 처음 공자와 노자를 중심으로 했습니다. 『논어』와 『노자』가 동양 사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의가 거듭되면서 본의 아니게 조금씩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학파 간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도 나오고 또 때에 따라서는 서로 대비해서 설명하는 것이 편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묵자』墨子에 대해서도 언급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불교佛敎와 신유학新儒學의 기본적 성격에 대해서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시하는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따로 장을 내어 다루게 되었습니다. 따로 장을 내어 다룬다고 하지만 범위가 늘어나는 만큼 각 장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개요만 소개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이 매우 곤혹스러웠습니다. 표면만 스치고 지나가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의 강의도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새삼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곤혹스럽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진행하는 강의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그런 점을 미리 양해해야 합니다. 강의 내용을 좁혀서 한 학파로부터 한 개의 주제만 읽어내자는 것이지요. 그것 또한 무리입니다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함께 읽으려고 하는 『묵자』, 『순자』, 『한비자』 등은 비주류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묵가墨家는 유가儒家와 함께 당시에는 현학顯學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비주류로 물러났습니다만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주류 학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 역시 유가라는 점에서 주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비자』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법가를 대표하는 사상입니다. 천하 통일을 주도한 사상이란 점에서 법가를 비주류라고 하기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 『순자』, 『한비자』가 중국 사상의 전체 흐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비주류에 속한다고 해야 합니다.
 

 주류 사상, 비주류 사상이라는 구분과 관련하여 잠시 사상 일반의 사회적 위상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상은 자각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자각적이라는 의미는 개인을 그 사상의 담당자로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의 개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상의 담당자로서의 개인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각적 체계로서의 사상과 그 사상의 담당자로서의 개인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기보다는 사상의 사회적 존재 양식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의 묵자와 순자, 한비자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요. 사상은 개인에 앞서서 반드시 ‘사상적 과제’가 먼저 존재합니다. ‘누구의’ 사상이기에 앞서 반드시 ‘무엇’에 관한 사상이게 마련입니다.
 

 사상이란 일정한 사회적 조건에서 생성되는 것이지만 그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면 사상도 사상사思想史의 장場으로 물러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상을 사회 역사 속에 해소시킬 수 없는 이유가 방금 이야기한 그 자각적 체계 때문입니다. 자각적 체계 때문에 사상 자체로서의 독자성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독자성은 역시 제한적 의미로 이해하는 태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이란 독자성에 앞서 시대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우든 시대가 사상을 낳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학파 간의 차이는 그 시대의 과제를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학파 간의 차별화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 학파 간의 침투가 진행되는 것이 사상사의 일반적 발전 과정입니다.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되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침투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과제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각 학파가 전개하는 논리적 정합성은 당대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지적 수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학파 간의 차이는 접근로와 강조점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주류 사상이든 비주류 사상이든 결국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합의해두려고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부터 다루게 되는 『묵자』, 『순자』, 『한비자』 등에 대해서는 그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강조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각 학파마다 한 개씩의 주제만 찾아내자고 한 것이기도 합니다.
 
 
묵자의 검은 얼굴
 

 제자백가 중에서 공자 다음으로 그 인간적 면모가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사람이 아마 묵자墨子(BC. 479∼381)일 것입니다.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뚜렷한 까닭은 『논어』가 공자의 대화집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나눈 풍부한 대화가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 장자는 물론이고 맹자나 순자의 경우도 그 인간적 이미지가 공자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에 비하여 묵자의 이미지는 대단히 분명합니다. 『묵자』가 대화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면모가 분명하게 보이는 까닭은 묵자는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는 물론이며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층민의 이미지입니다. ‘묵’墨이란 우리말로 먹입니다만, 묵자墨子의 묵墨은 죄인의 이마에 먹으로 자자刺字하는 묵형墨刑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가墨家란 형벌을 받은 죄인들의 집단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설령 형벌과 죄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검은색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검은색은 노역奴役과 노동주의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虛禮와 허식虛飾을 배격하며 근로와 절용節用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工人들의 집단이 묵가라는 것입니다.
 

 묵자는 성姓이 적翟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묵적墨翟이라고 한 것은 묵형을 받았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뜻에서 그것을 성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름으로 삼는다는 것은 심상한 것이 아니지요. 나도 오랫동안 수형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정서를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만 묵적처럼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름으로 삼아 공공연히 밝힌다는 것은 그 형벌이 부당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또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언하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반체제적 성격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묵은 성씨라기보다 학파의 집단적인 이름이라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묵자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백성이 국가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이지요(民不畏威 則大威至: 『노자』). 당시는 혁명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혁명적 상황에서 묵가는 통치 권력의 정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좌파 조직의 좌파 사상이었으며 묵적이란 이름은 그것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묵墨은 목수의 연장 가운데 하나인 먹줄(繩)의 의미로 읽기도 합니다. 먹줄은 목수들이 직선을 긋기 위해 쓰는 연장입니다. 그래서 법도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엄격한 규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 『묵자』에는 묵자가 방성 기구防城機具(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방어하는 기구)를 만들고 수레의 빗장을 제작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에, 묵자를 공인이나 하층 계급 출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묵자 자신은 그러한 계층 출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묵자의 사상이 하층의 노동 계급을 대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검은색은 이처럼 묵자의 면모를 구체화해줍니다.
 

 둘째로는 근검 절용하며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모습입니다. 검소한 실천가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묵가를 비판하는 글 속에서 쉽게 발견되고 있는데 모든 비판자들의 견해가 이 점에 있어서만은 일치하고 있습니다. 맹자에 따르면 “묵가는 보편적 사랑(兼愛)을 주장하여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진다 하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가가 주공周公을 모델로 했다면 묵가의 모델은 하나라의 우禹임금입니다. 우임금은 황하의 치수를 담당하여 장딴지와 정강이의 털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신명을 바쳐 일했던 사람입니다.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그냥 지나간 것으로 유명한 임금입니다.
 

 묵가의 검소하고 실천적인 모습은 ‘묵돌부득검’墨?不得黔이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묵자의 집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굴뚝에 검댕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자신들의 이상적 모델을 유가 모델보다 더 윗대인 우임금에까지 소급하여 설정함으로써 학파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는 견해도 없지 않습니다만, 묵가가 유가와는 그 사회적 기반을 달리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묵자는 일찍이 유학에 입문했으나 비유非儒를 천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가란 예를 번잡하게 하여 귀족들에게 기생하는 무리라는 것이 묵자의 유가관儒家觀입니다. 우임금의 실천궁행을 모델로 삼은 것은 유가가 모델로 삼고 있는 주周나라의 계급 사회가 아닌 하夏나라의 공동체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묵자는 제자들에게 우임금을 배울 것을 주장하여, 거칠고 남루한 의복도 고맙게 생각하며 나막신이나 짚신에 만족하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몸소 실천하는 것을 근본 도리로 삼도록 가르쳤습니다. 우임금의 길을 따르지 않는 자는 묵가가 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묵가 집단이 이처럼 헌신적 실천을 강조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몸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어 누구나 깡말랐고 살갗 또한 먹빛처럼 검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묵墨이란 별명이 붙었다고도 했습니다. 『장자』에서도 묵가를 평하여 “살아서는 죽도록 일만 하고 죽어서도 후한 장례 대신 박장薄葬(간소한 장례)에 만족해야 했으니, 그 길은 너무나 각박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묵자는 다른 학파의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층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검소한 삶을 영위하고 신명을 다하여 실천궁행하는 모습이 묵가의 이미지입니다.
 
 
2천 년 만에 복권된 『묵자』
 

 『묵자』는 다른 책보다 난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의 인간적 면모가 잘 나타나 있고, 또 그 사상적 기반이 분명하게 천명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난해하지 않은 면도 없지 않습니다. 앞으로 예시문을 함께 읽어가는 동안에 묵자의 이미지가 더욱 분명해지고 다른 학파와의 차이도 부각되리라 생각합니다.
 

 묵자에 관한 『사기』의 기록은 단 24자입니다. “묵적은 송宋나라 대부로서 성城을 방위防衛하는 기술이 뛰어났으며 절용을 주장하였다. 공자와 동시대 또는 후세의 사람이다”라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현재의 통설은 묵자는 은殷나라 유민遺民들의 나라인 송 출신으로 주周 시대의 계급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반대하고 우禹 시대의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며, 일생 동안 검은 옷을 입고 반전反戰, 평화, 평등 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한 기층 민중 출신의 좌파 사상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묵자』는 묵자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논어』와 마찬가지로 후대의 제자들이 스승의 언행을 모아 편찬한 것입니다. 원래는 71편이었다고 합니다만(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현재는 53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자백가들의 책 중에서 『묵자』가 가장 난해한 것으로 알려진 까닭은 대쪽(竹簡)이 망실되고 뒤바뀐 채 오랫동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체계를 세워서 읽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오랫동안 도가道家의 경전인 『도장』道藏에 끼어 있었습니다. 청대淸代에 와서야 필원畢沅(1730∼1797)에 의해 『묵자주』墨子注 16권으로 따로 출간됩니다. 그제야 처음으로 『묵자』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셈입니다. 그 뒤 1894년 손이양孫詒讓의 『묵자한고』墨子閒詁 15권이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뜻을 통해 읽을 수 있게 되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잊혔던 책입니다. 민국 초기에 량치차오梁啓超, 후스胡適 등과 같은 비교적 진보적인 학자들이 주를 달고 분류함으로써 오늘날의 『묵자』로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2천 년 만의 복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묵자』가 난해할 수밖에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문장이 간결하고, 쓸데없는 설명 즉 일체의 논변이 없기 때문입니다. 『묵자』의 이러한 면을 풍자한 예화가 『한비자』에 나옵니다. 진秦나라 임금이 딸을 진晉나라 공자公子에게 출가시켰습니다. 그 딸을 시집보낼 때 70명의 첩을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혀 딸려 보냈습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공자는 그 첩들을 사랑하고 그 딸은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논변이 많으면 그 핵심을 놓친다는 것을 비유로 말하는 것이지요. 묵자가 이러한 이유로 일체의 논변을 삼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간결한 문장과 농축된 의미를 읽어내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진 셈이지요.
 

 현재 전하는 『묵자』는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모두 53편입니다. 이 53편이 5부 15권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묵자의 중심 사상은 제2부를 구성하고 있는 제2권에서 제9권까지의 24편에 개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자의 10대 사상으로 알려진 그의 주장이 이 부분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묵자 사상을 고루 개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편명을 통해서 내용을 짐작해보기로 하지요. 상현尙賢, 상동尙同, 겸애兼愛, 비공非攻, 절용節用, 절장節葬, 천지天志, 명귀明鬼, 비악非樂, 비명非命, 비유非儒 등 11편입니다. 각 편이 대개 상중하로 구성되어 있어서 모두 24편입니다. 마지막의 두 편을 제외하고 모든 편이 자묵자왈子墨子曰로 시작되고 있어서 묵자의 제자들이 기록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묵자』에는 그 외에도 묵자의 가르침을 요약한 부분, 논리학과 자연과학, 묵자의 언행, 방어 전술 교본 등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묵자』는 읽히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묵자』는 사문斯文의 난적亂賊이었습니다. 『묵자』 전편이 번역된 것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번역자가 가까운 지인知人입니다. 비전공인 나로서는 묵자 연구자를 가까운 지인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후의 연구 업적들도 제때에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공자와 묵자는 다 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상황을 ‘사회적 위기’로 파악했습니다. 무도無道하고, 불인不仁하고, 불의不義한, 이기적이고 파멸적인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묵자는 현실 인식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묵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세 가지의 고통을 받고 있는 바, 주린 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것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有三患 飢者不食 寒者不衣 勞者不息)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보더라도 묵자가 기층 민중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묵자는 겸애兼愛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交利라는 상생相生 이론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連帶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당면의 실천적 과제로서 반전 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방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묵자 사상이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있지만 우리는 두 가지 점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겠습니다. 겸애와 반전 평화를 묵자 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묵자는 그의 사상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것의 실천에 있어서도 매우 훌륭한 모범을 보입니다. 실천 방법이 개인주의적이거나 개량주의적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언제나 집단적이고 조직적이며 철저한 규율로써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묵가는 강고한 조직과 엄격한 규율을 가진 집단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묵가는 불 속에도 뛰어들고 칼날 위에도 올라설 뿐 아니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발길을 돌리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皆可使赴火踏刃 死不施踵: 『淮南子』).
 

 아마 이러한 특징 때문에 전국시대, 그리고 진秦나라 초까지만 하더라도 묵가는 유가와 함께 가장 큰 세력을 떨칠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가장 큰 학파는 유가와 묵가이며(一世之顯學 儒墨也: 『韓非子』), 공자와 묵자의 제자들이 천하에 가득하다고 했습니다(孔墨之弟子徒屬 滿天下: 『呂氏春秋』).
 

 『회남자』를 쓴 유안劉安(BC. 178∼122)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묵가가 활동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사마천司馬遷(BC. 145∼86)이 『사기』를 썼던 기원전 1세기경에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 무제漢武帝(BC. 140∼87) 때 동중서董仲舒(BC. 179∼93)의 건의로 유학儒學이 국교가 되면서 묵가가 탄압되었고 해외로 망명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 시기가 대체로 기원전 100년경입니다.
 

 진秦, 한漢 이래 사회적 격동기가 끝나고 토지 사유를 중심으로 하는 지주 관료 중심의 신분 사회가 정착되면서 묵가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상하의 계층적 차별을 무시하는 평등주의 사상이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맹자는 이러한 겸애 사상을 비현실적이며 비인간적인 엄숙주의로 매도합니다. 무엇보다도 묵가는 그 사상의 사회적 기반이 와해되면서 함께 소멸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기층 민중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그들을 조직하여 세습 귀족 중심의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최초의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지배 집단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여 소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후인 19세기 말에 와서야 비로소 유교 사회의 붕괴와 때를 같이하여 재조명됩니다. 그래서 2천 년 만의 복권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지요. 『묵자』의 기구한 운명은 민중들의 그것만큼이나 장구한 흑암의 세월을 견뎌온 셈입니다.
 

 20세기 초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신청년운동新靑年運動과 함께 『묵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습니다.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습니다. 제자백가 중 가장 위대한 경험론자, 평등론자로 평가받으면서도 하느님 사상(天志論)과 비폭력 사상 때문에 유물론과 계급투쟁의 적으로 간주됩니다. 한편 우파로부터는 세습과 상속을 반대하는 그의 평등사상 때문에 여전히 배척되는 기구한 운명을 다시 반복하게 됩니다.
 

 공자가 춘추시대 말기의 사상가라면 묵자는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11세기 이래의 혈연 중심의 귀족 봉건제(宗法社會)가 급격히 붕괴되고 새로운 비귀족적 지주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태동하는 시기입니다. 기원전 8세기 이래 중국의 고대사회는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이행하면서 토지 생산력이 급격히 상승하여 봉건 제후들 간에 서서히 경제적 교류와 정치적 통합이 진행됩니다. 토지의 사유화가 다투어 진행됨에 따라 지주 계층이 성립되고 또한 상인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경제도 발전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는 『논어』 편에서 이야기했습니다만 행정, 경제 및 군사적 이유로 도시가 발달하게 됩니다. 당연히 종래의 혈연 중심의 인간관계가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수많은 담론들이 제자백가를 통해 제기됩니다.
 

 공자는 서주西周 이래의 예악禮樂에 나타난 귀족 중심의 통치 질서를 새로운 지식인(君子)의 자기 수양과 덕치德治의 이념을 통하여 회복(維新)하려고 노력했지요. 이에 반하여 묵자는 종래 귀족 지배 계층의 행동 규범인 예악을 철저히 부정하고 유가의 덕치 이념 대신에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인민의 협동적 연대(兼相愛)와 경제적 상호 이익(交相利)을 통하여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고 했습니다. 유가와는 달리 숙명론을 배격하고 인간의 실천 의지, 즉 힘(力)을 강조합니다. 실천 의지를 추동推動하기 위한 장치로서 귀鬼와 신神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리고 천자의 절대적 통치권을 주장합니다. 만민 평등의 공리주의公利主義와 현자 독재론賢者獨裁論을 표방합니다. 묵가 학설의 이러한 개혁성과 민중성은 유가 사상과 대항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러한 과도기가 끝나고 중국 사회가 토지 사유를 중심으로 하는 지주 관료 계층의 엄격한 가부장적 신분 사회로 정착되면서 묵가학파는 사라지게 됩니다. 상하의 계층적 차별을 무시하고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묵가 학설은 결국 그 학설의 사회 경제적 기반의 와해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聖人以治天下爲事者也 必知亂之所自起 焉能治之 不知亂之所自起 則不能治 譬之 如醫之 攻人之疾者然 必知疾之所自起 焉能攻之 不知疾之所自起 則弗能攻 治亂者 何獨不然 ―「兼愛」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혼란의 원인을 알아야 다스릴 수 있으며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 다스릴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고칠 수 없는 것과 같다. 사회의 혼란을 다스리는 것 역시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묵자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겸애」兼愛 상上의 첫 구절입니다.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매우 논리 정연하게 전개해갑니다. 비유도 적절합니다. 문장이 반복되기 때문에 핵심적인 구절만을 뽑아서 소개하겠습니다. 묵자는 혼란의 궁극적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天下之亂物 皆起不相愛 ―「兼愛」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묵자는 천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어떠한 사태로 전락하는지를 매우 설득력 있게 전개합니다. 국國과 국 간의 공攻, 가家와 가 간의 찬簒, 인人과 인 간의 적賊, 군신·부자·형제 간의 불충不忠·불효不孝·불화不和가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묵자가 규정하는 당시의 가장 큰 해악 해지대자害之大者는 다음과 같습니다.
 

 强必執弱 富必侮貧 貴必傲賤 詐必欺愚
 凡天下禍纂怨恨 其所以起者 以不相愛生也 ―「兼愛」
 

 강자는 약자를 억누르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능멸하고,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며 간사한 자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며, 천하의 화와 찬탈과 원한이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랑의 문제라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정적인 차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는 이 문제를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천하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롭게 되도록 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必興天下之利 以兼相愛 交相利之法 易之 ―「兼愛」
 

 겸애와 교리가 사회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법 즉 제도 개혁에 관한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然則兼相愛 交相利之法 將奈何哉
 子墨子言 視人之國若視其國 視人之家若視其家
 視人之身若視其身 ―「兼愛」
 
 그렇다면 겸상애와 교리지법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묵자가 말하기를, 그것은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가家 보기를 자기 가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 보기를 자기 보듯이 해야 한다.
 

 겸애는 별애別愛의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주의, 박애주의입니다. 묵자는 사회적 혼란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나아가 서로 이익이 되는 상리相利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리의 관계는 개인의 태도나 개인의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와 제도의 문제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도적·법제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에는 겸애와 교리의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는 보다 진전된 논의가 없습니다. 애정愛情과 연대連帶라는 원칙적 주장에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법제적 논의가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묵자의 이러한 입론立論이 묵자의 현대적 의미를 손상시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애정과 연대는 근대사회의 개인주의적 인간 이해를 반성하는 귀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若使天下 兼相愛 愛人若愛其身 惡施不孝 ―「兼愛」

 만약 천하로 하여금 서로 겸애하게 하여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한다면’ 어찌 불효가
 있을 수 있겠는가?
 

 故天下兼相愛則治 相惡則亂
 故子墨子曰 不可以不勸愛人者此也 ―「兼愛」
 그러므로 천하가 서로 겸애하면 평화롭고 서로 증오하면 혼란해진다.
 묵자께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까닭이 이와 같다.
 

 그런데 여러분은 위의 원문에서 매우 낯익은 구절을 발견할 것입니다. ‘애인약애기신’愛人若愛其身이 그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시인지신視人之身 약시기신若視其身’이란 구절도 같은 뜻입니다. 성경 구절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음이 놀랍습니다. 비단 이 예시 문안뿐만 아니라 묵자의 하느님 사상(天志)은 기독교의 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사랑이듯이 묵자의 하느님 역시 겸애이기 때문입니다. 묵자가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 때가 기원전 100년경이었기 때문에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가 망명亡命 묵가墨家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다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회대 정보과학관 휴게실에 ‘兼治別亂’겸치별란이란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내가 쓴 글씨입니다. 겸애하면 평화롭고(治) 차별하면 어지러워진다는 뜻이며 물론 묵자의 글에서 성구成句한 것입니다. 묵자의 겸兼은 유가의 별別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 별別이야말로 공동체적 구조를 파괴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악이라는 것이지요. 나와 남의 차별에서 시작하여 계급과 계급, 지역과 지역, 집단과 집단 간의 차별로 확대되는 것이지요. 가家와 가, 국國과 국의 쟁투가 그것입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큰 해악이 바로 서로 차별하는 교별자交別者라고 묵자는 주장합니다. 조금 전에도 예시문을 들어 소개했듯이 “큰 나라가 약소국을 공격하고, 큰 가家가 작은 가를 어지럽히고, 강자가 약자를 겁탈하고,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억압하고, 간사한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신분이 높은 자가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大國之攻小國 大家之亂小家 强之劫弱 衆之暴寡 詐之謀愚 貴之傲賤 此天下之害也: 「兼愛」)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마라
 

 다음으로 묵자의 반전 평화론에 대해서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묵자의 반전 평화를 읽으면 반전 평화의 문제가 참으로 오래된 숙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전 평화는 한반도의 가장 절박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오래된 과제이기 때문에 잊고 있을 뿐이지요. 묵자는 여러 편에 걸쳐서 대단히 많은 예화를 열거해가면서 자기의 반전 주장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비공」편非攻篇도 예외가 아닙니다만 일부만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묵자는 공격 전쟁을 반대하는 논리를 펴기 전에 먼저 당시의 일반적 관념을 비판합니다. 상투화된 사고를 반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본문을 모두 소개하지 않고 내용 중심으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묵자다운 논리 전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한 사람이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를 훔쳤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를 비난할 것이고 위정자는 그를 잡아 벌할 것이다. 왜? 남을 해치고 자기를 이롭게 했기 때문이다. 남의 개, 돼지, 닭을 훔친 사람은 그 불의함이 복숭아를 훔친 사람보다 더 심하다. 왜? 남을 해친 정도가 더 심하기 때문이다. 남을 더욱 많이 해치면 그 불인不仁도 그만큼 심하게 되고 죄도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남의 마구간에 들어가 말이나 소를 훔친 자는 그 불의함이 개, 돼지나 닭을 훔친 자보다 더욱 심하다. 남을 해친 정도가 더욱 심하기 때문이다. 남을 해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불인도 그만큼 심하게 되고 죄도 무거워지는 것이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옷을 뺏거나 창이나 칼을 뺏는 자는 그 불의함이 말이나 소를 훔친 자보다 더 심하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천하의 군자들이 모두 그것의 옳지 못함을 알고 그것을 비난하고 그것을 불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열 명, 백 명을 살인하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을 살인하는 전쟁에 대해서는 비난할 줄 모르고 그것을 칭송하고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묵자는 바로 이것을 개탄합니다. 나중에 언급하겠습니다만 묵자는 그 집단적 허위의식에 대하여 「소염」편所染篇에서 국가도 물드는 것이라는 논리로 비판합니다.
 

 至殺人也 罪益厚於竊其桃李 殺一人謂之不義
 今至大爲攻國 則弗知非 從而譽之謂之義
 此可謂知義與不義之別乎 ―「非攻」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 (그래서)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면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 의로움이라고 한다. 이러고서도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관념 체계에 대하여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시대는 이름 그대로 하루도 전쟁이 그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묵자는 전쟁의 모든 희생을 최종적으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기층 민중의 대변자답게 전쟁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것을 정면에서 반대합니다. 전쟁은 수천수만의 사람을 살인하는 행위이며, 수많은 사람의 생업을 빼앗고, 불행의 구렁으로 떨어트리는 최대의 죄악입니다. 단 한 줌의 의로움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따라서 비공非攻, 즉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상이지요. 그런 점에서 반전 평화론이야말로 전국시대 최고의 사상이며 최상의 윤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전쟁 방식에 의한 정의의 실현이 공공연히 선언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용인하는 한 그것이 어떠한 논리로 치장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기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쁜 평화가 없듯이 좋은 전쟁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今萬乘之國 虛數於千 不勝而入 廣衍數於萬 不勝而辟 然則土地者所有餘也 王民者所不足也 今盡王民之死 嚴上下之患 以爭虛城 則是棄所不足 而重所有餘也 爲政若此 非國之務者也 ―「非攻」

 이제 만승의 나라가 수천의 빈 성을 빼앗았다면 그 수천 개의 성 모두에 입성하기 어렵고, 수만 리에 달하는 넓은 땅을 빼앗았다면 그 넓은 땅을 모두 다스리기가 어렵다. 이처럼 땅은 남아돌고 백성은 부족하다. 이제 백성들의 생명을 바치고 모든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리면서 하는 일이 고작 빈 성을 뺏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부족한 것을 버리고 남아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정치가 이러한 것이라면 그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묵자의 반전론은 매우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전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묵자는 공전攻戰(공격 전쟁)을 예찬하는 자를 반박합니다. 공전이 비록 불의不義하지만 이익이 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반박합니다.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처음에는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전쟁을 통하여 영토가 확장되고 백성이 많은 강대국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공전을 예찬하는 논리가 있지만 묵자는 단호하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논박합니다. “만 명에게 약을 써서 서너 명만 효험을 보았다면 그는 양의良醫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이 아니다. 그러한 약을 부모님께 드리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몇 개의 전승국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패전 국가의 비극과 파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쟁은 인명과 재산의 엄청난 파괴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묵자는 전쟁의 파괴적 측면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예시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수년, 빨라야 수개월이 걸린다. 임금은 나랏일을 돌볼 수 없고 관리는 자기의 소임을 다할 수 없다. 겨울과 여름에는 군사를 일으킬 수 없고 꼭 농사철인 봄과 가을에 (전쟁을) 벌인다. 농부들은 씨 뿌리고 거둘 겨를이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백성을 잃고 백성은 할 일을 잃는 것이다. 화살·깃발·장막·수레·창칼이 부서지고, 소와 말이 죽으며, 진격 시와 퇴각 시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된다. 죽은 귀신들은 가족까지 잃게 되고 죽어서도 제사를 받을 수 없어 원귀가 되어 온 산천을 떠돈다. 전쟁에 드는 비용을 치국治國에 사용한다면 그 공은 몇 배가 될 것이다.
 

 묵자에게 있어서 전쟁은 국가가 근본을 잃게 되는 것이며 백성들이 그 생업을 바꾸어야 하는 일입니다(國家失本 而百姓易務也). 천하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일입니다(天下之害厚矣). 전쟁의 폐단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이나 대신들이 그런 짓을 즐겨 행한다면 이것은 천하의 만백성을 해치고 죽이는 것을 즐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묵자의 비공의 논리입니다(王公大人樂而行之 則此樂賊滅天下之萬民也).

 묵자는 다만 전쟁의 피해를 들어 그 부당함을 비판하는 논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공격 전쟁 그 자체가 결국은 패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옛날 일은 들어서 알고 지금 일은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공격 전쟁으로 망한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尙者以耳之所聞 近者以目之所見 以攻戰亡者 不可勝數: 「非攻」)

그중에서도 특히 힘만 믿고 자만하던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사례와 연전연승으로 오만해져 공격을 그칠 줄 몰랐던 진晉의 지백智伯이 결국은 약소국의 연합 전선에 무참히 패망하였던 사례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단히 감동적인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묵자께서 말씀하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 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 전쟁이 이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전쟁이야말로 흉물임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是故 子墨子曰 古者有語曰 君子不鏡於水 而鏡於人 鏡於水 見面之容 鏡於人 則知吉與凶 今以攻戰爲利 則蓋嘗鑒之於智伯之事乎 此其爲不吉而凶 旣可得而之矣: 「非攻」)
 

마치 묵자가 오늘의 세계를 눈앞에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군사적 패권주의가 당장은 부강의 방책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패망의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묵자의 준엄한 반전 선언이 살아 있는 언어로 다가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울에 비추지 마라”는 묵자의 금언은 비단 반전의 메시지로만이 아니라 인간적 가치가 실종된 물신주의적 문화와 의식을 반성하는 귀중한 금언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워야?
 

 우리들의 전쟁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묵자의 반전 평화론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 물들어 있는가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됩니다.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이 곧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추구했던 부국강병의 과정을 반복한 것이 사실이지요.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파괴와 처참한 죽음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살리는 자본 축적의 돌파구가 되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29년의 세계공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인스의 처방 때문이 아니라 2차 대전이라는 전시경제戰時經濟 덕분이었다는 것이지요. 2차 대전의 엄청난 파괴가 최대의 은인恩人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입니다. 마치 소비가 미덕이듯이 전쟁이 미덕이 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은 제국주의적 팽창 과정이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는 방식이 냉전冷戰이든 열전熱戰이든 항상 전쟁에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10년 주기로 경제공황이 반복되어왔으며 대규모 전쟁 역시 10년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전쟁사戰爭史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묵자』의 「비공」편은 전쟁 일반에 대한 잘못된 의식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허위의식을 반성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현재성을 갖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묵자는 「비공」편의 결론으로 대국이 소국을 공격하면 힘을 합해 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가들이 서로 교상리交相利의 국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화 구조야말로 전쟁을 막고, 신의와 명성을 얻고, 천하에 엄청난 이익을 만드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전쟁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구조, 그것이 바로 국가 간의 교상리 구조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묵자는 단지 반전 평화를 주장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평화 구조를 제도화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사상가들과 구별되는 묵자 특유의 경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펑유란馮友蘭은 묵가 사상이 하층 계급과 무사武士 계층의 직업적 윤리를 이론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묵가는 무사 출신의 훈련된 군사적 집단이고, 묵자는 초대 거자鉅子이며, 거자는 생살권生殺權이라는 군권軍權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물론 묵가에는 엄격한 조직 규율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말(言)은 믿을 수 있고, 그 행동은 반드시 결과가 있으며, 한번 승낙하면 반드시 성실하게 이행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뛰어드는 것이 묵가의 조직 규율입니다(其言必信 其行必果 其諾必誠 不愛其軀 赴士之厄困).

 묵가에게는 무사 집단의 윤리 또는 유협遊俠의 의리가 계승되고 있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에서 묵가는 이들과 구별됩니다. 공격 전쟁 즉 공전攻戰을 철저하게 반대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공수」편公輸篇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공수반公輸盤이라는 명장名匠이 초왕楚王에게 초빙되어 운제雲梯라는 공성 기구攻城機具(성을 공격하는 기구)를 제작했습니다. 초나라는 그것을 이용하여 송宋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묵자가 제나라를 출발하여 열흘 낮 열흘 밤을 달려가서 초나라로 하여금 전쟁을 단념하게 합니다.

 이 「공수」편에는 묵자와 공수반과 초왕이 논전을 벌이는 광경이 소설적 구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전 논리도 돋보이지만 전쟁을 막기 위한 묵자의 성실한 태도가 더욱 감동적입니다. 묵자가 반전 논리로 초나라의 침략 의도를 저지할 수 없게 되자 초나라의 공격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단언합니다. 결국 묵자와 공수반의 도상 전쟁圖上戰爭이 연출됩니다. 일종의 모의 전쟁입니다. 허리띠를 끌러 성을 만들고 나무 조각으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공수반이 공성 방법을 바꾸어 아홉 번이나 성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묵자는 아직도 방어술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공방攻防 시범에서 공수반은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내게는 선생을 이기는 방법이 있으나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초왕이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은 공수반이 아니라 묵자가 했습니다.

“공수반의 말은 나를 이 자리에서 죽이면 송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의 제자들은 금활리禽滑釐 이하 300명이 이미 저의 방성 기구를 가지고 송나라의 성 위에서 초나라 군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저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묵자는 기어코 초나라의 송나라 침략을 저지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만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그 뒤에 이어집니다. 묵자가 돌아가는 길에 송나라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비가 내려서 묵자는 마을 여각閭閣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지기는 묵자를 들이지 않았습니다. 송나라를 위하여 열흘 밤낮을 달려가 초나라의 침략을 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를 박대했습니다. 「공수」편 마지막에 첨부되어 있는 다음 구절이 그것입니다.
 
 止楚攻宋 止楚攻鄭 阻齊罰魯
 墨子過宋天雨 庇其閭中 守閭者不內也
 故曰 治於神者 衆人不知其功 爭於明者 衆人知之 ―「公輸」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저지하였고, 초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저지하였으며,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막았다. 묵자가 송나라를 지날 때 비가 내려서 마을 여각에서 비를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문지기가 그를 들이지 않았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놓고 싸우는 사람은 알아준다.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하다
 

 나는 오래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묵자의 표현을 따른다면 ‘덜 물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부끄러운 경험을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하게 됩니다. 키예프에는 전승 기념탑이 있습니다. 2차 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탑입니다. 나는 그 탑을 보면서도 그것이 전승 기념탑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의 뇌리에 전승 기념탑은 미 해병대 병사들이 점령한 고지에 성조기를 세우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키예프의 전승 기념탑은 언덕 위에 팔 벌리고 서 있는 모상母像이었습니다. 내가 의아해 하자 안내자가 설명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아들이 죽지 않고 돌아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돌아오는 아들을 맞으러 언덕에 서 있는 어머니의 상像이야말로 그 어떠한 것보다도 전승의 의미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어요.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전쟁과 승리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가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지요.

 묵자가 반전 평화론을 전개하면서 부딪친 가장 힘든 장애가 당시 만연하고 있던 사회적 관념이었습니다. 부국강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쟁이라는 패권 시대의 관념이 최대의 장애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쟁이란 국위를 선양하고 백성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전쟁이란 비록 의로운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단히 이로운 것이라는 지배 계층의 사고가 피지배 계층의 의식에까지 깊숙이 침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전쟁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회의 전쟁 불감증까지 감안한다면 묵자의 고충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묵자의 고민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소염론所染論입니다.
 

 子墨子見染絲者 而歎曰 染於蒼則蒼 染於黃則黃
 所入者變 其色亦變
 五入必而已則 爲五色矣 故染不可不愼也
 非獨染絲然也 國亦有染 ―「所染」
 

 『천자문』에 ‘묵비사염’墨悲絲染이란 글이 있습니다.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탄식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구절이 ‘묵비사염’의 원전입니다. 바로 묵자의 소염론입니다.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탄식하여 말했다.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랗게 되고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랗게 된다. 넣는 물감이 변하면 그 색도 변한다. 다섯 가지 물감을 넣으면 다섯 가지 색깔이 된다. 그러므로 물드는 것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단 실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나라도 물드는 것이다.
 

 “나라도 물드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 묵자가 가장 절실하게 고민했던 문제였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부터 나오며 욕구는 후천적으로 물들여지는 것(所染)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지와 같은 마음이 ‘마땅하게 물들여져야’(染當)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묵자는 임금과 제후가 훌륭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신하들로부터 올바르게 물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허유許由와 백양伯陽에게 물들어 어진 정치를 한 순舜임금과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에게 물든 제환공齊桓公을 선정善政의 예로 들고, 반대로 간신 추치推?에게 잘못 물든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장유삭長柳朔과 왕성王슬에게 잘못 물든 범길야范吉射를 폭정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물든다는 것은 곧 묵자의 사회 문화론이 됩니다. 물건을 많이 소비하는 것이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나라가 그렇게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개술국에서는 맏아들을 낳으면 잡아먹으면서 태어날 동생들에게 좋은 일이라 하고, 할아버지가 죽으면 할머니를 져다 버리면서 귀신의 아내와 함께 살 수 없다고 한다든가, 또 담인국에서와 같이 부모가 죽으면 시체의 살을 발라내고 뼈만 묻어야 효자라고 하는 풍습도 나라 전체가 잘못 물든 예라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소염론은 묵자의 학습론과 문화론의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묵자가 오늘의 우리 사회를 방문한다면 여전히 탄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크게 탄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애」와 「비공」을 중심으로 『묵자』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반드시 읽어야 할 편들이 더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절용」편입니다. 절용은 물건을 아껴 쓰는 검소함입니다. 절용은 밖에서 땅을 빼앗아 나라의 부富를 늘리는 대신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서 두 배로 늘리는 것입니다. 재물의 사용에 낭비가 없게 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자의 사과론(「辭過」)입니다. 과소비를 없애는 것이지요. 반전론의 대안이라 할 만합니다.
 

 옛날의 성왕은 궁실을 지을 때 단지 생활의 편의를 고려했을 뿐 결코 보고 즐기기 위하여 짓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궁실을 짓는 법은 이롭지 않은 것에는 비용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이다. (聖王作爲宮室 便於生 不以爲觀樂也 故爲宮室之法曰 凡費財勞力不加利者 不爲也: 「辭過」)
 

 쓸데없는 비용을 없애는 것은 성왕의 도이며 천하의 큰 이익이다. (去無用之費 聖王之道 天下之大利也: 「節用」)
 

 묵자가 무용無用한 것으로 예시하는 것 중에는 창칼을 비롯하여 궁궐·옷·음식·수레·배·장례·음악 등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묵자의 절용은 비공의 근거일 뿐만 아니라 비악非樂, 절장節葬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순자는 묵자를 비판하여 “실용에 눈이 가려 문화를 모른다”(墨子蔽於用 而不知文), 즉 문화라는 소비가 생산을 증대시킨다는 반론을 폈던 것이지요.

 “절용이 미덕이다” “아니다”, 오늘날도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과소비를 삼가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다가 다시 경기 활성화를 위해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반대의 목소리에 가려지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생산과 소비 수준은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그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 축적 논리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나는 사실 거리마다 즐비한 그 많은 음식점이 불황을 겪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외식을 해야 할지 걱정됩니다. 마찬가지로 10개의 월드컵 경기장을 계속 채우려면 얼마나 많은 경기를 벌여야 할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장해야 할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경우든 사람들의 소용所用은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생산 규모를 유지하려고 하는 정도라면 차라리 큰 문제는 아니지요. 새로운 상품이나 새로운 소재,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부단히 그 규모를 확대해가지 않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소용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 운동의 일환일 뿐입니다.

 묵자의 절용이 과연 문화를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문화 그 자체가 과연 인간적인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용없는 물건의 생산에 대해서도 무척 관대합니다. 그런 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일견 인간적인 논리로 합리화하는 것이 우리들의 상식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먹고사는 구조를 어떻게 짜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요. 기업의 논리, 경쟁의 논리,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서 생산 규모와 소비 수준이 설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진보는 단순화라는 간디의 명제를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묵자의 「절용」편은 소염론所染論, 사과론辭過論과 함께 과잉 생산과 대량 소비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낭비 구조를 조명하는 유력한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낭비 구조와 함께 거대한 소염所染 구조도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묵가를 설명하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묵자 사상의 철학적 방법론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묵가의 조직과 실천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묵자 사상의 철학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삼표’三表의 원문을 읽어보지요. 삼표란 세 가지 표준이란 의미입니다. 판단에는 표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준이 없는 것은 마치 녹로?? 위에서 동서東西를 헤아리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어떤 것이 이로운 것인지 어떤 것이 해로운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표론三表論은 이를테면 인식과 판단의 준거에 관한 논의입니다.

 묵가가 제자백가 중에서 현학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묵자』에는 윤리적 차원의 주장에 그치지 않고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적 구조와 철학적 사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유는 사실판단(知)의 기초 위에서 가치판단(意)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실판단의 기초가 되는 지각과 경험이 없으면 그 주장이 망상에 빠지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가치판단이 없는 지각과 경험만으로는 사실을 일컬을 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즉 지知와 의意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항상 판단의 표준을 세우지 않으면 가치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묵자의 주장이며 삼표가 바로 판단의 세 가지 표준입니다.

 何謂三表 …… 有本之者 有原之者 有用之者
 於何本之 上本於古者聖王之事
 於何原之 下原察百姓耳目之實
 於何用之 發以爲刑政 觀其中國家百姓人民之利
 此所謂言有三表也 ―「非命 上」

 무엇을 삼표라고 하는가. …… 본本, 원原, 용用이 그것이다. 어디에다 본本할 것인가? 위로 옛 성왕聖王의 일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어디에다 원原할 것인가? 아래로 백성들의 이목(현실)을 살펴야 한다. 어디에다 용用할 것인가? 나라의 법과 행정이 시행(發)되어 그것이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합치하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소위 판단(言)의 세 가지 표준이라고 한다.
 
 묵자의 삼표는 첫째는 역사적 경험이며, 둘째는 현실성이며, 셋째는 민주성입니다. 그리고 세번째의 표준인 용用, 즉 국가·백성·인민의 이익에 대하여 묵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부富·상象·안安·치治가 그것입니다. 부富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만 묵자의 경우 물질적 풍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상象은 인구를 늘리는 것입니다. 안安은 삶의 안정성입니다. 그리고 치治는 평화입니다. 어느 것이나 묵자 사상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가 주장하고 있는 겸애兼愛·비공非攻·절용節用·사과辭過의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묵자에게 있어서 판단의 표준은 묵자의 사회 정치적 입장을 의미합니다. 묵자의 입장은 기층 민중의 이익입니다. 그리고 기층 민중의 이익은 전쟁을 반대하고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 것(交利)입니다.

 이처럼 묵자 사상의 근본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용·절장節葬·사과 등 근검절약할 것을 주장하여 자연의 질서와 사회적 구조를 함께 온전히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묵자 사상은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을 철학적 토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적 입장에 있어서 어느 학파의 사상보다도 관계론에 철저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입장이 겸애와 교리라는 사회적 가치로 구현되고 다시 이 겸애와 교리가 당대의 사회적 조건에서 반전 평화, 절용이라는 실천적 과제와 통합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공전攻戰과 별애別愛는 존재론적 논리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배타적으로 강화하려는 강철의 논리입니다. 전쟁과 병합은 기본적으로 존재론적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적 구성 원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사회적 혼란은 종식될 수 없다는 것을 묵자는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국國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가家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몸(身)만을 생각하는 것이 존재론적 논리입니다. 이러한 존재론적 논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사회는 무도無道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국과 국이, 가와 가가, 사람과 사람이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묵자의 근본적 과제입니다. 이처럼 묵자의 도는 근본에 있어서 관계론입니다. 묵자는 결코 일방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고 있는 상호 관계를 강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겸애와 함께 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관계의 본질을 상생相生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묵자는 겸애와 교리를 하늘의 뜻이라고 합니다. 묵자의 천지론天志論입니다. 그러나 묵자의 천天은 인격천人格天이나 절대적 천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연구자들의 결론입니다. 묵자의 천지론은 사람들로 하여금 겸애의 도를 실행하게 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입니다. 묵자의 하느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현세와 인간세계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묵자의 천지론이 전체 체계에 있어서 그러한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묵자는 바로 이 삼표론에서 천天이 단순한 기능적 천이 아님을 천명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천은 도道와 마찬가지로 진리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겸상애兼相愛와 교상리交相利가 하늘의 뜻이라는 주장은 그것이 세계의 본질적 구조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묵자의 이러한 사상이 바로 천지天志가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납니다. 하느님 이외의 어떤 것도 표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묵자의 비명 사상非命思想입니다. 이 삼표론 역시 「비명」편非命篇에 있습니다. 비명이란 하늘이 정한 운명과 숙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화복禍福은 인간이 자초하는 것이며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묵자는 은나라와 하나라의 시詩를 인용하여 “천명天命이란 폭군이 만들어낸 것이다”(命者暴王作之)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폭군이 자의적인 횡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 천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묵자의 천天은 인격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노자의 도와 같은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뜻이 상애상리相愛相利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형식으로 그의 사상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묵자는 하늘 이외의 모든 존재, 즉 부모, 학자, 군주는 법이 될 수 없다(父母學者君 三者莫可以爲法: 「法儀」)고 합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남의 자식보다 더 사랑하며, 학자는 하느님보다 지혜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자의 지식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죽은 관념에 불과하고 그나마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어서 평등한 사랑을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주란 인민의 의義를 하느님의 뜻과 화동일치和同一致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수단일 뿐 그 자신이 표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묵자의 주장입니다.

 여러분은 묵자의 사상 체계가 매우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묵자』의 모든 내용은 묵자의 사회적 입장과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묵자의 하느님 사상까지도 전체 체계의 일환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국民國 초기의 사회운동 과정에서 이러한 묵자의 천지론을 종교적이라고 단정한 좌파의 비판은 결과적으로 매우 교조적인 해석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묵가의 조직과 실천의 엄정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여씨춘추』에 있는 기록입니다. “기원전 381년 양성군陽城君의 부탁을 받고 초나라의 공격에 대항했으나 패하였다. 거자鉅子 맹승孟勝 이하 183명이 성城 위에 누워 자살했다.” 묵가는 집단 자살이라는 매우 비장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직의 책임자인 거자가 생사여탈권을 가질 정도로 묵가는 조직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묵자가 초대 거자였음은 물론입니다.

 거자인 맹승은 초나라 양성군의 부탁으로 나라의 수비를 맡고 있었습니다. 패옥佩玉을 둘로 나누어 신표信標로 삼을 정도로 두 사람은 신의가 두터웠습니다. 기원전 381년 초나라의 왕이 죽고 내란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양성군은 왕실에 도전했다가 패하여 달아납니다. 초 왕실은 양성군의 봉지封地를 몰수하기 위해 군사를 보냈습니다. 『여씨춘추』의 기록은 이때의 이야기입니다. 수비를 맡고 있던 맹승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왕실의 공격을 막을 힘도 없고 그렇다고 신의를 저버릴 수도 없다, 죽음으로써 신의를 지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최후의 선언을 합니다. 이러한 맹승의 결연한 태도에 대하여 제자들이 불가함을 간합니다. 자결이 양성군에게 이롭다면 죽는 것이 마땅할 것이지만 그것이 양성군에게 조금도 이로울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더구나 그것은 세상에서 묵자의 명맥을 끊는 일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반론에 대하여 맹승이 펼치는 논리가 묵가의 진면목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양성군과 나는 스승과 제자이기 이전에 벗이었고, 벗이기 이전에 신하였다. 우리가 죽기를 마다한다면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엄격한 스승을 구할 때 묵자학파는 반드시 제외될 것이며, 좋은 벗을 구할 때도 묵자학파는 제외될 것이며, 좋은 신하를 구할 때도 반드시 묵자학파가 제외될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택하는 것은 묵자학파의 대의大義를 실천하고 그 업業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엄정하고 결연한 태도입니다. 맹승은 송나라에 가 있는 전양자田襄子에게 거자鉅子를 넘기고 성 위에 나란히 누워 자결했습니다. 그를 따라 함께 자결한 제자가 183명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묵가의 엄격한 규율에 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묵자 다음의 거자인 복돈腹敦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복돈의 아들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진秦의 혜왕惠王이 복돈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선생은 나이도 많고 또 다른 아들이 없으시니 과인이 이미 형리에게 아들을 처형하지 말도록 조처를 취해두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이런 제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복돈의 대답은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해친 자는 형벌을 받는 것이 묵가의 법입니다. 이는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무릇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행위를 금하는 것은 천하의 대의입니다. 왕께서 비록 제 자식을 사면하셔서 처형하지 않도록 하셨더라도 저로서는 묵자의 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돈은 혜왕의 사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식을 처형했습니다.

 묵가에 대해서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한 사람은 맹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물론 『맹자』 편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묵가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만 주로 묵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기 이론의 정체성을 확립해갑니다. 맹자는 묵가의 고결한 가치인 엄격성과 비타협성 그 자체를 비판합니다. 그리고 겸애라는 이상주의적 가치에 대해서도 그것이 인지상정에 어긋나는 것임을 비판합니다.

 『맹자』에 맹자와 제자 도응桃應의 대화가 있습니다. 도응이 질문하였습니다. 순舜이 천자로 있고 고요皐陶가 사법관으로 있는데 천자의 부친인 고수┩앎가 살인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하필 순임금과 그 아버지 고수를 예로 든 것은 부자간의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맹자의 답변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고수는 당연히 법에 따라 체포되어야 하고,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선왕의 법이기 때문에 순임금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맹자의 답변입니다. 그러면 순임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맹자의 대답이 압권입니다. 이 답변이 유가와 묵가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순은 임금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몰래 부친을 업고 도망가 멀리 바닷가에 숨어 살면서 부친을 봉양하고 천하를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맹자의 대답입니다. 임금의 사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처단한 묵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방식은 효孝라는 이름으로 별애別愛를 두호斗護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논어』에도 유가와 묵가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섭공葉公과 공자의 대화입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고을에 대쪽같이 곧은 사람으로 직궁直躬이 있습니다.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그가 그 사실을 관청에 고발했습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고을의 곧은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비록 그런 일이 있더라도) 아비는 자식을 위해, 그리고 자식은 아비를 위해 감추어줍니다. 곧음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위의 예는 물론 묵가의 비타협적인 면모에 관한 것임은 물론입니다. 묵가의 사상 체계는 별애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구조, 그리고 겸애가 발현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논의까지 망라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묵자에 대한 『장자』의 평가를 소개합니다.
 
 실천 행위는 과도하였으며 절제는 지나치게 엄정하였다. 「비악」非樂과 「절용」을 저술하였다. 사람이 태어나도 찬가를 부르지 않으며 죽어도 상복을 입지 않았다. 묵자는 만인의 사랑과 만인들 간의 이익을 말하고 서로의 투쟁을 반대했으니 그는 실로 분노하지 말 것을 설파한 것이다.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지 말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말고, 즐거울 때 즐거워하지 말아야 한다면 이런 묵가의 절제는 과연 인간의 본성과 맞는 것인가? 묵가의 원칙은 너무나 각박하다. 세상을 다스리는 왕도王道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묵자와 금활리禽滑釐의 뜻은 좋지만 실천은 잘못된 것이다. 스스로 고행을 자초하여 종아리에 살이 없고 정강이에 터럭이 없는 것으로 서로 경쟁을 벌이게 할 뿐이다. 사회를 어지럽히기에는 최상이요 다스리기에는 최하이다. 묵자는 천하에 참으로 좋은 인물이다. 이런 사람을 얻으려 해도 얻을 수 없다. 자기의 생활이 아무리 마른 나무처럼 되어도 자기의 주장을 버리지 않으니 이는 정말 구세救世의 재사才士라 하겠다.

 묵가는 중국 사상사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패권적 질서와 지배 계층의 사상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 세력으로 등장하여 기층 민중의 이상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투철한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대중 속에서 설교하고 검소한 모범을 보였으며,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묵자가 죽은 후에도 200여 년 동안 여전히 세력을 떨쳤지만 그 후 2천 년이라는 긴 망각의 시대를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묵가는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이 그 이후 장구한 역사 속에서 겪어 나갈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역사의 초기에 미리 보여준 역설적인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시기 (09-01-21 17:28)
 
묵자에 대한 글을 읽어보다가 체 게바라가 묵자의 에너지장을 흠뻑 받은 듯한 느낌이 드네요.
여기다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잘못됐으면 지우셔도 되고.

관리자 (09-01-22 01:29)
 
여기다 올리는 건 괜찮은데 가급적 글을 퍼오실때는 메모장에 복사해서 넣기 하셨다가
그 글을 다시 이곳 게시판에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을 경우
글에 붙어 있는 온갖 태그까지 같이 딸려서 들어오기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페이지 오류가 있다고 뜬답니다.
그리고 책소개일 경우 책 표지 그림도 가능하면 올려주시면 더욱 감사하겠구요..^^;;
암튼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우도 (09-01-22 08:06)
 
득세하던 묵가들이 유가의 탄압으로 하루 아침에 사리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탄압을 피하여 전 세계로 흩어진 시대가 예수가 탄생하던 시기로서 동방박사가
묵가들이 아닌가 하는 추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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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군사독재정권과 보수 개신교의 야합이 담긴 <산업선교, 그리고 70년대 노동운동&g… (1) 미선 4002 01-30
237 <사회주의>에도 여러 사회주의'들'이 있다! (1) 미선 3593 01-04
236 <지구의 정복자>, 유전자중심설에서 집단선택설로 입장을 바꾼 에드워드 윌슨 … (1) 미선 4004 12-12
235 "누가 왜 복지국가에 반대하는가" <복지국가의 정치학> (1) 미선 3855 12-04
234 [좋은세상 만들기 필독서!] 에릭 올린 라이트의 <리얼 유토피아> (3) 미선 3914 11-26
233 [정말 대단한 책] <신경 과학의 철학-신경 과학의 철학적 문제와 분석> (3) 미선 6653 11-23
232 [좋은책 추천!] 심리학 개론서의 최고봉, <마이어스의 심리학> (1) 미선 6070 11-20
231 "돈벌이 경제학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으로" 홍기빈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1) 미선 4259 10-18
230 [☆로열 반열에 올릴만한 걸작] 에릭 얀치의 <자기 조직하는 우주> 미선 4600 10-06
229 최신 사회학 이론 공부를 한다면 <현대 사회이론의 흐름>을 추천! (1) 미선 5001 08-17
228 요즘 유행하는 책들...CEO성공기, 명망 인사의 에세이, 유행적인 종교 비판, 취업 성… 미선 3435 08-14
227 Thinking with Whitehead: A Free and Wild Creation of Concepts, by Isabelle Sten… (1) 미선 3655 08-13
226 [좋은책추천] 신재식,<예수와 다윈의 동행> 기독교와 진화론의 공존 모색 (2) 미선 4806 08-04
225 이자벨 스땅제, <화이트헤드와 함께 사유하기> (브뤼노 라투르의 서문) (1) 미선 4504 07-02
224 [좋은책추천] 댄 스미스의 <인문 세계 지도>, 지금의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 트… (1) 미선 4664 06-27
223 <편향>(이남석), 나도 모르게 빠지는 생각의 함정 (1) 미선 5290 06-16
222 [좋은책추천] 르네 지라르의 모든 것을 풀어놓은 대담 <문화의 기원> (1) 미선 4494 06-01
221 정일권, <붓다와 희생양 - 르네 지라르와 불교문화의 기원> (2) 미선 5675 05-17
220 <불교 파시즘>, 선(禪)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1) 미선 4240 05-17
219 <빅 히스토리>, 우주 지구 생명 인간의 역사를 통합하다 (1) 미선 4207 05-09
218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는 맥그래스의 책, <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 (1) 미선 4952 04-15
217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가난한 이들은 쉽게 아팠고 쉽게 다쳤고 쉽게… (1) 미선 5947 03-24
216 인간 인지 능력의 생물학적 뿌리, 마뚜라나와 바렐라의 <앎의 나무> (1) 미선 4813 03-21
215 <이야기의 기원>,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1) 미선 4124 03-12
214 뇌과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 <뇌와 내부세계 : 신경 정신분석학 입문> 미선 4312 02-25
213 필립 클레이튼,『신학이 변해야 교회가 산다』 (1) 미선 4571 02-03
212 <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 보어, 아인슈타인, 실재론 (1) 미선 6830 01-26
211 보수주의자들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책, <보수주의자들은 왜?> (1) 미선 4480 01-16
210 [경이로운 책]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 <미토콘드리아> (1) 미선 4464 01-01
209 [좋은책 추천] <믿음의 탄생> 왜 우리는 종교에 의지하는가 (1) 미선 4763 12-07
208 [좋은책 추천] <섹스 앤 더 처치>, 젠더, 동성애, 그리고 기독교 윤리의 변혁 (2) 미선 7050 11-28
207 [좋은책 추천] 여성신학자 래티 M. 러셀의 <공정한 환대> (2) 미선 5103 11-28
206    래티 M. 러셀의 <공정한 환대>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그림이.. 미선 4229 03-19
205 <화풀이 본능>, 우리 몸 안의 폭력 유전자가 복수와 화풀이를 일삼다! (1) 미선 5115 11-24
204 [좋은책 추천] 성경에 나타난 구원과 폭력, <희생양은 필요한가> (1) 미선 6100 11-19
203 <권력의 병리학>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1) 미선 4572 11-09
202 괜찮은 무신론 소개의 저서, <무신예찬> (1) 미선 5161 10-30
201 뇌의 책임?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의 <뇌로부터의 자유> 미선 4770 10-16
200 성서에 있는 사회주의, 이덕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 (1) 미선 4528 10-12
199 민중신학 공부에 있어 최소한의 필독서들입니다. (5) 미선 9269 10-03
198 성경공부를 정말 제대로 하시려면 꼭 필독할 책들! (2) 미선 6697 09-29
197 [추천]『오늘날의 무신론은 무엇을 주장하는가』근본주의 무신론자에게 답하다! (5) 미선 5866 09-10
196 [좋은책 추천!]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다시 만들어진 신> (8) 미선 6218 08-14
195 [좋은책 추천] 현대 과학 종교 논쟁 - 과학과 종교와의 관계 모색 (2) 미선 5477 07-25
194 갓(God)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위한 저서, <신들의 생존법> (1) 미선 5135 07-21
193 <창조자 없는 창조> 경이로운 우주를 말하다 미선 4092 07-01
192 숀 캐럴, 현대물리학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답하다 (다른세상) (1) 미선 6248 06-25
191    브라이언 그린, <멀티 유니버스 우리의 우주는 유일한가>(김영사) (1) 미선 5787 06-25
190 성산(聖山) 아토스(Atos) 순례기 - 니코스 카잔차키스 (1) smallway 4797 06-20
189    아나톨리아, 카파도키아 smallway 3794 06-20
188 [좋은책 추천] 김영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그린비) (1) 미선 4954 06-13
187 보수 종교인들의 사회보다는 차라리 <신 없는 사회>가 더 낫지 않을까요? (1) 미선 4700 04-25
186 [좋은책 추천] 스티븐 로,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와이즈베… (1) 미선 5005 04-19
185 함석헌의 종교시 탐구, <내게 오는 자 참으로 오라> (1) 관리자 4501 04-04
184 [좋은책추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 캅과 그리핀의 <과정신학> (1) 미선 5151 03-08
183 몸에 해로운 정치인 투표가 있다! <왜 어떤 정치인은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1) 미선이 4521 03-01
182 [비추] 루크 티머스 존슨의 <살아있는 예수> (1) 미선이 4783 02-26
181 자연계가 보여주는 성의 다양성, <진화의 무지개>(조안 러프가든) (1) 미선이 4817 02-19
180 페미니즘 내부의 통렬한 자기반성, <잘못된 길>(엘리자베트 바댕테르) (2) 미선이 5424 02-19
179 다윈주의 페미니즘의 걸작, <어머니의 탄생>(세라 블래퍼 하디) (1) 미선이 5062 02-18
178 페미니스트들이 껄끄럽게볼만한 책, <욕망의 진화>(데이비드 버스) (3) 미선이 6561 02-18
177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할 책, <모자란 남자들>(후쿠오카 신이치) (1) 미선이 4900 02-18
176 [좋은책 추천]<이교에 물든 기독교>(현대 교회에서 행하는 관습의 뿌리를 찾아… (2) 미선이 5785 02-03
175 <신은 뇌 속에 갇히지 않는다>, 신 존재와 뇌과학 연구에 대한 비유물론적 입… (1) 미선이 5352 01-28
174 "종교와 신은 뇌의 산물", 유물론적 입장의 <신의 뇌> (1) 미선이 5830 01-28
173 [좋은책 추천] 스튜어트 머레이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대장간) (1) 미선이 5655 01-12
172 [정말 좋은 책] 기독교의 여성 잔혹사, 기 베슈텔의 <신의 네 여자> (1) 미선이 5192 01-10
171 창조론 및 지적 설계론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 성찰, <다윈주의와 지적 설계론> (1) 미선이 4851 12-29
170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1) 미선이 5188 12-29
169    진화론에 반박한다면서 내세우는 창조론자들의 주장, <엿새 동안에> (1) 미선이 5270 12-29
168 [비추!] 범재신론에 대한 보수 기독교 진영의 레포트 (1) 미선이 5797 12-17
167 <위도 10도>, 종교의 끔찍한 폐해.. 종교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땅.. (1) 미선이 5036 12-11
166 함석헌을 읽자..<새 시대의 종교>,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 &… (1) 미선이 4243 12-02
165 [강추!]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불편한 진실(비폭력 성자와 체제 옹호자의 두 얼굴) (1) 미선이 7339 11-29
164 민중보다 오히려 귀족편에 섰던 공자 논리의 한계를 볼 수 있는 책 (1) 미선이 4982 11-13
163 [비추!] 진보적인 복음을 가장한 보수 기독교 입장의 기만적인 책들.. 미선이 4386 11-03
162 ★잘 안알려졌으나 정말 좋은 책 (1) 로버트 메슬의 <과정신학과 자연주의> 미선이 4921 09-30
161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대결 <사회생물학 대논쟁> 미선이 4839 09-14
160 [비추!] 진보를 가장한 허접스러운 <유신론> 입장의 책들.. (1) 미선이 5093 09-07
159 Transforming Christianity and the World (John B. Cobb) 미선이 4063 09-02
158 김상구,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 (해피스토리) (1) 미선이 5918 08-27
157 "자기계발서 읽지마라!", 미키 맥기의 <자기계발의 덫>(모요사) 미선이 6151 08-07
156 <스핀닥터>,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기업권력의 언론플레이 (1) 미선이 5392 07-29
155 <경제학 혁명>, 신화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경제학으로 | 원제 Economyths (1) 미선이 5384 07-25
154 <나는 내가 낯설다>, 내가 모르는 나, 99%를 찾는 심리여행 미선이 5666 07-25
153 <인간의 미래>, 보다 진보적인 생명공학의 입장에서 쓴 저술 (1) 미선이 7447 04-22
152 [화제의책] 『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 갈무리 5018 04-21
151 <나는 몇 살까지 살까>, 1,500명을 80년 간 추적한 사상초유의 연구보고서 (1) 미선이 5205 04-15
150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 (1) 미선이 5583 04-05
149 [초강추!] 김태형, <불안증폭사회>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좋은 책!) 미선이 6155 03-15
148 [초강추!] 도널드 셔번의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입문>(서광사) 미선이 5942 03-12
147 [초강추] 기독교와 섹스를 말한다 "성서는 섹스에 대해 일관되지 않고 모순적이다" (1) 미선이 8572 02-21
146 [초강추] 신의 이름으로 - 종교 폭력의 진화적 기원 (1) 미선이 7973 02-21
145 미복음주의 활동가의 새로운 기독교 추구, A New Kind of Christianity: Ten Questio… 미선이 4845 02-03
144 인문학의 첨단연구 Process Approaches to Consciousness in Psychology, Neuroscien… 미선이 4749 02-02
143 [초강추!] 제임스 랜디의 <폭로>, (기적의 병치유 믿는 분들은 제발 꼭 한 번… 미선이 6071 01-30
142 [초강추!] 혁명을 표절하라 - 세상을 바꾸는 18가지 즐거운 상상 미선이 4605 01-10
141 [강추!] 에코뮤니티: 생태학적 삶을 위한 모둠살이의 도전과 실천 미선이 4841 01-10
140 Paul F. Knitter, Without Buddha I Could Not Be a Christian (1) 미선이 5227 01-01
139 [초강추!] 앨버트 O. 허시먼,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웅진지식하우스) 미선이 5762 12-07
138 [초강추!] 김태형, 『불안증폭사회』(위즈덤하우스) 미선이 4804 12-07
137 <간단 명쾌한 발달심리학> 인간 전체 이해를 이 한 권으로 시작해보시길 바람.… 미선이 7229 11-14
136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정가16,000원)을 단돈 9,600원에 구입할 수 … 미선이 5036 11-04
135 [초강추!] 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 다원적 공공정치를 위한 … (1) 미선이 6414 10-29
134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 우리가 잃어버린 종교의 참의미를 찾아서> 미선이 7718 10-29
133 <어플루엔자>,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비와 욕망으로 인해 겪는 질병 미선이 6109 10-27
132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도 블로디노프 『위대한 설계』(까치) (1) 미선이 6051 10-09
131 [초강추] 얼 쇼리스,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1) 미선이 6735 10-09
130 [초강추!] 매튜 폭스, 『새로운 종교개혁』(코나투스) (1) 미선이 7612 10-09
129 [초강추]존 캅의『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와 대화를 넘어서』(이문출판사) 미선이 5149 09-10
128 <초강추> 잡식동물의 딜레마 (1) 화상 5610 08-30
127 ▒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골수 좌파이론가의 웅변 '신은 위대하다�… (1) 노동자 7028 08-07
126 제임스 로더『성령의 관계적 논리와 기독교교육 인식론: 신학과 과학의 대화』 고골테스 7497 07-14
125 조르조 아감벤『목적없는 수단 : 정치에 관한 11개의 노트』 고골테스 6384 07-14
124 [초강추!]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예수 왜곡의 역사』(청림출판) (2) 미선이 7889 05-29
123 도올의 예수 이해, 도마복음서 주해,『도마복음한글역주』 (3) 미선이 7074 05-01
122 [초강추]『생명의 해방 : 세포에서 공동체까지』 화이트헤드와 생물학의 경이로운 만… (1) 미선이 7155 04-28
121 [초강추!] 불교의 진면목을 느끼고 싶으신 분께 꼭 추천하는 책,『깨달음과 역사』(… (3) 미선이 6291 04-28
120 [강추!] 칼뱅의 잔악한 권력에 맞선 지식인 『폭력에 대항한 양심』(슈테판 츠바이크… (2) 미선이 5749 04-14
119 [강추!]무신론자들의 일반적인 논리를 알 수 있는 책 『우주에는 신이 없다』(데이비… (2) 미선이 6138 04-14
118 [초강추!]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적 사기』(민음사) (1) 미선이 7803 03-29
117 『뇌, 생각의 출현』(박문호) 미선이 6845 03-28
116 서로주체성의 이념 (4) 화상 5288 03-16
115 길희성의『보살예수』, "연꽃과 십자가는 둘이 아니라네" 미선이 5933 03-14
114 흥미 진진한 현대 물리학의 우주론 『평행우주』(저자 : 미치오 카쿠 물리학자) 미선이 6099 03-10
113 [초강추!]삼성제국의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는 김용철 변호사의『삼성을 생각한다』(… 미선이 5829 02-27
112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감정노동 - 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 (1) 정강길 8139 02-25
111 무지한 스승 -쟈크 랑시에르 (1) 라크리매 6456 02-17
110 철학 VS 철학 (9) 치노 6186 02-16
109 제국신학과의 대결구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평화를 발전시킨 바울의 창조… (5) 흰구름 6461 02-12
108    첫번째 바울: 급진적인 바울이 어떻게 보수 신앙의 우상으로 둔갑했는가 (3) 정강길 5982 02-17
107 만남 (2) 화상 4713 02-09
106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민음사) (5) 정강길 5956 02-09
105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박홍규의 니체와 니체주의 비판 (10) 정강길 8415 02-05
104 화이트헤디안의 문명진단론, 에롤 E.해리스의『파멸의 묵시록』(초강추!!) (7) 정강길 6669 01-31
103 상처받지 않을 권리 - 강신주 (6) 라크리매 7404 01-29
102 우희종/성태용/강신익/변희욱/정준영『몸 마음공부의 기반인가 장애인가』(운주사) 정강길 5816 01-24
101 김희정, 『몸 국가 우주 하나를 꿈꾸다』(궁리) (1) 정강길 5929 01-24
100 박규현, 홍덕선 지음,『몸과 문화-인간의 몸을 해석하는 다양한 문화 담론들』 정강길 6762 01-24
99 강신익, 『몸의 역사 몸과 문화』(휴머니스트) 정강길 6469 01-24
98 『우유의 역습』, 당신이 몰랐던 우유에 관한 거짓말 그리고 선전 미선이 5414 01-24
97 『뇌과학의 함정-인간에 관한 가장 위험한 착각에 대하여』 (6) 정강길 11407 01-18
96 죽은 신을 위하여 (기독교 비판 및 유물론과 신학의 문제) - Slavoj Zizek (8) 라크리매 8047 01-14
95 프라이드를 탄 돈키호테(펌) smallway 5293 12-05
94 민희식 한양대 석좌교수의 "성서의 뿌리" smallway 12616 11-24
93 마커스 보그의 신간 <기독교의 심장> 흰구름 5740 11-03
92 뉴욕타임즈가 뽑은 20세기 Best 책 100선 (2) 정강길 12023 10-23
91 기독교 원죄에 대한 해석-아담, 이브, 뱀 : 기독교 탄생의 비밀 미선이 5600 06-02
90 하느님과 진화론 같이 믿으면 안되나여? 미선이 4528 08-08
89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4) smallway 5768 07-31
88 [초강추!]리처드 니스벳 저,『생각의 지도: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미선이 7854 07-16
87 [초강추!]EBS다큐제작팀,『동과 서: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사고방식이 다를까』(예담… 미선이 14226 07-16
86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실험실-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미선이 7053 07-13
85 김태권 저, 우석훈 해제,『어린 왕자의 귀환: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미선이 6069 07-13
84 김명수,『큐복음서의 민중신학』(도올 김용옥 서문 | 통나무) 미선이 5039 07-07
83 『종교전쟁』(김윤성, 신재식, 장대익 지음 / 사이언스북스) 미선이 8562 06-25
82 카우프만, 예수와 창조성, 서문 (1) 흰구름 4860 06-24
81 예수와 창조성 - 고든 카우프만 (1) 흰구름 5697 06-23
80 초판과 절판, 희귀본 흰구름 4817 06-22
79 [초강추!] 존 베일리스 지음, 스피브 스미스 등편,『세계정치론』(을유문화사) (1) 미선이 8376 06-15
78 『예술과 연금술 : 바슐라르에 관한 깊고 느린 몽상』 고골테스 5936 06-11
77 [초강추!] 빌프리트 뢰리히,『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바이북스) 미선이 5210 06-01
76 [초강추!] 남우현,『기독교 진리 왜곡의 역사』(지식나무) 미선이 6221 06-01
75 무신론적 근본주의, 샘 해리스의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미선이 6762 05-30
74 앤서니 드 멜로 『유쾌한 깨달음』 (1) 고골테스 5827 05-26
73 기독교사상에 파문을 던진 윌버의 문제작, 켄 윌버,『에덴을 넘어』(한언) (3) 미선이 6160 05-07
72 [초강추!] 마르틴 우르반,『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도솔) 미선이 5357 05-05
71 『헤겔에서 니체로』, 『20세기 서양 철학의 흐름』 고골테스 6528 04-26
70 『은유로서의 질병』, 『미니마 모랄리아』, 『학문, 묻고 답하다』 (2) 고골테스 6290 04-26
69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고골테스 4897 04-26
68 [초강추!] 마이클 셔머,『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바다출판사) 미선이 9098 04-24
67 [초강추!]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갈라파고스) 미선이 7879 04-21
66 [초강추!] 리처드 윌킨슨,『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 +『건강불평등』 (1) 미선이 9136 04-14
65    [리뷰] 리처드 윌킨슨의 저작들에 대한 리뷰 (최성일) 미선이 6007 04-14
64 [초강추] 마이클 마멋,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코리브르) (1) 미선이 7727 04-14
63 [초강추!] 장대익, 『다윈의 식탁』(김영사) (1) 미선이 8093 04-12
62 존 쉘비 스퐁,『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서평 (1) 흰구름 7637 03-29
61 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 (7) 흰구름 5594 03-18
60 기세춘의 <노자강의>: 천재적인 동양학의 대가 기세춘의 노자 바로 알기 (1) 한솔이 6459 03-13
59 독서클럽 안 하실래요? (7) Mosaic 5105 03-11
58 홍정수 박사의 사도신경 강해설교집 <사도신경 살아내기> (2) 흰구름 7230 02-08
57 ★ 몸의 건강, 삶의 건강을 위하여 추천하는 몇 가지 도서들 (2) 미선이 7074 01-24
56 [강추!]『스트레스 다스리기』대한불안장애학회 스트레스관리연구특별위원회 저 (1) 미선이 7894 01-22
55 [강추!]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세계화국제포럼/필맥) (1) 미선이 7025 01-22
54 신영복의 고전읽기 - 묵자 (3) 거시기 8675 01-21
53 『욕망 :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 』(운주사) (1) 미선이 7716 12-19
52 『나, 버릴 것인가 찾을 것인가』(운주사) 미선이 5714 12-19
51 [나는 누구인가} - 라마나 마하르쉬 (7) 아트만 8660 12-19
50 [강추!] 바트 D. 어만,『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이제) 미선이 6459 12-11
49 [초강추!] 마셜 B.로젠버그,『 비폭력 대화 :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1) 미선이 8123 12-11
48 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 (3) 치노 6114 12-04
47 『자아초월 심리학과 정신의학』(Bruce W. Scotton, Alian B. Chinen, John R. Batti… (1) 정강길 8543 10-19
46 『깨달음의 심리학』(John Welwood 지음 / 학지사) (1) 정강길 6923 10-19
45 이스라엘 핑컬스타인의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4) 한솔이 7248 10-02
44 현대 물리학에 대한 초강추 교양도서,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승산) 정강길 7686 09-27
43 [초강추!]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민음사) 미선이 10645 07-30
42 김덕기, 『복음서의 문화비평적 해석』(이화) 미선이 7101 07-29
41 [서평] 조엘 박의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 (4) 마루치 7496 07-05
40 브룩시 카베이의 "예수, 종교를 비판하다" 출간 (2) 뒤뜰 6830 05-09
39 "예수, 종교를 비판하다" (2) 뒤뜰 7041 04-16
38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 교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 별똥별 6962 04-03
37 "유신론 붕괴 후 기독교 신앙은 가능한가?" 존 쉘비 스퐁,<새 시대를 위한 새 기… (1) 정강길 7562 02-21
36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해울, 2003) 초강추!… 미선이 8110 02-05
35 읽어서는 안 될 책 소개-사해사본의 진실 (4) sydney 13557 01-08
34    만일 바울 노선의 기독교가 원래는 기독교 정통이 아니라면? (3) 정강길 7320 03-17
33 지금 독립을 꿈꾸는 모든 여성에게 권하는 책, 『나 독립한다』(일다) 정강길 5877 01-07
32 예수신화 학파의 본격적인 연구서, 얼 도허티의 『예수퍼즐』(강추!) (7) 정강길 8953 01-07
31 "자본주의와 세계화속 약소국의 비애" / 장하준 지음,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미선이 7562 12-19
30 몇권의 책들 소개 합니다^(^ (1) Stephen 6594 10-21
29 크리스토퍼 퀸 외,『평화와 행복을 위한 불교지성들의 위대한 도전』(초록마을) 정강길 6564 08-03
28 포스트모던시대의 기독교 영성 찾기 - 지성수, 『비뚤어진 영성』(예루살렘, 2007) (1) 정강길 8100 07-28
27 조화순,『낮추고 사는 즐거움』(도솔)-"몸 낮춰 사랑하며 자연과 함께 춤을" 정강길 6337 06-07
26 구미정, 『한글자로 신학하기』(대한기독교서회) (1) 정강길 8873 04-08
25 존 쉘비 스퐁, 『성경과 폭력』(원제: 성경이 저지른 죄악) (강추~!!) (4) 흰구름 8847 03-24
24 미국, 팍스아메리카나에 대한 보고서 - 김민웅,『밀실의 제국』(한겨레출판사) 정강길 7306 03-07
23 강인철,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중심, 2007) 정강길 8279 02-07
22 바라바시, <링크: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크워크 과학>(강추!) 정강길 10543 02-04
21 ☆ 가장 높은 로열의 반열에 있는 책들!! (계속 올릴 예정) (3) 정강길 9750 01-19
20 게르트 타이센 『복음서의 교회정치학』/Ⅳ누가복음-사도행전의 교회정치학 3-5장 정강길 8721 01-14
19 보수 진영의 출판사에서 나온 해석학에 대한 좋은 책 소개 하나! 정강길 6873 01-11
18 한국 기독교 역사의 흐름 바로 보기 (특히 7, 80년대 이후) 정강길 8602 12-16
17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이해하기 <복잡계 개론> (강추!) (1) 정강길 9472 12-16
16 <기독인을 위한 성폭력 예방 지침서>, 기독교여성상담소 정강길 6527 12-09
15 [펌]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 전통이 가짜라면 (강추) 관리자 7383 12-06
14 [펌] 성경 왜곡의 역사 (강추) (7) 정강길 12465 11-13
13 [책] 과정신학 진영의 미부시 행정부에 대한 공격 관리자 6406 11-12
12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을 읽고서... 정강길 9150 04-27
11 "진화론과 유신론의 유쾌한 만남" 관리자 9566 09-23
10 [책] 김덕영,『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한울) 정강길 9101 09-21
9 전환시대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For the Common Good』 관리자 7681 08-08
8 J.A.T.Robinson, 현영학 옮김, <신에게 솔직히> (2) 관리자 8015 07-02
7 생태여성신학자와 함께 떠나는 "생명사랑 순례의 길" (1) 정강길 8047 06-27
6 [펌] 비폭력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라 미선이 6937 06-24
5 [펌] "한국전쟁, 1949년 38선 충돌 통해 형성됐다", 정병준 <한국전쟁> 관리자 7926 06-24
4 키스 W. 휘틀럼,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 침묵당한 팔레스타인 역사』(이산, 2003) 정강길 9563 06-15
3 윌터 윙크의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초강력추천!!) (1) 정강길 12744 06-15
2 종교, 정치 그리고 기독교 우파(Mark Lewis Taylor) 관리자 6354 06-07
1 A.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 오영환 역, 『과정과 실재』(민음사) 정강길 13318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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